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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성 여행정보

[스크랩] 운남여행: 징마이산(景迈山)에서 쓰마오(思茅) 가는 길

작성자삶의 자유|작성시간12.06.07|조회수148 목록 댓글 0

  원래의 계획은 각 지역의 숙박시설 상태도 점검 할 겸해서 매일 장소를 바꿔 맹해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이었으나, 집 떠난지 오래된 가이드와 운전기사의 입장을 고려해 다시 징홍으로 돌아가서 다음날 란창으로 건너가기로 했습니다.

 

구절양장의 산길을 굽이굽이 돌고돌아 징홍시내에 도착하니 다시 밤이 되었고, 여타의 날들처럼 중국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시슈앙반나 밤거리에는 예전에 못 보았던 항아리 모양의 가로등이 있습니다.

멋도 있지만, 그 아이디어가 더욱 참신합니다.

 

세상 사는 것이 조금만 더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면 많은 부분들을 바꿀 수가 있는 것인데, 하루 하루에 안주하고 살다보니 얻는 것보다 잃어가는 것들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시장에 들러 이것 저것 구경하는데 직업은 못 속인다고 다른 물건들은 다 제쳐놓고 차호만 눈에 들어옵니다.

 

대부분 자사가 아닌 니료로 만든 것인데,요즘은 모조품을 만드는 기술도 발달해서 너무 완벽한 것이 아니라 조그만 흠집 등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고르고 고르다보면 언젠가는 명품도 건질 수가 있겠지만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습니다.

 

야시장 순라를 마치고 호텔로 들어와 씻고나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늦은 밤이지만 야행성 올빼미들에게는 활동하기 좋은 시각인데다가 호텔 앞마당에서 꼬치구이와 맥주를 파는 것을 봤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 칠수는 없는 일이라 반팔 티셔츠에 플라스틱 슬리퍼 차림으로 나가서 한 잔하는데 춥습니다.

여름날 같은 낮생각만 하고, 밤에는 추워진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지요.

그래도 한겨울날에 이 차림으로 밖에 나와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같습니다.

 

 

 

 50식 유념기

 

  징마이산에 도착해서 소창장네의 창고에 가 보니 이런 유념기가 석 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재질은 찻잎 속에 들어있는 각종 화학성분과 효소에 가장 적게 미치는 황동으로 되어있고, 윗부분의 원통에 살청을 마친 찻잎 20kg 정도를 넣고 약-강-약 순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회전을 시키는 방식입니다.

 

유념을 통해 찻잎의 세포조직을 파괴시켜 차즙이 찻잎표면에 달라붙게 만들어 물에 우러나오기 쉽게 만들고 아울러 차의 외형이 완성되는 중요한 과정이지요.

 

각각의 품종과 채엽시기에 따라 유념의 강도와 시간이 다르지만, 봄철에 채엽한 찻잎으로 생차를 만들 때 조직의 파괴율은 약 60%선이며 분당 40~50회전으로 20~30분 정도의 시간으로 진행하며, 고른 유념과 과다한 온도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중간에 한 번 뒤집어 줘야하며, 찻잎이 어릴 수록 짧고 약하게 합니다.

 

유념이 부족하면 차의 성분이 우러나오지 않아 차탕이 묽으며 조색이 흐뜨러지며, 반대로 너무 강하면 그 성분들이 한 꺼번에 모두 나와 버리기 때문에 내포성이 떨어지고 차탕이 혼탁하며 외형의 빛깔이 어둡게 변합니다.

 

 

 

  봉황수와 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왕벌집

망경촌의 뒷산에 있는 그 동네에서 수령이 가장 오래된 나무의 이름이 봉황수랍니다.

멀리에서 바라보니 가물가물한 것이 보여서 카메라 줌으로 당겨보니 대형호박 서너통을 합한 정도로 큰 왕벌집이더군요.

 

 

 

  고즈녁한 산골마을의 풍경 속에서 모차를 말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게 태양광이 폭사하는 곳에서 수분함량이 10%정도가 될 때까지 말린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쇄청모차입니다. 산차(散茶)라고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어떤 종류의 차이건 햇볕에 노출되면 자외선 때문에 찻잎 속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각 종 성분들의 변화를 초래하여 품질이 떨어진다고 나와있습니다만 보이차 등의 긴압차의 1차 재료인 쇄청녹차만큼은 별개입니다.

