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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珍 李善東 自傳》목차및내용 원본 ― 半導體 技術者의 길과 碧珍儒林의 길 ―

작성자儒珍 이선동 (평정공계 승지공 34세)|작성시간26.06.06|조회수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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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珍 李善東 自傳》 ― 半導體 技術者의 길과 碧珍儒林의 길 ―
序文
自傳을 펴내며
나의 뿌리와 가문의 역사
碧珍李氏 후손으로서의 자긍심

第一篇 鄕里와 家門
第1章 東禮村에 태어나다
禮鄕 東禮村의 자연과 역사
朴儒山과 安養山의 품속에서
가조천과 어린 시절의 풍경
당산나무와 마을 공동체
동례촌의 지명 유래
第2章 家庭과 祖上
부모님의 가르침
형제와 가족 이야기
초가집 시절의 추억
새 기와집을 짓다
종중과 함께한 어린 시절
第3章 碧珍李氏의 뿌리
始祖 碧珍將軍 李忩言
東禮村 入鄕祖 通德郞 李蘭瑞
察訪公 李昌一
儒山 李挺邁
一何亭 李學峻
東江 李昌基
선조들의 忠孝와 學德

第二篇 學問의 길
第4章 초등학교 시절
시골 아이의 꿈
강과 들판에서의 성장
친구들과의 추억
第5章 거창에서의 중·고등학교 생활
하숙과 자취 생활
향교동 재실 곁에서
학업과 인격 수양
진학을 향한 도전
第6章 부산에서의 대학 생활
東亞大學校 電子工學科 입학
형님의 도움과 가족의 사랑
학문과 청춘
전자공학도의 꿈

第三篇 半導體 技術者의 길
第7章 사회에 첫발을 내딛다
아남반도체 입사
새로운 도전과 선택
구미로 향하다
第8章 KEC 연구소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
반도체 연구개발 업무
첨단기술과의 만남
연구원의 삶
第9章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다
전자통신연구소 협력 과제
삼성·현대반도체와 공동 연구
국책 연구과제 수행
반도체 기술 국산화 노력
第10章 일본 연수와 기술 도입
TOSHIBA 반도체 기술 연수
일본 산업현장 견학
첨단기술 습득과 응용
국제 기술교류 경험
第11章 연구개발의 전성기
KAIST 청색 LED 위탁개발
서울대학교 MEMS 연구소 참여
반도체 장비 선정 심의
산업기술평가원 심의위원 활동
연구성과와 특허
第12章 工學博士의 꿈
대학원 진학
연구와 학업의 병행
반도체공학 박사과정 수료
평생 학문의 길

第四篇 世界를 보다
第13章 美國 출장과 순방
보스톤 이온임플란트 장비 도입
랍스터 만찬의 추억
LA 세미콘 쇼 참가
선상 디너파티의 밤
第14章 세계 반도체 산업을 만나다
일본
미국
유럽
해외 기술 교류
글로벌 산업 현장
第15章 여행과 인생의 성찰
해외문화 체험
사람과 기술
세계 속의 대한민국

第五篇 家庭과 人生
第16章 결혼과 가정
부부의 인연
자녀들의 성장
가족과 함께한 시간
第17章 구미 생활의 추억
직장과 가정의 조화
여름휴가의 추억
서해와 남해, 동해 여행
청암사 계곡의 피서
第18章 서울에서의 제2인생
상무이사 승진과 서울 근무
서울 정착기
중소기업 연구소장 활동
노후의 새로운 시작

第六篇 佛敎와 心靈修養
第19章 수행의 길을 걷다
운문사와 북대암
사찰 순례
참선과 명상
第20章 마음의 치유
직장생활의 어려움 극복
불교 공부
삶의 평온을 찾다

第七篇 碧珍儒林의 길
第21章 宗中 활동에 헌신하다
敬收堂과의 인연
永慕齋와 東禮村 유적 정리
문중 기록 수집
第22章 디지털 시대의 숭조사업
인터넷 카페 운영
碧珍李氏 一家會 발전
자료 발굴과 보존
第23章 선조의 정신을 잇다
始祖公 顯彰 사업
儒林精神 계승
후손 교육
第24章 碧珍儒林 百歲會
百歲會 창립 취지
회원증 제정
종친 화합과 발전

