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개혁 운동에 자극을 받아 유럽 각국에서는 교회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스위스에서는 루터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츠빙글리(Zwingli, 1484-1531)가 개혁 운동을 일으켰는데, 에라스무스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은 그는 스위스 북부의 여러 지역에 개혁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카톨릭교의 세력이 강한 중부 지방에서는 츠빙글리에 반대하여 1529년 양 세력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츠빙글리는 이 전쟁 중에 전사하였으며, 이후 개혁 교회의 세력은 침체하였다. 스위스에서의 개혁 운동은 그 뒤 칼뱅(John Calvin, 1509-1564)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칼뱅의 교리는 루터의 그것에 비하여 신비주의의 경향이 보다 강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인 {크리스트교 강요}(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36)가 발간된 1536년 칼뱅은 제네바로 들어가 그 곳에서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죽을 때까지 제네바를 종교적으로 지배하였다. 그의 지배는 일종의 신정 정치였으며, 축재와 오락적인 모임을 금지하고 극장도 폐쇄하는 등, 시민들에게 매우 엄격한 금욕적인 생활이 강요되었다.
그러나 칼뱅의 명성은 전유럽에 퍼져 각처로부터 그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숭배자들이 모여들어 칼뱅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교황'이라고까지 칭해졌다. 칼뱅의 교리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예정설(Predestination)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죄악으로 타락함으로써 모든 정신적 선과 구제를 초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의지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신은 스스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 결의로써 어떤 사람들을 영원의 생명으로 예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영원의 죽음으로 예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무서운 교리이다.
참조
칼뱅의 「예정설」
그러므로 말하건대 … 일찍이 신께서는 당신의 영원불변한 섭리를 통해서 구제해 주시고자 하는 자들과 파멸에 빠뜨리시고자 하는 자들을 결정하였다. 선택된 자들에게 이와 같은 섭리는 인간의 자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신의 자비에 근거한 것이며, 또 반대로 신께서 지옥에 떨어뜨리시려고 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혀 있음을 뜻하는 바이다. 이 모든 것은 은밀하고 알 수 없는 신의 심판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당하고도 공평하다.… 신께서 예정해 놓은 것을 뒤집기 위해서 몇몇이 만든 몽상을 나는 여기서 버리려고 한다.… 왜냐 하면〔많은 사람들은〕신께서 각자의 덕행이 장차 어떠할 것인가를 예지 하시고 그에 따라 인간들 가운데에서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을 선택하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입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을 선택하는 것이며, 필시 악행과 불경으로 기울어질 것임을 당신께서 미리 알고 계신 자들에게는 단죄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리는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역사상 보기 드문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주고, 그들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로 만들었다. 예정설을 받아들인 칼뱅교도들은 구제의 확신과 더불어 신에 의하여 선임되었다는 선민 의식을 가지고 신의 영광을 이 지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현세로 향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 세속적 직업은 단순히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서, 각자 그 신분에 따라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다분히 중세적인 루터의 직업관과는 달리, 신에게 구제를 받았다는 '확신의 표지' 또는 악마와 나날이 싸우면서 신의 영광을 나타낼 '신앙의 싸움터'라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칼뱅교도들은 근면하게 직업 노동에 종사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모든 사치와 낭비를 배격하고, 그들의 생활 전체를 합리적으로 조직할 것이 권고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써 초래되는 재화의 축적이 적극적으로 긍정되고 축적된 재화는 절약으로 자본을 형성하고, 금욕적인 소비 억제로 재생산에 투입되어 생산력의 확대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상은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그의 유명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주장한 내용의 요지이며, 그의 주장에 대하여 오늘날까지 찬부 양론이 있다. 그러나 칼뱅주의가 재화의 축적과 합법적 이윤의 추구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이를 위한 금욕적인 생활 윤리 형성의 주된 원천이 되었으며, 그러한 생활 윤리가 당시 향상의 길을 걷고 있던 생산적인 중산 계급에게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사실이다.
