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멜을 모델로 한 마스터 박스사 피규어 키트, 실제 전선에 장병들의 살아 숨쉬는
보고를 경청했다는 그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구성입니다.)
롬멜은 1941년 1월 리비아에 부임한 후에 이탈리아군의 부족한 무기와 보급 물자 상황에 자신이 끌고간 독일군측 역시 보급 상황은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영국군보다 부족한 보급 부족이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역발상으로 가짜 전차를 만들고 허풍을 떠는 퍼레이드를 실시하여 잠입해있던 영국군 스파이들이 영국군측에 독일-이태리군의 보급 상황을 과대평가하여 보고하도록 하였고, 당시 그리스 전선으로 병력을 지원함에 따라 급격히 병력이 약화되었던 영국군은 3월말 롬멜이 뿌연 먼지를 자욱하게 만들며 진짜 전차 뿐만 아니라 가짜 전차까지 동원하여 공격해오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급히 후퇴를 하게 됩니다.(영국군은 롬멜이 오기 전에 이태리군을 상대로 10주만에 800km를 전진해놓고, 정작 롬멜이 공격을 시작한 3월말 불과 1주일만에 800km를 후퇴할만큼 허겁지겁 도망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영국군은 후퇴하는 중에 3명의 장군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치욕도 겪게 됩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롬멜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가짜 전차" 일반 차량에 나무판자로 만들었는데
공중에서 보면 그럴 듯한 2호전차쯤으로 보였다는........)
롬멜이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지휘를 하는 기간 대부분 독일 본국에서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상대와 힘겨운 전쟁을 지속하느라 북아프리카에는 최소한의 보급 물량을 지원하는 정도였고, 그나마 1942년말부터는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그런 탓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무기와 보급품을 가지고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마치 부족한 밑천과 별 볼일 없는 패를 들고 포커 게임을 하고 있는 도박사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풍족한 밑천을 가지고, 게다가 매우 확실한 패를 쥐고 있는 듯 믿게 만들어서 지레 겁먹고 죽게 만드는 전술을 구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블러핑"도 상대방이 마냥 속아 넘어가지 않게 되므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신출귀몰의 전략으로 최소의 무기와 물자를 가지고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는 그것을 독창적인 전략 뿐만 아니라 아군과 적군 모두가 감동하고, 존경해마지 않던 리더쉽으로 가능케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그의 전술에 참담한 패배를 거듭하던 영국군에게 롬멜은 "사막의 여우"라고 부를 만큼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1942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롬멜의 모습, 본국에서의 보급 부족의 심화와 영국군의
강력한 공세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롬멜은 이때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
합니다.)
토부룩 요새에 고립된 영국군 일부가 북쪽 지중해로부터 꾸준히 보급을 받으면서 독일-이태리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영국군 본진은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서 반격을 준비합니다. 이집트 주둔 영국군 사령관 아치볼드 웨이벌 장군은 그동안 자신들이 상대해온 이태리군의 멍청한 지휘관들과는 딴판으로 롬멜이 공격을 시작한지 한달도 안되어서 그동안 자신들이 애써 점령한 모든 리비아 지역을 도로 빼앗아버리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국경 지역에 토브룩 요새에서는 영국군 수비대가 독일-이태리군에게 포위되어 항전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과대평가했던 롬멜의 전차부대들은 자신들에 비해서 턱없이 열세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나서 더욱 불같이 화가 나게 됩니다.
(아치볼드 웨이벌 장군(이집트 주둔 영국군 사령관-우)은 1941년 롬멜에게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사막의 여우"의 전설을 창조하는 1등공신이 됩니다. 그책임을 지고 해임된 후에 후임자(클로드
오킨택 장군-좌)와 함께 찍힌 사진입니다.)
전차부대만 강력하게 앞장 세우면 롬멜을 단숨에 무찌르고 토브룩에 포위된 아군을 구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점령했던 이태리령 리비아에서 독일-이태리 주둔군들을 내쫓을 수 있을 것이라 속단하게 됩니다. 4월말 이집트로 후퇴하여 돌아온 후 불과 20일도 안되는 기간 동안 무기와 보급 물자를 급히 보총한 영국군은 성급한 마음으로 5월 14일 다시 한번 리비아 국경을 넘어 진격합니다. 마틸다 전차뿐만 아니라 후속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크루세이더 전차와 발렌타인 전차까지 보급 받아서 영국군은 자신들이 롬멜이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자만하게 됩니다.
