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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珍李氏 三寶記 (始祖公 · 敬收堂 · 壬辰譜書)

작성자儒珍 이선동 (평정공계 승지공 34세)|작성시간26.06.09|조회수31 목록 댓글 0

碧珍李氏 記
碧珍李氏는東方의 名門으로서 그 源遠流長하여,高麗 三重大匡 開國元勳 碧珍將軍 始祖 李忩言 公의
忠節과 武勳을 根本으로 삼고,
世世相承하여 學問과 德行으로 家聲을 빛내온 大宗族이다.
宗族之盛은 一朝一夕에 이루어지는 바 아니요, 祖先의 積德과 後孫의 繼承이
서로 이어져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碧珍之門은
忠으로 나라를 섬기고,
孝로 집안을 다스리며,
信義로 사람을 대하고,
禮讓으로 世道를 밝혀 그 名聲이 이미 四方에 드러난 지 오래이다.
其間에 儒林이 있어
道를 밝히고 德을 닦아
宗族의 精神을 바로 세우고,
百歲會를 두어 長壽의 德을 기리고
人生의 圓熟함을 顯彰하니,
이는 곧 德業이 쌓여 이루어진
家門의 빛나는 表象이라 할 것이다.
百世에 걸친 家風은
忍과 節에서 비롯되고,
忠과 孝로 이어지며,
信과 義로 완성되니,
이는 곧 碧珍李氏의 精神이요
萬代에 전할 道統이라 하겠다.
이에 宗門의 子孫들은
祖先의 遺訓을 삼가 받들어
修身齊家를 근본으로 삼고,
和睦으로 宗族을 돈독히 하며,
學問을 권장하고 禮義를 숭상하여
그 家聲을 더욱 빛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歲月은 흐르되 道는 변하지 아니하고,
世代는 바뀌되 精神은 끊어지지 아니하니,
이는 곧 先祖의 陰德과
後孫의 勤修가 함께 이룬 바이다.
願컨대
今之子孫이 이 뜻을 깊이 새겨
敬을 다하고 誠을 다하여
祖德을 계승하며,
義를 세우고 禮를 밝혀
碧珍의 名聲이 山河와 더불어
千秋萬代에 길이 빛나기를 바라며
삼가 記하노라.
丙午年 仲春
碧珍李氏 大宗會 文化委員長
碧珍儒林. 儒珍 善東 謹記

碧珍李氏 三寶記
(始祖公 · 敬收堂 · 壬辰譜書)

무릇 종족(宗族)의 근본은 조상을 공경하고 그 유덕(遺德)을 계승하는 데 있으며, 문중의 융성은 선조의 정신을 잊지 않고 후손들이 이를 이어가는 데 있다. 우리 碧珍李氏는 고려 개국의 공신이신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을 始源으로 하여 천백여년 동안 충효예의(忠孝禮義)의 가풍을 지켜온 동방의 명문대족이다.
특히 碧珍李氏는 청백리 정신을 숭상하고, 충신·효자·열녀를 배출하였으며, 학문을 숭상하는 유림가문으로서 名賢과 碩儒를 많이 배출하였다. 山花先生, 大性理學者 華西 李恒老先生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적 맥락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우리 문중에는 대대로 전해오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곧 始祖公의 위대한 업적, 始祖公과 선조를 봉향하는 敬收堂, 그리고 선조들의 혈맥과 역사를 기록한 壬辰譜書를 비롯한 一貫族譜가 그것이다. 이에 이를 「碧珍李氏 三寶」라 하여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第一寶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
우리 문중의 첫째 보배는 고려 개국 원훈이신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이시다.《高麗史》와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의하면, 公께서는 신라 말기 碧珍 지역을 수호하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셨다. 당시 도적들이 창궐하였으나 성을 굳게 지켜 주민들이 그 덕을 입었으며, 고려 太祖 王建의 부름에 응하여 아들 永公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고려 건국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에 太祖는 忩言公을 碧珍將軍에 봉하고 토지와 창곡 및 소금을 하사하였으며, 자손 대대로 변함없는 은총을 약속하였다. 公께서는 동남방의 요충지인 碧珍을 굳건히 지켜 고려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938년 壬子日에 향년 81세로 별세하셨다.
이는 정사(正史)에 명백히 기록된 사실로서 역사적 진실성과 정통성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당시 公께서 기르시던 愛馬에게 먹이를 주었던 말구유가 남아있어 경수당내에 잘 保存하고있다.

1770년 상수촌 매적산 동쪽 기슭에 단을 설치하고.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사를 드려오다가 1826년에 단소와 조금 떨어진 지금의 자리에 제실을 짓고 당호를 경수당(敬收堂)이라 하였다.
1864년 시조공의 유허비와 표갈을 세워 시조공의 얼과 정신을 되세겼다.

