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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전찬수 시집 평설

작성자엄창섭|작성시간26.06.10|조회수251 목록 댓글 0

 

                         서정성의 절제미와 정한(情恨)의 회귀성

                           - 전찬수 시인의 감성과 삶의 여정(旅情)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모던포엠주간)

 

                         1. 삶의 일상과 정감(情感)의 응축성

 

   어디까지나 낮은 산자락이 푸르름에 젖는 계절, 삶의 일상과 정감(情感)의 응축성은 따뜻한 감성에 의해 그 존재감이 더없이 빛나는 정조(情調). 모처럼 오랜 망설임 뒤 묶어내는 시집인찬수, 안목에서 다시 숨 쉬다(문화앤피풀, 2026)의 간행은 삶의 일상에서 놀라운 반전이기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까닭에 일상의 체험을 통해 심상(心象)의 일부를 빚어낸 결과물은 피가 도는 따뜻한 심장을 담백한 시격(詩格)에 비춰낸 일면이기에 거부감은 없다. 또 한편 현실적 삶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시적 상상력의 확장을 위해 정신세계를 존재와 빛나는 감성의 융합으로 펼쳐 보이는 지속적인 관심은 산의 정상에 올랐으면 뗏목이 필요 없거늘 어찌하여 그대는 뱃사공에게 길을 묻는가?’라는 어느 선사(禪師)의 법문처럼 주의 깊게 가늠할 일이다.

   각론하고 그 자신이 충직한 독자를 맑은 감성의 본원(本源)인 바다로 이끌어냄도 그렇거니와 자아 성찰에 의한 방하착(放下著)의 일깨움은 신선한 감동을 회복시켜주기에 새삼 생명감이다. 모처럼 오랜 날 남모를 고뇌를 감내하면서 '존재의 뿌리인 가정'을 소중한 인연의 처소로 인식하고 삶의 조화(調和)와 신비로움으로 팔순을 맞는 기념 시첩(詩帖)에 담아낸 서정적 미감은, 민감한 예술적 삶을 확인하는 계기의 맞물림이기에 한층 더 뜻깊다. 그렇다. 한순간의 격정(激情) 또한 푸른 파도가 생명의 충동감에 넘실거리는 천년 그 자랑스러운 하슬라(何瑟羅)의 땅, 그리고 안목 바다야말로 찬백(燦伯) 전찬수 시인에게는 삶의 처소로 시상(詩想)의 발원지다.

    앞서 그 자신은 시집늙은 소년 안목 바다 이야기,찬수의 바다 이야기를 비롯해 10여 회의 개인 시화전을 갖은 경력의 소유자인 연유로, 튀르키예의 혁명 시인 나짐 히크메트 란(Nâzım Hikmet Ran)신과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에 관한 지혜로운 일깨움에 몰입하면서 주어진 하루가 내 인생의 최초의 날이고 최후의 날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갈 일이기에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삶을 즐길 일이다. 차제에 평자 그 나름으로 시집 평설에 앞서 지적할 점이라면, 일단 시집은시인의 말-홀로 두 아들을 키우던 시절을 포함해 1l 바다처럼 넉넉하게(12), 2l 등대 불빛에 바다를 묻고(15), 3부 ㅣ사랑을 경영하는 일(13), 4l 안목 바다에서 띄우는 기도(13), 시집 평설의 구도처리로 결() 고운 옷감처럼 시 의미가 응축된 53편이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게 직조되어 살아온 연륜만큼이나 충직한 독자의 시선을 끌어모으기에 결코 거리감이 없다.

