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2026년 6월 17일 부활이 없으면 복음도 믿음도 헛됩니다
고전 15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전 16장은 연보에 대한 내용과 향후 사도 바울의 계획, 그리고 인사말로 전체 편지글의 추신(PS)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전 15장이 실제 고린도전서 전체의 결론이라고 볼수 있다.
그런데 고전 15장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부활에 대한 내용이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쓴 편지인데 부활이 어떻게 고린도전서 전체의 결론이 되어질수 있을까?
우리가 바울서신을 볼때 대체로 교리적으로 해석할때가 많은데 그렇게 보게 되면 '문맥'이란게 구지 필요하지 않다.
고린도전서도 고기 먹는 것에 대해서~ 사도의 권한에 대해서~ 은사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부활에 대해서~ 썼다고 보면 그만이다.
그래서 심지어 고린도전서가 통일된 하나의 편지글이 아니라 5개의 편지를 합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문맥에 따라 묵상하였거니와 그 통일된 문맥흐름으로 볼때 절대 여러개의 편지를 이어 붙여놓은 것이라고 할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하고
고린도전서는 여러가지 교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각자의 지식과 은사를 교회 전체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써야함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권면하고 있다는 전체의 통일된 주제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전 15장에 부활과 부활체에 관한 내용은 어떻게 고린도전서 전체의 문맥과 연결되며 결론이 될수 있을까?
고전 15장에 고린도전서의 합당한 결론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부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그만큼 왜곡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 15장은 '부활체' 즉 부활한 이후 우리가 갖게 되는 '신령한 몸' 즉 '영체'에 관한 내용인데 우리는 신령한 몸이라고 하면 예수님 처럼 손으로 만질수 있으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영원히 죽지 않기에 썩지도 않는 그런 몸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나 너무나 피지컬하게~ 즉 너무나 육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한다는게 문제다.
그리고 그렇게 피지컬하게만 생각하다보니 부활이 아직 안 이루어졌고 시간적으로 미래에 있을 사건 즉 주님이 재림하실때 일어나는 이벤트로 생각한다는게 문제다.
여러번 말하였지만 성경에는 '첫째 부활' 이라는 것이 분명히 기록되어져 있는데 기독교인들중에 이 '첫째 부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성경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부활이란 게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더더군다나 없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특정 교파의 교리를 듣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계 20:4-6, 개역)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사도 요한은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복음을 위하여 순교한 자들의 영혼이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하게 되는데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설명하고 있다.
세대주의와 전천년설을 따르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취되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첫째부활도 미래적인 사건이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천년왕국이 예수님의 초림의 사역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로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이 땅에 이미 임하였다고 한다면 사도 요한이 말하는 첫째 부활도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 1세기 성도들에게는 곧 있을 임박한 사건일수 있는 것이다.
천년왕국이 사탄이 무저갱에 갇혀있는 천년과 동일한 기간이라고 한다면 천년왕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고 하는 무천년설(현천년설)의 관점이 옳고
천년왕국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보면 전천년설의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되므로 잘못된 관점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그러나 첫째 부활이 모든 성도의 부활이 아니라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순교한 자들의 영혼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 하리라~고 하였으니
천년왕국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 무천년설(현천년설)에서 설명하는대로 첫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었던 우리 영혼이 다시 사는 사건 즉 칭의와 중생의 사건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수 있다.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예수님이 재림하실때 한 사람의 몸을 입고 다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문O명이나 안O홍이나 이O희 같이.... 그런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O명이나 안O홍이나 이O희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단이 아닌가!
그런데~ 언젠가는 문O명이나 안O홍이나 이O희와 같은 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니 정신차리고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재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매우 모순적인 것을 알수 있다.
잘 모르는 것이다.
모르면 더 연구하고 생각하여야 할 터인데 잘 못 생각하면 이단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냥 생각을 닫아 버린다.