 

쇄청모차가 다시 한 번의 증압의 과정을 거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있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태양광과 모차의 함수관계는 깊이 연구를 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장정 몇이 팔을 둘러서야 겨우 감싸 안을 수있는 크기의 초대형 측백나무 아래서 일행들과 소창장 그리고 그의 막내딸이 함께 서봤습니다.

수령은? 천년이 넘지 않았겠냐고 하더군요.

뒷산의 소나무처럼 징마이촌의 역사와 함께 한 영물입니다.

 

 

 

  우리가 묵어야 할 방갈로는 불교사원과 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창장의 삼촌이 도회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이 곳에 내려와 제다업에 종사하면서 징마이촌의 문화보존과 복원작업에 열과 성을 쏟고 있었습니다.

 

 

  저녁 땔거리를 장만해서 귀가하는 노파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잊고 살았던 70년대 한국 농촌의 모습입니다.

順其自然........ 만물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때 평화가 찾아 온다고 생각합니다.

 

 

 

 

  샤갈의 마을에 밤이 내리면.........

 

  토종닭과 방해각을 넣어 고아낸 요리를 주로한 조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와보니 사위가 어둠에 잠겨있습니다.

서쪽 하늘에는 하루를 불사르고 내려 앉은 태양의 희미한 흔적이 남아있고, 새로 집을 짓는 주민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닥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차를마시고있습니다.

 

그을음으로 본래의 빛깔은 찾을 수 없는 양은 주전자에 차를 한 웅큼 집어 넣고 불에 올려 끓인 차는 자사호 아니면 개완으로만 우려서 마시던 도회지의 촌놈이 마시기에는 너무 강합니다.

 

담배 한 대 권하면서 새로 짓는 집에 관한 것들을 물어보니, 일가친척 네 명이 모여서 짓는 대략 70평방미터 크기의 목조주택은 대략 한달 정도의 기간이 걸리고, 건축비는 약 4만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하니, 이 곳에 집 한 채 마련 해 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결국에는 교통비가 더 많이 나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경이 될 것같아 이내 생각을 접습니다.

 

 

 

 

 

  간란바에서 오는 길에 사 온 불꽃을 징마이산의 여신을 모신 탑 앞에 놓고 터뜨려 봤습니다.

1,000발 짜리 폭죽도 같이 사왔지만 춘절 기간을 제외하고는 불허이며, 깊은 밤이라 사람들을 놀래킬 수있다는 이야기에 단촐한 의식으로 진행해야 했지요.

 

 

  보석을 흩뿌려 놓은 것 처럼 무수한 별들로 반짝이는 밤 하늘을 앞에 놓고 곡차 한 잔과 시 한 수, 노래 한 곡으로 징마이산에서의 밤은 깊어갑니다.

 

곡차가 몇 순배 돌아가자 동녘하늘에서는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올라 대지를 월광으로 적셔줍니다.

제 순서가 되었을 때 月明星稀,乌鹊南飞。绕树三匝,何枝可依。山不厌高,海不厌深。周公吐脯,天下归心。이라던 조조가 생각이 났습니다.

홀로서기, 진주난봉가, 이해인, 천상병시인의 시들이 쏟아져 나와 풍성한 문학의 향연을 만끽했던 징마이산의 밤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곱게 갈무리 될 것입니다.

 

 

  다음 날 늦은 아침을 마치고 징마이산을 떠나기 전에 온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가 부대끼는 과정을 통해 정이 들고 후일을 기약하며 會者定離, 離者必會의 마음 한 조각을 그 곳에 두고왔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징마이산에서 란창으로 가는 길이라고 봐야겠습니다.

길을 나서면 보이는 것이 푸른 하늘과 청산 그리고 안개바다입니다.

가끔씩은 아래의 사진처럼 계단식 논들도 보이고요.

 

다음은 운남여행의 마지막 시리즈인 쓰마오와 곤명시내 그리고 침대열차에서 바라 본 외부의 풍경들에 대해 간략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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