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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실의 상권 제 4편(11-13)

작성자최성옥|작성시간26.06.10|조회수31 목록 댓글 4

천주실의 상권 제 4편(11-13)

 

* 4-11 중국 선비가 말한다:

 

몸을 같이하는 ‘같음’을 말합니다. ’올바른 선비(君子)‘라고 하면, 천하 만물을 ’한 몸(一體)‘으로 삼습니다. 형체(있는 사물)들을 구분하여, 너와 나를 나누는 것은 (비루한) 소인들입니다.

 

’올바른 선비‘가 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는 것은 (일부러) ’지어 낸 뜻(作意)‘에 의해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인간)들의 (본) 마음을 따르는 것이니, ’어진 본체(인체仁體)‘가 (진실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어찌 오직 군자君子뿐이겠습니까? 비록 소인의 마음이라도 그렇지 않음이 없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과거의 (중국) 선비들은 ’만물은 한 몸‘이라는 이론을 빌어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인仁을 기쁘게 따르기를 바랐습니다. 이른바 ’한 몸‘이란 (만물은) 다만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음)을 말할 뿐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참으로 ’한 몸(一體)‘이라고 믿는다면 장차 인의仁義의 도리를, 도리어 없애 버리게 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겠습니까?

 

인仁과 의義가 서로 베풀어지려면 반드시 (서로 주고받는) 두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 사물들을 실제로 ’한 몸(一體)‘이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여러 사물들을 실상 하나의 사물로 간주하는 것이요, 단지 허상虛像들만으로 그것들을 다르게 보는 것뿐입니다. 그런 허상虛像들이 어찌 서로 사랑하고 서로 공경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인仁을 실천하는 것은 (허상虛像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仁‘은 자기(의 도리)로써 남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며, ’의義‘는 사람들이 노인을 노인 대접하고, 어른을 어른 대접하는 것이니, (인仁이나 의義는) 둘 다 ’남(人)‘과 ’자기(기己)‘의 구별을 함께 요구합니다.

 

’남(人)‘과 ’자기(기己)‘의 구별을 제거하면 인의仁義의 도리를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만일 만물은 모두 (실제로) 자기 (한 몸)이라고 말한다면,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받드는 것을 ‘인仁’과 ‘의義’로 보는 것입니다.

 

소인들은 장차 오직 자기만이 존재함을 알 뿐이며, 남이 존재함을 알지 못하는데도, (그 소인들만이) 유독 인의仁義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책(書)에서 ‘남人’과 ‘자기己’를 구별하여 말했다면, 그저 사람의 ‘몸(형形)’ 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몸(형形)’과 그 ‘본성(성性)’을 겸하여 말했을 뿐입니다.

또한 무릇 ‘인애의 덕(人德)’ 두터움은 먼 데(까지 사랑함에) 있지, 가까운 데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은 비록 지각知覺이 없는 것들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각을 못하는) 물도 늘 아래를 축축하게 하며 습한 곳으로 나아가며, 같은 부류 (즉 물)들과 합하여 ‘자기 몸(본체本體)’를 기르고 보전합니다. 불(火)도 항상 솟아 올라가고 마른 곳으로 나아가며 같은 부류 (즉 불火)들과 합하여 본연의 성질 본성을 기르고 온전히 합니다.

 

가까이 친한 일을 아끼는 것은 새나 짐승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꿇어 앉아서 (새끼를) 젖먹이거나, (먹이를 물고 입 속에서) 되씹어 (잘게 하여) 먹이는 것도 있습니다.

 

가까이 자기 가족을 아끼는 것은 소인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수고롭게 고생하며, 위험한 짓을 하고 도적질을 하여서 자기 집 식구들을 양육하는 자도 있습니다. 가까이 자기 나라를 아끼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졸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강한 외적들이나 교활한 악당들을 막아내는 일은 언제나 있습니다.

