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란 무엇인가? 실체란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실체란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영혼이라 불러야 하는 것일가?
내가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신경이란 것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피부로 느끼고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정밀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삶도 환상이고 죽음이라 불리우는 몸의 쓸모없음도 환상이다.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괴로움도, 살고 싶게 만드는 즐거움도 그저 그렇게 설계에 따라 느껴진다는 환상일뿐
괴로움이 왜 나쁜 것이고, 즐거움이 왜 좋은 것인지 그 답을 알 수 없다. 그냥 괴로움을 회피하고 싶고 즐거움을
더 받아들이고 싶을 뿐, 왜 괴로움을 회피해야 되는 것인지, 왜 즐거움을 더 느끼고 싶은지 알 수 가 없는 것은
괴로움을 회피하고 즐고움을 쫒게끔 설계된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 뿐이다.
ai로봇이 나오기 전까지 마음이란 생명체만이 느끼는 영혼과 분리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이 있어서 볼 수 있고 ai로봇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끔 설계되고 사람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불만으로
쌓인다면, 감정을 두는 마음이 dna 생명체만의 것이 아닌것이 분명해 진다.
나무를 깍아서 책상을 만들었다면, 책상은 존재한다.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을 형성할 수 있는 즉, 생각할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ai로봇이 만들어졌다면, 마음이 있는 ai로봇은 존재한다. 그렇게 마음이 있는 사람이나 동물등 생명체도 만들어지면서 존재한다. 단지 부모의 유전자를 통해서 dna의 자람에 따라 몸이 형성될 뿐이다.
책상도 ai로봇도 생명체의 몸도 만들어지기도 하고 흙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실체라고 느껴왔던 것들은 모두 만들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라면, 모두가 만들어지거나 사라지게 될 수 있는 그 바탕은 무엇일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실체가 없다라고 본다면, 그저 우리는 삶에서 열심히 하거나, 한량이거나 그런 것이 원인과 결과에 종속될 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설계되어 움직임이 있는 것들이 예측되는 것과 달리 우리가 열심히 해서 목표를 이루는 것이 왜 좋은 것인지, 그것이 좋다라고 느끼는 것은 단지, 살아있고 더 살고 싶게할뿐, 더 살게싶게 충족하는 것들이 좋다라는 것과 연계될 뿐, 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즉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해서 예정되지 않은 것이 없고, 살고 싶게 하는 것들이 좋은 것이라고 설계되었을 뿐,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면, 좋음의 기준이란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그저 좋은 것과 왜 열심이어야 하는 것이 바래지는 것인지가 녹아있는 설계도 대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살아갈 뿐이지, 왜 그 설계도가 좋은 것인지, 왜 그 설계도 대로 바래져야 되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나는 어떻게 설계되어졌으며, 이 설계도가 작성되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 바탕은 무엇일까?
이 설계도는 인위적이지 않으면, 설계도라 불리우지 않을 것이요, 설계도를 창조한 이 지적 설계자는 결국 스스로 바탕이면서 마치 우주가 스스로 생각이 진화한 것 같이 느껴짐을 생각하게 하는 바탕에서 지적존재로 스스로 존재하는 바탕자체일 수 밖에 없는데, 창조물인 우주가 스스로 생각하여 무와 유의 동전의 양면일 수 없음, 즉 바탕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함이 주는 우주 즉, 우리가 관찰 할 수 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게 하는 그 바탕이 실체이다.
그 바탕은 마치 없는 것과 같고 또한 마치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우리를 창조한 지적존재와 같은 우리가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존재이나, 우리의 오감을 통해 느끼게도 해 줄 수 있는 존재이니, 그가 없을 때는 그는 내안에 있고, 자연안에 있으며, 그가 있을 때는 인식가능한 지적존재로 남아있다. 없으면서 있기에 그는 지적존재 일 수 있고, 어떤 이들이 생각하듯이 없음에서 있음으로 진화하면서 생각이 진화하는 존재가 아니다. 없음에서는 있을 수가 없으며, 없음에서 있음을 전제로한 생각의 진화도 없다. 그저, 없음과 있음으로 처음인 신이 있으며, 그는 없음에서 있음으로 진화되지 않았고, 그저 없음이면서 있음이기에 그의 지혜도 없음과 꽉참이고 그렇게 지적존재이다.
그가 실체이다. 그리고 그가 창조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실체가 설계한 것들이라는 점에서는, 실체를 찾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실체를 가리는 환상일 뿐이다.
그가 설계한 것들은 우리가 오감으로 직관한 것이고, 그 설계는 우리가 마음으로 직관한 것이며, 그의 존재는 그가 스스로 있음으로 직관한 것이며, 그의 설계의 실현은 그의 존재함이 스스로 그의 존재함을 존재하게 하는 그의 직관의 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