칼뱅의 교리는 프랑스, 스코틀랜드, 영국, 네덜란드 등지로 확산되어 근대 장로 교회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그의 새로운 교리는 유럽의 여러 곳에 널리 전파되었으며, 프랑스의 위그노(Huguenots), 네덜란드의 고이센(Geussen), 스코트랜드의 장로파(Presbyterians), 영국의 청교주의(Puritanism) 등이 그에 속한다
(자세한 내용은 민석홍, 서양사개론 (삼영사) 참조).
http://kr.blog.yahoo.com/ksn119/68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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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과 예정설
♥ 서론
종교 개혁은 16-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교회의 혁신적인 운동이다.
중세 말 카톨릭 교회가 성직을 매매하고 성직자의 부당한 재산 축적, 면죄부 판매 등으로 형식에 치우치고 부패하게 됨에 따라 나타난 것으로 성서중심으로 순수한 초기의 믿음을 회복하자는 것으로 신에 대한 신앙과 신의 은총으로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이 종교개혁의 커다란 불씨가 되어 칼뱅 등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크게 확산되었다. 이 운동을 통해 오늘날 프로테스탄트라 부르는 교파가 생겨났으며,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혁신 운동이지만 근대국가의 길을 걷게 되는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에 정치, 경제, 사회 등의 각 분야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종교개혁을 배우면서 신에 의해 인간의 구원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하는 예정, 즉 인간의 구원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구원받도록 선택되어지지 못한 사람은 착하게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에 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가지고 있던 차에 그 의문들을 풀어보고자 칼뱅의 예정설에 초점을 두고 종교 개혁을 다시 고찰해보자 한다.
즉, 우리는 오직 신앙으로서만 인간이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했던 루터와 더불어 종교개혁에 커다란 획을 그은 칼뱅의 생애와 칼뱅의 예정설에 대해 논의해보자.
♥ 본 론
칼뱅 [Jean Calvin, 1509.7.10 ~ 1564.5.27]은
종교개혁자, 신학자로서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 누아용 태어났다. 1523??1528년 파리에서 신학을, 그 후 오를레앙 부르주의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다. 1532년 세네카의 《관용에 대하여》의 주해를 발표하여 인문주의자로서의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1533년 에라스무스와 루터를 인용한 이단적 강연의 초고를 썼다는 혐의를 받고, 은신해 지내면서 교회를 초기 사도시대의 순수한 모습으로 복귀시킬 것을 다짐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다.
그는 이른바 '돌연한 회심'에 의해 복음주의적, 즉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1535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이단에 대한 박해로 신변의 위험을 느낀 그는 스위스의 바젤로 피신하여, 그 곳에서 1536년 복음주의의 고전이 된 《그리스도교 강요》를 저술하였다. 이것은 박해받고 있는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 변호하고 그 신앙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무렵,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을 G.파렐에게서 요청받고 그의 종교개혁 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신권정치에 기반을 둔 엄격한 개혁을 추진하려 했기 때문에 파렐과 함께 추방되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설교자, 신학교수로 있으면서 《로마서 주해》를 저술, 추기경 사드레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는데, 3년 후에는 상황의 변화로 다시 제네바에 초빙되어 거기서 《교회규율》(1542)을 제정하고 교회제도를 정비하여, 세르베토스 등의 인문주의자들을 누르고 제네바의 일반 시민에게도 엄격한 신앙생활을 요구하여, 신정정치적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의 교설은 루터와 같이 엄격한 성서주의의 입장에 서서 카톨릭적 교계제도와 그 행위주의를 비판하였으며 예정설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는 이성은 신에 의하여 지배되며 구원은 신의 예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니 신에게 복종함으로서 참다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신의 소명한 직업과 노동에 전념하고 합리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부도덕을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사상이 민족적이고 농업적인데 반해 칼뱅의 사상은 실천주의적 생활윤리를 규정했으며 시민사회인에게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주류가 되었다.