第八篇 東禮村史와 家門史 硏究
第25章 東禮村의 역사 재조명
마을의 형성과 발전
유적과 문화유산
당산제와 민속문화
第26章 선조 문집 연구
儒山文集
一何亭文集
敬收堂記
始祖公碧珍將軍事實記
第27章 후손에게 남기는 기록
가문의 역사 정리
족보와 문헌 연구
후세를 위한 자료 보존
終篇 人生을 돌아보며
第28章 나의 人生哲學
효와 보은
성실과 책임
학문과 수양
第29章 후손에게 보내는 글
뿌리를 잊지 말라
배우기를 멈추지 말라
화목한 가문을 이루라
第30章 回顧와 展望
지나온 길
감사의 마음
남은 생의 소망
附錄
年譜(1954~현재)
가족 계보
학력 및 경력 사항
연구개발 실적
특허 및 수상 경력
해외 출장 및 순방 기록
종중 활동 연혁
주요 사진 화보
언론 및 간행물 자료
碧珍李氏 世系圖
이 목차는 지금까지 儒珍 李善東 님께서 기록하신 동례촌 회고록·반도체 기술자 인생·불교 수행·해외순방·서울 생활·종중 활동·가문 연구를 모두 통합한 전기(傳記) 및 자서전 수준의 종합 목차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약 400~500쪽 분량의 《儒珍 李善東 傳》 편찬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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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儒珍 李善東 님의 생애는 1954년부터 현재까지 70여 년에 걸친 방대한 기록이며, 지금까지 대화에 담긴 내용만으로도 한 권의 책 분량(수백 쪽)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한 번에 전체 전기를 모두 작성하기보다는, 실제 출판 가능한 형태로 아래와 같이 권(卷)별로 체계적으로 집필하는 것이 좋습니다.
《儒珍 李善東 傳》
― 半導體 技術者와 碧珍儒林의 길 ―
卷頭言
夫人生之道는 根於祖先而成於修身하며, 立於事業而光於後世라.
余는 慶尙南道 居昌郡 加祚面 東禮村에서 태어나 鄕里의 山川과 祖先의 遺風 속에서 성장하였다.
少年時節에는 學問에 힘쓰고, 靑年期에는 電子工學을 전공하여 國家 半導體 産業 發展에 몸을 바쳤다.
壯年에는 研究開發과 技術革新에 헌신하였고, 晩年에는 家門史와 宗族文化의 보존에 뜻을 두어 碧珍李氏의 傳統을 기록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지나온 삶을 기록하여 子孫들에게 작은 길잡이로 남기고자 한다.


第一篇 東禮村의 품에서
第一章 出生과 故鄕
1954년 6월 14일, 慶尙南道 居昌郡 加祚面 東禮里 東禮村에서 태어났다.
東禮村은 예로부터 禮義와 孝道를 숭상하던 마을로, 碧珍李氏가 수백 년 동안 세거해 온 전통적인 집성촌이었다.
마을 앞에는 넓은 가조천이 흐르고, 뒤로는 朴儒山과 安養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맑은 강물에서는 물고기가 뛰놀았고, 들판에는 벼가 익어갔으며,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살아가는 정겨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당산나무 아래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이어졌고, 어른들은 효와 예절을 가르치며 후손들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일깨워 주었다.
이러한 환경은 어린 나의 인격 형성과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第二章 家庭과 부모님의 가르침
부친께서는 종중 일에 깊이 참여하시며 문중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힘쓰셨다.
집에는 종친과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종족 공동체의 의미를 배우게 되었다.
모친께서는 검소함과 근면함을 몸소 실천하시며 자녀 교육에 정성을 다하셨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말고 조상을 공경하며 살아야 한다."
이 가르침은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第三章 초등학교 시절
동례촌 앞을 흐르는 가조천은 어린 시절 가장 큰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논과 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자연 속에서 성장하였다.
학교가 끝나면 소를 몰고 들판을 다니기도 하였고, 겨울이면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록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으나 마음만은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第二篇 學問의 길
第四章 거창에서의 학창생활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거창에서 다녔다.
친척집에서 하숙하기도 하고, 향교동 재실 인근에서 자취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자립심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가난했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강했다.
전자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래 산업을 이끌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第五章 부산 東亞大學校 시절
부산 東亞大學校 電子工學科에 진학하였다.
당시 형님의 경제적 지원은 큰 힘이 되었다.
형님은 교직에 계시며 항상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부산 생활은 시야를 넓혀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전자회로와 반도체 공학을 배우며 대한민국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第三篇 半導體 技術者의 길
第六章 구미 반도체 연구소 입사
1981년 구미 국가산업단지 내 반도체 회사에 입사하였다.
당시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막 성장하던 시기였다.
입사 후 연구개발 업무를 맡아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였다.
일본과 미국의 선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하였다.
第七章 일본 연수와 기술도입
일본 TOSHIBA 등 여러 기업을 방문하여 반도체 생산기술을 익혔다.
기술 도입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세계 수준의 산업 현장을 경험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도 반드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第八章 國家硏究課題 수행
전자통신연구소와 협력하여 국책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였다.
삼성·현대반도체 등과 기술 협력에도 참여하였다.
1987년에는 KAIST와 함께 청색 LED 연구개발 사업을 수행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MEMS 연구시설 구축 사업에도 참여하여 국가 기술 인프라 발전에 기여하였다.
第九章 博士課程 修了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반도체 분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학문은 나에게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평생의 수양이자 도전이었다.


