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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팔아먹은 매국노 고종 이재황과 왕비 민자영

작성자태이자 이재운1045|작성시간26.06.11|조회수45 목록 댓글 0

[역사의 눈물 / 조선을 팔아먹은 매국노 고종 이재황과 왕비 민자영

 

* 조선이 망해 일본 식민지가 되었는데도 어리석은 백성들은 명성왕후를 <조선의 국모>라며 우러러 받들고, 고종이 죽을 때 수십 만 명이 모여 집단으로 울어댔다. 이런 어리석음을 경계하고자 이 글을 쓴다.

현재 우리 세상에서도 구의원, 시의원, 도의원은 매관매직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고, 심지어 국회의원이나 주요 정부 요직도 대통령 세력이 한 손에 잡고 도둑놈, 양아치, 사기꾼, 죄수에게 마구 나눠준 지 오래다. 정당민주주의라고 하여 여야가 똑같이 나눠먹는 선거구가 많고, 그런 사람들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예산을 멋대로 써제낀다.

조선시대 말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이 현실에 분노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역사 컴플렉스에 갇혀 본질과 진실과 사실을 너무 외면해 왔다. 일본자객의 칼날에 맞아 죽었다는 그 비극 하나 때문에, 왕비 민자영을 비운의 조선의 국모라며 스크린과 연극 무대에서 미화하고, 나랏빚을 수천억씩 지게 만든 고종의 장례식에 수십만 명이 모여 통곡했다.

그러나 감정의 장막을 걷어내고 마주한 역사의 민낯은 참혹하며, 그 어리석음에 깜짝 놀란다.

 

조선왕조가 망한 진짜 이유는 외세의 침략 이전에, 26대 왕인 고종(1245-)과 부인 민자영(1155)가 자행한 조직적인 매관매직과 비정상적인 국가 농단 때문이었다.

 

경복궁의 아름다운 명소로 알려진 향원정과 그 뒤편의 건청전에는 지금도 관광객이 몰려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을미사변(1895)의 비극이 서린 곳으로만 기억하며 어리석은 눈물을 짓는다.

하지만 이 화려한 전각들은 고종과 왕비 민자영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벼슬자리를 팔아 모은 뇌물, 즉 내탕금으로 지어진 '탐욕의 기념비'. 국가 재정이 파탄나는 와중에도 왕과 왕비만의 안락처를 짓기 위해 관직을 줄줄이 팔아먹은 치욕의 상징물이다. 이 향원정과 건청전은, 마치 청나라의 미친 독재자 서태후가 만든 이화원(頤和園)과 같다. 어리석은 서태후는 아편전쟁 때 불타버린 청의원이라는 정원을 복구한답시고 국방 전력의 핵심이던 해군 예산(은화 약 3,000만 냥)을 통째로 빼돌려 이화원을 재건하는 데 쏟아부었다. 그러니 이런 나라들이 어찌 안망할 수 있겠는가.

 

1. ‘가격표가 붙은 벼슬자리

 

고종은 왕으로 있는 동안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급인 정2품 최고위직 한성판윤을 무려 430여 명이나 갈아치웠다. 평균 임기가 한 달 남짓이고, 짧게는 며칠 만에 자리가 바뀌었다. 관직이 국가를 위한 봉사의 자리가 아니라, 단기간에 본전을 뽑아야 하는 '투기 상품'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증거다.

이러한 매관매직은 왕실과 민씨 척족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전국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이조판서 민규호는 친척인 민자영의 지시를 받아 지방 수령 자리에 공식 가격표를 매겼다. 지방 관찰사(감사) 자리는 10만에서 20만 냥(현재 가치 수십억 원), 일등 고을 수령 자리는 5만 냥 이상이라는 구체적인 시세가 형성되었다.

 

매관매직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5만 냥을 내고 사또 자리를 얻어 임지로 가던 사람이 감기로 며칠 누워 있는 사이, 다른 사람이 10만 냥을 찌르자 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관직을 가로채이는 황당한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마치 현대에 이르러 국회의원 공천자가 하룻밤 사이에 돈을 더 많이 낸 사람으로 바뀌던 사례와 같다.

 

밀양의 부자 박병인은 고종에게 직접 35만 냥을 바치고 경주군수 자리를 샀다. 고종은 더 많은 뇌물을 챙기기 위해 일부러 수령들을 몇 달 만에 강제로 바꾸는 뻔뻔함을 보였다. 국가의 공식 인사 시스템과 과거제는 완전히 소멸하고, 오직 돈에 의해 움직이는 '좀비 국가'가 되었다. 지금도 그 시절에 매관매직한 관직을 족보에 버젓이 올려놓고 우리 집안은 판서가 몇 명, 군수가 몇 명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2. 무당의 손에 놀아난 국정과 천문학적인 사치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여주 장호원으로 달아났던 민비는 자신의 환궁을 맞춘 충주 출신 무당 박씨를 가리켜 '신의 딸'이라 부르며 광적으로 신임했다. 고종은 이 천민 출신 무당에게 '진령군(眞靈君)'이라는 파격적인 군호를 내리고 정3품 관직까지 하사하며 권력을 쥐여주었다.

