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보존의 역사

작성자호쉬아|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성경 보존의 역사         

성경은 여러 책과 편지들로 구성된 놀라운 모음집이다. 그러나 그 주제는 하나다
- 1500년, 40여명의 저자, 세 가지 언어로 기록됨
- 저자는 왕, 시인, 의사, 세관원, 어부들
- 주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선천적으로 그분께 반역하는 태도를 갖고 있음에도 우리를 사랑하고,

자신과 화목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 약(約)이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 내지는 ‘합의’이다.
- 구약은 세계 창조에서 BC 400여년 까지
   하나님과 선택된 백성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규율, 법적인 성 격)

- 구약 39권은 크리스토시대 이전에 유대인이 성경으로 인정,
   BC 3세기 그리스어로 번역됨(70인역)

- 신약은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신약 27권중 21권은 크리스토가 하늘 나라로 간 다음에  사도들이 쓴 편지
- 구약의 율법의 언약은 죄를 깨닫게 함.
 신약에 나오는 은혜의 언약은 죄를 용서 받게 함.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성경 Bible’이란 단어의 유래>
- 라틴어biblia와 그리스어biblos에서 유래, 단순히 ‘책’이라는 뜻
이 단어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이집트가 파피루스를 그리스에 수출한 곳이
오늘날 레바논에 있는 비블로스Byblos항구이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성경은 파피루스, 가죽 등에 두루마리 형식으로 쓰여짐
(이집트 프톨레미 왕, 페르가뭄의 에우메네스왕,BC 2세기)

- 페르가뭄은 코덱스codex 개발, 종이 양면에 글을 쓰고 묶어 놓은 것, 두루마리 대치

<성경이 쓰여진 언어들>
-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 일부만 아람어(다니엘서, 에스라서의 일부,
   예례미아서의 한구절)로 기록됨

-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됨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노아의 장남인 셈의 이름에서 유래한 셈족 언어
히브리어중 가장 오래된 본보기는 BC 1000년경에 석회암에 기록된 게셀 달력,
그 외 메사 석주, 사마리아 오스트라카, 실로암 비문, 라기스 서한 등에 단편적인 것만 발굴

히브리어 문헌에 관한 중요한 발굴은 1947년에 쿰란(사해사본),
사해 두루마리 중 소수는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쓰여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고전 히브리어에 관한 정보의 일차적인 출처는 구약 그 자체이다.
따라서 구약에 한두 차례밖에 안 나오는 단어와 마주칠 경우에는 그 뜻을 확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문헌이 없을 수도 있다.

아람어는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 이스라엘을 정복한 적이 있는 나라들이 사용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시절에 아람어 사용, 시간이 지나면서 아람어가 일상 언어가 됨
예수와 그 제자들도 아람어를 사용, ‘아빠’ ‘마라나타’ ‘게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BC 1세기 유대인의 일상적인 말은 아람어 였지만, 상업적인 언어는 그리스어였다.
BC 4세기 알렉산더의 정복전쟁으로 그리스어가 퍼짐,

공용어인 ‘코이네Koine’(현대 그리스어의 원형)가 개발됨.
그리스어는 놀랍도록 풍부한 어휘와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능력을 갖추었다.
복음서 이야기는 물론이고  파울로를 비롯한 신약 저자들의 신학적
토론을 전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성경의 보존>
신약성경의 원본은 없다.
신약의 사본들이 집필시기에서부터 70년에서 170년밖에 되지 않음.

신약은 유일무이한 고대 문헌이다.

 

고대 로마 시인 버질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은 그의 사후 350년의 것,
아리스토텔레스, 소포클레스의 저술의 사본들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초창기의 것은
그들의 사후 1000년 이상 지난 것.

고대 저자들의 사본들은 보통 수십 개 정도에 불과
고대 저술 가운데 사본이 수천 개나 존재하는 것은 성경밖에 없다.
성경은 여느 책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사본이 많은 것이다.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버질이나 호머의 저술을 번역하고 보존하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성경의 번역과 보존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바쳤다.
지난 2천년 동안 크리스토인은 성경을 필사하고,
공부하고, 보존하고,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수천개의 언어로 번역해 왔다.

성경 번역 중 많은 순교자 발생

(1536년 윌리엄 틴테일, 1956년 에콰도르에서의 5명의 미국선교사)

2장 성경은 누가 기록했는가
성경을 둘러싼 사람들
<외경>
- BC 300년에서 30년 사이에 몇 가지 저술이 구약에 추가됨
- 프로테스탄트와 유대인은 외경(Apocrypha, ‘숨겨진’‘은밀한’)이라고 부르고,

가톨릭교도는 제 2정경이라 부름

- 역사적,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기록들임,

구약이 처음 그리스어로 번역 될 때는 대다수 성경에 포함


- 초대 교부들 일부가 외경의 일부나 전부를 받아들임
- ‘제롬’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음,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책들 중 어디에도 예수나 사도들이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 cf)’제롬‘: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로마교회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물로 인정
- 마틴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할 때(1534년)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별도로 배치,

그 이유는 외 경을 성경으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
- 가톨릭은 이에 반발, 트렌트 공의회(1546년)에서 외경을 성경의 일부로 천명(제 2정경)

<구약의 번역>
- 유대인이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동안 번역 필요 없었음
- BC 3세기 초에 이르면 유대민족이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등의 영향으로 히브리 어에 대한 지식이 실종,
유대인들이 성경을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번역

<70인역>
-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구약 번역판은 70인역이라 불리는 그리스어 판
- BC 3세기 이집트 프톨레미 왕,

  세상의 모든 책(성경 포함)을 자기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비치되길 원하였다.
- 예루살렘에서 72명의 유대인 학자를 알렉산드리아로 불러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을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시켰다.
   모세오경은 72일 만에 완료, 구약 전체는 두 세기가 걸림.
그 외 아람어, 시리아어, 콥트어로 번역됨.

<70인역이 중요한 이유>
1) 널리 사용 되고 있기 때문
2) 과거 2천 년 동안 구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경우

    당시 세계어 헬라어(그리스어) 출처로 자리 잡았다.
- 사해 사본이 발굴되기 전만 해도

   가장 초기의 구약 사본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된 70역 사본들
- 70인역은 초기 기독교회의 성경,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는 보통 70역을 인용,
오늘날 정교회 에서는 2300년이나 된 70인역이 구약의 텍스트로 사용되고 있음.

<정경의 확정>
- 정경(canon)은 ‘규율’이나 ‘척도의 표준’을 뜻하는 헬라어(그리스어) Kanon에서 유래
- 성경의 정경 :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권위 있는 저술
- 정경의 일차적 평가기준 : 그 저자와 하나님의 관계, 진정한 선지자 였는가?,
그 메시지가 예전에 나타 난 하나님의 계시와 일치하는가?
- 모세오경 :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음,

                  다른 성경에 비해 오래 전 에 성경으로 인정됨.
                  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함.

- 다음에 예언서가 정경으로 인정, 성문서는 마지막으로 정경 대열에 합류
- 70인역이 번역되었던 BC 3세기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의 책들이 성경을 확정됨.


- 요세푸스(1세기 유대 역사가) :
“유대인은 과거의 모든 사건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22권의 책(오늘날 성경 39권에 해당)을 갖고

있으며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믿고 있다.”
“BC 400년 이후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언자들을 계승하는 일이 없었다.”


<히브리어 성경의 전수와 소멸>
- AD 70년 로마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함락, 파괴되는 과정에서 극소수 히브리 사본 남음
- 예배의 중심이 사라지고 크리스토교가 퍼지는 상황에서

  유대 지도자 얌니아에 율법학교 세움
- AD 100년에 공의회를 열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구약 목록 작성
- 성경의 사본들을 정확하게 전하기 위한 규칙 : 기존의 원고가 낡아서 사본을 만들 때에는 예전의 원고 를 매장하거나 폐기
- AD 850년 이전의 히브리 사본은 1947년 사해사본이 발굴되기 까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단편적 인 사본만 남음)
- 구약이 얼마나 충실하게 후대에 전해졌는가 하는 의문이 생김.
- 70인역, 사마리아 오경의 초기 사본, 기타 크리스토인들이 사용한 그리스어 사본들만 존재

<1947년 사해사본의 발견>
- 1936년 프레데릭 케니언 : “AD 100경부터 구약성경의 텍스트는 실질적인 변화없이

  후대에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그전에 대해서는 .... 원본의 형태를 복구하려면

주로 70인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1947년 사해 주변의 쿰란 공동체 주변의 동굴에서 베두인 목동이 사해 사본이 발견. 
BC 1세기 것의 이사야 66장 모두 포함한

‘이사야 두루마리’ : 약간의 사소한 필사상의 오류를 제외하면,
그 텍스트는 AD 850년 이후 발굴한 사본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에 있는 이사야 텍스트와 동일함.

그동안 구약의 텍스트가 충실하게 전수되어 왔다는 것이 입증됨.
쿰란 공동체 : BC 150년경부터 에세네파 유대인이 거주,
AD 66년경에 로마의 핍박이 있자 주변의 동굴 속에 그들의 장서를 숨김.

발굴 완료 : 350편의 독립된 자료와 수만개의 단편을 포함해 900편이상의 문서 발견,
성경 이외의 텍스트들, 외경에 속하는 자료들, 에스더와 아가서만 빼놓고 구약의 모든 책들이 발굴됨.


<구약성경 전수의 정확성과 사해사본의 의의>
2천 년 동안 그리스어 번역판 70인 역에 크게 의존,
그 70인역이 BC 3세기 히브리어의 정확한 번역인가?

사해 사본과 70인역 서로 비교, 70인 역의 번역가들이 히브리어 텍스트를 충실히 번역한 것으로 판명
사해 사본은 그간 우리가 갖고 있던
가장 오래된 사본보다 무려 천 년이나 오래되었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을 
 완벽하게 담고 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경이
주전 2세기경에 읽힌 성경과 사실상 똑같다는 사실이 확증됨.

확한 전수! 하나님의 섭리!!

3장 성경의 진정성을 추구하다

크리스토교의 창립
- 현재까지 발굴되어 보존된 헬라어(그리스어) 신약 사본은 단편과 완전한 형태를 합치면 5,500개도 넘는다.
가장 완전한 사본은 신약과 구약을 모두 담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전한 세 개의 사본은 바티카누스, 시나이티쿠스, 알렉산드리누스 이다.
이 셋은 모두 4-5세기에 만든 것, 신구약 모두 혹은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

<코덱스 바티카누스>
가장 오래되고 거의 완전한 사본, 4세기 전반에 사용
70인역 전체와 신약성경을 담고 있다.
1475년 바티칸 도서관의 카탈로그에 모습 드러냄.
1453년 무슬림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시 피난민이 가져왔을 가능성 있음.
본문 비평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두 사본 중 하나이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1844년 이집트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발견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신약성경 사본
1800년대 수도사들이 불지피는데 사용한 바람에

       70인역 구약 가운데 일부분밖에 남아 있지 않다.
AD 350년경에 서너 명의 서기관이 만든 것, 4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동안 일련의 교정자 들이 거기에 많은 주석을 붙여 놓음.
본래 730장으로 구성됨. 그 중 347장 런런의 영국도서관에 소장

<코덱스 알렉산드리누스>
AD 425년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
본문을 구분하기 위해 장식을 사용한 최초의 사본
1621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총 대주교였던 키릴 루카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김.
1627년 잉글랜드의 왕 찰스 1세 손에 넘겨짐, 현재 영국도서관에 보관 됨.
-그외에 ‘존 라일랜즈 파피루스’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코텍스 에프레미’ ‘코텍스 베자’등의 사본 들이 있다.