그러니 그런 모습으로 오실 거야~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 온 사람들은 이단이야~ 라고 모순된 생각을 그냥 담아 두고 있는 것이다.
너무 길어지니 결론을 이야기 하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분명하게~ 그리고 여러차례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다.
(엡 1:23, 개정)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그 몸의 여러 지체들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여러 서신에서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때로 사도바울은 우리 각자가 다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라고 설명한다.
(엡 2:21-22, 개역)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데 예수님이 또 다른 한 사람의 몸을 입고 다시 오신다면?
모순이 아닌가?
그러니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해도 가지 말고 저기 있다 해도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만약에 대부분이 가짜지만 그 중에 하나는 진짜 예수님이면 여기 있다 해도 가지 말고 저기 있다 해도 가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유심히 잘 보고 잘 선택해야 된다~라고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자기 몸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사도 바울은 이점을 매우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다.
(엡 2:15, 개역)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혹자는 우리가 예수님의 몸이라면 우리 자신을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모순이 되기 때문에 또 다른 몸 즉 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것이다~라고 한다.
교회 전체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지 우리 한 개인이 에수님의 몸이 될수 없기에 동일시의 모순이 될수 없다.
우리 각자의 인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로 유지되지만 그 전체 몸 가운데 성령이 임하심으로 전체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격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가 있고 짐승의 육체가 있고 새의 육체가 있고 물고기의 육체가 있다.
하늘에 속한 형체가 있고 땅에 속한 형체가 있다.
그러니 부활체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남녀의 성구별도 없고 썩지도 않는~ 그런 막연한 상상을~ 신기하게도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영체라고 해서 귀신처럼 만질수 없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곧 우리 각 지체들이 속해 있는 '우리의 몸'이다.
교회에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도 있지만 먼저 가신 믿음의 선진들의 영혼(프시케) 즉 그들의 믿음과 정신도 깃들여져 있다.
우리가 읽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오늘 우리를 권면하고 일깨워주고 계시지 않는가!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산자들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그들이 죽었다~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육적인 관점이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서 살아있다.
그것이 첫째 부활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곧 임박한 핍박의 때에 순교에 동참하는 것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된 것이라고 격려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였다.
반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곧 우리 각자가 속한 우리의 부활체가 곧 교회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활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 몸의 각 지체들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자 동시에 우리 각 지체들의 몸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함께 하신다.
동시에 바울과 베드로와 모세와 다윗과 기타등등 믿음의 선진들의 영이 함께 깃들여져 있는 그들의 몸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 기독교회에서는 거의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내용이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단의 논리같이 들릴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처음부터 고린도 교회를 비롯한 모든 교회에 전하고 가르쳤던 것이 분명하다.
물론 잘 못 이해하고 있는 성도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대부분의 건전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고전 15:1절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너희로 알게 하노니 너희가 (이미) 받은 것이요 또 너희 가운데 (이미) 선 것이라~고 분명하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전 3:1~3절에서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고 책망하고 있다.
그런데 고전 15장에서 육의 몸이 있는가 하면 신령한 몸이 있다고 설명한다. (44절)
또 흙에 속한 자는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다고 한다. (48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육에서 벗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 땅에 속한 것으로 분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육의 속한 자들이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제 장성하여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되라고 하신다.
무슨 뜻인가?
분쟁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이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셨다.
우리는 그의 부활하신 몸이 되었다.
육체에 속한 나 즉 개인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의 한 지체로서의 나로 거듭났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새 창조이다.
우리는 부활에 대하여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 무지하다.
부활의 핵심은 우리 각자가 썩어지지 않을 몸을 입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활과 영생을 이해하는 바른 관점이 아니다.
구원과 부활과 영생의 핵심적인 의미는 '연합'에 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모든 성경은 '연합'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복음은 '연합'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연합된 존재로서 창조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아담과 함께 할 배필로 아담으로부터 하와를 만드시고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죄는 연합을 깨뜨렸다.