   특히 그 자신은 시집의 서문 격인시인의 말-홀로 두 아들을 키우던 시절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안목 바다로 나는 다시 간다. 그곳은 내 삶의 쉼표이자 마침표, 눈물의 자리가 소금으로 변해 바람에 흩어지는 곳이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의 사람들, 이곳에 살며 안목 바다에서 나는 오늘도 시어를 낚는다.”라도 그렇거니와 황혼의 시간대에 현재의 커피 거리를 만보(漫步)하며, ‘바다향(海飮), (), 그리고 커피 향의 상징 공간인 고향(江陵)의 서정적 미감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끝에 물씬 묻어나는 어머니의 젖 내음은 신선한 충동이며 아득한 유년의 수채화(水彩畵).

    까닭에 16회 백교문학상 작품공모 우수상 당선작품으로 내 마음 깊은 곳에서도/한 사람, 어머니가 피어납니다/바다보다 깊고/솔 향기보다 진한 사랑으로/등 따스히 감싸주시던 어머니/강릉 바닷가 모래길 따라/그리움은 발자국되어 남습니다(어머니 향기, 사모정(思慕停)에 흐르다)”에서의 일면처럼 그 자신은 이 지상의 위대한 이름인 어머니!’의 그리움인 정한(情恨)으로 만인의 공동관심사를 일깨워주고 있다. 여기서 사람의 인연이란, 언제 어디서 어떤 형상(形像)으로 다시 마주칠지 모를 일이나 바다에서 스쳐 가는 인연일지라도/‘바다에서 무엇을 찾느냐는 질문에/짧은 침묵을 남기고 등 돌려 가버린다 (비밀을 털어놓고 떠난 사람)”의 예시에서 그럴 때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간절한 기대감은 못내 절박할 심사(心事).

   따라서 파도가 스스로의 운명을 모랫바닥에 부딪치며 맡기는 현상을 응시하며 이채롭게도 그 자신이 청유형 어미를 시적 기법(craft)으로 자연스럽게 활용하며 삶은 도전과 역전의 기회다/소유의 허망함을 넘어/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아/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자(바다처럼 넉넉하게)”라며 공감대를 불러 일깨운 시적 작위(作爲)에서 이 같은 분별력은, 격조(格調) 높은 시 정신의 융합이기에 그 연계 층위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시적 상상력에 의한 식물의 불이며, 생명의 빛에 기인(起因)한 단절과 고독을 극복하는 강인한 생명력임에 틀림이 없다.

    차제에 혹여 동시대의 충직한 독자가 시적 거리감을 여길지라도 21세기 문화의 지역구심주의에 일관성을 지켜내려는 그 자신이 이 땅의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활동하며 한순간의 격정과 끓어오르는 분노에 평정심을 회복시켜 감미로운 심적 현상을 유지 시켜주는 생동감을 생산적 결과물로 변주시킨 분할·통합은 좋은 시인과의 천재일우(千載一遇)의 행운이다. 까닭에 내가 살아가는 인연 속에서/열정적이던 기억의 아쉬움을 깨닫고/자신의 좌우명을 가지고 가는 자는/새 희망과 꿈을 품으며/삶의 경이와 기쁨을 느낀다 (해불양수(海不讓水) 가지고 가는 자는)”의 보기에서 그 차별성은 신선한 충격으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2. 내면 인식의 매혹과 합리적 해법

 

