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정 베네딕토 신부님 방학동 성당, 구약특강4(2026년 6월 11일)

작성자빗방울|작성시간26.06.12|조회수96 목록 댓글 6

 

 

 

지금까지 강의를 되짚어보면, 첫 번째는 노아에 관해서, 두 번째 강의에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에 대해서, 지난 시간인 세 번째 강의에서는 모세에 관해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모세에 뒤이어 모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여호수아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호수아라는 인물과 요즘에 생각해봐야 할 개념 중에 하나가 헤렘(herem)이라는 개념입니다.

 

헤렘은 히브리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번역하기가 조금 까다롭습니다.

문맥에 따라서 완전 봉헌, 또는 절멸, 멸절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전쟁 같은 문맥 안에서 헤렘은 "멸절시킨다"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제의적인 문맥 안에서 헤렘은 "완전 봉헌"이라는 의미로,

 

완전 봉헌이란 뜻은?

히브리인들은 율법중심이었습니다.

그 율법의 규정 중에는,

"내가 하느님께 또는 성전에 무언가를 봉헌했다가 그것을 되사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나, 혹은 내가 데리고 있는 노예를 봉헌할 수도 있는데, 

사무엘기를 읽어보면 사무엘의 엄마인 한나가 아이를 못 낳다가, 성소에 가서 엘리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됩니다.

그 아이가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태어나자 그 사무엘을 집에 데리고 들어오지 않고, 사무엘은 그 성소에 남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와 함께 있으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사람을 성소에, 하느님께 봉헌하는 틀입니다.

 

그렇게 사람이나 동물, 집이나 밭을 봉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봉헌한 것들을 되사올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 27장에  되살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평범하고 일반적인 봉헌)

 

하지만 완전봉헌인 경우에는 되살 수 없습니다. 우리식의 표현으로 말하면, 

"그것은 물릴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다."라는 개념입니다. (제의적인 표현에서)

 

 

전쟁의 문맥 안에서는, 그것을 절멸시킨다는 의미는?

 

◎ 여기서 잠깐 다시 기억해 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전쟁에서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고 이긴 나라에서 진 나라에서 약탈해 온 전리품 중 십 분의 일을 자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하느님의 몫이라고 생각하여 바치는 것이 십일조의 일반적인 유래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계산을 해봐도 승산이 없는 전쟁인 경우,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임금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느님께 약속을 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면 전리품 모두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평소에는 십 분의 일만 드렸는데 이번에는 전부를 드리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전리품을 전부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데, 혹시라도 하느님께 바치지 못한 사고가 있을까 봐 전쟁에서 진 나라의 마을을 전부 다 태워버립니다.

임금은 그 나라는 하느님께 헤렘을 약속한 하느님의 것으로 다 태워버리라는 명령을 합니다.(헤렘을 어겼을 시 재앙을 맞게 될까 봐)

 

◎ 제의적인 문맥에서건 전쟁의 문맥에서건 무언가를 헤렘 했다는 뜻은?

이것은 이제 하느님께 속한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손대서는 안 된다.

그것은 되사올 수 없다.

 

우리도 이와 같은 헤렘이 있습니다.

폴리네시아어인 터부(taboo)라는 말로,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 세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그것을 함부로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천주교 안에서 존재하는 터부에는?

하느님께 거룩한 것들, 성스러운 것들은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본당 신부님이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숙취가 심하고 두통이 심해서 성체를 모시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감실의 문을 열고 성체를 모셨다면? 그것은 독성죄입니다.

신자분들이 성당에 와서 감실에 열쇠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성체를 모셨다면 그것도 독성죄입니다.

 

신부님도 본당 사목을 하실 때, 어느 교우분이 영성체 때 성체를 다 모시지 않고 절반을 쪼개어 집안에 만든 감실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일 난다고 말씀드리고, 성체를 쪼개서 집에 가져가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저희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체를, 본래의 의미로 이야기해 보면,

그것이 허락된 시간과 허락된 공간에서만 거룩함과 만날 수 있습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 

성전도 거룩한 곳,

미사도 거룩한 시간입니다.