<존 라일랜즈 파피루스>
- 가장 오래된 신약의 단편, 요한복음 18장의 몇 절을 담고 있음.
- 연대는 AD 125년에서 150년 사이로 추정됨.
- 1920년 이집트에서 발견, 영국 소장
- 복음서가 소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이집트에서 읽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줌.
(책이 쓰인지 50년도 채 안된 시기에..)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 존 라일랜즈보다 많은 내용
- AD 3세기로 추정
대부분 아일랜드의 채스터 비티 도서관에 소장, 일부는 미시간 주립대학교 소장

<코덱스 에프레미>
이미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
가죽종이가 희귀해지면 서기관은 우유와 귀리를 이용해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씀.
5세기 초의 그리스어 사본, 12세기에 누군가 성경 텍스트를 씻어내고
그 위에 시리아인 이었던 에프렘의 설교를 적어 놓았다.

여러번 번역되어 출간됨.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코덱스 베자>
- 가장 오래된 2개 언어 병용 신약 사본
- 페이지 왼편에 그리스어, 오른편에 라틴어가 기록됨.
- AD 450년경에 기록 된 것으로 추정
마태복음,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의 일부가 빠져 있음.
- 프랑스 수도원에서 발견 158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기증됨.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1844년 발견,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1891년 발견,
구약 사해 사본 1947년 발견, 앞으로 무엇이 더 발견 될까?


초대교회의 성경
- ‘성경이란 도데체 무엇인가?’ 란 질문은 중요했다.
왜?  크리스토인들은 진리와 이단을 구별 하는 지침을 얻기 위해
어느 책과 편지가 신약성경에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고,

핍박받던 시기에 어느 글을 숨길지 알기 위해서라도 성경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진리와 이단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당시의 이단들

1) 영지주의 : 우주의 비밀을 아는 특별한 지식이 있어야 구원을 받고, 물질적인 것은 악하고, 영적인 것은 선하다고 가르침.
2) 아리우스 :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
3) 펠라기우스 : 사람의 의지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악이 아닌 선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
4) 마르시온 : 구약의 하나님은 선하지 않다고 주장
5) 몬타누스 : 크리스토가 재림하고 자기들에게 특권을 베풀 것이라고 가르침
“역사적인 크리스토교 신앙은 성경에 속하는 각 책의 집필을 주관했던
성령이 선정 과장과 수집 과정도 주관했다고 믿는다.”

-성경학자 F. F. 브루스-
신약성경이 27권으로 확정하게 된 평가기준 중 하나 :
열두 사도에 속하거나 바울이거나 사도의 승인을 받은 사람

(마가, 누가)이어야 한다.

구약의 경전(정경)은 크리스토의 시대 이전에 이미 확정,

          BC 3세기에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됨(70인역),
AD 1세기 말 얌니아 공의회에서 구약경전 39권 확증, 이때 까지 공인된 신약 정경은 없었음.
초기 크리스토교인들 예배 때에 사도들의 회고록(신약), 선지자의 글(구약)을 읽은 뒤 ,
기도, 성찬, 고아, 과부등을 위한 
모금 순서가 있었다.

당시 위조 저작물들이 많이 퍼져 있었음. (야고보 비서, 도마복음, 바울의 묵시록,
복음서 50여권)

신약의 정경을 결정하는 문제 :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술을 선정하는 일 못지않게
가짜 저작물을 제외시키는 일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신약의 27권만을 인정

히포 공의회(393년), 카르타고 공의회(397년)에서
신약 27권 정경으로 공인(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

“신약성경의 책들이 교회에서 권위를 갖게 된 것은 공식적으로 정경 목록에 포함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그 책들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즉 내재적인 가치가 있고 직간접적으로
사도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하여 정경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크리스토교 공동체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부과한 게 아니라

공동체들의 일반적인 관행을 성문화한 것일 뿐이다.”

-F. F. 브르스-

2. 교회 탄압으로부터 보호 받기 위해서 ....
- 로마 경찰이 크리스토인에게 태울 책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성경을 담고 있는 사본을 감추 고 다른 문헌을 넘겨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교회의 핍박
AD 64년의 네로 황제의 핍박, 로마 대화재를
크리스토인의 탓으로 돌림(동물로 살해, 십자가형, 횃불로 만들어 태워 죽임)

AD 303년, 10번째 핍박, 디오클레티안 황제 치하(교회 불태움, 회중 해산, 재산 압류, 고문)

* 폴리캅
 : 2세기 중반, 당시 86세 젊은시절 사도요한을 알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
군중 들 폴리캅의 죽음 요구,

크리스토도 부인 제의 거부,
“86년 동안이나 그분의 종이었고, 그분은 내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떻게 나를 구원해준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라고 대답 했다.

* 터툴리안 : 순교자들의 용기를 보고 크리스토인이 됨.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
                크리스토교는 권력구조의 일부가 되면서
                복음전파, 성경연구, 교회 건립 등의 기회를 얻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와 권력과 
부에 의해 타락 됨.


3. 크리스토교의 공인 과 콘스탄틴
- 313년 크리스토교 공인, 콘스탄틴 황제, 그의 개종은 고도의 정치적 수완이었을 가능성이 높 다.(역사가 빌 듀란트),

그러나 그 결과는 의미심장.(교회건립, 우상숭배금지, 기독교교육, 자선사업) 교회의 정치조직은 크게 번성,

로마 주교의 지위가 공고해짐.
수도 콘스탄티노플 로 옮김, 로마교회와 정교회의 분열의 시작

“크리스토는 이 세상에 크리스토교를 주었고(신앙), 콘스탄틴은 이 세상에 크리스토교 세계를 주었다.” -말콤 머거리지-

* 니케아 공의회 : 크리스토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의 가르침,
                        AD 325년에 콘스탄틴이 니케아에 교회주교들을 초대,

                        아리안주의를 이단으로 선포(니케아 신조),
                    사도행전 15장 이후온 교회가 모인 최초의 공의회,
                        장차 크리스토교가 유럽을 지배하게  
될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됨.

- 콘스탄틴은 유세비우스 주교에게 성경 사본 50권 주문(필사본), 코덱스 바티카누스,
   코텍스 시나이티쿠스가 그중 2권이 아닐까 
추측, 그러나 증거 없음. 그 의미는 콘스탄틴이 그런 명 령을 내렸을 때 유세비우가     ‘거룩한 성경’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가정 할 수 있었 다는 것이다. 이 명령을 쓴 편지는 교회의 여러 공의회가 성경을 구성하는 저술들을 확증한 시점보다
    거의 1세기나 앞선 것이었다.

4. 역사상 영향력이 컸던 성경 번역판들
-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70인역
- 벌게이트 역 : 5세기 초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옮긴 번역판, ‘백성의 언어’ 혹은

                      ‘대중적인 판’이란 뜻,
  로마 교회에서 1500년 
넘게 사용됨,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오직 ‘벌게이 트’만이 진정한 라틴어 성경 텍스트라고 선언. 오랜 기간에 의한 필사로

많은 부분이 변형 됨.

AD 800년경 샤를마뉴(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지시로 앨퀸이 개정판 만듬.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초창기 완전한 벌게이트 성경은 6세기의 사본을 필사한

8세기의 사본 ‘코덱스 아 미아티누스’이다.


* 코덱스 아미아티누스 : 북아프리카에서 잉글랜드로 건너간 선교사들이 많은 수도원 건립,
잉글랜드 북동부의 두 수도원이 세 권의 거대한 성경을 만듬,

그중 하나를 교황에게 선물, 이것만이 남아 있다.


현재 이탈리아 플로렌스에 소장(2,060페이지, 가로 33.1cm, 세로 48.8cm, 무게 34kg)


- AD 4세기에는 구약성경과 신약 27권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등 여러 언어의 형태로 교회들 사이에 유포됨.
- 382년 교황 다마수스는 그의 비서이자 언어학자인 제롬에게

   사 복음서의 옛 라틴어 번역판 들을 개정하도록 요청,
 제롬은 
2년동안 작업,

 나중에는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성경 전체를 그 프로젝트에 포함시킴.

70인 역을 활용하긴 했지만,

그리스어가 아닌 히브리어에서 구약 39권을 번역하는 일을 모두 완수 했다.
서문에서 외경은 유익한 책이긴 하지만 정경은

아니 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성경 번역에는 포함시키지 않음.
훗날 외경이 벌게이트 번역판들에 포함됐지만 이것들은 
제롬의 작품이 아니었다.

- 크리스토교 초기 성경은 시리아어, 콥트어 등 6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초기 번역판은 4세기 말에 제롬이 작업하기 시작한 라틴어 번역판 (벌게이트)이었고,
이는 1500년 이상 로마 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이라는 특권을 누렸다.

5장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중세 시대의 성경
- 교회가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만큼 성경의 이야기와 가르침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 속에 깊이 스며있었다.
- 성경의 메시지는 드라마, 예술, 시와 건축을 통해 표현되기도 함.
- 중세의 가장 멋진 유물은 성경 텍스트가 화려한 그림과 우아한 장식에 둘러싸여 있고 그것 을 값비싼 장정으로 묶은 아름다운
사본들임.

중세성경이야기의 시작과 끝
- 중세의 성경 이야기는 4세기에 고트어 번역으로 시작해 14세기 영어 번역으로 끝남.
- 두명의 번역가는 모두 로마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천명됨.
전자는 크리스토의 신성부인 때문 에, 후자는 교회가 교황이 아니라

성경에 권위가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었음.

1) 고트어로 성경 번역
- AD 311년에 태어난 울필라(작은 늑대라는 뜻),

고트족이 소아시아를 약탈했을 때 포로로 잡혀감.
여러 언어 배움. 고트족 법정에서 일함.
콘스탄틴 황제를 알현하는 외교단 일원으로 콘스탄티노플로 파견됨.

거기서 29세에 주교로 임명됨. 나중에 불가리아로 옮김.

- AD 350년 고트어 번역결심. 고트어는 말만 있고 언어가 없는 상태,

  그리스어를 각색하여 알파벳을 만듬.
열왕기를 제외한 모든 책을 번역.
- 최초로 게르만 문자 언어를 발명함. 

그 당시 대다수의 고트족은 아리안주의자라서 크리스토 의 신성을 믿지 않음.
- 고트족은 훈족과 게르만족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몰락에 앞장섰던

  ‘야만족’이 었고 로마의 몰락을 계기로 중세가 시작됨.

2) 위클리프의 영어로 성경 번역
- 1320년대에 잉글랜드 북부에서 탄생함.
- 옥스퍼드에서 수학, 자연과학, 신학 공부, 교사가 되었다가 설교자가 됨.

   나중에 정치에 관 여.(애국자, 개혁가)
- 교회의 타락에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
교회는 불순한 사제들이 청탁, 각출, 면죄부의 남용,

기부금의 낭비 등으로
부유해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1세기의 교회처럼 가난해져야 한다고 주장함.

-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주장함. 훗날 종교개혁의 핵심 원칙이 됨.

그를 ‘종교개혁의 샛별’이라 부르게 됨.
롤라드라는 순회 선교자들을 파송, 당시 교회는 이단으로 천명, 그들 일부는 화형당함.

당시 성경이 프랑스어로 번역됨. 영어로 번역의 욕구가 커짐.(영적, 정치적)

위클리프 라틴어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 완수함.
그 친구 니콜라스 구약성경 번역중 출교당해 영국에서 추방당함.

그 나머지를 위클리프가 번역하고
존 퍼베이가 그 전체를 개정하는 작업을 함. 현재 250여권의 번역판이 남아있음.

(대부분 퍼베이 개정판)
위클리프 개혁의 의의 : 신학과 교회 생활면에서 성직자 지배구조 전체를 위협했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작업은 이제껏 몰랐던 
규모로 사회를 평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1384년 12월 31일 위클리프 뇌졸중으로 사망함.
1415년 콘스탄틴 공의회는 그를 ‘목이 곧은 이단’으로 선포,
그의 책 불태우라는 포고 내림.

