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조1160년 발자취

완정집8권 부록/권8 - 부록 : 제문(祭文).만사(輓詞).서독(書牘)

작성자동석천 덕명 이선동 (34세손)일하정|작성시간21.07.11|조회수291 목록 댓글 0

祭文

 

祭文[鄕校儒生李壽星,李杜齊等] 향교 유생 이수성李壽星‧이두제李杜齊 등

嗚呼(오호) 아!

昔公之在世也(석공지재세야) 지난날 공이 세상에 계실 적에

佩重望蜚英聲(패중망비영성) 중망을 받고 명성을 날리니

多士服其言(다사복기언) 많은 선비들 그 말을 따르고

一鄕襲其風(일향습기풍) 온 고장이 그 풍도를 이었네

今公之謝世也(금공지사세야) 오늘날 공이 세상을 떠남에

黌舍之有事者(횡사지유사자) 향교에서 일을 맡은 사람들

於何所諮稟(어하소자품) 어디에 여쭐 것이며

後學之迷方者(후학지미방자) 후학 중에 헤매는 사람들

於何所矜式乎(어하소긍식호) 어디를 본보기로 삼겠는가

邦運不幸(방운부행) 국운이 불행하여

斯文長德(사문장덕) 사문의 덕망 갖춘 어른들

一時零落(일시령락) 한때에 돌아가셨네

追未沫之芳躅(추미말지방촉) 사라지지 않을 아름다운 자취 좇으니

痛彌切於安仰(통미절어안앙) 어디를 우러를지 더욱 절실히 아프네

嗚呼(오호) 아!

碧梧黃菊(벽오황국) 오동나무와 국화는

依然舊堂之物色(의연구당지물색) 여전히 예전 집의 그 빛깔인데

金聲玉色(김성옥색) 목소리와 그 모습을

其將何處而更陪也(기장하처이경배야) 앞으로 어디에서 다시 모실까

一觶奉奠(일치봉전) 한 잔 술 받들어 올리니

萬古今夕(만고금석) 오늘 저녁이 만고의 영결이네

 

 

祭文[權穆] 권목權穆

惟靈。勇於退㓗於己。嗚呼其亦可尙也已。棄於朝訕於人。嗚呼其亦可悲也已。求全毁來。鄒聖旨訓。事修謗興。韓子格論。則吾固知自外至之榮辱。不足累其扶綱常之節義也。噫酌以奠情也。文以告禮也。禮不可煩。而情不能極者。如是夫。

아! 영령이시어. 물러남에 용감하고 자신에게 깨끗했으니, 아! 또한 숭상할 만하네. 조정에서 버림받고 남에게 비방을 당하였으니, 아! 또한 슬퍼할 만하네. ‘온전히 하려다가 비방을 당한다.는 맹자孟子의 가르침과 ‘일을 잘 다스려도 비방이 일어난다.는 한유韓愈의 격론格論을 보니, 저는 밖에서 오는 영욕榮辱이 강상綱常을 부지한 절의에 누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참으로 알았네. 아! 술잔으로 저의 마음을 올리고 제문으로 예를 갖추어 고하네. 예는 번거롭게 할 수 없고 마음은 다하지 못하는 것이 이러하네.

 

祭文[李𥳕東湖] 동호東湖 이서李𥳕

嗚呼惟靈(오호유령) 아! 영령이시어

愷悌其姿(개제기자) 화락한 그 자태

追琢其章(추탁기장) 다듬은 그 문장

早抱雄才(조포웅재) 일찍 뛰어난 재주 품고서

獨步藝場(독보예장) 문단에서 독보하였네

晩擢龍頭(만탁룡두) 늦게 장원급제하여

粗伸素志(조신소지) 평소의 뜻 대략 펼쳤네

筮仕昏朝(서사혼조) 광해조에서 벼슬하며

觸忤時議(촉오시의) 시의에 저촉되어

歸田待命(귀전대명) 고향에 돌아와 명을 기다리면서

曾幾何時(증기하시) 얼마나 세월을 보냈던가

反正當日(반정당일) 반정한 당일에

復揚羽儀(복양우의) 다시 관복 입고 출사하였네

搢笏銀臺(진홀은대) 승정원의 관리 되어

出納惟允(출납유윤) 출납에 오직 진실하였네

分憂百里(분우백리) 고을의 수령이 되어

留惠三郡(류혜삼군) 세 고을에 은혜 남겼네

薰德函丈(훈덕함장) 선생의 덕에 훈도 받고

托契同門(탁계동문) 동문들과 교유하였네

享壽七十(향수칠십) 일흔의 수를 누렸으니

古來所罕(고래소한) 옛날부터 드문 일이요

蘭玉滿前(란옥만전) 난옥 같은 자손 가득하니

靑氈可托(청전가탁) 청전을 맡길 수 있네

遭時不淑(조시부숙) 불행한 시절을 만나

警急南北(경급남북) 국난으로 남북을 급히 다녔네

公於是時(공어시시) 공은 이제

厭世高擧(염세고거) 세상이 싫어 운명하니

會弔盈門(회조영문) 조문하는 이 문에 가득하고

襄奉以禮(양봉이례) 예법에 맞게 장례를 치렀네

人哭公喪(인곡공상) 남들은 공의 죽음에 곡하지만

我獨爲賀(아독위하) 나는 홀로 축하하네

顧余無似(고여무사) 돌아보면 못난 나는

世分是荷(세분시하) 공과 세의를 맺었네

靑年傾蓋(청년경개) 청년 시절에 처음 만나

白首無間(백수무간) 백수까지 갈라서지 않았네

有疑斯質(유의사질) 의심이 나면 물어 보고

有事斯難(유사사난) 일이 있으면 논쟁하였네

各緣衰病(각연쇠병) 각자 늙고 병든 뒤로는

命駕雖稀(명가수희) 만나는 일 드물었으나

向往一念(향왕일념) 마음만은 늘 달려갔으니

何日忘之(하일망지) 어느 날인들 잊었겠는가

公今先逝(공금선서) 공이 이제 먼저 떠났어도

我亦從此(아역종차) 나 역시 곧 따를 것이네

吾儕殆盡(오제태진) 친구들 거의 다 떠났으니

存者有幾(존자유기) 살아남은 이 몇인가

踽踽孤踪(우우고종) 쓸쓸히 외로운 처지

無與開懷(무여개회) 회포를 풀 곳이 없네

言念及此(언념급차)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轉切傷摧(전절상최) 저미듯이 마음 아프네

方病在床(방병재상)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터라

無路執紼(무로집불) 상여 줄 잡을 길도 없네

遙將哀淚(요장애루) 멀리서 슬픔의 눈물을

灑向斗麓(쇄향두록) 산자락 향하여 뿌리네

代奠一盃(대전일배) 대신 한 잔 술 올리게 하며

萬古永訣(만고영결) 만고의 영결을 하네

靈其不昧(령기부매) 영령이여! 어둡지 않으니

庶幾歆格(서기흠격)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청전(靑氈) : 가정에 전하는 귀한 유물을 말한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아,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두는 것이 좋겠다. [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晉書 卷80 「王羲之列傳‧王獻之」)

 

 

