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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이문승 시집 평설

작성자엄창섭|작성시간26.06.16|조회수297 목록 댓글 0

 <이문승 제5 시집평설>

                 자연회귀의 만보(漫步)관조적 감응

                  - 이문승 시인,아름다운 삶의 동행과 시적 차별성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한국기독교문협 고문)

 

                  1. 영혼의 안식(安息)과 시적 형상화

 

    모름지기 이문승 시인은 내면 인식의 형상화인 시 쓰기를 즐기는 담백한 시격(詩格)의 소유자로서 지상에 갈 앉은 나직한 음성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부단히 일깨우는 진지한 삶의 자세는 이채롭다. 또 한편 그 자신의 시집아름다운 삶의 동행의 평설에 앞서 그 시편의 시적 감응은 천상병(千祥炳) 시인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歸天)”의 일면처럼 비록 죽음은 삶의 끝이고 단절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피하려는 현상과는 상이하게, ‘천상의 층계 오르는 일상의 과정인 영생의 통로로 수락하고 있기에, 인생의 후배인 평자를 깍듯이 엄창섭 장로님!’이라는 각별한 그 호명(呼名)은 짐짓 헤아릴 점이다.

    까닭에 우리의 소중한 삶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때로는 운명적임을 줄기차게 역설해온 평자의 경우, 현재 고문을 담당한 월간한맥문학지로 그것도 당시 주간으로서 평자의 중고등학교 은사인 원영동 시인을 통해서 등단한 사실이다. 또 한편 평자가 앞서 그 자신의 제3 시집인생명의 나무(고글, 2011) 평설에서 비교적 절제된 푸른 식물성 언어를 시어로 사용하며, 삶의 현장에서 체험한 오랜 경륜을 통해 심각한 언어공해로 고통을 받는 소외된 타자를 위하여 치유의 시학으로 변형시키려는 그 애씀과 배려의 관계 층위를 지적하여 서술한 그 감회(感懷)는 더없이 느껍다. 까닭에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삶의 구조로 의식하며 영혼의 잔을 비우는 삶에 열중해온 일련의 시편은 지나친 언어기호의 도식이나 언희(言戱)의 가식 없는 친화력이 돋보여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거부감이 없다.

   모처럼 시집의 자서(自序)낮은 산자락을 만보(漫步)하며에서 모국어에 대한 소중한 인식과 끊임없는 조탁(彫琢)은 오랜 방황을 끝으로 20여 년 남짓 그 나름으로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34년의 그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뒤, 푸른 식물성 언어로 상처받은 누군가의 영혼에 작은 꿈과 소망, 그리고 위로를 안겨주었음을 뒤돌아보면서,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리라는 기대감으로 따뜻한 감성을 절제된 언어로 시집을 묶어 존재의 뿌리인 혈연의 매듭인 가족과 주위의 소중한 이들, 그리고 그 삶의 정체성을 감사하는 심사(心事)를 공감하기로 스스럼없이 다짐한다.”에서의 결연한 일체의 집념은 서정성의 빛남을 결코 빗겨 가지 아니한다.

   특히 시집의 편집 구도는 自序(낮은 산자락을 만보(漫步)하며), 1부 아름다운 삶(21), 2시내산의 기도(28), 3세월을 가슴에 묻고(27), 4호수의 초승달(18), 5부 아름다운 마무리(부록 포함), 시집 평설(자연회귀의 만보(漫步)관조적 감응 - 이문승 시인, 아름다운 삶의 동행과 시적 차별성)”으로 결부(結付)된 그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만큼이나 지극히 인간적인 삶의 여적이 치밀하게 직조(織造)94편이 짜임새 있는 매듭으로 독자의 시선을 자극할 것이다. 한편 정신적 피폐함으로 궁핍한 시대에 처한 대다수 현대인에게 꿈의 날개를 달아주고 심상의 치유에 열중하는 작업은 창조적인 영혼의 행위에 잇닿아 있다.

    차제에 그 자신은 평자와 소중한 연이 닿아 현재 고문을 담당한 월간한맥문학지를 통해 등단하였음도 그렇거니와 비교적 시적 경향과 색조는 자연과의 조화를 유지하며, 탯줄을 묻은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이 섬세하고 친근미가 주어져 한층 더 인간의 진솔함으로 존재감이 못내 빛나는 추이(推移). 까닭에 그 자신의 담백한 격조(格調)는 정직하고도 새삼 아름다운 삶의 동행으로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 : 14-16)”라는 그 말씀에 의지해 지극히 맑은 영성으로 시 짓기에 주의 집중한 행위와 낙원(樂園)을 향한 올곧고 순수한 신앙은 못내 뜻깊다.