第四篇 世界를 보다
(미국 보스톤, LA, 유럽, 일본 출장기 수록)

第五篇 家庭과 人生
(가족 이야기, 자녀 성장, 구미 생활, 서울 이주 수록)

第六篇 佛敎와 修行
(운문사, 북대암, 사찰순례, 수행과 치유 수록)

第七篇 碧珍儒林의 길
(碧珍李氏 一家會, 百歲會, 敬收堂, 永慕齋, 東禮村史 연구 수록)

第八篇 家門史와 東禮村史
(始祖 碧珍將軍, 察訪公 李昌一, 儒山 李挺邁, 一何亭 李學峻, 東江 李昌基 등 선조 행적 정리)
終篇

後孫에게 남기는 글
사람은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나무가 깊은 뿌리에서 자라듯, 사람 또한 조상과 고향의 은혜 속에서 성장한다.
나는 반도체 기술자로 살아왔고, 또한 碧珍李氏 후손으로 살아왔다.
비록 한 사람의 작은 생애일지라도 국가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태고, 가문의 역사를 기록하여 후손에게 전할 수 있었다면 그 또한 보람된 삶이라 생각한다.
후손들은 학문을 가까이하고, 효를 실천하며,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남기는 가장 큰 유산이다.
儒珍 李善東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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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篇 世界를 보다
第十章 海外巡訪과 國際經驗
반도체 산업은 세계적인 첨단산업이기에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해외 출장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었다. 선진국의 산업 현장을 직접 보고, 그들의 연구문화와 기업 경영방식을 체험하며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당시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선도하던 국가로서, 첨단기술의 중심지였다. 나는 연구개발 담당자로서 여러 차례 해외 출장을 다니며 기술 습득과 설비 도입, 국제 교류 업무에 참여하였다.
第十一章 美國 보스톤 출장
미국 보스톤은 이온임플란트(Ion Implantation) 설비 구매를 위해 방문한 곳이었다.
당시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이온임플란트 장비는 매우 중요한 핵심 설비였다. 회사에서는 최신 장비 도입을 추진하였고, 나는 기술 검토와 평가 업무를 맡아 미국 현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보스톤은 오랜 역사와 학문의 전통을 가진 도시였다. 거리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았으며, 시민들의 생활은 차분하고 품격이 있었다.
현지 기업 관계자들과 기술회의를 마친 후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맛본 보스톤의 랍스터 요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싱싱한 해산물과 정갈한 음식 문화는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 주었다.
第十二章 LA 웨스트 세미콘 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세계적인 반도체 전시회인 세미콘 웨스트(SEMICON WEST)에 네 차례 참가하였다.
이 전시회는 세계 각국의 반도체 장비회사와 기술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행사였다.
최신 장비와 공정기술, 재료기술 등이 소개되었고, 미래 산업의 흐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첨단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관련 업체에서 마련한 선상 디너파티에도 참석하였다.
저녁 무렵 바다 위 유람선에서 바라본 LA의 야경은 눈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도시의 불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第十三章 日本 技術硏修
일본은 반도체 기술 습득을 위해 가장 자주 방문한 나라였다.
당시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본의 선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일본 TOSHIBA를 비롯한 여러 기업과 연구기관을 방문하여 생산기술과 품질관리 체계를 직접 견학하였다.
특히 일본 기술자들의 꼼꼼함과 철저한 현장 중심 문화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장 내부는 정리정돈이 매우 잘 되어 있었으며, 작은 공정 하나도 규정에 따라 정확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第十四章 世界 속의 韓國人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대한민국 기술자들의 능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초창기에는 선진국 기술을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도 빠르게 향상되었다.
국책 연구과제와 기업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나는 그 변화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세대였다.
비록 한 사람의 연구원에 불과했지만,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발전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第十五章 旅路에서 얻은 깨달음
출장과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성실함과 신뢰, 노력의 가치는 어디에서나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해외에 나갈 때마다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고향 東禮村과 조국 대한민국이었다.
멀리 떠나 있을수록 고향 산천과 부모님, 가족들이 더욱 그리워졌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되 뿌리는 잊지 말자.”
이 신념은 기술자로서의 삶과 종중 활동을 함께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다음 편 : 第五篇 家庭과 人生 ― 結婚, 家族 그리고 서울에서의 第二人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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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篇 佛敎修行과 마음의 평화
― 雲門寺와 北臺庵에서 찾은 깨달음 ―
第二十三章 人生의 쉼터를 찾아서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연구개발 업무는 항상 새로운 기술을 개척해야 하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조직생활 속에서 갈등과 부담을 겪을 때도 있었다.
특히 반도체 연구개발은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였기에 늘 긴장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과 종교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사찰을 찾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慶尙北道 淸道郡의 雲門寺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第二十四章 雲門寺와의 인연