거룩한 시간을 거룩한 장소에서만 우리에게 허락되는 성체

그리고 그와 같은 거룩함들은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헤렘 전통과 연관시킬 수 있는 천주교의 종교적인 관행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기에서부터 헤렘이라는 단어가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할 때,

그 가나안 땅은 하느님께 온전히 속하고 바쳐지는 땅이다.라는 의미로 본래부터 하느님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 주셨을까요?

이유에 관한 설명이 신명기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에서 사는 민족들이 역겨운 짓을 했다. 다른 신을 섬기고, 그 신들에게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한 짓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끔찍하고 역겨운 모습이어서 하느님께서 그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에 주시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가나안을 점령하게 되거든 다 죽여버려라."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신명기의 관점에서는,

하느님의 땅인 가나안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절대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대표주자가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의 시기에서부터 우리에게 헤렘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기는 구약에서 여섯 번째 책입니다.

그 이전의 오경에서도 여호수아는 등장할까요? 나옵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아말렉과 전투를 할 때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모세가 아말렉이 쳐들어오니까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싸우라고 말합니다.(탈출 17,9)그리고 자신은 아론과 후르를 데리고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그때 모세가 든 지팡이가 올라가면 전쟁에서 이기고, 팔이 아파서 지팡이가 좀 내려가면 여후수아가 전쟁에서 지게 됩니다.

지팡이가 올라가면 이기고 내려가면 지는 일이 생겨나자, 같이 올라갔던 아론과 후르가 모세의 팔을 옆에서 지탱합니다. 결국 그 전쟁에서 여호수아는 승리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내일 있을 월드컵 축구를 보시면서 내 팔을 올려보고, 내려 보면서 경기에 승패가 좌우되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언가를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ㅎㅎ

 

그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갈 때입니다. 다른 사람은 데려가지 않고 자신의 시종인 여호수아만 데리고 갑니다.

그때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있었던 사람입니다.(탈출 24,13)

모세는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춤추고 노래하며 이방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혼을 내고 다시 산에 올라가서 하느님께 증언판을 받고 내려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 안에서 모세는 백성들이 하느님께 질문을 하면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가 하느님을 만나고 나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모세의 얼굴은 환히 빛났습니다.(탈출 34,29) 그때의 모세의 모습을 환히 빛났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그의 살갗이 돋아 올랐다."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강의 때 보여주신 모세의 모습 참조 하시면 됩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의 상

 

그렇게 모세가 백성들의 질문을 위해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가게 되면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는 만남의 천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탈출 33,11)

 

그 이후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카데스 바르네아로 갑니다.

시나이 산에서 내려와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카데스 바르네아로 갑니다.

이집트에서 나와서 시나인 산까지 갔다가 시나이 산에서 카데스 바르네아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 지파에서 몇몇 소집해 가나안 땅에 정찰을 보냅니다.

그 정찰대 중에 에프라임 지파의 대표고 여호수아가 갑니다. (유다 지파의 대표로는 칼렙)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온 그들은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가나안 땅은 참 비옥합니다.

그래서 그곳의 포도를 들고오는 모습인데, 문학적 과장된 표현입니다

정찰대가 말한 비옥한 가나안 땅의 포도송이, 문학적 과장

 

두 번째 그곳은 땅만 비옥한게 아니라 사람들도 힘이 세고 건장해서 우리가 그곳을 쳐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때 에프라임 지파를 대표하던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를 대표하던 칼렙이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나중에 정찰을 하고 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선동한 그들을 하느님께서는 벌을 주고 그 세대는 아무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찰한 시기가 40일인데 그 하루에 일 년씩 벌을 받아서 앞으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다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칼렙, 두 사람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세는 나중에 "하느님, 그래도 저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하고 청합니다.(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보기는 해라."하고 말씀하시면서 모세를 데리고 느보산 피스카 봉우리에서 그 약속의 땅을 보여주십니다.

(신명 34,1-4)

느보산 피스가 꼭대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약소의 땅의 모습으로 이와 비슷한 광경이었을 겁니다.( 신명 34,1-4)

모세는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그곳에서 120살을 마치고 죽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요르단 강을 건너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게 됩니다.

