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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터사이클 역사에 등장한 희대의 천재

작성자speedholic|작성시간16.05.29|조회수1,254 목록 댓글 1




Saga는 중세의 모험담을 지칭하는 말이다. 도전, 열정 그리고 페어 플레이의 기사도 정신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운명과 거대한 힘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꿈의 일부가 되었고 이 도전과 불굴의 정신들은 현대까지 이어져서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에도 많은 전설들이 탄생했다. 고든 다임러가 세계 최초의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낸 이후로 레이스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많은 모터사이클들이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요시무라의 도전은 현재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이며 NHK에서 방송된 故요시무라의 이야기는 많은 모터사이클 매니아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요시무라의 전설은 그가 맨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이야기, 혼다에 대한 도전 그리고 레이스에 대한 열정으로 전설이 될 수 있었다. 그의 도전은 개미가 사자를 이긴 격이었지만 이보다 더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90년도에 일어났다. 한 개인이 자신의 개러지에서 만들어낸 자작 모터사이클로 혼다나 두카티같은 레이스의 종주들을 물리친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진 것이다.

1992년, 미국의 역사적인 데이토나 레이스에 슈퍼 트윈 클래스 경기가 열렸다. 경기의 우승은 놀랍게도 단 여덟 명의 직원들과 창립자의 가족, 친구들로 구성된 브리튼 모터사이클 컴패니의 브리튼 V1000이었다. 1990년대의 2기통 엔진 모터사이클 레이스는 두카티가 851부터 미국을 주름잡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후 이 모터사이클은 1994년에 FIM 공인 1,000cc에서 최고 기록을 갱신하게 된다. 당시 V1000의 기록은 302.705km/h로 같은 배기량의 다른 모터사이클들 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난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모터사이클 매니아들과 전문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사람이 거대한 회사들을 상대로 승부를 벌였고 이것은 일본과 이탈리아의 회사들이 주름잡고 있던 모터사이클 레이스 시장의 일대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을 이루어낸 사람의 이름은 존 브리튼이었다.

레이스에 대한 꿈

브리튼은 1950년 8월 1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철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손재주를 가졌던 그는 12살때 이미 고 카트의 엔진을 직접 사서 만들 정도로 레이스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재능을 보였었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서 몰드와 패턴 디자인, 금속 스피닝등을 수업하고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서 설계와 관련된 일들을 하게 된다. 이후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와 수공업 금속 장식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아가던 브리튼은 모델 크리스틴 프라이스과 결혼을 하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브리튼은 디자인, 설계 등의 일을 하면서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최대 관심사인 엔지니어일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20대 말에 지역 레이스 대회에서 경기를 하곤 했던 그는 자신의 두카티 바이크의 섀시를 직접 설계하기도 했다. 브리튼의 이런 모습은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해서 혼다 엔진에 직접 섀시를 설계한 비모타의 창립 이야기나 현재 MotoGP 대다수의 센서를 공급하는 2D Systems가 원래는 대학 시절 자신의 레이스 바이크를 측정하기 위한 센서를 개발하면서 일을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그와 같은 레이싱에 대한 꿈을 놓치 않고 있던 브리튼은 자신이 그동안 디자인과 설계 일로 벌어들인 돈으로 평생의 꿈이었던 레이스 바이크 개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규 모터사이클 엔지니어나 차량 엔지니어 수업을 들은적이 없었던 브리튼은 처음부터 기존의 모터사이클과 비슷한 스타일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규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런 점이 이후 브리튼 V1000의 디자인에 큰 힘을 주게 되었고, 다른 기성 바이크들보다 돋보이는 장점이 된다.

세상을 놀라게 한 디자인

여러 번의 시행 착오와 테스트 라이딩을 통해서 마침내 1990년에 최초의 브리튼 V1000이 탄생된다. 평소 포뮬러 원의 브루스 맥라렌(포뮬러 원 맥라렌팀의 창립자)의 팬이었던 브리튼은 모터사이클에 포뮬러 원의 기술을 도입한다.



완전히 손으로 제작된 카본 화이버 바디는 당시 포뮬러 원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아가던 에어로 다이나믹들을 벤치마킹 하여 만들어졌다. 다운 포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에어 덕트가 바이크의 페어링 안쪽 아래 부분으로 지나가게 만들었고, 시트 아래 부분에 라디에이터를 위치하여 모터사이클의 전방에서 유입되는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도 페어링을 통과해서 후방의 라디에이터에 전달 되어서 효과적으로 엔진의 열을 식히도록 설계가 되었다.

