최승정 신부의 성서 백주간 16회 (바벨탑과 소통)

작성자빗방울|작성시간20.11.28|조회수282 목록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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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노아의 아들들인 셈, 함, 야펫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 창세 9,21-23 : 셈과 함과 야펫

노아는 포도원을 가꾸는 사람이 되었고, 포도는 과일로 먹기도 하지만, 물이 부족한 곳에서 포도주를 만들고...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자기 천막 안에 누워 있었다.

그때 가나안의 조상 함이 자기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

밖에 있는 두 형제에게 알렸다.

셈과 야펫은 겉옷을 집어 둘이서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덮여 드렸다.

- 이 텍스트 상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서 함이 약간의 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셈과 야펫은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 싶지 않아서) 겉옷으로 덮어줍니다.

함이 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가나안이 나오는데, 사실 가나안과 함은 같은 민족으로 보기가 조금 어렵지만,

창세 9,22 "그때 가나안의 조상 함이 자기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 적는 저자는 함을 가나안과 연결시켜서 함을 가나안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가나안이 셈을 섬기게 되는것,( 창세 9,25-26 "가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라...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어라.") 가나안과 셈이 주종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이 이야기까지 끌어와 설명한다..

유다민족의 조상인 셈을 가나안 민족인 섬기게 된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준비하는 부분.

* 노아의 아들 이야기는 가나안 본토의 민족들은 탈출기 이후 그곳에 들어오게 될 유다민족(셈)을 섬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야펫에 관해서는,

* 창세 9,27

"하느님께서는 야펫에게 자리를 넓게 마련해 주시고 셈의 천막들 안에서 살게 해 주소서."

- 야펫은 셈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고, 그 주도권은 유다의 조상인 셈에게 있다는 의미

 

* 창세 9,28-29

노아는 홍수가 있은 뒤에 삼백 오십년을 살았다.

노아는 모두 구백오십년을 살고 죽었다.

- 성서적 나이가 120세라고 말했었는데....요^^::

 

겉옷의 의미가 중요해서,

마태오의 겉옷

5,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 주어라.

- 겉옷까지 주라는 말은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자신을 온전히 내놓으라는 의미

21,7   그들은 그렇게 암나귀와 어린 나귀를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펴 놓았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앉으시자,

- 겉옷을 펴 놓았다는 것은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

21,8   수많은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 예수님의 발이 다치시지 않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서서' 시처럼~~

24,18   들에 있는 이는 겉옷을 가지고 가려고 뒤로 돌아서지 마라.

- 심판에 날에 관한 내용, 최소한 것도 챙길 필요가 없다...

26,65  그때에 대사제가 자기 겉옷을 찢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방금 여러분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27,31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끌고 나갔다.

- '외투'는 예수님을 왕으로 조롱하기 위해서 벗기고

27,35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 값어치가 있는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는 의미이고, 겉옷이 분리되지 않는 통옷이라서 제비를 뽑아서 한 사람이 가지게 하였다.

- 마태오 복음에서 겉옷이 7번 나옵니다.

 

* 옷은? 현세의 권능과 지위 능력을 의미한다

* 노아의 대목과 관련해서 우리가 묵상 해 볼수 있는 것은?

- 알몸으로 자고 있는 아버지에게 ,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 드렸다." 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가?

누군가가 한 잘못들, 누군가의 실수에 대해서 우리는 지나치게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루는 공동체는 셈과 야펫처럼 누군가의 잘못을 덮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함의 이유다...

일상안에서 타인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 또한 자신의 영혼까지 탁하게 할 수 있다. 신부님의 주보 성인인 베네딕토 성인이 은수자 생활을 할때  입에 성호를 한 번 더긋고 , 삼년의 은수생활을 하면서 입에 돌을 물고 말을 멈추는 생활을 하셨다는 부분도 깊이 있는 묵상이 된다.

 

노아 이후로 셈, 함, 야펫이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져 민족을 이룬다.