13년 후에 교황 마르틴 5세의 명령으로 위클리프의 뼈를 불에 태워 강에 뿌림.
1408년 켄터베리에서 대주교 아룬델의 이름으로 포고문 발표함.
“이제부터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위로 성경의 어느 텍스트든지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존 위클리프의 시대나 그 후에 만든 책이나 팸프렛이나 책자를

읽어서도 안 된다.”

당시 한 역사가의 진술. “그는   크리스토가  교회의 성직자와 학자들에게 주신 복음서를 번역하여 ....
이로 말미암아 성경이 저속하게 되었고,
유식하고 지성적인 성직자보다

오히려 글을 읽을 줄 아는 평신도 남녀가 더 접근하기 쉽게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의 진주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돼지의 발밑에 짖밟히고 말았다.”

아룬델은 자신이 전투에서 이겼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전쟁에서 이긴 것은 위클리프였다.

그는 ‘종교개혁의 샛별’로 성경을 열어주었으므로 영어권 사람들은

구원이 믿음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150년 후에 ‘종교개혁’의 횟불이 타올랐다.

2. 중세시대의 성경 과 문화
대다수 사람은 성경을 읽지 못했으나
드라마와 노래, 이야기와 그림,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배움.
당시에는 책을 만들려면 손으로 필사해야 했기 때문에 책이 너무도 희귀했음.
글을 모르는 평민들이 설교자와 사제와 
음유시인에게서 성경에 관해 배우는 것은 흔했음.


<<중세시대의 문화>>
1) 드라마
미사 자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생각함.
특별한 절기에 성경 이야기를 재현하는 행사 시행함. 예) 수난절 연극
2) 예술
교회와 수도원의 모자이크 조각들
3) 시
단테의 신곡,

14세기, 이탈리아, 지옥과 연옥과 낙원을 통과하는 단체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중 ‘지옥’편은 성경만큼이나 사람들의 지옥관에 영향을 주었다.
4) 건축
장엄한 성당들
성당은 조각, 그림, 스테인드글라스, 건축등을 통해

예배자로 하여금 하나님과 성경을 바라보도록 설게됨.

<<중세시대의 성경>>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걸작품에 속하는 장식 성경을 만든 시기 였음.
삽화, 화려하게 꾸민 첫 철자, 가죽종이 위에 금이나 은으로 도색한 디자인 등이 가득참.

1) 크루세이더 성경
1244년과 1254년 사이에 프랑스 루이 9세를 위해 파리에서 만든
그림 성경으로 창조에서 다윗 왕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래 글은 없고 한 페이지에 2-4개의 그림만 있었다.
그 후에 소유주가 바뀌면서 라틴어, 페르시아어, 히브리어로 된 설명이 붙음.

2) 코덱스 아우레우스
AD 870년에 샤를마뉴의 손자인 대머리 왕 찰스가 의뢰한 성경.

사복음서의 텍스트가 들어 있고, 현란한 장식은 찰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안된 듯. 표지는
금과 보석과 진주로 둘러싸인 크리스토의 모습이 황금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3) 윈체스터 성경
잉글랜드에서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품 중 하나로서 본래는 두 권으로 된 대규모 성경이다.
텍스트는 한 명의 필사자가 쓴 것으로 보이지만,

삽화들은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미술가가 그린 것이다.

4) 린디스판 복음서
켈즈 사본과 함께 장식 성경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복음서
놀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음.
8세기에 린디스판의 주교였던 에드프리스가 만든 작품임.

200년후에 알드레드 사제가 붉은 잉크로 라틴어 행간에
옛 영어 번역문을 삽입해놓았는데, 이는 현재 가장 초창기의 영어 번역으로 알려짐.
각 복음서는 그것을 쓴 복음전도자의 초상화와 함께 시작되고,
그 뒤에 복잡한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가득 찬 이른바 
‘카펫 페이지가 이어짐.

놀랄 만큼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42가지의 다양한 색채와 명암을 사용했고
잉글랜드 민족이 그 정체성을 점차 
정립해가도록 도와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영국도서관에 소장됨.

5) 켈즈 사본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최고의 보물
라틴어로 된 네 복음서를 담고 있다.


AD 800년경에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 지다가

바이킹의 침략으로 아일랜드 사원으로 도망가서 책을 완성.
필체는 최상급, 장식은 청금석을 아낌없이 사용.
이 사본의 장식은 너무도 복잡해서 확대경을 써야 잘 볼 수 있을 정도임.

(당시는 확대경이 없었음.)
각 복음서의 첫 마디는 너무도 화려하고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실용적인 면보다 미적인 면이 더 중시됨.

6장 세상을 바꾼 180부의 성경

종교개혁 시대의 인쇄 성경
1. AD 1450에서 1550년 사이의 세계
- 인쇄술의 발명으로 책 만드는 비용 줄고, 문자 교육이 폭발적으로 늘어남.
- 언어가 일관성 있게 정리됨 --> 의사소통 원활 --> 무역이 활발 --> 상인, 무역상,

기업 가에게 부와 권력 이동 --> 중산층 증대
-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짐 : 돈을 세금이나 면죄부 명목으로 교황에게 보내기보다

자기 나라에 확보하기 위해 여러 조치 취함.
교황 추종 필요성 약해짐. --> 바티칸의 시대 저물 어감.


-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마젤란 세계일주,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 이와 같은 변동의 중심에는 성경이 있었다.


<이 100년 동안 성경 이야기와 관련된 중요한 발전>
1) 인쇄술 발명은 성경이 더 널리 보급되도록 해주었다.
2) 성경이 여러 구어체로 번역되어 더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3)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관심이 커짐에 따라

   번역판 성경이 더 정확해지고 권위를 갖게 되었 다.
4) 종교개혁은 교황과 교회가 아니라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다.
   이 세계적 지각 변동의 중심에 구텐베르크와 마틴 루터가 있다.


2.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와 성경
- 슈트라스부르크에서 금 세공인으로 일하다가

인쇄 작업에 관여, 나무 블록을 이용함. 광고 지, 놀이용 카드, 성자의 그림 등을 인쇄,

  책을 인쇄할 만큼 실용적이지 못함.
- 1448년 마인츠로 돌아가서 인쇄소 개업, 면죄부 인쇄하는 사업 시작.

  합금 활자를 이용해 책을 인쇄하는 방법 개발, 기름 잉크 개발.


- 그의 걸작은 성경, 1455년경에 성경 180부 출판
- 출판된 성경은 두 권으로 된 라틴어 성경(가로 28.8cm, 세로 40cm, 1,282페이지),

   각 페이 지는 검은색으로 인쇄된 42행씩
  두 칼럼으로 구성, 색깔 있는 글자를 추가할 수 있도록 여 백을 남겨 놓음.

  현재 48권이 남아있음.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인쇄물로 꼽힘)
- 재정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함. 빛을 갑지 못해 파산 위기에 처함.


3. 인쇄술의 영향
책을 만드는 장비와 기술 급속도로 퍼짐.
1500년에 이르면 유럽 각국에 인쇄소 생김. 약 3만 여종의 인쇄물을 출판(추정),

지난 50년 동안 출판한 책이 그 이전 인류 역사
통틀어 생산한 양보다 더 많음.


통속적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배포되기 시작.
1488년에 이탈리아의 손치노에서 완전한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최초로 인쇄했다.
1500년에 이르면 성경이 수천 명의 손에 들리게 됨.
인쇄술은 계몽주의, 미국혁명, 프랑스 혁명, 민족주의로 향하는 길을 열어줌.

4. 마틴 루터
- 1483년 태생, 인쇄된 책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를 모르고 자랐던 세대
법학전공, 번개 체험 후 어거스틴파 수도사가 됨.

자기 죄성 인식하고 기도, 금식.
당시 로마교회 : 죄 용서 받기 위해서는 선행으로 자기의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함.

                      헌금이 주된 예, 결국 면죄부 판매로 이어짐.
"돈이 돈궤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즉시 그 영혼은 연옥의 불에서 튀어오른다."라고

  선동하였다.
교황 레오 10세, 성 베드로 성당 완공위해 면죄부 판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 계시,

 

그중 하나는 "오늘날 부자 중의 부자인 교황은
어째서 자기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를 짓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끌어오는가?"였다.
교황 : '루터는'술취한 독일인이다. 술이 깨면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루터 : '교황이야 말로 성경 전체가 이야기하고 있는 진짜 안티 크로스토다"

<종교개혁 5대 표지>
1)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 구원은 면죄부 구입과 같은 선행으로 오는게 아니라

                                            믿음으로 만 온다.
2)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 교회나 교황이 아니라 성경이 궁극적인 권위이고,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다.
3) 오직 은혜로(Sola Gratia) :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혹은 공로 없이 얻은 은총으로 온다.
4) 오직 크리스토로(Sola Christus) : 크리스토만이 하나님과 사람 간의 유일한 중보자다.
5)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 :

                                             교황이나 성자들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을 분이다.

* 루터의 보름스 회의에서의 발언
: “내가 성경의 증언이나 자명한 이성에 의해 설득되지 않는 한 이 입장을 그대로 견지하겠다.

달리 어떻게 할 수 가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 황제 찰스 5세의 보름스 칙령에서 :
"우리는 루터가 체포되어 악명 높은 이단으로 처벌 받 게 되기를 원한다."

1521년 출교 후 추종자들이 바르트부르크 성에 안전하게 피신시킴.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1494년판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함. 신약은 1522년 출판, 신구약 완역판은
1534년 184개 목판화와 함께 출판됨.


루터의 번역판의 의의 :

전에도 독일어 번역판이 있었으나 루터의 번역은 동시대의 언어를 사용했기에 읽기 쉬웠고,
여러 방언을 표준화 시키는 역할을 함.

"나는 모세를 독일인처럼 묘사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유대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루터) 니체는 루터의 번역을 최고로 훌륭한 독일어 작품이라고 평함.
루터의 성경은 영어판 킹 제임스 성경(KJV)과 같이

 독일어의 정립을 도와준 문학적인 고전이다.

5. 종교개혁과 성경  
교황 루터의 저술을 금서로 규정

비텐베르크에 있던 한 인쇄소는 50년 동안 루터의 번역판을 거의 10만부 인쇄.

루터의 성경 번역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줌.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됨.

두 종류의 번역판 : 가톨릭이 공인을 받은 라틴어 번역판,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서 번역 한 프로테스탄트 번역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를
프로테스탄 번역가 는 "
회개하라"로 번역하여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강조한 반면
가톨릭 번역가들은 "고행성사를 하라"로 번역하여 신체적인 행위를 부각시킴.

두 진영 간 전선 형성 :
가톨릭은 라틴어 벌게이트를 진정한 성경이라고 변호,
프로테스탄 트들은
가톨릭의 번역판들은 
라틴어 벌게이트에서 옮긴 것인데
우리의 번역판은 그리스어 와 히브리어에서 옮긴 것으로 원문에 더 가깝다고 주장.

성경해석의 독점권을 주장한 로마 교회의 입장 약화됨.
-->성찬관련 루터와 쯔빙글리의 대립으로 교회가 성경의 최종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유리한 고지를 다시 점령하게됨.

트렌트 공의회(1545~1563) :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
라틴어 벌게이트가 결정적인 성경 번역판이라는 것, 외경도 구약서경의 일부라는 것,
에라스무스는 불경건한 이단이고 그의 저술은 금서라는 것 등을 확증함.
16세기와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성경 번역판 가운데 상당수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
루터의 독일어 성경(1522/1534), 킹 제임스 영어 성경(1611), 두웨이-림즈 영어 성경(1582/1609-10),
클레멘틴 라틴어 성경(1592), 레이나-발레라 스페인어 성경(1569),

지오반니 디오타니 이탈리아어 성경(1603)

6. 1550년 이후의 세 종류의 세계관
1. 가톨릭 입장 : 성경의 권위는 인정했으나

    교회에도 성경을 해석하는 권위와 책임을 똑같이 부여함.