祭文[門人李道長 洛村] 문인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

嗚呼哀哉(오호애재) 아! 슬프다

惟公家世(유공가세) 공의 집안 누대로

世德之懿(세덕지의) 훌륭한 덕을 쌓아

山花以下(산화이하) 산화 선생 이후로

代有碩士(대유석사) 대대로 큰 선비가 났네

先大夫公(선대부공) 선대인 공께서

克昌其烈(극창기렬) 그 업적 창성하게 하니

山河毓秀(산하육수) 산하가 빼어난 기운 빚어서

篤生賢哲(독생현철) 현철한 분 세상에 내었네

堅確之資(견확지자) 견고하고 확실한 바탕

耿介之質(경개지질) 바르고 강직한 자질

孝友之性(효우지성) 효성스럽고 우애로운 천성

超卓之識(초탁지식) 월등하고 탁월한 식견이었네

胸中宇宙(흉중우주) 흉중에 우주를 담고

皮裏斧鉞(피리부월) 심중에 부월을 간직하며

鵠趨朝端(곡추조단) 큰 포부 품고 조정에 달려가니

貪廉懦立(탐렴나립) 탐하는 자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 분기하며

鸞棲州郡(란서주군) 지방관으로 주군을 다스리니

氷淸玉㓗(빙청옥결)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였네

薇垣讜議(미원당의) 사간원에서 곧은 의견

旣嚴且正(기엄차정) 이미 엄하고 또 바르며

銀臺善謔(은대선학) 승정원에서 뛰어난 재담

不容何病(부용하병) 어떤 허물도 용납하지 않았네

處人所難(처인소난)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맞아

操守愈確(조수유확) 더욱 확고히 지조 지켰네

七端嗚呼(칠단오호) 칠단오호의 편지

奈彼昏濁(내피혼탁) 저가 어찌 저리 혼탁하였는가

司徒滅親(사도멸친) 형조에서 친족까지 멸하자 했지만

聖恩罔極(성은망극) 성은이 망극하여 살아났네

尙書告退(상서고퇴) 승정원에서 고하고 물러나니

江山有樂(강산유악) 강산에 즐거움 있었네

嗚呼哀哉(오호애재) 아! 슬프다

念我先君(념아선군) 생각하니 우리 선고께서

曰惟與公(왈유여공) 공과 더불어

夙歲交遊(숙세교유) 이른 나이로 교유하여

道合志同(도합지동) 도는 맞고 뜻은 같아서

契托金蘭(계탁김란) 금란의 교분을 맺으니

情均骨肉(정균골육) 정이 골육과 한가지였네

於京於鄕(어경어향) 서울에서 지방에서

在窮在達(재궁재달) 빈궁하거나 영달하거나

平生所行(평생소행) 평생 행한 바가

無不相符(무부상부) 서로 모두 부합하였네

趣味則同(취미칙동) 취미마저 같으니

豈有他故(기유타고) 어찌 다른 까닭 있으랴

昔在昏朝(석재혼조) 지난날 광해조에서

明夷垂翼(명이수익) 명이하여 날개 늘어뜨리니

家君先貶(가군선폄) 가군께서 먼저 귀양 가고

公又繼黜(공우계출) 공마저 이어 내쳐졌네

婆娑邱壑(파사구학) 심산계곡을 소요하고

遊嬉林園(유희림원) 우거진 정원을 유람하니

軒冕弊屣(헌면폐사) 높은 관에 헌 신 차림

富貴浮雲(부귀부운) 부귀는 뜬구름이었네

匹馬相從(필마상종) 필마로 서로 따르니

美景良辰(미경량진) 아름다운 풍경 좋은 때였네

依歸泗陽(의귀사양) 한강 선생에게 귀의하여

若將終身(약장종신) 생애를 마치려 하였네

癸亥之春(계해지춘) 계해년 봄에

天日重明(천일중명) 하늘의 해가 다시 밝아져서

峩冠玉珮(아관옥패) 높은 관에 옥을 차고

一時彙征(일시휘정) 일시에 나아가니

朝野共賀(조야공하) 조야에서 함께 축하하고

士林稱榮(사림칭영) 사림이 명예롭다 하였네

玉堂金馬(옥당김마) 승정원과

柏府霜臺(백부상대) 사헌부를

載出載入(재출재입) 출입하며

之德之才(지덕지재) 덕과 재주를 갖추어

獻可替否(헌가체부) 옳음 올리고 그름 막으니

袞職無闕(곤직무궐) 임금님 의복 터진 곳 없었네

眷注彌隆(권주미륭) 은총은 더욱 높아지고

恩榮日篤(은영일독) 은영은 날로 두터워졌어도

事與心違(사여심위) 일과 마음이 어긋나

丐閒養疾(개한양질) 물러나서 병을 조섭하였네

同時去國(동시거국) 동시에 외직을 맡으니

湖潭嶺密(호담령밀) 충청도 담양과 영남의 밀양이었네

顒顒其望(옹옹기망) 융숭한 그 인망이요

顯顯其德(현현기덕) 현저한 그 덕이었네

相繼賦歸(상계부귀) 서로 이어 돌아와서

洛以西東(락이서동) 낙동강의 동서에 머물렀네

浣花亭上(완화정상) 완화정 위에서

鑑湖堂中(감호당중) 감호당 안에서

秋水膾鯉(추수회리) 가을 강의 잉어를 회로 치고

春山賞花(춘산상화) 봄 산의 꽃을 감상하였네

有酒相邀(유주상요) 술이 있으면 서로 부르고

有詩相和(유시상화) 시를 지으면 화운하였네

淸談竟夕(청담경석) 밤새도록 맑은 이야기 나누다

時或信宿(시혹신숙) 때때로 더러 이틀을 묵으니

款款其晤(관관기오) 정다운 이야기와

陶陶其樂(도도기악) 화락한 즐거움이었네

余以不孝(여이부효) 제가 불효하여

奄遭愍凶(엄조민흉) 갑자기 상을 당하자

公惟顧護(공유고호) 공만이 돌봐 주시기를

自始及終(자시급종) 처음부터 끝까지 하였네

先人舊執(선인구집) 선고의 오랜 친구분들

相繼云亡(상계운망) 잇달아 세상을 떠났네

四五年間(사오년간) 너덧 해 동안에

人事堪傷(인사감상) 슬픈 인간 세상의 일

晨星落落(신성락락) 샛별처럼 떨어져 쓸쓸하였는데

只有我公(지유아공) 우리 공만이 계셨네

每奉談笑(매봉담소) 매번 모시고 담소 나누며

如見吾翁(여견오옹) 저의 아버지같이 여겨서

祝公康壽(축공강수) 공의 장수를 빌고

喜公遐祉(희공하지) 공의 큰 복에 기뻐하였네

婚姻之好(혼인지호) 혼인으로 맺어진 좋은 인연

亦豈偶爾(역기우이) 또 어찌 우연이겠는가

奉而周旋(봉이주선) 받들어 주선하며

百世爲期(백세위기) 백대를 기약하였네

何天不憗(하천부은) 어이 하늘이 남겨 두지 않아

一疾莫毉(일질막의) 하나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는가

嗚呼哀哉(오호애재) 아! 슬프다

位躋伐氷(위제벌빙) 지위는 대부에 올라도

不爲詘也(부위굴야) 소신 굽히지 않았고

壽過七旬(수과칠순) 일흔 넘도록 장수하였으니

不爲嗇也(부위색야) 인색하지는 않았네

四璧幷携(사벽병휴) 네 구슬 움켜쥐니

福未艾也(복미애야) 복이 다 끝나지 않았고

國人皆賢(국인개현) 나라 사람들 다 훌륭하다 하니

德不虧也(덕부휴야) 덕이 무너진 것도 아니네

得其正而全歸兮(득기정이전귀혜) 그 바름을 얻어 온전히 돌아갔으니

吾爲公而何悲(오위공이하비) 내가 공을 위해 무어 슬퍼하겠는가

秋風淸兮秋月明(추풍청혜추월명) 가을바람 맑고 가을 달 밝으며

水如鏡兮山如畫(수여경혜산여화) 거울 같은 물이고 그림 같은 산이네

鷗喚侶於沙渚兮(구환려어사저혜) 흰 새 불러 모래톱에서 짝하고

魚自遊於亭之下(어자유어정지하) 물고기 절로 완정 아래에서 노니는데

寂虛堂之空閉兮(적허당지공폐혜) 적적한 마루에는 문이 닫혔고

痛九原之不可作(통구원지부가작) 구천에서 돌아오지 못해서 슬프네

洛之兆兮峴之宅(락지조혜현지댁) 낙동강 가 언덕의 무덤에

草已宿兮松已實(초이숙혜송이실) 풀은 시들고 소나무는 열매 맺었네

嗟萬事之亡羊兮(차만사지망양혜) 아! 만사가 아득하기만 하니

邈難接乎儀形(막난접호의형) 그 모습 멀어져 만나기 어렵네

奠不能以躳薦兮(전부능이궁천혜) 전은 직접 올리지 못하여도

哭不借於人聲(곡부차어인성) 곡만은 남의 목소리 빌리지 않았네

倘英靈之有知兮(당영령지유지혜) 혹시나 영령께서 아시거든

庶昭格於微誠(서소격어미성) 보잘것없는 정성에 밝게 임하소서

칠단오호(七端嗚呼)의 편지 : 대북파에 붙어 기세등등하였던 사돈 박극무(朴克懋)를 타이른 편지를 말 한다.

금란(金蘭) : 절친한 친구 사이를 말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르고 마음을 함께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에서 유래한다.(周易 「繫辭傳上」)

명이(明夷)하여 날개 늘어뜨리니 : ‘명이하여’는 주역64괘 중의 하나로서 밝음을 상징하는 이(離)가 땅을 상징하 는 곤(坤) 아래에 위치하여, 현자가 뜻을 얻지 못한 채 참언을 당하며 고달픈 처지에 놓인 것을 보여 주는 괘로, 여기서는 광해군이 다스리던 혼란한 시기를 말한다. ‘날개 늘어뜨리니’는 어진 자가 좌절을 당하여 멈추어 있으면 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명이괘 초구(初九)의 본의(本義)에 “날면서 날개를 늘어뜨리니 손상을 당한 상이다.[飛而垂翼 見傷之象]”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임금님……없었네 : 선정을 베풀도록 제대로 도왔음을 말한다. “임금님 의복이 터지면, 중산보가 꿰맨다네.[袞職有闕 維仲山甫補之]”에서 유래한다.(詩經「烝民」)

충청도……밀양이었네 : 이도장의 부친 이윤우(李潤雨)는 1627년 세자(世子)의 가례(嘉禮)를 행할 적에 보덕(輔德)을 맡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된 뒤 담양(潭陽)의 수령으로 나갔으며, 이언영은 1628년 밀양 도호부사에 임명되었다.

 

 

祭文[門人李忠民] 문인 이충민李忠民

嗚呼(오호) 아!

公山孕秀(공산잉수) 팔공산 빼어난 기운 품고

洛水鍾精(락수종정) 낙동강 정기를 모아

稟氣其間(품기기간) 그 사이에서 기를 받은 분

曰惟先生(왈유선생) 오직 선생만이네

孝悌爲本(효제위본) 효제는 근본이고

忠信爲質(충신위질) 충신은 바탕이며

秉心水鏡(병심수경) 마음가짐 맑은 물이요

律己氷櫱(률기빙얼) 몸가짐 청빈한 얼음과 움이네

敢言昏朝(감언혼조) 광해군 조정에서 감히 말하니

綱常以植(강상이식) 윤리강상이 바로 섰네

際會明時(제회명시) 밝은 시절 만나자

聲望益隆(성망익륭) 명성이 더욱 높아져서

朝野拭目(조야식목) 조야에서 눈을 비비며

將期大庸(장기대용) 크게 쓰이기를 기대하였네

天胡不憗(천호부은) 하늘이 어이 남겨 두지 않아

遽奪我公(거탈아공) 서둘러 우리 공을 앗아갔는가

念我無狀(념아무상) 생각하면 못난 나는

不天孤露(부천고로) 불행히도 고아가 되어

終鮮兄弟(종선형제) 끝내 형제도 드물고

又無師友(우무사우) 또 사우마저 없었네

獨行睘睘(독행경경) 홀로 가는 외로운 처지

有杕之杜(유체지두) 뚝 선 팥배나무였네

公惟愍然(공유민연) 공만은 제가 가련하여

曰我同宗(왈아동종) 우리 동종이라 하며

携我同歸(휴아동귀) 나를 이끌고 함께 돌아가

叩昏開蒙(고혼개몽)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었네

出入門庭(출입문정) 집안을 출입한 지

已垂三紀(이수삼기) 어느덧 서른여섯 해

得至今日(득지금일)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

是誰之賜(시수지사) 이 누구 덕분이겠는가

餘波所霑(여파소점) 여파로 끼친 은택

更及豚犬(경급돈견) 다시 못난 저에게 미쳤네

視猶己出(시유기출) 당신의 소생과 같이 여기며

提耳命面(제이명면) 자상히 마주하여 가르쳐 주었네

冠而公命(관이공명) 관례할 적에 공이 명하고

娶而公主(취이공주) 장가들 적에 공이 혼주였네

義則師生(의칙사생) 의리로는 사제 간이어도

恩猶父子(은유부자) 은혜는 부자와 한가지였네

一息未絶(일식미절) 한 가닥 숨이 남아 있는 날까지

敢忘斯德(감망사덕) 감히 이 은혜 잊겠는가

屬公病革(속공병혁) 지난번 공의 병세 깊어졌건만

我在衰絰(아재쇠질) 제가 상중이어서

禮防有拘(례방유구) 예법에 구애받아

未伸築室(미신축실) 축실마저 하지 못하였네

孤負至恩(고부지은) 지극한 은혜 저버렸으니

我懷曷極(아회갈극) 저의 심정 어찌 다하겠는가

罪積不滅(죄적부멸) 쌓인 죄가 남았는데

奄及免喪(엄급면상) 어느덧 복을 벗었기에

來哭寢門(래곡침문) 정침 문 앞으로 와 곡한 뒤

祥而又祥(상이우상) 소상 지나 대상이 되었네

昔我來斯(석아래사) 예전에 제가 여기 오면

公笑而迎(공소이영) 공이 웃으며 맞아 주었건만

今我來思(금아래사) 이제 제가 왔는데도

邈矣儀刑(막의의형) 그 모습 아득하기만 하네

單盃奉奠(단배봉전) 한 잔 술 받들어 올리니

五內如割(오내여할) 오장이 갈라지는 듯하네

一聲長慟(일성장통) 한 번 길게 통곡하며

萬古永訣(만고영결) 만고의 영결을 고하네

홀로……팥배나무 : 부모를 잃고 형제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를 말한다. “우뚝 선 팥배나무, 오직 잎만 더부룩할 뿐. 홀로 가는 외로운 처지, 어찌 다른 사람 없으랴만, 나의 형제만은 못하네.[有杕之杜 其葉湑湑 獨行踽踽 豈無他人 不如我同父]”에서 유래한다.(詩經「杕杜」)

축실(築室) : 스승의 무덤에서 시묘(侍墓)를 사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공자가 운명하자 삼년상을 지낸뒤 다른 제자들은 다 돌아갔다. 짐을 꾸려 돌아가면서 들어와 자공에게 읍을 하고 마주하여 곡을하여 모두 목이쉰 연후에 돌아갔다. 자공은 홀로 돌아와 다시 여막을 짓고 홀로 3년을 지낸 뒤에 돌아갔다. [昔者 孔子沒 三年之外門人 治任將歸 入揖於子貢 相嚮而哭 皆失聲然後歸 子貢反築室於場 獨居三年然後歸]”에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여기서는 제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말한다.

 

 

祭文[門人李道章] 문인 이도장李道章

嗚呼惟公(오호유공) 아! 공께서는

間世之器(간세지기) 세상에 드문 기량

出羣之才(출군지재) 출중한 재주 품으니

魁然氣宇(괴연기우) 우뚝한 기국이요

炯然靈臺(형연령대) 분명한 마음이었네

名高鴈㙮(명고안답) 명성은 높아 안탑에 들고

望重安石(망중안석) 인망은 두터워 안석보다 중하였네

筮仕明時(서사명시) 태평 시대에 벼슬하니

人稱盡職(인칭진직) 사람들 직분을 다한다 일컫고

暫立昏朝(잠립혼조) 잠시 광해조에 벼슬하니

史書直節(사서직절) 역사서에 곧은 절개라 하였네

日不俟終(일부사종) 날이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十載園林(십재원림) 십 년을 전원에서 지냈어도

函丈有樂(함장유악) 선생께서 즐거워하며

軒冕無心(헌면무심) 벼슬에는 마음이 없었으니

外物何與(외물하여) 외물이 어이 관여하랴

若將終身(약장종신) 한평생 그렇게 마칠 듯하였네

白日當天(백일당천) 밝은 해가 하늘로 솟아

朝野一新(조야일신) 조야가 한 번 새로워지니

峩冠巨履(아관거리) 높은 관에 큰 신 신고

首膺寵召(수응총소) 맨 먼저 소명에 응하였네

柏府振綱(백부진강) 사헌부에서 기강을 일으키고

銀臺草詔(은대초조) 승정원에서 조서의 초를 잡았네

棲棲州郡(서서주군) 고을을 맡아 분주하였으나

百里非才(백리비재) 한 지방이나 다스릴 인재 아니었네

睠彼浣巖(권피완암) 저 완암을 잊지 않았으니

盍歸乎哉(합귀호재) 어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盟深白鷗(맹심백구) 흰 새와 맹세가 깊어

志絶靑綾(지절청릉) 청릉에는 마음을 접었네

盈尊旨酒(영존지주) 술동이에는 맛난 술 가득하고

滿堂親朋(만당친붕) 집에는 친구들이 넘쳐났네

秋江魚肥(추강어비) 가을 강의 물고기 살찌고

春山日長(춘산일장) 봄 산의 해는 길어졌네

晤語竟夕(오어경석) 만나 밤새워 이야기 나누며

榮辱相忘(영욕상망) 서로 영욕을 잊었네

先子與公(선자여공) 선고와 공께서는

托契金石(탁계김석) 금석 같이 교분을 맺어

死生契活(사생계활) 사생 간에 애쓰고 고생하니

不啻骨肉(부시골육) 골육과 다름이 없었네

小子夤緣(소자인연) 소자는 그 인연으로

出入門墻(출입문장) 집안을 출입하여

叨陪杖屨(도배장구) 옆에서 시중들고 모시며

閱幾星霜(열기성상) 몇 해를 보냈네

分誼尤重(분의우중) 나눈 정의 더욱 소중해져

婚姻之故(혼인지고) 혼인의 인연 맺었네

每承良䂓(매승량규) 매번 훌륭한 가르침 받았으니

如見亡父(여견망부) 선고처럼 여겼네

謂享艾耄(위향애모) 오래오래 살아서

永保脩齡(영보수령) 길이 장수하실 줄 알았는데

天不憗遺(천부은유) 하늘이 남겨 두지 않아

雞夢忽驚(계몽홀경) 닭 꿈에 갑자기 놀랐네

日月如馳(일월여치) 세월이 말달리듯 해서

初朞已迫(초기이박) 첫 제사가 벌써 다가왔네

音徽愈遠(음휘유원) 덕음은 더욱 멀어지고

笑語莫接(소어막접) 웃음소리 들을 길 없으니

我懷之悲(아회지비) 저의 서글픈 심정

曷有其極(갈유기극) 어이 다함이 있겠는가

一聲長慟(일성장통) 한 번의 긴 통곡으로

萬古深情(만고심정) 만고의 깊은 정 드러내니

不昧者存(부매자존) 영령이시여 계시거든

庶鑑此誠(서감차성) 이 정성을 살펴주소서

안탑(鴈塔) : 생원시에 입격한 것을 말한다. 당(唐)나라 때 진사과에 입격한 사람들이 자은사(慈恩寺)의 대안탑(大鴈塔) 아래에 이름을 기록해 넣은 고사에서 유래한다.(唐摭言「慈恩寺題名游賞賦詠雜記」)

안석(安石) : 동진(東晉)의 재상(宰相) 사안(謝安)의 자다. 젊어서는 청담으로 이름났다. 벼슬살이하면서도 경륜과 지략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는데, 회계의 동산에 은거하자, 당시 사람들은 “안석이 선뜻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창생들을 어찌하겠는가.[安石不肯出 將如蒼生何]”라고 하였다.(晉書「謝安傳」)

날이……않고 : 자신의 신념과 어긋날 때는 지조를 돌처럼 굳게 지키면서 단호하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것을 말한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떠나면서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예괘(豫卦) 육이(六二)에 ‘돌처럼 견고 해서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정하고 길하다.’ 하였다. 절조가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 리겠는가. 이에서 군자의 결단을 알 수 있다.[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 易曰 介于石 不終日 貞吉 介如石焉 寧用終日 斷可知矣]”에서 유래한다.(周易「繫辭傳下」)

청릉(靑綾) : 궁중에서 숙직하는 시종신을 말한다. 한(漢)나라 때 상서랑(尙書郞)이 번을 서면 푸른 깁으로 만든 이불[靑綾被]과 흰 깁으로 만든 이불[白綾被], 또는 비단 이불[錦被]을 지급한 데서 유래한다.

