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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충강공 부인과 후손의 강정재실과 그 후손산소 탐방

작성자儒珍 이선동 (평정공계 승지공 34세)|작성시간26.06.16|조회수1 목록 댓글 0

剛靜齋室
이 재실(齋室)은 벽진이씨(碧珍李氏) 시조(始祖) 총언(忩言 858~938년)이 신라 말 벽진군 태수(太守)로 보전중(保全中)에 고려왕 태조 왕건(太祖王建)이 동심협력(同心協力)하여 화란(禍亂)을 평정하자 하니 아들 영(永)을 보내어 정토(征討)에 공을 세워, 고려 삼중대광개국원훈(高麗三重大廣開國元勳)으로 벽진장군에 올랐고, 벽진백(碧珍伯)에 봉해진, 시조(始祖) 총언(忩言)의 십칠세손(十七世孫) 제주목사를 지내신, 조선조 청백리(淸白吏) 노촌(老村) 약동(約束)의 오대손(五代孫)인, 상급(尙伋) 충강공(忠剛公)이 병조참지(兵曹參知) 당시, 1636년 인조(仁祖) 병자년 호란(胡亂)으로 인하여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고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들어갈 때, 시종(侍從)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
임금이 항복(降伏)하자 란(亂)으로 인하여 강화도(江華島)에서 묘사(廟社)를 지키던 공조판서(工曹判書) 상길(尙吉) 형(兄)을 찾아가던 중, 적을 만나 꾸짖는 말이 끊이질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으나 해(害)를 당해 66세에 순절(殉節)하시니 때는 인조(仁祖) 1637년이다.
이로써 순조(純祖) 경진(庚辰) 1821년 충강공(忠剛公)이라 시호(諡號)를 내렸다.
란(亂)에 임하여 나라를 잊지 않았음을 일컬어 충(忠)이라 하고 강인하고 과감함을 일컬어 강(剛)이라 하였다.
(亂不忘國曰忠, 剛義果敢曰剛)
충강공(忠剛公) 상급(尙伋)의 처(妻) 울산박씨(蔚山朴氏)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난세(亂世)에, 아들 삼형제 중 장자(長子) 타(堐)는 아버지를 부호(扶護)하러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가시고, 곤(坤)과 배(培) 형제만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셔 은둔(隱遁), 정거(靜居)하시다가 향년 81세(1682년)에 졸하셨다.
그 후, 증손자 세숙(世叔) 후손(後孫)들이 衆志를 모아,
증(贈) 이조판서 충강공(忠剛公) 이상급(李尙伋 1571~1637)의 부(婦) 증 정부인(贈 貞夫人) 울산박씨(蔚山朴氏), 자(子)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곤(坤)과 부(婦) 의인 광주이씨(宜人 廣州李氏), 손자(孫子) 증 통정대부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贈 通政大夫承政院 左承旨 兼 經筵參贊官) 지유(志維)와 부(婦) 증 숙부인 평해황씨(贈 淑夫人 平海黃氏), 증손자(曾孫子) 성균진사(成均進士) 세숙(世叔)과 부(婦) 영인 봉화정씨(令人 奉化鄭氏), 고손자(高孫子) 통덕랑(通德郞) 정권(挺權)과 부(婦) 공인 창원황씨(恭人 昌原黃氏), 오대손(五代孫) 통덕랑(通德郞) 원보(元普)와 부(婦) 공인 죽산박씨(恭人 竹山朴氏), 공인 강릉김씨(恭人 江陵金氏).
선대조상(先代祖上)의 은덕(恩德)과 얼을 숭배(崇拜)하기 위하여, 3년 6개월(1997.03~2000.09)에 걸쳐 재실을 완공하고 매년(陰 10월) 후손(後孫)들이 모여, 시향(時享)을 제례(祭禮)한다.
2000년 9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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