하나님과 분리되어졌고 또한 하나님과 분리되어진 사람은 한 몸의 연합을 깨고 분열하였다.
죄의 핵심적인 속성은 분열이다.
반면 구원의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 각자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여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구원과 그 변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와 신부가 연합하는 혼인잔치로 막을 내린다.
모든 성경은 연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래도 꽤 많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한 몸으로 연합되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우리에게 가르쳐진 기독교 교리가 개인의 믿음으로 개인이 구원받는다는 개인구원주의이기 때문이다.
연합을 떠나서 구원은 없다.
각자가 구원받는 것을 사도바울은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은 온전한 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합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절하하는 것이 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는 재림예수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사역을 모르는 무지에서 그렇게 가르치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사역을 무력화 하려는 적그리스도의 행태이다.
소위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역이 무언가 다 이루지 못한 미완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미혹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심각한 미혹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그가 이미 다 이루셨다.
그렇게 이루신 것이 그의 몸된 교회이다.
교회의 핵심적인 의미는 화목이요 연합이다. (엡 2:16~18)
나는 이것이 고린도전서의 결론으로 합당하지 않은가? 다시 묻고 싶다.
교리에 맞추어서 성경을 보면 안된다.
성경에 맞추어서 내가 배운 교리가 옳은지 점검해야 한다.
교단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교리가 성경 위에 있을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성경의 진리들이 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이미 다 성취되어 성경에 남김없이 기록되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문맥이다.
문맥을 따라 선입견없이 성경안에 담긴 의미를 캐낼수 있어야 한다.
짐승은 짐승의 몸이 있고 새는 새의 몸이 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몸은 무엇인가?
아직도 사람의 몸을 생각하는가?
그럼 나는 아직 육체에 속한 사람이다.
그 육체의 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 나를 거듭나게 하셨다.
너희(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전체)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고전 3:16)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무너뜨리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리라. (고전 3:17)
지체를 부정하고 배제할려고 하는 사람들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개인의 육체의 몸을 술과 담배로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문맥을 따라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 있는 눈을 뜨기를 바란다.
주의 재림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주의 재림이 2천년이 지나도록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미래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당연히 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를 기다리는데 문O명도 아니고 안O홍도 아니고 이O희도 아니니.... 그냥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육적인 것에 매여 부활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듯이 재림에 대해서도 너무나 인간의 시간, 육적인 시간에 매여있다고 생각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전에도 계시고(미완 능동) 이제도 계시고(현재) 장차 오시는(동분사 현재) 분으로 시간의 영속성 뿐 아니라 시간의 동시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영원에 대해서 그의 고백록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영원은 지금은 아니지만 (없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영구히 계속 되는 것을 생각한다.
어거스틴이 설명하는 영원 즉 하나님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시간의 동시성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도 계시고(현재), 지금도 계시고(현재), 미래도 계신 분이시다.
그럼~ 하나님의 시간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오실까?
그렇지 않다.
과거에도 오시고 지금도 오시고 미래에도 오시는 걸로 나타날수 있다.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한 사람의 몸이 아니라 그의 몸된 교회이고 또한 영이신 하나님의 모습이고
또 그의 오심이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각 세대마다 오셨고 오시고 오시는 모습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재림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 된다.
나는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눈에 스테반과 같이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구름을 타고 임하시는 영적 실제가 있었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 시대의 종말의 시간에 그와 같이 주님이 임하실 것이라고 믿고
또 다음 세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을 실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놀라울 따름이다.
육에 속하고 영에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실제로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며 그것이 믿음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내가 대단한 신학자도 아니고 이런 기준을 정하는 자도 아니다.
다만 이제까지 지금까지 들어왔던 내용과 다른 해석이 본문 문맥과 성경 통권적인 이해에서 가능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각자가 성경을 문맥을 따라 읽으면서 무엇이 옳은지 확정할 일이다.
다만 우리가 힘쓸 일은 허무한 논쟁을 멈추고 서로 사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을 세워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고린도전서를 통해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