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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

작성자안재형|작성시간15.10.15|조회수17,542 목록 댓글 12

 

 

성태윤 교수는 연대 경제학과 88학번으로 나와 동기다.

 

오래전 태윤이가 연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기 몇 년 전, 갑자기 생각나 google로 찾아 연락해 봤을 때,

태윤이는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모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무리 경제학 박사가 남아돌아도 그 이름만 들어도 위압감을 주는 하버드 출신이기에 연대 교수가 되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정작 놀라게 한 건 나중에 태윤이가 쓴 신문 사설이었다. 그리고 태윤이를 그렇게 훈련시킨 하버드에 놀랐다.

역시 하버드는 하버드다...

 

보통 하버드같이 좋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공부를 무지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 대학이 연구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학벌 좋은 한국 사람들은 자기가 배웠던 남의 이론들을 잘 전달하는 그런 좋은 교수에서 성장을 딱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태윤이의 사설에서 보이는 식견은 다양한 분야를 접하면서 상당 시간 고민해야만 생길 것 같은 그런 것으로…

뭐라고 할까... 대가의 조짐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태윤이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고, 그가 밟아간 과정들을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 복기해 보았다.

 

### 출신계급과 연대 경제학과 입학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태윤는 구로동에 살았었는지 구로고등학교를 나왔는지 하여간 구로동하고 관련이 있다.

즉 강남이나 성북동출신이 아닌, 행색으로 보나 출신지역으로 보나, 나와같은 서민계층이었다.

 

연대 경제학과를 차석으로 들어왔다. 그 당시 연대는 경제학과 수석 = 문과 수석이다.  

경제학과 차석이었으니 문과 2등이거나 최소한 3등은 했으리라 추정된다.

 

그때는 선지원후시험 학력고사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지원하기 좀 찜찜해 연대 지원했으리라 추정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안전지원이 아니었다면 태윤이는 지금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었을 터이니, 연대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 대학생활

태윤이는 항상 도서관 1층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가끔 심심해서 도서관을 뒤지다보면 거기서 공부하는 태윤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놀자고 꼬시면 투덜대면서 끌려나오는 착한 친구였다.

 

태윤이는 데모같은 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사실 태윤이나 나같이 조용하고 존재감없는 사람들이 머릿수 하나 늘려주는 것외에 데모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태윤이는 조용히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공부를 하며 힘을 비축하고, 현재 연대 경제학과 교수로서 영향력을 있을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 완벽했던 계획

태윤이는 종종 친구들에게 자기의 계획에 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목표는 연대 경제학과 교수...

 

군대는 카투사, 석사를 본교에서 하면서 박진근 교수님 조교로 들어가고, 선경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남아도는 게 경제학 박사여서, 돈 없고 빽 없는 태윤이가 본교 교수로 온다는 건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 당시 없던 빽을 커버해 줄 수 있는 건 바로 경제학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박진근 교수님이었고,

없던 돈을 커버해 주는 게 선경장학금이었다.

그래서 그 계획이 그럴듯하게 들렸었다.

결국 태윤이는 이 계획을 수정 없이 하나하나 이루어 갔다.

 

돌이켜보면 이 계획은 한니발의 칸나이(Cannae) 전투, 알렉산더대왕의 가우가멜라 전투 같이 완벽히 들어 맞았다.

 

그 어리버리할 대학교 시절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계획을 세웠는지 나중에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다.

 

### 학점 관리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 태윤이의 학점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다. 결국 한 과목 빼고 올 A였는데,

그 한 과목은 나중에 나오지만 엉뚱하게도 2학점짜리 국민윤리였다.

 

보통 학점관리를 한다면 쉬운 과목만 골라 들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내가 초급 일본어를 들을 때, 수강생 중 상당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일본어를 배우고, 공부 안 하고 A 받겠다고, 초급을 또 듣는 한심한 인간들이 많았다.

 

태윤이는 결코 쉬운 길을 가지 않았고,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과목만 선택해 들었다.

기억나는 건 서승환 교수의 미시경제학, 수학과에서 들은 미분적분학 1, 2였다.

서승환 교수의 경제학 원론이나 미시경제학은 시험문제가 너무 어려워 대부분 거의 백지를 내고 나와야 하는 과목이었다.

 

태윤이가 미분적분학을 들을 때 나는 실수로 고등미적분을 들었다. 그 고등미적분은 기대와는 달리 미분방정식만 푸는 나에게 쓸데없는 과목이였다. 내가 미적분의 기본 없이 쓸데없는 미분방정식을 풀고 있을 때, 태윤이는 문과여서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수학의 기본을 수학과에서 미분적분학 두 과목을 들으며 차분히 쌓은 것이었다.

