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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칼빈의 구원론의 중심과 본질

작성자미리네|작성시간11.12.10|조회수925 목록 댓글 0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과 본질: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과 "이중은혜"(Duplex Gratia)

 

 

김 은 수 (Ph. D., 숭실대, 조직신학)

 

 

I. 들어가는 말

 

 

구원(salvation)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기독교 신앙과 복음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말하는 "이신칭의" 교리(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alone)를 기독교가 "죽고 사는" 문제라고 주장했고, 바로 이것으로 종교개혁의 신기원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칼빈 신학에서도 구원론은 언제나 그 중심에 놓여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일부 기독인들에 있어 신행일치의 삶이 수행되지 못하는 문제가 상존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국교회의 구원론 이해에 있어 "이신칭의"가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소위 "값싼 은혜"가 난무함으로서, "성화 없는 칭의"(justification without sanctification)가 기독인들의 이분법적인 삶의 문제를 노정하게 되는 중요한 하나의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원이해는 더 나아가 율법과 은혜, 믿음과 행위,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원론적인 분열현상을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곧바로 기독교에 대한 대중의 절제되지 않은 공격적이고도 악의적인 비판에 교회를 노출 시키게 하며, 결과적으로 한국교회의 대사회적인 영향력 저하와 전도/선교적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노정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칭의론에서는 일방적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와 믿음을 강조하지만, 또한 성화론에서는 인간의 노력과 선행의 열매를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서 전체 구원론의 이해에 있어 믿음과 행위, 은혜와 공로적 선행의 개념이 서로 혼동되거나 분리되는 한국교회의 구원론에 대한 불균형적인 이해와 실천적 오류는 이런 문제에 적절한 처방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점과 관련하여 최근에는 성화의 이해와 관련한 신율법주의적 경향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덧붙여, 구원 이해에 있어 너무 개인 영혼의 구원이라는 측면만이 과도하게 강조됨으로서 공동체적인 측면이 무시되거나 균형있게 제시되지 못함으로서 동일한 성령의 내적사역(구원론)과 외적사역(교회론)이 서로 심각하게 괴리되는 현상이 첨예화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성령론 이해와 관련하여 설교 강단에서 은사와 축복, 상급과 보상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믿음의 결단과 공로적 행위에 대한 강조와 결합되어 현세에 있어 성공을 믿음의 축복으로 둔갑시키는 개인주의적 기복주의 신앙과 상급주의 신앙으로 연결되고, 또한 성령의 열매를 도외시하는 은사주의 신앙을 강조함으로서 한국 교회의 구원론 이해를 더욱 왜곡시키고 있다. 그리고 계속되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 대한 신학적 논란도 이러한 논란에 일조하는 경향이 있다. 즉, 엄밀하게 논리적으로 구원의 순서를 조직화 하려는 다양한 시도 자체에 대한 신학적인 논란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구원의 첫 단추가 한번 끼워지면 그러한 구원의 순서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자동적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처럼 인식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구원론 이해와 교회적 실천에 있어 여러 가지 문제 인식에 따라, 우리는 성경적인 구원 이해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믿음과 행위, 칭의와 성화의 관계에 대한 이해 문제와 관련하여 종교개혁기에 로마 카톨릭과 루터파 사이의 구원론 논쟁을 극복할 수 있는 성경적 이해를 통하여 개혁주의 구원론을 정립함에 있어 기초 토대를 놓은 칼빈의 구원론의 핵심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의 구원론 이해와 실천적 오류를 바로 잡는데 있어서도 크게 유용할 것이다.

그리므로 칼빈의 구원론을 이해함에 있어 본 논문에서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주된 논지는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며, 이것의 결과로 동시적(simul)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중은혜"(duplex gratia), 곧 칭의(iustificatio)와 성화(sanctificatio)가 칼빈의 구원론 이해의 본질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구원사건에 있어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적 관계성(inseparable relationship)과 동시성(simultaneity)을 함께 이해함으로서 믿음과 행위, 칭의와 성화의 관계문제 뿐만 아니라 구원의 서정(ordo salutis)과 관련된 오랜 논쟁도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의 개념을 통해 우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신자 개인들에게 분여하고 적용하는 구원론의 주관적인 측면을 객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체 구속사(historia salutis)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구원사건을 개인적인 구원론적 측면과 공동체적(교회론적) 측면을 보다 통합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고에서 필자는 칼빈이 말하는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으로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 결과로서 주어지는 이중은혜, 곧 칭의와 성화의 올바른 관계가 어떠한지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론 이해에 있어 핵심논점인 "칼케돈 원칙"(Chalcedonian axiom), 즉 "반드시 서로 구별되어야 하지만 서로 혼동되거나 분리되어서도 안된다"(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라는 원리에 의하여 이해되어야 함을 밝히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이러한 "칼케돈 원칙"을 전체 구원론 논의의 주요한 틀뿐만 아니라 각론의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비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므로, 이 원리가 각 논쟁점에 있어 칼빈의 입장과 견해를 바르게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해석적 원리(the hermeneutical principle)의 하나로 고려되어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II.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