    실질적으로는 교회가 궁극적인 권위인 셈.

2. 프로테스탄트 입장 : 오직 성경에만 권위를 부여함. 정치적 권위는 왕,
    사회 지도자들에게, 경제적 권위는 개개인에게 부여 되어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됨.
    지적인 권위는 신앙적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자유에 있었음

3. 휴머니스트 입장 : 15, 16세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발달하기 시작하여
   1700년대의 계몽주의에서 꽃을 피움. 
궁극적인 권위는 성경이나 교회에 있지 않고
   이성과 과학과 철학에 있다는 입장임.
   지식은 곧 힘이라고 믿음.


  성경이 잉글랜드를 만들었다

영어 성경에 얽힌 이야기
1. 윌리엄 틴테일
1494년 생, 당시 1408년 만들어진 영어성경 읽기 금지령이 실효.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함.
“나는 교황과 그의 모든 법률에 반항하오.
 만일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쟁기를 모든 소년이 성직자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할 것이요.”

1524년 런던에서 성경번역이 승인 받지 못하자 독일로 이주,

비덴베르크에서 루터 만남, 신약성경 번역 완수,

쾰른에서 성경인쇄시작, 보름스로 도망하여 8절판 성경 3천부 인쇄함.

1526년 초 많은 신약성경이 영국으로 밀반입됨.
  헨리왕은 성경 번역 반대, 성경을 구입하여 공개적으로 불태움.

이런 반대가 오히려 성경판매를 도와줌. 틴테일이 죽을 때 잉글랜드에서 5만 부 이상 팔림.

1530년 모세오경 영어번역판 선보임. 1531년 요나서 출판
1534년 앤트워프 항구도시에서(벨기에) 신약성경 개정판 출간
1535년 배반자에 의해 집밖으로 유인되어 체포됨.
16개월 감옥생활, 사형선고,
그의 마지막 기도는 
“주님, 잉글랜드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였다.

 나무에 묶인 채 교살되었고, 몸은 화형에 처해짐.

그는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탁월한 번역가였음.
그의 번역에 나오는 많은 어구는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 영어 성경에 그 만큼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없고 그 만큼 큰 희생을 치른 사람도 없다.
- 존 위클리프는 틴테일에 앞서 150년 전에 이미 성경을 번역했지만,
 그 성경은 중세 영어로 씌어 있어서 읽기가 어려움.

위클리프는 성경의 일부를 번역 했다는 사실보다 남들에게 영향을 미친 점이 더 높게 평가 되는 데 비해,
 틴테일은 대부분의 성경을 
자기 손으로 직접 번역했던 인물이다.
KJV는 여러 면에서 틴테일의 번역판을 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75년 동안 잉글랜드에서 인쇄된 번역판들
1) 커버데일 성경(1535) : 틴테일은 구약성경의 번역을 완수하기 전에 죽었다.
커버데일의 번 역판은 완역된 영어 성경임.

2) 매튜 성경(1537) : 틴테일이 죽기 전에 미완성된 원고
(여호수아서에서 역대하까지)를 친구 인 존 로저스에게 맡김.

이 사람이 토머스 매튜라는 가명을 사용한 성경학자였음.

틴테일의 신약을 개정하고, 틴테일이 번역한 구약 부분은

그대로 넣고 나머지는 커버데일이 번역한 것으로 보충함.

3) 태버너 성경(1539) :
그리스어 학자이자 변호사였던 리처드 태버너가 런던의 한 인쇄업자 에게 매튜 성경을 개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만든 성경임.

4) 대성경(1539) : 커버데일 성경의 구약은 히브리어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었고,
매튜성경은 틴테일과 로저스가 붙인 주석이

문제가 됨.(이 두권은 당시 왕이 인가한 성경) 그래서 대주 교 대리였던 토머스 크롬웰은
커버데일에게 매튜 성경을 개정하여

또 다른 번역판을 만들 도록 요청함. 왕은 이 성경이 모든 교회에 비치되도록 했다.

5) 제네바 성경(1560) :
- 메리 여왕은 1553년에 즉위하여 영국을 다시 가톨릭 국가로 만들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을 화형하는 등 공포정치 단행.
- 프로테스탄트들이 독일, 스위스, 제네바로 도망감.

제네바에 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성경 번 역판을 제작함.

- 1560년 출판준비가 다 된 해에 메리가 죽음. 엘리자베스 1세(중립)에게 이 성경이 헌정됨.
- 이 성경에 칼빈주의적인 주석이

달려 있기 때문에 더욱 널리 보급되었고 더욱 널리 보급됨.
- 50년 넘게 영국의 평민들이 사용했던 성경이며 인쇄도 160판이 넘음.

- 장로교도와 청교도가 바라는 개혁된 잉글랜드 국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이 됨.
- 세익스피어도 이 성경을 읽음.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이 성경을 가져감.
킹 제임스 성경 이 등장하여 잉글랜드에서 인쇄가 금지될 때(1616)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6) 주교 성경(1568) :
  교회 당국이 제네바 성경에 반기를 들고 대성경의 개정판을 만들어 출 판된 성경.
교회 당국에서만 사용하고 
평민은 사용하지 않음.

7) 두웨이-림즈 성경(1582/ 1609-1610) : 가톨릭 학자들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피해 도망가서 가톨릭 주석과 설명이 달린
영어 성경을 만듬. 라틴어 성경을 번역함. ‘두웨이-림즈’라는 이름은

  망명객들이 살았던 프랑스의 두 도시의 이름임.
1738년 개정판을 만들어 20세기 중반까지 가톨릭의 표준 영어번역판으로 사용됨.

3. 킹 제임스 성경(KJV)
- 제임스 1세는 국교도와 청교도간의 종교적 긴장을 다루어야 했다.
- 제임스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함.
  따라서 장로교도와 청교도를 ‘해충’아라 부르며 그들의 독 립적인 입장과 제네바 성경을 혐오함.

- 자신의 지시로 새로운 영어 성경이 출판되면 정치적,
   영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시킬 수 있을 것임을 알고 번역작업을 
시작함.

- 최대한 ‘주교성경’을 따르되, 다른 성경의 텍스트가 ‘주교성경’보다 낫다고 생각되면

   그 번 역판들
(틴테일, 매튜, 커버데일, 대성경, 제네바성경)을 따르라는 지침을 줌.
  번역가들은 그리스어 텍스트와 히브리어 텍스트도 
참고하였다.

- 서문에서 “완전히 새로운 번역판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좋은 번역판들로부터 으뜸가 는 번역판 하나 만들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음.

- 틴테일과 커버데일의 표현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다.(틴테일>커버데일>매튜>대성경)
- 1611년 출판됨.

- 지금은 킹 제임스 성경이 ‘흠정(欽定, 황제가 손수 제도나 법률 따위를 제정하는 일)역’이라
  불리고 있지만
 사실은 왕이든 
누구든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 킹 제임스 성경이 제네바 성경을 누르고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번역의 질이나 가격과 관련이 있음.
제임스 성경은 군주와 제네바 성경은 청교도와 연줄이 있는 것과도 관련이 깊 다.
- 1616년 제네바 성경의 인쇄가 금지됨. 네덜란드에서 수입됨.
- 1660년에 청교도 의회가 런던에서 붕괴되고 잉글랜드 군주제가 부활하자 제네바 성경에 대 한 수요가 없어지고
킹 제임스 성경이 군림하게 됨.

- 킹 제임스 성경은 잉글랜드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영어, 영문학, 음악)
- 몇 세기 동안 각 가정마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소유하고 읽곤 했던 유일한 책이었음.
- 신세계에서 최초로 인쇄된 영어 성경은 이 성경 이었고,
 거기에 나오는 단어들은 미국의 장 소 이름, 정치 연설, 문학 등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초기 교육의 토대가 되기도 함.

- 사람들은 지난 400년 동안 킹 제임스 성경을 보물로 여겨옴.
“내 사상에 위대한 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음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날마다

성경을 읽어주고, 날마다 그것을 암기하도록 하신 것이다.”(예술 비평가 존 러스킨)
“잉글랜드는 두 권의 책, 곧 성경과 세익스피어를 갖고 있다.
잉글랜드는 세익스피어를 만들었지만, 성경은 잉글랜드를 만들었다.”

(빅토르 위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마그나카르타이고....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책이다”(루스벨트)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이 성경이 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지구에서 그동안 이 책이 미친 영향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이 성경의 어구는 헌신된 영혼을 기대 이상으로 더 높이 끌어올리고,
인간 경험의 깊은 심연보다 더 낮은 곳까지 내려가게

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때때로 번역문이 틀리거나 서툴거나 모호하기도 하다.
사실 킹 제임스 성경의 표현 중에서 수백 군데가 지금은 더 큰 지식이나 더 나은 텍스트로 대치된 상황이다.
거기에 담긴 옛날 영어 문체가 언어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성경이 받는 크나큰 사랑은 성육신한 하나님을 그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것으로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David Daniell, The Bible English : Its History and Influence)

미국의 성경 이야기
- 1607년 영국인 제임스타운 설립,
  1613년 네덜란드인 맨해튼에 정착,

  1620년 영국 청교도 플리머스 상륙 청교도들은 제네바 성경을 들고 옴.

-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인쇄된 책 :

1640년 매사추세츠 배이 콜로니에서 스티븐 데이가 케임 브리지에서 인쇄 기계를 들여와
시편(배이 시편, The Bay Psalm Book)을 1,700부 인쇄함.

아메리카에서 처음 인쇄된 성경 : 존 엘리엇이 알공퀸의 나티크 방언으로 번역한 것.
1,100명의 ‘기도하는 인디언’을 14개의
자치 공동체로 나누었고
성경을 번역한는데 10년 걸림. 1661년에 신약성경, 1663년에 성경 전체가 인쇄됨.

아메리카에서 가장 처음 유럽 언어로 인쇄된 성경 :
1743년 인쇄된 마틴 루터의 독일어 번역판,

필라델피아의 저먼타운에 살던  크리스토퍼 사우어가 주관.

토머스 제퍼슨 : 교단의 도그마에 반기를 들고,
인쇄된 성경에서 문자 그래로 여러 부분을 잘라내고는 기적이 하나도 없는

예수 이야기를 이리저리 끼워 맞춰 46페이지짜리 ‘아주 작은 책’을 만듬.
토머스 페인 : 프랑스어로 쓴 ‘이성의 시대’에서 구약에 대해
“성경의 절반 이상은 외설적인 이야기들, 관능적인 유흥, 잔인한 처형,

끊임없는 복수 등으로 가득 차 있고 .... 인류를 타락시키고 포악하게 만든 사악한 역사이다.”

제퍼슨과 페인 같은 인물도 있긴 했지만
미국이 공유했던 언어와 유산은 바로 성경이었다.

미국인은 많은 도시에 성경적인 이름을 붙였고, 미국 문학에는 성경의 비유들이 스며있다.


- 미국이 영국 식민지 였을 때는 킹 제임스 성경을 인쇄할 수 없었다.
  성경의 판권이 왕에게 있었고 왕이 인가하는 인쇄소에서만 
인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음.

- 1776년 독립을 선언하자  영국은 성경과 책들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규제함.
  당시 미국 에서는 인쇄 비용이 너무 높아  
수입에 의존 함.

- 미국에서 인쇄된 최초의 영어 성경 : 1777년 로버트 에이킨이 신약성경 인쇄,

1782년 전체 성경 1만권 인쇄함.
이것이 미국에서 인쇄된 최초의 영어 성경임.
지금 40권정도 남아 있 음. 세계에서 가장 귀한 책 중의 하나로 꼽힘.