1) 예정설의 의미와 개요
인간 개개인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로 미리 정해진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 및 주장으로서 즉,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을 영원전부터 선택했다는 교리로서,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근거한다고 가르친다.
이제까지 발전되어온 예정교리는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며 거기서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들이 나타난다. 반 펠라기우스주의, 유명론의 일부 형태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연관된 이론은 예지를 예정하는 근거로 삼으며 하나님이 사람들의 미래와 신앙의 공적을 미리 알고 구원을 예정했다고 가르친다.
두 번째로 이 유형과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은 이중예정설의 교리로서 칼뱅이 주장한 것으로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사람들이 신앙, 사랑, 공적 등을 갖든 못하든 구원할 사람과 멸망시킬 사람을 미리 결정해 놓았다고 한다. 즉,'구원에의 예정'이 2중예정, 즉 구원과 멸망에의 예정으로까지 발전한 것은 종교개혁자 칼뱅에 의해서였고 칼뱅에 의하면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자와 멸할 자로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2중예정에는 두 가지 모티브가 작용한다. 하나는 하느님의 뜻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상인데, W.오컴이나 츠빙글리 등으로부터 받아들여진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구원을 인간 쪽에 근거를 두지 않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혜에만 의존하는 사상인데, 이는 루터로부터 받아들여진 것이다. 세 번째 교리는 성아우구스티누스와 뤄의 저서들,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등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이 교리에 따르면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내리는 은총, 따라서 예정에 의한 것이지만 사람이 멸망당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죄와 죄책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2) 예정설의 출현 배경과 칼뱅의 예정설
예정설의 1차적인 목적은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당시 교회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사면 죄를 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면죄부를 남발하고 있었다. 이에 루터는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뿐이며, 교회의 진정한 금고는 신의 용서하는 은총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신자가 행한 선행은 그의 구원이 궁극적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 운명 예정설을 주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칼뱅의 예정설의 성격은 다음에 인용되는 글귀에서 잘 드러난다.
무조건적인 선택, 어느 누구도 구원해야할 의무가 없는 신은 믿음이나 선행을 참고하지 않고 자신이 뜻하는 인간을 구원하거나 선택한다. 모든 일들이 신의 마음속에 동시에 현존하기 때문에 신은 누가 구원될것인가를 미리 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선지식을 공유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은 신의 뜻을 따라야 한다. -캘빈주의 신학 5개조항 중에서 -
칼뱅의 예정설이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신의 영원한 뜻이라 부르는 것으로, 그것으로 신은 마음속에서 인류 개개인에게 일어날 일을 결정짓는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모두 유사한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생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리 정해져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미리 정해져 있다."라고 주장한다.
한편 캘빈은 제한된 속죄를 주장한다.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고 구원될 사람들만을 위해서 죽었다. 만일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다면, 누구도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의 또 다른 증거를 찾는다". 결국 캘빈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비교적 소수였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선택을 통하여 몇몇 복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예수를 지상에 보냈다. 신성이 충만한 곳에서 신은 예수를 통하여 소수의 사람, 아주 적은 수의 사람에게 은혜와 구원을 주었다. 이 소수의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아신다.
3) 예정설을 둘러싼 몇 가지 오해와 의문들
- 소수의 사람만 구원, 선행 쌓는데 게을러질까?