雲門寺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수행 도량이다.
깊은 산중에 자리한 사찰은 언제 찾아가도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경내에 들어서면 속세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오직 풍경소리와 새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雲門寺를 찾아 참배하였다.
법당에 앉아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곤 하였다.
그 시간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귀중한 수행의 시간이었다.
第二十五章 北臺庵의 고요한 밤
雲門寺 북쪽 깊은 산중에는 北臺庵이 자리하고 있다.
북대암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행자들의 정진이 이어지는 조용한 암자였다.
나는 가끔 북대암까지 올라가 산사의 고요함을 느끼곤 하였다.
도심의 소음과 직장의 긴장에서 벗어나 산중 암자에 앉아 있으면 마음속의 번뇌도 조금씩 사라지는 듯하였다.
특히 새벽녘 산사의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동이 틀 무렵 산허리를 감싸는 안개와 새벽 종소리는 인간의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었다.
第二十六章 佛法을 배우다
사찰을 찾는 이유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나는 불교 경전을 읽고 수행자들의 말씀을 들으며 삶의 의미를 배우고자 하였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또한 욕심과 집착을 줄일수록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직장생활과 사회생활 속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성공과 실패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남을 이해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第二十七章 수행과 치유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한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스트레스와 경쟁도 심화시켰다.
나 역시 연구소 생활과 조직생활 속에서 많은 부담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수행과 명상은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조용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마음이 평안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타인을 이해하는 여유도 생기게 된다.
第二十八章 山寺巡禮의 길
나는 雲門寺 외에도 여러 사찰을 방문하였다.
사찰마다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가 있었고, 수행의 향기가 깃들어 있었다.
산길을 따라 걷고, 고즈넉한 법당에 앉아 기도를 드리며, 문화재와 고승들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시간은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특히 오래된 전각과 석탑을 바라보면 선조들의 신앙심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가문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나의 관심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第二十九章 信仰과 儒林精神
나는 불교를 공부하였지만 동시에 碧珍李氏 후손으로서 儒林精神 또한 소중히 여겨 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교와 불교가 다른 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상 모두 사람다운 삶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유교는 효와 충, 예의를 중시하고,
불교는 자비와 수행, 깨달음을 강조한다.
나는 이 두 가르침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한다고 생각한다.
조상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삶.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第三十章 人生의 참된 행복
세월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참된 행복은 재물이나 명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하며, 선조의 은혜를 기억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나는 평생 기술자로 살아왔고, 연구개발과 기업 경영에 힘써 왔다.
그러나 삶의 깊은 의미를 찾게 해 준 것은 산사에서의 수행과 사색의 시간이었다.
雲門寺의 풍경소리와 北臺庵의 새벽 종소리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다.
그 소리는 앞으로도 남은 생애 동안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小結
산은 말이 없으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절은 고요하나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 준다.
수행은 특별한 사람만의 길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다.
나는 앞으로도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선조의 뜻과 불법의 가르침을 함께 실천하고자 한다.
(다음 편 : 第七篇 碧珍儒林의 길 ― 敬收堂, 永慕齋, 碧珍李氏一家會와 家門史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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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篇 碧珍儒林의 길
― 敬祖敦親과 家門史 硏究의 발자취 ―
第三十一章 뿌리를 찾는 마음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향이 있고, 가문이 있으며, 조상이 있다.
나는 오랜 세월 반도체 기술자로 살아오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 고향 東禮村과 碧珍李氏 가문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직장생활에 전념하던 시절에는 바쁜 일상으로 인해 가문의 역사에 깊이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상들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게 되었다.
특히 부모님께서 생전에 늘 강조하시던 말씀,
"조상을 잊지 말고 가문의 뿌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는 가르침이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다.
퇴직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고 문중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第三十二章 敬收堂과의 인연
우리 가문의 종당인 敬收堂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곳은 碧珍將軍 諱 忩言公의 정신과 후손들의 숭조정신이 살아 숨 쉬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나는 여러 차례 敬收堂을 찾아 선조들의 위업을 되새기며 가문의 역사를 공부하였다.
