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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026

2026년 6월 6일 조화를 이루며 연합하는 그리스도의 몸

작성자정지영|작성시간26.06.10|조회수12 목록 댓글 0

 

생명의 삶

2026년 6월 6일 조화를 이루며 연합하는 그리스도의 몸

 

고전 12장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고전 10장까지 지식에 대하여 말하였고 고전 11장부터 은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은사가 다른 어떤 교회보다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의 풍성한 지식과 은사가 분쟁의 씨가 되어졌다. 


왜 그럴까? 
그럼 지식도 없이 무지하고 은사도 없이 무능하게 사는 것이 좋은걸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지식과 은사를 왜 주셨는지 바르게 알지 못한데서 시작된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예수를 아니 구원은 받았지만 지식과 은사를 왜 주셨는지 모르니 어린아이와 같다고 책망하는 것이다. (고전 3:1~3) 

세상은 지식과 능력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쓴다. 
지식과 능력이란 것이 자기 스펙이 되고 이것들이 자기 성공의 무기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재능을 키우는 것을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경향들이 있다. 

문제다!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결코 복음이라고 할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과 많은 은사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 

은사를 gift, 선물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내 것이 아니니 하나님이 주신 은사(gift)라고 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이것을 몰랐다. 
나에게 남들에게 없는 지식과 재능이 있으니 그것을 자랑했다. 

자랑하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공동체 전체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면서 서로 옳다고 비방하고 싸우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다툼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달라야 한다. 
전체를 위하여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을 내려놓을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옳고 하등 문제가 없는 일이지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그걸 보고 시험에 들수 있다면 고기를 먹는 것을 내려놓을수도 있어야 한다. 

연약한 자를 돌보고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세워지기 위하여 주신 지식이기 때문이다. 

 

은사도 마찬가지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통으로 받았다는 이유로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가 받은 예언을 분별없이 말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고전 11:5) 
기도와 예언의 능력을 주신 이유도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인데 교회 전체의 질서와 유익을 무시하고 자기가 받은 예언을~ 그것도 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분별도 없이 말하는 것은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에 대하여서는 사도바울은 교회 안에서 잠잠하라! 라고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고전 14:34) 

고전 12장은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병고치는 은사와 능력 행함과 예언함과 분별함과 방언과 통역과~ 그 모든 은사가 다 한 몸을 이루기 위하여 각 지체들에게 저마다 다르게 주시는 성령 하나님 한분의 사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간단하다. 어렵지 않다. 
모든 지식과 재능(은사)는 나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하여 주시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주시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직업의 일을 하고 있는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를 믿고 교회 안에서 신실한 자라 인정받고 있을지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다. 
어린아이와 장성한 어른의 차이는~ 어른은 어린아이를 위해서 일하고 그를 먹이고 키우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아직 자기 밖에 모른다. 

나이가 들고 몸은 성장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은 실로 어린아이다. 

 

교회안에 이런 성도들이 많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도 자기 자신의 감정과 자기 자신의 평안함만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자.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 외에 내가 하나님께 눈물로 구하는 기도가 무엇인지 돌아보자. 
어린아이가 아닌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시로 이것은 장성한 자만이 구하는 참된 기도이다. 

예수를 믿지만 어린아이의 믿음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예수는 믿지만 세상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는 아직 구원의 결국에 이르게 될지 미지수다. 

사도바울은 초보적인 믿음, 어린아이의 믿음에 머무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히 6:1~2) 
생명은 자라나야 한다. 
자라나지 않으면 생명이라고 할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십자가를 알았으면 그의 분량까지 자라나야 하고 그렇게 자라나는 것을 사모하고 애써 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미 다 이루었다 함이 아니다. 

그러나 앞에 있는 것을 붙잡기 위해 지금까지 자기의 모습을 버리고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모습인 것이다. (빌 3:12~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의 각 지체로 부름받았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기 기준을 몸 전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이다. 
그가 우리의 머리다. 
몸의 지체는 오른손도 있고 왼손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보라. 
우파와 좌파가 나뉘어 선거 하나 조용히 끝내지 못한다. 
왜 그런가? 
우파가 옳은가? 
좌파가 옳은가? 

우파도 부패하고 좌파도 거짓되다.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 
거짓된 것은 철저히 배격하되 옳은 좌파를 끌어안는 우파가 있어야하고 바른 우파를 포용하는 좌파가 있어야 한다. 

그 모범적인 실제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교회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 
생선 전체를 소금이 되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소금의 문제는 소금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교회가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거짓이요 적 그리스도라고 단호하게 말할수 있다. 

아니라면 돌이켜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내 말과 내 행동에 담겨있는지 자기를 돌아보아야 한다. 

단지 예수 믿고 모여서 예배하니 거룩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늘날 가장 큰 미혹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이다. 

율법적으로는 우리는 여전히 완벽할수 없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내 기준을 버랴야 한다. 
내 유익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한다. 
못하면 반성하고 회개하고 다시 돌이켜 또 도전해야 한다. 
날개를 가지고 날지 못하면 뒷다리로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레 11:20~23)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셨다.
우리 각자는 그 한 몸의 각 지체들이다. 
많은 지체들이 모여 온전한 한 몸을 이루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새 한 사람'이다. (엡 2:15)
그것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비밀스러운 계획이었다. (엡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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