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주일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축일명대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것이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께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셨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올해는 오늘부터 11월 29일까지)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고 자주 읽으며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분의 다스림은 절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우시고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만물을 화해시키시어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당신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헤브론으로 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다며 아버지께 감사드리라고 한다(제2독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복음).
제1독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3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12-20
형제 여러분,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빕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35ㄴ-43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우리는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면서 예수님을 ‘온 누리의 임금’, ‘그리스도왕’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 오늘 복음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빈정거리며 한 이 말은 예수님의 삶을 잘 요약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이들은 살리시면서 정작 당신 자신은 다른 이들을 위한 제물로 내주신 참된 사랑의 임금이십니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23,37). 군사들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며 한 말입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23,39). 예수님 곁에 매달린 죄수 하나가 그분을 모독합니다. 빈정거리고 조롱하고 모독하던 자들의 한결같은 주문은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임금이신 하느님 나라는 자기를 먼저 돌보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반면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 하나는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23,40-41)라고 하면서 자신이 벌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극심한 고통을 주는 십자가 위에서조차 저주를 내리시기보다 용서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참으로 선하신 구원자를 발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윽고 그는 주님께 자신을 맡깁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23,42). 그날, 그 시간 그에게 구원이 주어집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김동희 모세 신부)
너무나 은혜롭고 감동적인 우도 직천당 사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축구시합을 할 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주 극적인 경우를 봅니다. 막판 뒤집기입니다. 경기가 거의 다 끝나가는 순간입니다. 후반전 남은 시간은 1분, 스코어는 1:0 우리가 지고 있습니다. 우리 팀의 패배가 거의 확실합니다. 그러나 가끔 기적 같은 일이 생기지요. 막판에 젖 먹던 힘을 다합니다. 정규 시간이 끝나는 순간 우리 편이 한 골을 넣고 동점을 만듭니다. 그리고 심판이 준 추가시간이 2분, 한 골 넣은 여세를 몰아 종료 직전 한 골을 더 넣습니다. 극적인 역전승이지요.
그 순간의 기분은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입니다. 선수고 코치며 감독까지 다들 너무 좋아 얼싸안고 경기장 위에 쓰러집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적인 ‘막판뒤집기’ ‘인생 역전’이 오늘 복음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우도였습니다. 그는 정말 행운아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이제 정규 게임은 끝나고 추가 시간에 막판뒤집기를 성공시킵니다.
우도는 너무나 죄스러웠고 송구스러워, 차마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지만,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아룁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런 그는 누구였습니까? 좌도에게 자신의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우도는 형 중에 가장 극형으로 손꼽히는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십자가형은 예수님처럼 무죄한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과오로 인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녔을 것입니다. 나라에서도 몇 번 기회를 줬겠지요. 그러나 번번이 그는 그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 결과가 십자가형이었습니다.
이런 그였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막판에 용기를 냈기에, 늦었지만 예수님 안에 긷든 하느님의 신성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명확히 신앙을 고백했기에 이런 정말 놀라운 상급을 선물로 받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우도 직천당 사건’을 묵상할 때마다 저는 우리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온몸으로 확인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대열에 합류한 우도의 신앙을 묵상할 때마다 저는 크나큰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 마지막 순간까지 문을 열어놓고 계시는 인자하신 아버지, 그분의 사랑 앞에 감격할 뿐입니다. 행복할 뿐입니다.
적대자들에게 체포되신 예수님, 그 이후에 보여주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철저하게도 수동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셨습니다. 조금의 저항도 없이 순순히 포박당하십니다. 헤로데 앞으로, 빌라도 앞으로 그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십니다. 이제 더 이상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메시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위엄과 지혜로 가득 찬 영광의 왕으로서의 모습도 더이상 없습니다.
무기력한 메시아, 한갓 말단 군인으로부터도 무시당하는 왕인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더이상 놀라운 기적도, 가슴 뛰게 하는 치유 활동도, 감동적인 강론도 없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실망을 느낀 군중들도 떠나갑니다.
정녕 모든 것이 끝나버린 걸까요? 그러나 오늘 복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상 위에 높이높이 매달리신 예수님, 무거운 십자가를 저 밑에서도 부터 골고타 언덕 끝까지 지고 오시느라 체력도 다 고갈되신 예수님, 무수한 채찍과 못 박힘으로 인한 출혈로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예수님,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이셨지만, 그 절박하고 고통스런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당신이 행하셔야 할 마지막 사도직을 또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 사도직은 바로 회개하는 우도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사도직이었습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 가시면서도 한 인간의 구원, 그것도 가장 몹쓸 인간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시는 하느님께 그저 감사와 찬미를 드릴 뿐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휴가 중에 ‘가족 미사’를 하였습니다. 2년 전에는 ‘작은아버지 부부, 외삼촌 부부’가 함께 했는데, 이번에는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고령으로 몸이 불편하여서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새 가족이 함께하였습니다. 작년에 결혼한 조카의 아내가 가족 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가 이어져 오듯이, 저희 집안의 신앙도 6대째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역사는 혼자서 달리는 마라톤이 아니라, 역사는 함께 달리는 이어달리기라고 생각합니다. 작은아버지는 베드로 사도와 같았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던 예수님의 질문에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던 베드로 사도처럼 작은아버지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신앙’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작은아버지의 말이 있습니다. 작은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양 조씨라는 성이고, 다른 하나는 천주교라는 신앙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도 작은아버지에게 배운 것입니다.