   일반적으로내면 인식의 매혹과 합리적 해법에서 피폐한 영혼이 궁핍하여 주검처럼 쓰러져 누운 대다수 현대인에게 끊임없이 자존감의 소중함을 교시(敎示)하고 통신(通信)하는 예언적 행위는 더없이 유의미하다. 까닭에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특정한 시인의 시편에서 종종 확증되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호흡하는 불확실한 시간대에서도 절박한 기대감과 눈물겨운 감사(感謝)의 시학이다. 따라서 깊은 사유의 생산물인 자신의 시편에 거부감 없이 즐겨 시적 대상으로 수용하고 때로는 재창조된 언어의 파편들이 푸른 생명의 비늘(片鱗)로 반짝이는 물활론(物活論)의 착시현상을 단순한 시적 비약이나 질서의 파괴, 그리고 혼란스러움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모름지기 앞서 미 연방하원의원 팻 슈뢰더(Patricia Nell Scott Schroeder)"미래는 열린 책이며 그것을 쓰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라는 지적도 새삼 가늠하며 최소한 메마른 영혼에 감동을 안겨주는 감미로운 눈물 같은 인자(因子)로서 시대적 소임을 엄숙하게 수행할 일이다. 모처럼 인연의 고래 심줄처럼 강한 끈으로 굳게 붙잡고 존재하고 싶다.’라며 그 자신이 늘 내 심장 출렁이게 하며/세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어딘선가 그 흔적을 남긴/인연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인연의 고래 심줄 끈으로)”에서 확인되듯 순수서정성으로 시적 미감을 확고히 다진 그만의 독특한 문체, 느낌, 체취, 색깔은 따뜻하고 감미로운 정신기후를 조성하는 담백한 시격(詩格)의 흥취를 발현(發現)시켜 지극히 감각적으로 그 존재감을 일깨워준 양상일 것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파도가 출렁이는 물결 속에 갈매기 한 마리 은빛 날개를 펼쳐 나를 내려다보는 정황에서 바다는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그 향기, 바람 속에 실려/내게 다가오네(혼자 간다고 길을 잃을까)”라는 물음(?) 또한 그 자신의 격조(格調) 높은 시적 비법이기에, 소재의 자유로운 취급과 미적 주권의 확립은 서정성의 표출로 심화한 이미지의 형상화의 맞물림이다. 모처럼 그 자신의 시편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용해되는 신선한 충동(衝動)’, 친근한 시적 질료와 다양한 기법의 원용, 또 복잡한 어조와 어법은 생명의 변주(變奏)로 긴장감과 결부되는 양상이다.

    각론하고 새로운 가치와 질서의 창출을 위한 그만의 시적 환상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에스프리와 접한 순수의 감동, 즉 앙양(昂揚)된 심리상태는 적절히 유지되어야 할 사항이다. 또 한편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 문제의 암울함마저 바람결에 스치는 이 순간이 어쩌면 가장 찬란할지라도 삶이 즐겁고 빛나는 것은, “마음 깊숙이 흐르는 음덕의 강물이/상처를 덮고 아픔을 씻으며/용서로 흘러가/내 안에 사랑의 바다를 이룬 까닭이다(마음에 묻어있는 음덕 구정물)”에서 새삼 확증되듯 세상에 대한 경고로 비록 다투면서도 뒹굴면서 아픔 나눌 때 용서와 이해다라는 밝은 지향점을 제시한 그 자신의 아름다운 삶의 교시(敎示)야말로 마치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인 사뮤엘 헌팅톤(S. P. Huntington)문화의 충돌을 예견한 듯 중량감 있게 공감할 점이다.

    그렇다. 따뜻한 감성을 끊임없이 영성(靈性)으로 이행시키어 신의 작은 대행자(代行者)’로서의 소임에 충직한 그 자신이 충직한 독자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 세계로 초대하는 자존감을 지닌 실체인 연유로, 여백의 틈새를 좁혀 고뇌 끝에 묶어낸 특이한 시관(詩觀)을 확장한 그 시편은 그리움에 헤진 가슴을 어머님 사랑으로 꿰매어 그 지극한 함자를 평생토록 머리맡에 두겠습니다라는 결의에 찬 집념(執念)이다. 이처럼 어머님의 깊은 안목, 그 바다 같은 사랑이/가슴 언저리에 그리움으로 일렁일 때면/파도에 슬픔 묻고 가슴을 삭여봅니다(어머님의 깊은 안목 바다 같은 사랑)”에서 가끔 자연에서 소재를 얻고, 그 신선한 감동의 회복으로 시인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자연과 시인, 독자가 삼위일체가 되는 시의 향연(饗宴)을 통한 서정적 개아의 결과물은 합리성이 주어질뿐더러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동성은 지극히 이채롭다.

