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에 경남 암각화 유적 답사를 준비하며 정리했던 글이다. 임세권의 [한국의 암각화(대원사, 2003)]를 기초로 요약한 내용이고 그림 출처도 같다. 샤머니즘에 대해 공부해보려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다 생각나서 올린다.
1. 한국 암각화의 발견
암각화(岩刻畵)는 바위 표면을 갈아 파거나 그어서 여러 가지 동물상이나 기하학적 상징문양을 새긴 것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목적의 그림이다. 1970년 문명대 교수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조사단이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하고 71년 양전리 암각화를 발견한 이후 한국의 암각화는 지속적으로 조사·발굴되었다.
이번 답사에서 살펴볼 울산 반구대 암각화(蔚山 盤龜臺 岩刻畵, 국보 제285호),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 川前里 刻石, 국보 제147호), 고령 양전동 암각화(高靈 良田洞 岩刻畵, 보물 제605호)는 초기에 발굴·연구되었으며, 그 규모와 내용에서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각화 유적이다.
2. 암각화의 제작기법과 환경
암각화는 바위의 표면을 쪼아내거나 갈아 파거나 그어서 형상을 새긴 것이다. 중국이나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서는 물감으로 채색한 암채화(岩彩畵)도 발견되었으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암화(岩畵)에서 채색화는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나라의 바위그림은 암각화를 일컫는다.
암각의 기법은 바위를 단단한 돌이나 다른 도구로 쪼아내는 방법(pecking 그림1), 쪼아낸 부분을 갈아 파서 깊고 매끈하게 만드는 방법(grinding 그림2),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그어서 가는 선으로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carving 그림3)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그림의 형태로 구분하여 면각(面刻)과 선각(線刻)으로 나눌 수 있는데, 면각은 윤곽선 내부를 쪼거나 갈아내어 넓은 면으로 표현하는 방법이고, 선각은 그림의 윤곽선이나 도형의 내부를 여러 개의 선으로 분할하여 묘사하는 방법이다. 중국·몽골·시베리아 등지의 암각화에서 면각과 선각의 선후관계가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체로 면각화가 선각화에 앞서 나타났다고 본다.



3.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과 주술적 의미
암각화에 표현된 그림은 소재와 내용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구체적인 물체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사슴이나 고래, 호랑이 등의 동물과 사람 그림 등이 있다. 동물∙인물상은 성기를 크게 과장하거나 수태를 의미하는 듯 배를 불룩하게 묘사하여 생식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그물에 갇힌 동물, 창을 맞은 고래, 나무 울타리에 갇힌 동물 등 구체적으로 수렵을 표현한 그림이 보인다. 이처럼 수렵을 묘사하는 것은 유감주술(類感呪術, homeopathic magic : J. 프레이저가 제창한 공감주술(共感呪術)의 2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로 모방주술(模倣呪術)이라고도 한다. 특정한 대상을 저주하거나 위해하고자 대체물을 만들어 마치 당사자인 것처럼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의미한다.)적 신앙의 형태와 관련하여 볼 수 있다. 인물상으로는 제의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제의를 주재하는 제사장의 모습이 있다. 사람들은 대개 다리를 구부리고 춤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긴 나팔을 부는 사람도 있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에서 팔다리를 수평으로 벌리고 있는 인물은 제사장으로 추정되는데 이와 같은 형태를 중국 북부와 몽골, 시베리아 등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둘째는 추상적인 도형으로 원이나 동심원, 삼각형, 물결무늬 등 추상적인 특징을 가지기도 하며 수많은 점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추상도형은 상징성이 강하며 특정집단만이 알아볼 수 있는 부호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상도형의 형태가 여성의 성기를 닮아있어 풍요를 기원한다거나 동심원이 태양을 의미한다는 등의 견해가 나와있으나, 이 도형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추상도형이 새겨진 대표적인 예로 천전리 암각화가 있는데, 동물과 인물을 새긴 사실적 암각화 위에 추상적 도형이 덧새겨져 있어 시대의 선후관계를 보여준다.