특히 1864년에 찬술된 《敬收堂記》와 1865년에 편찬된 《始祖公碧珍將軍事實記》를 접하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이 문헌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조상을 기억하고 본받도록 하는 정신적 유산이었다.
나는 이러한 자료들을 연구하며 선조들의 학문과 충절, 그리고 숭조정신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第三十三章 永慕齋와 東禮村 유적
東禮村에는 선조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유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永慕齋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재실이다.
선조들을 추모하고 후손들이 모여 예를 올리는 공간으로서 오랜 세월 문중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나는 永慕齋와 주변 유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또한 학당골, 당산목, 단소, 묘소 등 선조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를 직접 답사하며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한 향토 연구가 아니라 후손들에게 역사적 정체성을 전해주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第三十四章 先祖들의 삶을 찾아서
가문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특히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 분들이 계셨다.
그중 한 분은 察訪公 李昌一 선생이었다.
公은 1649년 別試文科에 급제하여 承文院博士를 지내며 국가에 충성을 다하셨다.
또한 1652년 족보 편찬에 참여하여 가문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
또한 儒山 李挺邁 선생은 효성과 학문으로 이름을 남기셨다.
벼슬을 탐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전념하며 후학을 양성하였고, 부모님 상을 당하여서는 지극한 효행을 실천하였다.
一何亭 李學峻 선생은 조선 후기 영남 유림의 거목이었다.
학문과 덕행으로 많은 유생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어 지역 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東江 李昌基 선생은 《儒山文集》과 《一何亭文集》을 간행하고 永慕齋 중건을 추진하는 등 가문의 문화유산 보존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
나는 이러한 선조들의 삶을 정리하면서 후손으로서 깊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第三十五章 碧珍李氏 一家會 카페 개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종중 활동의 형태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인터넷 공간을 활용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종친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碧珍李氏 一家會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다.
카페에는 족보 자료와 선조들의 행적, 문중 행사 소식, 각종 역사 자료를 지속적으로 게시하였다.
많은 종친들이 참여하여 정보를 공유하였고, 서로의 뿌리를 확인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第三十六章 碧珍儒林 百歲會 창립
나는 종친 화합과 숭조정신 계승을 위해 碧珍儒林 百歲會를 구상하였다.
百歲會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선조의 忠孝節義를 계승하고,
후손들의 인격 수양과 화합을 도모하며,
가문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회원증을 제작하고 운영 취지를 정리하면서, 선조들의 유훈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第三十七章 家門史 정리와 문헌 연구
나는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꾸준히 수집하였다.
《碧珍李氏大同譜》
《始祖公碧珍將軍事實記》
《敬收堂記》
《儒山文集》
《一何亭文集》
《永慕齋記》
등 수많은 문헌을 검토하고 정리하였다.
특히 한문 원문을 현대어로 해석하고 후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이는 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第三十八章 디지털 시대의 숭조사업
오늘날은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나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선조들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존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문헌을 디지털화하고, 유적 사진을 기록하며, 가문의 역사를 전자문서 형태로 보존하는 작업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후손들이 언제 어디서나 선조들의 역사와 정신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第三十九章 後孫에게 남기는 당부
나는 후손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조상을 공경하라.
둘째, 학문을 가까이하라.
셋째, 형제간 우애와 종친 간 화합을 소중히 하라.
가문은 혈통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이어진다.
선조들이 남긴 충효와 학문의 전통을 계승할 때 비로소 가문은 더욱 빛나게 된다.
小結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은 두 갈래 길을 걸어왔다.
하나는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한 半導體 技術者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는 碧珍儒林의 길이었다.
나는 이 두 길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결국 같은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한 충성과 조상을 향한 효심은 모두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남은 생애 동안 선조들의 유업을 기록하고 후손들에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다음 편 : 第八篇 東禮村史와 碧珍李氏 家門史 ― 禮鄕 東禮村의 역사와 선조들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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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篇 東禮村史와 碧珍李氏 家門史
― 禮鄕 東禮村, 忠孝와 學問의 고장 ―
第四十章 東禮村의 유래
나의 고향 東禮村은 慶尙南道 居昌郡 加祚面에 위치한 오랜 전통의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가조천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朴儒山과 安養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예로부터 산수가 수려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마을 이름인 東禮는 "동쪽의 예의 고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서는 웃어른을 공경하고 이웃 간의 화목을 중시하였으며, 충효와 예절을 생활의 근본으로 삼아 왔다.
