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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자의 글

죄 속에 살았던 나에게 의인의 삶을 주신 하나님

작성자서머나|작성시간26.06.06|조회수56 목록 댓글 0

죄 속에 살았던 나에게 의인의 삶을 주신 하나님

보배와 질그릇

나는 1964년 경기도 김포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즈음 아버지가 월남전에 파병되셨다.

아버지가 휴가를 나오신 날, 큰아버지가 동네 사람과 싸우다가 작대기로 때려서 그 사람이 그만 죽고 말았다.

큰아버지는 아버지와 이 문제를 상의하다가 큰아버지 대신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고 감옥에 들어가면

우리 가족에게 집도 지어주고 앞으로 살아갈 만큼 재산을 주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형님의 부탁이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큰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버지는 살인죄로 10년 형을 받으셨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시자 어머니는 우리를 큰집에 맡기셨다.

나는 큰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다.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나가서 소 풀을 한 짐 지고 들어와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급식 빵을 훔쳐먹고 구멍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학교에 간 날은 2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경찰서와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내가 중학교 1학년쯤에 아버지는 감형되어 7~8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셨다.

아버지는 큰아버지에게 찾아가 약속대로 집과 재산을 달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큰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큰댁에 매일 찾아갔고, 화가 나고 억울해서 싸우고 큰집에 불을 지르셨다.

큰 아버지는 아버지를 달래면서 돈을 조금씩 주셨고, 아버지는 그 돈으로 노름을 하고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오는 날에는 가족들을 앉혀놓고 밤이 새도록 화풀이를 하고 울분을 토하셨다.

추운 겨울날에는 길바닥에 쓰러져 주무시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날도 많았다. 아

버지의 술주정은 점점 심해졌다. 나를 발가벗겨서 밖에 내쫓으면 나는 남의 집 굴뚝 밑에서 잠을 잤다.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주먹으로 어머니를 때리시면 말리는 나도 아버지에게 맞았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주무실 때 우리는 몰래 집을 나와 교회 뒷산에 있는 굴에 숨어서 지내기도 했다.

어떻게 아셨는지 나중에 아버지가 교회에 찾아와서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집어던지고 난동을 부리시고

기어이 어머니를 찾아서 집으로 끌고 가서 다시 때리셨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속에 사는 것이 너무 싫고 벗어나고 싶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학교에 가는 날보다 불량한 친구들과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날이 많았다.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16세의 나이부터 경찰서와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전국 교도소 중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젊은 날을 죄를 짓고 수감되고 출소하고 다시 죄를 짓고

수감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두 번의 자살 시도

수감 중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어려웠다.

2007년 청송 교도소에 있었을 때 아침에 인원 점검을 마치고 담당 근무자가 할 말이 있다며 잠깐 나오라고 했다.

법무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남인 내가 아버님 장례를 치러드려야 하는데 갈 수 없었다.

미결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밖에 나갔다 올 수 있지만 나는 징역형에 보호감호까지 받는 상황이라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독방에서 근신했다. 불효 자식이 된 것을 한탄했다.

속옷 상의를 찢어서 화장실 철창에 목을 매어 죽으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수갑과 보호구를 차고 일주일을 보냈다.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 몰래 수면제를 모아 먹고 손목을 자해하였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나의 몰골은 비참했다.

 

‘거지처럼 살지언정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마음을 먹지만

수감 생활 중에 폐결핵을 앓고 독방에서 6개월을 보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해 억울한 시간도 있었다.

어느 교회의 장로가 내가 교도소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고 싶다며 어머니와 같이 면회를 오셨다.

내 신용카드를 빌려주면 사업 자금을 넣어서 신용을 높여주고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교회 장로이며 어머님의 지인이라는 말을 믿고 빌려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 카드사에서 카드 사용중지 안내 우편물을 받고서야 그가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도 교회의 목사에게 전세금을 사기당해 거할 곳이 없어진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2018년 출소 후 경찰서에 가서 그를 신고했지만, 그가 돈을 갚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상습적인 사기꾼이었다. 교회를 통해 속은 것이 너무 속상했다.

하나님은 안 믿겠다고 결심했지만, 어머니를 따라가다 보면 교회에 앉아 있게 됐다. 그러나 건성이었다.

나는 30년 넘게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불효자로 살았다.

어머님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죄송하고 나 자신에게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출소할 때마다 ‘거지처럼 살지언정 교도소가 아닌 사회에서 살고 싶다’라고 마음을 먹는 데 사회에서 살다 보면

죄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잡히면 또다시 후회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되었다.

 

내가 왜 이 말씀을 여태까지 몰랐지?

이번에 출소한 뒤로는 가장 길게 2년 넘게 사회에서 살고 있다.

유혹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가 “너 다시 들어가면 나 죽는다.”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담고 있다.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마음먹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건설 일용직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

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힘들게 일하고 산다는 것이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작은 집에서 살지만, 어머니와 함께하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일하러 나갈 때면 어머니는 늘 “일보다 건강을 조심해라. 건강해야 일도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며 일했는데 사고는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동안 두 번의 사고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올해 8월에 세 번째 사고가 났다. 그런데 이번에 난 사고는 좀 컸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와 손을 다쳤다.

얼굴을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갔던 병원에서 처치가 늦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입원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기쁜 소식강남교회의 염연화 자매님을 만났다.

비가 많이 오는 것이 마치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 같다고 말하자 갑자기 성경을 가져와 말씀을 전해주었다.

로마서 3장 23~24절 말씀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읽어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 한번 설명해 주고 읽어보라고 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말씀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구나. 내가 왜 이 말씀을 여태까지 몰랐지?’

자매님이 이 말씀을 믿느냐고 물어보실 때 나는 믿는다고 했다. 이런 말씀은 처음 들었다.

나는 로마서 3장 말씀을 통해 죄인이 아닌 의인이 되었다.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그동안 교도소에서 자매결연으로 만난 목사님과 교인 중에 누구도 이런 말씀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분들은 항상 앞으로 죄를 짓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만 말했다.

그동안 지은 죄가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 눈물 흘려 기도하면서 속죄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믿었다.

죄 사함을 받은 뒤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이 행복했다.

이 행복을 어머니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염 자매님을 소개해 드렸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 말씀처럼 거룩하고 의롭다

8월 29일 퇴원하고 염 자매님의 초청으로 온라인으로 실버 여름캠프에 참석했다.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이 말씀이 진리인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박 목사님이 20여 년 전에 대전교도소에서 성경 공부를 하셨던 이야기를 하실 때 깜짝 놀라고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한 수감자가 기독교 모임에 가자고 권해서 참석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보다는 모임에서 나눠주는 떡에만 관심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기독교 모임에 목사님이 오셔서 여러 차례 말씀을 전하셨다.

나는 관심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때 뵈었던 박 목사님을 20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그때는 듣지 못했던 죄 사함의 복음을 이제 듣게 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나는 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의 삶은 고린도전서 6장 10절과 같았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10)

그러나 이제 나는 고린도전서 6장 11절 말씀처럼 거룩하고 의롭게 되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

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11)

 

너무 부끄러운 삶을 산 나에게 의인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지난 9월 기쁜 소식강남교회 주일 예배에서 간증하는 은혜를 입었다.

20여 년 만에 박 목사님을 직접 뵈었고 안수기도를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눈물이 났다.

죄로 고통받던 시간을 지나 이제 의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출처 : https : // gndaily. kr › news › articl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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