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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현 대구빈씨대종회의 족보(기해보) 재편찬에 대한 깨어있는 종친님들의 현집행부 성토의 글

작성자빈씨영광|작성시간21.09.18|조회수744 목록 댓글 3

 

#대구빈씨대종회 #빈도군 #빈대윤 #빈지태 #빈남준 #빈재규 #빈재인 #빈재황 #빈응식 #빈대윤 

수신: 대구빈씨대종회 빈도군회, 빈대윤 부회장, 빈지태 사무처장.

발신: 대구빈씨 종친

Re: 현 대구빈씨대종회의 족보(기해보) 재편찬에 대한 깨어있는 종친님들의 현집행부 성토의 글

<참조1). 2021년 9월 현 대구빈씨대종회의 독단적인 족보편찬 공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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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2). 현 대구빈씨대종회의 시조비석 훼손과 중시조 비석 바꿔치기 현장 2021년2월14일>

참 어려운 현실 입니다  

과거에 잘못된 리더가 집단을 어떻게 어떤 분란  요소를 가져왔는지 타산지석을 삼아야 했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네요. 지금 또다시 그런 우를 범하려 하고 있읍니다. 기해보 기준의 족보 증보판 발행을 추진하고 있으니 ᆢ

자신한테 안맞는 옷은 벗어 던지고 본래의 석공(빈도군)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 입니다

여기에 완장에 취해 부하뇌동하는 사람도 있고, 남의 일인냥  모른체 침묵하고; 참  문중이 걱정  됩니다.

<2021년9월8일;남해지역 빈병천 종친님의 글>
남해계열의 역사를 말하다

나는 남해본가의 25세손(남해가승보 기준)이다

중시조님을 모신 선산에 소재한 심천리 마을에서 태어나 엄마 등에 업혀서 시제에 참여하였으며 65년을 살면서 한두해 빼곤 거의 참석하였다

매년 선산 벌초는 기본이요 시제에 참석하는 서부경남,전남일부 모든 어른분들을 가까이서 뫼실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60여년을 눈으로 본 모습과 그 분들의 전하는 말씀에 50년을 더하여 남해계열 100여년의 역사가 아직까지는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어릴 때 대한민국에 빈씨는 우리동네(전체200여세대) 세집밖에 없는줄 알았다

동네 정씨,김씨는 시제를 지내면 몇겹으로 줄을서서 제사를 지내는데 우리는 달랑 아버지 형제와 큰집이 전부였다

넓디넓은 뒤뻔디에(평평한 뒷동산 방언) 어려운 큰집 형편에 제물은 초라하나마 매년 정성으로 시제를 지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명절이 오면 새옷을 장만하여 좋았으나 당일,다음날 조상묘를 찾아 성묘와 먼곳은 벌초를 다니는 힘든 여정에 명절이 반갑지 만은 않은 기억이다. 뒤뻔디(선산),진랑골,공동묘지,물건리,금송리 순으로 비포장도로 버스를 내려 산을 넘는 산길 10여km를 초등학생 발걸음으로 걸어가면 명당을 찾아 묘를 쓴 조상님이 원망스러웠다. 지금도 이런 순례는 자가용으로 벌초와 성묘를 지낸후 묘소옆 독일마을에서 동생들과 독일맥주 한잔으로 달래며 60여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여수에 계신 일가 분들이 처음으로 시제에 참여하였다. 초등학생 시절에 여수에 계신 일가분들이 찰떡을 광주리째 하여 짊어지고 중시조님 시제를 같이 지내고 본인들 시제 지낼 곳이 또 있어서 거기를 가야한다고 가곤 하였는데 몇 년간 다니다가 소식이 없었다. 논 농사를 크게 짓는다며 경상도와는 달리 찰떡의 크기가 손바닥만 하게 컸어며 성함과 따로 시제를 지내는곳을 들었으나 어릴때라 지금은 기억이 아물거린다. 중학생 때에는 군내에 계시는 지역 일가분 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였다(지족,양아,차면)

