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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

작성자인동초(동두천)|작성시간26.06.11|조회수6 목록 댓글 2

아버지가 내 결혼식 전날 밤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예식장에 입고 가려고 새 양복까지 꺼내놓은 채였다.
다음 날이면 내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야 했던 사람이, 결국 내 결혼식 사진 속에 영정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아버지는 올해 쉰아홉 살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건 밤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나는 결혼식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메이크업 시간, 드레스, 부케, 하객 명단, 답례품까지 확인하느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때 아버지가 방문 앞에 서서 말했다.

“내일 아빠가 천천히 걸어도 되지?”

나는 정신없이 대답했다.

“아빠, 제발 연습 좀 했잖아. 그냥 자연스럽게 걸으면 돼.”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이런 건 처음이라 떨려서 그래.”

나는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떨어.”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너무 후회된다.
아버지는 내 결혼식이 너무 좋아서, 너무 긴장돼서 그런 거였는데.
나는 그 마음을 귀찮게만 받아들였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내 방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새 양복을 입어보고, 넥타이를 매보고, 다시 풀었다.
엄마가 옆에서 말했다.

“당신이 신랑이야? 왜 이렇게 꾸며?”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딸 결혼식인데 아빠가 초라하면 안 되잖아.”

아버지는 평소 멋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낡은 점퍼 하나를 몇 년씩 입었고, 신발도 닳을 때까지 신었다.
그런 사람이 내 결혼식 때문에 처음으로 비싼 양복을 맞췄다.

나는 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빠, 그 양복 나중에도 좀 입어. 한 번 입고 끝내지 말고.”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딸 시집보낼 때 입으려고 산 거니까, 그거면 됐다.”

그 말이 마지막으로 들은 아버지다운 말이었다.

밤 11시쯤, 나는 신부 대기실에 놓을 사진을 고르고 있었다.
갑자기 거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처음엔 무언가 떨어진 줄 알았다.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여보!”

뛰어나가 보니 아버지가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한 손은 가슴을 꽉 쥐고 있었고,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웨딩드레스 사진을 고르던 손이 그대로 굳었다.

엄마가 119에 전화했고, 나는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빠, 왜 그래? 아빠, 내일 결혼식 가야지.”

아버지는 눈을 뜨려고 했지만 제대로 뜨지 못했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나는 귀를 가까이 댔다.

아버지가 아주 작게 말했다.

“미안하다… 내일…”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구급차 안에서 나는 계속 울면서 말했다.

“아빠, 미안하다고 하지 마. 내일 나랑 걸어야지. 아빠 없으면 나 어떻게 들어가.”

하지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혈관이 막혔고,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의료진이 한참을 뛰어다녔지만, 새벽 1시 08분,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병원 복도에 웨딩 네일을 한 손으로 아버지 사망확인서를 받아 들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꿈처럼 느껴진다.

다음 날 결혼식은 취소됐다.
예식장에는 꽃이 이미 들어가 있었고, 신부 대기실에는 내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예약한 뷔페 음식도, 축가도, 하객 자리도 모두 그대로였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예식장이 아니라 장례식장에 있었다.

아버지 영정사진은 급하게 고른 사진이었다.
작년 내 생일에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웃는 얼굴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

내가 어젯밤 왜 짜증을 냈을까.
왜 “아빠 떨려?” 하고 웃어주지 못했을까.
왜 넥타이 한 번 더 매어주지 못했을까.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 양복이 방 안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흰 셔츠는 다려져 있었고, 넥타이는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구두는 현관 앞에 반짝이게 닦여 있었다.

엄마는 그 구두를 보고 주저앉아 울었다.

“당신, 딸 손 잡고 걸어야지. 구두까지 닦아놓고 왜 안 갔어.”

나는 그 말에 무너졌다.

아버지 양복 주머니에는 작은 쪽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결혼식에서 나에게 해주려고 적어둔 말이었다.

“우리 딸, 너무 애쓰며 살지 말고, 남편이랑 밥 잘 챙겨 먹고 살아라. 아빠는 네가 웃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 쪽지를 읽다가 숨이 막혔다.

아버지는 평생 표현이 서툴렀다.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퇴근길에 붕어빵을 사왔고, 내가 늦게 들어오면 거실 불을 켜두고 기다렸다.
내가 독립하던 날에는 짐을 다 옮겨주고, 괜히 고장 난 수도꼭지를 한참 들여다보며 더 머물렀다.

그런 사람이 내 결혼식 하루 전날, 마지막으로 딸에게 해줄 말을 혼자 적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다.
부모님이 가슴이 답답하다, 식은땀이 난다, 등이나 턱까지 아프다, 갑자기 숨이 차다고 하면 절대 참게 두지 말아 달라.
특히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부모님은 자기 몸이 아파도 말하지 않는다.
자식 걱정할까 봐, 좋은 날 망칠까 봐 참는다.

아빠.
결혼식은 나중에 다시 하기로 했어.
그날은 아빠 사진을 들고 들어갈 거야.

아빠가 내 손을 직접 잡아주지는 못하지만,
나는 아빠가 닦아놓은 그 구두를 기억하면서 걸을게.

그리고 아빠가 적어둔 말처럼,
너무 애쓰며 살지 않고, 밥 잘 챙겨 먹고, 웃으면서 살아볼게.

다음 생에도 내 아빠로 와주면,
그때는 내가 아빠 넥타이 직접 매줄게.
아빠가 떨린다고 하면 귀찮아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할게.

“괜찮아, 아빠. 천천히 걸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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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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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리솔(서울영등포) | 작성시간 26.06.11 글에 안타까움이 마음을저미네요
    얼마나 긴장을 하셨으면 심정지로,,,
  • 작성자노을 | 작성시간 26.06.12 참으로 안타까운 글이내요
    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꼈음에도
    딸 의 결혼식 때문에 자신의 걱정은 조금 뒤로 미룬것 같내요
    아마 우리내 모든 아버지가 같을 거예요
    동감 하며 가슴 저리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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