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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발명 서사재료로서 평면을 만드는 데, 기원전 후의 중국에서는 얇게 간 나무나 대조각을 사용했다. 이것을 목간, 죽간이라 부른다. 그밖에 명주천도 사용되었다. 이와 함께 누더기나 식물섬유 등을 모아서 뜬 종이도 탄생되었다. 이 종이 제법의 개량자로는 2세기초 중국의 채륜이라는 이름이 전해진다. 이후 각종 식물섬유를 곱게 빻은 것을 물에 풀고 점착제를 섞은 다음에 엷은 평면으로 말려서 굳히는 종이제법이 확립되면서 중국 각지에서 종이가 생산되었다.그 원료는 나무껍질을 잿물 등으로 연화시켜 인피섬유를 남긴 것, 또는 대나무, 벼, 밀 등의 식물줄기의 유관속 섬유를 모은 것이 사용되었다. |
| 한편 선사시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가에 무성하게 자라는 파피루스의 섬유로 종이를 만들었다. 그 제조방법은 푸리니우스의 박물지에 기재되어 있다. 풀의 속을 엷게 잘라서 가로와 세로로 포갠 것을 잘 두들긴 다음에 닦아서 표면을 반질반질하게 한다. 이 방법은 중국의 남부에서 비롯되었고, 남태평양 여러 섬에서 널리 사용되는 나무껍질 천인 타파의 제조법과 비슷하다. 타파는 꾸지나무의 껍질을 벗겨 발효시켜서 무르게 한 것을 나무로 만든 망치로 세게 두들겨 점착시킨 다음에 말려서 만든다. 그 위에 석회. 적토, 식물즙 등으로 문양을 넣는다. 파피루스는 제조법이 간단하고 재료도 풍부하기 때문에 지중해 지방에서는 중세 때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파피루스와 함께 수피도 사용되었다. 기원초 무렵의 사해문서의 일부는 수피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더욱 정교하게 한 것이 양이나 염소 가죽을 원료로 한 양피지로, 기원전 16세기에 이미 알려져 있었고, 기원 초 무렵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3-4세기경의 벨가몬은 그 생산 중심지였다. 또한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것은 베럼이라 부른다. 두 가지가 모두 원피를 석회즙에 담가서 고기와 털을 제거하고 틀에 팽팽히 잡아당겨 고정시키고 표면을 반원형 칼로 깎아서 반들반들하게 한다. 이 때 지방의 제거처리도 했다. 그 다음에 경석분말 등을 뿌리고 잘 연마한 것을 다시 팽팽하게 당겨서 건조시킨다.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쓴 문서는 대개 두루마리로 해서 통에 넣어 보관했다. 유럽에서는 현재도 고전적 방법으로 양피지가 제조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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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발명에 얽힌 이야기들 지757년 중국의 고선지가 거느리는 서방원정군은 타라스강변의 전투에 패하여 많은 중국병사가 이슬람 측의 포로가 되었다. 그들 중에 제지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즉시 사마르칸드에서 제지업이 시작되었고, 사마르칸드의 종이는 서방으로 보내는 중요 수출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어느새 누설되어 793년 바그다드에 제지공장이 생기고, 900년에는 이집트에도 기술이 전해졌다. 12세기 초에는 스페인에도 전해졌다. |
| 1189년에는 에로에 제지공장이 생겼다. 이리하여 중국식 제지기술은 12세기에는 널리 유럽에 퍼져서 종래의 양피지와 파피루스를 대신하게 되었다. 종이는 어떤 혜택을 가져왔을까? 이 무렵의 종이 재료는 주로 아마포와 무명천 누더기였다. 아마는 이집트에서 유럽에 걸쳐 널리 옷감으로 쓰인 섬유 식물이고, 목화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제조기술은 같아도 그 원료는 중국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종이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이들 재료만으로는 모자라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광범하게 분포된 식물섬유의 이용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1719년 프랑스의 화학자 로무르는 목재펄프를 이용하는 제지법을 창안했으나 그 반응은 미미했다. 목재펄프의 이용은 1843년 독일의 켈러에 의해 완성되었고, 때마침 도서의 수요증가와 더불어 이 목재펄프의 이용은 급속히 보급되었으며, 이윽고 북유럽이나 캐나다 등 삼림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펄프에는 2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목재의 셀룰로오스부문을 화학처리에 의해 제거한 것인데 내구성이 있는 고급지를 만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쇄목펄프인데 목재를 그대로 분쇄한 것인데 내구성은 없으며, 하급지를 만든다. 그러나 이 펄프의 사용으로 누더기천의 이용은 쇠퇴되었다. 잘 분쇄된 섬유로 종이를 뜨는 데는 다년간 손으로 하는 방법이 쓰였다. 이것은 나무틀 바닥에 가는 그물이나 대나무발을 댄 것으로 물에 풀어넣은 섬유를 건져올리는 것이다. 수분을 흘려버린 다음에 그물이나 대나무발에 남은 소재를 벗겨내어 건조시킨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수공업 과정을 기계화 하려는 시도가 일찍부터 있어 왔는데, 18세기 말에 프랑스의 로베르가 기다란 금속망 위에 계속적으로 펄프액을 붓는 방법을 고안했다. 1803년 영국의 돈킨은 이것을 개량하여 금속망을 연결운동하는 것으로 고쳐서 제지속도를 높였다. 1805년 브라마는 금속망을 드럼형에 내장하는 회전형을 고안했고, 1805년 영국의 디킨슨은 이것을 개량했다. 이 기계는 무한한 운동을 하는 여과망을 가져서 종이가 연속적으로 제조되어 나온다. 이렇게 해서 19세기 중엽에는 하루에 1톤의 종이를 뜨는 연속초지기가 탄생되었다. 우리나라의 제지술도 일찍부터 발달하여 고려의 불승 담징은 일본에 건너가, 서기 610년 종래의 일본 제지법을 개량했다고 일본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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