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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026

2026년 6월 8일 큰 능력보다 사랑을 구하십시오

작성자정지영|작성시간26.06.10|조회수14 목록 댓글 0

생명의 삶

2026년 6월 8일 큰 능력보다 사랑을 구하십시오

 

고전 13장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도바울은 모든 지식과 모든 은사보다 더욱 큰 은사를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고전 12:31)
그 큰 은사가 무엇일까? 

그렇게 유명한 고전 13장 '사랑장'이 시작된다. 
그 큰 은사는 바로 사랑이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을 아는 지식이 있고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신다. (2절)

아무것도 아닐뿐더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무너뜨리는 해로운 것이 된다. (고전 3:17) 
거짓이요 미혹이요 속이는 것이 되고 만다.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라고 감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사단은 그렇게 우리를 속여 자뻑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정말 순전한 믿음으로 은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의지하고 자랑하는 지팡이를 버릴수 있어야 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수 있다고 하신다. (요일 4:7~8)
거룩, 공의, 전능, 전지....하나님의 그 많은 속성을 사도요한은 사랑 하나로 말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많은 속성중에 하나가 아니다.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거룩이 사랑과 배치된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과 배치된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전지하심이 그분의 사랑과 배치된다면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다. 

속은 것이다. 

사단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온전히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이 주시는 모든 은사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을 빼고 지식이 있을수 없다. 

사랑을 빼고 능력이 있을수 없다. 

사랑을 빼고 믿음이 있을수 없다. 


사랑을 아는 것이 온전한 지식이요

사랑을 할줄 아는 것이 온전한 능력이요

그분의 그 크신 사랑을 믿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사랑을 빼면 기독교는 성립하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사랑보다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고 또 하나님의 의를 앞세워 그분의 사랑과 배치되게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단이 활동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회의 문제는 단순한 실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근본부터 잘못 되고 결여된 부분이 있다. 

그럼 사랑은 무엇인가? 

고전 13장 본문을 보면 1~6절은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이니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7~13절을 꼼꼼하게 보면 갑자기 '이제는' 우리가 부분만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는' 온전하게 알리라~ 라는 내용이라 이것이 사랑과 무슨 연관이 되는지 얼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단 '그 때에는' 이라고 하는 말이 나오고 그때는 온전히 알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볼수 없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예수님의 얼굴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앞에 사랑이란 말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예수님이 사랑이니까~ 그분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고 기다린다는 말이겠지~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그럼 그게 고린도교회의 분쟁을 해결하는데 현재적인 해결책이 되는가? 

고린도 교회의 분쟁도 예수님이 재림해야 해결된다는 건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지상교회는 다 그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그분이 온전한 교회를 이루실 거야~ 라고 하는데.... 사도바울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인가? 

 

그럼 사랑이란것도 결국 현재적으로 우리가 이룰수 없는~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라는 현재적인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현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젠지 알지 못할 재림만 기다리자고 하는 말씀이신가? 
그렇지 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적인 해결책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아니다. 

11절과 12절의 문맥 연결을 살펴보자. 

사도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그리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앞에서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어린 아이'로 대한다~라고 책망하였다. (고전 3:1) 

자기 밖에 모르는 어린 아이와 같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기의 지식과 자기가 받은 은사만 생각하고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줄 안다. 
장성한 자는 몸 전체를 생각할줄 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들이다. 

지체가 자기만 위한다면 어떻게 전체 몸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지킬수 있겠는가? 
발이 수고하는 것은 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손이 수고하여 입이 먹고 입이 먹어 온 몸이 기운을 얻는 것과 같이 장성한 사람은 몸 전체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한다. 

7절을 보면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다. 
그리고 9~10절을 보면 지금은 우리가 다 부분만 알고 있지만 온전한 것이 올때에는 부분은 다 폐해지고 그 때에는 우리가 온전히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부분만 아는 사람은 온전히 안다고 할수 없다. 

전체를 아는 사람, 모든 부분을 다 알 때에 온전히 안다 할수 있다. 

 

장성한 자는 전체를 생각한다. 

그러니 장성한 자는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고 어린 아이는 자기 것만 보고 자기 것만 주장하기에 온전히 알수 없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 방언하고 예언하는 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동체 전체를 보는 장성한 자의 마음이 없었다. 
어린 아이가 선물 하나 받고 들떠서 날뛰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그 때에는' 결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아니다. 
그 때까지 우리의 공동체 안에 문제들은 해결할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다 자기 것만 보고 자기 것만 주장했지만 이제 장성한 자가 되는 '그 때에는' 우리가 다 전체를 보고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몸 전체의 한 부분이요 지체에 불과한 자기 생각을 조율하여 말할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지식에 더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구해야 할 것이요, 모든 은사에 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할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 여러 문제들을 인간이 모인 곳은 다 그래~ 라고 하면서 체념하고 고칠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화인맞은 양심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은 것이다. 

어쨋거나 예수를 믿고 있으니 대충 믿고 죽어서 천국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자기의 몸을 버려서 많은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다. (고전 10:33) 
그렇게 죄 가운데 있던 우리는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얻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니~ 어찌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될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다. 
그 나라는 부분인 자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현재적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러니 또 다시 재림의 때를 기다리며 그 나라가 시작 되지 않았다고 게으르고 안일하게 있을 것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씀하신다. (고전 2:2)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하자. (갈 2:20) 
부분인 나를 전부같이 생각하던 육에 속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생각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과 형제앞에 다시 태어나자. 

그것이 분쟁하는 세상을 무너뜨리고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인 것이다. (고전 1:18, 2:5)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우리의 눈을 뜨게 하셔서 온전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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