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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교실

[서양사]헤이마켓 사건과 노동절

작성자푸른날개|작성시간08.04.01|조회수473 목록 댓글 0
미국 시카고에서 경찰과 그에 항의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진 폭력적인 충돌사건(1886. 5. 4).
 
노동운동의 투쟁이 극적으로 표출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의 노동자 8만명은 시카고 중심부인 미시건 애비뉴에 모여 8시간 노동 요구 선언을 한다.

이틀후인 5월 3일,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중인 맥코믹 공장의 노동자들이 회사 앞 공터에서 집회를 갖고 있었다.

파업이 일어나자 공장주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직원들로, 그러니까 사측 노동자들로 공장을 돌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참 집회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는데,

마침 교대시간이 된 사측 노동자들이 퇴근하느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들을 목격하자 파업 노동자들은 흥분했다. 연설을 듣던 파업 노동자들은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고,

이것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 2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만다.

이 소식이 퍼져나가자 노동자들은 분개했다.

그들은 다음날 5월 4일 저녁 시카고 시내 '헤이마켓 광장'에서 대규모의 인원이 모이는 항의 집회를 열겠노라고 선언했다. 

 
 
경찰이 집회를 해산시키려고 불시에 공격하기 전까지 집회는 평화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해산 순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7명의 경찰이 죽고 60여 명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은 군중 속의 노동자들을 향해 권총을 발포하면서 이에 응수했다.
폭동이 끝난 뒤 대중적인 흥분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오거스트 스파이스를 비롯한 7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신원불명의 살인자와 공모했거나 그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들과 살인자와의 관계는 명백히 입증되지 않았다.

과연 누가 범인인지, 진실은 아직까지 아무도 모른다.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은 것이다.

 

1887년 11월 11일 스파이스와 다른 3명이 교수형을 당했고, 1명은 자살했다.
남은 3명은 1893년 일리노이 주지사 존 피터 올트겔드에 의해 사면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보수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노동계에서는 찬사를 받았다.
헤이마켓 사건의 소용돌이가 가라앉는데 미국은 100년 이상이 걸렸다.
그때 1880년대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8시간 노동법은
1935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하에서야 정식으로 법률로 정해지게 된다.

한편 1886년의 헤이마켓 사건, 그리고 이어진 8명의 구속과 재판은 그 당시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석방 탄원에 수만명이 참여했고,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의 표상이 된 것이다.
조직화되기 시작하던 노동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헤이마켓 사건이었다.

1889년,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가들이 모인 제 2 인터내셔널은
8시간 노동 결의대회가 시카고에서 열렸던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이듬해부터 전세계적인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기념 행사는 각국의 실정에 맞게 치르되, 전세계가 같은 날 대대적인 집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1890년 5월 1일, 각국의 노동자들은 세계 제 1회 메이데이 행사를 치르게 된다.
이것이 메이데이, 그러니까 노동절의 시작이었다.

메이데이는 원래 유럽지역에서 봄축제를 여는 날이었다.
5월 1일은 겨우내 가두어 기르던 가축을 야외에 풀어놓기 시작하는 날, 즉 여름의 시작을 의미했다.
리본으로 치장한 메이폴(maypole)을 세우고 그 주변에서 춤을 추며 남녀 짝짓기를 하고,
메이킹과 퀸을 뽑고, 남녀간의 사랑, 봄, 야들야들한 설레임, 아지랑이 같은 부드러움, 그것이 바로 메이 데이였다.
과거 우리나라 여대에서 '메이퀸'을 뽑는 행사가 열린 것도 서양의 이 풍속의 영향이었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 노동자들이 8만명이나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날이 축제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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