 

그들이 40년 동안 유랑을 생활을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조금 머무르고 있을 때의 모습이 왼쪽이고(아래 사진 참조시 왼쪽), 그 열두 지파가 세 지파, 세 지파, 세 지파로 가운데 계약 궤를 두고 보호하는 형태로 텐트를 치고 머물렀을 것입니다. 가운데 계약 궤는 레위 지파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운데 레위 지파를 제외한 총 열두 지파(요셉의 아들인 므나쎄와 에프라임으로),

레위 지파와 열두 지파를 합하면 총 13지파가 됩니다.

 

오른쪽은 이동할 때의 모습입니다.(아래 사잔 참조시 오른쪽)

맨 앞에 선두로 사제들이 계약 궤를 지고서 가고, 첫 번째는 세 지파가 선두로 가고, 그다음으로는 성막에서 쓰는 장비들을 가지고 이동,  그다음은 성막에서 쓰는 여러 가지 제의들, 세 지파, 세 지파로 모두 열두 지파가 군대가 이동하듯이, 전체는 ★60만 명입니다.

신부님의 지난 강의 사진 자료입니다^^

성막과 관련되는 또는 계약 궤를 지고 가는 사람들은 레위 지파에서 하면서 나머지 열두 지파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그들이 요르단 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여호수아가 3장에서 모세가 갈대 바다를 건널 때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물이 갈라집니다.

 

여호 3,14  백성이 요르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천막에서 떠날 때에,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백성 앞에 섰다.

 

15  드디어 궤를 멘 이들이 요르단에 다다랐다. 수확기 내내 강 언덕까지 물이 차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강 물가에 발을 담그자,

 

16  위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추어 섰다. 아주 멀리 차르탄 곁에 있는 성읍 아담이 둑이 생겨, 아라바  바다, 곧 '소금 바다'로 내려가던 물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그래서 백성은 예리코 맞은 쪽으로 건너갔다.

 

여호수아가 모세와 비슷한 사건을 겪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사건입니다. 사제들이 계약 궤를 메고 요르단 강 중간까지 가니까 요르단강이 갈라지게 되는데 여호 3,16에서 과학적인 설명이 덧붙여집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사제들이 계약 궤를 메고 강 가운데 섰을 때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하느님의 의지가 발동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이후 길갈에서 진을 치고 그달 열흘날 예리코 벌판에서 파스카 축제를(여호 5장 10-12) 지냅니다.

파스카 축제 다음날 그들은 그 땅에 소출을 먹고 바로 그날에 그들은 누룩 없는 빵과 볶은 밀을 먹은 것이다. 그들이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멎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난 것을 먹었다.

 

결국 그들이 요르단강을 건너와서 가나안 땅으로 와서 그 땅에서 난 소출을 먹자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여기서입니다.

그들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전에 한 가지를 해야 했는데 무엇일까요? 할례입니다.

 

탈출기에서 파스카 축제에 관한 규정을 찾아보면,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사람이건 이방인이건 무조건 할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할례는 창세기 17장에서 야훼 하느님이 아브라함과의 계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시,

광야에서 카데스 바르네아로 정찰대를 보내고 나서, 40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이집트를 탈출했던 할례받았던 첫 세대가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두 번째 세대를 데리고 요르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요르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그들은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할례가 베풀어집니다. 그리고 강을 건넌 그들은 파스카 축제를 지내게 됩니다.(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이 파스카 축제를 어떻게 지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나서 이제 그들은 전쟁을 시작합니다.

모세가 이미 여호수아에게 내린 명령이 있었습니다. 

"이 가나안 땅은 나에게(하느님께) 속한 거룩한 땅이다. 따라서 이 땅의 거룩하지 않는 것은 다 치워 버려야 한다."

하느님께 역겨운 짓을 하고 다른 신을 섬겼던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모두 죽여 없애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첫 번째로 정복해야 했던 곳은 예리코입니다.

여호 5,13  여호수아가 예리코 가까이에 있을 때,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 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적의 편이냐?" 

 

14  그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지금 주님 군대의 장수로서 왔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여 그에게 물었다. "나리, 이 종에게 무슨 분부를 내리시렵니까?" 

 

15  주님 군대의 장수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자리는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는 그대로 하였다.

