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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篇 家庭과 人生 16에서18장

작성자儒珍 이선동 (평정공계 승지공 34세)|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第五篇 家庭과 人生
(가족 이야기, 자녀 성장, 구미 생활, 서울 이주 수록)
16 결혼과 가정
부부의 인연
자녀들의 성장
가족과 함께한 시간
17 구미 생활의 추억
직장과 가정의 조화
여름휴가의 추억
서해와 남해, 동해 여행
청암사 계곡의 피서
18 서울에서의 2인생
상무이사 승진과 서울 근무
서울 정착기
중소기업 연구소장 활동
노후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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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직장시절 가족추억
성원이와둘이 여름휴가 서해안면도. 남해땅끝마을.밤샘비.동해 고성바닷가...좋은추억기억됨
대덕청암사 계곡에서 한여름피서에서폭우만남.
청암사근처 성태경씨와 피서 밤추위로 텐트속불남.
집에서 새벽2시쯤 청송주왕산으로 이동
정서방.큰처남댁함께..술마시고놈.
프레스토 차몰고 처음서울올때 올림픽도로에서 경찰차에스코트기억.
운문산 북대암에서 기도와 새벽해돋이 바라봄.
청암사 절에서 밤샘 범화경독경..
성원이가 좋아했던 청암사스님들
여름학교에서 반야심경 독송해서칭찬받음
청도운문사 철야 3천배
조계사에서 반야심경.천수경교육과정
거제 건영집에서 밤낙시.회
안동 종열 친척집 밤샘 놀던기억
김수철네와 무주구천동 여름휴가.
처우회 정기모임...제주도한라산.울릉도여행.설악산등반  
최태영지점장 가족과 나들이추억
당진.홍성.여주..음성땅구매. 고구마재배.
회사친구(대현.인철)모임추억...선산.
백대현 고양땅에 야체심기
주민센터 웰빙댄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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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
구미 반도체회사에서 25년을 근무하고 상무임원 발령을 받고 서울 본사에 근무를 하게되어 구미의 세간을 모두정리하고 서울로 이주해서 정착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는 대구에서 살던 처가집 장모님이 오래전부터 서울 목동에서 살고 계셨다.
직장생활을 마치고는 중소기업 연구소장을 맡아 기술지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대기업에 인재를 추천해 주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에 우리 종중인 벽진이씨 서울화수회가 있다는걸 알고, 서울 화수회장님이신 추담 두헌님을 만나서 인사하고 종중일과 화수회일을 알게되어 이사직을 맡으며, 종중에 관한일을 하게되었다.
다음 임원총회에서는 서울화수회 상임부회장과 서울화수회 벽진산악회 줄여 벽산회 회장을 역임했다.
2년에 1회 화수회에서 벽진지를 출간하는데, 벽진지 편집위원으로 참여해서 제16호를 발간하였다.
서울화수회는 춘계,추계총회를 노원구 동천재에서 개최함으로 수도권역의 종인들의 친목도모 화합의 장으로 이용하고있다.
화수회 사무실은 장한평 자동차 매매시장 상가에 두고 주에 한두번씩 나가 화수및 종친일을 하고있다.
벽리종인의 친목도모및 정보교환을 위하여 "벽진이씨 일가 종친회" 단체카톡방을 2021년에 최초로 만들어 전국의 벽리종인의 친목,종사관련의 정보즉, 화수회개최, 각문중의 춘추향례의 내용 및 종친담소등을 주고받는 정보공유의 활용하고있다.
"벽진이씨 종친회 벽진유림" 다음카페를 2021년에 최초로 개설해서 벽리종인의 친목행사및 벽진이씨 종중, 종사관련 5000여건의 자료를 본카페에 게시함으로 후손들의 종사관련 이해를 돕는데 역활을 할수있도록 운영하고있다.
유튜브에 "벽진이씨 종친회 벽진유림" 방을 2021년에 최초로 만들어서 춘추향제및 시조공및 선조님의 유적과 업적의 주요내용을 동영상으로 편집해서 올림으로서 벽리종인의 이해를 돕는데 일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운영해 가고있는 중이다.
종사일은 상주군 벽진면에 있는 시조공의 종당 경수당에서 춘향례잋 추향제를 시행하고, 김천 부항면에 있는 모원당에서 추향제를 시행하고, 감천 감천동에 있는 화로서원에서 청백리 평정공 노촌 이약동선생의 춘향례와 추향제을 시향한다.