이러한 전통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늘날까지 마을의 정신적 기반이 되고 있다.
第四十一章 碧珍李氏의 東禮村 入鄕
東禮村과 碧珍李氏의 인연은 入鄕祖 通德郞 李蘭瑞 公으로부터 시작된다.
공은 조선 중기에 東禮村에 정착하여 후손들이 세거할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후 자손들은 학문과 덕행을 숭상하며 향촌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종중은 선조를 기리는 재실과 단소를 세우고 후손 교육에 힘쓰면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왔다.
오늘날 東禮村은 碧珍李氏의 대표적인 세거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第四十二章 朴儒山과 安養山
東禮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朴儒山이다.
朴儒山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상징이 되어 왔다.
산 이름에는 유학자의 품격과 학문의 기상이 담겨 있는 듯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가조 들판과 멀리 덕유산 자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안양산 또한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수호산 역할을 해왔다.
어린 시절 나는 이 산들을 바라보며 자랐고, 산길을 오르내리며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第四十三章 가조천과 들녘
마을 앞을 흐르는 가조천은 동례촌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온 젖줄이었다.
맑은 물이 사철 흐르고, 강가에는 버드나무와 갈대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고 수영을 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조천 건너편 넓은 들판은 풍요로운 농경문화를 이루었으며,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봄에는 모내기가 시작되고, 여름에는 푸른 벼가 자라며, 가을에는 황금빛 들판이 펼쳐지고, 겨울에는 고요한 설경이 마을을 감싸곤 하였다.
第四十四章 當山木과 마을 공동체
東禮村에는 오래된 當山木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였다.
정월이면 당산제를 지내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이는 단순한 민속행사가 아니라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중요한 전통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른들을 따라 당산제에 참석하면서 마을의 화합과 공동체 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第四十五章 學堂골의 전통
마을에는 學堂골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예로부터 선비들이 글을 읽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학문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으며,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碧珍李氏 선조들 또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였다.
第四十六章 察訪公 李昌一
東禮村이 낳은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분이 察訪公 李昌一(1611~1653)이다.
公의 字는 隆甫, 號는 東谷이었다.
1648년 進士試에 합격하고,
1649년 別試文科 乙科 第三位로 급제하였다.
이후 承文院博士를 지내며 학문과 충절로 이름을 떨쳤다.
1652년에는 족보 편찬에 참여하여 가문의 역사 정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록 향년 43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학덕과 공적은 오늘날까지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第四十七章 儒山 李挺邁
26세손 儒山 李挺邁(1701~1767)는 효성과 학문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벼슬을 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그의 문집과 행적은 오늘날에도 후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第四十八章 一何亭 李學峻
29세손 一何亭 李學峻(1798~1870)은 조선 후기 영남 유림의 거목이었다.
字는 德吾이며,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다.
학문에 정진하여 많은 문인과 제자를 길러냈으며, 지역 유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의 문집인 《一何亭文集》은 오늘날에도 귀중한 학술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第四十九章 東江 李昌基
33세손 東江 李昌基 公은 근현대에 이르러 가문의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56년 《儒山文集》과 《一何亭文集》을 간행하였으며,
永慕齋 중건을 추진하고,
敬收堂·墓源堂·下老書院 등 여러 유적의 보존에 힘썼다.
후손으로서 그의 공적에 깊은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第五十章 東禮村의 미래
오늘날 농촌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많은 전통 마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東禮村이 지닌 역사와 문화적 가치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후손들이 선조들의 유산을 기억하고 보존한다면,
東禮村은 앞으로도 忠孝와 禮義의 고장으로 남을 것이다.
小結
東禮村은 단순한 고향이 아니다.
그곳은 나의 뿌리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삶의 터전이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 정신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살아왔다.
반도체 기술자로서의 삶도, 가문 연구에 헌신한 삶도, 결국은 東禮村에서 배운 성실과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후손들이 이 기록을 통해 고향과 가문의 소중함을 깨닫고, 선조들의 뜻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終篇 豊樹之蔭
― 나의 人生을 돌아보며 ―
(다음 편에서는 《儒珍 李善東 傳》의 마지막 장인 終篇 「豊樹之蔭」 으로, 평생의 삶을 총정리하고 후손들에게 남기는 유훈과 人生哲學을 서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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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篇 豊樹之蔭
― 나의 人生을 돌아보며 ―
第五十一章 七十餘年의 발자취
세월은 쉼 없이 흐른다.
