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및 따라 읽기]
曰 仁 義 禮 智 信 왈 인 의 예 지 신 yuē rén yì lǐ zhì xìn
此 五 常 不 容 紊 차 오 상 불 용 문 cǐ wǔ cháng bǜ róng wěn
▣중국어 원음듣기 |
|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었다. 1395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한 뒤 이듬해부터 한양을 방위하기 위한 성곽을 쌓고 4대문을 축조했다.
한양의 4대문이란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숙정문(肅靖門 북대문)을 말한다. 그럼 우선 오상중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동서남북(東西南北)에 배치한 원리를 살펴보자.
음양오행사상에 의하면 동(東)은 오행 중에서 목(木)에 해당한다. 목은 사계절 중 봄에 해당하며 봄의 상승하는 기운, 자애롭고 인자한 기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어질고 사랑한다는 의미의 인(仁)이 대응된다. 반면 서(西)는 오행 중에서 금(金)에 해당하는데 금속의 기운은 날카롭고 예리하며 엄정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의(義)에 대응된다.
한편 예(禮)는 ‘화려한 예식’이란 말에서 보듯이 꽃처럼 화려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오행 중 화(火)에 해당하기에 방위로는 남(南)이 된다. 지(智)는 지혜를 말하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知者樂水)’에서 보듯이 오행 중 수(水)에 해당한다. 이를 계절로 따지면 겨울이 되고 방위로는 북(北)이 된다.
이상의 논술을 종합하면 인의예지는 각각 동서남북에 대응하기 때문에 사대문의 이름에 인의예지가 한 글자씩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단 북문에 해당하는 숙정문(肅靖門)의 원래 명칭은 숙청문(肅淸門)으로 엄숙하고 깨끗하다는 의미가 있고 淸에 물(水)이 있어 북방을 상징하고 지혜(智)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럼 왜 4대문의 명칭 중에 유독 동대만은 흥인문(興仁門)이라 하지 않고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고 했을까?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하자면 풍수(風水)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한양(漢陽)이란 말은 한수(漢水 즉 한강)의 북쪽에 있는 도시란 의미로 예전의 한양은 지금의 사대문 안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한양의 풍수에서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서쪽의 인왕산에 비해 좌청룡(左靑龍)인 낙산의 기세가 약한 편이다. |
때문에 4대문을 명명(命名)할 때 한양 풍수의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목에 해당하는 동쪽의 기운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때문에 글자 이름에 지(之)를 추가해 다른 문보다 길게 지었고 또 현판도 세로로 달아 상승하는 목(木)의 기운을 강화시켰다.
이렇게 한양 도성을 둘러싼 4대문의 이름에도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남는 문제는 인의예지신 오상(五常) 중에서 나머지 하나인 신(信)은 어디에 해당하는가이다. 대답은 간단한데, 바로 오행 중에서는 중앙(中) 토(土)에 해당하는 곳으로 풍수에서 말하는 혈(穴)자리이자 사방을 다스리는 주재자인 사람(구체적으로는 임금)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한양의 4대문은 단순히 사람이 드나드는 성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유학을 숭상한 조선왕조에서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4대 덕목을 4대문 이름에 하나씩 넣었고 도성 한가운데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워 오상의 마지막 덕목인 신(信)의 상징으로 삼았다. 즉, 사람들이 도성을 출입할 때마다 문 이름을 보거나 종소리를 들으면서 사람이 늘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五常)를 되새기도록 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리는 종각에 믿을 신(信)자를 넣은 것도 깊은 의미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