또한 합천입향조 휘 승원 판서공, 거창 이건 감천공, 추향제를 시행한다.
한편 가조승지공 회장으로 가조 21대선조 난서공 통덕량 선조님의 제향을 총괄하고 있으며, 23대 승문원박사 이창일선조밑 이하 선조님을 기리고있다,
방족으로는 김포약산 및 포천 펑정공3남 이소원 한림공 시제배향및 노원구 동천재에서 이상길 충숙공 시제배향, 양평 직장공 화서 이항로선생 문경공 노문사지 춘향례 배향을 한다.
화서학회 재단을 설립해서 매년 화서학회 학술발표회를 진행하고있다.
벽산회는 6대회장으로 매년 청계산에서 시산제를 시작으로 매월 수도권 부근의 산과 유적지와 선조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명소를 찿아가서 그뜻을 되세기는 계기로삼고있다.
시간여유가 되시는 원로분들이 많이 참여 하시는관겨로 자연스럽게 종친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논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종친의 앞날을 구상하는 의견수렴의 장이되었다. 한여름,한겨울및 시제가있는달은 쉬는달로했다.
또한 백세회가 있는데 뜻있는 원로 10여분이 매달 돌아가면서 장소를 마련해서 점심을하고 본인거주지 주변의 맛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제공하고 종친간의 친목 도모및 화합장을 마련 하고있다.
두헌님, 헌주님, 광수님, 소구님, 종면님, 영기님, 우암님, 선도님, 우희님, 선동으로 구성되있다.
1직장..중소기업연구소장.. 헤드헌트
8중국금주근무

9.서울에서 제2인생길걷다.
벽리 문중생활
 디지털 시대, 선조의 숨결을 잇다
나는 서울에서의 노후 생활 중에도 뿌리를 잊지 않고자 노력하였다.
벽진이씨 종친으로서의 사명감은, 단순한 혈통적 자긍심을 넘어서 선조의 삶과 정신을 되살리고, 후손에게 올곧이 물려주는 일이었다.
종중 활동의 시작: 온라인 소통의 장을 열다
정보화 시대, 종중의 교류 방식도 바뀌어야 했다.
나는 다음카페를 개설하여 벽진이씨 가문과 종친들이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었고,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 종중 행사, 유적지 탐방, 제향 기록 등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였다.
또한 단체 카카오톡방을 운영하면서 실시간 소통과 공지, 경조사 공유 등을 가능하게 하여, 전통과 현대의 가교 역할을 했다.
재실과 묘소 참배: 선조를 잊지 않다
나는 종중 선조들의 재실과 묘소를 수시로 찾아 참배하였다.
그곳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가문의 혼과 정신이 깃든 성소였다.
가조면 동례리 입향조 통덕랑의 영모제를 중심으로
성기 고산제(승지공), 거창 오담재(감천공),
합천 영모재(판서공), 감천 하로서원(평정공),
부항 모원당(대장군) 등 주요 재실을 정기적으로 참배하며 제향을 주관하였다.
제향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선조에 대한 공경과 후손들의 결속을 다지는 정신문화의 실천이었다
사실기와 당기 연구: 기록으로 남긴 선조의 숨결
종중의 뿌리를 찾기 위한 나의 여정은 ‘읽고, 정리하고, 나누는 일’로 이어졌다.
특히 벽진장군 이총언 시조공에 대한 《사실기》와, 종당의 정신을 보여주는 《경수당기》의 내용을 탐구하고 보급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경수당(敬收堂)**은 그 이름처럼, 후손들이 선조의 공덕을 공경스럽게 받아들이는 공간이며,
**사실기(事實記)**는 전승되어야 할 삶의 연대기이다.
이러한 고문서를 해독하고, 디지털로 편집·공유하는 작업은 후손들의 학습과 정체성 형성에 기여할 것이라 믿었다.
전국 유적지 탐방: 혈맥으로 연결된 선현들의 발자취
나는 벽진이씨의 주요 인물과 유적지를 따라 전국을 순례하였다.