1865년 華西 李恒老先生은 「碧珍將軍事實記」를 찬술하여 公의 충절과 위업을 천추에 드러내었고, 이내용을 벽진장군 이총언 사적비에 새겨 오늘날에 문중의 귀중한 정신유산으로 남아 있다.
1878년에 매적산 동쪽에 있던 제단을 영봉산 남쪽 기슭 이천 부근으로 옮겼다가, 1881년 다시 경수당 경내 유허비 옆으로 옮기면서 시향 일자를 음력 10월 3일로 변경 결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4년에는 벽진장군이 당시 성을 지키던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정기가 서린 독용산 전적지에 「碧珍將軍大捷碑」를 건립하여 시조공의 업적을 되세기고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실전되었던 시조공묘를 2013년 성주군 벽진면 외기리 959번지에 복원하여 매년 추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始祖 諱 忩言公을 기리며
碧珍儒林 儒珍 李善東
무릇 碧珍李氏의 根源은 멀고도 길며, 그 始作은 바로 高麗 開國元勳이신 碧珍將軍 始祖公 諱 忩言公께서 열어 놓으신 것이다.
公께서는 忠誠과 勇猛으로 世上을 구하시고, 文과 武를 兼備하여 國家를 도우며 百姓을 平安하게 하셨다. 그 功勳은 社稷에 남아 있고, 그 이름은 歷史에 길이 傳해진다. 高麗가 처음 세워질 때 天下가 아직 安定되지 못하고 여러 英雄들이 다투던 時節에, 公께서는 몸소 일어나 義를 좇아 임금을 도우셨다. 軍營 안에서 計策을 세우고, 千里 밖의 勝敗를 決定하여 마침내 큰 功을 세우셨다. 이에 碧珍將軍에 封해지고 碧珍을 本貫으로 下賜받아 우리 門中 千年의 基틀을 여셨다.
公의 忠誠은 임금을 섬김에 두 마음이 없는 큰 節槪였고,
公의 義로움은 危殆로움을 구하고 어려움을 돕는 어진 風貌였으며,
公의 學問은 身을 닦고 家門을 가지런히 하는 根本이었고,
公의 德은 後孫들에게 넉넉한 恩惠를 남긴 큰 法度였다.
그러므로 公 이후로 代代 높은 官職과 훌륭한 人材가 끊이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文章으로 이름을 떨쳤고, 어떤 이는 忠節로 드러났으며, 어떤 이는 道學으로 家門을 이어갔고, 어떤 이는 孝誠과 友愛로 宗族을 돈독하게 하였다. 朝鮮時代에 이르러서는 더욱 많은 名臣과 큰 儒林들이 나와 先人의 뜻을 이어 後世를 열어 갔으니, 碧珍李氏의 家風이 더욱 빛나게 된 것은 모두 始祖公께서 德을 쌓아 後孫에게 남겨주신 恩澤 때문이다.
이제 우리 後孫들은 비록 數百年 뒤에 태어났으나, 그 遺風을 우러러보면 마치 泰山과 北斗七星처럼 높고 밝아 肅然히 恭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敬收堂 아래에 이르러 遺墟를 拜謁하고 創業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祖上의 큰 德을 되새길 때면, 感動하여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무릇 나무는 뿌리가 있어 枝葉이 茂盛하고, 물은 根源이 있어 흐름이 길어진다. 사람이 祖上을 잊는다면 이는 나무가 뿌리를 잃고 물이 根源을 잃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祖上을 恭敬하고 먼 先祖를 追慕하며, 宗族을 돈독히 하는 것은 儒家의 家法이며 또한 後孫들이 바꿀 수 없는 責任이다.
儒珍 李善東은 東禮村에서 태어나 儒鄕에서 자라며 祖上들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先賢들의 恩惠를 입었으니, 어찌 밤낮으로 스스로를 警戒하며 先祖의 뜻을 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才能이 부족하고 學問이 얕으나 祖上을 恭敬하는 마음만은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제 삼가 몇 마디 글을 적어 우러러 思慕하는 精誠을 나타낸다.
願하건대 우리 後昆들이 모두 根本을 알고, 孝悌와 友愛를 돈독히 하며, 忠誠과 義理를 崇尙하고, 德과 學問을 닦아 家門의 名聲을 지켜서 碧珍의 門中이 萬世토록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始祖公께서 하늘에서 보시며 반드시 기쁘게 後孫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다.
2026年 丙午
始祖公 春享之節 謹識.


 
第二寶 敬收堂
둘째 보배는 始祖公과 선조의 얼을 봉안한 宗堂 敬收堂이다.
1770년 수촌리 매적산 동쪽 기슭에 단을 설치하여 시조공을 봉향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826년 시조공의 유허지인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756-1번지에 종당 敬收堂을 창건하여 몇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敬收堂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시조공의 충절과 덕업을 기리고,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되새기는 정신적 성전이다.