닭 꿈 : 죽을 조짐을 말한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병이 위독해지자, 구슬프게 부모에게 “예전에 환 온(桓溫)이 살았을 적에 내가 항상 온전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갑작스런 꿈에, 환온의 가마를 타고 16리 가서 흰 닭 한 마리를 보고는 멈추었습니다. 환온의 가마를 탄 것은 그의 자리를 대신함이요. 16리 가서 멈추었는데 지금이 16년째입니다. 흰 닭은 유(酉)를 주관하는데, 지금의 태세가 유입니다. 그러니 저의 병은 아마 낫지 않을 듯합니다.”라고 한데서 유래한다.(晉書「謝安傳」)

 

 

祭文[門人李惟銓] 문인 이유전李惟銓

嗚呼惟公(오호유공) 아! 공께서는

溫淳姿質(온순자질) 자질이 온순하고

超邁才調(초매재조) 재주가 고매하여

柔而能剛(유이능강) 부드러우면서 강직하고

和而不流(화이부류) 조화로우면서 휩쓸리지 않았네

堅貞自守(견정자수) 굳세고 곧음을 스스로 지켜

確然獨立(확연독립) 확연히 홀로 서니

不爲物淄(부위물치) 외물에 물들지 않고

不爲物奪(부위물탈) 외물에 뜻을 빼앗기지 않았네

思慮精詳(사려정상) 사려는 세밀하고 자상하며

心事安閒(심사안한) 심사는 편안하고 한가로웠네

名播一世(명파일세) 이름은 온 세상에 알려지고

聲振三韓(성진삼한) 명성은 삼한을 흔들었네

霜臺隔帳(상대격장) 사헌부에서 휘장을 치니

滿堂變色(만당변색) 모든 신하들 얼굴빛이 달라지고

數行書奏(수행서주) 몇 줄의 글로 아뢰니

天怒赫赫(천노혁혁) 임금께서 노여워 얼굴 붉혔네

不去何爲(부거하위) 떠나지 않고 어찌하겠는가

三綱淪沒(삼강륜몰) 삼강이 무너졌는데

惟意卷舒(유의권서) 올바른 진퇴만 생각하며

浩然歸歟(호연귀여) 호연히 돌아왔네

斂翅索居(렴시색거) 나래 접고 한가로이 지낸 것이

七八年餘(칠팔년여) 칠팔 년 남짓이었네

日月重光(일월중광) 일월이 다시 밝아져

登崇俊良(등숭준량) 훌륭한 분들 높이 올랐네

更峩豸冠(경아치관) 해치관 더 높이 쓰고

鶚立朝端(악립조단) 우뚝이 조정에 섰네

世我相違(세아상위) 세상과 내가 서로 어긋나

鳳棲枳棘(봉서지극) 봉황이 가시나무에 머물렀어도

淸白自持(청백자지) 청백을 스스로 지키며

一心徇國(일심순국) 한마음으로 충성하였네

賢路崎嶇(현로기구) 훌륭한 분 벼슬길 험난하여

九疑瞿塘(구의구당) 구의 같고 구당 같았네

豈可形役(기가형역) 어찌 육신의 부림을 받으랴

不竢治裝(부사치장) 행장 꾸려지기를 기다리지 않았네

爰得我直(원득아직) 이에 자신의 곧음대로

歸卧桑鄕(귀와상향) 고향으로 돌아와 누웠네

闢蕪田園(벽무전원) 거칠어진 전원을 가꾸어

足療我飢(족료아기) 나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臨江結屋(림강결옥) 강을 마주하고 집을 지으니

採釣俱宜(채조구의) 나물 캐고 낚시하기 모두 맞았네

優哉游哉(우재유재) 여유 있게 지내면서

以永今夕(이영금석) 오늘 밤 길게 늘였네

匀天詔下(균천조하) 궁궐에서 조서가 내려왔으나

茂陵臣疾(무릉신질) 무릉의 신하는 병이 나서

歲匪龍蛇(세비룡사) 용사의 해가 아닌데도

天奪何速(천탈하속) 하늘이 어이 빨리 뺐어갔는가

昔我先君(석아선군) 예전 저의 선고와

生幷一時(생병일시) 한 해에 태어나서

派分義重(파분의중) 파는 달라도 의리는 무거워

管鮑心知(관포심지) 관포처럼 마음을 나누었네

小子叨陪(소자도배) 소자가 모신 지

今幾星霜(금기성상) 이제 몇 해나 되었는가

自失所怙(자실소호) 선고께서 돌아가신 뒤로

孤苦凉凉(고고량량) 외롭고 고달파 쓸쓸하였기에

惟公是依(유공시의) 공만을 의지한 것이

不啻尋常(부시심상) 보통 정도가 아니었네

今焉已矣(금언이의) 이제는 그만이네

奈何蒼旻(내하창민) 하늘이여 어이하나

出門無往(출문무왕) 문을 나서도 갈 곳 없고

訴懷誰因(소회수인) 하소연하고 싶어도 누구에게 하나

仲春拜牀(중춘배상) 이월에 찾아뵈었을 적에

神宇如昔(신우여석) 정신이 여전하여

討論今古(토론금고) 고금의 일을 토론하며

披露肝膈(피로간격) 마음속의 이야기 나누었네

那知此別(나지차별) 어이 알았으랴, 이 작별이

遽作永訣(거작영결) 갑작스런 영결이 될 줄을

緬想高風(면상고풍) 고아한 인품 회상해 보지만

何處更得(하처경득) 어디서 다시 뵙겠는가

庭茁蘭芽(정줄란아) 집안의 훌륭한 자식들

克守靑氈(극수청전) 청전을 잘 지키니

門閭赫赫(문려혁혁) 가문은 더욱 번창하고

餘慶綿綿(여경면면) 여경은 면면할 것인데

末路茹恨(말로여한) 만년에 품은 한

何足介意(하족개의) 뭐 하러 마음에 두겠는가

况値不辰(황치부진) 더구나 불행한 시절 만나

亂離瘼矣(란리막의) 난리로 피폐해지는 세상이겠는가

俯仰今世(부앙금세)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余欲無生(여욕무생) 저는 살고 싶지가 않네

似公全歸(사공전귀) 공과 같이 온전히 돌아간다면

生順沒寧(생순몰녕) 살아서 순하고 죽어서 편안하네

嗚呼(오호) 아!

江風蕭瑟(강풍소슬) 강바람은 스산하고

岡月荒凉(강월황량) 언덕 위 달은 쓸쓸하네

宛陪儀形(완배의형) 모시던 그 모습 또렷하여

觸目悲傷(촉목비상) 보이는 것마다 서글프네

卽遠在邇(즉원재이) 발인 날이 다가와

少長咸集(소장함집) 노소가 다 모였는데

公何長卧(공하장와) 공은 어이 마냥 누워서

漠無一說(막무일설) 조용히 말 한마디 없으신가

單巵荒辭(단치황사) 한 잔 술 거친 말에

五內如割(오내여할) 오장이 갈라지는 듯하네

尊靈不昧(존령부매) 영령이여 어둡지 않다면

尙冀歆格(상기흠격) 오셔서 흠향하소서

해치관((獬豸冠) : 해치는 전설에 나오는 신령스러운 양(羊)인데, 능히 곡직(曲直)을 분별하므로, 초왕 (楚王)이 항상 이를 잡아다가 관(冠)을 만들어 대간(臺諫)들이 쓰게 하였다고 한다.(後漢書「輿服志下」) 우리나 라의 경우도 조선 시대에 법을 집행하던 사헌부 관원들이 ‘해치관’을 썼다.

봉황이 가시나무에 머물렀어도 : 현사(賢士)가 낮은 지위에 있음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고성 영(考城令) 왕환(王渙)이 호랑이같이 엄한 정사(政事)를 숭상하다가, 그 고을 포(蒲)의 정장(亭長) 구람(仇覽)이 덕 (德)으로 사람을 교화시킨다는 말을 듣고, 그를 주부(主簿)로 삼은 다음 그에게 진원(陳元)이란 사람의 죄 과(罪過)를 듣고도 처벌하지 않고 그를 교화시켰다 하니, 응전(鷹鸇) 같은 맹렬한 뜻이 적은 게 아닌가하고 물었 다. 그러자 구람이 응전이라는 것이 난봉(鸞鳳)만 못하다고 말하기에, 왕환이 사과하고 그를 보내면서 “가시나무 는 난봉이 깃들 곳이 아니거니, 백리 고을이 어찌 대현이 있을 곳이리.[枳棘非鸞鳳所棲 百里豈大賢之路]”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後漢書「循吏列傳‧仇覽」)

구의(九疑) : 분간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구의는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순(舜)임금이 여기에 묻혔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아홉 개의 봉우리 모양이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당(瞿塘) : 매우 험난함을 말한다. 중국 사천성(四川省) 삼협(三峽)의 하나로 강 양쪽 언덕이 가파르게 높이 치솟은 데다 골짜기 어귀의 강 가운데 염예(灩澦)라는 큰 바위가 서있어 물살이 몹시 사납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배들이 많이 전복된다고 한다.

육신의 부림[形役] : 마음이 물욕에 흔들림을 말한다.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이미 스스로 마음을 가지고 형체의 부림 받았으니, 어찌 실의에 빠져 슬퍼만 하리오.[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오늘……늘였네 : 밤새도록 즐기면서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쉬운 심정을 말한다. 시경「백구(白駒)」의 “희디흰 백구가, 내 밭의 콩잎을 먹었다고, 붙잡아 매어 두고, 오늘 밤 길게 늘여서, 저 훌륭한 분, 내 집의 귀빈으로 모셨으면.[皎皎白駒 食我場藿 縶之維之 以永今夕 所謂伊人 於焉嘉客]”에서 온 말이다.

무릉(茂陵) :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병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살던 곳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는 곳을 말 한다.

용사(龍蛇)의 해 : 현인군자가 죽는다는 진년(辰年)이나 사년(巳年)의 액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의 꿈 에 공자(孔子)가 나타나 ‘빨리 일어나라. 금년은 용해고 내년은 뱀해다.’라고 하였다. 그 당시의 참언(讖言)에 “진 은 용이고, 사는 뱀이다. 해가 진사에 이르면 현인이 탄식한다.[辰爲龍 巳爲蛇 歲至龍蛇 賢人嗟]”는 말이 있었으므 로, 자신의 수명이 다하였음을 알았는데,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현이 병들어서 죽었다.(後漢書「鄭玄傳」)

관포(管鮑)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인데,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여 교분이 매우 두터웠다. 관중이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고 나를 알아준 자는 포숙이다.[生我者 父母 知我者 鮑子也]”라고 하였다.(史記「管安列傳」)

여경(餘慶) : 조상이 쌓은 복을 말한다. “선을 많이 행한 집안은 그 은택이 반드시 후손에게 미치고, 불선을 많이 행한 집안은 반드시 후환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에서 온 말이다.(周易「坤卦‧文言」)

온전히 돌아간다면 :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몸을 잘 보중하여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온전하게 낳아 주었으므로,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만 효도라고 할 수 있다.[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라고 한 데 서 유래한다.(禮記「祭義」)

 

 