- 미국 최초의 영어 가톨릭 성경 : 1790년 매튜 캐리가 두웨이-림즈 번역판을 인쇄
- 1801년 캐리는 킹 제임스 성경 인쇄, 재정적으로 큰 성공을 거둠. 성경의 대량 생산과 보급 의 선구자가 됨.
- 킹 제임스 성경은 1700년 이후에 미국 식민지 거주민들이 읽었고,
  설교자 들이 제 1차와 제 2차 대각성 운동 때 사용했으며,

   남북전쟁 당시 양측의 군인들이 모두 읽고 위로 받았다.

<1881년 이래 미국에서 출판된 영어 번역판>
개역성경(RV) : 신약 1881년 출판, 3백만 부 팔림. 구약 1885년 출판
미국 표준 성경(ASV) : 미국의 한 위원회가 영국판 개정자들과 협의한 다음 1901년 출판
개역 표준 성경(RSV) :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주관으로 1946년 신약성경, 1952년 전체성경 출판
(근본주의, 복음주의 진영은 KJV선호, 자유주의 진영은 RSV사용)
새 영어 성경(NEB) : 영국학자들과 유럽학자들의 합작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을 만들려고

역동적 등가의 원칙을 이용한 번역판
새 미국 표준 성경(NASB) : 1942년, 미국 표준 성경을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개정한 축어적인 번역판,
개역 표준 성경에 비해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다.
좋은 소식 성경(GNB/TEV) : 미국 성서공회가 역동적 등가의 원칙을 이용해 만든 성경,
처음 다섯 해 동안 3천만부가 팔림,

빌리 그레이엄, 로마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이 추천,
단순한 일상어로 쓰여 있어 영어를 제2외국어로 구사하는 자들과 어린이, 성경에 생소한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살아 있는 성경(LB) : 1971년 완전한 성경 출간, 단순한 번역판이 아니라 해석이 담긴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4천만 부 이상 팔림, 1996년 ‘새로운 살아있는 번역판(NLT)’ 출간.
새 국제 성경(NIV) :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 성경학자들이 만든 새로운 번역판,
이 번역판의 목표는 정확하고 아름답고 명쾌하고

품위있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읽기 좋고, 가르침과 설교와 암송과 의례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번역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새 킹 제임스 성경(NKJV) : 용어는 시대에 맞춰 개정하되
 킹 제임스 성경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메시지(The Message) : 유진 피터슨이 의역한 성경, 목표는 성경의 어조와 운율과 사건과 아이디어를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영어 표준 성경(ESV) : RSV를 복음주의적으로 개정한 성경이다. NIV보다는 더 보수적, NASB보다 더 읽기 쉽다.

- 1881년에 개역 성경이 출판된 이래 성경 번역판이 급격하게 늘어 났고, 색채와 장정과 모 양새가 더 다양해짐.
(야외 활동가를 위한 위장된 표지, 공주성경, 십대소년을 위한 성경, 관 주 성경, 가족용 성경, 학습용 성경, 녹음테이프,
온라인, 전자 포켓 성경 .....)

-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성경은 미국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기 시작함.
교회가 사교 모임에 중점을 둠.

미국인들의 대화에서도 성경적 용어가 사라짐.
성경이 ‘교회 와 국가의 분리’ 캠페인의 일환으로 장터와 교실에서도 분리됨.

미국은 더 이상 성경적 이 미지, 성경적 언어, 성경의 가르침으로 가득 찬 나라가 아니다.

- 미국 가정의 92퍼센트가 성경을 가지고 있음.
연구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47퍼센트가 교 회 밖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성경을 읽는다.
그러나 미국인은 전반적으로 성경의 내 용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 많은 미국인들에게 성경은 여전히 모든 진리 위의 진리이기 하지만, 더 이상 모든 이야기 위의 이야기는 아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경우 가 많은 실정이다.

9장 땅 끝까지 이르러


이 시대의 성경 이야기
성경 보급 노력에 앞장 선 대표적인 기관 : 성서공회,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 <예수> 영화 프로젝트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경공부를 장려했기 때문에 1900년에 이르기 까지
성경의 일부를 이미 500개에 가까운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했다.
현재 전 세계의 6,909개의 언어 가운데 2,400개의 언어로 번역됨.

<성서공회>
- 전통적으로 주석을 달지 않은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하고 보급할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

최초로 설립된
‘영국 및 해외 성서공회는 온 세계에 성경을 공급함. 지금 까지 출판한 성경은 모두 700개의 언어로 된

5억여 권에 이름.
현재 145개의 성서공회가 있음. 이들 기관이 모여 연합 성서공회를 이룸.

미국 성서공회는 1816년에 창립, 1,0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한 성경들 출간함.
미국의 모든 가정에 성경을 공급하자는
캠페인을 벌임.

군인과 이민자와 선원에게 보급했고,
호텔에도 성경을 비치함. 호텔에 성경을 비치하는 일은
1908년 창립한  
‘기드온협회’가 맡음.

미국 성서공회는 영어를 제 2외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경을 만들어 달라는
아프리카와 극동의 요청을 받고 ‘

오늘의 영어 성경(좋은 소식성경, GNB, Today’s English Version)을 출판(신약 1966년, 구약 1976년), 큰 인기를 누림.
1809년에 창설된 뉴욕 성서공회(국제 성서공회 ---> 비블리카Biblica로 이름 바꿈)는 NIV판권을 소유하고 있음.
1987년 연합 성서공회와 중국의 남경에 있는 아미티 인쇄 회사는 중국에서 성경 인쇄하기로 협약 맺음.
약 5천만권의 성경과 약 9백만 권의 신약을 인쇄함.
85퍼센트가 중국 국내에 보급됨.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
1942년 이래 성경과 문자 자체가 없었던 부족들이 사용하는 600여 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함.
1917년 카메룬 타운센트가
성경을 팔기 위해 과테말라로 파송됨. 칵치켈 부족민의 질문에

(“당신의 하나님이 그토록 위대하다면 왜 우리 언어를 구사할 수 없습니까?”) 부족어로 성경번역 소망 생김. 13년에 걸처
스페인 알파벳을 칵치켈어에 맞추는 작업을 통해 성경 번역 완수.
타운젠트는 성경 번역가를 훈련할 목적으로 ‘여름 언어학교(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SIL)’ 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함.
SIL 과정을 밟은 성경 번역가는 모두 4천 명이 넘음.
위클리프 선교사들은 93개 나라에서 성경을 2,000개의 소수민족 언어로 번역하고 있음.
2008년 11월에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자기네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2025년 까지
모든 번역 작업을 착수하자는 캠페인 벌임.
파푸아뉴기니의 핀디우에서 이영섭과 그의 아내 현숙이 쿠베어를 배운 뒤 20년에 걸쳐서 2008년 신약성경 번역 완수.

<‘예수’ 영화 프로젝트>
-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한 필림은 ‘예수’ 영화
- CCC창설자 빌 브라이트가 프로듀서이자 연예계기업가인 존 헤이맨을 만나서 누가복음을 영화로 제작. 영어 번역문은 GNB에서 따옴. 1979년에 상영됨. 흥행에 실패.
- 1980년 CCC의 한 부서인 ‘예수 영화 프로젝트‘가 그것을 다른 언어들로 번역하기 시작함.
지금 까지 1,0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됨.
- 이 영화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인 수십억의 사람들이 시청했고, 예수를 따르기로 결 단한 사람이
모두 2억 2,500만도 넘음.
- <예수> 영화야말로 역사상 가장 널리 유통된 성경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음.
오늘날 거의 2,400개에 달하는 종족이 아직도 천국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사명은?

성경이 우리 손에 들리기까지
한글 성경 번역의 역사

언제, 어떤 경로로 한국에 성경이 오게 되었나?
- 한반도에 전해진 최초의 성경 : 1826년 순조 16년, 영국 해안 탐사선 함장(머레이 맥스웰) 이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진에
상륙하여 마량진 벼슬아치 조대복에게 성경 선물, 영어성경 흠정역으로 추정.
- 한반도에 전해진 최초의 한문 번역성경 : <신천성서>(영국 선교사 모리슨 중심으로 번 역),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 통역이자
의사인 귀츨라프가 상선 로드 암허스트호를 타고 우 리나라 방문,

충남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에 정박,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
두 권과 함께 선물 을 조정에 받침.

조정의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17일 동안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신천성서) 과
전도문서 배포함.

모리슨의 한문 구약성경(1859)은 숭실대학교 기독교 박물관에 보관되 어 있다.
- 최초의 한글 성경번역 : 귀츨라프가 고대도에 17일간 머물면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함. 


1865~1866년 런던선교회 제레마인 토머스가 두 차례 조선 방문,

성경 보급을 통한 선교 개 척을 위해 4개월간 체류,순교하기 전 중국어 성경 배포함.

후일 이 성경을 받았던 사람들 이 강서와 평양교회 설립자가 됨.
- 토머스를 죽이려 했던 박춘권은 안주교회의 수뇌가 됨.

성경을 받아 벽지로 사용했던

영문 주사 박영식의 집은 평양최초의 교회인 평양 장대현 교회 터 가됨.
- 토마스 선교사에게 성경을 받아간 이영태, 후일  크리스토교 신자가 되었고

   성경 번역 사업에 동참하였다.

2. 국외에서의 성경 번역

2.1 만주에서의 성경 번역
1871년, 1872년 중국에 파송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선교사

존 매킨타이어와 존 로스가 조선에 대한 영적 부담을 느끼고한글 성경 번역 시도함.
1877년 한국인 이응찬이 도움을 받아 한글 성경 번역 시작함.

1882년 최초의 한국어 성경 출판,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
<예수셩교 요한니복음젼셔> 3천권씩 인쇄.

띄어쓰기 하지 않음.

그러나 하느님, 쥬, 키리스토 전이나 후에는 반드시 여백을 둠.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그리스도를 ‘키리스토’로, 요한을 ‘요한니’로,

세례를 ‘밥팀네’로 표기함.
1883년 마태, 마가복음, 1884년 사도행전이 출판, 5천권씩 인쇄됨.

1885년에 로마인서와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등이 역간됨. 1887년 신약성경이 완역됨.

이 성경이 순 한글로 번역된 <예수셩교젼셔>인데,
보통 <로스 역 성경> 라고 불림. 이것이 한글어로 된 최초의 신약전서임.
한문 신약성경을 대본으로,

헬라어 성경과 영어 성경은 준 대본으로 사용함.

축자적 번역이라기보다 의미의 동등성 중시함.


구어체 사용함. 서북 방언 등 토착 방언이 많이 사용된 점이 약점으로 지적됨.
이 성경은 이후 한글 성경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줌.

선교사 마삼락(Moffett)은 로스, 매킨타이어를 ‘한국의 위클리프’라고 부름.

2.2 일본에서의 성경 번역
1882년 수신사 박영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이수정이 도착하여 크리스토교 신앙을 배움,

신앙 급성장하여 1883년 세례받음.

1883년 말에 7, 8명의 한국인 수제자를 얻음. 일본 최초의 한인 신앙공동체를 형성함.
이수정은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미스의 제의로

한문 성경을 대본으로 한글어 성경 번역을 시작함.


1885년 2월 신약 <마가젼 복음셔언히>라는 이름으로

요코하마에서 미국성서공회를 통해 간행됨. 초판은 1천 부를 인쇄함.


그해 4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일본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입국할 때 가지고 온 성경이

바로 이 마가복음 번역본임.
국, 한문 혼용체를 사용했고 고유명사 표기가 원어에 가깝고 한문 투의 용어가 많음.
하나님을 ‘천주’로 번역. ‘세례’는 ‘밥테슈마’로,

그리스도는 ‘크리슈도스’로 각각 음역하여 헬라어 원문에 충실하려고 함.


이수정은 계속 마태, 누가복음서도 완역했으나 빛을 보지 못함.
이수정의 마가복음 번역본은 1887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그리고 한국인 송덕조 등의 공역으로 개정되어 요코하마에서 재출간됨.