    어디까지나 푸른 식물성 언어를 즐겨 사용하는 그 자신이 이 지상에서 유일한 하늘의 언어인 감사에 충직한 탓에 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받쳐주고 있는 푸른 잎이 있기 때문일까?/이웃의 관심 덕분에 내가 있음의 감사(感謝). (낮아져야 행복하다)” 또한 그렇거니와 어울려 감싸주고 품어주는 도량으로/높여주고 어여삐 여겨주면서/차 한잔 마시면서도 감사하며/고마움 깊이 느끼는 정감 다감하다. (아름다운 삶)”라는 메르헨(Märchen)의 파동은 맑은 영혼과의 합일이다. 특히 영혼이 자유로운 바람처럼 그 자리에 머문 채 함께했던 시간 속을 떠도는현상에서 그 자신의 시적 형상화로 탕자처럼 부모 떠나 허랑방탕하여/모두 탕진하고 허허벌판 서 있을 때/측은(惻隱)히 여겨 일으켜 주신 고운 님. (감사와 희망)의 보기나 초라한 모세 기념 교회/십계명 받은 거룩한 땅/옷깃 여미며 신을 벗었네. (시내산의 기도)”담담히 묵언 끝에 응시하면 그 시격(詩格)추억을 반추하되 자맥질하는 시적 낌새다.

 

                      2. 초월적 시학과 상상력의 의미망

 

   모름지기 한 편의 시란,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영혼의 기도이기에 시의 본질인 일상의 서정성에 일체의 거부감 없이 고독한 고뇌를 이겨낼 평상심은 응당 회복할 중차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저토록 목숨의 바다 위로 비상하는 새처럼 무한 경쟁의 시간대에서도 역사적 소임을 온전히 수행하는 강인한 시적 차별성은 끝내 역동적이다. 이 같은 삶의 일상에서 초조와 긴장감을 지탱할지라도 생명 외경심의 존엄성을 자의적 은폐(隱蔽)로 수용하되 지극히 즉물적인 소재와 대상을 시적 질료로 따뜻한 서정성에 결합하여 그 자신의 절제된 감정으로 풀어내려는 진위(眞僞)는 못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까닭에 뜻대로 함부로 보낸 세월 뒤돌아보니 헛되고 헛될지라도그 자신이 잘했다 칭찬하며 들려준 음성은/동행하리라 희망 주시는 고마운 님이다. (감사의 희망)”에서 지극히 초월적 시학과 상상력의 의미망을 읊어내기에, 그 자신의 삶은 맑은 영혼에 투사(透寫)되어 다소의 아쉬움이 주어질 것이나 또 한편 아득한 유년의 시절에 외갓집에 심부름 갔던 기억 떠올리면 돌을 던지며 가라던 어머니의 말씀 생각/다섯 개를 주워 돌무더기에 던지고./빨리 지나갔던 기억이 새삼 생생하다. (외갓집 왕래길)” 또한 잊었던 지난날의 감응에 방울방울 비장감이 채색(彩色)된 정신풍경화다.

    또 한편 인생의 황혼기에 낮은 산자락 쉬엄쉬엄 보행(步行)하며 지나쳐온 삶을 가늠하며 단조로운 호흡에 담아낸 시편에서 가끔은 남은 인생 손잡고 함께 웃으며’ “베풀며 나누고 어울리는 아름다운 삶.//얍삽하게 궁색 떨지 말고/남을 위해 팍팍 쓰는 용기를 가질 때/그 축복이 내게로 돌아오리라. (아끼며 살리)”의 일면처럼 못내 잊고 지나치기 아쉬운 심사(心事), 최소한 정신작업의 종사자라면 작품을 가지고 말해야 하는 조건임에 직물 대상을 시적 질료로 형사(形似)한 그 존재감은 미덥다.

    어디까지나 비록 이슬 촉촉이 젖은 밤길을 걷는현상에서 그 자신이 무채색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바람 부는 날의 내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찾는  또한 숲속 가는 길처럼 희미하다원망이 그립거나 따뜻한 감성에 의한 정감으로 느껴질 때 때로는 직접 인용한 시편에서 확인되듯 못내 진정성이 묻어있는 한편의 시적 형사(形似)로 개아(個我)의 차별성은 그 존재감이 빛난다.