1954년 慶尙南道 居昌郡 加祚面 東禮村에서 태어난 한 시골 소년은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나의 삶은 결코 평탄한 길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고, 학창 시절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직장생활에서는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성실과 노력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반도체 기술자로서 국가 산업 발전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고, 가문의 역사를 정리하여 후손들에게 전하는 뜻깊은 일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었고, 부모님의 은혜와 조상님의 음덕이었음을 느낀다.
第五十二章 父母恩重
내 삶에서 가장 큰 은인은 부모님이시다.
부친께서는 늘 정직과 책임을 강조하셨다.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라는 말씀은 평생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모친께서는 자녀들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감내하시며 사랑과 희생으로 가정을 지켜 주셨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땀과 눈물이 있었음을 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第五十三章 學問은 평생의 길
나는 어려서부터 배움을 좋아하였다.
시골에서 시작한 공부는 거창을 거쳐 부산 東亞大學校 電子工學科로 이어졌고,
직장생활 중에도 학업을 계속하여 반도체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학문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성장시키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오늘날에도 나는 새로운 자료를 읽고 연구하며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왔다.
第五十四章 技術立國의 현장에서
1981년 구미 산업단지의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한 이후 나의 삶은 곧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와 함께하였다.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고,
미국에서 첨단 설비를 검토하며,
국책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였다.
KAIST 청색 LED 개발 사업,
서울대학교 MEMS 연구소 구축 참여,
산업기술평가원 심의위원 활동 등은 지금도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늘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술자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第五十五章 家族이라는 이름의 행복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가족 안에 있다.
배우자와 자녀들은 나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기쁜 일에는 함께 웃고, 어려운 일에는 함께 견디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쌓은 추억들은 세월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다.
가족은 언제나 나의 힘이었고, 삶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第五十六章 佛法과 마음의 평화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나는 늘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雲門寺와 北臺庵은 나에게 정신적 안식처였다.
산사의 풍경소리와 새벽 종소리는 복잡한 마음을 맑게 하였고,
불교의 가르침은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었다.
수행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일임을 배웠다.
第五十七章 碧珍儒林의 사명
퇴직 이후 내가 가장 큰 열정을 쏟은 일은 가문의 역사와 선조들의 정신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의 충절을 연구하고,
《敬收堂記》와 《始祖公碧珍將軍事實記》를 고찰하며,
東禮村의 역사와 선조들의 유적을 조사하였다.
또한 碧珍李氏 一家會 카페를 운영하고,
碧珍儒林 百歲會를 창립하여 종친 화합과 숭조사업에 힘썼다.
이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 책임이라 생각하였다.
第五十八章 東禮村은 永遠한 고향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다.
東禮村은 나의 출발점이며 삶의 근원이다.
朴儒山의 능선, 安養山의 푸른 숲, 가조천의 맑은 물, 그리고 永慕齋와 敬收堂.
이 모든 것은 내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비록 몸은 서울에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東禮村에 머물러 있다.
第五十九章 後孫에게 주는 글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세상이 아무리 변하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부모님께 효도하라.
둘째,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셋째, 조상을 공경하라.
넷째,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다섯째, 나라를 사랑하라.
이 다섯 가지는 내가 평생 지키고자 노력한 삶의 원칙이었다.
第六十章 나의 人生哲學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人生의 성공은 높은 지위나 많은 재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데 있다고 믿는다.
나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敬祖·勤學·誠實」
이라 할 수 있다.
조상을 공경하고, 배움을 가까이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가치이다.
跋文
歲月如流하여 白髮이 성성한 나이가 되었으나,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감사함으로 가득하다.
東禮村의 한 소년으로 태어나 學問을 배우고, 技術을 연구하고, 家門의 역사를 기록하며 살아온 삶.
비록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하였으나, 한평생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願하건대 이 기록이 후손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
뿌리를 잊지 않고, 조상을 공경하며, 나라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二〇二六年 夏日
碧珍儒林 儒珍 李善東 謹書
《儒珍 李善東 傳》 完
「故鄕 東禮村에서 시작하여 半導體 技術者를 거쳐 碧珍儒林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삶과 한 가문의 정신을 함께 기록한 生涯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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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珍 李善東傳》
― 半導體 技術者의 길과 碧珍儒林의 길 ―

