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소식이 들릴 것이다. 다만 때가 되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2012년 6월 16일의 SNS
- 늦으막해서 알게 된 시바리 존자는 나를 깨우쳐 주신 큰 스승이시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공(空)의 비밀한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분이 가르쳐 주신 바에 따라 1994년에 쓴 <소설 금강경>을 통째로 버리고 새로 썼다.
* 미얀마 고찰에 모셔진 시바리 상에 머리를 맞대고 절하는 사람이 나다. 1차 단기 출가 때인 2018년 11월 18일이다.
- 때가 되면 인연 있는 사람에게는 이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어도, 귀에 대고 속삭여 주어도, 손에 쥐어 주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여전히 보지 못할 것이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1992년에 쓰고 2024년에 발표한 <소설 금강경(2권)>을 통째로 버리고 2023년에 <금강경 비밀장>이란 이름으로 새로 써 펴냈다. 나가르주나의 위대한 저작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절대지혜를 논하다(大智度論)>을 읽은 이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만큼 적듯이 사바를 힘겹게 견디고 있는 현대인들은 굳이 내 소설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원불교 교당에 기념 강연하러 간다는 친구가 “왜 불교 믿는 나라는 다 가난해?”라고 묻길래 며칠을 끙끙거리며 <통찰공(洞察空)>이란 원고를 썼다.
그리하여 이 글을 올린다. 붓다가 하늘 높이 매달아 놓은 ‘반야’라는 신기루를 쫓느라 가난해진 미얀마, 스리랑카,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같은 테라와다의 신도들. 그 신기루만 바라보다 차라리 힌두신을 믿자고 돌아선 인도의 14억 중생과 차라리 알라를 믿자고 떠난 아랍과 중앙아시아의 중생들. 그리고 참선하고 공부하기는 너무 힘이 들어 그저 손바닥이나 비비고 복을 구하는 데 매달리는 한국의 신도들. 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찧고 빻을 수 있는 굳센 다이아몬드 쇠방망이’, 곧 <금강경 비밀장 부록 ; 뭐든 찧고 빻을 수 있는 쇠방망이(Vajra)>라는 도깨비방망이를 하나씩 쥐어주려고 한다.
그러면 “네가 뭔데?” 이러는 사람들이 꼭 나온다.
붓다는 뭐 처음부터 거창했는가. 말이 좋아 붓다지, 그는 6년 동안 하루 한 줌 곡식이나 겨우 얻어먹으며 비쩍 마른 청년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가 자기 깨달음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보드가야를 떠나 사르나트라는 녹야원으로 걸어갈 때, 길에서 마주친 거의 모든 사람은 그를 그저 떠돌이 거지가 지나간다고 여겼을 뿐이다. 하다 못해 그가 한 나라의 태자였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6백 리 먼 길을 타는 듯한 더위 속으로 걸어갈 때, 그는 밥을 빌어먹고 나무 아래 기대어 선잠을 잤다. 보름 남짓 걸리는 이 고행 길에서 바라나시라는 큰 도시도 지나갔지만, 그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토록 힘들게 찾아간 옛 친구들조차 이 청년을 보고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둥게스와리에서도 고행을 포기하더니 보리수 아래서도 뭐 하나 얻은 게 없으니 어디 오갈 데 없어 우릴 찾아온 게 아닌가” “야야, 귀찮으니 아는 체도 하지 말고 낮잠이나 자자” 이랬다.
하지만 나는, 9층 높이의 대도서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1만 명이 넘는 학생과 2천 명 이상의 교수가 함께 배우고 연구하고 토론하던 11Km X 5Km의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교 <나란다대학교>를 떠올린다. 이 대학교의 총장으로 있으면서 숫자 0을 발명하고, 10진법을 완성한 아리아바타(Aryabhata)는 오늘의 수학과 천문학, 물리학 같은 과학기술의 시대를 연 최초의 인물이다.
오늘날의 수학자들은 "나란다대학교에서 정립한 0의 개념이 없었다면 대수학과 미적분은 물론, 이진법을 쓰는 현대의 컴퓨터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의 99.9%가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 나란다대학교조차 거의 모르듯이 ‘알아주고 몰라주고’는 이 넓은 우주의 관심사가 될 수 없다.
저 위대한 나란다대학교조차 이슬람군대의 말발굽 아래 무너지고 불타고, 교수와 학생들이 주검이 되고, 한 달이 되도록 대도서관이 불타올랐지만, 그런들 그렇다고 하여 뭐 우주의 관심이라도 좀 끌었던가. 아니다. 별들은 그 전에도, 그때도, 지금도 그냥 반짝거릴 뿐이다.
붓다가 이 통찰공을 깨달아도, 나가르주나가 <뭐든 찧고 빻을 수 있는 쇠방망이(Vajra)>라는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을 써도, 아리아바타가 0을 발명하고 십진법을 완성해도 세상 사람들의 99.99%는 까마득히 모르고, 그저 그런 날도 구름은 여전히 하늘을 떠다니고 바람은 산을 넘어 불어오고 강물은 흐느적거리며 무심히 흐를 뿐이다.
이런 세상 사람이 야속(野俗, 들에 사는 사람처럼 거칠고 골짜기에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은)하고, 곡절((曲折,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 꺾이며 살아가는 모양)이 안타깝다 하여 산벚나무 2만 그루를 베어 팔만대장경을 새기고, 이 강물에 내 저작물 200권을 풀어 글로 써놓은들 산벚나무가 깨닫겠는가, 강물이 무슨 대꾸라도 하겠는가. '그런 일이 있었다'조차 없이 또 벚꽃은 피고지고 강은 흐르고 흐른다.
* 때가 되면 인연 있는 사람에게는 이 소식이 들릴 것이다. 다만 때가 되어도, 귀에 대고 속삭여 줘도, 손에 쥐어 줘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여전히 모를 것이다. 아래에 있는 <진실조차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할 때가 있다>가 바로 그 아득한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https://cafe.daum.net/biocode/DVf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