(1/48 사이즈로 출시된 영국군 크루세이더 전차 키트 - 마틸다 전차보다 후에 개발되었으면서도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졸작이었고, 1942년 미국의 셔먼 전차가 본격적으로 영국군에게 공급되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뒷전으로 물러난 전차들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국이 나름 신형 전차라고 보급받은 크루세이더 전차는 88mm 대공포를 대전차포로 사용하는 롬멜 군단의 전술 앞에서는 그 이전 마틸다 전차나 마찬가지로 별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88mm 대전차포는 포병들이 다닥 다닥 붙어서 조준하고 발사하므로 전차 차체 안에 들어가있는 기갑병들처럼 자신들이 타고 있는 전차가 파괴되면 그안에서 꼼짝없이 숯덩어리가 되어버리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엄폐물로 보호 받고 있는 88mm 대전차포 진지는 영국군의 40mm 주포의 철갑탄 (유탄이 아닌) 으로 무력화 시킬 수 없는 상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틸다나 크루세이더 전차 모두 자신들을 공격하는 적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서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철갑탄 (안에 화약이 없어서 폭발이 안되는 그냥 쇳덩어리 포탄)만 있었지 폭발하면 근방에 포병들을 살상할 수 있는 유탄은 개발이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대전차포로 사용 중인 독일 88mm 대공포, 바퀴가 달려서 하프 트럭으로
이동도 가능하였고, 피탄 면적이 좁아서 전차에 비해서 영국군 전차가 발사하는 철갑탄으로는
제대로 명중이 쉽지 않은 상대였습니다.)
게다가 크루세이더 전차는 잦은 엔진 고장과 부실한 방어력, 그리고 40mm 주포의 빈약한 화력으로 마틸다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것이 없는 애물단지였습니다.
또 하나의 신형 전차 발렌타인은 보병전차로 분류되었던 A9 전차에 장갑을 추가하여 순항전차 용도로 개량한 전차입니다. 여기서 2차대전 영국의 전차 운용 체계는
(발렌타인 전차)
-"보병전차" : 보병과 함께 작전에 투입해서 작전을 지원하는 역활, 주로 경전차 수준의 얇은 장갑과 약한 화력으로 보병의 화력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의 전차입니다.
-"순항전차" : 보병 작전 체계와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적 전차나 방어선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전차. 당연히 보병전차보다 강력한 장갑과 화력의 주포가 요구됩니다. 마틸다나 크루세이더, 그리고 좀 부족하긴 해도 발렌타인도 순항전차에 포함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이 전차의 개조 작업이 1939년 발렌타인 데이에 마쳤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내세울 것은 마틸다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와 선회 능력, 크루세이더보다 덜 고장이 나는 엔진이었지만 독일 3호 전차에게는 한 주먹감도 못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실제 독일 3호 전차나 4호 전차가 비록 마틸다에게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다른 영국 전차들에게는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쪽수"로 밀어붙힌 영국군은 3일 동안은 일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진격해나갔지만 롬멜이 배치한 88mm 대공포 대대와 마주친 선봉 전차 대대가 순식간에 대공포 사격으로 그자리에서 불덩어리가 되어버리자 전세는 바로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력한 반격으로 밀어붙힌 롬멜 군단에게 패퇴한 영국군은 5월 27일 다시 한번 이집트로 줄행랑을 치는 치욕을 겪게 됩니다.
롬멜을 만나서 불과 3개월도 안되는 기간동안 두번씩 패배를 겪게 된 영국군 사령관 웨이벌 장군은 영국인 특유의 자존심이 롬멜에 의해서 길바닥에 내팽겨쳐진 신세가 되었고 다분히 이성을 잃은 성급함을 보이게 됩니다. 즉 그 이전 반격에 비해서 규모는 훨씬 더 커졌지만 여전히 88mm 대공포 공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전차 부대를 앞세워 "배틀액스"라는 작전명이 부여된 공세를 6월 14일(바로 전 공격을 실패하고 이집트로 쫓겨온지 불과 2주일 남짓) 시작합니다. 결국 88mm 대공포 1개 대대가 엄청난 숫자의 영국군 전차들을 차분하게 한대씩 한대씩 불덩어리로 만들면서 보다 규모가 커진 전차 부대 덕분에 더 많은 숫자의 전차들을 희생시키고는 후퇴하게 됩니다.
(88mm 대공포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입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 부임한지 불과 반년도 안되어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영국군의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롬멜은 그 명성을 하루가 다르게 높혀가게 됩니다. 또한 88mm 대공포의 위력은 수많은 영국군의 전차들을 고철덩어리로 만들면서 그 당시 어떤 전차보다도 효율적으로 1대당 엄청 많은 전차들을 파괴한 대전차 무기로써 평가받게 됩니다.