함 : 아프리카 북부 민족의 조상, 아프로 하미틱랭귀지

셈 : 고대 근동의 민족 조상( 팔레스타인을 비롯하여 더 동쪽으로), 세미틱랭귀지

야펫 : 터키, 그리스 지역의 조상, 

- 따라서 노아의 이야기를 쓴 저자의 세계관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 창세 10,1-32 : 노아의 자손들

 

창세 1-11장의 족보

* Toledoth(톨레돗, 히브리어)- Genesos(게네세오스,그리스어)-Genesis(제네시스, 라틴어, '창세기'도 뜻함)

- genesos, genesis : 족보의 의미와 함께 생성, 창조의 의미도 있음

4,17~22 카인의 족보(라멕)

5,1~32   셋의 족보(에녹)

10,1~32  노아부터.....

11,10~32 .....아브라함까지

📝창세기의 족보는 사제계가 작성했다- 족보를 제시하고 각 사건을 설명한다

창세기의 족보는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창세기는 모든 다른 민족들 역시 하느님께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노아의 후손들이다. 라는 개념으로)

중요한 사건과 나머지는 족보로 서술(하나의 흐름으로 진주 목걸이 서술 방식,사제계 작성)

 

이와 비슷하게 복음사가에서 전하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 이유는?

-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의 족보는 예수님 사건이, 제시한 족보에서부터 준비되었다고 설명한다

* 마태오 복음- 유다인들을 위한 조상인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 루카 복음 - 세상모든 이들을 위한 '아담'을 시작으로,

* 요한 복음 - 인간 창조 이전에 ' 한 처음에 말씀으로' 존재하셨음을 전한다.

 

- 바벨 이야기( 11장에서)

* 창세 11,1 : 바벨탑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 윗 부분과 비교하여 창세 10,31에서는 쓰는 언어가 달랐다고 말하는데, 11장에서는 같은 말을 쓰고있다고 하는, 내용적으로 보면 같지않아서 10장 31절의 노아의 자손들에서 넘어온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전해온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바벨탑 이야기는 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언어와 문화가 생겨났는지 설명한다

 

*창세 10,31 :노아의 자손들( 창세 11,1절과 비교하기 위해)

'이들이 씨족과 언어와 

지방과 민족에 따라 본 셈의 자손들이다.'

 

* 창세 11,2-3 : 바벨탑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주해 오다가 신아르 지방에서

한 벌판을 만나 거기에 자리 잡고 살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 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 '신아르'는 아시리아를 말한다.

 

바벨 이야기

* 신 아르 = 아시리아

 

* 돌(stone) 대신 벽돌(brick) / 회반죽(mortar)대신 역청(bitumen, 원시적인 단계의 아스팔트 혹은 시멘트)

   - 벽돌 = 진흙(mud) + 짚(straw)( 탈출기에서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시를 건설하게 하는데, 자꾸 불어나는 이스라엘의 수에 두려움을 느끼고 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짚을 주지 않으며 탄압했다. 이때 벽돌을 만들때 짚이 꼭필요했다.(점성을 이용해 더 단단한 벽돌을 만들려고)

   - 돌과 회반죽 대신해 벽돌과 역청으로( 돌과 회반죽으로는 단층의 건물만 지을 수 있었곸, 벽돌과 역청으로 높은 건물을 쌓을 수 있었다, 수메르 지역)

 

* 창세 11,4 : 바벨 탑

"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 여기에서 '성읍'은  지금의 개념으로는 '읍'정도이고,히브리어번역에서는 '이르(ir), 도시'를 의미하는데, 그 당시에 도시라면 성벽이 있었다(성벽안에 있는 왕과 백성을 보호)

- 당시에 도시(성읍)가 가능했던 지역으로는, 우르, 바빌론, 아카드, 니느베, 아수르,나일강 유역의 몇몇 도시들..이고 강을 중심으로 , 성을 지어 전쟁을 막기 위해 주로 높은지역에 지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도 당시에 국가의 힘이 강성했을 때는 강을 이루는 낮은 지역에 위치했지만 대부분은 다 높은 산을 중심으로 성들이 위치( 예루살렘도 굉장히 높은 산위의 도시)

 

바벨 이야기 11,4를 직역하면

11,4

오라.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과

그의 머리를 하늘에 건설하자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만들자

온 땅의 표면에 흩어지지 않기 위하여

- '그의 머리'는 도시의 머리를 의미

- '이름을 만들자'는 인간이 자신을 신격화하는 의미.