셋째는 신상의 얼굴(神面)을 새긴 것이다. 신면은 사다리꼴의 윤곽 내부에 가로로 선을 그어 칸을 나누고 칸마다 둥근 홈을 파서 얼굴의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머리부분에 태양광선과 같은 효과를 주는 짧은 선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형태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중국 내몽고지역 등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면은 다른 지역의 것보다 추상화된 형태이나 다른 지역의 것들이 태양신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므로 우리나라의 것들도 태양신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15곳 이상의 유적 가운데 신면 암각화로 분류되는 유적은 8곳으로 절반이 넘는 수이다. 이들 가운데 양전리 유적이 대표적이며 다른 지역의 유적은 양전리 암각화의 변이형으로 본다.
넷째로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마제석검(磨製石劍)이나 석촉(石惺)을 새긴 것이 있다. 이러한 암각화는 거의 고인돌에 새겨져 있으며, 석검과 석촉의 의미는 부장품과 같은 것이라고 추측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에 암각화를 제작하였으며, 암각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제사의 대상으로 숭배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강가의 절벽에서 발견되었는데 절벽 밑에는 제의를 거행할 수 있는 공간이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조성되어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암각화를 통해 개체보존과 종족보전을 기원했다. 자신의 생명유지와 후손의 번창을 위해 수렵과 생식-과장된 성기나 직접적인 성행위를 묘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원을 전달하기 위한 제사장의 형상이나 종교의식 자체를 묘사하는 그림은 암각화의 주술적인 목적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4. 암각화의 제작시기와 원류
우리나라 암각화의 제작시기에 관해 신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걸쳐 제작되었다는 설과 주로 청동기 시대에 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구석기시대의 사실적 형상이 신석기시대에 개념화·양식화되며, 청동기시대에 들어 추상화된다는 일반적인 흐름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의 암각화도 신석기시대부터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다른 청동기 유물에서 보이는 주제와 표현을 비교해 보면, 사실적인 동물 그림은 청동기 전기에, 추상적 도형은 청동기 후기에, 철제 도구로 가는 선을 그어 새기는 기록적 성격의 그림은 철기 이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초기의 동물 그림이 나타난 대표적인 유적인 대곡리 암각화가 청동기시대의 정착 농경사회와 관련되어 있다는 견해는 우리나라 암각화가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뒷받침한다.
한국의 암각화 유적은 한반도 동남부인 경상도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이는 약 3000년 전 북방 청동기 문명과 함께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 유적은 몽골, 중국 북부지역과 시베리아의 고대 스텝루트를 따라 유럽으로 연결되는데,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시베리아, 몽골, 중국 북부의 암각화와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특히 신면과 팔다리를 벌린 제사장, 안동의 말굽모양이나 경주 석장동의 물방울 모양의 얼굴 등의 암각화 유적은 우리나라와 북방의 암각화가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단언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북방문화권이 유입되었던 경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의의를 갖는다.
5.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사연댐 상류에 있는 반구대 마을은 예로부터 뛰어난 풍광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마을에서 동으로 흐르는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을 따라 약 1킬로미터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수십미터에 이르는 높은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고 이곳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암각화는 북쪽을 향하고 있어 여름철 해가 뜬 직후 햇빛이 동쪽에서 비스듬히 비출 때만 바위면에 새겨진 그림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겨울에는 해가 질 무렵 짧은 시간 동안 약한 햇살이 잠시 비추는 정도이기 때문에 반구대 암각화는 여름철 제의를 드리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암각화의 바로 앞은 경사진 단이 약간 이루어져 있어 사제가 제의를 주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강 건너의 언덕이나 강바닥에 모였을 것이다.