    무엇보다 전찬수 시집의 편집 구성상 ‘3부ㅣ사람을 경영하는 일에서 가끔 꿈꾸는 것 같은 황홀함 이전에 예감하지 못했던 님이 허락한 은총의 강물 같은, 사유의 충만함을 수용할 점이다. 마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의 의미는, 파스(Octavio Paz)의 지적처럼 종교의 문제는 신이 아니라 시간이다.’와의 잇닿음이다. 따라서 미로의 출구로 통하는 길과 출구 바깥의 세계는 모두 시간의 직선적 개념의 산물인 점은 기억할 일이다. 또 한편 시 창작의 주체인 시인이 폭넓은 시각에서 접근할 때 독자도 때로 시인으로 전제할 수 있기에 다음에 인용하는 그 자신의 시편에서 비판적, 즉물적, 전체적, 정의(情意)와 지성의 종합, 유물적, 구성적, 객관적 특성은 응당 수용하여야 할 점이다. 까닭에 후기산업사회의 다양성을 수용할 현대시는 일상에서 부대끼는 사물을 여과하고 치밀한 구성으로 신선함을 발현시킬 일이다. 따라서 그간의 낡고 고루한 시각은 접어두고 그 자신의 자화상(自畵像)에 해당하는 시편에서 응당 새로운 변형과 추이(推移)를 끊임없이 모색할 것이다.

 

오늘도 무거운 짐을 진 ’늙은은 소년‘은/바다 앞 등대에 무릎을 꿇고/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가슴이 녹슬지 않아,/이 고단함 속에서도/여전히 당신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그 무거운 짐은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그 힘으로 내 생의 마지막 행복 드라마를 쓰고/비로소 자유롭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녹슬지 않는 가슴」에서

 

안목 바다는 섭리에 따라 빛을 바꾸는/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바다의 색깔은 무색할 정도로 한결같은데/그 속에서 어떤 정황도 견뎌야 한다는/정복의 힘을 배웁니다//

마음마저 쉽게 변하는 이 시절/우리에게 필요한 건/바다를 닮은 인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안목, 멈출 수 없는 바다의 문장」에서

 

   위의 시편에서 자기 확신에 찬 그 자신의 절대 의지도 놀랍거니와 생명의 본원(本源)인 바다()에 대한 지극함은 모성에 대한 신앙과 같은 사모(思慕)의 정은, 짐짓 늙은 소년이 겪은 삶의 체험에서 고통을 겪어봐야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듯이시적 정조에 비장감(悲壯感)이 묻어날 따름이다. 아울러 시적인 모티프이며 열린 우주로의 지평을 열어 보인 합일의 공간에서 하늘의 의미는 즉, ()과 공()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다. 까닭에 현대 시론에서 이중구조(二重構造)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인 오브제(objet)를 수용하는 구조임은 새삼 식별할 점이다.

   모름지기 현상적으로 화자인 그 자신이 바다의 친화력에 관한 일깨움을 삶의 잠언(箴言)으로 항시 수긍한 연유(緣由), 단절이나 소외를 의미하는 닫힘이 아닌 열린 사고와 문화 인식에 대한 안목의 확장, 그리고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영혼을 정화를 시켜주는 정결한 감성을 지녀야 한다. 모처럼 새로운 인연을 향해 환히 열리는 나의 이 뒷모습을 이제 당신에게 보여드리는그 낮아짐의 겸허함으로 바다와 나누었던 고독의 병을/웃음으로 다스리니/ 해묵은 슬픈 업이 비로소 풀려나갑니다//아픈 마음의 상처와 그 원인들을 모두/깊은 심해에 묻고,/굳게 닫아걸었던 마음의 빗장을/이제는 푸는 것입니다(바다에 묻고 문을 연다)”에서 감지(感知)되듯 항시 물의 수성(水性)은 묵언의 가르침을 통해 인식할 일이다. 그렇다. ‘오늘 귀중한 날에 다시 전해진 먼 길의 안부처럼아득한 유년 시절을 향리(鄕里)인 강릉의 용강동에서 평자와 20여 년 남짓 함께한 그 자신이 믿음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존재감은, 낯선 항구에 닻을 내릴 순간까지 상처 깊은 영혼을 치유하는 정신작업임에 자랑스럽다.

