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 전경
이스탄불을 진정 문화, 역사, 종교의 도시로 자리매김해주는 이유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며 인류가 지닌 최대의 보물의 하나인, 바로 터키인들이 아야소피아라고 부르는 성 소피아 성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건축물의 화려함이나 웅장함은 차치하고라도 그 건축학적인 공법은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풀지 못하는 불가사의라고 합니다. 1500년의 유구한 역사 안에서, 수많은 대지진이 일어났던 역사 안에서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의 대가들이 찬탄해마지 않는 건축물 성 소피아 성당.
외당의 벽에 있는 성모자상
성소피아성당은 대부분의 비쟌틴 시대의 대성당들이 그렇듯이 외당, 내당, 본당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당은 육지, 내당은 바다, 본당은 우주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성당을 들어서는 신자들은 자신이 지상의 순례자로서 영원한 하느님을 향하는 길목에 서 있다는 근본적인 그리스도교 정신의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성당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것은 독특한 돔의 구조입니다. 돔은 동서 77m, 남북 71.7m로 중앙에는 높이 56m에 지름이 33m나 되는 거대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구조의 특별함은 15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56m 높이는 거대한 중앙 돔은 많은 보조 돔을 지니고 있지만 특별한 기하학적인 비법으로 받침대 없이 벽으로만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돔은 많은 이슬람 건축에 영향을 주었고, 수많은 모스크가 돔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은 모두 이 소피아 성당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감히 흉내라고 내보고 싶은 것이지요.
네 벽의 작은 돔에는 4 복음사가의 상징-마태오 복음사가의 상징
건물 안에는 초기 그리스도교 성화와 회교적 종교 장식물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종교와 문화의 만남이라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의미도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로마 제국, 비잔틴 시대의 카톨릭 성당으로 지어진 이래 그 험난했던 이스탄불의 파란만장한 굴곡의 여정을 지나면서도 어느 정도는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불가사의라고 불려지는 것이지요.
외당의 어느 창문
가이드 요한 씨는 성 소피아 성당의 역사부터 차근차근 설명할 뿐만 아니라 역사의 자취를 정확히 짚어 주었습니다. 처음 지어졌던 성당의 터와 두 번째 지어졌던 성당의 터도 가리켜 주면서 처음의 성당의 일부를 완전히 허물지 않았던 선인들의 지혜도 일깨워 주었지요.
처음 지어졌던 성 소피아 성당은 397년부터 8년간 이곳의 대주교로 활동했던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청빈하고 모범적인 삶으로도 유명하였다고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내당의 신자들의 의자와 성직자들의 제대 사이의 층이 없었다고 합니다. 명 강론을 하기 때문에 요한 금구로 알려진 성 요한은 제대와 신자석의 높이의 차이를 없애고, 당신은 늘 강론을 한 후에는 다시 신자석에 돌아가 앉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성 소피아 성당은 그 자리에 세워진 세 번째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건물은 36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이었던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소피아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지만 404년 불에 타 소실되었습니다. 그후 41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다시 지어졌지만 532년에 일어난 폭동사건으로 소실되었습니다. 그후 532년에서 537년 사이에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명에 따라 다시 지어졌습니다.
세계 건축사상 가장 뛰어난 건축물의 하나로 평가되는 성 소피아 성당.
크기로만 따지만 세계에서 4번째이지만 당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로 꼽히고 있는 성 소피아 성당.
바로 지금의 건축물은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에 수학자이며 건축가, 구조학자인 안테미우스와 이스도루스라는 걸출한 두 명의 대가의 지휘 아래 불과 5년, 532년부터 537년에 걸쳐 지어졌습니다.
이 성당을 지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외쳤다고 전해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여, 내가 이제 그대 솔로몬을 이겼소.”
오랫동안 비잔틴 제국의 상징적인 성당이었던 성 소피아 성당은 불행하게도 1453년 오스만 터어키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으로 회교사원으로 바뀌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916년간 성당으로 되었고, 477년간 회교사원으로 사용되다가 1930년 터키 대통령 아타튀르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며 어떤 종교 행사도 금지됩니다.
성 소피아 성당 밖에 있는 4 개의 미나렛, 첨탑은 물론 회교사원으로 바뀌면서 세우진 것이지요. 시대에 따라 각기 형태를 달리하면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당을 모스코로 바꾸면서 내부에 미랍이라고 부르는 자기들의 기도처를 만들었습니다. 미랍은 반드시 메카쪽을 향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원래 제대에서 보면 비딱하게 보입니다.
복원된 예수상
복원된 마리아상
요하네스 2세와 황후 이레네가 공물 바치는 모습
마리아, 예수님, 세레자 요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내부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을 대부분 파괴되거나, 회질을 해서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회칠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오늘날 복원 작업을 통해 다시 어느 정도는 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니까요.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을 숭배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성화를 파괴하거나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화에 회칠을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회칠이 되어져 있는 모자이크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당이 지어졌던 6세기의 모자이크는 8~9세기의 성상 파괴운동 때에 거의 다 없어지고, 그 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15세기 이후, 이슬람교 투르크의 점거하에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오랜 복원 작업에 의해 앞방과 2층 복도의 벽면에서 석회칠 속에 그려져 있던 9~13세기의 모자이크가 일부 발견된 것입니다. 모자이크 1840년대부터 일부 시작되었고 1931년에 들어와서 미국의 복원팀에 의해서 본격적인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일시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콘스탄티누스 2세와 황후 조안
이 성당의 이름 소피아. 성녀 소피아에게 봉헌된 성당이 아닙니다. 소피아란 ‘하느님의 지혜’를 뜻하니, 바로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지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성 소피아 성당은 동방 정교회 신자들이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낳으신 성모님께 특별한 신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성당이기도 합니다. 동방정교회 신자들의 성모 신심은 가톨릭을 능가하지요. 가장 대표적인 모자이크가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상입니다.
저는 이곳이 세 번째의 순례였습니다. 처음 순례를 왔었던 1996년에는 1054년 동방 교회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이 아프게 가슴으로 느껴졌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두 번째 순례를 왔던 2 년 전에는 건축미에 매료되었었습니다. 세 번째 순례를 오면서 역사의 흐름 안에서의 변천사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지난 2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세 번째 순례하면서 이제 겨우 그곳 성지의 내밀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갈수록 매력을 느끼는 것을 체험했는데, 이곳 성 소피아 성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습은 처음 보았을 때는 그 화려함에 놀라기도 하고, 웅장한 모습의 건축물도 그럴듯하게 보였는데, 세 번째 보니까 아무런 매력도 못 느끼고 오히려 그 화려함이 조금 역겹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지순례와 관광의 큰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성지순례는 다시 가면 갈수로 매력을 느끼는데 반해, 관광은 같은 곳을 다시 가면 갈수록 짜증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갈매와 갈증의 차이입니다. 아주 오래 전, 제가 맡았던 어느 작은 공동체의 이름이 갈매였지요. 갈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공동체라는 뜻이지요. 갈증은 갈수록 짜증이 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갈매가 될 것인가! 갈증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