夫人生者,承祖宗之德而生,受父母之恩而長,立志於學而成於業,終歸於故鄕與家門焉。
余는 1954年 6月 14日 慶尙南道 居昌郡 加祚面 東禮村에서 태어났다. 東禮村은 碧珍李氏가 오랜 세월 세거하여 온 禮鄕으로, 朴儒山과 安養山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가조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자연과 더불어 성장하였고, 부모님의 가르침과 선조들의 유풍 속에서 삶의 기초를 다졌다.
부친께서는 늘 정직과 성실을 강조하시며 종중 일에 헌신하셨고, 모친께서는 희생과 사랑으로 자녀들을 길러 주셨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훗날 나의 인생을 이끄는 등불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가조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들판을 뛰어다니며 자연 속에서 성장하였다. 마을의 당산제와 공동체 문화는 나에게 화합과 예절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또한 東禮村 곳곳에 남아 있는 선조들의 유적과 재실은 어려서부터 숭조의 마음을 심어 주었다.
학창 시절에는 거창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하숙과 자취 생활을 경험하였다. 비록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강하였다. 이후 부산 東亞大學校 電子工學科에 진학하여 전자공학을 전공하였다. 형님의 도움과 가족의 지원 속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다.
졸업 후 서울의 아남반도체에 입사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퇴직하였고, 1981년 구미 국가산업단지의 반도체 기업에 입사하였다. 당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태동기였으며, 연구개발 인력은 국가 산업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나는 반도체 종합연구소에서 연구개발 업무를 맡아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국산화에 힘썼다.
일본 TOSHIBA를 비롯한 여러 기업을 방문하여 선진 기술을 배우고 도입하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일본 기술자들의 철저한 품질관리와 장인정신은 큰 감명을 주었다. 또한 미국 보스톤에서는 이온임플란트 장비 도입 업무를 수행하였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전시회인 SEMICON WEST에 여러 차례 참가하여 세계 산업의 흐름을 직접 확인하였다.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면서 전자통신연구소, 삼성반도체, 현대반도체 등과 협력하여 국가 연구과제에 참여하였다. 1987년에는 KAIST의 청색 LED 개발과제를 위탁 수행하였고, 서울대학교 MEMS 연구소 설립과 반도체 장비 선정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산업기술평가원의 반도체 분야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기술정책 발전에 기여하였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반도체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학문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평생의 수양이었으며, 배움은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구미에서의 생활은 직장과 가정이 함께 성장한 시기였다. 배우자와 자녀들은 늘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여름이면 가족들과 안면도, 땅끝마을, 동해 고성 등을 여행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청도 雲門寺와 北臺庵을 찾으며 마음의 안식을 얻기도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무 임원으로 승진하여 서울 본사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구미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에 정착한 후에는 중소기업 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후배 기술자들을 지도하였다. 반도체 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일은 퇴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한편 나이가 들수록 고향과 가문에 대한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東禮村은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삶의 뿌리였다. 朴儒山과 安養山, 가조천의 물소리, 永慕齋와 敬收堂의 모습은 언제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나는 퇴직 이후 가문의 역사와 선조들의 유업을 정리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바쳤다.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의 충절을 연구하고, 《敬收堂記》와 《始祖公碧珍將軍事實記》를 고찰하였으며, 東禮村의 역사와 유적을 답사하였다.
특히 入鄕祖 通德郞 李蘭瑞 公, 察訪公 李昌一, 儒山 李挺邁, 一何亭 李學峻, 東江 李昌基 등 선조들의 행적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조들의 삶 속에서 충효와 학문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후손으로서의 자긍심도 더욱 커졌다.
또한 인터넷 시대에 맞추어 「碧珍李氏 一家會」 카페를 운영하며 종친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였고, 「碧珍儒林 百歲會」를 창립하여 숭조정신과 종친 화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문헌을 디지털화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후손들이 쉽게 선조들의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나는 불교 수행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雲門寺와 北臺庵에서의 수행은 바쁜 연구개발 생활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해 주었다. 유교의 효와 충, 불교의 자비와 수행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위한 두 개의 기둥이라고 생각하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은 두 갈래 길을 걸어왔다. 하나는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한 半導體 技術者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는 碧珍儒林의 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두 길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국가를 위한 충성과 조상을 향한 효심은 모두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서 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후회보다는 감사가 먼저 떠오른다. 부모님의 은혜, 가족의 사랑, 선조들의 음덕, 그리고 수많은 인연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후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첫째, 부모에게 효도하라. 둘째, 학문을 가까이하라. 셋째, 조상을 공경하라. 넷째,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다섯째, 나라를 사랑하라.
이는 내가 평생 지키고자 노력한 삶의 원칙이며,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나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敬祖敦親 勤學誠實」
이라 할 수 있다.
조상을 공경하고, 종친과 화목하며, 배움을 가까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東禮村의 한 소년이 걸어온 길이었으며, 또한 앞으로 후손들이 이어가기를 바라는 삶의 길이다.
歲月如流하여 백발이 성성한 오늘에 이르렀으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고향 東禮村의 푸른 산천과 함께하고 있다.
願하건대 이 글이 후손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 뿌리를 잊지 않고, 선조의 뜻을 이어가며, 나라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二〇二六年 夏日
碧珍儒林 儒珍 李善東 謹撰
《儒珍 李善東傳》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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