외삼촌은 바오로 사도와 같았습니다. 유교의 가풍을 이어받은 외삼촌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누나인 어머니가 천주교 집안으로 시집와서 신앙인이 된 것은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마리아로 세례를 받았고, 외할아버지도 요셉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제야 외삼촌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외삼촌은 바오로 사도처럼 신앙 안에서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사목회에서 봉사했고, 레지오에서 봉사했습니다. 제가 외삼촌이 있는 성당에서 ‘특강’을 했을 때는 무척이나 좋아하였습니다. 늦게 신앙을 시작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본당 사제의 좋은 점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고, 본당 사제의 부족함이 있을 때는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외삼촌은 조상들을 모신 선산에서 미사하고 싶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선산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외삼촌은 조상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그리스도 왕은 어떤 분이셨는지 생각해 봅니다. 권위는 있으셨지만 권위적이지는 않으셨습니다. 힘은 있으셨지만, 그 힘을 남용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섬김을 받으실 자격이 충분하셨지만, 오히려 섬기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분은 피땀을 흘리면서까지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나병환자, 중풍 병자, 소경, 세리와 창녀들과도 함께 하셨고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권위는 겸손함에서 생겼습니다. 그분의 힘은 사랑함에서 생겼습니다. 그분은 비록 돈과 조직, 엄청난 배경은 없으셨지만, 희생과 봉사 그리고 기도의 힘으로 세상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분은 승리하셨고, 그분은 우리들의 구세주가 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분을 그리스도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명의 죄수가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한 명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율법을 많이 알았던 사람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나라의 왕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로마의 총독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지식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을까요? 밤을 새워 양들을 돌보던 목동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눈이 멀었던 소경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세관장이었던 자캐오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회개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갈망이 있는 사람,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은 우주보다 크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과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의 바다에서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배와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과 함께 지내면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도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하게 됩니다.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도 천상의 향기를 갖게 됩니다. 고통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도 목적지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너를 위한 나와 나를 위한 너>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
너를 위한 나만이
나를 위한 너를
만날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한 나만이
나를 위한 너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한 나만이
나를 위한 너를
믿을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한 나만이
나를 위한 너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한 나만이
나를 위한 너를
품을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한 나만이
나를 위한 너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한 나만이
나를 위한 너를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클레멘스 1세(Clement I)
신분 : 교황, 교부, 순교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30?-101년?
같은 이름 ; 글레멘스, 끌레멘스, 클레멘쓰, 클레멘트
성 켈수스(Celsus)와 성 클레멘스(Clemens)에 대해서는 로마(Roma)의 순교자라는 것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91년경 교황 성 아나클레투스(Anacletus, 4월 26일)를 승계해 제4대 교황이 되었으나,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의 박해 때 크림(Krym) 반도로 귀양을 갔다.
성 골룸바노(Columban)
신분 : 설립자, 수도원장, 선교사
활동지역 : 보비오(Bobbio)
활동연도 : 540-615년
같은이름 : 골롬바노, 골롬바누스, 골롬반, 골룸바누스, 골룸반, 콜롬바노, 콜롬반, 콜룸바노, 콜룸바누스, 콜룸반
아일랜드의 웨스트 렌스터(West Leinster) 태생인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 또는 골룸바노)는 그의 모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아주 어렸다고 한다. 그는 얼마동안 신넬(Sinnel)이란 수도자와 함께 언(Erne) 호수의 수백 개의 섬 중의 하나인 클루아인(Cluain) 섬에서 살다가 뱅거(Bangor)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12명의 다른 수도자와 함께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되었고(590년경), 이 선교활동이 성공적이었으므로 뤽세이유(Luxeuil)와 퐁텐(Fontaine) 지방도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전역을 선교하면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반대를 받았는데, 특히 프랑크계의 주교들로부터 극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는 성좌에 서한을 보내어 실정을 보고하는 한편, 603년에 샬롱(Chalon)에서 개최된 갈리아(Gallia) 시노드에 불참하면서 항의하였다. 또한 610년에는 부르고뉴(Bourgogne)의 국왕 테오도리쿠스 2세의 결혼을 반대함으로써 이 지역의 모든 아일랜드 수도자가 추방당하는 곤경을 겪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아리우스계 왕인 아지올드의 영접을 받고 이탈리아 선교에 착수하였다. 그는 보비오, 밀라노(Milano), 제노바(Genova) 등지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들 수도원들은 그 당시에 학문과 문화 그리고 영성의 중심지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성 콜룸바누스는 자신의 수도회 규칙, 강론집, 시 그리고 아리우스(Arius) 이단 반박문 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615년 11월 23일 자신이 발견해서 성모님께 봉헌한 보비오 수도원 부근의 한 동굴에서 생활하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보비오에 있는 성 콜룸바누스 성당의 지하에 모셔져 있다.