 

 

1.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에는 그 무엇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 the union with Christ)이라는 핵심 사상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이 개념이 칼빈 신학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의 "중심 교의"(a central dogma)라고 주장하기엔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그의 구원론의 기초는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시는 구속의 은혜는 오직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서 우리의 것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이다. 즉, 칼빈의 논의를 따르자면, 먼저 "하나님께서는 [충만한] 생명이 감추어져 자신 안에 묻어두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아들 안에 그것을 부어주셨고, 그것은 우리에게로 흘러 넘쳤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 안으로 숨쉬어진 생명이외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질 때 생명이 있으며 그와 함께 동일한 생명을 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없이 생명의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칼빈은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그가 멀리서 나타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그의 몸에 접붙이셔서 그의 모든 은혜뿐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받게 하시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insito in Christum)으로서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이 아니라 그의 전체를 받는다.

 

아버지께서 독생자에게 주신 유익들은 그리스도 자신이 사적으로 쓰시기 위한 것이 아니고, 빈곤하고 곤궁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 유익들을 어떻게 받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밖에 계시고 우리가 그와 떨어져 있는 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그가 고난당하시며 행하신 일은 모두가 우리에게 무용, 무가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의 것이 되며 우리 안에 계셔야 했다. 그러므로 그를 우리의 "머리"(엡 4:15),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롬 8:29)이라고 하였다. 또 우리 편에서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으며(롬 11:17), "그리스도로 옷입는다"고 하였다(갈 3:27). 이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그와 한 몸이 되기까지는 그가 가지신 것이,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것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 . . 우리는 더 높은 견지에서 성령의 신비로운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사리에 닿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의 작용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유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 . .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띠(vinculum)는 바로 성령(the Holy Spirit)이시다.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이다. 즉, 성령이야말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시는 띠(vinculum)"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인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기독론)과 성령의 구원사역(구원론)은 하나로 연결된다. 이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덕들을 우리에게 개인적이며 주관적으로 적용하시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구조를 통하여 객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historia salutis)에 연결되며 통합됨을 의미한다. 또한 내재적 삼위일체(the immanent Trinity)에 있어 성령은 이미 성자와 성부의 위격적 연합(hypostatic union)을 위한 "사랑의 띠"(vinculum charitatis; the bond of love)이시다. 우리는 그 동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연합됨으로서 하나님의 이중은혜(duplex gratia - 칭의와 성화)를 받으며 나아가 "하나님과의 연합"(the union with God; cf. Inst. III.vi.2; III.xxv.2)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양자의 영"(the Spirit of adoption)이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과의 연합에 참여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의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한 유일한 결합은 그리스도에게 연합하는 것이다(the only bond of our union with God is, to be united to Christ)"라고 한다.

 

성부께서는 성자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지만, 그러나 특별히 성자에게 성령을 아주 충만하게(the whole fullness) 부어주심으로 그의 풍성한 은혜의 수종자와 청지기로 삼으셨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성령은 때로는 "아버지의 영"이라 불리고, 또 때로는 "아들의 영"이라 불리운다. . . .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실 성령의 선물들은 그리스도께서 맡아가지고 계신다. . . . 또한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the eternal Word of God; [i.e., 영원한 내재적 삼위일체 속에서의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동일한 영(the same Spirit)으로 성부에게 연합되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중보자(the Mediator; [i.e., 경륜적 삼위일체 속에서의 성자 하나님])로서의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 . . "생명을 주시는 영"(a life-giving spirit; [i.e., "살려주는 영"], 고전 15:45)이신 . . . 성자께서는 이 독특한 생명을 그 자신의 백성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그들에게 불어 넣으신다. . . . 따라서 "성령의 교통하심"(고후 13:14)이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볼 수가 없다.