모세도 탈출기 3장을 보면 호렙산에 가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는데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말씀을 들었습니다. 결국 세속적으로 부정한 것들이 신발에 묻어있는데 거룩한 곳에 그 상태로는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부정한 상태로 성전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크게 본다면, 고백성사를 보고, 성전에 들어올 때는 성수 예절을 하고 들어옵니다.

 

성수 예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거룩한 공간인 성전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 들어가기에 내가 부정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성찰하는 마음, 세속적인 욕망, 누군가를 향한 미움들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 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성수 예절의 옛날 기도문에는 마귀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라는 것이 공포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서운 존재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생각과 마음이 마귀의 정체일 것입니다.

 

이슬람은 모스크에 들어갈 때 오늘날까지도 신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도 신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주거 문화이고, 예전 구교 성당을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그다음으로 천사와 여호수아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고  5장의 내용은 5,15절로 마무리됩니다. 그 부분은 묵상 중에 우리가 하느님께 들어야 할 내용일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상황은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공격하기 직전입니다. 그래서 아마 예리코를 공격하는 내용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리코를 공격하는데 조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예리코의 성모양이 이중 성벽의 구조였습니다. 따라서 이 성을 어떻게 공격할까 고민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느님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우선 계약 궤를 메고 사제들과 함께 그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아라. 그리고 일곱 째날이 되면 나팔을 불면서 함성을 울리면서 그 성을 일곱 바퀴를 돌아라. 그러면 그 성이 무너질 거야."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앞서 여호수아기 5장에 나왔던 주님 군대의 장수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은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 6,16-19절입니다

예리코를 함락시키고 나서 그들이 전리품을 챙길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만 창녀 라합과 그 집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헤렘 규정의 예외적인 인물들)

 

첫 번째 전투에서 예리코가 함락되고 그들이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칸이 금이나 은을 챙겨서 자신의 천막에 숨겨 둡니다.

 

예리코 점령 이후에 두 번째 도시인 아이를 공격하려는데 실패합니다. 아칸이 헤렘의 규정을 어겨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하느님께 탄원기도를 드렸고 하느님께 너희 중에 한 명이 완전 봉헌물에 손을 대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지파들을 모아 놓고 제비 뽑기를 합니다. 아칸의 지파가 나오고 거기서 또 제비 뽑기를 하니 아칸이 걸리고 아칸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가 훔쳐간 물건들을 다 소멸돼버립니다.(아칸의 죄와 아칸에게 행해지는 신적 심판)

 

여호 7,24  여호수아는 제라의 자손 아칸, 은과 겉옷과 금덩어리, 그의 아들딸들, 소와 나귀와 양들, 천막과 그에게 딸린 모든 것을 이끌고, 온 이스라엘과 함께 '아코르 골짜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불에 태우고 그 위로 돌을 던졌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시 아이 점령을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 8,1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 일어나 모든 병사를 거느리고 아이로 올라가거라.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는 말씀이 복음서에도 나옵니다. 

여기서는 두려워하지도 겁내지도 말아라.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두려워 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겁내지 말아라)"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하십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과는 나는 좀 다르게 살아가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물질적인 세상 안에서 나는 영적인 가치를 쫓으며 살아가겠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신부님들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신부님들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많은 신부님들이 교중 미사를 하면서 신자들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신다고 합니다.

'한 주일동안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이 자리에 와있는 우리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신부님들이 신자들에게 느끼는 측은지심...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조롱과 멸시가 있고, 크고 작은 박해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가 뭔가 부족한 삶을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도 마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호 8,1  일어나 모든 병사를 거느리고 아이로 올라가거라. 모아라, 내가 아이 임금과 그 백성과 성읍과 그 땅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

 

2  너는 아이와 그 임금에게도 예리코와 그 임금에게 한 것처럼 해야 한다. 다만 전리품과 가축만은 너희가 차지하여도 좋다.(헤렘의 수위를 낮춰 주십니다) 그 성읍 뒤쪽에 복병을 배치하여라.