祭文[門下崔震衡] 문하 최진형崔震衡

惟公(유공) 공이시여

碧珍之右閥兮(벽진지우벌혜) 벽진의 명문가였네

簪纓能繼(잠영능계) 고관들이 연이어 나고

山花之望族兮(산화지망족혜) 산화 선생의 망족으로

冠冕赫世(관면혁세) 벼슬아치 대대로 났네

高步藝苑(고보예원) 문단에서 활보하니

採玉井之靑蓮(채옥정지청련) 옥정의 청련을 뜯었으며

魁名金牓(괴명김방) 과장에서 장원하니

攀月宮之丹桂(반월궁지단계) 월궁의 단계를 부여잡았네

早立百梅之庭(조립백매지정) 일찍 백매원의 뜰에 서서

薰德函席(훈덕함석) 선생에게 훈도되고

晩戲刺桐之下(만희자동지하) 늦게 엄나무 아래에서 노니니

衍宇芝蘭(연우지란) 친구들 집안 가득하였네

昏朝叙彝倫(혼조서이륜) 혼탁한 조정에서 이륜을 펴니

凜危言於霜臺(름위언어상대) 기품 있는 말 사헌부에서 늠름하고

昭代效忠貞(소대효충정) 밝은 시대에 충정을 바치니

徹義聲於天閽(철의성어천혼) 의로운 소리 궁궐까지 퍼졌네

朱旙皁盖(주번조개) 주번과 조개

仁風五馬之榮(인풍오마지영) 인풍과 오마의 영광이요

靑瑣丹墀(청쇄단지) 청쇄와 단지

卿月三品之尊(경월삼품지존) 경월과 삼품의 존귀함이었네

履盛滿而知止(리성만이지지) 가득 찼어도 그칠 줄 아니

勇退急流之波瀾(용퇴급류지파란) 급류 속에서 과감히 벗어나

某水邱之指點(모수구지지점) 어느 강 어느 언덕 가리키며

歸老故山之煙雲(귀로고산지연운) 늙어 구름 낀 고향 산하로 돌아왔네

謂遐齡之安享(위하령지안향) 장수를 편안히 누리며

庶江湖之棲遲(서강호지서지) 강호에서 느긋이 지내길 바랐는데

何靈筭之未期(하령산지미기) 어이 수명이 기약 없어서

厭濁世而長辭(염탁세이장사) 혼란한 세상 싫어 영원히 떠나셨나

驚一枕於夢雞(경일침어몽계) 하룻밤 닭 꿈에 놀라니

月孤新阡(월고신천) 달빛은 새 무덤에 외롭고

付萬事於亡羊(부만사어망양) 온갖 일 망양에 부치니

風凄舊宅(풍처구댁) 바람만 옛집에 쓸쓸히 부네

長德日凋落(장덕일조락) 덕망 있는 분들 날마다 떠나니

奚但鄕黨之不幸(해단향당지부행) 어찌 향당만의 불행이며

賢臣天不憗(현신천부은) 훌륭한 신하 하늘이 남기지 않으니

實惟邦家之無祿(실유방가지무록) 실로 나라의 복이 없네

嗚呼惟公(오호유공) 아! 공이여

與我祖父(여아조부) 우리 할아버지와는

義同弟兄(의동제형) 의리가 형제와 같아

照劍肝膽(조검간담) 마음을 칼날처럼 서로 비추고

淡水心情(담수심정) 심정은 담수처럼 맑았네

慟矣去夏哭祖父之棄背(통의거하곡조부지기배) 아프구나, 지난여름 할아버지 떠나셔서 곡하더니

慘哉今秋吊我公之永歸(참재금추적아공지영귀) 참담하구나, 올가을엔 우리 공 운명하여 조문하네

幽明莫及(유명막급) 유명 간은 알지 못하여

縱昧泉下之消息(종매천하지소식) 지하의 소식에는 어둡더라도

存歿無殊(존몰무수) 살고 죽는다고 다르지 않으니

倘續世間之追隨(당속세간지추수) 혹시 세상의 교제 다시 이으시는가

言念義分之彌篤(언념의분지미독) 더욱 두터웠던 정분 생각하자니

但覺胸腑之自塞(단각흉부지자새)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낄 뿐이네

嗟余小子之庸陋(차여소자지용루) 아! 용렬한 소자는

叨陪多年(도배다년) 여러 해 모시면서

每接丈人之耿光(매접장인지경광) 매번 어른의 성대한 덕을 접하며

蒙恤幾日(몽휼기일) 얼마나 보살핌을 받았던가

長號一聲(장호일성) 한 번 길게 통곡하고는

敢奠菲薄之微忱(감전비박지미침) 감히 보잘것없는 정성을 올리며

永訣千秋(영결천추) 천추의 영결을 고하니

庶冀精靈之歆格(서기정령지흠격) 영령께서 이르러 흠향하소서

청련(靑蓮) : 태화산(太華山) 꼭대기에 있는 옥정에서 나는 연으로, 뛰어난 문장을 말한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에 “태화산 꼭대기에 있는 옥정의 연은, 꽃이 피면 열 길이요 뿌리는 배와 같은데, 차기는 눈서리 같고 달기는 꿀과 같아, 한 조각만 입에 넣어도 묵은 병이 낫는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冷比雪霜甘比蜜 一片入口沈痾痊]”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단계(丹桂) : 과거에 장원한 것을 말한다. 급제한 극선(郤詵)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진 무제(晉武帝)가 묻자, 극선이 “신이 현량대책에서 뽑힌 것은 천하제일이어서 계수나무 숲의 하나의 가지며 곤륜산의 한 조각 옥과 같습니다. [臣舉賢良對策 爲天下第一 猶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답한 일에서 유래한다.(晉書「郤詵傳」)

백매원(百梅園) :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지은 정구(鄭逑)는 앞뜰에 매화를 심고 백매원이라고 하였다.

주번(朱旙)과 조개(皁盖) : ‘주번’은 수레에 흙이 튀어 오르지 않도록 가리는 붉은 흙받기를 말하고, ‘조개’는 수레 위에 치는 검은 일산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고관의 수레를 가리킨다. ‘주번’의 ‘번’자는 ‘번(轓)’인데, 이 제문에서 는 ‘번(旛)’자를 썼다.

인풍(仁風)과 오마(五馬) : 지방 장관이 선정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인풍’은 진(晉)나라 원굉(袁宏)이 동양 군수 (東陽郡守)로 부임할 적에 사안(謝安)이 부채 하나를 선물로 주자, 원굉이 “인애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저 백성들을 위로하겠다.[當奉揚仁風 慰彼黎庶]”라고 대답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世說新語「言語」) ‘오마’는 한나라 때 태 수의 수레를 다섯 필의 말이 끌었던 데서 온 말이다.

청쇄(靑瑣)와 단지(丹墀) : ‘청쇄’는 한(漢)나라 궁궐의 문에 푸른 칠을 하였으므로, 일반적으로 궁문(宮門)을 말한다. ‘단지’는 궁궐의 계단을 붉은색으로 지었으므로, 궁궐 혹은 관부를 말한다.

경월(卿月)과 삼품(三品) : ‘경월’은 백관은 말하는데, 서경「홍범(洪範)」의 “왕이 살펴야 할 것은 오직 해고, 경사는 오직 달이고, 사윤은 오직 날이다.[王省惟歲 卿士惟月 師尹惟日]”에서 유래한다. ‘삼품’은 조정 관료의 품계를 말한다.

급류……벗어나 : 벼슬에서 과감하게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송나라 전약수(錢若水)에 대해서 어떤 도승 (道僧)이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날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평하였는데, 과연 그가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40세도 안된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전해진다.(聞見前錄卷7)

어느……언덕 : 고향의 강과 언덕을 말한다.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양 소윤을 보내는 글의 서[送楊少尹序]」의 “지금 그대 고향 돌아가서 나무를 가리키며 ‘아무 나무는 나의 선인께서 심은 것이고, 아무 물과 아무 언덕은 내가 어린 시절에 낚시하며 놀던 곳이다.’라고 하겠지.[今之歸 指其樹曰 某樹吾先人之所種也 某水某丘 吾童子時所釣遊也]”에서 온 말이다.

망양(亡羊) : 외물(外物)에 마음이 팔려 자기 본성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병무(騈拇)」의 “장 과 곡 두 사람이 양을 치다가 함께 양을 잃어버렸다. 장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책 상자를 끼고 책을 읽어서라고 하고, 곡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주사위 놀이해서라고 하였다.[臧與穀二人相與牧羊 而俱亡其羊 問臧奚事 則挾筴讀書 問穀奚事 則博塞以遊]”에서 유래한다. 여기서는 세상일이 결 과적으로 마찬가지여서 개의치 않고 떠나는 것을 말한다.

 

 

祭文[門人李壽星] 문인 이수성李壽星

惟靈。性全才德。旣有源百之行。志在君民。更加穿榻之功。觀國之光則瞀矢百中。擢第龍門。曳裾於朝則謇諤銀臺。風生鷺班。歷典三邑則視事日淺。驥蹄未展。置散江湖則盟𩿨沙渚。消遣日月。顧瞻人世。得其一者亦少。兼此四者惟我令公。則孰不羡公。孰不服公。不肖無狀。早歲失親。負笈門下。自髫至長。俯就策鈍。視猶骨肉。愚蒙之得辨豕亥。何莫非公之賜也。自京來也。路聞公有不安節。意謂神明之所扶持而天可必也。豈料公之訃。遽傳於及門之日。而玉色金聲。其不更襲於斯世也哉。考德稽疑之無所。盖後生之咸痛。而安倣安仰之私哭。在小子而罔涯。蘋羞蘭酌。何足露事一之微誠。寓哀荒詞。庶幾徹九原之如在。嗚呼哀哉。

아! 영령이여.

천성이 재주와 덕을 온전히 하여 이미 백행百行의 근원인 효를 실천하고, 뜻이 군민君民에게 있어 다시 평상이 뚫어지는 공부를 더하였네. 나라의 휘황한 빛을 보니, 어른대는 화살 이 백발백중하듯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네. 조정에 들어서는 승정원에서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하여 풍도가 관료 중에 드러났 으며, 세 고을을 두루 다스려서는 정무를 맡아본 날이 짧아 훌륭한 재주 펴지 못하 였으며, 강호에 버려져서는 모래톱의 흰 새와 맺은 약속대로 세월을 보냈네. 인세 人世를 돌아보아도 이 중 하나라도 누린 사람이 드무네. 이 네 가지를 겸한 분은 우리 영공令公만이니, 누가 공을 부러워하지 않고 누가 공에게 감복하지 않겠는가. 못난 저는 어린 나이에 선고께서 돌아가셔서 문하로 들어가 배웠네.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 까지 나아가 저의 못난 점을 바로잡으니, 골육같이 보살펴 주셨네. 어리석은 제가 시해豕亥 나마 분변하게 된 것은 어찌 공의 덕분이 아니겠는가. 서울에서 돌아왔을 적에 공께서 불편하다는 소식을 길에서 듣고 신명神明이 보살필 것이며 하늘의 뜻은 반드시 공정하리라고 여겼는데, 공의 부고가 갑자기 전해져 문에 도착하였네. 옥 같은 그 모습과 쇠북 같은 그 목소리를 이 세상에서 더는 접하지 못하게 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덕을 살피고 의문을 밝힐 길이 없어져 후생들은 모두 아파하며, 어디를 의지하고 어디를 우러를까라며 사사로이 곡하네. 소자가 입은 은혜 망극한데, 보잘것없는 제수와 조촐한 술이 어찌 부모님과 똑같이 섬겨야 하는 조그마한 정성을 드러내겠는가. 슬픔을 거친 글에 담았으 니, 살아계신 것처럼 지하에서 들어 주소서. 아! 슬프도다.

평상이 뚫어지는 : 각고의 노력을 말한다. 소학 「선행(善行)」의 “관녕이 일찍이 하나의 나무 평상에 앉아 50년을 보내며 다리를 펴고 앉은 적이 없으니, 그 평상 위의 무릎 닿는 자리가 모두 뚫어졌다.[管寧嘗坐一木榻 積五十餘年 未嘗箕股 其榻上當膝處皆穿]”에서 유래한다.

나라의……보니 : 과거 시험 보러 가는 것을 말한다. 주역 「관괘(觀卦)」 육사효의 “나라의 휘황한 빛을 봄이니, 왕에게 나아가 손님이 되는 것이 이롭다.[觀國之光 利用賓于王]”에서 온 말이다.

시해(豕亥) : 비슷한 문자의 판독 능력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자하(子夏)가 일찍이 위(衛)나라에 갔을 때, 그곳에서 역사서를 읽는 자가 “진나라 군대가 진나라를 치려고 삼시에 하수를 건넜다.[晉師伐秦 三豕渡河]” 라고 하자, 이에 자하가 “아닙니다. 기해입니다.[非也 是己亥也]”라고 바로잡아 준 일에서 유래한다.(呂氏春秋「察傳」)

 

 

祭文[門人李榮世 日休齋] 문인 일휴재日休齋 이영세李榮世

嗚呼。天地之間。有正氣焉。至大至剛。充塞彌亘。在天爲日月風霆。在地爲山岳川凟。人於兩間。參三中立。果能得是氣而善養之。則貧賤不能移。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擧天下之事而無一不出於正。以余所見。先生其人歟。恭惟先生。氣宇磊落。姿稟卓越。得之天分者固已厚矣。而又能早受庭訓。矯揉涵養。磨礱乎百家而奮發於文章。夙擅藝苑之名。終擢金榜之魁。柏府銀臺。歷敭靑雲。先生之於功名可謂顯矣。然何足爲先生輕重也。先生德行純備。而孝友尤卓卓人不間言。故移孝爲忠。事君猶父。十年鵷列。一心靡懈。頃在昏朝。倫紀斁絶。千官結舌。百僚鉗口。而一封纔奏。衆怒齊激。綱常賴以復植。國是賴以不亂。先生之於忠。可謂砥柱乎頹波矣。惟其忠孝大節。炳炳若是。故居官則廉㓗。莅家則直方。接物則油油。處鄕則恂恂。措之事爲而發於言動者。灑落光明。絶出等夷。先生可謂無愧於俯仰。安順於死生矣。跌蕩千古。眼空一世。未嘗求知於人。人亦不知夫公。嗚呼知不知。於先生何與焉。昔我家親。失怙零丁。四無親知。先生念同源之義。敦睦婣之仁。多方敎誨。終始保護。家親感德。事之如一。出入門庭。四十餘年。而餘波所霑。又及小子。授我以學。導我以正。七載軒屛。誘掖備至。訓迪成就之恩。無間父母。而先生之病也闕嘗藥。先生之歿也未環絰。雖緣一疾彌留。人事頓絶。而終天之恨。豈有其涯哉。嗚呼。四璧幷秀。克追先志。山花餘烈。佇見昌大。而不幸伯胤重嬰疾病。六年沉痼。慈愛之天。固知衋傷於冥冥之中矣。地理之說。杳茫難稽。而百爾所思。計無不至。奉遷舊宅。祔從先塋。縱遵昔日之治命。震驚若堂。何如孝子之至情。惟冀陟降英靈。默佑陰隲。遄收勿藥之喜。則門闌之慶。復如何哉。嗚呼。先生謦咳之音如在耳邊。而提撕之誨不可聞。先生德符之容如在眼中。而杖屨之陪不可得。山頹之慟。安倣之悲。寧可盡言於今日耶。擧聲長號。方寸若割。至哀無文。言不盡意。