먼저 면각화의 내용을 보면 고래 떼와 같은 동물상과 제사장으로 보이는 인물상, 제사장과 같이 속계와 영계를 연결하는 동물, 하늘로 올라가는 배 등이 묘사되어 있다. 바위면 왼쪽에는 스무마리 이상의 고래 떼가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승천하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5) 그 중 큼직한 몸통의 머리쪽 내부에 작은 물고기 형태를 양각으로 남겨둔 상이 있으며, 내부를 텅 비우듯 묘사한 상도 있다. 이렇게 임신을 묘사하거나 배 부분을 강조한 상은 위에서 설명한 생식의 의미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작살을 맞은 고래도 표현되었는데 고대인들의 유감주술적 신앙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개구리뿐 아니라 거북과 고래도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거북 역시 양서류로 물속과 땅을 오가며 고래는 물에 사는 동물이면서 육지동물처럼 새끼를 낳는 포유류에 속한다. 반구대 암각화에 거북과 고래가 표현된 까닭은 단지 사냥과 관계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다와 관련된 그림으로 네 개의 배 그림이 있다. 암각화의 배는 고래잡이 배, 제의를 거행하는 배, 영혼을 싣고 하늘로 올라가는 상징물로서 배 등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바위면에 표현된 배 중에는 고래를 잡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육지동물로는 사슴과 멧돼지 등이 표현되었는데 대부분 아랫배가 불룩하게 새끼를 밴 형태로 묘사되어 생식을 기원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성기를 내밀고 있는 다른 인물상들도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반구대의 선각화는 면각화에 비해 바위면에 산만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면각화 위에 덧새겨진 것으로 보아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선각화의 주제는 대부분 육지동물이며 약간의 바다동물과 사람의 얼굴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선각으로 묘사된 동물상에는 투시법(그림7) 의 흔적이 보이는데 동물의 윤곽선을 그리고 그 내부를 선으로 연결하여 입에서 심장까지의 연결선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X-ray 화법이라고도 하는 투시법의 전통은 시베리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한반도로 내려온 뒤에서는 동물을 묘사하는 형식적인 기법으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선각으로 표현된 육지동물은 호랑이, 표범, 멧돼지, 사슴 등으로, 바위면 왼쪽 위에는 그물에 갇힌 동물이 있고 왼쪽과 중앙의 경계 부분에는 호랑이와 같은 맹수류의 동물이 있다. 중앙부에 멧돼지로 보이는 동물이 아래위로 올라탄듯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어 교미하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상에는 성기의 묘사가 없고 모두 배가 불룩하여 새끼를 밴 형태이므로 교미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선각화 중에는 사람의 얼굴을 묘사한 그림이 두 개 있다. 얼굴의 묘사는 가면을 표현한 듯 보이는데, 면각화에서 춤을 추고 나팔을 불거나 제의를 주관하는 인물상이 있는 것과 달리 선각화에서는 제의용의 가면만 등장하는 변화를 보인다.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시대에 관해서 신석기시대부터의 작품인지 아니면 청동기시대의 작품인지 여러 설이 있다. 이 암각화에서 면각화와 선각화의 양식에서 시대적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덧새긴 선각이 먼저 그려진 면각화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제작된 것으로 보아 두 문화가 동떨어진 문화가 아니며 연속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6. 울주 천전리 암각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에 위치한 천전리 암각화는 반구대 유적의 상류에서 발견되었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 바위면 앞으로 높은 산봉우리가 솟아있어 해가 뜨면 잠깐 볕이 들다가 곧 그늘이 진다. 그러다가 오전 늦게 햇빛이 비치면 깊숙하게 갈아 판 추상도형의 모습이 드러난다. 암각화가 있는 바위면 앞으로 약간의 평지가 단을 이루고 있다. 천전리 암각화의 바위면은 비교적 매끈한데, 보다 고대의 동물∙인물상 위에 선각의 글씨와 그림을 새기기 위해 바위를 평면으로 다음은 것이다.