직계 중심의 재실 외에도, 다음과 같은 방계 종현들의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덕봉서원(참판공, 유량), 복재공 유허지(창량수/외재공)
서울 노원 동천재(충숙공), 강화 충렬사(충숙공 배향)
경기 양평 화서 이항로 선생 기념관, 노산사
제천 자영영당(자운 이정관), 군위 모암재(문정공)
창녕 금헌재(정도공), 홈실 이언영 유허지
그 발길 하나하나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이 피가 어디서부터 흘러왔는가”에 대한 내면의 물음에 답하는 과정이었다.
종중 활동은 곧 나의 뿌리였다
나는 학문과 산업의 길을 걷다, 이제는 선조를 섬기고 후손을 이어주는 길 위에 서 있다.
종중 활동은 ‘과거를 기리는 일’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 다리가 되고자 한다.
> “나는 묻는다.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것은 유산이 아니라 정신이다.
그 정신은 기록되고, 전해지고, 실천되어야 한다.”
벽진장군 이총언 사실기와 경수당기 연구
각종 재실 참배 및 후손의 예우
평정공, 감천공, 통덕랑, 승지공 등 선조 숭모
방계 인물들과 서원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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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노후생활
벽진이씨 종친회
다음카페개설.
유튜브개설
페이스북개설.
단체카톡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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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계선조님 재실및 묘사참배.
벽진장군 이총언 사실기
경수당및 경수당기 탐구
부항 모원당 (대장군)
감천 하로서원(평정공)
합천 영모재(판서공)
거창 오담재(감천공)
가조 영모제(통덕량) 입향조
성기 고산제(승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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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공 방계
참판공 덕봉서원..유량
창량수/외재공.복재/
서울노원.동천재 충숙공. 강화충렬사.
경기양평 화서선생 기념관. 노산사. 제천 자영영당
문곡서원 산화공
군위 모암재
홈실 이언영
창녕 정도공 금헌재
 
동강 창기 부친 숭조정신
동강 창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의 어릴때기억은 별로나지 않는다. 항상 할머니 옆에서 지내곤 했다. 철이든 중학교 시절에도 아버지는 집에 별로안계셨던 기억이다. 항상 한복 두루마기 옷을 입으시고, 출타 하셨다가 몇일만에 돌아오시곤 했다. 지금생각해보면 문중일을 하시느라, 바깥일이 많았던것 같다. 지금생각하면 대동보 만든다고 족보 단수 받는일, 각 문중 재실 짓는다고 헌성금모으는일,
지금도 집에는 각가문에 다소 계보가적인 종이가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후손이나 방손의 각종문헌 문집이 보관되어있다.
어느날 집에 돌아오셨는데, 가방에 묘사를 지내고 음북을 받아왔는데 각기다른 모양의 음식을 담은 비닐봉지 여러개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받은지가 오래되어 음식이 상한 봉지도 있었다. 문중의 묘사를 다참석하시느라 기일이 오래걸려 먼저받은 음식이 상한것이다.
어머니는 음식을 골라내서 괜찮은것을 솥에 쪄서 주시곤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두루마기 한복을 빨고 풀칠을하고 다듬이로두드려 펴고나서 새로운 동전깃을 달아주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아버지는 향상 소식을 하면서 생활하셨고, 먼길도 걸어다니시거나
대중교통은 완행버스, 옛날 비둘기 야간열차만 타고 다니신다고 하셨다.
남들과 대화를 할때는 항상 존대말을 사용하셨다. 동네 마을이나 지역에서도 존경을 받고 살았다.
국회위원이나 군수등 부임시에 인사차 방문을 했다.
아버지가 외부일로 바깥에 시간을 보내는관계로 집안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가장 힘든것이 농사일과 재정 운영 이다. 다행이도 4형제라 농사일을 조금씩 도와주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은 일꾼을 들여 일을해야 만했다. 논을 경리 정리한 후에 자갈 줍기,과수원 농약치기, 모심기,등이 힘들 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집안일을 돕지않는다고 가끔은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 본연의 일을 하곤했다. 나는 일이 힘든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했다. 형님은 맏이라 조금은 부담스러워 했다. 자식들 대학 등록금및 학비를 감당하느라 많은 고생을했다. 한번은 긴급자금이 필요해서 달러 이자돈을 빌렸는데, 너무힘이들어서 논을 팔아서 갚았던기억이있다.형님은 명문고 우등생이라 서울대에도 들어 갈수 있는 실력이나, 동생들 학비때문에 빨리 돈벌수있는 2년제 부산 교육 대학에 들어가서, 우등생으로 졸업 해서 당해연도에 교직발령을 받았다.