프레임에서도 혁신적인 방법들이 도입된다. 트윈 엔진의 단점인 고속에서의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서 최대한 무게 중심을 낮추게 되는데, 엔진의 오일 부분과 기어 박스가 아래 쪽에 위치하고 스윙암도 현재 야마하 GP바이크인 YZR-M1과 같은 역트러스 스윙암으로 최대한 무게를 아래로 두게 만든다.



프레임은 엔진과 섀시가 여러 방향으로 연결 되도록 피봇들이 자리잡고 있다. 2기통 엔진의 뒤쪽 실린더가 시트 레일로 연장된 섀시와 연결되고, 스윙암도 엔진 뒤쪽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프론트, 메인 그리고 리어쪽으로 세 개의 콤포넌트들이 나뉘어지게 만들어져서 쉬운 점검과 수리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엔진의 메인 섀시 부분은 시트 레일부터 프론트까지가 길게 이어진 형태지만 프론트 댐퍼가 스티어링 헤드 아래 부분에 있어서 유연성 확보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배기관은 엔진 옆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모터사이클의 무게를 최대한으로 낮추기 위해서 캠 부위를 중심으로 위치한 프레임과의 피봇 점들을 건드리지 않아야 했고, 그러면서도 익죠스트를 뒤쪽으로 뻗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엔진을 둘러싸는 듯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했다. 또한, V1000의 2기통 엔진은 12,400rpm에서 최대 165마력을 내는 강력한 파워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출력 곡선으로 카운터 밸런서가 필요가 없었다. 이 덕분에 가벼운 무게 대비 파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속 기록과 각종 레이스 기록들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부분은 레이스에서 시대를 앞서간 프론트 부위의 설계다. 현재 BMW 바이크에서도 사용되는 노르만 호색이 개발한 패럴레버 위시본을 재설계하여 브리튼 V1000에 사용한다. 스티어링 댐퍼가 우측에 위치하고, 리어 스윙암쪽의 싱글 서스펜션같은 구조가 프론트 스티어링 헤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원래 엔진 앞쪽에 자리하는 라디에이터의 위치에 두 번째 댐퍼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위쪽 댐퍼와 아래쪽 댐퍼가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이런 시도는 두 개의 포크로 이루어진 종래의 레이스 서스펜션의 상식을 뒤집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에어로다이나믹을 중시한 디자인, 프레임과 서스펜션의 유기적인 결합, 질량 집중화 그리고 짧은 휠베이스등의 시도들은 당시 WGP(현재의 MotoGP) 바이크들에서도 일부나마 시도되던 기술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MotoGP 바이크들이 노트북을 통해서 인젝션이나 기타 전자 장비들을 손보듯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브리튼 V1000은 1990년도에 모터사이클에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통한 인젝션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런 기술적인 앞서감이 이후의 혼다와 두카티의 레이스 바이크들에 영향을 준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영웅





"나는 뛰어난 레이서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바이올린에 비유한다면 나는 마에스트로는 아니지만 그 스스로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찬사와 감탄에 위와 같이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위대한 업적은 존 브리튼의 사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1995년 피부에 생긴 흑생종의 피부암으로 45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전 세계의 모터사이클 팬들과 엔지니어들이 그의 죽음을 기리고 슬퍼했다. 그리고 그가 죽고 난 뒤에도 가족들과 회사의 직원들은 계속해서 브리튼 모터사이클 회사를 이어가고 미국 데이토나에서 열린 트윈 엔진 챔피언십과 뉴질랜드의 각종 레이스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현재의 브리튼 V1000은 소규모 수제 제작으로 단 10대의 모터사이클만이 세상에 남아있다.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세 대는 뉴질랜드에, 한 대는 이탈리아에, 나머지는 네덜란드와 미국의 박물관등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 판매 가격은 10만 달러에 달했고 지금은 그 희소성과 역사적인 가치 때문에 세 배 이상으로 뛰어있는 상태다. 지금의 브리튼 V1000은 박물관의 전시물로 남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존 브리튼과 그의 브리튼 V1000을 보면서 한 남자의 도전과 그 꿈에 찬사를 보낸다. 

존 브리튼,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꿈은 이룰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는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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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에서 뽑은 모터사이클 10대중 6위에 랭크됨... 그것도 1인 설계차는 처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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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이종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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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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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루키닌자 | 작성시간 16.05.30 천재중에 천재네요.
    왜 처음보나 했는데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낫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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