아 ! 천지의 사이에는 정기正氣가 있는데,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어서 가득차고 더욱 통하네. 하늘에 있어서는 해와 달이며 바람과 우레가 되고, 땅에 있어서는 산악이며 시내와 도랑이 되고, 사람은 그 둘 사이에 참여하여 가운데 자리하네. 그래서 정말로 이 기운을 잘 기르면 빈천貧賤이 옮기지 못하고 부귀富貴가 흔들지 못하고 위무威武가 굽히지 못하여 천하의 일을 통틀어 어느 하나라도 바름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네. 제가 본 바로는 선생께서 바로 그 런 분이네. 삼가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기개와 도량이 활달하고 구애가 없으며 바탕과 성품이 탁월하여 타고난 자질이 참으로 이미 넉넉하였네. 게다가 일찍부터 가정의 가르침을 잘 받아 결점 을 고치고 자신을 길렀네. 백가百家의 글을 연마하여 문장에 분발하니, 일찍부터 문단에 이름을 드날렸네. 마침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사헌부와 승정원에서 벼슬을 두루 거쳤으니, 선생은 공명을 드러낸 분이라고 할 만하네. 그러나 어찌 이 일이 선생의 경중을 따지기에 충분하겠는가. 선생께서는 덕행이 순수하고 완전하였으며, 효성과 우애가 더욱 뛰어난 데에 사람들의 이론이 없었네. 그러므로 효를 옮겨 충을 실행하여 아버지 대하듯이 군주를 섬기니, 10년 동안 벼슬하며 한마음으로 게을리하지 않았네. 지난 광해조에 윤리와 기강이 무너졌는데도 모든 신하들은 혀를 묶고 입을 다물었네. 그래서 선생이 한 통의 봉계封啓을 올리자마자 사람들의 비난은 들끓었으나 윤리 강상은 덕분에 다시 세워지고 국정의 근본 방침이 덕분에 어지럽혀지지 않았네. 그러니 나라를 위한 선생의 충정은 세찬 물결을 맞서는 지주砥柱라고 할 만하네. 오직 큰 절개인 충효가 이토록 빛났네. 그러므로 벼슬살이에는 청렴결백하고 가정 생활에는 곧고 방정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는 인정이 넘치고 고장에서는 공손하였네. 사무에 대처하고 말과 행동에 드러나는 것이 깨끗하고 환하여 동료들보다 매우 뛰어났네. 그러니 선생은 하늘을 우러러서나 사람을 향해서나 부끄러움이 없고 사생 간에 편안해한 분이라고 할 만하네. 천고의 세월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세상을 가볍게 여기니, 남에게 알아주기를 구 한 적이 없고 남도 공을 몰랐네. 아! 알아주고 몰라줌이 선생에게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지난날 저의 아버님께서 부친상을 당하여 사고무친의 외로운 처지가 되었네. 선생께서는 동종同宗의 의리를 생각하고 화목해야 하는 인정을 중시하여 다방면으로 가르치고 시종토록 보호해 주었네. 아버님께서 은덕에 감동하여 부모님과 한가지로 섬기며 40년 동안 문하에 출입하였네. 그 여파가 다시 소자小子에게까지 미쳐서 저에게 학문을 가르쳐 주시고 저를 바름으로 인도해 주셨네. 7년을 가까이서 모시는 동안 세심하게 이끌어 주시니, 훈도하고 성취시켜 준 은혜는 부모와 다름이 없었네. 그러나 선생께서 병이 났을 적에는 약을 권하지 못하고 선생께서 세상을 떠났을 적에는 조문도 하지 못하였네. 하나의 병이 질질 끌어서이기는 하지만 사람 일을 끊어 버렸으니, 생을 마칠 때까지의 한이 어찌 다하겠는가. 아! 네 명의 빼어난 아들들이 선대의 뜻을 잘 이으리니, 산화 선생山花先生의 남긴 사업이 창대해짐을 보게 되리라. 그러나 불행히도 맏이가 중한 병으로 6년이나 신음하고 있으니,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참으로 지하에서 애를 끓이실 줄 아네. 풍수설이 아득하여 헤아리기는 어려워도, 백 번 생각하여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네. 옛날 계시던 곳으로 봉환하여 선영先塋 곁에 장례를 치렀네. 지난날의 유명을 따라서 이지만 우뚝한 봉분에 놀라실 것이니, 효자의 지극한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오직 바 라건대, 영령께서 강림하시어 말없는 도움으로 빨리 물약勿藥의 기쁨을 거두게 한 다면 집안의 경사가 다시 어떠하겠는가. 아! 선생의 낭랑한 목소리 여전히 귓전에 맴돌지만 정성스러운 가르침 더는 들을 길이 없네. 덕에 부합하는 선생의 모습 눈에 선하지만 다시는 가까이서 모실 수 없네. 산이 무너지는 아픔과 의지할곳 없는 슬픔을 어찌 오늘에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목놓아 길게 울부짖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네. 지극한 슬픔은 꾸며 드러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하네.

물약(勿藥) :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다는 뜻으로, 병의 쾌유를 말한다. 주역「무망괘(无妄卦)」의 “잘못한 일이없이 생긴 병이니,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 기쁨이 있으리라.[无妄之疾 勿藥有喜]”에서 온 말이다.

 

 

祭文[女壻李元禎 歸巖] 사위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

嗚呼。氣和者未必色莊。外柔者未必內剛。兼有之者難得。豈獨衰叔世之爲然哉。恭惟我聘君。藹然風噓而氣之和也得之。凝然川渟而色之莊也似之。和積於中則發於外而爲柔。莊重於外則主乎內者爲剛。故其治之心身者。敬義而夾持。措諸事業者。直方以爲用。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當世之知聘君者。自能記其行而壽其蹟。固非小子一二談所可得形容者也。嗚呼。公有通變之智而處之若愚。公有傲世之見而守之以恭。公有懸河之辯而不違於理。嘐嘐然慕古而尙節。每與世抹摋而不合。此亦常衆人所難能。而何足以議公之彷彿也耶。若其孝友之行於家。忠義之著於國。恂恂處鄕之道。斬斬正家之法。接物有容之量。居官廉㓗之操。稟之厚而養之者深。道之正而成之者粹。則其所以紹文獻於家庭。薰德性於師友者。不已多乎。嗚呼。薇垣讜議。保姱節於昏朝。銀臺嵬論。激衆怒於明時。屛伏十載。益堅其素所守。棲遑三邑。無入而不自得。此則古之君子尙或難之。若吾聘君。猶欿然未肯以自大也。然則擢第一於漢庭。作納言於虞朝。固不足爲聘君之得。學未展於一世。位不踰於三品。又未足爲聘君之失。嗚呼。王父志符心契。幼而鍊玉則同隊。長而採蓮則同榜。在鄕在京。影響相隨。處竆處達。終始不渝。箴䂓切磨。面講書質。反異而歸同。交須而共濟。盖不惟義分之特厚。抑由於臭味之相合也。先子幼歲。從公受業。久立門外之雪。慣承座間之風。訓誨成立之恩。在聘君則餘事。而生三事一之誠。乃先子之平生。在今余小子。慙非衛玠之玉潤。叨陪樂廣之氷淸。襲蘭言而心醉。佩玉音而腹飽。燕爾之初。遽嬰痘疾。將攝之中。重貽憂念。多方藥餌。至誠救護。幾殊而獲甦。入死而出生。得至今日。公賜是賴。此恩如山。何可忘也。二載軒屛。誘掖諄至。一心仰德。愛慕彌深。自惟魯質。雖不克有所感發。每承善誨。竊庶幾無或墜失。奉以周旋。期百年之莫逆。何天不憗。奄一夕而長終。山頹當日。哀纏心肺。孤露如今。悲慕轉切。嗚呼哀哉。已矣已矣。顧惟不敏。重以昏惰。浪過時月。罕尋書史。公用嗟惜。反復敎詔。玉而不琢。器不可成。才而不學。名何以立。頑愚之甚。竟未有遂。㬥棄之恨。至今在中。頃試有司。誣衒虛名。屢魁於解額。亞元於金牓。聘君有知。必爲之嘉悅。白蓮丹桂。雖極一時之榮耀。感舊悲今。其奈九原之難作。新恩之日。旋遭喪亂。官備之奠。未及來薦。當時之恨。豈其涯也。噫四璧幷秀。咸稱謝庭之寶樹。一郞年來。重患趙嬰之心疾。使西陵下馬之地。有中野啓土之擧。若堂震驚。冥途失寧。不謂十六載壙訣之後。重有今日之憑棺。我心匪石。何以爲懷。惟是新卜佳城。實遵治命。祔從先塋。可奉萬歲之晨昏。夫人同原。復諧百年之琴瑟。縱未安於旣往。庶永寧於方來。倘垂冥佑。啓廸後嗣。噫文不可以盡吾之言。言不可以盡吾之情。無寧隱默。說向泉臺。夫孰知我懷之悲也。