 

태윤이는 항상 사인펜을 사용해 답안을 작성했었다. 나같이 연필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생각하고 한 번에 다 써 내려갔던 것 같다. 답안지는 마치 고시생들의 답안지같이 깨끗하고 보기 좋았다. 특히 한자를 좋아한다는 박진근 교수님 과목 시험 때는 한자 연습도 열심히 했다.



### 완벽주의...

돌이켜보면 태윤이는 최소한 공부에 있어서는 한니발, 알렉산더 대왕같은 완벽주의자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투를 하기 전, 전투가 예상되는 곳에 가서 한참을 지형을 연구하고 계획을 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완벽주의는 무패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다음 두 일화를 보다.

 

# 1 통한의 B학점... 국민윤리

나때는 시험때만 공부해도 훌륭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시험도 아닌데 태윤이는 항상 도서관 1층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곤 했다. 하루는 뭘 공부하나 보려했더니 안보여준다. 억지로 봤더니 황당하게도 국민윤리 교과서였다.

태윤이는 대부분의 학생이 A 받으리라 기대되는 국민윤리를 시험때도 아닌 평상시에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수많은 A학점이 우연히 얻어지는게 아니었고, 어떠한 방심도 허락지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국민윤리를 B 받았으니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는 교수를 잘못 만났다.

경제학과에 배정된 국민윤리 강사는 깐깐한 철학과 교수였는데, 철학없는 경제학과 학생들에게 뭘 기대했었는지 모르겠다.

엄청 큰 계단식 강의실에서 최소한 100명은 그 강의를 들었던 것 같은데,

A가 4명이었나? B도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 C, D였고, F도 드믈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들 벽에 붙은 학점을 보고 아연실색했지만, 우리를 정작 놀라게 했던 건 바로 태윤이의 B, 그의 유일한 B였다.

 

# 2 놀이터에서 밧줄타기 훈련

1학년 초 일이지만 다른 에피소드를 보자.

우리때 대학생들은 1학년은 문무대, 2학년은 전방에 1주일씩 입소해 군사교육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이 고안한 학생 통제의 한 방법으로, 그 당시 데모를 가장 심하게 했던 4학교(서울대, 연대, 고대, 성균관대)가 번갈아가면서 먼저 입소한다고 들었다. 먼저 입소한다는 건 추위가 덜 가신 3월에 고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문무대에서 1주일간 군사훈련을 받을때, 전방입소 했던 한 87학번 선배가 분신자살해 결국 이 비정상적인 군사훈련은 없어졌다.

 

그 문무대 가기 전 태윤이는 동네 놀이터에서 밧줄 타기 같은 걸로 앞으로 겪을 유격훈련을 미리 연습했다고 한다.

같이 듣고있던 친구들은 황당해 웃었고, 사실 나도 같은 이유로 그 사소한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겠지만, 그렇게 사소한 문무대 훈련마저도 미리 대비했다는 건, 서민층 자녀가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대 경제학과 교수가 되려면 어느 정도로 성실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

나의 경우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면 이런 저런 후회가 있는 선택이 많았다.

바둑으로 얘기하면 악수를 종종 둔 것이다.

바둑에서는 그 악수를 최대한 잘 이용하고 어리버리한 상대방이 도와준다면 묘수로 변할 수 도 있지만, 인생은 결국 상대없는 자기와의 싸움으로 악수는 악수고, 잘 이용해 봐야 묘수까지 되기는 힘들다.

 

장래를 위해 계획을 짤 때 여유가 있다면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보고 바꿔가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이런 저런 경험을 쌓냐고 제한된 자산과 시간을 낭비하는 건 사치일 수 있고,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로 2년이라는 세월도 낭비해야하니,

여러 사람의 조언을 구하고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 좋은 계획을 짜고, 이를 결연히 실행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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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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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안재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16 오~ 상경대 학생인가보죠^^ 음... 내가 학생때 성백남, 조하현, 서승환 이런 교수님들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면 비슷한 느낌이 들 것같아요^^
  • 작성자정준구 작성시간 15.10.18 이과에서도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지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N3V3120 작성시간 20.05.12 당대에 난 눈 감고도 연대 어디든 간다. 1등부터 순서대로 설대다. 꼼수는 그만 해라. 그래 나 설이다. 술 먹었다. 아침부터~ ㅎㅎ
  • 작성자강성찬 작성시간 24.02.12 이제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되셨군요. 축하합니다만 요즘 정치 상황이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음 정권 때 어떨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능력이 출중하시니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안재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01 하필 이정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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