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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작성자인동초(동두천)|작성시간26.06.16|조회수8 목록 댓글 2

엄마가 재혼하던 날, 저는 새아버지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들어오지 마세요. 저는 엄마 남편이 필요 없고, 제 아버지도 필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하객들 앞에서 제 뺨을 때렸습니다.
저는 그때 스물셋이었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했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열두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통사고였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는 혼자 저를 키웠습니다.
엄마는 정말 고생했습니다.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마트 계산대에 앉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잠든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늘 먼저 일어나 있었고, 늘 늦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내가 빨리 성공해서 엄마를 쉬게 해드리겠다고요.
그런데 제가 대학 4학년이던 해,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습니다. 상대는 동네 세탁소 아저씨였습니다. 이름은 박씨. 아내와 사별했고, 자식들은 다 독립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동네 아저씨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가 가끔 세탁물을 맡기러 갔다가 늦게 들어오면, 저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휴대폰에 메시지가 떴습니다.
“오늘도 밥 잘 챙겨 먹어요. 당신 몸이 제일 중요해요.”
저는 그 문장을 보고 이상하게 속이 뒤틀렸습니다.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야?”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엄마가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서 엄마와 저는 둘이 버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그 자리에 다른 남자를 들이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반대했습니다.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엄마가 어떻게 그래? 아빠 잊었어?”
엄마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잊은 적 없어. 그런데 엄마도 사람이야.”
그 말이 그때는 너무 이기적으로 들렸습니다.
엄마는 재혼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집을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친척들은 저를 말렸습니다.
“네 엄마도 이제 좀 기대고 살아야지. 평생 혼자 살라는 거냐?”
저는 그 말이 싫었습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기대면, 그동안 엄마와 제가 쌓아온 세월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결혼식 날이 왔습니다. 작은 식당을 빌려 가족들만 모였습니다. 엄마는 연분홍 한복을 입었습니다. 제가 본 엄마 모습 중 가장 낯설었습니다. 예뻤지만, 이상하게 슬펐습니다.
새아버지가 제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네 엄마 외롭게 하지 않을게.”
저는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에 들어오지 마세요. 저는 엄마 남편이 필요 없고, 제 아버지도 필요 없습니다.”
식당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엄마 얼굴이 새하얘졌습니다. 그리고 제 뺨을 때렸습니다.
“너는 엄마가 행복하면 그렇게 싫으니?”
그 한마디에 저는 더 화가 났습니다. 저는 식장을 뛰쳐나왔고, 그날 이후 엄마와 거의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5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취업했고, 결혼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와는 명절에 짧은 통화만 했습니다. 새아버지는 한 번도 제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임신 중에 쓰러졌습니다. 남편은 지방 출장 중이었고, 저는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병원 침대 옆에는 엄마가 아니라 새아버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제 가방과 신발을 정리해두고, 제 남편에게 연락하고, 병원비 보증까지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제가 놀라 묻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네 엄마가 허리 다쳐서 바로 못 왔다. 내가 먼저 왔다.”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그는 병실 밖 의자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제가 불편할까 봐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새벽에 간호사가 보호자 찾을 때마다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퇴원하는 날, 그는 제게 작은 보온병을 건넸습니다.
“네 엄마가 끓인 미역국이다. 싱거우면 소금 좀 넣어 먹어.”
그때 처음으로 저는 그의 손을 자세히 봤습니다. 손톱 밑에는 세탁소 약품 때문에 누렇게 변한 자국이 있었고, 손등엔 오래된 상처가 많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온병을 열었는데, 안에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엄마 글씨였습니다.
“딸아, 엄마는 네 아빠를 잊은 적 없다. 다만 너무 오래 혼자 무서웠다.”
그 문장을 읽고 저는 한참 울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엄마의 외로움을 지켜준 딸이 아니라, 엄마가 외롭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딸이었습니다.
며칠 뒤 저는 처음으로 새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저씨, 이번 주말에 엄마랑 같이 밥 드시러 오세요.”
그는 한참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내가 가도 되겠니?”
저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습니다.
“네. 엄마 남편으로 오세요.”
지금도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남은 인생까지 아버지의 기억 안에 가둬둘 권리는 저에게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홀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가 늦게라도 재혼하겠다고 하면, 자식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요?
부모의 외로움도 자식이 존중해야 하는 삶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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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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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을 | 작성시간 26.06.16 가슴이 찡한 글이군요
    그나이에는 이해 할수 없을 것이고
    엄마 나이가 되어야 이해 할건데 ...
    그래도 아버지가( 엄마의 남편) 참 좋은 분이시군요
    부모님을 한번더 생각해 봅니다
  • 작성자누리애( 인천 ) | 작성시간 26.06.16 다행히 엄마가 좋은 분 만나셧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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