   차제에 소년의 쇠퇴법이란, 경계 뒤에 마음을 덜어내고 비우며 세상을 향해 담담히 마침표를 찍어가는 과정임을 피력한 그 자신이 파도가 공들여 집을 짓는 춤사위와 비호처럼/허공을 가르는 갈매기의 날갯짓,/동녘에서 쏟아지는 태양 빛이 바다 숲을/적시는 여과 없는 자연이 절묘한 쇼 때문입니다(늙은 소년의 바다, 그리고 비움의 기술)”의 보기도 그렇거니와 어느 날 강릉역, 이곳이 삶의 종착역이라면 잠시 눈을 감고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리라.’라는 철저한 절대 의지로 인생을 갈무리하며/마지막 역에 닿는 그 날까지/내 안에 깃든 아름다움과 향기를 보존하는 일/ 그것이야말로/단 하나의 위대한 걸작임을 믿습니다(강릉역, 여기가 종착역이라면)”에서 거듭 확증되듯 고향에 대한 지극정성은 이처럼 각별할 따름이다.

 

                    3. 사유의 화소(話素)와 시적 당위성

 

   특히 이미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미래의 시간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사유의 화소로 변형시키지 않으면, 눈부신 꿈과 이상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 까닭에 진리와 자유를 수호하는 정신작업의 종사자들은 창조적 행위를 응당 수행하여야 한다. 그 같은 양상에서 삶의 일상에 충직하게도 생명의 둥근 씨앗(마침표)을 보폭을 옮겨가며 파종(播種)하는 성직자로서의 소임은 그 결의가 한껏 충격적이다. 차제에 차고 처연하되 명증한 시적 이미지는 고통을 눈 뜨게 하는 빛나는 응결체로 작용한다. 비록 서정성이 깃든 의식의 시편에 수용된 현대의 불안의식, 발화하는 현대의 감각적 표현 등으로 해석되는 시편들도 혹여 혼돈의 시간대를 걸친 내면 인식에 중량감이 더하여 목가적 서정성으로 눈부실 따름이다. 혹여 그 자신의 시적 상상력은 금화처럼 짤랑거리는 내면 인식은, 각질화된 고정관념을 깨뜨려 보이는 정신적 산물로 장식되기에, 시적 포즈(pose) 또한 직물 대상에 몰입한 결과로 형태, 색깔, 감각 등의 속성은 상반균형의 시적 형상화.

   그렇다. 그 자신의 시편을 통해 거듭 확증되듯 밝음과 빛남을 통해 참 존재의 의미를 확인시키려고 노력하는 그 자신은 이 땅의 예언자적인 실체로서 흐트러짐을 거부한 겸허한 몸짓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실증해 주는 지극선(至極善)의 진정한 소유자다. 까닭에 안목의 바다는 늙은 소년에게 한 번에 두 가지를 건넨다. 환희와 비통임은 물로 그 자신은 천성적으로 따뜻한 심성을 소유하고 있기에 슬픔은/파도의 손길에 씻기며/견디는 법을 배웠고/기쁨은/갈매기울음 한 자락에/소망이 되어/몸속으로 스며들었다(안목 바다)”에서 그 나름의 차별성을 지닌 올곧은 시 정신은, 항상 영혼의 잔()을 천상을 지향해 비우려고 노력하며 단절과 애증이 아닌 열림과 화합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지극히 선하고 담백한 시적 상상력에 맞물려 있다.