 

하느님께 제일 중요한 것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그 하느님 백성이 본래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민족들에게 역겨운 짓을 배울까 봐,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식의 표현으로 말하면,

가장 큰 범죄 중의 하나가 인종청소인데, 그런 인종청소를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건가? 하는 생각으로 오늘날 성서연구가들인 가장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서,

여호 8,26  이스라엘은 아이를 점령하고 아이의 모든 주민을 완전 봉헌물로 바칠 때까지(헤렘 할 때까지), 창을 들고 내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27  다만 그 성읍의 가축과 전리품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제 몫으로 차지하였다.

 

그리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예리코와 아이의 점령 소식을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무서워하면서 연합해서 이스라엘에게 맞서려고 합니다.

그들 중 기브온 사람들은 꾀를 냅니다. 여호수아를 찾아가면서 다 낡아빠진 옷과 신발, 그리고 오래된 빵을 가지고 가, 자신들은 멀리서 살고 있는 기브온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화친을 맺기 위해 왔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느님은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 다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가나안 땅 밖에 있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싸울 일이 있을 때 먼저 화친을 맺어도 되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 땅 안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 멀리서 사는 것처럼 속이고 화친을 맺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계약은 지켜져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하면서 라합과 기브온 사람들은 모두 다 살려줍니다.

여호 10,1-4

여호 10,1절에서 예루살렘이 굉장히 오래된 지명임을 알수 있습니다. 다윗이 점령하기 전부터 이미 여호수아의 시대에서부터 그 도시의 이름은 예루살렘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학작품을 보면 우루살랴임, 예루살렘과 비슷한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우루샬라임이 예루살렘의 다른 발음이라고 오늘날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의 임금 아도니 체덱은 다른 헤브론, 야르못, 라키스, 에글론의 임금에게 우선 기브온을 공격하자고 전갈을 보냈고,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들 모두를 점령합니다. 그게 가나안 남부의 점령입니다.

 

요르단강을 건너와서 예리코와 아이를 점령하고 나서 그 이후에 남쪽의 있는 지역을 점령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도 북부와 남부가 있습니다.(북이스라엘과 남유다처럼)

 

남유다는 사막 지형이 많았고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쪽을 먼저 점령한 이유는? 예리코와 아이의 점령 이후 북쪽은 굉장히 지역도 넓고 사람들도 많았지만 남쪽은 대부분 사막지역이라 넓지도 않고 점령할 수 있는 지역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쪽을 먼저 점령한 것 같습니다. 그 점령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안 남부 점령의 이야기 여호 10,28-43

 

그 가나안 남부의 점령의 이야기에서 "생존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즉 헤렘을 실천하였다

왜 생존자를 남기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남아 있는 생존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역겨운 짓을 가르칠까봐 그러했습니다.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너희는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마라."는 말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신부님도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너는 학교에 가서 항상 너보다 더 훌륭한 아이를 친구로 사귀어야 해.“하고 말씀하시면,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친구가 하나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지만 정말로 역량이 있다면 어떠할까요?

본당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여러분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은 만나지 마십시오. 나쁜 영향은, 내가 힘든 일이 있어서 어디 가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같이 갈까? 하는 분들은 나쁜 이웃입니다."

 

하지만 정말 믿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신자분께 그런 곳으로 가자고 말씀하시는 형제자매님들을 성당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을 한편으론 두려워해야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내면적인 역량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부족하고 역량이 없을 때는 길거리에 가다가 지저분한 게 있으면 피해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역량이 정말로 충분하면 길거리에 가다가 지저분한게 있으면 치워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강건해져야 할 이유입니다.

만약 여호수아의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야말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강건함을 갖고 있었다면,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다 죽여버리라고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셨을 겁니다.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줘. 그래서 그들도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수 있도록 너희가 그들의 역겨운 짓을 너희가 치워 버려."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충분히 믿지 못하신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너희가 그들의 역겨운 짓을 배울 것 같아 그러니, 그들을 전부 다 죽어버려."그런 헤렘의 명령을 내리시고, 가나안 남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생존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나왔을 겁니다.

 

여호수아기 11,1-15절입니다.

가나안 북부 점령 이야기, 여호 11,1-15 "숨쉬는 것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않았다."