- '탑'이라는 말

탑을 요즘에는 지구라트(ziggurat, 고대 피라미드형 구조물)라고 부르고, 사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이 모양을 하고 있다. 무덤과 제단의 기능을 하고있다(이집트에서만 주로 무덤으로 사용, 거의 제단으로)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은 우르지역의 지구라트와 우르 남무라는 왕의 무덤의 지구라트가 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허락치 않으시고,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으신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 창세 11,7-9 : 바벨탑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좋아....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 바벨은 혼돈이이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다

 

 

* 창세 11,8 (직역)

"그리고 야훼는 그들을 그곳으로부터

온 땅의 표면에 흩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멈췄다."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하늘끝까지 탑을 쌓으려는 인간을 '흩어 놓았다'(말도 뒤섞이고 흩어지게 하셨다는 의미)

 

- '바벨'이라는 수메리아(수메르) 언어의 어원은

밥 일라니 - '하늘의 문' : 하늘과 땅을 잇는다. 긍정적 의미

바블, 발랄 - 셈족언어에서는 '혼돈'을 의미하는 부정적 의미로(본래의 좋은'하늘의 문'이라는 말을 언어적 유희로 다소 부정적의미로 바꿔지는 경우, terrific(부정적의미- 긍정적의미))

역사적인 상황에서도 비슷한 이름의 도시인 바빌론으로 유다가 유배를 가게된다. 바빌론에 관해서 고고학적으로 고증을 할 수 없지만 주전4000년의 바빌론의 상상도

그리고 그 입구의 문인 이슈타르(Ishtar gate)의 문이 바빌론의 정문

그리고 바벨의 이야기에서

* 언어의 혼돈

    - communicatio :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 인간과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소통(communicatio, 라틴어)의 문제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자리에 도전하게 되자,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것처럼)

 

* 창조 질서의 회귀

 

* 창조의 실패?

    - 사도 행전 2장 : 성령 강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50일 때 승천, 50일 째 성령이 내려오자..제자들이 성령을 받고서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그곳의 사람들이 각각 자신들의 언어로 그 말씀을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 성령 강림 때 일어난 사건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다

       - 오늘날에도 발달된 소통의 도구가 있음에도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성령강림 사건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에서 오는 소통보다 우리의 하느님을 통하였을 때 가장 올바른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 결국 바벨탑의 이야기부터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의 사건까지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면, 성령과 함께하면 우리의 이웃들도 새롭게 만나게 된다."는 의미.

또한 하느님의 창조의 이야기에서 바벨탑의 이야기까지 창세기 1장~11장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인해 끊없이 실패하는 이야기(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시대의 사람들, 바벨탑을 세운 사람들)이다. 하느님께서 잡아놓으신 질서를 혼돈으로 회귀시킴으로써 인간스스로가 살기 힘들어지게 된다

인간이 죄를 짓고 땅이 벌을 받고, 그 땅위에서 사는 인간들과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기 힘들어지게 되었다는 화두와 더불어,

하느님의 새로운 선택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아브람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구원하시려 하시는,

구약 전체를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 나는 너희를 구원하고야 말겠다." 라고 성경전체에서 보여 주시는 하느님의 강한 구원 의지..하느님 역사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나..."라는 모습을 것이다.

 

 

창세기 1-11장은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혼돈(chaos)으로 회귀하는 인간때문에 실패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질서(cosmos)를 잡으시고 '아브람'을 통해서 구원의지를 보여주실 것이라는 희망이 엿보입니다.

"나는 너를 구원하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언어와 소통을 통해 문명과 역사가 발달했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더 많은 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야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알아 갈 수 있는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판단과 실행 또한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으로서 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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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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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주안 | 작성시간 21.03.23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빗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2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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