면각으로 새겨진 동물상은 쪼아파기로 얕게 새겨져 있고 마멸과 훼손이 심해 지금은 바위면의 오른쪽과 왼쪽 끝에 약간 남아있으며 중심부에는 비교적 깊게 새긴 것만이 일부 남아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남아있는 상을 통해처음에는 상반부 전체에 가득 새겼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면각화의 주제는 사람의 얼굴, 사슴 종류, 고래와 비슷한 물고기 등으로 약 40여 점이 있다. (그림8) 암수 한쌍이 묘사된 사슴은 몽골과 중국 북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상으로 역시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본다. 바위면의 가장 중심부에 크기가 작은 동물 사이로 작은 꽃모양이 보이는데 이 모양을 태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슴의 큰 뿔과 태양의 숭배는 북방문화의 영향과 관련하여 볼 수 있다.



바위 중앙부에는 다양한 동물과 글자, 직선과 곡선이 교차되어 새겨져 있으며 인물 입상도 남아있다. 그 중 바지를 입은 하반신의 그림은 고신라의 기마인물상 토기에 나오는 복식과 유사하여 신라의 것으로 보기도 하고, 신라시대 이전에 기마풍속과 함께 북방에서 유입된 복장으로 생각하여 그 이전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시대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나 가는 선으로 그린 그림이 명문과 연관성이 있다는 근거가 없으므로 천전리의 가는 선 암각화는 철기시대의 것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7. 고령 양전동 암각화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위치한 양전동 암각화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암각화라 할 수 있다. 위에서 기술한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가 규모와 내용 면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암각화이지만 두 유적의 동물과 인물상, 추상적 도형 등의 내용은 우리나라 암각화에서 매우 특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15곳의 주요 암각화 유적 중 8곳의 유적은 형태가 유사한 신면 암각화로 한국의 암각화에서 신상은 중요하게 생각된다. 양전동 암각화는 신면 암각화 중 가장 복잡한 기본형으로, 그 밖의 것은 양전리의 신상이 변형된 형태로 보고 있다.
양전동 암각화의 신면 중 가장 복잡한 것은 위가 아래보다 폭이 넓은 사다리꼴 형태의 윤곽선 안을 분할하여 내부를 쪼아내고, 아랫부분에 반원형태를 붙이고 그 내부도 쪼아낸 형태이다. 가로와 세로로 분할된 내부에는 원형의 홈이 새겨져 이목구비와 같이 보인다. 또한 신상의 머리부분에 짧은 직선을 윤곽선에 수직으로 새겨 머리카락(또는 태양광선)처럼 보인다. (그림11)



바위면의 중심부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신상 14점, 동심원 3점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신상 8점, 동심원 1점, 원 안에 점을 네 개 찍은 것이 하나 있다. 신상 암각화는 한 가지 형태의 도형으로만 구성된 획일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위에서 서술한 대로 태양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면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두 가지의 기본형과 반원형에 이마가 없는 것, 이마가 삼각형인 것, 이마가 없고 위쪽에만 머리카락이 있는 것, 이마가 따로 없고 머리카락도 없는 것 등의 변형이 있다. 기본형과 변형이 시대의 선후관계를 보여주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또한 동심원(그림14)은 양전동과 천전리 암각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상으로 태양을 상징한다고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동심원을 태양의 상징으로 보면 고령 양전동 암각화는 태양의 상징과 태양신의 얼굴이 함께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태양숭배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받아들이라. 그리고 겸허히 감사해하라." -반 룬
역사 이전의 사람들이 바위에 남긴 조각을 바라보는 데 우리가 믿어왔던 현대적 미감의 축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하는 경구이다.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고대문명의 흐름을 알려주는 지표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시대가 분명하지 않지만 청동기문명(혹은 신석기시대)를 연구라는 자료로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암각화가 연구대상으로서 현전하고 있음만이 아니라 현재의 인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대인의 초월적 의지와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앙으로서의 예술이 있었기에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오늘날까지 인류가 현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시미술이 가진 힘은 초월적이고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발원한다. 인간의 눈을 만족시키기 위해 적당한 것을 선택하여 다듬으면서 미술의 힘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동시대의 미술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우리 시대의 미술은 교감하지 않고 자극한다. 선언하지 못하고 호소한다. 깨어지기 쉬운 유희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의 미술이 가야 할 길을 고대의 암각화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고대 암각화의 현대적 의의를 생각해보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
[나무그림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