3. 국내에서의 성경 번역

3.1 몇 가지 사역본
성서번역연구위원회 구성 : 1887년 서울에 있던 5명의 선교사들(언더우드, 아펜젤러, 알렌, 스크랜턴, 페론)이 구성하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번역 책임자로 임명함.

1887년 마가복음, 1890년 로마서, 1892년 마태복음, 1892년 사도행전,
요한복음이 번역되어 간행됨.
1890년 아펜젤러가 로스역 누가복음을 수정하여 출간함.
1892년 마태복음서가 번역되어 <마태복음전>이란 제목으로 출간됨. 이 책이 수정본이 아닌 국내에서 번역된 첫 한국어 성경임. 

30만부 간행됨.

3.2 성경 번역자회의 조직과 신약성경 번역 작업
1893년 상임성서실행위원회 구성 : 영국성서공회 만주지부 책임자였던 켄무어의 내한,

수정본이 아닌 완전한 번역본을 위해 조직됨. 휘하에 ‘성경번역자회’를 조직함.
1895년 성서공회가 설립됨.
1895년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이 간행됨.(마태복음 외에는 개인역) 1900년 요한계시록이 마지막으로 번역됨.
이것이 국내에서 번역된 최초의 신약전서인 <신약젼셔>임. (마태복음에서 로마서까지는 번역자회의 공식적인 의결을 거친
시안본, 나머지는 개인 역본)
1900년 9월 9일 서울 정동감리교회에서 신약성경 봉헌 감사예배가 드려짐.
아펜젤러 사망 : 번역자회의 공인을 위한 수정작업을 위해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배 충돌사고로 한국인 조사 조성규와 함께 순직(1902년)
1906년 드디어 성경 번역자회가 공인한 공인 역본 <신약젼서>가 출판됨. 

이 성경이 1938년 ‘개역신약성서’가 출판되기까지
한국교회의 공인된 신약성경이었음.

3.3 구약성경 번역 작업
전주에서 레이놀드, 김정삼, 이승두가 번역작업에 몰두하여 1910년에 구약성경 번역작업을 완료함. 10년 걸림.
1911년 구약성경을 이미 출판된 신약성경과 묶어서 <성경젼서>라는 이름으로 빛을봄

한국의 최초의 성경전서가 됨.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 김정삼, 이승두의 노고가 큼.

3.4 성경 개역 작업
1911년 ‘구약 개역자회’ 구성,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
1925년 게일은 사역 구약성경을 출간, 기독교창문사에서 펴낸 ‘신역신구약전서’임.
1936년 <구약젼셔 개역본>이 26년에 걸친 작업으로 간행됨. 1938년 보다 완전한 번역본 출판됨.
1926년 ‘신약개역자회’가 조직됨. 1937년 개정을 완료, 1938년 <신약개역>이란 이름으로 발간됨. 구약과 신약이 합본되어
<성경개역>이 출판됨. 이 공인역 개정 성경이 1952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거하여 수정을 거친 뒤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란
이름을 간행됨. 1956년 새로운 맞춤법에 따라 일부 수정됨. 1961년 815개소의 자구수정을 거침.
이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 오늘에 이르기 까지 한국 교회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하는 성경이 됨.

한국에서 성경은 한글의 보급과 한국사회 계몽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침.

한글의 보급과 문맹타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침.
서민들은 성경을 통해 한글을 터득했고,

성경을 통해 천대받은 한글이 우리 글로 정착됨.

독일의 루터의 독일어판
신약성경의 번역이 독일문학에 끼친 영향이나,

킹 제임스 성경이 영문학에 끼친 영향과 비교된다.

 

성경의 기원과 의미

 

구약성경에서 직접 히브리어라고 언급된 것은 없지만,

 가나안 방언(사 19:18), 유다 방언(왕하 18:26-28, 느 132:24, 사 36:13 등)으로

사용되었다.

 

히브리라는 말은 '건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르'가

 '건너온 사람'란 뜻의 '이브리'로 변했고,

이 말이 오늘날 사용하는 '히브리'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히브리'란 말이 사용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B.C. 130년경 유대 랍비들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 '건너온 사람'란 출애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아라랏 산 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

바빌이 있었고,  바로 그 아래 갈대아 우르가 있는데 여기서 아브라함이

두 강을 넘어 가나안으로 갔기 때문에 '히브리'(강을 넘어온 사람)가 된 것이다.

히브리어는 일종의 혼성어로서 다른 카나안 어와 마찬가지로 알파벳을 사용하였다.

우가릿어가 30자모를 사용하는 반면

히브리어는 세 개의 자음 문자의 결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동사 어근을 기조로 하고 있다.

사실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히브리어는

다른 셈어와 비교할 때 어휘 수가 적고 문장 구성도 발전하지 못한 언어이다.

히브리어는 2,050종의 어근이 있고,  고유명사를 제외하면 5,000단어 정도만 사용된다.

 

그것도 단 한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도 꽤 많다.

 그러다 보니 그 가운데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기껏해야 500단어뿐이다.

그러니까 이것만 달달 외우면 구약성경을 원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외형적인 문법은 일단 비켜놓고 이해한다면 히브리어는

상당히 단순하고 간결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헬라어는 불변사, 분사, 관계절 및 다른 종속절에 매 단어에 들어가는 시제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내면적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반면,

히브리어 문장은 다른 문장을 종속시키지 않고 동위에 놓으며,

 동사가 하나하나 규칙적으로 뒤따르는 버릇이 있어서 마치 어린아이 대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히브리어는 복잡한 헬라어도 히브리어로 바꾸면 단순해진다.


이렇게 단순한 히브리어를 각 나라와 언어로 다시 구약성경을 번역하면서

 성경이 뒤죽박죽이 되어 더 어렵게 변해 버렸다.

창세기 25:34절 "야콥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 25:34)를

 다시 문자 적으로 번역한다면

"야곱이 에서에게 떡과 팥죽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먹었다.

그리고 그가 마셨다.

 

그리고 그가 일어났다.

그리고 갔다.

 

그리고 에서가 장자권을 무시하였다"가 된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이런 단순함은 오히려 장엄하고 숭고하며 운율적이다.

 

 그리고 활력과 정열이 넘쳐서 감정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언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히브리어 특징 때문에 구약성경도 많은 곳에서 운율적으로 기술되었다.

많으면 어떻게 되느냐?

복잡해진다.

 

복잡한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자동차 부품 수를 줄여야 만들기 편하고 고장이 나도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줄이냐 이것이 관건이다.

참 하나님은 단순하다.

 

하나님을 누가 잘 믿느냐 단순한 사람이다.

단순한 사람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

오늘날 과학이 이룬 업적이 있다면

모든 생명체의 DNA(염색체)를 분석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그런데 사람이 이것을 알아내고 처음 실망한 것이 사람보다

 

원숭이의 염색체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46), 원숭이(54)개이다.

 

소, 말(60), 고양이(38), 잉어, 뱀(104), 개, 닭(78), 누에(56), 완두콩(14), 벼(24)로

 밝혀졌다.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개와 닭은 염색체 수는 78개로 같지만 서로 다른 종이고,

 사람보다 더 많은 염색체 수를 가진 생물들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종의 지능과 염색체 수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말로 '거룩한 책'이란 뜻의 '성서'(聖書),

 또는 '거룩한 경전'이란 뜻의 '성경'(聖經)은 그리스어 '비브리온'(Biblion)을 번역한 것이다.

원래 히브리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은 그냥'책'을 뜻하는 '비블리아"(Biblia: 비블리온의 복수형),

혹은 '거룩한'이란 뜻의 형용사 '싸 크라(sacra)를 덧붙여

 '비블리아 싸크라'(Biblia Sacra)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12세기에 이르러 성경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Testament'라는 영어 표현은 라틴어 'Testament'에서 유래한 것으로

 '계약','약'이란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하신

옛 언약을'OldTestament' 즉 구약이라 부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신 언약'New? Testament' 즉 신약이라 부른다.

성경 구분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눈다.

 

그런데 신약은 별 문제가 없지만 구약은 범위를 정하는데 있어서

 유대교(물론 유대교에서는 구약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와 

개신교 및 가톨릭교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다. 

먼저 구약 성경이 정경(正經)과 외경(外經)으로 나누어지게 된 역사를 살펴보자.

 

기원전 3세기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지방에는 70인경,

혹은 70인역이라고 불리는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이 존재하고 있었다.

 

 70인역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70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70인역 구약성경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한 이후

 이스라엘 본토를 떠나 그리스 문화권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을 위해 쓰인 성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70인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는 없는 본문뿐만 아니라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 등 그리스어로 쓰인

일곱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던 중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후

 '얌니아'라는 지방에 있던 예쉬바(Yeshiva)라고 불리는 유대인 랍비들의 아카데미에서

구약 성경의 정경을 결정하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요한 난 벤 자카이라는 랍비가 주도한

이 아카데미는 어떤 책들을 '거룩한 책'에 포함시킬 것인가로 의논한 끝에

 히브리어로 씌어진 39권의 책만을 구약성경의 정경으로 공식 선포하였고,

이후 유대인들은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약 성경은 서기 300년 까지는 전문 필사가들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필사(베껴스게)되었다.

 

콘스탄틴 황제가 서기 312년 경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박해를 받던 사람들이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전문적인 필사가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성경 사본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필사실이 생겼다.

 

로마 제국의 동쪽에서는 헬라어(그리스어)를 사용한 사본들이 나타났고,

로마제국의 서쪽에서는 라틴어(로마어)  번역들이 나타났다.

 

로마 교황 다마누스는 당대의 최고 학자이었던 제롬에게 

로마제국 주변에 살면서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용하는 모든 기독교인이 읽을 수 있게

 

공식적인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라 했다.

그 라틴어 번역 성경이 불가타(Vulgate (공통) ) 성경이다.

 

불가타는 불가투스(뜻 : 일반적인, 대중적인)에서 유래 되었다.

그것은 서방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이 되었다.

 

 15 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그(1400-1468)가  인쇄술을 발명한 후

 성경 생산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구텐베르그의 인쇄기로 인쇄한 최초의 작품은 라틴어 불가타 성경 이었다.

 1450-1456 년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된다.

 

헬라어 성경은 그리스 정교회의 속한 것으로 생각해서

그리스어를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라틴어 성경을 제일 먼저 출판했다.

 

헬라어(그리스어) 성경 제작을 제일 먼저 생각했던 사람은 

히메네스 드 시스네로스(Ximenes  de  Cisneros,1437-1517) 이름을 가진

스페인 추기경 이었다.

그의 주도로 3 단으로 구성된 다중언어 대조성경을 만들었다.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왼편에

 

               라틴어로 중간에

               헬라어(그리스어)로 오른편에 배열하였다. 1514 년의 일이다.

 

여러가지 문제로 헤메네스가 죽은지 5 년 후인 1522 년에 발행 되었다.

1515 년 에라스무스도 그리스어 신약 편집 작업을 시작해서   5 개월 만에 인쇄 까지 끝냈다.

 

한편 16세기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는 유대교처럼 히브리어로 쓰인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7권은 외경(Apocrhypha: 뜻이 명확하지 않거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책)으로

 따로 분류하였다.

 

 반면 가톨릭교에서는 이 7권의 책도 정경에 포함시켜 '제2경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로마교회가  헬라어 성경을 390년에 라틴어로 번역할 때

 번역가 히에로니무스(제롬)을 비롯한 많은 사제들이

구약의 헬라어로 기록된 후기문서들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구약성경39권을 정경으로 후기15문서는 외경으로 분류하였던 것이다

 

후기 문서들을 [구약성서] 39권과 [신약성서] 27권과 구별하여

별도의 부록으로 엮어 넣고

 "외경은 경전과 동등하지 않지만 읽어서 유익한 교회의 책"이라고 해설 했던 것이다

이렇게 편집되어져서 나온 성경을 불가타성경이라고 하며

이 성경책이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종교개혁 운동당시까지도

 가장 권위있는 성경으로 교회의 예배에 경전으로 사용된 것이다

 성경의 장절이 붙여진 것은 1555 년 스테파누(1503-1559)의 불카타 성경에

 

처음으로 장절을 붙여서 출판하였다.