 

프랑소와 방델(F. Wendel)은 이러한 사실들을 요약하여 말하기를,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마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인 것과 같이 성령은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의 없어서는 안될 중보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의 필수적인 도구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성령은 칭의와 중생 안에서 이 구속이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있어 필수적인 수단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의 교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는 띠(the bond of our union with Christ)이시고, 그리스도는 다시 우리를 하나님에게 연합시키는 띠(the bond of our union with God)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이 말하는 신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the communion of the Triune God)에 참여하는 삼위일체론적 구원론(trinitarian soteriology)의 총체적인 본질이다. 이러한 모든 논의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 성령 성자의 (인성 : 신성) 삼위일체 하나님

the Elected<->(the Holy Spirit)<->[the Humanity:the Divinity]<->(the Holy Spirit)<->God the Father

of the Son the Communion of the Trinity

unio mystica unio hypostatica Unio Hypostatica

(신비적 연합) (위격적 연합)

 

 

2. 칼빈에게 있어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의 의미

 

칼빈신학 전체 혹은 최소한 그의 구원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는 먼저 칼빈이 이것을 통하여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데니스 탐부렐로(Dennis E. Tamburello)의 연구에 따르면, 칼빈은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다음과 같은 다양한 용어로서 설명하고 있다: "접붙여짐" (engrafting), "교통"(communion), "친교"(fellowship), "한 몸됨 / 영적결혼"(one flesh/spiritual marriage), "영적 연합"(spiritual union),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 "함께 자라감 / 하나됨" (growing together/becoming one), "하나님과의 연합"(union with God), "그리스도에게 참여함" (partakers of Christ), etc.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이와 같은 다양한 표현들을 분석함으로서 칼빈이 말하는 "연합"의 본질적인 의미와 이것이 그 결과로 나타나는 구원론의 다양한 측면들, 즉 믿음, 칭의, 성화(중생) 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칼빈의 이해에 따르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일종의 "신비적인 연합"(unio mystica)이다. 이것은 칼빈이 의미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본질과 특징이 과연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의 짧은 인용문에서 칼빈이 이러한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표현으로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머리와 지체들과의 연합,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내주하시는 것(indwelling), 간단히 말하면, 신비적 연합(mystica . . . unio)은 우리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것이 되심으로써 그가 받은 선물들을 우리도 나눠가지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밖에 계신 그리스도를 멀리서 바라봄으로써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옷입으며(put on Christ) 그의 몸에 접붙여지기(engrafted into his body) 때문에, 간단히 말해서 그가 우리를 하나로 만드시기 때문에(to make us one with him)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imputed to us)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의의 친교(fellowship of righteousness with him)를 가졌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칼빈이 말하는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으로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칼빈이 말하는 "신비적인 연합"으로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어떤 영지주의적 제의나 밀교적인 황홀경의 체험 혹은 단순히 하나의 상징적이거나 수사적(figurative)인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자들과 그리스도 사이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실재적"(real)인 연합을 의미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러므로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의 것이 되며 우리 안에 계셔야 했다. 그러므로 그를 우리의 '머리'(엡 4:15),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롬 8:29)이라고 하였다. 또 우리 편에서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으며(engrafted into him; 롬 11:17), '그리스도로 옷입는다'고 하였다(put on Christ; 갈 3:27)."

그는 이러한 연합의 실재성을 고전 11:24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확언컨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것이 되심은 그가 우리를 위한 희생이 되셨음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며(dwells in us), 우리와 하나가 되심(one with us)으로서 우리가 그의 몸의 지체가 될 때(엡 5:30), 즉 우리가 그와 함께 일체가 되어져(incorporated with him) 하나의 생명과 실체(one life and substance)가 될 때이다." 칼빈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이러한 연합은 "실재적"(really)인 것으로서, "참으로"(truly)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끓을 수 없는 교제의 유대로 우리와 꼭 붙어 계실 뿐 아니라 놀라운 영적 교통에 의하여 날마다 더욱더 우리와 한 몸(one body)이 되시며, 드디어 완전히 일체가 되실 때까지 그리하신다." 심지어 그는 이러한 "연합"의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실체"(substantia, 혹은 "본질")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결혼의 유비"(analogy of marriage)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연합만이 . . . 우리로 하여금 그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가 되게 하여 저 거룩한 결혼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엡 5:30)."