아! 기운이 온화한 사람이라고 반드시 모습이 장엄하지는 않고, 외면이 유약한 사람이라고 반드시 내면이 강직하지는 않으니, 이를 아울러 지닌 사람을 얻기 어려운 것이 어찌 시대가 쇠퇴하였기 때문일 뿐이겠는가. 삼가 생각건대, 우리 장인어른은 따뜻한 바람과 같은 온화한 기운을 얻었고, 깊이 고인 물 처럼 장중한 모습을 가졌네. 온화함이 내면에 쌓여 외면으로 드러난 것이 부드럽고, 장엄함이 외면에 드러나 내면에서 주장한 것이 강직하였네. 그러므로 심신心身을 다스리며 경의敬義 를 아울러 지키고 사업事業을 처리하며 직방直方을 용用으로 삼으니, 부귀富貴가 흔들지 못하고 위무威武가 굽히지 못하였네. 당세의 장인어른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그 행실을 기억하 고 그 자취를 오래 전할 수 있으니, 참으로 소자의 한두 마디 말로 형용할 수 있는 바가 아니네. 아! 공은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지혜를 품고도 어리석은 듯이 처신하였고, 세상을 오시할 만한 견해를 가지고도 공손을 지켰고, 거침없는 말주변을 지니고도 이치를 어기지 않았네. 큰 뜻을 품고 옛 풍도를 사모하여 절개를 숭상하니, 매번 세상과 더불어 어긋나 맞지 않았네. 이 역시 보통 사람들이 늘 하기 어려운 바로, 어찌 공과 흡사하다고 논할 사람이 있겠는가. 가정에서 효우를 행하고 나라에서 충의를 드러내었으며, 고을에서 처신하는 도리는 신실하고 가정을 다스리는 법도는 엄격하였으며, 남을 대함에 포용하는 도량이 있고 벼슬살이에 청렴한 지조가 있었으며, 품성이 두터운 데다 깊게 기르고 도가 바른 데다 순수하게 이룸과 같은 경우는 문헌을 가정에서 잇고 덕성을 사우에게 훈도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겠는가. 아! 사간원에서의 정당한 의견은 아름다운 절개를 혼탁한 광해조에서 보존하였고, 승정원에서의 우뚝한 의논은 밝은 인조조에서 사람들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네. 10년 을 물러나 지내면서 평소 지키던 것을 더욱 견고히 하였고, 세 고을을 다스리며 떠 돌았으나 어디를 가더라도 뜻대로 이루지 못함이 없었네. 이는 예전의 군자라도 더 러 어려워하였는데, 나의 장인어른 같은 분은 오히려 미흡하게 여기고 잘난 체하지 않았네. 그렇다면 과거에서 장원으로 발탁되고 말이 훌륭한 조정에 받아들여져도 참으로 장인어른의 얻음이 되기에 부족하며, 학문이 한 세상에 펼쳐지지 못하고 지위가 삼품을 넘지 않아도 또 장인어른의 잃음이 되기에 부족하네. 아! 저의 할아버지와는 뜻이 맞고 마음이 통하였네. 어려서는 함께 공부하였고 장성해서는 같이 소과에 입격하였네. 지방에서 서울에서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서로 따르고 곤궁하거나 현달하거나 시종 변하지 않았네. 서로 경계로 절차탁마하고 마주하여 강론하고 편지로 물으 며 다름을 돌이켜 같음으로 돌아가고 서로 의지하여 함께 이루었네. 이는 의리가 특별히 두 터울 뿐만 아니라 또한 취미가 서로 맞아서였네. 선고께서 어려서부터 공에게 수업하여 문 밖에 눈이 쌓이도록 오래 서 있고 좌중에서 봄바람을 익숙히 받들었으니, 가르쳐 성취시킨 은혜를 입었네. 장인어른에게 있어서는 그 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선고께서는 평생토록 생삼生三을 한가지로 섬기는 정성을 다하였네. 이제 저 소자는 부끄럽게도 옥돌처럼 빛나는 위개衛玠가 아니면서 함부로 얼음처럼 맑고 깨끗한 악광樂廣을 모시며 훌륭한 말씀 들어서 마음으로 심취하고 금옥 같은 말씀 새겨서 배불렀네. 제가 혼인한 초기에 갑자기 천연두에 걸려 바야흐로 병을 조섭하는 중에 거듭 염려를 끼쳤는데, 다방면으로 약을 구하여 지성으로 간호해 주셔서 거의 죽을 뻔하다가 다시 소생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다 공의 덕분이네. 이 은혜 산과 같으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2년 동안 가까이서 모심에 매우 자상히 인도해 주셔서 한마음으로 덕을 우러름에 사랑과 사모의 정이 더욱 깊어졌네. 원래 자질이 노둔하여 감동한 대로 분발하지 못 하였으나 매번 훌륭한 가르침을 받들고는 혹시라도 실추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받들어 주선하며 평생 어기지 않기를 기약하였네. 하늘이 어이 남겨 두지 않아 문득 하루저녁에 영원히 떠나시는가. 돌아가시던 당일에 슬픔 이 가슴에 사무치더니 지금 외로운 처지에 슬픔과 그리움이 더욱 절실하네. 아! 슬프네. 그만 이고 그만이네. 다만 못난 저는 어리석고 게을러 세월만 마냥 보내며 서사書史를 펼쳐보는 일이 드무니, 공이 안타까워하시며 반복하여 가르쳐 주었네. 옥이라도 쪼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고, 재주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이름을 어떻게 날리겠는가. 너무나 어 리석어 결국 이루지 못하니, 포기한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네. 얼마 전 문과에 응시하여 부질없는 명예를 헛되이 팔았네. 초시에서 자주 1등하고 과거에서 갑과 2등으로 급제한 일을 장인어른께서 아신다면 반드시 저를 위하여 매우 기뻐하셨을 것이네. 소과에 입격하고 대과에 급제한 것이 한때의 더없는 영광 이지만, 구천에 계신 분 다시 올 수 없어 옛일을 생각하며 오늘 슬퍼할 뿐이니, 어이 하겠는가. 새로 은총을 받는 날 상을 당하여 처가로 와서 관복 차림으로 전을 올리지 못하였으니, 당시의 한이 어찌 끝이 있었겠는가. 아! 네 아들이 다 빼어나 사람들이 모두 사정謝庭의 훌륭한 나무라고 일컫네. 한 아이가 조제영趙齊嬰이 걸렸던 마음의 병이 더욱 심해져서 선영先塋의 주변에 터를 여니, 무덤이 흔들리고 구천에서 불편하였네. 16년 전에 장인어른의 장례를 치르며 영결한 뒤로 오늘 다시 관에 기대어 통곡하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으니, 제 마음이 돌이 아닌데 어떻게 슬픔이 없겠는가. 생각건대, 새 무덤은 실로 유언에 따라 만들었네. 선영 아래에 부장하니 만세토록 혼정신성昏定晨省을 받들 수 있으며, 부인과 한자리니 다시 백년의 금슬을 함께할 것이네. 비록 이미 지나간 일은 편치 못했어도 앞으로는 영원히 편안할 터이니, 혹시나 그윽한 도움을 드리워 후손들을 열어 주소서. 아! 글은 저의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은 저의 심정을 다 드러내지 못하네. 침묵이 편안치 않아 지하에다 말은 해 보지만, 누가 저의 서글픈 심정을 알아주겠는가.

문……있고 :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을 말한다. 유작(游酢)과 양시(楊時)가 처음 이천(伊川)을 뵈었을 때 이천이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두 사람이 모시고 서 있었는데, 이천이 깨달은 다음 돌아보고 말하기를 “현자들이 아직 도 여기에 있었는가?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선 쉬게나.”라고 하여, 문을 나서니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近思錄集解卷14 「觀聖賢」)

좌중에서……받들었으니 :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을 말한다. 주공섬(朱公掞)이 여주(汝州)에서 명도(明道)를 뵙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내가 춘풍 속에서 1개월 동안이나 앉아 있었다.[光庭在春風中 坐了一箇月]”라고 한 데서 유래 한다.(近思錄集解卷14 「觀聖賢」)

생삼(生三) : 부모와 임금과 스승을 똑같이 섬기는 도리를 말한다. 난공자(欒共子)가 “사람은 세 분에 의해 살아가니 똑같이 섬겨야 한다. 아버지는 낳아 주시고 스승은 가르쳐 주시고 임금은 먹여 주신다. 아버지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임금이 먹여 주지 않으면 자라지 못하며, 스승이 가르쳐 주지 않으 면 알지 못하니, 낳아 준 분들이다.[民生於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 非父不生 非食不長 非敎不知 生之族也]”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國語「晉語」)

옥돌처럼……모시며 : 훌륭한 장인을 모셨음을 말한다. 진(晉)나라 악광(樂廣)이 위개(衛玠)를 사위로 맞아들이자, 배숙도(裵叔道)가 “장인은 얼음처럼 맑고, 사위는 옥돌처럼 윤이 난다.[婦公氷淸 女婿玉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다.(晉書卷43 「衛玠傳」)

초시에서……일 : 이원정은 1648년 사마시를 거쳐 1652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사정(謝庭)의 훌륭한 나무 : 훌륭한 자손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사가(謝家)는 큰 문벌을 이룬 집안 이었는데, 사현(謝玄)이 그 숙부 사안(謝安)의 질문을 받고, “비유하면 마치 지란과 옥수가 집안의 뜰에서 자라게 하고 싶은 것과 같을 뿐입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한 데서 유래 한다.(世說新語 「語言」)

조제영(趙齊嬰)이……병 : 결단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마음의 병을 말한다. 노공호(魯公扈)와 조제영 이 병에 걸려 편작(扁鵲)에게 치료를 요청하였다. 편작이 공호에게 “너는 의지가 강하고 기운이 약 하기 때문에 모의는 잘 해도 결단은 잘 못하며 제영은 의지가 약하고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염려는 적어도 집중력이 떨어진다.[汝志彊而氣弱 故足於謀而寡於斷 齊嬰志弱而氣彊 故少於慮而傷於專]” 하고는 두 사람의 심장을 바꾸어 치료하였다.(列子 「湯問」)

 

 

祭文[鄕生呂烜等] 향교 유생 여훤呂烜 등

邦家不幸(방가부행) 나라가 불행해졌으니

上爲公哭(상위공곡) 위로는 공적으로 곡하고

鄕黨不幸(향당부행) 고장이 불행해졌으니

下爲私哭(하위사곡) 아래로는 사적으로 곡하네

高風已遠(고풍이원) 고아한 풍도 이미 멀어지고

古貌難覿(고모난적) 고상한 모습 뵙기 어렵네

一聲長慟(일성장통) 한 소리로 길게 통곡하며

萬古永隔(만고영격) 만고의 영결을 하네

 

 

만사輓詞

 

輓詞[參判鄭桐溪] 참판 동계桐溪 정온鄭蘊

識面從靑歲(식면종청세) 청년 시절에 만나서

同朝到老蒼(동조도로창) 한 조정에서 늙었네

銀臺司獻替(은대사헌체) 승정원에서 보좌하는 일 맡고

薇垣振風綱(미원진풍강) 사헌부에서 강상을 현양하였네

讜語驚羣膽(당어경군담) 강직한 언론 사람들 놀라고

狂言觸怒釯(광언촉노망) 과격한 말 노여움을 받았네

晩尋鷗鷺約(만심구로약) 만년에 구로와의 약속대로

閒點水雲庄(한점수운장) 한가로이 자연 속의 별장을 차지하였네

天下兵猶滿(천하병유만) 천하에 병란이 여전히 심하여

東邱勢轉忙(동구세전망) 조선의 형세 더욱 다급해졌네

愧余偸喘久(괴여투천구) 부끄럽게도 목숨 부지한 나는

羡子入眠長(이자입면장) 자네의 영면을 부러워하네

何處新阡卜(하처신천복) 어느 곳에 새로 무덤 만들어

傷心寶璧藏(상심보벽장) 상심 속에 훌륭한 분 묻는가

無緣馳白馬(무연치백마) 백마 타고 달려갈 수 없으니

臨穴莫彷徨(림혈막방황) 광중을 굽어보며 방황하지 않으려나

백마……않으려나 : 후한(後漢) 때 자가 거경(巨卿)인 범식(范式)과 자가 원백(元伯)인 장소(張劭)가 친하게 지냈다. 장소가 죽은 뒤에 범식의 꿈에 나타나 “거경아, 나는 모일(某日)에 죽었다. 모시(某時)에 땅에 묻혀 영원히 황천에 돌아갈 것인데, 그대가 나를 잊지 않았다면 와주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범식이 꿈에서 깨어 눈물을 흘리며 즉시 백마가 끄는 소거(素車)를 타고 달려갔다. 장소의 집에서 장사 지낼 때 범식이 도착하지 못하였는데, 발인하여 하관하려 하였으나 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범식이 도착하여 “이제 그만 가라, 원백아. 생과 사는 길이 다르니 이로부터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상여 줄을 잡고 끌자, 상구가 비로소 움직여 장사 지낼 수 있었다.(後漢書 卷81 「獨行列傳‧范式」) ‘백마……없으니’는 장례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輓詞[參判全沙西] 참판 사서沙西 전식全湜

匡山不出讀書臺(광산부출독서대) 광산의 독서대를 벗어나지 않더니

已作窮經貢士魁(이작궁경공사괴) 경전의 이치 캐물어 과거에 장원하였네

天上種桃誇大策(천상종도과대책) 한양에서 복숭아 심으며 대책을 자랑하고

日邊鳴珮展高才(일변명패전고재) 도성에서 패옥 울리며 높은 재주 펼쳤네

歌成白雪知音寡(가성백설지음과) 백설곡을 노래하건만 아는 이 드물고

炊到黃粱大夢回(취도황량대몽회) 황량을 지으니 큰 꿈이 깨어나네

欲奠漬綿衰且病(욕전지면쇠차병) 적신 솜 올리고 싶어도 쇠약하고 병들어

不堪終夕寢門哀(부감종석침문애) 온 종일 정침 문의 곡을 견디지 못하네

광산(匡山) : 중국 성도부(成都府) 창명현(彰明縣) 북쪽에 있는 대광산(大匡山)으로, 당나라 이백(李白)이 젊었을때 글을 읽던 곳이다. 두보(杜甫)가 성도에 가서 이백을 그리며 지은 「보이지 않아서[不見]」 시에 “글 읽었던 이곳 광산에, 이제 늙은 그대여 돌아오구려.[匡山讀書處 頭白好歸來]”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흔히 소년 시절에 글을 읽었던 곳을 말한다.

복숭아 심으며 : 벼슬살이를 말한다. 동한(東漢) 영평(永平) 연간에 유신(劉晨)과 완조(阮肇)가 천태산 (天台山) 도원동(桃源洞)에서 신선을 만났는데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천태산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당(唐)나라 유우석(劉禹錫)이 조정에서 쫓겨났다가 되돌아와, 「다시 현도관을 찾아서[再遊玄都觀] 」에서 “복숭아 심은 도사는 어디로 갔는가. 전번의 유랑이 지금 또 왔다네.[種桃道士歸何處 前度劉郞今又來]”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백설곡(白雪曲) : 너무 고상하여 따라 부르기 힘든 노래를 말한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대중가요인 ‘하리(下里)’와 ‘파인(巴人)’은 수천 명이 따라 부르더니, 고상한 ‘백설곡’과 ‘양춘곡(陽春곡)’은 너무 어려워 수십 명밖에 따라 부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송옥(宋玉)의 「초왕의 물음에 대답하다[對楚王問]」에 나온다.(文選)

황량(黃粱) : 덧없는 부귀영화를 말한다. 당(唐)나라의 노생(盧生)이 주막에서 여옹(呂翁)이 빌려준 베개를 베고 잠이 들어 80세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깨어 보니 주인이 짓고 있던 조밥[黃粱]이 아직 익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列仙傳)

적신 솜 : 솜을 술에 적신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서치(徐穉)가 항상 솜을 술에 담갔다가 꺼내서 바싹 말리고 여기에 닭구이[雞炙] 한 마리를 싸 가지고 죽은 이의 묘소 곁에 가서 그 솜을 물에 적시어 주기(酒氣)가 우러나게 한 다음, 그 묘소 앞에 백모(白茅)를 깔고 이것을 올려 조문을 하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後漢書 「徐穉傳」)

정침(正寢) 문의 곡 : 친구의 죽음에 곡함을 말한다. 공자가 “스승에게는 내가 정침의 문에서 곡하고, 친구에게는 내가 정침의 문 밖에서 곡한다.[師 吾哭諸寢 朋友 吾哭諸寢門之外]”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禮記 「檀弓上」)

 

 