 

유독 지극히 어진 군자君子만이 멀리까지 사랑을 베풀어서 천하 만국을 감싸고 덮어 줄 수 있기에, 사랑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군자라고, ‘나’ 한 몸과 ‘저’ 한 몸을 이곳이 내 집이고 내 나라요, 저 곳이 남의 집이고 남의 나라임을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모두가 ‘천주 하느님’께서 낳아 기르시는 백성들이요 만물들이니, 바로 (자기의) 본분대로 그것들을 모두 절실히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 4-12 중국 선비가 말한다:

 

만물을 ‘한 몸’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인의를 해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무엇 때문에 『중용中庸』에서 (임금은) “여러 신하와 ‘한 몸(一體)’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을 (통치의) ‘아홉 가지 법도(*구경九經)’ 안에다 넣었겠습니까?

 

*구경九經: 천하와 국가 통치 아홉 가지 법도

**자신을 수양하고, 현인을 높이고, 가까운 친척을 가까이 하고, 대신을 존경하고, 신하들과 한 몸이 되고,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모든 기술자들을 오게 하고, 먼 지역의 귀족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구 제후들을 품 안에 앉음(중용 제20장)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사물과 한 몸이 됨(체물體物)’을 비유로 말씀하신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만약 (그것을) 실제로 여기고 말씀하시면, 이치에 어긋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중용中庸』에서 임금으로 하여금 “여러 신하들과 ‘한 몸(一體)이 되라.”고 한 것은, 임금과 신하는 같은 부류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풀,나무,기와(와瓦), 돌멩이들이 모두 ‘한 몸(一體)’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올바른 선비(君子)‘는 사물들에 대하여 그것을 아껴 주되, 어질게 대하지 않는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이제 이제 그것들로 하여금 사람과 ‘한 몸(一體)’이 되게 한다면, 반드시 그것들을 골고루 어질게 대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 묵적墨翟(*묵적 또는 묵자 춘추전국시대 묵가 학파 창시자)은 “사람을 모두 다 사랑하라.” 고 했는데 선대先代의 유학자는 그것이 그릇됨을 논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이 아닌) 흙이나 진흙까지도 어질게 대하라고 권하는데도 당대 유혹자들이 그것을 순명하면서 옳다고 여기니, (참으로) 이상합니다.

 

천주께서 하늘과 땅 및 그곳에 만유萬有들을 만드셔서 만물들이 번성합니다.

어느 것은 종宗은 같으나 부류部類를 달리하고, 어느 것은 부류部類는 같으나 몸(체體)을 달리하고, 어느 것은 몸이 같아도 쓰임새를 달리합니다.

 

이제 억지로 이것들을 한 몸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조물주의 뜻에 어그러지는 것입니다. 사물은 다양함을 아름다움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패물(패貝)을 모으는 자는 패물의 다양함을 원하고, 옛날 기물(고기古器)을 모으는 자는 기물의 다양함을 원하며, 맛을 즐기는 자는 맛에 다양함을 원합니다.

 

천하의 만물을 모두 붉은 색깔로 한다면, 누가 그것에 싫증을 내지 않겠습니까? 어떤 것은 붉고, 어떤 것은 초록이고, 어떤 것은 희고, 어떤 것은 푸르면, 날마다 그것을 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컨대 악곡樂曲의 소리가 모두 宮商角徵羽 소리를 내면, 누가 그것을 즐겨 듣겠습니까? 막 궁宮 소리가 나다가, 홀연히 상商소리가 나며, 막 각角 소리가 나다가, 홀연히 치徵 소리가 나며, (또) 잠깐 우羽 소리가 나면, 그것을 듣고 속 달 동안 밥을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마음) 밖에 사물들도 이와 같은데, (자기 마음) 속에서는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는 앞에서 각 부류는 각각의 본성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요, 단지 모양으로 달라질 수 없음을 분명히 풀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돌(석石)로 만든 사자와 살아있는 사자는 모양이 같지만 부류가 다릅니다. 돌로 만든 사람과 돌 사자는 모양은 다르지만 부류는 같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모두 돌(석石)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선생이 ‘부류(류類)’와 ‘몸체(體)’의 실정(정精)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는 것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체의 부류(에 속한 것)들이 ‘몸(체體)’들이 다 같으면, (그것들은) 진실로 ‘같은 부류(동류同類)’이지만, 같은 부류가 반드시 ‘같은 몸체(동체同體)’는 아니다.”