가나안 북부를 점령하는 이야기에서는 "숨 쉬는 것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않았다."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남부의 점령에서는 생존자는 하나도... 북부의 점령에서는 숨 쉬는 것은 하나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호수아기에서 나오는 헤렘의 규정들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지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지금 이란에서 일어나고 전쟁,

이스라엘 민족과 이란 민족과 그다음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하고 있고 각 나라의 백성들은 큰 공포와 위기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의 문필가가 말했습니다. "전쟁은 노인들이 일으키고 죽기는 젊은이들이 죽더라."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과 전쟁에서 희생되는 이들이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생각하셨대요.

저렇게 전쟁하지 말고, "전쟁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 나와!!!" 그들은 운동장에 몰아놓고 서로 싸움질하게 놔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요...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처나 피해 주지 않고,

 

이란,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의 전쟁 바탕에는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애국심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애국심(patriotism)은 자신의 가족, 지역,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그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주의(nationalism)는 자신의 가족, 자신의 민족,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자라나서 나와는 다른 지역, 다른 국가, 다른 민족을 혐오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의 민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k-pop, k-food도 위험하다고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미국 사람이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이란 사람이 자신의 문화와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거기까지 와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란의 페르시아 민족주의와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인 시오니즘(zionism), 그리고 미국의 국가주의 차원에서의 민족주의, 트럼프가 말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마가라는 미국 제일주의는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형태로 발현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을 비하하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또한 하느님께서 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도 그런 것을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도 이런 식의 정복 전쟁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리라고 한 신관을 갖고 있었던 자신의 역사를 반성합니다.

요나 예언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니느웨)로 가서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니까 그들이 회개를 합니다.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예언할 때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를 합니다. 

 

구약의 예언서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 교만한 마음을 버려라. 바리사이들아, 위선자들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 가짐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정말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모습이고 그것이 정말로 우리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인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단계에서 그들의 신관! 그들의 신앙! 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신앙에 머물러야 했던 것은 이스라엘이 그만큼 국가로서 민족으로서 내지는 영적으로 아직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연구를 했습니다. 이 여호수아기에 나온 내용들이 정말로 역사적인 것일까?

 

20세기 중반까지는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이 발전하고 학자들이 가장 열심히 발굴한 곳이 에리코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쟁했다는 기록에 남아 있는 모든 곳을 다 파헤쳐봤습니다. 

그랬는데 그 결과는? 여호수아의 시기에 전쟁을 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석가들은 설명합니다. 실제로 모든 주민들을 다 죽여버리는 인종 청소(제노사이드)의 방식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왜 여호수아기는 이렇게 쓰였을까? 여호수아기의 저자는 신명기 학파입니다.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나라를 잃고 바빌론으로 유배 가는,

시나이 백성이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단호해야 하는지를 여호수아기라는 문학 작품을 통해서 하느님 백성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여호수아기의 신학적인 중요한 메시지로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정체를 지키기 위해서 정말 단단한 내면, 영적인 자세도 지녀야 하겠지만,

나의 신념과 나의 믿음이 타인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폭력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레오 14세 교황님이 SNS를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이 세상에 어떤 전쟁도 하느님으로 이름으로 행해질 수는 없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는 이들이여! 너희들은 불행하여라,

자신의 이익을 좇으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는 이들, 그들은 불행하다.

교황님 선에서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발언입니다.

 

불행하여라,라는 말은 성서신학적으로 누군가를 저주하는 말입니다. 교황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신의 이름을 가장하는 사람들은 불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잘못된 형태로 나의 일상에서 발현되고 있지는 않는지, 나의 신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폭력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갖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심판하는 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여호수아의 생애를 되짚어 보면서 성찰할 수 있겠습니다.

 

영광송으로 마치셨습니다. 

방학동 구약 특강은 9월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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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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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빗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네, 감사합니다^^
  • 작성자로즈 | 작성시간 26.06.13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정리를 잘 할수 있다니요. 감탄만 나옵니다^^~
  • 답댓글 작성자빗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9월 두번째주 목요일 저녁 미사 후에 신부님 강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
    함께 하셔서 더 은혜롭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 작성자메밀꽃 | 작성시간 26.06.14 아멘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빗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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