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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안압지(월지月池)와 임해전지의 명칭및 크기

작성자푸른날개(푸른샘)|작성시간12.08.06|조회수58 목록 댓글 0

 

1960년대의 안압지

앞에 보이는 정자는 못 동북에 있던 임해전(臨海殿)이라는 정자였다. 신라 때의 임해전이 아니라 1920년경 경주 유림(儒林)들에 의해 임의로 세워진 건물이다. 그 후 고증없이 지어진 건물이므로 철거하여서 황성공원 안, 김유신 장군 동상이 있는 독산(獨山) 서쪽으로 옮기고 궁도인(弓道人)들의 활터로 활용하고 있는데 호림정(虎林亭)이라 한다.

 

 

임해전은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보상화(寶相華) 무늬 벽돌에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이는 유적이다.

 

 

 

 

 

임해전지의 건물지

 

 

주령구

 

1975년 안압지에서 출토된 정사각형 면 6개와 육각형 면 8개로 이루어진 14면체 주사위이다.

재질은 참나무이며 각 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어 신라인들의 음주 습관의 풍류를 보여주고 있다.

 

 

출토된 진품은 유물 보존 처리도중 전기 오븐 안에서 불타버렸고,

박물관에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발견 당시의 주령구. 맨 아래 두장의 사진은 당시 출토된 도장임.

 

 

정사각형 6면의 법칙

 

금성작무(禁聲作舞) 소리없이 춤추기

중인타비(衆人打鼻) 여러사람 코 때리기

음진대소(飮盡大笑) 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삼잔일거(三盞一去) 술 석 잔을 한번에 마시기

유범공과(有犯空過) 덤비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자창자음(自唱自飮)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6각형인 여덟 면의 벌칙

 

곡비즉진(曲臂則盡) 팔뚝을 구부린채 다 마시기

농면공과(弄面孔過) 얼굴 간지럽게 해도 꼼짝 않기

임의청가(任意請歌)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월경일곡(月鏡一曲) 월경 한 곡조 부르기

공영시과(空詠詩過) 시 한수 읊기

양잔즉방(兩盞則放) 술 두 잔이면 쏟아버리기

추물막방(醜物莫放) 더러운 물건을 버리지 않기

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이라는 노래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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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공원의 북편인 용강동에도 안압지와 같은 또 한 곳의 연못터가 발굴되었다.

용강동 제2원지라고 하는 곳이다.

원래 용황초등학교 설립 부지이었으나 발굴결과 원지 유적이 드러남에 따라 용황초등학교는 더 앞쪽으로 옮겨졌다.

원지는 발굴조사 뒤 도로 메워놓았으며 지금은 주민들의 밭터로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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