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조차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할 때가 있다
- 어두운 방, 홀로 외로워하는 그대에게
지금 어디선가 쓸쓸하고 어두운 세상의 귀퉁이에 앉아 말 못 할 괴로움으로 숨죽여 울고 있는 그대에게, 내 마음의 깊은 진심을 담아 한마디 이른다.
우리에게 빛을 선물한 토머스 에디슨(0710)조차, 송수신 전신기를 개량하고 인류의 밤을 밝힌 전구를 발명하기 전에는 기차간에서 귀싸대기나 맞고 쫓겨나던 보잘것없는 신문팔이 소년이었다. 훗날 그 위대한 발명들로 거대한 부와 명성을 얻었으나, 같은 시대의 천재 니콜라 테슬라와 평생을 반목하며 증오의 불길 속에서 영혼을 태워야 했던 상처투성이 인간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라 불리는 아이작 뉴턴(0660)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지극히 당연한 풍경 속에서 지구와 태양, 행성과 저 아득한 수많은 별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중력으로 단단히 이어져 있다는 거대한 우주의 비밀을 알아냈다. 그렇게 세계 최고 물리학자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 영광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는 남의 집 밭을 갈고 품을 팔러 다니며 거친 손을 비벼야 했던 외로운 소년이었다. 심지어 노년에는 전 재산을 주식시장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리고 지독한 경제적 곤궁에 허덕여야 했다.
시공간의 비밀을 밝혀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0315)은 어떠했는가. 그가 세상을 뒤흔든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전에는, 스위스 특허청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며 한 달 급여로는 생활비가 모자라 밤마다 전단지를 전봇대에 붙이고,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과외를 하던 고단한 청춘이었다. 노년의 삶 또한 잔인했다. 나치 독일을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FBI의 의심을 받으며 진저리칠만큼 혹독한 사상 검증을 받고, 정작 자신의 이론으로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제조 계획)에는 미국 물리학자들이 끼워주지도 않는 철저한 따돌림을 받았다. 고국에 남겨진 동료와 친척들이 홀로코스트의 참상 속에서 학살당할 때, 그는 멀리서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무력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
이처럼 위대한 거인들조차 생의 어느 길목에서는 어둠 속을 헤매며 울부짖었고, 세상은 그들이 품은 진실의 가치를 단 한 줄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차가운 현실에 끝내 무릎 꿇지 않고, 내면의 불꽃을 결코 꺼뜨리지 않았다. 거친 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끝까지 버텨냈기에 그들은 지금도 토머스 에디슨이요, 아이작 뉴턴이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영원한 이름으로 빛나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겪고 있는 어둠과 쓸쓸함, 그것이 결코 삶이 끝났다는 신호는 아니다. 위대한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기 전에는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가장 깊은 밤'일 뿐이다.
저 어마어마한 수천 조 개의 우주와 우리 은하의 수천 억 개의 별과 우리 태양계의 숱한 행성들이 보이지 않는 중력으로 단단히 이어져 있듯, 그대의 삶 역시 이 세상의 거대한 질서와 단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지 지금은 그대의 가치가 세상의 눈에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부디 기운을 내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기 바란다.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 중 하나인 전자의 수명이 무한하듯, 그대의 영혼에 깃든 가능성 또한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이 지독한 비바람이 지나고 나면, 그대의 삶에도 마침내 세상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보러 저절로 오솔길을 내며 찾아오는 찬란한 결실의 계절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대라는 눈부신 별이 마침내 어둠을 깨고 날아오를 그 새벽을, 이 우주는 숨을 가다듬으며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깊은 호흡을 쉬어라.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지켜보아라.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가 열리고 자두나무에 자두가 열리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아래로 저절로 길이 난다."
문득 5년 전에 써두었던 이 구절이 떠올라, 세상의 눈길에서 비껴나 있고, 위로조차 받지 못하고 있을 분들을 위해 삶의 행간에 따뜻한 글을 채워 본다.
만약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가 열리지 않고 자두나무에 자두가 열리지 않는 한겨울이라면, 사람들은 모여들기는커녕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친다. 설령 기적처럼 고귀한 열매를 맺었다 한들, 세상이 처음 보는 낯설고 두려운 가치라면 사람들은 주저하며 다가오지 않는다. 도리어 진화론을 발표한 찰스 다윈(0510)처럼 ‘사람 머리 달린 원숭이’ 그림을 그려 신문에 내며 모욕할지도 모른다.
내가 품은 진실과 열매의 가치가 아무리 눈부실지라도, 눈먼 세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써 설명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랴, 슬프게도 이것이 차가운 세상의 본모습인 것을.
그러니 세상이 그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낙담하지 말라. 열매는 이미 그대 안에서 영글고 있으며, 단지 세상이 그 맛을 알아차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묵묵히 호흡을 지키며 그대 안의 중력을 믿고 나아가라. 세상의 길은, 결국 가장 단단한 중심을 향해 나기 마련이다.
* 5년 전에 내가 쓴 아래 글을 보고 쓴 것이다. 그 글은 이와 같다.
-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애쓰지 말고, 원망하지도 말라
전한 시대 장군 이광은 바위에 화살을 쏘았는데 촉이 바위를 뚫고 들어가 박혔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한나라가 서자마자 이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용맹스런 흉노가 쳐들어 올 때마다 70여 차례나 막아낸 뛰어난 장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하찮지만 매우 간사한,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 완장차고 문빠질하는 놈들과 비슷한 위청(衛靑)이란 악인의 음해와 핍박으로 끝내 자살해버렸다.
나중에 이 시대 역사를 쓴 사마천은 저와 비슷한 처지의 이광의 삶이 안타까웠는지 그를 이렇게 기렸다.
-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
말이야 번드르르하지만, 그 '길'이란 겨우 역사가 사마천, 궁형이라는 치욕의 형벌을 받아 내시 환관이라는 조롱을 받은 그의 눈에 띈 것뿐 이광은 이미 자살해 시신이 다 썩은 뒤다.
* 아침에 애견가게에 다녀오다 이장 사무실에 잠깐 들러 커피를 얻어 마시는데, 마침 이 글이 보이길래 몇 자 적는다.
*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30년 개발한 바이오코드를 왜 일반공개하지 않고 꽁꽁 숨겨두느냐고. 그때마다 말한다. 바위굴 깊이 묻어 수백 년 뒤 눈 있는 사람들더러 읽으라고 해야 하는데, 아직 바위굴을 못찾았노라고. 아직은 파드마 삼바바의 마음이 내마음이라고.
* 그림 속 번역은 부족하다.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가 열리고 자두나무에 자두가 열렸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길이 난다"가 올바르다. 복숭아가 안열리고 자두가 안열리면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잖는가. 다만 사람들이 이미 그 맛을 잘 아는 과일이라면 길이 나지만 난생 처음보는, 새 열매라면 주저하면서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열매가 가치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 내가 알면 하늘이 알고 우주가 안다. 고장나고 허섭한 단말기까지 다 알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