고등학생때는 서부경남 일원의 일가들이 참여를 시작하였다(진주,하동,사천,고성)

이후 십여년이 흐른후 지역종회가 발의되어 시제도 지역순번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500여평이 넘는 선산의 벌초는 매년 추석 2주전에 서울,부산,대구 등 남해본가의 후손들이 전국에서 모여 직접 하고 있다.대종회 회장,부회장 모두 남해지역(지족,양아) 분들이다.나도 남해본가의 후손으로서 같은 남해지역의 후손이 대종회를 잘못이끌어 가는것에 책임을 느끼기에 내 나름의 역사정립에 기록을 남기고 싶다. 항상 그렇듯 종손집안에 비해 지손집안은 역사의 자료가 적고 집안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태생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사천에서 기홍,남을 조선이 만든 기해보도 근간은 남해가승보와 무주세보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지손 가계의 사천지역 짧은 가첩으로 이어 붙였다.다만 남을 조선의 사천계열에 대한 족보의 우월성을 향한 욕심이 무리한 편집을 하므로서 빈씨 가계에 심한 변형을 가져와 원본과 전혀 다른 창조적인 족보가 탄생한 것이다

사천집안이 입남종가로 등장하며 무주종가에 이어 시중공파 큰집으로, 아명이 금동이인 동금조 대신 사원조를 절충장군으로 치장하여 입남 중시조로 편집하였다. 또한 무주 대신 의령을 시중공파 종가로 편집.

이러한 변형을 위하여 기존 족보에 있는 선조들을 무차별 삭제, 가짜끼워넣기, 조상순서바꾸기 등 아주 창의적 족보편집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기홍조선은 일제시대 곤양면장을 역임하였으며 남을조선은 장조카로서 기해보 편찬에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도유사 기홍, 상재 남을, 교정 기선)

당시 남해계열의 주요 인물로는 윤옥(고성), 영호(진주) 조선 등이 있었으나 모두가 선비형의 인물들로 기홍,남을 조선의 추진에 제동을 걸지 않으셨다

차후 기해보의 내용을 확인한 의령의 무용조선을 비롯한 지역 종친들이 “무신 족보가 이런 족보가 있냐”고 거세게 항의하므로서 80년 고성회의가 개최되었고 남을 조선이 수정을 수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빈씨 분란의 모든 문제는 남을조선의 일탈적이고 무모하리만큼 비상식적인 기존 족보의 틀을 벗어남을 넘어 일가의 역사를 개인의 주관으로 재단하여 창조주적 사고에서 기해보의 탄생으로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일개 개인의 종가를 향한 욕심 때문에 비틀어진 족보를 빈씨문중의 공식족보로 인정한다면 어떻게 올바른 역사를 주장할수 있으며 대외적인 족보의 정통성을 내세울수 있겠는가?

족보란 가계의 역사로서 허와 실이 있게 마련이지만 여러 종손 집안에서 대대로 구전과 기록으로 내려온 가승을 무시하고 지손 가지의 개인욕심이 가득한 기해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일을 현 집행부가 추진하려는 것은 문중에 전혀 도움이 되는 판별력을 지니지 못한 회장,부회장의 능력 때문 일 것이다.

능력이 없는 현집행부는 이문제를 차기 집행부에 넘기고 조용히 임기를 마치기를 바란다。

<2021년9월8일;서울지역 빈영만 종친님의 글>


빈씨 문중 (남해계열)역사에 대하여 살아오신 증인으로써 진언에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현집행부가 총의을 이루지 못하고 무리하게 기해보를 기틀로 족보 수보를 강행함에 깊은 우려와 후일이 염려됩니다. 잘못된 것은 언젠가는

바로 정립되여 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종친께서도 사료깊게 생각하시어 집행부의 성급한 결정으로 그릇된 족보관이 세워지지않도록 많은 의견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

