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珍李氏 三寶記
(始祖公 · 敬收堂 · 壬辰譜書)
무릇 종족(宗族)의 근본은 조상을 공경하고 그 유덕(遺德)을 계승하는 데 있으며, 문중의 융성은 선조의 정신을 잊지 않고 후손들이 이를 이어가는 데 있다. 우리 碧珍李氏는 고려 개국의 공신이신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을 始源으로 하여 천백여년 동안 충효예의(忠孝禮義)의 가풍을 지켜온 동방의 명문대족이다.
특히 碧珍李氏는 청백리 정신을 숭상하고, 충신·효자·열녀를 배출하였으며, 학문을 숭상하는 유림가문으로서 名賢과 碩儒를 많이 배출하였다. 山花先生, 大性理學者 華西 李恒老先生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적 맥락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우리 문중에는 대대로 전해오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곧 始祖公의 위대한 업적, 始祖公과 선조를 봉향하는 敬收堂, 그리고 선조들의 혈맥과 역사를 기록한 壬辰譜書를 비롯한 一貫族譜가 그것이다. 이에 이를 「碧珍李氏 三寶」라 하여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第一寶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
우리 문중의 첫째 보배는 고려 개국 원훈이신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이시다.
《高麗史》와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의하면, 公께서는 신라 말기 碧珍 지역을 수호하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셨다. 당시 도적들이 창궐하였으나 성을 굳게 지켜 주민들이 그 덕을 입었으며, 고려 太祖 王建의 부름에 응하여 아들 永公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고려 건국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에 太祖는 忩言公을 碧珍將軍에 봉하고 토지와 창곡 및 소금을 하사하였으며, 자손 대대로 변함없는 은총을 약속하였다. 公께서는 동남방의 요충지인 碧珍을 굳건히 지켜 고려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938년 壬子日에 향년 81세로 별세하셨다.
이는 정사(正史)에 명백히 기록된 사실로서 역사적 진실성과 정통성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당시 公께서 기르시던 愛馬에게 먹이를 주었던 말구유가 남아있어 경수당내에 잘 保存하고있다.
1770년 상수촌 매적산 동쪽 기슭에 단을 설치하고.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사를 드려오다가
1826년에 단소와 조금 떨어진 지금의 자리에 제실을 짓고 당호를 경수당(敬收堂)이라 하였다.
1864년 시조공의 유허비와 표갈을 세우고. 1878년에 매적산 동쪽에 있던 제단을 영봉산 남쪽 기슭 이천 부근으로 옮겼다가,
1881년 다시 경수당 경내 유허비 옆으로 옮기면서 시향 일자를 음력 10월 3일로 변경 결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실전되었던 시조공묘를 2013년 성주군 벽진면 외기리 959번지에 복원하여 매년 추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후손들은 그 공덕을 추모하여 2004년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정기가 서린 독용산 전적지에 「碧珍將軍大捷碑」를 건립하였다.
또한 華西 李恒老先生은 1865년 華西 李恒老先生은 「碧珍將軍事實記」를 찬술하여 公의 충절과 위업을 천추에 드러내었고, 이는 오늘날에도 문중의 귀중한 정신유산으로 남아 있다.
第二寶 敬收堂
둘째 보배는 始祖公과 선조의 얼을 봉안한 宗堂 敬收堂이다.
1770년 수촌리 매적산 동쪽 기슭에 단을 설치하여 시조공을 봉향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826년 시조공의 유허지인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756-1번지에 종당 敬收堂을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敬收堂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시조공의 충절과 덕업을 기리고,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되새기는 정신적 성전이다. 후손들은 매년 時享을 올리며 조상을 추모하고 종족의 화합을 다지고 있다.
특히 一何亭 李學峻先生은 1864년 「敬收堂記」를 지어 그 창건 배경과 정신적 의미를 밝히고 이를 문집에 남겼다. 또한 「完文」(1886)과 「敬收堂修築誌」(1964)는 敬收堂의 연혁과 수호 과정을 전하고 있어 종당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敬收堂은 곧 碧珍李氏 정신문화의 중심이며, 충효와 숭조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성역이라 할 수 있다.
第三寶 壬辰譜書와 一貫族譜
셋째 보배는 선조들의 계통과 역사를 기록한 壬辰譜를 비롯한 一貫族譜이다.
1652년(효종 3) 간행된 「碧珍李氏世譜」, 곧 壬辰譜는 우리 문중 최초의 한문 목판본 족보이다.
그 연원은 1635년 忠肅公 尙吉公께서 완산부윤 재임 시 편찬을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晉州牧使를 지낸 監司公 尙一公이 이를 완성하여 간행하였다.
壬辰譜 서문에는 오래된 세월로 인해 분파와 세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선조들의 전승과 고문헌을 수집하고 계통을 정리하여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成均館博士 昌一公이 거창 文氏家에 전해오던 구보를 발견하여 검토한 결과, 외손계 기록과 碧珍李氏 세계가 서로 부합함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大將軍 成幹公으로부터 保勝郞將 晟公, 中郞將 桓公, 平靖公 約東公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명확히 밝혀졌으며, 이는 우리 문중 세계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더욱이 「文化柳氏家情報」(1565)가 현존하는 오래된 외부 사료로서 壬辰譜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어, 碧珍李氏 족보의 신빙성과 정통성은 더욱 굳건하다.
족보는 단순한 혈연기록이 아니라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는 역사서이며, 문중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문화유산이다.
碧珍李氏의 三寶는 곧 始祖 碧珍將軍 諱 忩言公의 위대한 업적과, 그 정신을 봉향하는 宗堂 敬收堂, 그리고 천년의 혈맥을 이어주는 壬辰譜를 비롯한 一貫族譜이다.
첫째 보배가 문중의 뿌리라면,
둘째 보배는 그 정신을 지키는 성전이며, 셋째 보배는 그 역사를 이어주는 생명의 기록이다.
오늘의 후손들은 이 三寶를 통하여 선조들의 충효와 청백리 정신, 유림의 도학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앞으로도 숭조돈친(崇祖敦親)의 전통을 지키며, 문중의 역사와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여 碧珍李氏의 명예와 문화를 더욱 빛내야 할 것이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 하였으니, 천년 세월이 흘러도 始祖公의 충절과 선조들의 유풍은 영원히 우리 후손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삼가 記하노라.
碧珍李氏 大宗會 文化委員長
儒珍 李善東 謹記
참고자료
고려사.고려사절요.신동국여지승람.
직장공파보(벽진장군사실기)
경수당토지 완문(1886).
경수당수축지(1964)
일하정문집(경수당기)(1956)
문화유씨 가정보(1565),
벽진이씨 임진보(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