결혼을 통한 연합은 . . . 우리가 그리스도와 가지는 신비한 결합을 말하는 놀라운 말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몸과 살, 그리고 뼈의 지체들이 되기 때문이다. . . . 마치 하와가 그의 남편의 실체(substance)로부터 이루어졌고, 그럼으로써 그의 일부분이 되어졌던 것처럼, 만일 우리도 참된 그리스도의 지체라면 그의 실체(substance)를 나누며, 이러한 교제를 통하여 그의 몸으로 연합된다. . . . 이와 같은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의 연합은 그가 우리를 그의 실체(substance)에 참여하게 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의 뼈 중의 뼈요, 그의 살 중의 살이다"(창 2:23). 그것은 그가 우리처럼 인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그의 몸의 일부로 만드셔서 그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이 말하는 그러한 "실체"(substance)에 의한 "실재적"인 신비적 연합은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어떤 "본질의 혼합" 혹은 "존재론적 혼합"(a mixture of essence)을 말함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루터파 신학자인 오시안더(Andrea Osiander)를 논박하는 가운데 분명히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하나이시며, 우리가 그와 하나인 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 . . 그러나 그리스도의 본질과 우리의 본질이 혼합된다고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어 결단코 "그리스도의 본질과 우리의 본질이 섞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혼합"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라고 강력하게 논박한다. 왜냐하면, 칼빈에 있어 신성과 인성이 서로 혼합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진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이 하나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으로서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을 말함에 있어 바로 기독론에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위격적 연합(unio hypostatica; hypostatic union)을 설명할 때 사용된 "칼케돈 원칙"(Chalcedonian axiom) - 반드시 서로 "구별되어야 하지만 혼합되지도 않고 또한 나누어지지 않는다"(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 - 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이 하나의 "신비적 연합"인 것처럼,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연합 또한 유비적으로 분명히 실제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으로서 그리스도와 신자들(i.e., 교회)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도록 참으로 하나가 되지만 또한 서로 혼합되지 않으며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으로 참으로, 그리고 실재적으로 하나가 되지만 서로 혼합되지 않고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머리와 지체들의 결합"이며(Inst. III.xi.10),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의 지체, 곧 몸이다(cf. 엡 4:15-16; 4:23, 30; Inst. III.xi.5).

그렇다면 이러한 신자들과 그리스도 사이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은 오직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영적인 연합"(spiritual union)이다. 참으로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의 신비한 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와의 친교(communion with Christ)를 . . . 우리는 더 높은 견지에서 성령의 신비로운 역사(the secret energy of the Spirit)를 검토하는 것이 사리에 닿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의 작용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유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 . .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띠는 성령이다(the Holy Sprit is the bond by which Christ effectually unites us to himself).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오직 "그리스도는 성령으로서만 우리와 결합하신다. 동일한 영의 은혜와 힘에 의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의 아래에 두시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덕들을 신자들에게 적용하는 사역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으로 이해함으로써 성령의 주권적인 권위를 회복시킨 것은 칼빈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공헌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함에 있어 우리의 "믿음"(faith)을 통한 연합을 강조한다. 즉, 칼빈에 따르면, "성령이 하시는 가장 주요한 일은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성령은 믿음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한다. . . . 성령은 믿음의 근원이며 원인이다"(Inst. III.ii.33.). "성령만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 하신다"(Inst. III.ii.34.). "믿음은 특히 성령의 특별한 사역인바 그 믿음을 성령에게서 분리시키려는 것은 성령을 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Inst. III.ii.39.). 그렇다면 성령과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며, 이 믿음을 통하여(도구로 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연합하게 하신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믿음과 그리스도와 연합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로, 값없이 주신 약속에 도달하기까지는 믿음이 견고하게 설 수 없다. 둘째로,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결하지 않으면 믿음은 우리와 하나님을 전혀 화해시키지 못한다. . . . 그러나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구원하는 믿음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이해를 중심으로 우리는 칼빈의 구원론의 전체적인 논의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 할 수 있을 것이다:

[ 성령 --> 믿음 --> 그리스도와의 연합 --> 이중은혜 (칭의 / 성화) ]

(Spiritus Sanctus) (Fide) (Unio cum Christo) (Duplex Gratia)

이와 같이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오직 우리의 믿음을 도구로 하여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이 이루어짐으로서 그리스도의 온갖 좋은 구원의 유익들이 우리에게 주어짐을 알 수 있다. 즉, 칼빈에 의하면 우리에게 있어 성화와 칭의는 모두 믿음을 통하여(through faith) 동시적으로(simul) 얻게 되는 이중은혜인 것이다: "회개[=중생, 성화]와 죄의 용서[=칭의]는 - 곧 새로운 삶과 거저 얻는 화해는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음을 통하여 얻는다." 이러한 모든 논의를 칼빈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요약하자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조명하심으로서 믿음을 가지게 하실 때, 동시적으로 우리를 자신의 몸에 접붙이시므로 우리는 모든 좋은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 이제 그러한 연합의 결과로 주어지는 축복, 곧 "이중은혜"(duplex gratia)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III. 칼빈의 구원론의 본질: "이중은혜"(Duplex Gratia)

 