  오늘날 성경은 1560년 제네바 성경의 장절의 구분을 따라 되어 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후 30년이 지나서

 1546년의 트리엔트 종교회의에서 카톨릭교회가 후기15문서가운데

11문서를 제2경전으로 승격시켜 구약성경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하므로서

 이 후기11문서가 카톨릭 교회의 정경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제2경전이 7문서인줄 알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11문서이다 .

 

그것은 에스더 속편과 다니엘속편으로 편집되어 있는

세아이의 노래와 수산나와 벨과뱀을 독립된 문서로 보지 않기 때문에

제2경전이 7문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분명 기존 에스더서와 다니엘서에 

헬라어로 쓰여져 덧붙혀진 성격이 다른 문서들인 것이다.

 

따라서 트리엔트 종교회의에서 구약의 외경15문서에서 4문서만 탈락시키고

11문서를 제2경전으로 승격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지금의 카톨릭교회에서 이 후기 11문서의 권위를 입증하는 논리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도 헬라어로 기록된 70인역 성경을 읽고

후기11문서에서도 말씀을 인용하여 신약성경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헬라어 성경을 읽었다는 근거는 없으며

 또 후기11문서에서 인용한 말씀이라고 제시한 신약성경의 근거도

 

 다 아전인수격의 잘못된 해석이다

신약성경에 후기11문서에서 인용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는 분명한 구절은 없다

 

천주교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구절들은 일반적인 도덕 윤리의 교훈들로서

그것은 일반인들의 책에서도 인용했다고 볼수 있는

평범하고 비슷한 내용의 구절들인 것이다

 

문구와 단어까지도 똑같은 후기11문서의 인용말씀이라고 볼 수 있는

 분명한 구절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본래가 헬라어로 기록된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쓴 13서신은 헬라어로 집필된 것이 분명하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헬라어에 능통한 사람으로서

그 유창한 헬라어로서 유럽선교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서의 다른 문서들을 기록한 예수님의 1대 제자들과 ,

 2대 사도들이 다 헬라어로 성경을 기록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쓰고 있었으며

 대체로 그들은 보수적이고 국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헬라어로 된 성경을 읽고,

또 신약성경을 기록할 때에도 헬라어로 기록했을 확률보다는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고

또한 신약성경을 기록할 때에도 아람어로 기록했을 확률이 높다.

 

그것은 초창기의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된 것만 발견된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아람어로 된 신약성경 초기문서들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람어로 쓰여진 성경들이 헬라어로 쓰여진 성경보다

 그 뜻을 더 명쾌하고 선명하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성경27권도 본래는 아람어로 쓰여진 것이 있고,

 헬라어로 쓰여진 것이 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후대의 기자들에 의하여 헬라어로 통일 번역 복기되어

일반화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투철한 선민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정통치를 받는 특별한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이방 앗수루의 침략을 받고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인들과 결혼해서 혼혈이 되었을 때에

그들을 개처럼 여기고 상종하지도 않을 정도로 구별되기를 원했던 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성경(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귀중하게 여겨

이 성경구절을 이마에도 써서 붙치고 손목에다가도 걸고 다니며

정신적인 지주로 항상 읽으면서 자자손손 후대에 교육하기를 힘쓴 사람들이다.

그런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성경을 사장시키고,

 

 헬라어로 된 성경을 읽었을 리 없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헬라어 성경을 읽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이런 여러 연유로 1517년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시작하면서도

 그 당시 사제들만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고

 일반성도들은 전혀 성경을 접하고 읽지 못하게 했던,

 암흑기(최근 20세기 전반까지도 어느 나라에서 건 신부들이 미사드릴 때에

 꼭 라틴어 성경을 읽게 했슴)에 일반성도들도 성경을 읽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에 70인역 헬라어 성경이나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 성경보다도

 

 팔레스티나 공동체에서 사용했던  히브리어 원어 구약성경을 주로 가지고

번역했기 때문에

 개신교의 구약성경이 39권이 된 것이다

 

따라서 루터가 구약성경46권중에서 39권만 선별해서 가지고 나갔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실의 왜곡이다.

루터는 다만 AD90년 얌니야 회의의 결정과 AD 390년 헬라어성경을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할 때에 구약 39권만을 정경으로 분류한

로마교회의 그 결정을 그냥 따라서 정경만을 번역하여 성경으로 했을 뿐인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후기 11문서를 정경으로 덧붙친 것은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고 개신교가 생기고 나서도 30년이 지난 1546년,

 트리엔트 종교회의에서인 것입니다

 

(어떤 천주교인은 루터가 구약의 성경을 줄였을 뿐 아니라,

신약의 야고보서도 성경에서 떼어냈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의 왜곡이다.

 

 루터가 카톨릭의 행위구원론을 반박하고

믿음구원론을 역설하는 가운데 행위를 강조한 야고보서를 낮게 평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떼어낸 것은 아니다.

 분명히 루터는 신약27권을 다 독일어로 완역했으며

 지금도 현대어로 개정된 루터의 독일어성경은

 유럽의 독일어권에서 많이 읽혀지고 있다)

 

( 참고: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본래 헬라어로 기록된 것이 아니고,

 아람어로 기록되었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증거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1) 초대 교부들 (파피아,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유세비우스, 제롬)의

 저작물에서, 신약성경의 원본이 부분적으로 아람어로 기록되었음을 언급한다.

 

2) (마4:8) 마귀가 다시 그분을 데리고 심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왕국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그분께 보여 주며....윗 구절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보여줄 수 있는

높은 산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헬:kosmos)”에 해당하는

단어가 아람어로는 land(육지, 지역, 국토, 땅)의 의미를 가지므로

“이스라엘 지역”의 모든 왕국들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 논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3) (마24:51) 그를 잘라 내고 위선자들과 함께 할 그의 몫을 그에게 지정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윗 구절은 “그를 토막내어 잘라 버리고 난 후에

그의 몫을 지정해 준다”라는 의미가 되므로 어불성설이다.

 

 “그를 잘라내고”에 해당하는 아람어는 “팔렉(palleg)”으로서 1차적인 뜻은

“여러 부분으로 자르다(cut in pieces)”이지만,

2차적인 뜻은 “그의 몫을 지정해 주다(appoint to someone his portion)”이다.

 

따라서 윗구절은 2차적인 뜻을 사용하여

 “그의 몫을 지정하고 위선자들과 함께 두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가 되어야 한다.

 

헬라어 번역자들이 아람어에 능통하지 못했으므로,

 1차적 뜻으로만 번역하였기 때문에 오역이 된 것이다.

 

4) (마19: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매....

아람어로 낙타(גמלא)와 밧줄(גמלא)은 그 문자가 동일한 多意문자이다.

이 구절에서는 “밧줄”로 번역되어야 한다.

 

개신교에서는 구약 성경에 일부 문서를 '외경'이라 한다.

 

 외경이란 Apocryphos라는 그리스어 형용사로서

그 본래 의미는 '숨겨진' 또는 '감춰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점차 정립되어 가면서

 '숨겨진 것'은 "이단적 내용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숨겨진 것" 또는 '거짓된 것'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교회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널리 유포돼 있던 종교적 서적들 가운데

 경전에서 제외된 모든 서적들을 위경(Apocrypha)이라 불렀다.

 

예를 들면 구약위경으로서

12성조(聖祖)의 유훈(遺訓), 헤녹서, 유빌레움, 므나세의 기도,

 

 제3 에즈라서, 제3 마카베오서 등이 있으며

신약 위경으로서는 에피온인, 히브리인, 이집트인, 니고데모, 야고버, 베드로 등의

복음서를 비롯하여 각종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 등이 있다.

 

이상이 Apocrypha(위경)의 본 뜻이나,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용어를 '외경(外經)'으로 번역하여

 

 제2경전

 

즉 토빗기유딧기지혜서집회서바룩서마카베오기 상권마카베오기 하권,

 그리고 에스더와 다니엘 가운데 그리스어 성서만이 전해 주는 부분들을 칭할 때 사용한다.

복음주의 및 현대의 개신교 전통에서는 외경을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나

 

1820년대 즈음까지는 이를 "경외서"라는 단락 안에 부록으로 추가해 놓곤 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이들을 구약성경의 일부에 포함하고 있다.

 공동 번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세계의 기독교가 에큐메니컬 운동(교회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각 나라 말로 공동으로 번역하여, 이를 공식 성경으로 채택하는 운동을 벌였다.

외국의 사례에서는, 개신교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이라 하더라도

개신교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구약 일곱 권까지 포함하여 한 성경 안에 싣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에서는 가톨릭용과 개신교용으로 구분하여,

 개신교용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 일곱 권이 빠져 있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경 공동번역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 성경을 발간하는 개신교 출판사도 다양하고

 

개별 개신교 교회와 목사의 독자성이 강하여,

 공동번역 성서는 성공회와 정교회와 일부 극소수 개신교에서만 사용되었다.

 

 1. 개역 성경이 나오기까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성경은

 피터스(A. A. Pieters)가 번역한 '시편촬요'였다.

그 후 1882년에 존 로스가 만주에서 서량륜 등 한국 젊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누가복음을 번역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해서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성경번역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들은 번역작업을 시작하여 1900년에 신약을 모두 번역했고,

1911년에는 구약을 모두 번역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최초로 '신구약 성경'이 출판되었는데,

이 성경은 1938년에 다시 개역이 되었다.

이 성경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성경'의 모체가 되었다.

 

1956년에 이 성경은 개정된 '한글 맞춤법 표기'에 맞추어서

다시 한 번 부분적으로 개정이 되었다.

 

이 성경은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여져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2. 공동번역

  그러나 개역 성경은

원어 성경이 아닌 영어성경(흠정역 킹제임스)과 한문 성경을 기초로 해서 번역되었고,

자국인이 아닌 외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에서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1968년에 대한성서공회는 레닌그라드 비평 자료인 BHK를 기초로 해서 

천주교와 공동으로 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대한성서공회는 1971년에 신약을 완역하였으며, 

1977년에는 구약과 외경을 완역하여 "공동 번역 성경"을 출판하였다.

 

3.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공동번역성경은 외경 문제로 인해서

개신교 내에 전혀 수용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가운데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개신교인들을 위해서

현대어로 된 '현대인의 성경"을 만들게 되었다.

 

이 성경은 1977년에 신약이, 그리고 1985년에 신구약 완역본이 나왔다.

  현대인의 성경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주로 영어판 성경인 Living Bible에서 번역을 했다.

 

 이 성경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을 번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역성경을 대체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성경을 새로 번역한 것은 기존의 개역 성경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어로 된 성경을 현대어로 쉽게 번역함으로서

개역 성경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번역자들은 개역 성경과 현대인의 성경을 함께 사용함으로

 독자들이 어려운 개역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 성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성경은 개신교인들에게 새롭고 쉬운 한글 성경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Living Bible은 많은 영어 번역 성경 중에서 가장 풀어쓰기(의역)를 한 성경이며

 가장 읽기 쉬운 성경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이 이러한 Living Bible을 번역했기 때문에 주요 번역 원칙이나

특징은 Living Bible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4. 현대어 성경 

  현대인의 성경이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에서 번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에 성서교재 간행사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기초로 해서

현대어 성경을 출간했다.

 

 신약은 1978년에 출간되었고,

신구약 완역은 1991년에 출간되었다.