 

<2021년9월5일: 서울.고성지역 빈성실 종친 글>

참으로 한심하고 우리  대구빈씨 앞날이 걱정됩니다.  뜻이 있으신 분들은 침묵하지  마시고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되시면  그 의견 또한  카톡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올바르게 우리 빈씨  씨족사를 바로  세워야합니다. 대종회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기해보대로 족보를 만든다) 라는 것은 엉터리입니다. 조상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런 족보는 의미 없습니다.  그토록 올바른 족보를 만들자고 호소겸 증거를 내세우며 주장했으나 대종회는 충언을 들은체 만체  한마디 반대 질문없이 옳은 주장하는 종친을 자기들 뜻에 맞지 않다고 두사람을 제명까지 하면서, 밀어부치고 있지만 반드시 훗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우둔한 행동이 아닐수 없습니다.  기해보를 직접  만드신 분이 그 기해보가 잘못 되었다고 인정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리고 그 증거를 발표하였음에도, 이에대한 한마디 반론없이 그냥 밀어부치는 것은 이해가 안되는 수준을 넘어 우둔한 행동으로 생각 됩니다.

이제는 사천  종친들께서는 마음을 정리하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대 어르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습니다. 진심입니다.

 

 

 

 

 

<2021년9월6일 대종회밴드에 올라온 경남의령지역 빈용운 종친님의 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족보를 어떤 몇사람의 주관대로 편찬한다는 것이 말이 안됨니다

대종중의 의견을 모아

족보학자의 고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진행 해 가야 옳은 일입니다

웃대의 대사에 부정하고 순전히 주관적이라면 동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소하는 인구와 대구빈씨의 숫자또한 감소해 가는 마당에 갈라진 족보는 창피한 일이라 일가외는 입도벙긋 못하겠네요~

<빈용운 종친께서는 경남 의령지역에서, 1990년대부터 집안대소사에 많은 참여를 하고 계십니다.>

 

 

 

 

 

 

 

 

 

<2021년9월12 빈병천 종친님의 글>

#대구빈씨대종회 #대종회 #대구빈씨 

현대사 고비마다 우리에게 깊은 기억을 남긴 완장은 힘있다고 으스댄 자들의 완장이었다.

정치적, 이념적 대립 속에서 '내 편' '네 편'이 갈라질 때마다 완장 찬 무리들이 등장했다. 6.25때 인민군 점령지마다 설치던 머슴, 소작인들은 붉은 완장을 찼고, . 1961년 5.16 쿠테타 때 서울에 진주한 군인들은 '혁명군'이라고 적힌 완장을 찼다(조선일보1961년5월19일자).

윤흥길은 소설 '완장'에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처럼, 완장이란 실력자의 것이 아니라 실력자들이 부하들에게 채워 주는 것이었다. 

돌쪼아 대던 사람(빈도군)도, 시제에 참석치도 않던 사람도 완장을 차니 완장을 채워준 사람에게 보은을 할려는 의리는 있는 것 같다

깊은 혜안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종친들보다 더 정직하고 공정할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완장을 찼으면 최소한 노력 정도는 해야 하고, 아무리 못해도 일반 종친보다 못한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경지는 꿈도 못 꿀 것이니, 그저 남에게 댓던 잣대를 자신에게도 똑 같이 대라는 것이다. 그 정도는 완장 찬 자의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차라리 정도를 걷지 못할바에야 정도를 벗어난 하찮은 의리에 연연하지말고 자신의 무게에 힘겹고 버거운 완장을 벗고 사는게 얼마남지 않은 생을 행복하게 사는것이니....(잠수타다가 도망간 자에 드리는 글) <2021년9월12일 빈병천 종친님의 글>

 

 