나도 부산으로 대학을 가서 형님한테 학비를 지원받아 학교를 마쳤다.
내가공부했던 몇년간 같이 자취를 하면서 부산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접빈객,집안대소사를 많이 치르셔서 마을의 길흉사,일가 집안의 큰잔치에는 참석해서 일처리를 해주곤했다.먼저 아버지가 93세에 별세를 했고 어머니도 10년쯤뒤에 92세로 별세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내가 오십중반이었다. 적지않은때 나이임에도 많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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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이창기공은 성은 이씨이고 본관은 성주벽진이며. 벽진이씨 고려개국공신 벽진장군 이총언 시조공의 33세손 이다. 지후대장군 성간의 22대손이고,평정공 노촌 이약동의 16대손이고, 거창입향조 오담 이건의 13대손이고, 가조입향조 통덕량 이난서의 12대손 이고, 조선후기 유학자 유산 이정매공의 7대손이고, 조선후기 유학자 일하정 이학준의 4대손 이시다.
증조부 승주공은 1822년 출생 하시어, 1887년 별세 하셨고, 조부 우화공은 1852년출생 하시어, 1887년별세 하셨고, 부친 우덕공은 1875년 출생해서 1932년에 별세 하셨다.
동강 이창기공은 1918년에 가창 가조 동례 마을에서 탄생하시어 2011년에 별세를하셔 93년수를 하셨다.
산소는 가조입향조 21대 통덕량 이난서 산소의 우측에, 독새골의 23대 찰방공 이창일 승문원 박사 산소가있는 산등선 아래에 우측의 중간지점으로 남향이다.
배는흥해최씨 최순주 이며, 1932년3월16일 탄생하시어 2021년에 별세하셨다..
산소는 내외쌍분이다. 부는 상세 조는 붕철, 증조 역진 평촌 숙량두 후손이다. 외조는 李佑東 성산인이다.
동례촌은 유와 예와 도를숭상한다는 마을을 뜻하며. 21대조 통덕량 난서공께서 입향하신이래 400여년동안 대대로 선조님께서 삶을 이어고있어 선조님의 얼과 정신이 배어있는곳이다.
 
 동강 창기공은 14살 어린 나이에 부친이 일찍세상을 떠나게 되어서, 모친 슬하에서 엄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한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로 전해져 오고있는, 선조님들의 문헌 자료을 통해서 고조부 및 윗대 선조님중에는 유학자가 많이 배출된 집안이며, 대대로 벽리의 경종수족의 정신이 이어져 오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께서도 성년이 되고난 후에는 평생을 벽리종인의 경종수족의 정신으로 살아오셨다.
벽진이씨 시조공관련이나 임진년 경수당 중수추진에 참여하시었고, 그기록이 경수당 중수기에 기록되어있고, 갑자보 대동보 편찬위원으로 참여했다고 대동보에 기록되있다, 벽진이씨의 유명하신 선조님의 기록을 정리한 문헌록 편집에도 참여 하시었다고 문헌록에 기록되어 있다.
시조공과 경수당에 경종수족 정신으로는 예전에 구미에서 근무할 때에 시조공 추계 시향 때면 부친이신 동강 이창께서는 전날 구미에 오셔서 주무시고, 다음날에 같이 성주군 벽진면 경수당으로 가서 시제에 참석을 하곤 했다.
부친께서는 평생을 흰 두루마기인 한복을 입으시고 생활하셨다.
추향에 참석할 때마다 일가 어른 분들을 소개해주시고 인사를 시켜주시고, 훌륭하신 선조님에 대해서도 많은 설명을 해주셨다.
추향 제례시에는 시조공~10대조를 모시는데 제주는 방 안에서 제를 모시고 나머지 모든 제관은 전부 마당에 열을 지어 서서 참관하시는데,
부친은 제주 옆 문밖에서 큰소리로 제관 분들께 알려주시는 역할을 하시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알고 보니 제례시에 마당에 많이 오신 제관 대중에게 제례절차를 알리는 찬창을 하시는 것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친(동강 이창기)께서는 시조공 벽진장군 유허비각 앞에 느티나무 밑으로 데려가서 본인이 직접 식 제하셨다고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자랑스럽게 말씀을 해주셨다.