 

  현대어 성경은 원전으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성경을 사용했고,

 현대인의 성경과 Living Bible처럼 쉬운 풀어쓰기(의역)를 따라 번역을 했다.

 

 현대어 성경은 현대인의 성경처럼 고어로 된 성경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동시에,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참고해서 번역하여 그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했다.

현대어 성경은 성도들이 쉽게 이해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원문의 내용이 모호한 부분은 권위있는 주석을 참고해서 성도들이

그 뜻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성경의 번역자들은 현대어 성경을 만들면서

 '주석을 바탕으로 풀어 옮긴 성경',

그리고 '주석의 도움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을 만들려고 했다.

 

5. 표준새번역

  개신교가 "공동번역성경"을 사용하지 않게 되자,

대한성서공회는 다시 개신교 단독으로 원문에 근거해서 충실한 번역 성경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에 '표준 새번역 성경'을 출판했다.

그러나 이 번역판은 여러 가지 교리 문제와 용어 문제로 인해서

 각 교단에 수용되지 못했다.

 

6. 개역 성경 개정판

  각 교단이 표준 새번역 성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용하기를 꺼리게 되자,

대한성서공회는 이 성경의 내용을 더욱 더 보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작업 끝에 대한성서공회는 2000년에 "개역성경 개정판"을 내놓았다.

이 성경은 고어를 현대인이 알기 쉽게 고치는 동시에,

원문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러 교단들에서 이 성경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대한성서공회는 그 지적을 수용하여 수정 작업을 거쳐왔다.

 

 이 성경은 처음에 몇 교단과 단체에서 공인 성경으로 받아들여졌고

 최근에는 상당히 많은 교단과 단체들이

 이 성경을 공적인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7. Good News Translation(GNT, 1976/1992)


(전 Today's English Version(TEV))

미국성서공회는 전통적인 어휘와 문체를 벗어나 영어를 처음 배운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정된 어휘와 단순한 문법,

간단한 문장으로 평이하게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 성경은 의미 중심 번역으로 이해를 돕기 위한 600개의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차이 때문에 미국판과 영국판이 따로 출간되었으며,

1992년 전체적으로 개정되어 다시 출간되었다.

  8.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1978/1984)


킹제임스 성경(1611)의 고어체로 인해 성경을 어렵게 여기고

거리감을 두는 성도들을 위해 시작된 성경 번역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대의 일상 영어로 의역하여

 자유주의적 신학으로 빠지는 것에도 반대하여,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원문을 번역한 것이

바로 이 NIV(신 국제역)이다.

 

문자적 번역과 의미 중심 번역이 균형적으로 조화되어 있는 번역으로

공예배와 성경 연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묵상과 성경 읽기,

암송에도 사용되는 명료하고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번역이다.


현재 국제성서공회의 전신인 뉴욕성서공회와 다양한 개신교 교단들에서 후원하여

115명의 영어권 개신교 복음주의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번역되었다.


일상적이거나 특정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영어 표현보다는

성경 시대의 표현 그 자체를 평이하고 정확한 영어로 옮기는 데 충실하여,

 

NIV의 표현과 어법은 생활 영어라기보다는 국제 영어라고 할 수 있다.

낭독과 암송에도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운율이 탁월하게 맞추어져 있으며,

 

문체의 측면에서도 공을 들인 번역으로 문장이 매우 유려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유장함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특히 문어체로 번역하였으며,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하여 NIV에 빠져있는 부분은 난외주에 수록되어 있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읽기 쉬운 영어 번역본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복음주의적 영어 성경인 NIV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기념비적 영어 성경이다

 

9. 킹 제임스 성경

 

제임스가 승인한 학자 54명 가운데 47명이 7년 동안 3곳에서 6개 집단으로 나뉘어

과거의 영역 성서들과 원래의 언어로 된 본문들을 사용해 작업했다.

그결과 등장한 영역 성서는 영어 문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300년 이상 표준 영어 성서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킹 제임스 성경은 안티오크 교회가 번역한 
“올드 라틴어 성경”(The Old Latin Bible) 혹은
“원(原) 라틴 벌게이트 역본”(The Latin Vulgate)을 그대로 전수한 것으로서, 
현재 부분적으로만 남아있는 구 라틴어 성경 본문은
 학자들에 의해 킹 제임스 성경 본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① 킹 제임스 성경 번역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시대가 끝나갈 무렵(1558-1603)
새로운 성경 역본을 만들기 위한 의회의 조례안이 나오게 된다.

“영어로 되어 있는 성경들의 다양성을 줄여서 원문으로부터
 번역된 단 하나의 영역본을 만들기 위한 조례”가 바로 그것이다.

1568년에 나온 비숍 성경(The Bishop's Bible)이
비록 그레이트 성경(The Great Bible)을 압도하기는 했으나
 제네바 성경과는 여전히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때에는 이 조례안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다가
1603년 튜더 왕조에서 스튜어트 왕조로 영국 왕조가 바뀌면서
 제임스 1세가 37세로 왕위를 잇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겨 놓은 것은 집권 초기 지독히도 가난하고 무방비상태에서
 45년이 지난 이후 부유하고 막강한 나라로서 광대한 제국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임스 왕이 권력을 잡은 지 정확히 일  년이 된 후,
왕은 “교회 안에 잘못된 점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햄프톤 코트 궁전으로
 크고 작은 정당들로 구성된 회의를” 소집했다.

 이 때, 옥스퍼드에 소재한 Cortus Christi 대학 학장이며
청교도인 존 레이놀즈(John Reynolds) 박사가
새로운 영어 성경 역본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왕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가장 학식 있는 학자들이
새로운 성경을 번역하도록 허락했다.

이 때 예수회 요원들이 회의장에 폭탄을 설치하여
제임스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었으나 시작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이 회의에서 승인되고 1604년 2월 10일에 공포된 결의안은 다음과 같다

“원어인 히브리어와 희랍어에 철저히 일치하는 전체 성경의 번역을 시행한다.

이 성경은 난외주 없이 제작 출판되어 영국의 모든 교회에서 예배 시에 사용될 것이다.
 성경 번역의 다음 단계는 번역위원을 선정하는 작업이었다.

1604년 제임스 왕은 뱅크로프트 감독에게 편지를 써
자신이 성경의 번역을 위해  54명의 학자를 임명하였다고 알렸다.

이들은 당시의 최고의 성경 학자요 언어학자들이었다.
제임스 국왕에 따르면 다른 인물도 찾았는데 이는
 “우리가 시도하는 번역이 우리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주요한 학자들의 도움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함이라”고 했다.

비록 54명의 학자들이 임명되기는 했지만
번역에 실제 참여한 사람은 47명으로 알려져 있다.

② 번역과정

번역은 6개 그룹으로 나누어 실시되었고,
이들은 웨스트민스터, 캠브릿지, 옥스퍼드 세 곳에서 각각 모였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10명의 학자가 창세기부터 열왕기하까지,
일곱 명의 학자가 로마서부터 유다서까지의 번역을 담당하였다.

캠브릿지에서는 8명의 학자가 역대기상에서부터 전도서까지,

그리고 일곱 명의 다른 학자는 외경을 담당했다.
옥스포드에서는 일곱 명이 이사야에서 말라키까지

 다른 여덟 명이 사복음서, 사도행전 및 요한계시록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반드시 따라야 할 세밀한 규칙과 규정을 만들었다.

이들 중 일부를 예를 들면

“ⓐ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읽히는 흔히 감독 성경이라 일컫는 성경을 따라야 하며
 가능한 원본의 진리가 허용하는 정도에서만 변경한다.

ⓑ 대언자와 성경 저자의 이름과 본문에 나오는 다른 이름들은
가능한 대중들이 사용하는 대로 그대로 따른다.

ⓒ 틴데일, 메튜, 커버데일, 대성경, 제네바 성경 등이
 감독 성경 보다 훨씬 더 원문에 일치 된 경우는 언제든지 그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드디어 이 여섯 그룹의 작업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그 결과가 6인 위원회(번역을 맡아서 세 그룹에서 각각 2인씩)에 보내져서
최종적인 교정과 출판을 위한 준비를 하게 했다.

개개의 번역자들은 먼저 개인적으로 주어진 성경 한 장이나 적은 부분을 번역하여
그의 동료들에게 검토와 수정을 하도록 제출한다.

결코 개인적인 생각에 치우침이 없이 수많은 상담자들의 집단적인 지혜를 끌어 모아
 개개의 집단은 어느 책 한권의 번역이 집단적으로 완성되면
즉시 원고를 다른 5개의 집단에 차례차례로 송고한다.
이 작업은 결코 부주의란 찾아볼 수 없다.

그 후 최종교열은 마일스 스미스와 토마스 빌슨에 의해 완료되었고,
서문은 스미스가 작성하였다.

③ 번역 대본과 출판
번역 작업은 1604년에 시작하여 1611년에 끝났다.

여기에 사용된 성경은 이전 영어 번역판 뿐만 아니라
트레멜리우스와 베자의 라틴역, 스페인역, 프랑스역, 이태리역 판들도 포함된다.

원칙상으로는 킹제임스 역본은 주로 감독성경을 사용했다.
그러나 감독성경이 “원어 성경의 진리를 조금도 변경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만일 틴데일, 매튜, 커버데일, 대성경, 제네바 성경이
본문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경우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베자의 제5판과 순수하게 보존된 올드 라틴 벌게이트가 중요한 대본이 되었다.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이 로버트 바커(Robert Barker Press)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리하여 안티오크 이래 수많은 사본들이 있었으나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받은 성경”(The Authorized Version Bible)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받았다.


번역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마일즈 스미스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가 행한 개역을 우리가 경멸하지 않도록 했고,
 우리가 두들긴 망치질이 침골(砧骨)을 다시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다.

느린 것은 꾸짖지 않았고 빠른 것은 지나치게 칭찬하지 않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 결과 오늘 날 영어권의 모든 사람들이 당당히 여기는

자랑스런 권위성경이 나온 것이다.”
이후 권위역으로 알려진 이유는 교회나 국가의 어느 한 편의 공적인 행동에

 기인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의 위대한 본질적인 장점 때문인 것이다.
이 성경은 1629년과 1638년에 두 번의 적은 부분의 오탈자가 수정되었다.

 1653년의 의회는 또 다른 개정 요구안을 제기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킹제임스성경>은 초판에서는 그레이트 성경(Great Bible)보다도 그 크기가 더 컸다.

 검은 활자로 인쇄된 이 성경은 원어에 없는 낱말들은
 작은 이탤릭체로 된 로마 타입 활자로 표시했다.

번역자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가 더욱더 알려지도록 하는데
 쓰임받은 부족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교황의 추종자들”(Popish persons)이 사람들을
 “무지와 어두움” 가운데 가두어 놓으려고 한다고 분별 있게 지적하고 있다.

④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반대자들의 평가

알렉산더 지리스(1802 사망)라는

로마 카톨릭 사제가 1792년 자신의 번역본 첫 권을 출판하였는데
 당시의 성경이었던 <킹제임스성경>에 대해 다음의 찬사를 보내었다.

“제임스 1세의 역본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망라하고 최대의 찬사가 쏟아졌다.
훌륭한 역본의 자격인 정확성, 충실성 및 원문의 철자에 대한

 철저한 주의 등이라고 한다면
이 공인역본이야 말로 최고의 성경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모든 문장, 모든 작업, 모든 음절, 모든 철자 및 구두점까지도
정확하게 측정하여 된 것으로 보이며 본문이나 난외주 역시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킹제임스성경>이 공식적으로 “공인”된 적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대표적인 성경 변개자인 웨스트코트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킹제임스성경>은 17세기 중반부터 전세계에 걸쳐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성경이었는데 이는 이 성경이 최고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1세기 간의 노력의 결실을 구체화시켰으며
위대한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본능에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이 성경은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어떤 통치자의 칙령도 확보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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