칼빈에 의하면, 먼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접붙이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고, 그 결과로서 "이중은혜"(duplex gratia), 곧 칭의(iustificatio)와 성화(sanctificatio)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그 결과로써 주어지는 이중은혜(duplex gratia) - 칭의와 성화 - 는 칼빈의 구원론의 본질적인 내용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에 기초한 이중은혜에 대한 독특한 이해에 따라 칼빈에게 있어 칭의와 성화는 서로 동시적(simul)이며 불가분리적인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칼빈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단지 칭의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화를 위해서도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붙잡도록 해야 한다. 이는 그를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목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는 의와 죄의 용서와 화평을 위해 우리에게 보내지셨을 뿐만 아니라 성화(sanctification)를 위해서(고전 1:30 참조), 그리고 생명수의 원천으로서(요 7:38; 4:14 참조) 보내지셨으므로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성화까지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리스도를 충분히 알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이 칼빈이 칭의와 성화를 "반드시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지만 서로 혼동하거나 분리될 수 없는"(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동시적"(simul)으로 누리게 되는 서로 구별된 하나님의 은혜의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한 것은 신학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칭의와 성화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에 의해 동시적으로 주어지는 이중의 은혜로 파악함으로서 칼빈은 종교개혁의 구원론 논쟁을 성경적으로 올바로 교정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먼저 칼빈이 말하는 이중은혜의 정확한 개념과 그것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1. 이중은혜(Duplex Gratia)의 개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칼빈에 따르면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을 도구로 하여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을 이루고, 그 결과로써 칭의(iustificatio)와 성화(sanctificatio)의 이중의 은혜(duplicem gratiam; a double grace)를 입는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그를 붙잡고 소유하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써 우리는 이중의 은혜 (duplicem gratiam)를 받는다. 첫째는 무죄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함으로써 우리가 하늘의 심판자대신 은혜로운 아버지를 소유할 수 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성화됨으로써 우리는 흠 없고 순결한 생활을 신장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칼빈에 의하면 칭의도 오직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요, 성화도 오직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이 성령의 주권적 사역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중은혜(duplex gratia), 곧 칭의와 성화이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들과의 연합을 말함에 있어 일종의 "이중연합"(the twofold communion with Christ)에 대하여 말하는데, 물론 이것은 각각 정확하게 칭의와 성화의 이중은혜(the twofold grace)에 상응하는 것이다. 먼저 그는 갈 2:20에 대한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두 가지 방법(two ways)으로 사신다. 하나는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행위들을 다스리시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를 그의 의에 참여자가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에 의해 그에게 받아들여지게 하시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것은 중생(regeneration)에 관계되고, 두 번째는 거저주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칭의(justification)에 관계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중연합의 개념을 칼빈이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에게 보낸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설명에 의하면, 첫 번째 연합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는 것이며, 두 번째 연합은 "첫 번째의 열매와 효과"인데, 그리스도께서 영적 은사들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것이다. 탐부렐로(Tamburello)의 분석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첫 번째의 것은 "전체적"(total)인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두 번째의 것은 "부분적"(partial)이며 "성장하는 것"(grows)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칼빈에게 있어 칭의는 항상 "전체적"이지만 성화는 항상 "부분적"으로 설명되는 것에 아주 정확하게 상응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우리의 참여는 "전체적"(total)인 반면에, 중생(성화)의 연합은 "부분적"(partial)이고 "점진적"(progressive)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칼빈이 말하는 이러한 "이중연합"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연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합에 불가결하게 두 가지 측면, 곧 "이중은혜"(duplex gratia)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결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중은혜는 칭의와 성화이며, 그것은 서로 구별되지만 동시적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2. 칭의와 성화의 관계

 

(1) "칼케돈 원칙"(Chalcedonian Axiom) - 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

 