輓詞[判書尹毅立 月潭] 판서 월담月潭 윤의립尹毅立

自從落地爲兄弟(자종락지위형제) 세상에 태어나 형제처럼 지내며

閱盡人間七十秋(열진인간칠십추) 인간 세상에서 칠십 년 세월을 겪었네

高蹈向來君獨樂(고도향래군독악) 저번에 은거하여 그대 홀로 즐기고

危機隨處我沈憂(위기수처아침우) 위기에 몸을 맡긴 나는 근심하였네

夢魂迷路梅花嶺(몽혼미로매화령) 꿈속의 혼령이 매화령에서 길 헷갈려

隻影傷心明月樓(척영상심명월루) 나 홀로 명월루에서 상심하였네

離合悲歡今已矣(리합비환금이의) 이별의 슬픔 만남의 기쁨 이젠 그만이니

薤歌題罷淚空流(해가제파루공류) 해가 지어 놓고 부질없이 눈물 짓네

해가(薤歌) : 사람이 죽었을때 부르는 해로가(薤露歌)를 말한다. 고금주(古今注)권중(卷中)에 “해로는 사람이 죽었을때 부르는 노래다. 전횡(田橫)의 문인에게서 나왔는데, 전횡이 자살하자 문인들이 슬퍼하여 그를 위해 부른 비가(悲歌)로, 사람의 목숨이 풀잎의 이슬과 같이 쉽게 마르는 것을 말한다.”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輓詞[進士朴明胤 楂翁] 진사 사옹槎翁 박명윤朴明胤

今世閱親舊(금세열친구) 오늘날 친구들 중에

如公有幾人(여공유기인) 공과 같은 사람 몇 명인가

淸標存大樸(청표존대박) 맑은 기품 매우 소박하고

雅望任溫醇(아망임온순) 훌륭한 인망 순박에 걸맞았네

腹飽經綸志(복포경륜지) 마음에는 경륜의 뜻 넘치고

胸藏拯濟仁(흉장증제인) 가슴에는 구제의 사랑 품었네

窮經能致用(궁경능치용) 경전 궁구하여 쓰일 수 있었는데

直道不容身(직도부용신) 곧은 도 주장하여 용납되지 못하였네

彭澤田園裏(팽택전원리) 팽택의 전원에서

昌黎寂寞濱(창려적막빈) 창려의 적막한 물가에서

歎時頻下淚(탄시빈하루) 시절 탄식에 자주 눈물짓고

憂國每傷神(우국매상신) 나라 걱정에 매번 애태웠네

憤切蹈東海(분절도동해) 울분 처절해 동해를 밟고

誠深望北辰(성심망북진) 충성 깊어 북신만 바라보았네

祈亡期士燮(기망기사섭) 소망 무너져도 사섭을 기약하고

爲癘願張廵(위려원장순) 귀신이 되어서도 장순을 원하였네

鄕黨失賢士(향당실현사) 고장에서는 훌륭한 선비 잃고

朝家喪藎臣(조가상신신) 조정에서는 충신을 잃었네

嗟吾生末路(차오생말로) 아! 나는 못났는데도

與子最相親(여자최상친) 자네와는 가장 친하였네

分義膠投漆(분의교투칠) 우정은 아교를 옻 속에 넣은 듯하여

追遊秋復春(추유추복춘) 가을 그리고 봄에 어울렸네

今聞將卽遠(금문장즉원) 이제 발인을 한다고 하니

白首慟無垠(백수통무은) 백발의 늙은이 마냥 통곡하네

팽택(彭澤) : 벼슬살이를 말한다. 진(晉)나라 도잠(陶潛, 365~427)이 팽택 영(彭澤令)을 살았다.

창려(昌黎) : 고향에서 생활하였음을 말한다. 창려는 당(唐)나라 때 한유(韓愈)의 출생지다.

동해를 밟고 : 나라를 염려하는 충심을 행동으로 옮겼음을 말한다. 전국 시대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이 동해에 빠져 죽을지언정[蹈東海而死] 포악한 진(秦)나라가 천하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것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고사에서 유래한다.(史記卷83 「魯仲連傳」)

사섭(士燮) : 겸손한 태도를 말한다. 사섭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부 범문자(范文子)의 이름이다. 제(齊) 나라와의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개선할 적에 남보다 맨 뒤에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부친 범무자(范武子)가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구나.” 하니, 그가 “우리 군사가 전공을 세워서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며 맞이하는데, 제가 남보다 먼저 도성을 들어오면 나라 사람들의 이목이 반드시 저에게 쏠릴 것이니, 그것은 곧 원수(元帥) 대신 제가 명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일찍 들어오니 못했습니다.” 하므로, 범무자가 “내가 이제 우리 집안에 화가 없을 것을 알겠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春秋左氏傳「成公」2年)

장순(張巡, 708~757) : 충신을 말한다. 장순은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사람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에 수양 태수(睢陽太守) 허원(許遠)과 함께 성을 지키며 적장 윤자기(尹子琦)와 여러 번 싸워서 물리치고 성을 몇 달이나 지켜냈으나, 중과부적에 식량마저 떨어진 상태에서 그의 명성을 시기한 임회 절도사(臨淮節度使) 하란진명(賀蘭進明)이 고의로 구원병을 보내지 않아 성이 함락되면서 죽음을 당했다.(舊唐書卷187 「張巡傳」)

아교를……넣은 : 아교와 옻은 모두 물건을 접착시키는 물건으로 서로 섞으면 더욱 견고히 접착시킬 수 있다. 흔히 교제(交際)의 친밀함에 비유한다. 위진(魏晉) 말기 무명씨(無名氏)의 「고시(古詩)」에 “아교를 옻칠 가운데 던져 놓으면, 누가 능히 이것을 분리시킬쏜가.[以膠投漆中 誰能別離此]”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書牘 편지[書牘] 답장

 

書牘 [寒岡先生] 한강 선생寒岡先生

曾聞公佐幕關東。念公驅馳之勞。惜我別離之苦。信不能無慮。而古仙區佳麗之地。亦當灑然有出塵之想。不覺令人欣然而起懷也。玆奉辱書。具悉登途已近其日。許身之人。遊宦遠方。亦在所不得已。安用匏繫固守一陂耶。但念親庭遠離之歎。深用傾仰。

일찍이 공이 관동 도사關東都事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네. 먼 길에 고생할 공의 노고를 생각하고 공과 헤어져서 괴로워할 나로서는 참으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네. 그 러나 예로부터 관동은 경치가 수려하여 선경으로 불리던 곳이어서 또한 당연히 세속 을 벗어난 후련함이 있을 것이니, 불현듯 나로 하여금 흔연히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게 만드네. 이제 공의 편지를 받아 보고 떠날 날짜가 벌써 임박했다는 것을 모두 알았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기로 허락한 사람이 먼 지방으로 나가 벼슬살이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어찌 한 곳에 매여 그 자리만 고수할수 있겠는가. 다만 어버이 곁을 멀리 떠나야 하는 탄식을 생각하니, 염려의 마음이 그지없네.

 

書牘 [旅軒先生] 여헌 선생旅軒先生

頃日一夜之叙。曷開半歲之阻。且適有祀故之忙外撓之至。莫暇穩接。方深追悔。玆荷委遣專伻。貺以盛札。感領至意。無以爲謝。况此華蟲之惠。不但爲冬薦之幸。仍承滿紙文辭。炳烺奇麗。有非賤拙所可堪當者。玩復之餘。還自悚怍。就認碣刻之役垂畢。其永爲松楸之賁。豈非相愛之賀乎。不宣。

지난날 하룻밤의 만남으로 어찌 반년 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달랬겠는가. 또 마침 제사로 분주한 데다 바깥의 소란스러움으로 차분히 이야기 나눌 겨를이 없어, 뒤이어 막 후회가 매우 깊었네. 이제 일부러 사람을 보내 부쳐 준 편지를 받아 보고 지극한 마음에 감동하고도 사례할 길이 없었네. 더구나 감사하게도 이 꿩을 보내 주니, 다만 겨울 제사에 올리는 다행만이 아니네. 아울러 편지 가득한 글이 분명하고 화려하여 못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바가 있어서, 여러 번 읽어본 끝에 도리어 스스로 부끄러웠네. 묘갈 새기는 일을 마쳤다는 것을 알았네. 길이 무덤을 빛낼 터이니 어찌 서로 아끼는 처지에 축하하지 않겠는가. 할 말이 많으나 다하지 못하네.

 

書牘 [旅軒先生] 또[又] 답장

委遣伻書。深荷深厚。第見滿幅文字。馳騁出沒。莫測端倪。令人恍惚顚倒焉。顯光被此意外恩命。欲就則耄癃方谻。必不堪於道路。欲已則累召不謝。有莫安於分義。所以奉告者。實望指敎之精切。而令喩若此。豈非言外之意。實有所珍重者也。寄來半月砂糖。旨領多謝。野菜之誨。計不墜失也。

일부러 사람에게 맡겨 편지를 보내 주니, 후의厚意를 깊이 입었네. 다만 종이에 가득한 문 를 보니, 이리저리 치달리고 출몰하여 단서를 잴 수 없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휘황하여 쓰러지게 만들었네. 나는 뜻밖에 은혜로운 왕명을 받자와, 나아가자니 노쇠함이 너무 심하여 반드시 도로에서 견디지 못할 것이고, 그만두자니 여러번 부름에 사은숙배하지 않음이 신하된 도리에 미안한 점이 있네. 때문에 자네에게 말한 것은 실로 정밀하고 적절한 가르침을 바라서인데 이렇게 말을 하니, 어찌 말에 숨은 뜻이 실제 진중하여서가 아니겠는가. 보내 준 반달 모양의 사탕은 매우 감사히 잘 받았으며, 야채를 먹으라는 말도 저버리지 않을 참이네.

 

 

浣石亭記[許穆] 완석정 기문[浣石亭記] 허목許穆

僕嘗因亂落南十年。三過大江之干。觀所謂浣石亭。亭在大江西畔。江波渺漫。前有巨石浸江。號曰浣石。平沙瀰漫。上下十里。前岸直對蒼壁臨江。望八公金鼇積氣浮嵐。大嶺之外。江山回互。自沙門溯流。三屈折而至浮江亭。又東北至霞山。其上浣石。此李承旨浣石別業。光海殺永昌。鄭文簡公直言極諫論死。公當言責。亦以論列。幷得罪。後光海廢。復召用。僕初識公於四寒翁南郭僑寓。未久公亡而亭無主人。今其嗣男賢而嗜文學。能不墜先人餘敎。以僕老而猶喜文墨爲事。求亭額奇字古文。仍請記亭上古事。

顯宗 之六年夏至後二日。孔巖許穆眉叟記。

내가 일찍이 난리 때문에 낙남落南한 뒤로 10년 동안 낙동강 가를 3번이나 들러, 이른바 완석정浣石亭을 살펴보았다. 정자는 낙동강 서쪽 가에 있어, 강 물결이 아득히 넘실거리고, 앞에 큰 바위 하나가 강물에 잠겨 있는데, 이름이 완석浣石이다. 평평한 백사장도 상하로 10리 정도 펼쳐져 있다. 앞 언덕의 바로 마주한 자리에 푸른 바위 벼랑이 서 있다. 강가에서 팔공산과 금오산을 바라보면 형체만 보이고 남기嵐氣도 감 돈다. 큰 산줄기의 밖을 강과 산이 감싸고 있다. 강은 사문沙門에서 흘러오면서 세 번 꺾인 뒤 부강정浮江亭에 이르러 또 동북으로 흘러 하산霞山에 이른다. 그 상류가 완석인데, 이는 이 승지李承旨의 완석 별장이다.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자 정 문간공鄭文簡公(정온鄭蘊)이 바른 말로 정항鄭沆을 죽여야 한다고 극력 간하였다. 공도 언관의 책 임을 맡아 역시 논의한 것 때문에 함께 벌을 받았다. 후에 광해군이 폐위되자 인조께서 다시 불러 등용하였다. 나는 도성 남쪽의 사한옹四寒翁 집에서 공을 처음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이 세상을 떠나면서 정자는 주인을 잃고 말았다. 이제 사손嗣孫이 훌륭하면서 문학도 즐기니, 선인의 남 긴 가르침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늙어서도 여전히 문묵文墨을 즐겨 일삼았는데, 사손이 기이한 고문古文으로 쓴 편액 글씨와 정자와 관련된 예전 일을 기록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현종 6년(1665) 하지夏至 이틀 뒤에 공암孔巖(양천陽川)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짓다.

부강정(浮江亭) : 경북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강정마을에 있던 신라 시대 정자다. 경관이 아름다워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위치해 물 위에 뜬 정자 같다고 하여 부강정이라 불렀다.

사한옹(四寒翁) : 사한은 김창일(金昌一, 1548~1631)의 호다. 자는 형길(亨吉), 본관은 경주다. 1595년 유일로 장원서 별제에 임명된 뒤 고산 현감‧군기시 첨정 등을 역임하였다. 1613년 영창대군을 서인으로 폐위하는데 극력 반대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청도 군수를 지냈다.