신에 의해 선택과 영벌이 결정되어 있고, 그것도 소수의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캘빈주의의 교리로 인해 사람들이 선행을 쌓은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예정설의 교리에 반대하는 자들은 "예정설의 확립은 행위의 옳음에 대한 모든 갈망과 노력을 파괴할 것이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캘빈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세상에는 일이나 개인적인 장점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거역할 수 없게 선택되거나 영벌(永罰)받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위와 같은 결론을 끌어내게 될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반대가 "전혀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지는 않다"고 인정한다. 여기서 다시 캘빈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 의 편지 1장 4절을 인용하면서, 반박자들을 훈계하기 위해서 바울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상상할 수 있는 바로는 확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더욱더 "그 지식을 나태의 핑계로 사용하기 보다는 그 미덕을 즐겁게 실천하기 위해서 자각하게 되고 자극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신에게 선택되지 않은 사람의 선행은 헛된 것인가?
정직과 성실로 신에게 선행을 보여줬는데 그가 선택되지 않는다면 선행이 헛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캘빈은, 신에게 버림받은 모든 사람은 노력할 아무런 목적이 없을 것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노력은 선택이 아니면 어디에서 생겨날 수 있는가?" 하는 수사적 의문을 제기한다. 거꾸로 말하면, "이름을 더럽히도록 만들어진 도구들인, 신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죄를 범해서 그들에 대한 신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또 그들을 이미 비난한 신의 판정을 뒷받침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캘빈주의자는 인간의 공적 또는 죄업이 운명의 결정에 간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의 결의에 침범하는 것이어서 천만부당한 사상이 된다고 반박한다.
-선택 됨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
한편, 캘빈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구제할 길 없이 파멸되었으나, 만일 우리들이 '신이 여하튼 일부의 사람이라도 구제할 수 있는 계획을 달성했다는 점'이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시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제네바 개혁가와 수세대 후의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이 교리가 진정한 위안의 근원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신의 은총이 자신의 삶 속에 진실로 파고들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이 교리는 그에게 반대하는 교회 국가의 모든 세력에 정면으로 반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덕적·정신적 힘의 원천이었다. 또한 개개인에게 자신이 선택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4) 칼뱅의 예정설과 종교개혁에 미친 영향
캘빈주의자들은 '선택된 자'는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확신을 하더라도 결코 선행을 게을리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것을 핑계로 나태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생활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자신의 행동이 선택된 자의 행동인지 혹은 아닌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인간이 가질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아신다고 주장하면서 개개인에게 선택에 대한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또 그들은 윤리적 사회개량론을 주장하며 그들이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행동을 검열하고, 금지하고, 벌하였으며, 카톨릭적 선행관의 수정을 통해 그들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쌓기를 독려했다.
캘빈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예정설 교리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반박에 자신들의 논리로 반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 규제하면서 사회를 강력한 종교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이 구원을 받느냐 못받느냐는 신이 미리 정해 놓았다라는 칼뱅의 예정설은 근면과 금욕, 절약 생활을 강조하며 당시 성장하던 상공시민계층에 생활윤리와 일치하며 시민 계급의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등 상공업 지역으로 크게 전파되어갔다. 칼뱅파 교도를 영국에서는 청교도,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네덜란드에서는 고이센이라고 하였다.
♥ 결 론
종교개혁은 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에서 비롯됐으며, 순수한 성서에 기초한 신앙으로서 돌아가 참된 신앙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큰 흐름 속에 루터와 칼뱅이 있었고 종교개혁은 비단 교회 회복운동 뿐만 아니라 근대 사회로의 이행과 맞물려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칼뱅은 그 종교개혁의 흐름에 주측에 있었고, 그의 중심사상인 예정설은 신에 의해 예정된 사람만이 구원된다는 것이고 크리스트교도는 그의 사회생활을 통해서 신의 영광을 나타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직업의 평등을 주장하고 근로에 의한 영리추구와 축재를 시인한다고 했다. 이러한 가르침 결과 서유럽의 여러 나라로 퍼지고 특히 그의 직업윤리는 중산 시민층에게 받아들여져 초기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였던 것이다.
참고 문헌
종교 개혁사 오덕교지음 (협동 신학 대학원 출판부 1998)
종교 개혁사 롤란드 베인턴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1)
칼빈의 교회관 오토베버 (이레서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