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데이트, 무엇이 다른가? - 양명지 목사
자고로 연애의 시대다. 언제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문학과 미술, 음악 중에 연인 간의 사랑을 뺀다면 문화가 이렇게 융성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질서요 선물이기에 그러하고, 연애, 데이트는
시대와 지역, 문화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래도 같은 지역과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공통점이 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데이트는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시대와 지역이 다르더라도 신자의 데이트이기에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을까?
아니면 신자와 불신자의 데이트는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시대와 문화를 극복할 수 없을까?
과연 그리스도인의 데이트는 무엇이 다른가?
. 선명한 관계로 시작한다.
데이트와 관련해서 요즘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신생어로 ‘썸’이라는 말이 있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썸’이라는 말을 쓴다.
실제 데이트 이전에 서로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끼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신자의 데이트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선명한 관계로 시작한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관계로 자신들을 오래 두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가 지난 후에는 관계를 정확히 정의한다.
그리스도인의 데이트는 연인 사이의 교제다. 부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헌신을 서로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애매한 관계는 책임감 없이 각자에게 필요한 감정적 결핍만을 해소한다.
각자의 필요만을 채우는 이기적인 관계로 변질된 위험이 그 속에 숨어있다.
그래서 신자의 데이트는 거절할 용기와 물러날 용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내가 호감이 있더라도 상대가 아니라면 물러난다.
거절당하기를 두려워하여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거절당했다고 상대에게 분을 품지 않는다.
반대로 상대의 호감과 용기를 소중히 하기에 내가 아니라면 정중히 거절한다.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먼저 표시하였다고 나에게 주도권과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향한 호감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할 줄 안다.
그러나 상대도 소중한 인격이기에 내가 아니라면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여 분명한 대답을 한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책임감 있는 반응을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대한 책임과 헌신을 전제로 한 선명한 관계 정립이 그리스도인의 데이트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