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날 밤, 엄마가 예비 신랑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그 자리에서 웨딩드레스를 찢어버리고, 다음 날 결혼식을 취소했습니다.
저는 올해 서른한 살입니다. 남자친구와는 5년을 만났고, 양가 상견례도 끝났고, 예식장 계약금도 이미 다 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저보고 복 받았다고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대기업에 다녔고, 집안도 나쁘지 않았고, 말도 점잖게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처음부터 그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면 늘 같은 말만 했습니다.
“그 집은 너무 차가워 보여. 너를 귀하게 여길 집이 아니야.”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엄마는 혼자 저를 키웠습니다. 아빠는 제가 중학생 때 집을 나갔고, 엄마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저를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고생한 건 알지만, 저는 엄마가 세상을 너무 불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요즘 세상에 그런 느낌만으로 결혼을 말려? 내가 알아서 할게.”
그때마다 엄마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이 가까워질수록 엄마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습니다.
문제는 결혼식 전날 밤이었습니다.
저는 예식장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고, 엄마와 함께 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밤 10시쯤 예비 신랑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술을 조금 마신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잠깐 내려와. 할 얘기 있어.”
제가 내려가려는데 엄마가 갑자기 제 손목을 붙잡았습니다.
“내가 같이 갈게.”
저는 피곤해서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엄마, 왜 또 그래? 내일 결혼식이야. 제발 아무 일도 만들지 마.”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낡은 가디건을 걸치고 저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호텔 로비 구석에 예비 신랑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웃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내일 식 끝나고 나면, 네 엄마는 우리 집에 자주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뭐?”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부모님이 좀 불편해하셔. 너희 어머니가 혼자 사시고, 형편도 넉넉하지 않잖아. 우리 집안 분위기랑은 좀 안 맞아.”
그 말이 나오자마자 엄마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웃으며 넘기려 했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 엄마가 뭘 어쨌다고.”
그런데 그는 오히려 더 차갑게 말했습니다.
“나도 현실적인 얘기를 하는 거야. 결혼하면 네가 우리 집 사람이 되는 거잖아. 처가 문제 때문에 우리 부모님 스트레스 받게 하고 싶지 않아.”
엄마는 그 말을 끝까지 듣더니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제 예비 신랑 앞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부탁합니다. 우리 딸만은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자주 안 가겠습니다. 연락도 줄이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괴롭히지만 말아 주세요.”
그 순간, 제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엄마가 왜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
엄마가 왜 사정해야 합니까.
엄마가 평생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저를 키운 게, 남의 집 눈치 보며 사과하려고 한 일이었습니까.
예비 신랑은 당황한 척하며 엄마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미안함보다 불쾌함이 먼저 보였습니다.
“아니, 어머니 왜 이러세요. 제가 언제 괴롭힌다고 했습니까?”
그때 저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이 낯설게 보였습니다. 5년 동안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아니라, 우리 엄마를 제 인생의 짐처럼 바라보는 남자였습니다.
저는 엄마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엄마는 계속 제 뒤에서 말했습니다.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너만 잘 살면 돼.”
그 말이 더 아팠습니다.
왜 엄마들은 늘 자기 가슴은 찢어져도 괜찮다고 말할까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저는 걸려 있던 웨딩드레스를 바라봤습니다. 몇 달 동안 고르고 또 고른 드레스였습니다. 입으면 제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부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하얀 드레스가 이상하게 숨 막히게 보였습니다. 마치 엄마의 자존심을 밟고 올라가야 입을 수 있는 옷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그대로 찢었습니다. 엄마가 놀라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미쳤어? 너 내일 결혼식이야!”
저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무릎 꿇고 얻어낸 결혼이면, 나는 안 해.”
그날 밤 저는 예비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식을 취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농담하지 말라더니, 곧 화를 냈습니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하객이 몇 명인데? 우리 부모님 얼굴은 어떻게 해?”
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얼굴은?”
그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올 줄 몰랐다.”
저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완전히 식었습니다. 엄마를 모욕한 일은 현실적이고, 내가 결혼을 취소하는 건 감정적이라는 겁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예식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친척들은 미쳤다고 했고, 친구들은 너무 충동적이라고 했습니다. 시댁이 될 뻔한 집에서는 저를 상식 없는 여자라고 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습니다.
엄마는 제 앞에서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때문에 네 인생 망친 거 아니니?”
저는 엄마 손을 잡고 대답했습니다.
“엄마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엄마 덕분에 망할 뻔한 인생을 피한 거야.”
결혼은 사랑만 보고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상대가 어떻게 대하는지 보는 일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 엄마를 낮춰 보는 사람은, 언젠가 나도 똑같이 낮춰 볼 사람입니다.
그날 저는 신랑을 잃은 게 아니라, 제 자존심과 엄마의 존엄을 지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