후손들은 매년 비현사에서 時享을 올리며 조상을 추모하고 종족의 화합을 다지고 있다.
특히 一何亭 李學峻先生은 1864년 「敬收堂記」를 지어 그 창건 배경과 정신적 의미를 밝히고 이를 문집에 남겼다. 또한 「完文」(1886)과 「敬收堂修築誌」(1964)는 敬收堂의 연혁과 수호 과정을 전하고 있어 종당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敬收堂은 곧 碧珍李氏 정신문화의 중심이며, 충효와 숭조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성역이라 할 수 있다.

敬收堂을 기리며
—碧珍儒林 儒珍 李善東 謹述—
敬收堂은 碧珍李氏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의 遺德을 追慕하고 世世孫孫이 報本敦宗의 誠을 다하는 宗堂之所也라.
其地 在於 星州 碧珍之鄕하니 山川秀麗하고 地脈靈厚하여 實로 始祖公의 忠義精神이 千載에 猶存하는 聖域이라.
始祖公 諱忩言은 高麗 開國元勳으로 三重大匡에 오르시고 碧珍將軍에 封해지시어 國基를 定하고 邦運을 扶持하신 忠烈之臣이시라.
功業은 山河와 共하고 德澤은 日月과 同하니 後孫이 이를 우러러 朝夕으로 感慕하지 아니할 수 없도다.
敬收堂은 英祖 庚寅年에 創建되고 高宗 甲子年에 重修되어 宗族이 모여 蒸嘗을 받들고 先德을 講하며 孝悌忠信의 道를 傳하는 儒門之本堂이라.
堂號를 敬收라 함은 敬으로써 先祖를 받들고 收로써 身心을 닦아 德을 모으고 禮를 세운다는 뜻이니 實로 儒家修己治人의 大義가 其中에 담겨 있도다.
吾 生於 鄕里 東禮村하여 幼時로부터 祖先의 敎誨를 듣고 敬祖敦宗의 義를 익혔으며 長하여서는 서울에 居하나 魂夢은 늘 故鄕과 星州 敬收堂에 머무노라.
堂前에 서면 松風이 옛 뜻을 전하고 古木은 世代의 興衰를 말하며 石階에 어린 苔痕은 千年 忠孝의 자취를 품고 있도다.
나는 생각하노니 人이 근본을 잊으면 枝葉는 마침내 마르고 祖德을 잊으면 家門은 오래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敬收堂은 다만 한 채의 建物이 아니요 祖宗의 精神이 살아 숨 쉬는 道義의 殿堂이며 後孫의 心燈을 밝히는 永遠한 根源이라.
願컨대 我 碧珍後孫은 世代를 이어 忠義를 숭상하고 孝悌를 실천하며 學問으로 家風을 밝히고 德行으로 世道를 바로잡아
始祖公의 遺訓을 萬代토록 계승할지어다.
아아, 敬收堂이여 碧珍의 靈光이요 吾族의 精神柱石이로다.
謹히 머리 숙여 再拜하고 永世토록 그 德을 기리노라.
丙午年 敬收堂 200周年 記
 
第三寶 壬辰譜書와 一貫族譜
셋째 보배는 선조들의 계통과 역사를 기록한 壬辰譜를 비롯한 一貫族譜이다.
1652년(효종 3) 간행된 「碧珍李氏世譜」, 곧 壬辰譜는 우리 문중 최초의 한문 목판본 족보이다.

그 연원은 1635년 忠肅公 尙吉公께서 완산부윤 재임 시 편찬을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晉州牧使를 지낸 監司公 尙一公이 이를 완성하여 간행하였다.
壬辰譜 서문에는 오래된 세월로 인해 분파와 세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선조들의 전승과 고문헌을 수집하고 계통을 정리하여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成均館博士 昌一公이 거창 文氏家에 전해오던 구보를 발견하여 검토한 결과, 외손계 기록과 碧珍李氏 세계가 서로 부합함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大將軍 成幹公으로부터 保勝郞將 晟公, 中郞將 桓公, 平靖公 約東公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명확히 밝혀졌으며, 이는 우리 문중 세계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더욱이 「文化柳氏家情報」(1565)가 현존하는 오래된 외부 사료로서 壬辰譜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어, 碧珍李氏 족보의 신빙성과 정통성은 더욱 굳건하다.
족보는 단순한 혈연기록이 아니라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는 역사서이며, 문중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문화유산이다.