 

또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몸체가 똑같은 것들의 행위는, 모두 ‘온몸’에 귀속되며 아울러 각 지체肢體에도 해당된다.”

 

만약 오른손이 환난을 구조해 낼 수 있었다면, 한 몸에 두 손은 모두가 자비롭다고 일컬어집니다. (또한) 왼손이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다면 왼손이 도둑놈 왼손이라 일컬어질 뿐 아니라, (몸)전체가 모두 도둑이라 일컬어지게 됩니다. 이런 논거를 미루어서 천하 만물이 ‘한 몸(一體)’이라고 말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짓은 서로 (다음과 같이) 다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도척盜跖 한 사람이 도둑이면 청렴한 ‘백이伯夷’도 아울러 도둑이며, ‘무왕武王’ 한 사람이 어질다면 (폭군) ‘걸(촌籿)’ 임금도 또한 어질다.”

 

(이와 같이) 그 몸체(체體)들이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같다고 한다면, 어찌 개개의 사물들의 본래 행위를 (크게) 혼란시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학자들이 사물의 분류를 논하는데, 혹 ‘체體’가 똑같은 것도 있고, 혹 체體가 각각 (다른) 것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여러 사물들을 ‘같은 몸체(동체同體)’로 보아야 합니까?

 

대게 사물들이 서로 이어져 있으면 ‘같은 몸(동체同體)’이며, 서로 끊어져 있으면 ‘다른 몸(이체異體)’입니다. 만약 하나의 강물이 강 안에 있으면 이것은 강물과 ‘한 몸(一體)’입니다. 그 강물을 일단 표주박 하나에 부었다면 표주박 속에 물은, 강 안에 있는 물과는 오직 ‘같은 부류’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찌 그대로 ‘같은 몸(동체同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천지 만물이 ‘한 몸(일체一體)’이라는 논의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하느님을 우습게 보게 되고 상과 벌을 뒤섞여 놓게 되고, (사물의) 부류들의 구별(류별類別)들이 제거되어서 인仁과 의義(의 도덕) 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높은 선비가 그것을 믿는다 하더라도 저는 감히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4-13 중국 선비가 말한다:

 

명쾌한 논의는 밝고도 밝아 의심을 물리치고, 이론(이異)을 배척하니 바른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혼魂이 불멸함과 다른 사물로 변화하지 않으면 이미 들었습니다.

 

불교 육도六道의 윤회설과 살생을 금하는 논거들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가르침(성교聖敎)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것들에 대한 가르침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내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가파른 )언덕들이 이미 평평하게 되었으니, 개미가 쌓은 흙무덤 따위가 무슨 문젯거리가 되겟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그런 (문제)들을 분석하고 싶었습니다. 선비께서 즐겨 들으신다면 저도 역시 기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6년 6월 10일 PM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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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성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천주실의 교리서 상권 입력을 마쳤습니다. 눈은 침침, 팔목은 시큰, 한문 해독이 어려워 건너 뛰는 글자도 있지만, 십여년 가까이 이 책을 궁리하며 쓰셨던 저자 마태오 리치 어른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이 책을 공부하고 이 땅에 천주의 진리를 밝힌 이벽 세례자 요한과 조선 천주교 창설자님들께 큰 공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 작성자빗방울 | 작성시간 26.06.10 감사합니다!
  • 작성자메밀꽃 | 작성시간 26.06.11 감사합니다
  • 작성자주안 | 작성시간 26.06.11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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