 

 

浣石亭題詠 완석정에서 지은 시[浣石亭題詠]

 

浣石亭題詠[閔馨男] 지애芝厓 민형남閔馨男

伽倻一髮是星山(가야일발시성산) 가야산 한 줄기가 뻗어와 맺힌 성주

此地名賢摠富韓(차지명현총부한) 이곳의 명현들 모두가 부한이네

白鳥無情隨水去(백조무정수수거) 백조는 무정하게 흐르는 물 따르고

靑巒不改待人還(청만부개대인환) 청산은 변함없이 돌아올 사람 기다리네

臨江草閣超塵累(림강초각초진루) 강가의 정자는 풍진세상을 벗어났고

對月襟懷任浪漫(대월금회임랑만) 달 마주한 심정은 물결에 내맡기네

簿領倥傯催老病(부령공총최로병) 분주한 벼슬살이 노병을 재촉하는데

何年解綬共君閒(하년해수공군한) 어느 해 벼슬 놓고 그대와 함께 할까

故人來卧碧江頭(고인래와벽강두) 푸른 강 머리로 와 지내는 벗

孤夢應頻上玉樓(고몽응빈상옥루) 외로운 꿈에 자주 백옥루 오르겠지

古樹寒聲淸夜鶴(고수한성청야학) 맑은 밤 고목엔 학의 울음소리 차갑고

長天秋色夕陽鷗(장천추색석양구) 석양 물든 하늘에 백구는 가을빛이네

休官自是因衰病(휴관자시인쇠병) 본래 쇠병 때문에 버린 벼슬이지

解紱何曾見急流(해불하증견급류) 어이 급류 벗어나듯이 버렸겠는가

待得鈴齋公務歇(대득령재공무헐) 지방관의 공무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願從深酌共忘憂(원종심작공망우) 술 가득 따라 마시며 함께 근심 잊으세

右閔芝厓 馨男 【이상은 지애芝厓 민형남閔馨男】

부한(富韓) : 훌륭한 인물을 말한다. 경륜에 뛰어나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전형으로 꼽히는 북송(北宋)의 명재상인 부필(富弼)과 한기(韓琦)의 병칭이다.

백옥루(白玉樓) : 문인이 죽어서 가는 천상의 누각을 말한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시문에 뛰어났던 이하(李賀)가 어느 날 대낮에 졸다가 갑자기 보니 붉은 관복을 입은 도인이 옥판(玉板)을 잡고 있었는 데, ‘상제께서 백옥루를 완성하시고, 그대를 불러 기문을 짓게 하려 한다.[上帝成白玉樓 召君作記]’라 고 쓰인 것을 보고 운명하였다는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에서 유래한다.

급류 벗어나듯이 : 벼슬에서 과감하게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앞의 각주39) 참조.

 

浣石亭題詠[趙國賓] 설죽雪竹 조국빈趙國賓

多君點得此江山(다군점득차강산) 이 강산 차지한 그대 대단하오

竊喜平生一識韓(절희평생일식한) 평생토록 일면식을 남몰래 기뻐하네

野店雲殘晴靄合(야점운잔청애합) 들 주막 구름 개이자 맑은 노을 드리우고

汀林景翳暝禽還(정림경예명금환) 물가 숲 어둠 깔리자 저녁 새들 돌아오네

經營可想勞心匠(경영가상로심장) 정자 짓느라 고심한 대목장을 생각하니

妙巧眞堪斲堊漫(묘교진감착악만) 교묘한 재주는 백토 깎아낼 만하네

肩聳有時嘲萬類(견용유시조만류) 어깨 세우고 때로 온갖 일 읊느라

淸風明月不曾閒(청풍명월부증한) 청풍명월 속에서 한가한 적 없겠지

飛甍迥出白雲頭(비맹형출백운두) 용마루가 흰 구름 끝에 우뚝 치솟아

綠水靑山共一樓(록수청산공일루) 맑은 물 푸른 산이 누각과 어울리네

煙淡雪汀眠失鷺(연담설정면실로) 옅은 안개 속 흰 모래톱에 백로는 졸고

日晴沙岸動知鷗(일청사안동지구) 활짝 개인 모래 언덕에 백구는 노네

封壃嶺海爲中道(봉강령해위중도) 이 지경은 영남 산하의 중간이고

形勝東南是上流(형승동남시상류) 이 형세는 동남 지역의 상류네

便欲傍邊同結社(편욕방변동결사) 문득 옆에서 모임 맺자 하고 싶어도

三年尸素愧分憂(삼년시소괴분우) 삼 년 자리만 지킨 수령이라 부끄럽네

入京山誌 【경산지京山誌에 실려있다.】 右趙雪竹 國賓【이상은 설죽雪竹 조국빈趙國賓】

백토(白土) 깎아낼 만하네 : 기예가 매우 뛰어남을 말한다. 영(郢) 지방 사람이 코끝에 백토를 파리 날개처럼 묻혀 놓고 장석(匠石)을 시켜 그것을 깎아 내게 하였다. 그러자 장석이 바람을 일으키며 도끼를 휘둘러 마음대로 깎아 내기 시작하였는데, 백토를 다 깎았는데도 코를 다치게 하지 않았고 그 영 지방 사람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莊子 「徐无鬼」)

어깨 세우고 : 시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소식(蘇軾)의 「사진하 수재에게 주다[贈寫眞何秀才]」에 나귀를 타고 파교(灞橋)를 지나가는 맹호연(孟浩然)을 읊어 “또 보지 못했는가, 눈 속에 나귀를 탄 맹호연이, 눈썹을 찌푸리고 시를 읊으매 어깨가 산처럼 세워지네.[又不見 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浣石亭題詠[李惟碩] 이유석李惟碩

靑杖無勞五桂山(청장무로오계산) 청려장 짚으면 오계산이 힘들지 않아

朝元何幸謁盧韓(조원하행알로한) 조원하는 날 다행히 노한을 배알하네

休言浩劫三緣盡(휴언호겁삼연진) 오랜 세월 삼연이 다하였다 말 말게

自歎瑤臺一夢還(자탄요대일몽환) 정자에서 한바탕 꿈 깨어나 탄식하네

南榭奉絹書草草(남사봉견서초초) 남사에서 보낸 편지 글은 거칠고

北樓傳椀興漫漫(북루전완흥만만) 북루에서 전한 술은 흥이 넘쳐나네

笑他眠夜靑氈子(소타면야청전자) 우습구나, 잠에 취한 청전자들아

誰識煙霞此地閒(수식연하차지한) 누가 안개 짙은 이곳의 한가함 알랴

浣巖之上洛之頭(완암지상락지두) 낙동강 머리에 위치한 완암

嶺外名區第一樓(령외명구제일루) 영남에서 제일 이름난 누각이네

三景不須楓島鶴(삼경부수풍도학) 삼경에는 풍도의 학이 필요 없고

四游還伴玉溪鷗(사유환반옥계구) 는 도리어 옥계의 백구를 짝하네

遙岑新出屛中畫(요잠신출병중화) 새로 솟은 먼 산봉우리 병풍 속 그림이고

綠漲長添檻下流(록창장첨함하류) 불어난 푸른 물결 난간 아래에 흐르네

莫道南磯無限樂(막도남기무한악) 남쪽 낚시터에 무한한 즐거움 있다 마소

江湖摠是范公憂(강호총시범공우) 강호에서도 온통 범공의 근심이라네

右李▣▣ 惟碩 【이상은 이유석李惟碩】

조원(朝元) : 도교(道敎) 신도들이 노자(老子)를 참배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는 당(唐)나라 때에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로 추존되었다.

삼연(三緣) : 염불로 얻는 세 가지 인연으로, 친연(親緣)‧근연(近緣)‧증상연(增上緣)을 말한다.

삼경(三景) : 천상(天上)에 3동(洞) 3원(垣)이 있다 하여, 도교(道敎)를 배우는 사람들을 삼경제자(三景弟子)라 한 다.

사유(四游) : 사계절을 말한다.

범공(范公)의 근심 : 범공은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이다. 근심은 조정에서나 초야에서나 나라와 백 성 걱정으로 노심초사한다는 말이다. 범중엄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높이 묘당에 있을 때는 백성 을 걱정하고, 멀리 강호에 있을 때는 임금을 걱정하였다. 나아가서도 걱정이요 물러나서도 걱정이니 그렇다면 어느 때에 즐거워할 수가 있었겠는가.[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浣石亭題詠[金應祖]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危欄縹緲勢凌空(위란표묘세릉공) 높은 누각 아득하여 허공을 침범하고

十二瓊樓灝氣通(십이경루호기통) 열두 난간에는 맑은 기운이 통하네

沙上人稀時下鷺(사상인희시하로) 백사장에 인적 끊겨 때로 백로 내려앉고

石頭松老自生風(석두송로자생풍) 바위 끝의 노송에는 마냥 바람이 이네

螺鬟色映諸天碧(라환색영제천벽) 산봉우리는 하늘과 어울려 짙푸르고

玉鏡光搖落照紅(옥경광요락조홍) 거울 수면은 낙조가 어리어 붉게 물드네

惆悵仙翁何處去(추창선옹하처거) 슬프구나, 선옹은 어디로 갔는가

登臨此日意難窮(등림차일의난궁) 오늘 올라서서 마음을 잡기 어렵네

右金鶴沙 應祖 【이상은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浣石亭題詠[呂孝曾] 서암西巖 여효증呂孝曾

綠野曾聞裵晉公(록야증문배진공) 전날 녹야당의 배진공 이야기 들었더니

浣花今見杜陵翁(완화금견두릉옹) 오늘 완화초당의 두릉옹을 보네

檐楹翠濕吳山雨(첨영취습오산우) 처마와 기둥 적시는 오산의 비

枕席凉生楚水風(침석량생초수풍) 자리 식혀 주는 초수의 바람이네

沙暖白鷗眠罷後(사난백구면파후) 따뜻한 모래톱 백구는 졸다 일어나고

興酣黃鶴酒醒中(흥감황학주성중) 흥에 겨운 황학은 술기운 털어내네

商航訝是漁舟子(상항아시어주자) 장삿배가 어선인 듯이 느껴지니

休道桃源路不窮(휴도도원로부궁) 도원경이 아득하다고 말하지 마세

右呂西巖 孝曾 【이상은 서암西巖 여효증呂孝曾】

녹야당(綠野堂)의 배진공(裵晉公) : ‘배진공’은 당 헌종(唐憲宗) 때의 명재상인 배도(裵度)고, ‘녹야당’ 은 배도가 은퇴하고 나서 낙양(洛陽) 근교에 마련한 별장이다. 이곳에서 그는 백거이(白居易)‧유우석 (劉禹錫) 등과 함께 밤낮으로 시와 술을 즐기면서 인간 세상의 일을 잊고 만년을 보냈다.(新唐書 卷173 「裵度傳」)

완화초당(浣花草堂)의 두릉옹(杜陵翁) : ‘두릉옹’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다. 그가 성도(成都)의 금강 가에 우거 할 때 거주했던 집이 초당인데, 완화계(浣花溪) 가에 있어 일명 완화초당이라고도 한다. 그가 이곳에 우거하면서 특히 두견(杜鵑)에 대한 시를 많이 읊었다.

처마와……바람이네 : ‘오산(吳山)’은 동쪽에 위치한 오나라를 ‘초수(楚水)’는 서쪽에 위치한 초나라 를 말한다. 포근한 비가 내리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여겨지나 자세하지는 않다.

 

浣石亭題詠[趙希逸] 죽음竹陰 조희일趙希逸

星山東畔洛江西(성산동반락강서) 성주의 동쪽 언저리 낙동강의 서쪽

風月誰專寂寞棲(풍월수전적막서) 풍월을 독차지하고 조용히 사는 이 누구인가

中允初營輞川野(중윤초영망천야) 중윤은 애초 망천 들에 경영하고

小陵新卜浣花溪(소릉신복완화계) 소릉은 새로 완화의 시내에 집 지었네

濯纓淸泚歌相和(탁영청자가상화) 맑은 시내에 갓끈 씻으며 어울러 노래하니

待漏金門夢欲迷(대루김문몽욕미) 대궐에 입직하던 일 꿈에서도 아득해지네

未到南天先起興(미도남천선기흥) 남녘에 닿지 않았는데 흥이 먼저 일어나

何時寓目續前題(하시우목속전제) 언제나 바라보며 이전 시를 이어 볼까나

右趙竹陰 希逸 【이상은 죽음竹陰 조희일趙希逸】

중윤(中允)은……경영하고 : ‘중윤’은 태자중윤(太子中允)을 지낸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를 가리킨다. ‘망천(輞川)’은 왕유가 은거했던 별장 이름이다. 이 별장은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 동남쪽에 있는 종남산(終南山) 기슭에 자리 잡았다. 왕유는 만년에 여기에 은거해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노래하여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소릉(小陵)은 새로 완화(浣花) : ‘소릉’은 두보(杜甫)를 말한다.

 

浣石亭題詠[吳道一]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李家亭子水西頭(리가정자수서두) 강의 서쪽 머리에 있는 이씨의 정자

人去亭空物色留(인거정공물색류) 사람 떠난 빈 정자 풍경은 그대로네

遙嶂有情東北抱(요장유정동북포) 먼 산봉우리 정겹게 동북으로 감싸고

長江無恙古今流(장강무양고금류) 긴 강은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흐르네

苔深松逕堪馴鶴(태심송경감순학) 이끼 짙은 솔 숲길 학을 길들일 만하고

沙暖煙汀欲狎鷗(사난연정욕압구) 따뜻한 모래톱에서 백구와 놀고 싶네

携酒來登還是主(휴주래등환시주) 술병 잡고 올라 주인이 되고 보니

吏情誰道遠滄洲(리정수도원창주) 벼슬살이에 창주가 멀다고 누가 말했나

右吳西坡 道一 【이상은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벼슬살이에……말했나 : 전원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아직도 벼슬에 얽매인 상황에 대한 탄식 이다. 두보(杜甫)가 「곡강에서 술 마주하고[曲江對酒]」에서 “벼슬살이에 창주가 아득한 줄 느끼며, 늙도록 옷 떨치지 못하는 걸 그저 슬퍼하네.[吏情更覺滄洲遠 老大徒傷未拂衣]”라고 하였다.(杜少陵詩集 卷6)

관련 태그 목록 #만사(輓詞) #서독(書牘) #완정집 #완정집8권 부록 #이언영 #제문(祭文)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