   각론하고 항시 삶의 역주(力走) , 숨 고르기라는 과정을 통해 감춤의 비법을 터득하는 품격과 따뜻한 감성의 시인으로서, ‘모성의 본원(本源)인 바다는, 언제나 스승이 되어 가르침을 내리고 등대는 불빛을 밝혀 마음에 꽃을 피워 주기에’ “이 육신에 지혜로운 사랑의 씨앗을 심어/맑고 깨끗한 영혼의 꽃을 피워낼 때/비로소 향기로운 삶의 주인공으로/아름답게 살아가지 않겠습니까(안목 바다에서 띄우는 기도)”라며 그 자신을 물음 앞에 스스럼없이 놓아보는 행위는 못내 미덥다.

   모름지기 불확실한 시간대에도 기억할 것은 질서의 무너짐과 으깨어진 도덕성에서 비롯된 불감증(不感症)이다. 이 같은 정황에서 '분노, 시기심, 울부짖음, 예정된 이별 등'이 개인적인 그림자의 투사(投射)로 일어나는 제 현상을, ‘삶의 갈림길마다 지혜를 차곡차곡 쌓고 싶은 충동감으로 잘못 든 길마저 환히 밝히는/저 등대는 그 길을 걸어온 까닭까지/너그러이 보듬습니다(어느 바다의 가르침)”라는 그 삶의 경계는 엄숙할 것임에, 모처럼 갈매기는 파도의 품에 안겨 시린 계절을 건너가는 현상에서도 그 자신이 어두운 밤,/풍파에 쓰러지던 파도 소리를 딛고/바위 돌은 무수히 자리를 지킵니다(심곡深谷에 내리는 겨울 바다)”에서의 보기처럼 시적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미끄러짐의 시적 접근을 시도하고 긴장 뒤의 안도감을 안겨주는 시적 특이성은 독자의 지대한 관심사에 해당한다.

   또 한편 용서(容恕)’의 개념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통한 의도적이며 자발적인 과정이며, 쌓여가는 공격적인 마음을 가지고 복수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버리는 것에 비춰 망각의 늪에서 유일한 기적은 오직 용서뿐임을 경계하며 인간으로 한 뼘 더 훌쩍 성장하는 길/그것은 대단한 행운을 거머쥐는 일이 아니라/내가 용서한 만큼 삶의 축복으로 돌려받는/비움과 채움의 신비에 있습니다(안목 바다, 용서라는 이름의 축복)”에서 시적 상상력을 한층 더 확장할 수 있듯이 환경론의 선구자 레이첼 캇슨(Rachel Louise Carson)침묵의 봄에서 새가 사라진 거대한 숲의 침묵을 상상하여 볼 때한순간 우리를 엄습하는 불안과 초조, 그리고 공포의 구속으로부터 짐짓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시작(詩作)의 분할에 접근하면, 영혼의 잠식에 머무는 행위는 응당 합목적이다.

   결론적으로 시적 상상력을 확장하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이시키는 비공인 된 입법자인 전찬수 시인에게 거는 기대라면, 상처받은 타자와 불확실한 삶의 공간에 처할지라도 고독 앞에서 시적 감응의 공감대 형성이다. 까닭에 최소한 담백한 품격을 지닌 시인으로서 차별화된 어휘와 시 의식, 느낌과 육성이 날() 푸르게 깨어있는 존재이기를 거듭 요청한다. 모쪼록 무사독오(無師獨悟)의 자세로 빛과 향이 눈부신 존재의 꽃을 끊임없이 발화(發花)시켜야 하기에 인간의 소중한 생명을 끝내 사랑하고 또 배우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로서 시대적 소임의 온전한 역할수행이다.

 

 

* (참조) 약력 : 강릉태생, 『華虹詩壇』(1965) 발행인, 『시문학』출신, 한국시문학학회 및 김동명학회 회장, 심연수 시인 선양사업위원장, 관동대학교 대학원장(총장 대행)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한국기독교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아태문인협회 고문, 『모던포엠』주간, 사) k 정나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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