 

소중했던 아득한 시간/오래된 듯한 감회(感懷),/때로는 허상이 너울대며/사랑했던 추억을 두들긴다.//

마치 지난 세월을 비웃듯/축제의 가랑비가 내린다./흘러간 시간의 아픔에 가슴 열어/혼돈의 터에서 이륙할 것이다.//

                    -인연의 바다에서

 

돌에 넘어지는 반복 이겨내고/어둠 헤친 숨찬 가슴으로/가파른 길 계단 칠백 오십/조심조심 오른 정상(頂上)이다.//

초라한 모세 기념 교회/십계명 받은 거룩한 땅/옷깃 여미며 신을 벗었네.//

일곱 겹 첩첩 산울림에/운평선 길게 펴지더니,/반가운 미소 불쑥 솟는 장관/500의 함성 시내산에 진동이다.//

                    - 「시내산의 기도」에서

 

    각론하고 불꽃 튀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시 의식이 홀로 깨어있음으로 투명한 영혼의 소유자인 그 자신의 강직한 집념인 역사의식 또한 소박한 감성과 꽃의 현상학적 잠언에서 새삼 입증되기에 사람이 부는 풀피리 아니고/바람과 풀이 어울려 부르는 합창/신비한 하모니 풀피리 소리다. (풀피리 소리)”에서나 가끔은 배 타고 바라보는 낙화암일지라도 백제 말에 창건한 고란사 오르는데,/바위틈에서 미소지으며 반기는 고란초,/산자루에 둘러앉은 일행들/그 시대와 오늘을 비교하는 가슴이다. (삼천궁녀)”를 통한 또 하나의 문제의식은 혹여 정신작업의 종사자들이 미적 주권을 상실했을 때,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얽어매는 시대적인 불행임을 이처럼 경계한 시 심리의 의미망이다. 그렇다. 현대시의 양상에서 생경하고 심각한 언어유희(pun)가 정신적 공해의 요인임을 분별할 때 이 같은 시적 추이(推移)'물속에 놓여 있는 돌도 함부로 치우면 물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음'을 격앙된 어조로 역설하지 않아도 그 자신의 혈흔 같은 시적 감응을 역사의식과 영혼의 언어로 발현시킨 내재적 성찰의 일깨움은 더없이 이채롭다.

   그렇다. 다양한 글감을 시적 질료로 삼아 시적 형상화를 끊임없이 구사하며, 때때로 길 떠난 나그네 산천 풍광에 젖어 세속에 젖은 번뇌의 옷깃을 여미는그 자신의 경우, “신선한 산바람 따라 본전에 이르러/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을세라/마음을 가다듬고 두 손 모았네. (구인사의 풍경 소리)”의 보기도 그렇거니와 무관심으로 치닫는 삶의 일상에서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시적 작위(作爲)의 일념은 놀랍거니와 어느 날인가 문득 충남 홍성의 만해(萬海) 문학기념관을 찾아님의 침묵묵상하고 구국정신을 회고한 끝에이처럼 버스 안에서 시 낭송하면서/교류의 장 문학기행 한 마당,/덕산의 남연군 묘와 남은들 상여/그 시대와 오늘을 비교하게 하네. (설레는 문학기행)”라는 시 심리는 그 감회(感懷)가 새롭다.

    특히 빗발치는 총탄과 포화에 시체를 넘어 전진 후퇴 반복을 거듭하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육탄전을 통해 빼앗고 다시 뺏는 한국전쟁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 ‘신이여! 내일을 허락하소서’/참호 속 전우의 절박한 소망,/그 초병(哨兵)도 끝내 전사하고,/죽어가는 아우성 지독한 피비린내다. (백마고지의 함성)”라는 시적 정조(情調)는 못내 비장감이 묻어날 따름이다. 무엇보다 그 자신은 시의 본말(本末)이 서정시임을 확신하고 있음에 한국전쟁의 그 아픔도 초승달 비치는 골목 어귀, 속삭이며 손잡고 거니는 연인 사랑의 열매 익는 가을밤이여!’의 느낌처럼 신선한 생명감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감동을 회복하는 그 매혹(魅惑)의 역동성이다.

