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베트남 알아보기-8> 전통의상 "아오자이"

작성자해오름빛|작성시간08.06.16|조회수775 목록 댓글 0

흔히 베트남의 전통의상 하면 '아오자이'를 떠올린다. 아오자이는 베트남어의 '아오(상의)'와 '자이(긴)'의 합성어로 '긴 상의'라는 의미이다.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아오자이의 모습은 베트남의 고유한 전통의복이라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시대와 역사적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이 수 없이 변해왔기 때문이다.

아오자이의 전신은 앞이 터진 보통의 상의에 양쪽 옆을 갈라놓은 옷(四身服)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중국의 복식영향을 받기 전까지 하의는 치마였다. 상의는 단추를 중앙에서 오른쪽 옆으로 달고 옷자락을 양쪽 허리까지 갈라놓았다. 따라서 상의는 앞이 막혀지고 대신에 양쪽 옆이 길게 터진 형태가 되었다. 이때 상의 옷자락은 발끝까지 내려온다.

현대 아오자이의 원형은 18세기에 이르러 중남쪽 지방의 응우엔 푹 코앗(Nguyen Phuc Khoat)영주가 북쪽지방 사람들과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여성의 치마 착용을 금지하고 대신 바지를 입게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유행하는 신식 아오자이 형태는 1930년대 유명한 화가 레포(Le Pho)와 갓 뜨엉(Cat Tuong) 두 사람의 작품이다. 1930년 갓 뜨엉(Cat Tuong)이 내 놓은 서양식 스타일의 아오자이 '르 무(Le Mur)'는 완전히 서구식으로 재단, 봉제돼 폭넓은 소매와 연잎(혹은 대수평잎)모양의 깃이 특징이었다.

특히 이 옷은 당시 최고의 패션잡지인 폼호아(Phong Hoa)지를 통하여 새로운 개념의 아오자이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나 지나치게 서구편향적이라 베트남 전통과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4년 후인 1934년에 이르러 레 포(Le Pho)가 르 무(Le Mur)의 개선에 나서 서구편향적인 면을 줄이고 전통성과 조화를 이뤄 새롭고도 전통미가 있는 아오자이를 선보였다. 전통과 서구문화를 조화하여 만들어낸 이 아오자이야 말로 현재까지 이르는 베트남의 현대식 아오자이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신식 아오자이의 특징은 색상의 다양화로 기존의 어두운 색상에서 벗어났다. 몸에 꽉 달라붙고 가슴이 두드러지고 허리부분이 꼭 맞도록 단정하게 만들어졌다. 옆구리의 트임이 위로 더 높아져 옆구리의 갈비뼈 부분이 드러났으며 부드럽고 얇은 천으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신식 아오자이는 여인의 신체를 단정하고 비밀스러우며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한다는 평가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 아오자이는 선정적이며 비생산적인 자본주의식 퇴폐복장이라는 이유로 10여년간 착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아오자이가 베트남 사회 전면에 재등장한 것은 베트남 개방개혁의 물결을 타고 종전 이후 처음으로 1989년 후에(Hue) 페스티벌에서 아오자이 패션쇼가 다시 열리면서 부터이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직장 여성들이나 호텔 종업원들이 아오자이를 즐겨 입으면서 다시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아오자이는 베트남의 시대적, 역사적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천하며 베트남 문화의 영원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