성녀 펠리치타(Felicity)
활동년도 : +165년
신분 : 과부, 순교자
지역 : 로마(Roma)
같은 이름 : 펠리치따스, 펠리치타스, 펠리키따스, 펠리키타스, 필리서티
성녀 펠리치타(Felicitas)는 귀족으로 세례를 받은 부인인데 남편과 사별한 뒤로는 과부로서 하느님을 섬기고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으며, 자선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은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래서 이 열심한 부인 때문에 귀족 집안이던 그녀의 집안에 있던 우상들이 모두 제거되었는데, 이것을 보고 이교도의 사제들이 그녀를 고발하였다.
그래서 그녀와 그녀의 자녀 일곱 명이 황제 앞으로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에게 희생물을 바치도록 강요당했다. 이때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위협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영이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할 것입니다.” 이에 심문관이 그럼 죄 없는 자녀들마저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녀는 “만일 그들이 신자라면 영원히 살도록 힘쓸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불을 기다려야 할 뿐입니다”고 대답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리하여 황제는 그들을 각기 다른 형벌로 죽임으로써 모두가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되었다.
보통 7형제(the Seven Brothers)로 불리며, 성녀 펠리치타의 자녀로도 주장되는 순교자들은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비탈리스(Vitalis),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펠릭스(Felix), 성 필리푸스(Philippus) 그리고 성 실바누스(Silvanus)로 알려져 있다. 7형제의 축일은 모두 7월 10일에 기념하고 있다.
복녀 마르가리타(Margaret)
활동년도 : +1464년
신분 : 과부
지역 : 사보이아(Savoia)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말가릿다
사보이아 공국의 아마데우스(Amadeus) 왕과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가리타(Margarita)는 두 자녀를 둔 홀아비인 테오도레(Theodore)란 사람과 결혼하였다. 그녀 자신에게는 자식이 없었지만 남편을 극진히 섬겼을 뿐만 아니라, 제노바(Genova)에 기근과 전염병이 극성을 부릴 때에는 자신을 온전히 잊어가면서 주민들을 간호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그러던 중 1418년에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는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Vincentius Ferrerius, 4월 5일)의 도움을 받아가며 기도생활에만 몰두하면서 25년을 살았다. 또한 그녀는 주님의 환시를 보는 도중에 질병과 중상 그리고 박해의 세 글자가 적힌 화살 세 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모두 그녀가 받을 고통을 의미했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사실로 나타났는데, 그녀는 위선자라는 고발과 동시에 중병에 걸렸으며 또 발도파 이단이라는 누명을 썼다. 그녀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운명하였다. 그녀는 1669년 교황 클레멘스 9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복자 미겔 아우구스티누스 프로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과달루페 멕시코
활동연도 : 1925 - 1927
같은이름 : 미겔, 미카엘, 오스틴, 아오스팅, 프로
미겔 아우구스티누스 프로는 1891년 멕시코의 과달루페 데 사카테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1911년에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조국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멕시코가 아닌 벨기에와 스페인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926년 사제서품을 받고 멕시코로 돌아왔지만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비밀리에 사목활동을 하였습니다.
악의를 품은 이의 무고(誣告)로 인하여 1927년 11월 23일 아침, 프로 신부는 전 국가원수 살해기도 미수 및 반정부 종교지도자, 불법공동체 운영등의 죄목으로 재판도 없이 바로 총살형을 당하게 된다.
사형 집행장에서 소총수들 앞에 선 프로 신부는 군인들을 행해 강복을 준 후, 잠시 무릎을 꿇고 짧게 기도를 했다.
그는 눈가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한 손엔 십자가와 다른 손엔 묵주를 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모습처럼 양팔을 벌리고 서서 큰 소리로 "당신들에게 주님의 자비가 있기를!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라고 부르짖고 "주님, 저는 무고하오나 진정으로 저들을 용서하겠습니다" 라고 외쳤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된 미겔 아우구스티누스 프로는 타고난 밝은 기질과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사목활동에 헌신했던 모습을 통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