 

멀어지는 듯 높푸른 하늘이다./나의 공간이 조금씩 확장한 뒤에/큰 호흡으로 숨을 쉬고 잠시 묵언이다.//

변화하는 낙엽 찬란한 노을/소곤대며 이야기하는 별들/세월을 가슴에 묻는다.//

잡을 듯 닿을 듯한/주어진 환경에 만끽/하늘이고 선 나무 응시하다.//

                  -「세월을 가슴에 묻고」에서

 

   차제에 그 자신이 불안 심리와 초조감을 이겨내는 지혜로운 삶의 잠언(箴言)으로 기지개 켤 때를 어이 깨닫고 흙을 밀어내어 봄소식 전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도 눈 뜨고 움트는 순박한 자태다.//이목구비 안 보이는데/연쇄와 순환을 재촉/아련히 생동하는 진실 앞에서/신빈 느끼고 고개 숙인다. (봄이 오는 소리)”의 보기처럼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귀를 열어 놓고 생명의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 여유로움이다.

    또 한편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아 한층 불안한 사회현상에서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로서 이처럼 삶의 무게와 그 상처(trauma)를 존재의 꽃으로 형상화하여, 목가적 서정으로 빚어낸 에스프리(esprit)로 대변되는 자유분방한 시적 작위는 생명감이다. 또 한편 소소한 일상에서 즉물적 현상의 응시와 탐색의 과정을 걸쳐 때로는 충직한 독자를 몽유(夢遊)에 빠져들게 하는 그만의 매혹적인 비법이 새삼 신선함도 그렇거니와 문화의 21세기, 지역구심주의의 시대를 맞아 역사의식과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른 그 자신이 즐겨 시적 질료로 삼기에, ‘문학의 전통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언덕 위에 있는 동네다.’를 전제로 하여 시적으로 형상화한 석계 이시명 고택과 석천서당 자리해 있다./마을 앞 화매 천변 암석에 새겨진/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그때를 말한다. (문화 향기 풍기는 땅)은 그 느꺼움이 이채로운 정조다.

    까닭에 연작 시편인때를 가꾸는 삶 1에 이어 부귀만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빈천함을 업신여기는 것도 또한 옳지 않으니’ “물고기와 새우가 노는 물속에 몸을 잠그게 되며/군자(君子)도 때를 잃게 되면 소인(小人)에게 굽혀야 한다. (때를 가꾸는 삶 2)”에서도 새삼 확인되듯 치열한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산업정보화시대에 처한 이 땅의 충직한 독자에게 무관심은 죄악이다.’라는 가르침은 다양한 삶의 양상에서 지극히 교시적(敎示的)이다. 차제에 그 자신은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정신기후를 따뜻하게 조성하여, 생명경외(生命敬畏)의 존엄성을 목가적 서정으로 절절하게 시화(詩化)하였거니와 순수한 에스프리(esprit)의 소유자이다. 비록 아름다운 숲 예쁜 꽃, 맑은 시냇물 흘러도 언젠가는 혼자 가야 할 길일지라도 보따리 등에 메고 쉼 없이 가다가/춘풍추우 엄동설한 체험하고/천국 문에 이르러 감사하리로다. (나그네의 길)”에서 새삼 천상의 층계를 오르는 나그네의 발걸음의 템포는 행복에 겨워 스타카토(staccato)이나 그 배경은 더없이 감미로운 황홀감이다.

 

별빛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내어/숨어서 부르는 풀벌레 노랫소리,/늦가을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속삭이며 한껏 자기 자랑하는 열매.//

비바람 고운 햇볕에 감사하여/하늘 향하여 보답하는 합창 소리//

                  -「호수의 초승달」에서-

 

   위에 인용한 시편의 보기처럼 때때로 그 자신의 풀벌레와 열매들의 합창 되새기면 초승달 노니는 호수가 되어 주리라는다짐 또한 천상으로 날아올라 님의 눈썹 같은 초승달로 변형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각론하고 지저귀는 새소리의 희망찬 수다가 즐거움으로 내려앉는 싱그러운 햇살 반짝이는 아침 창가에서 경이롭게 수줍게 내려앉은 물안개는/풀잎에 이슬방울을 선사하고/아름다운 그 자태 뽐내는구나! (평강의 꽃)”의 일면처럼 혹여 푸른 생명의 계절이 총총히 오는 길목에서 간혹 우리가 접하는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작가의 책임에서 작가의 책임은 명백하다. 바로 그것은 자유와 해방의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하였듯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이탈의 여유로움은 한순간의 정신적 위안의 맞물림이다.