 

이후 10여 년간 조선의 인사는 이 무당의 입에서 결정되었다. 출세에 눈이 먼 조병식, 윤영신 등 조정의 고관대작들이 무당 진령군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기어가 양아들을 자처했다. 민자영은 세자의 무병장수를 빈다는 핑계로 금강산 12천 봉우리마다 쌀 한 섬, 돈 천 냥, 무명 한 필씩을 바치며 국가 재정을 완전히 탕진했다.

사헌부 지평 안효제 등이 목숨을 걸고 "요사스러운 무당을 처단하라"고 상소를 올렸으나, 고종은 오히려 그를 유배 보내며 이 무당을 철저히 감쌌다. 이 비정상적인 권력 구조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진령군이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전재산을 몰수당할 때까지 이어지며 조선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3. 백성을 착취하고 관직을 팔아먹고, 마지막에는 나라마저 팔아먹은 고종 부부를 왜 용서하는가!

 

돈을 주고 지방관 자리를 산 탐관오리들이 부임하자마자 할 일은 오직 하나, 왕과 왕비에게 바친 뇌물 이상의 돈을 백성들로부터 뜯어내는 일이었다. 부당한 세금을 멋대로 만들어 백성들을 쥐어짜고, 참다못한 백성들이 폭발한 결과가 바로 1894년의 고부농민 반란이다. 농민군이 목숨을 걸고 외친 개혁안의 제1순위가 '매관매직 척결'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리석은 고종 부부는 자신들이 망쳐놓은 민중의 분노를 관군으로 진압하지 못해, 결국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를 안방으로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내부 조직이 썩어 문드러지니 나라를 지킬 군사력도, 근대화를 추진할 유능한 인재도 모두 사라졌다. 고종과 민자영 부부의 매관매직은 일제의 침략에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의 도화선이 되었다.

아니 '국권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고종 이재황이 일본 황실로부터 거액의 급여를 받기로 약속해놓고 팔아먹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백성이 된 당대의 대중과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여전히 감상주의와 민족주의에 갇혀 있다. 나랏일을 무당에게 맡기고 백성을 쥐어짠 왕비 민자영을 단지 '외세에 희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의 국모>라 칭송하며 박수치고, 고종이 죽었을 때 수십만 명이 모여 추모의 눈물을 흘린 것은 역사의 인과관계를 망각한 거대한 집단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이 비극의 역사 앞에서 눈물 흘릴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부패와 시스템의 붕괴가 어떻게 국가를 파멸로 이끄는지 냉정하게 들여다봐야만 한다. 덮어놓고 복을 빌거나 감상적 미화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진짜 이유다.

 

# 이 사실을 알고도 조선의 국모 타령하고, 고종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나름 애썼다고 거짓말할 텐가!

 

매국노 고종에게 매년 지급된 연봉: 세비(歲費) 150만 원 ~ 180만 원

 

한일병합조약 제3일본 황제는 한국 황제, 태황제, 황태자 및 그 후비와 후손에게 각 직위에 합당한 존칭과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에 따라 고종과 이왕가에 매년 막대한 돈을 지급했다.

 

1910(병합 초기): 750,000

1911~ 1920: 매년 1,500,000(150만 원)으로 인상

1921년 이후: 매년 1,800,000(180만 원)으로 추가 인상

 

매년 지급된 150만 원은 현재 가치로 최소 수백억 원에서 천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또 이 돈은 조선총독부 일반회계가 아닌 특별회계로 이왕가에 직접 지급되었다.

 

또 을사늑약 직전인 1904년 고종은 일본 천황으로부터 30만엔을 받아챙겼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이뤄지기 직전에는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으로부터 2만원(현재 가치 수십억 원)을 무기명 예금증서로 받았다.

 

한일병합 직후(1910), 일제는 황실 주변 인물들을 회유하기 위해 총 3,000만 원 규모의 은사금을 풀었다. 이때 고종의 친형인 이재면(흥선대원군의 장남)은 최고 액수인 83만 엔(현재 가치 약 166억 원)을 받고, 순종의 장인 윤택영은 504천 엔(100억 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황실이 가지고 있던 명산의 임야 약 5,700만 평을 그대로 이왕가 소유 재산으로 인정해 주고, 조선식산은행 주식 15천 주, 동양척식회사 주식 1만 주 등 한반도 내 핵심 식민지 기업들의 주식까지 나눠주었다.

말하자면 고종 이재황은 조선의 관직을 팔아먹는 것으로도 부족해 나중에는 금광, 은광, 철도부설권까지 팔아먹다가, 마지막으로 나라마저 팔아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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