그렇다면 칭의와 성화는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가? 로마 카톨릭은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 혼동함으로서 인간의 믿음과 함께 선행의 공로에 근거한 칭의를 주장하였고, 또한 루터는 칭의와 성화를 분리시킴으로서 칭의를 일방적으로 강조한 반면 성화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칼빈은 이 두 가지 오류들을 성경적으로 교정하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 자체가 칭의와 성화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그의 대안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에 근거한 "이중은혜"(duplex gratia)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칭의와 성화는 서로 혼동되거나 혼합되지 않고 반드시 구별되어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cf. Inst. III.xi.1, 6). 칼빈은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한다: "칭의의 은혜와 중생은 서로 다른 일이지만 동시에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의인에게도 죄의 흔적이 항상 남아있다는 것은 경험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므로 그들의 칭의와 생활의 변화(롬 6:4 참조)는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 칭의와 성화는 불가분리적(inseparable)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성화 없는 칭의는 있을 수가 없고 그 역 또한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먼저 "그리스도의 은혜인 성화와 [칭]의는 서로 다르다"(the benefits of Christ - sanctification and righteousness - are different)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실제적인 거룩한 생활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의의 전가로 부터 분리될 수 없다"(nevertheless actual holiness of life is not separated from free imputation of righteousness)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은 칭의와 성화는 결코 서로 분리(separatio)될 수 없는 끈(i.e.,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결합된 것이 때문에 만일 이것을 분리시키면 그리스도의 몸을 조각조각 찢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칭의와 성화는 서로 혼동(confusio)될 수도 없으며, 반드시 구별(distinctio)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결과로 주어지는 이중은혜(duplex gratia)인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칼빈이 소위 "칼케돈 원칙" (Chalcedonian axiom) - "서로 구별되어야 하지만 혼동되지도 않고 또한 나누어지지 않는다" (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 - 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적인 관계에 대하여 칼빈은 고전 1:30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둘째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i.e., justification)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용서함을 받았으며, 그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됨으로써 의롭게 되었다. 믿음의 [칭]의는 죄의 용서와 은혜의 용납하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다. 셋째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성화(sanctification)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본성적으로 불의한 우리가 그의 영으로 거듭나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리는 동시에(simul) 거룩한 삶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은혜의 선물은 서로 나눌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만일 그것을 나누려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조각조각 찢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다함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동시에(simul) 성화를 위해 그를 붙들지 않으면, 곧 삶의 거룩함과 순전함으로 거듭남이 없이는 이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믿음으로 값없이 칭의를 얻는다는 설교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람들에게 선행을 중지시킨다고 비난하는 자들을 이 구절은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용서와 함께 똑같이 중생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논박하고 있다. 러나 그리스도의 두 가지 사역은 그러한 방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에서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을 혼동하는 잘못은 허용될 수 없다.

 

 

(2) 칭의와 성화의 "동시성"(Simultaneity)

칼빈에 의하면 칭의와 성화는 어떤 시간적인 연대기적 순서나, 인과적인 관계, 혹은 목적론적인 관계에 있지 아니하다. 즉, 칭의가 성화에 시간적으로 앞서는 것도 아니며, 또한 칭의가 성화의 원인도 아닐뿐더러, 성화가 칭의의 결과적 산물이거나 목적도 아니다. 칼빈에게 있어 칭의와 성화는 신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으로서, 그 결과로서 신자들에게 서로 "동시적"(simul)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서로 구별되지만 나누일 수 없는"(distinctio sed non separatio) 그리스도의 은덕들(beneficia Christi)이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칭의와 성화 모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의 결과로서 우리에게 "동시적"(simul)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칼빈에게 있어 "구원의 축복들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배타적으로, 즉각적으로, 동시적으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exclusively, immediately, simultaneously and eschatologically) 우리의 것이 된다." 칼빈은 그와 같은 칭의와 성화의 동시성(simultaneity)과 불가분리적인 관계성(inseparable relationship)을 다음과 같은 명제로 아주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동시에 성화시키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칭의시키지 않는다"(nullum ergo Christus iustificat quem non simul sanctificat).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하여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가?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기 때문이며, 또한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만 하나님과 화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simul) 성화를 붙잡지 않고서는 이것을 취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의로움과 지혜와 성화와 구속이 되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고전 1:3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동시에 성화시키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칭의시키지 않는다 (nullum ergo Christus iustificat quem non simul sanctificat). 이 은혜들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유대관계에 의해 서로 결합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지혜로 조명하신 사람들을 구속하시며, 구속하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며, 의롭다 하신 자들을 또한 거룩하게 하신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칭]의와 성화가 문제가 되어 있으므로, 이것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비록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이 둘을 분리할 수 없도록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얻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성화에 참여함이 없이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조각조각 나누일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 1:13).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은혜들을 주시며 우리가 이 은혜들을 누리게 하시는 방법은 오직 그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뿐이므로, 그는 두 가지를 동시에(simul) 함께 주시며, 하나가 없이는 결코 다른 하나도 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도 아니며, 또한 행위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참여함으로써 의롭다함을 받으며, 그것은 [칭]의에 못지않게 성화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칭의 없이 성화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성화 없이 칭의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을 통하여 동시에(simul) 의롭다하시며 또한 거룩하게 하신다. 이와 같이 칭의와 성화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연합됨으로써 주어지는 동시적(simul)인 이중은혜로 파악하는 칼빈의 견해는 소위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 대한 이해를 교정함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하다. 하나의 신학적 용어로서의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은 17-18세기 개신교 스콜라신학(Protestant Scholasticism)이라고 불리는 정통주의 신학의 산물로서 부데우스(F. Buddeus)와 루터파 신학자 카르포프(Jacob Karpov)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퍼킨스(William Perkins)의 "황금사슬" (the golden chain)에서 보여지듯이 엄밀한 논리적인 구조로 정립된 구원의 서정에 대한 계속되는 신학적인 논쟁은 그만큼 구원의 서정에 있어 사용되는 각각의 용어의 정확한 의미와 배열의 순서를 성경적으로 확립하는 것이 쉽지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하겠다. 심지어 칼빈 신학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는 개혁파 신학자들도 구원의 서정에 대한 이해에 있어 각기 그 견해를 달리한다. 참고로, 엘리스트 멕그레쓰(Alister E. McGrath)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 대한 칼빈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iustificatio (칭의)