가끔은 처음 오시는 일가분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느티나무 나무에 대한 설명도 해주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27대조이신 삼수정 이 가신 선조님이 심으신 우리 동네의
고목 느티나무 3그루에 대한 영감을 받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천 부항면에 대장군공의 모원당 재실이전 건립에도 참여하시고, 김천 양천동에 평정공의 노촌당 서원의 중건에도 참여하시고, 합천 대병에 판서공 재실 및 19대 우우정 후손의 족보 편집에도 참여하셨다.
가문에있어서는 조선후기 유학자이신 26대 유산 이정매공의 유산집문헌과 29대 일하정 이학준공의 일하정집 문헌을 1956년에 편집 편찬하셔서 학문연구기관 및 대학도서관에 기증을 하시어 후학들의 참고자료가 되게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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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구미에서 근무할 때에 시조공 추계 시향 때면 부친(동강 이창기)께서는 전날 구미에 오셔서 주무시고, 다음날에 같이 성주군 벽진면 경수당으로 가서 시제에 참석을 하곤 했다.
부친께서는 평생을 흰두르마기인 한복을 입으시고 생활하셨다.
추향에 참석할 때마다 일가 어른분들을 소개해주시고 인사를 시켜주시며 자랑스러워하시는 기억이 많이 난다.
추향 제례시에는 시조공~10대조를 모시는데 제주는 방 안에서 제를 모시고 나머지 모든 제관은 전부 마당에 열을 지어 서서 참관하시는데,
부친은 제주 옆 문밖에서 큰소리로 제관 분들께 알려주시는 역할을 하시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알고 보니 제례시에 마당에 많이 오신 제관 대중에게 제례절차를 알리는 찬창을 하시는 것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친(동강 이창기)께서는 시조공 벽진장군 유허비각 앞에 느티나무 밑으로 데려가서 본인이 직접 식 제하셨다고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자랑스럽게 말씀을 해주셨다.
가끔은 처음 오시는 일가분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느티나무 나무에 대한 설명도 해주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27대조이신 삼수정 이 가신 선조님이 심으신 우리 동네의
고목 느티나무 3그루에 대한 영감을
받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경수당에는 우리 직계 가문의 귀중한 보물의 의미가 있다.
29대 일하정 이학준 선조께서 1864년에 경수당기를 작성해서 본인의 일하정 문집에 남겨 벽진이씨 시조공 과 경수당의 높은 존경심을 기리고 있다.
또한 중계조인 17대조인 평정공 청백리 이약동의 노촌 실기 문집 간행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문집에 수록되어있다.
일하정 호는 직장공 27대 거유이시고, 애국지사인 화서 이항로 선생께서 이학준 문집의 학문과 덕을 높이 평가하셔 직접 친필로 서해주 셨다.친필 현판은 경기도 양평 서종면 소재 화서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고, 일 하정기를 집필해주셔서 그 내용이
일하정 문집에 수록되어있다.
화서 선생께서는 일하정 이학준의 경수당기 집필 1년뒤인 1865년에
시조 벽진장군 사실기를 집필하시어
그 내용이 대동보에 수록되어 후손들에게 시조공에 대한 존경심과 굳건한 믿음을 심어주고있다.
화서 이항로 선생은 당대 주자학의 대가이시며 독립운동 애국지사이시다.
평생에 학문을 가르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일생을 보내신 분이다
이 업적을 높이 평가해서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 되었다.
학문도 높아 연원 록에 의하면 11000명의 문하생을 두고 있다.
벽진 일가로서의 문하생은 일하정 이학준이 기록되어있다
이학준의 일하정집 과 이항로 화서문집에 두 분간에 오고 간서 신이
다수가 수록되어있어 두텁고 애정 어린 일가 인연을 나타내고 있다
부친(동강 이창기)께서는 직계 선대인 26대 이정매 유산집. 29대 이학준 일하정집을 편찬 , 출판해서 국립중앙도서관 및 대학도서관에 홍보해서 교육에 참고토록 했다
가족족보 19대 우우정보 와 대동보 편찬에도 기여했다고 각 책의 권말에 수록되어있다
중계 조인 노촌 청백리 이약동 노촌당 중수에도 참여해서 중수비에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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