 

                 3. 열린 우주의 향방과 시적 작위(作爲)

 

    어디까지나 특정한 시인의 경우는 아니더라도 개아(個我)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창조적 작업은 시적 상상력의 맞물림이다. 까닭에 그 자신의 시편은 언어 질서에 의해 통일된 체계의 유지와 전통의 재확인이라는 일면에서 우주의 신비를 캐어내는 현상이 가늠되기에 결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비록 불확실한 시대에 처한 그 암울함을 충격적으로 안겨주는 항목들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기억 흔적에 남겨두어야 할 것은 질서의 무너짐과 으깨어진 도덕성의 불감증이다. 그 같은 양상에서 그 자신은 존재의 뿌리인 가정(家庭)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시적 소재로 각별하게 다루면서 부모에 대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음도 유념할 일이다. 차제에 그 자신이 낮은 산자락의 하찮은 풀꽃을 묵언으로 응시하면서도 평생을 힘겹게 노역(勞役)의 현장에서 떠날 수 없었던 지극한 모정(母情)에 대한 뼈아픈 기억의 잔흔(殘痕)은 다정다감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그 자신의 선한 심성은 모질지 아니하다는 것을 재인시켜줄 것이다. 따라서 평자의 어설픈 변명일지라도 우리가 끙끙거리며 고민하지 않더라도 그만의 시편에서 쉽게 파악되는 것은 이팔청춘 결혼하여서 뿌린 씨앗 좋은 밭에서 자라난 태의 열매에 견주어질 일이기에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새로운 생명/조리원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이 세상,/간호사가 안고 나와 창가에서 보이는데/이목구비와 수족 오장 육부는/그 사대육신 육천 마디의 뼈다. (새 생명)”의 맞물림이기에 영원한 모성의 지극한 사랑은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으로 자리해 있다. 모처럼 다양한 색조(色調)로 시의 지평을 열어 보인 그 자신의 시편에서 통상적인 미적 세계의 창조라는 고정관념에 항변하지 않음은 다시금 가늠할 일이다.

    까닭에 그 자신의 존재감은 등단 직후부터 5권의 시집을 묶어낸 시력(詩歷)에 견주어 천성적으로 맑은 영성(靈性)의 소유자이다. 이 같은 일면은 앞서 출간한 제4 시집인좋은 인연의 향기에 수록된 그의 시편으로 삶의 일상에서 믿음의 간증이고 고백인창조주는 우리의 보호자,기다리는 마음,순종과 축복에서도 확증된다. 따라서 평자와 소중한 연()이 닿은 탓으로 시집 평설을 가늠하며 각별한 기대라면, 영감의 비의(秘意)를 매듭짓고 작은 신의 대행자로서의 엄숙한 역할수행이다. 또 한편 타자 간의 깊은 상처(trauma)의 치유를 위해 피 멍든 손으로 영혼의 닻줄을 움켜잡아야 한다. 그렇다. 엘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시인의 명성을 갖는 것보다 시적인 가슴(詩心)을 갖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라는 그 역설은 창조주 앞에서 절대적 신앙과 () 푸른 불멸의 시혼에 의한 인간 관계성의 회복이다.

    그렇다. 지상에 갈 앉은 나직한 통곡으로 따뜻한 감성을 부단히 일깨우며, 치유의 시학으로 철저하게 장식된 그 자신의 시집에 채색된 영원한 모성(母性)의 정감은 더없이 다감(多感)하다. 또 한편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그 자신의 체취와 느낌이 강한 감동의 느낌표(!), 시집의 편집 목차 중5부 아름다운 마무리(부록 포함)에서 그 자신의 공직생활을 포함해 몸소 체험한 다양한 삶의 기록인 1. 노인의 8등급, 2. 주례사 모음, 3. 언약(言約)의 축복, 4. 아름다운 삶의 잠언(箴言), 5. 지혜로운 삶의 교시(敎示), 6. 행복의 문을 여는 키워드, 7. 저자 그 삶의 여적(餘滴)’도 공동의 관심사(關心事)로 지극히 한 번쯤은 헤아려볼 점이다.

    결론적으로 천상의 별을 지상의 꽃말로 상징화하여 생명 외경의 소중함을 절실히 읊어낸 이문승 시인이 절박한 삶의 문제 앞에서 얼마나 고뇌할 것인가의 양상과도 결속될 것이다. 까닭에 오랜 날 영혼의 잔을 비우려는 내적 성숙으로 구도적인 삶을 일깨워 온 그 자신의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는 일면에서 천성적인 시인으로 일컬어도 결코 거부감은 없다. 모쪼록 평자 그 나름의 절실한 기대치라면, 소외된 타자 간의 관계성 회복을 위해 끝내 언어의 식별력과 자존감을 켜켜이 지켜내되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차별화된 따뜻한 정신기후의 조성을 위한 엄숙한 역할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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