electio (선택) --> unio mystica (신비적 연합) --> 󰀈 󰀉--> glorificatio (영화)

sanctificatio (성화)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칼빈은 소위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나타나는 각 단계들을 하나의 엄밀한 논리적 구조 속에서 어떤 "인과관계"에 따라 이해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에게 동시적으로 주어지는 은혜의 다양한 국면들의 전체를 동심원적으로 함께 보는 경향이 있다. 즉, 구원의 각각의 측면들은 상호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동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사고의 유연성은 그의 󰡔기독교 강요󰡕(1559) 제3권에서 놀랍게도 칼빈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의 결과로 주어지는 "이중은혜" 가운데 칭의에 대하여 말기 전에 먼저 성화(=중생=회개=회심)에 관하여 논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보여진다. 이것은 일반적인 구원론 논의의 구조를 완전히 뒤짚는 것인데, 칼빈이 아주 독특하게 이러한 역설적인 순서를 취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아주 의도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칼빈 또한 중생, 곧 성화를 "이중은혜"(duplex gratia) 가운데 "두 번째 은혜"(second grace)라고 분명히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먼저 논하는 이유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비난하는 것처럼,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강조가 결코 "믿음은 선행을 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함이며,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행이 아니라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비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고,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선행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그러한 역설적인 논의 구조를 통하여 칼빈은 우리가 성화와 칭의 모두 믿음을 통하여(through faith) "그리스도와 연합" 됨으로 동시적(simul)으로 얻게 되는 "이중은혜"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회개(=중생, 성화)와 죄의 용서(칭의)는 - 곧 새로운 삶과 거저 얻는 화해는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음을 통하여 얻는다." 뿐만 아니라, 칼빈이 구원의 기초가 되는 예정의 교리(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를 구원론의 시작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도의 구원의 확신의 문제와 관련하여 감사와 찬양의 송영(doxology)으로서 구원론의 마지막에서 논하고 있음도 신학적으로 그리고 목회적인 관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할 것이다.

 

 

IV. 나오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칼빈의 구원론의 대강을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과 "이중은혜"(duplex gratia)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았다. 이 논고를 통하여 우리는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은 바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며, 그 결과로서 동시적(simul)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중은혜"(duplex gratia), 곧 칭의(iustificatio)와 성화(sanctificatio)가 그의 구원론 이해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칼빈은 이것으로서 구원사건에 있어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적 관계성(distinctio sed non separatio)과 동시성(simultaneity)을 함께 이해함으로서 루터와 로마 카톨릭의 구원론 논쟁의 딜레마를 돌파하였고, 기독교 구원론 이해의 성경적 기초 토대를 확고하게 하였던 것이다.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에게 있어 칭의 없이 성화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성화 없이 칭의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을 그는 다음과 같은 명제로 요약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동시에 성화시키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칭의시키지 않는다"(nullum ergo Christus iustificat quem non simul sanctificat). 이러한 이해를 통하여 칼빈의 다음과 같은 역동적인 진술이 가능해 진다: "그는 두 가지를 동시에(simul) 함께 주시며, 하나가 없이는 결코 다른 하나도 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도 아니며, 또한 행위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우리는 칼빈의 이러한 성경적이고도 균형잡힌 구원론 이해를 통하여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신행불일치의 문제, 믿음과 선행, 칭의와 성화, 율법과 복음, 은혜와 행위 등의 이분법적 분열의 문제뿐만 아니라 구원의 서정(ordo salutis)과 관련된 오랜 논쟁 또한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께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각 신자 개인들에게 분여하고 적용하는 구원론의 주관적인 측면(ordo salutis)을 객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체 구속사(historia salutis)와의 연관 속에서 보다 전체적이며 통전적인 신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구원사건에 대하여 개인적인 구원의 적용적 측면(성령의 내적사역)과 공동체적(교회론적; 성령의 외적사역) 측면을 보다 통합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서 개인주의적 기복주의 신앙에 의해 일부 한국교회의 왜곡된 구원관을 성경적으로 바로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기독론 이해에 있어 핵심논점인 "칼케돈 원칙"(Chalcedonian axiom), 즉 "반드시 서로 구별되어야 하지만, 서로 혼동되어서도 또한 분리되어서도 안된다" (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라는 원리를 전체 구원론 논의의 주요한 틀 -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 및 "이중은혜"(duplex gratia), 곧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적 관계성 - 뿐만 아니라 구원론 각론의 세밀한 부분들 - 성화론과 칭의론의 각론들 - 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비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므로, 이 원리가 각 논쟁점들에 있어 칼빈의 입장과 견해를 바르게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해석적 원리(the hermeneutical principle)의 하나로 고려되어야 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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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Center and Essence of John Calvin's Soteriology:

Unio cum Christo and Duplex Gratia

 

 

Eunsoo Kim (Ph. D., Soongsil University / Systematic Theology)

 

 

The proper understanding of salvatio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for Christian faith and a kernel of Christian theology. In this study, therefore, I tried to grasp the essential nature of Christian doctrine of salvation through John Calvin's understanding of soteriology. In doing so, I want to present that the center of Calvin's soteriology is "the Union with Christ"(unio cum Christo) and its essence is "the twofold grace"(duplex gratia) -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 which is given simultaneously through the union with Christ in the Holy Spirit. That is to say, according to Calvin, the two essential aspects of salvation,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are in inseparable relationship each other and the simultaneous graces of the union with Christ.

In Calvin's view,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cannot be separated (as in the Lutheran's understanding) and be confused (as in the Roman Catholic's understanding), but must be distinguished. We can call it the "Chacedonian axiom" - "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 According to Calvin, therefore, there cannot be justification without sanctification as well as sanctification without justification. By this, Calvin could make a breakthrough over the dilemma and conflict between the Lutheran's and the Roman Catholic's improper understanding of doctrine of salvation. By such a proper and biblically balanced understanding of soteriology, as Calvin himself did in his own era, we can overcome various and serious problems with which the Korean church is faced now; for instance, the dichotomic separation or improper confusion between faith and practice, grace and deed, law and gospel, and thus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again.

 

 

Key Words:

John Calvin, the Doctrine of Salvation(Soteriology), Unio cum Christo, Duplex gratia, Justification, Sanctification

 

 

[한글초록]

구원(salvation)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기독교 신앙과 복음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칼빈 신학에서도 구원론은 언제나 그 중심에 놓여있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칼빈의 구원론의 중심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며, 이것의 결과로 동시적(simul)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중은혜"(duplex gratia), 곧 칭의(iustificatio)와 성화(sanctificatio)가 칼빈의 구원론 이해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칼빈은 이것으로서 구원사건에 있어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적 관계성(distinctio sed non separatio)과 동시성(simultaneity)을 함께 이해함으로서 루터와 로마 카톨릭의 구원론 논쟁의 딜레마를 돌파하였고, 기독교 구원론 이해의 성경적 기초 토대를 확고하게 하였던 것이다. 또한 칼빈은 기독론 이해에 있어 핵심논점인 "칼케돈 원칙"(Chalcedonian axiom), 즉 "반드시 서로 구별되어야 하지만, 서로 혼동되어서도 또한 분리되어서도 안된다" (distinctio sed non confusio et separatio)라는 원리를 전체 구원론 논의의 주요한 틀 -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 및 "이중은혜"(duplex gratia), 곧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적 관계성 - 뿐만 아니라 구원론 각론의 세밀한 부분들 - 성화론과 칭의론의 각론들 - 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비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므로, 이 원리가 각 논쟁점들에 있어 칼빈의 입장과 견해를 바르게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해석적 원리(the hermeneutical principle)의 하나로 고려되어야 함을 논증하고자 했다.

우리는 칼빈의 이러한 성경적이고도 균형잡힌 구원론 이해를 통하여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신행불일치의 문제, 믿음과 선행, 칭의와 성화, 율법과 복음, 은혜와 행위 등의 이분법적 분열의 문제뿐만 아니라 구원의 서정(ordo salutis)과 관련된 오랜 논쟁 또한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께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각 신자 개인들에게 분여하고 적용하는 구원론의 주관적인 측면(ordo salutis)을 객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체 구속사(historia salutis)와의 연관 속에서 보다 전체적이며 통전적인 신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구원사건에 대하여 개인적인 구원의 적용적 측면(성령의 내적사역)과 공동체적(교회론적; 성령의 외적사역) 측면을 보다 통합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서 개인주의적 기복주의 신앙에 의해 일부 한국교회의 왜곡된 구원관을 성경적으로 바로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주제어:

 

 

존 칼빈, 구원론,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중은혜, 칭의,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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