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2026년 6월 11일 항상 덕을 세우고 질서를 따르십시오
고전 14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주자 했던 더욱 큰 은사는 바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부분)의 옳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1절에 사랑을 따라 구하라~ 는 말씀은 이러한 전장 13장의 내용을 전제로 14장을 보아야 함을 가르킨다.
14장은 신령한 것~ 그 중에서도 예언과 방언에 대한 내용이다.
사도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구하라고 말한다.
방언은 자기(부분)의 덕을 세우지만 예언은 교회(전체)의 덕을 세우기 때문이다. (3~4절)
그렇다고 해서 방언을 금하지는 않았다. (39절)
사도 바울은 방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자가 없다고 말한다. (2절)
그리고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말한다. (22절)
그러므로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혼자 하나님께 말하라고 한다. (28절)
당시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나타났던 방언과는 다른 것 같다.
소위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의 방언이 아니라 사람이 알아들을수 없는 천사의 방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전 13:1)
얼핏 들으면 사람의 말을 하는 것보다 천사의 말을 하는 것이 영적으로 더 수준높고 신령한 것으로 보일수 있다.
그래서 그것으로 자기의 영적 수준을 자랑하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상당한 영적 수준에 이른 것 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천사의 방언은 비성경적이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제자들에게 임하였던 방언과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 외국어 방언이라고 해도 그것을 알아들을 사람도 없는데 마구 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라고 할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도 그것을 사탄의 방언~이라고 노O호 목사와 같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 여기서 중요한 점 중에 하나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는 방언을 금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그 방언을 하나님께 말한다~라고 하고 어느 정도 용인하고 인정한다.
다만 사람들이 알아들을수 없으므로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자제하고 금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방언 보다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는 것은 예언이 방언보다 더 신령하고 우위에 있는 은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예언과 방언은 고전 14장의 주제가 아니다.
예언과 방언을 구체적인 소재로 삼아 모든 은사를 교회의 덕을 세우고 질서대로 하라는 것이다. (26, 40절)
모든 은사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교회의 하나됨을 세우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사는 자랑의 도구라 섬김의 도구다.
이것은 예언과 방언 뿐 아니라 지식과 재물과 모든 재능이 다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이 있어도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가 있다.
그 권위와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의 주장을 말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고 할수 없다.
사도 바울은 복종을 말한다. (34절)
은사로 인해서 교만해지고 자랑하며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순서를 지켜서 서로 예언하라고 말씀하고 다른 사람은 잠잠하라~고 하신다. (27, 30~31절)
은사를 앞세우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느낌과 감각을 철썩 같이 믿는다.
내가 분명히 보았고 내가 분명히 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들었다는 것은 거짓말인가? 헛것을 보고 헛것을 들었다는 것인가? (36절)
그들은 전체를 보지 못한다.
부분을 보고 부분만 말하는 것인데 자기 자신은 그것을 전혀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피리(저)와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7~12절)
무슨 말인지도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혼자 크게 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의 덕이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현악기와 관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자기 소리만 크게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연주할때 내가 잠잠히 기다리거나 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연주해야 할때가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조화(화평, 33절)과 질서(40절)이다.
그것이 은사에 대한 장성한 자의 지혜이다. (20절)
때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34절)는 말씀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한 남성 우위의 권위적인 내용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보통 전제 문장을 보지 않고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만 떼어서 여성인권이 무시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먼저 34절 전체를 자세히 보라.
모는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라는 전제가 먼저 나온다.
무슨 뜻인가?
다른 모든 성도들도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직접적으로 설명하면 다른 모든 성도들은 교회에서 잠잠한데 잠잠하지 않는 여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말로 보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고 할때 '여자'가 일반 보통명사처럼 보기 쉽지만 영어로 보면 'the wemen' 으로 우리말로 직역하여 옮기면 '그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의미이다.
즉 모든 여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특정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 11: 5절에서 고린도교회 안에 머리에 쓸 것을 쓰지 않고 기도하고 예언하는 여자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머리에 쓸것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는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이 직통으로 받은 말씀을 교회안에서 성도들에게 마구 전하여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모든 여자 성도들이 아닌,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예언하는 바로 '그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은 '질서'와 '조화(화평)'이다.
누가 누구 위에 있는 것을 강조하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질서와 조화는 사랑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따라서 질서와 조화를 깨는 무절제한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고 할수 없다.
고전 14장이 방언 보다 예언을 권하는 것은 방언이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인데 비해 예언은 공동체에게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예언은 단순히 미리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공동체나 다른 사람에게 권면하는 내용인 것이다.
다만 이 예언도 차서(순서)를 따라 질서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예언할때 잠잠히 들어야 한다. (30절)
이것은 예언의 은사 뿐 아니라 모든 은사에 적용되는 기본 원리라고 할수 있다.
모든 은사는 공동체 전체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