반면에 이렇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귀한 전차들만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린 무능한 웨이벌 장군은 그 책임을 지고 해임되게 되고 후임자로 클로드 오킨텍 장군이 부임하게 됩니다. 이렇게 황당한 패배를 거듭하는 와중에 영국군은 단순히 전차부대를 앞세운 막무가내의 돌격 전략은 똑같은 패배만 반복할 뿐이고 지상에 대공포 대대를 제압하려면 전투기의 공습이 효과적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본국으로부터 영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전투기 스핏파이어는 보급받지 못했지만 그 다음 수준으로 평가하던 허리케인 전투기와 함께 미국제 P40 워호크 전투기가 공급되게 됩니다. (추축군이나 연합군이나 모두 유럽대륙보다는 좀 떨어지는 무기를 공급받고 전투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양쪽 모두 북아프리카 전역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전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탓입니다.)
(허리케인 전투기 작례, 비록 스핏파이어보다 떨어지는 성능이었지만,
1940년 가을부터 시작한 영국 본토 공중전에서 독일공군의 공격에서
영국을 구한 주력 전투기였습니다.)
("미제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하듯
P40 워호크 전투기는 성능에 있어서 그리 내세울만 하지
못한 전투기였습니다. P40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전에 연합국들에게 많은 수 지원 명목으로 공급했는데
절대적으로 전투기 수가 부족했던 영국 공군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한편 중국에서 미국 용병 비행사들
이 플라잉 타이거라는 용병 전투 비행부대를 조직해서 장개석
군대를 도와서 일본 전투기들과 대결을 벌이기도 합니다.)
롬멜 쪽에서는 연전연승을 즐길 수 없는 비보가 본국에서 들려왔는데 바로 1941년 6월 독소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나마 소련과 전면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비록 본국이 풍족하지 못한 사정으로 최소의 보급만 가능했고, 그나마도 길고 긴 보급선에 수시로 출몰하여 괴롭히는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 인해서 어려웠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버티어 가면서 연이은 승전보를 히틀러에게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소전쟁이 시작되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으로의 보급은 더욱 더 감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롬멜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에게 불리해질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41년 독소전쟁의 시작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대전차포로 사격 중인 소련 포병 부대)
1941년 6월 배틀액스 작전 이후로는 추축군이나 영국군이나 전면전보다 현재 방어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잠시 소강 상태를 갖게 되는데 롬멜은 이듬해인 1942년 1월 영국군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속한 기습을 감행하게 됩니다. 부족한 무기와 보급 물자를 가지고 단판 승부로 영국군을 이집트에서 격퇴하고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전쟁을 마감하자는 의도였고, 적의 지휘관들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전략/전술을 구사하면서 6월에 토브룩을 다시 점령하고 승기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그것이 롬멜의 승리의 끝이었습니다.
(1942년 토브룩 전투)
문제는 또다시 보급이었는데 영국 공군의 보급선을 효과적으로 강타하는 공습들이 반복되면서 롬멜 측의 보급선은 끊어지게 되고 더이상의 진격은 불가능하게 되버립니다. 또한 새로 부임한 영국군 사령관 오킨텍 장군은 이제 북아프리카 전역에 최고의 격전지가 될 "앨 알라메인" 지역에서 완강한 항전을 하면서 버티게 됩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앨 알라메인 전투는
롬멜의 추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앨 알라메인" 전투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되었군요........
한가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이태리 혼합의 롬멜 군단을 상대한 이집트 주둔 영국군은 영국 본국 부대에 영연방 국가들인 호주나 캐나다 부대들도 함께 편성되어 참전합니다. 또 미군은 진주만 공격(1941년 12월) 발발 이전까지는 참전을 안했으므로 연합군이라고 해도 미군은 아직 포함되지 않은 시절입니다.
(1941년 북아프리카 전역에 참전한 호주 육군 복장 - 왼쪽에 보면 원주민까지
총을 들려서 데려왔었는데 자기들은 군화 챙겨 신고 원주민은 맨발이네요.....)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따블오남편(김준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2.10 저는 예전에 한번 시도했다가 궤도 조립 실패해서 봉인해버린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T T
-
작성자binidad(정창효) 작성시간 12.12.09 흠 이제 88미리 포가 왜그리 유명하며 마틸다도 유명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틸다 마구 땡긴다는.. 글이 너무 재밌어서
식당 바쁘신게(?) 아쉬 울정도^^ 준만형님 ,돈도 많이버시고 내년에도 복터지세요
몽고메리 침 꼴딱삼키면서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따블오남편(김준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2.10 감사합니다!
-
작성자동호아빠(이홍갑) 작성시간 12.12.15 글을 읽을때마다....... 2차대전물에 관심이........ 역사에는 만약이라는것이 없지만....... 이탈리아가 제역활(?)해주면서 동부전선의 확전을 막았다고 하면....
어떤결과가 왔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따블오남편(김준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2.15 이태리가 제역활을 했으면 유럽 공용어가 독일어가 되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