族譜書記.
碧珍李氏는高麗 開國之際에 勳業을 세우신三重大匡 開國元勳 碧珍將軍 始祖公 諱 忩言이 萬世之 宗源이시다.
始祖公께서는忠義와 武勳으로 國家를 보필하시어碧珍之地에 封爵되시니
子孫이 世世로 繁衍하여 東方의 名門大族으로 根基를 이루셨다.
歲月이 흐르며
子孫이 四方으로 蕃衍하고
人物이 이어져 家聲이 더욱 융성하니
문중에서는 世系를 바로 세우고
祖先의 德業을 傳하기 위하여
族譜를 修撰하게 되어.
壬辰年(孝宗 三年, 西紀 1652)에
宗族의 公議로
碧珍李氏의 世系를 정리하여
처음으로 壬辰譜를 편찬하였으니
이는 우리 문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체계적 족보이다.
이 譜書에는
始祖公으로부터 이어진
世代의 嫡庶와 系統을 밝히고
各派의 分貫과 子孫의 名諱를 기록하여
宗族의 根源을 분명히 하고
後世子孫으로 하여금
祖德을 우러러 보며
敬宗收族의 道를 지키게 함이다.
族譜는
碧珍李氏가
단순한 혈연의 집합이 아니라
祖先의 忠義와 德業을 이어받은
文化와 精神의 共同體임을
후세에 밝히는 귀중한 文獻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碧珍李氏 後孫들은
始祖公의 忠節과 武勳을 근본으로 삼고
族譜에 기록된
祖先의 系統을 바르게 이어
家門의 榮光과 얼과 精神이 자손만대로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書하는 바이다.
2026年 丙午 始祖公 春享之節
後孫 儒珍 善東 謹書

갑진대동보 族譜 必要性
벽진이씨 홈페이지
www.벽진이씨.com

族譜는 한 집안의 뿌리와 흐름을 기록한 가장 중요한 역사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름을 적어 두는 문서가 아니라,
祖上의 뜻을 잇고 後孫의 길을 바로 세우는 정신의 기록입니다.
1. 祖先을 알고 根本을 지키기 위함
사람이 나무와 같다면
뿌리가 있어야 줄기와 가지가 살아납니다.
族譜는 내가 누구의 후손이며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는지를 알려주는 根本입니다.
조상을 잊지 않는 것은 곧 自身의 근본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2. 孝와 禮를 실천하기 위함
孝를 모든 덕의 시작이라 하였습니다.
조상을 공경하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은
후손이 마땅히 지켜야 할 큰 道理입니다.
族譜는 바로 그 孝와 禮를 실천하는 첫걸음입니다.
3. 家門의 歷史를 보존하기 위함
세월이 흐르면
사람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습니다.
族譜는 선조들의 삶, 학문, 충절, 공훈을
후세에 전하는 살아 있는 역사책입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문중 전체의 문화유산입니다.
4. 子孫에게 正體性을 전하기 위함
후손들은 족보를 통해
자신의 뿌리와 가문의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이는 자긍심이 되고
바른 삶의 기준이 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아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도 알게 됩니다.
5. 宗親 간의 화합을 위함
族譜는 흩어진 종친들을 하나로 이어 줍니다.
서로의 촌수와 계통을 알고
宗族의 유대를 지키게 하며
대종회와 문중의 단합을 이루게 합니다.
族譜는 과거를 적는 책이 아니라
미래를 세우는 기록입니다.
조상을 밝히는 일은
곧 후손의 길을 밝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족보를 바로 세우는 일은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모든 후손이 함께 지켜야 할 책임입니다.
祖上을 잊지 않는 家門은 오래가고
根本을 지키는 後孫은 반드시 번창합니다.
벽진이씨의 얼과 정신이 대대손손 영원히 이어질 수있도록 일가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드립니다.
大宗會 文化委員長
儒珍 善東 謹記.

碧珍李氏의 三寶는
곧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의 위대한 업적과, 그 정신을 봉향하는 宗堂 敬收堂, 그리고 천년의 혈맥을 이어주는 壬辰譜를 비롯한 一貫族譜이다.
첫째 보배가 문중의 뿌리라면,
둘째 보배는 그 정신을 지키는 성전이며, 셋째 보배는 그 역사를 이어주는 생명의 기록이다.
오늘의 후손들은 이 三寶를 통하여 선조들의 충효와 청백리 정신, 유림의 도학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앞으로도 숭조돈친(崇祖敦親)의 전통을 지키며, 문중의 역사와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여 碧珍李氏의 명예와 문화를 더욱 빛내야 할 것이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 하였으니, 천년 세월이 흘러도 始祖公의 충절과 선조들의 유풍은 영원히 우리 후손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삼가 記하노라.
碧珍李氏 大宗會 文化委員長
儒珍 李善東 謹記

참고자료
고려사.고려사절요.신동국여지승람.
문헌록
경수당토지 완문(1886).
경수당지
경수당수축지(1964)
직장공파보(벽진장군사실기)
일하정문집(경수당기)(1956)
문화유씨 가정보(1565),
벽진이씨 임진보(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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