#대구빈씨대종회

<2021년 9월18일 빈병천 종친님의 글>

대종회 결정에 따라 “기해보 족보 증보판”을 만들겠다고 공식적으로 종친들에게 통보하였다

그동안 수삼년 이상 대종회 개최가 없었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갑자기 대종회 결정이라니 우매한 종친들은 내용을 알고 싶소이다

대한민국 국회도 회기가 있듯이 남은 예산은 반납후 다음 년도에 국회의 예결을 거쳐 재인준을 받아 다음 회기에 사용하거늘 몇 년전 거수기로 증삼살인을 저지른 대종회의 의결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싶소

 

공식 지역별 종친회도 아닌 지역친목모임 술자리에 대종회 안건을 상정,결정하여 대종회를 사칭하는 것은 전국에 계신 종친을 무시,호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나 계시오

가칭 “부산지역 빈씨 친목모임”

주요 참석자

  재규(사망),재인(사천;빈남을 제2대 대종회회장의 자)

  대윤(부회장),대인(대윤동생,부산은행 전행장)

  도균(대종회장), 남준(전총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닐려고 하는 현.대구빈씨대종회 회장단은 빈우광 시조의 시조비석까지 홰손하고, 중시조의 비석을 바꿔치기 하였다. 이제는 기해보(1958년)를 편찬한 장본인 빈남을 제2대 대종회회장이 1980년 5월4일 전체 대구빈씨대종회 회의에서 기해보의 발못을 인정하고 수정을 확인하는 친필 회의록(첨부파일2.참조)

까지 무시하면서 기해보 위주의 족보편찬을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깨어있는 대구빈씨 종친님들은 이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집스럽게 족보를 편찬하료고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 입니다. >>

#대구빈씨대종회 #빈도군 #빈대윤 #빈지태 #빈남준 #빈재규 #빈재인 #빈재황 #빈응식 #빈대윤 ; 기해보 재추진 인사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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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빈씨영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9.18 <2021년9월6일 대종회밴드에 올라온 경남의령지역 빈용운 종친님의 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족보를 어떤 몇사람의 주관대로 편찬한다는 것이 말이 안됨니다
    대종중의 의견을 모아
    족보학자의 고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진행 해 가야 옳은 일입니다
    웃대의 대사에 부정하고 순전히 주관적이라면 동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작성자빈씨영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9.18 <2021년9월8일;서울지역 빈영만 종친님의 글>

    빈씨 문중 (남해계열)역사에 대하여 살아오신 증인으로써 진언에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현집행부가 총의을 이루지 못하고 무리하게 기해보를 기틀로 족보 수보를 강행함에 깊은 우려와 후일이 염려됩니다. 잘못된 것은 언젠가는
    바로 정립되여 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종친께서도 사료깊게 생각하시어 집행부의 성급한 결정으로 그릇된 족보관이 세워지지않도록 많은 의견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
  • 작성자학산 | 작성시간 22.03.20 <빈병천님의 글을 읽고>
    족보논란의 첫 발단이 사천계열을 남해지역에 끼워 넣으면서 남해지역의 종가로 만들기 위해 남해가승보와 무주가승보를 심하게 조작하여 창작성 족보가 탄생한 것이 기해보이다.
    기해보는 기존 족보에 있는 선조님들을 무차별적으로 삭제하고, 가짜조상을 중간중간 끼워넣고, 선대와 후대 조상님들의 순서도 뒤죽박죽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기해보의 실체인 것이다. 빈병천님의 글을 읽어보고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해지역 종가의 후예로써 정확하게 분석하고 지극히 올바른 지적을 하신 용기에 대해 우리 빈씨 문중의 자랑으로 생각한다. 저의 부친(빈일만 옹 93세)께서도 빈병천님의 글을 읽어 보시고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병천님의 부친과 조부님께서도 우리 문중을 위해 훌륭한 업적을 남겨 놓으셨다고 항상 말씀 하신다. 문중 종친 여러분! 빈씨 문중의 올바른 족보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종친 여러분의 의견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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