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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간증 이야기

작성자애향|작성시간26.06.18|조회수51 목록 댓글 0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간증 이야기 -

불교신자였던 신창원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바꾼 한 여인

안녕하세요. 오늘은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아주 특별한 간증과 구원 이야기를 포스팅해 볼까 합니다.

신창원은 원래 불교신자였지만 지금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967년 5월 28일 신창원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하산리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습니다. 어린 신창원에게 지독한 가난도 고통이었지만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술독에 빠져 살기 시작했습니다.

창원은 어렸을 적 마음씨가 착하고 여린 아이였습니다. 나이 든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30리 먼 길이어도

꼭 들어다 주었으며 형제들을 아끼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슬퍼했던 것도 신창원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 5명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이 신창원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신창원의 아버지는 돈 한 푼 벌어오지 않는 백수였고 그는 자식들 중 제일 착했던 신창원에게 자주 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신창원은 돈 없이 술을 가져와야 했고 어린 신창원이 거절할 때마다 자주 두들겨 맞아 그때부터 술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도둑질을 그때 처음 배운 것입니다.

그러다 정 못하겠을 때는 엄마 무덤가에 누워 밤을 새워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그럴 때마다 늘 마음속에서 이런 말을 되뇌었습니다.

난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부러워.

나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모여 오손도손 살고 싶다.

신창원의 아버지는 집에 계모를 들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뿐인 동생이 죽을 만큼 아팠는데 계모가 모른 척하는 것을 보고

신창원은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남원 초등학교에 들어간 신창원은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렸으며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등록금을 기한 내에 가지고 오지 못한 신창원에게 "이 새끼가 돈도 안 가지죠 왔으면서

뭐 하러 학교에 왔냐? 빨리 꺼져라~"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12살 신창원의 마음속에는 악마가 자라나기 시작했고 자신도 컨트롤할 수 없는 어둠이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창원은 가출을 밥 먹듯이 했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한 그는 결국 중학교에 진학한지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홀로 세상 속을 살아가야 했던 신창원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둑질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창원은 1982년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남의 밭과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쳐 먹었으며 동네에서 닭과 수박 서리를 해 배고픔을 달랜 게

시작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달리기가 빨라 그가 도망치면 아무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작정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 위에 올라가 숨어서 추격자의 동향을 살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5살의 나이로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는데 경찰서에서는 훈방 조치를 했지만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 신창원을 굳이 다시

끌고 나와 경찰에게 신창원을 구속 수감시키라고 계속해서 요구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본뜻은 신창원이 교도소에 가서 새사람이 되기를 바란 것이었지만 신창원은 오히려 본격적으로 반항적인 인생을 살

게 됩니다. 만약 아버지가 그때 사랑을 주었다면 이렇게까지 엇나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소년원에서 출소해 서울로 올라가 음식점 배달부를 하던 중 1983년 절도죄로 또다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갈수록 대범해졌고 범죄의 강도는 높아져만 갔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차별적 접촉'이라고 불리는데 감옥에서 다른 범죄자들과 접촉하면서 그들로부터 범죄 기술뿐만 아니라

범죄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또한 학습된다는 이론입니다.

어쨌든 신창원은 어릴 때부터 싸움을 잘하기도 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했고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또한 권투를 배워 남의 싸움에까지 끼어들어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 적이 있는데 합의금으로 줄 돈이 없어 돈 좀 있어 보이는 행인을 협박해 돈을 턴 적도 있습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잘 살아 보이는 사람들이 싫었고 걸핏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고향 선후배 4명과 모의해 슈퍼마켓, 금은방 등에서 강도행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신창원이 22살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1989년 3월 28일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정 모 씨 집에서 강도 행위를 하다가 주범이었던

길 양훈이 문구점 주인이었던 피해자를 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수배를 받았고 4월 1일 스탠드바에 모여있는 것을 경찰이 덮쳐 공범인 4명은 검거했으나

신창원은 도주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검거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권총 3발을 발사해 신창원은 한발의 총상을 입었죠.

이후 신창원은 9월 29일 청량리 카페에서 검거됩니다.

그렇게 신창원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청송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1994년 부산 교도소에 이감되어 복역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부산교도소에서 노역 작업을 하다가 실톱날 조각을 손에 넣게 되고 화장실 쇠창살을 하루 20분씩 무려 4개월간 조금씩

절단하며 탈옥을 계획했습니다.

이 탈옥을 위해 무려 15kg을 감량하였고 교도관들의 신뢰를 쌓아 감시를 줄이기 위해 오랜 기간 모범수로 지냈다고 합니다.

1997년 1월 그렇게 탈옥에 성공한 뒤 신창원은 무려 2년 6개월간 4만여 km의 거리를 도망쳐 다니며 도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빈집들을 털어 생활했으며 도망 다니다가 잡힐 듯하다가도 미꾸라지처럼 포위망을 빠져나가 경찰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가 2년 6개월 동안의 도피 생활 중 훔친 돈만 해도 약 9억 8000여만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훔친 돈으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꼬셔서 동거를 하며 아지트로 삼기도 했습니다.

후에 붙잡힌 신창원은 김진웅 장로님을 만나 탈옥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살인 현장을 보지도 못했는데 변호사를 세우면 얼마든지 승소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니 억울하잖아요.

저도 21살 어릴 때니까. 정말 억울하다 싶어서 담을 텄고 탈옥했죠.

김진웅 장로님의 인터뷰 中 신창원의 대답

돈이 없었을 때는 토굴에서 생활하며 쥐고기로 연명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경찰의 추격에 쫓기는 중 신창원의 담당 형사인 원조이 열 경장이 쏜 총에 맞아 부상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며 초인적인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격투 중 부러진 뼈를 혼자 끼워 맞추기도 했으며 추격이 심할 땐 박스 안에서

일주일을 넘게 은신하며 쥐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는 체포 직전 경찰관들의 추격을 따돌린 것만 해도 무려 6번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신창원을 잡기 위해 매년 97만여 명이 동원되었고 전국 6개 지역 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헬기까지 띄우는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주 행각을 벌였습니다.

도피 생활 중에 신창원은 108건의 강도와 절도를 저지르는 희대의 탈옥수로 자리매김합니다.

동시에 신창원을 총 13번을 눈앞에서 놓쳐 많은 경찰관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합니다.

당시 신창원 검거 실패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들은 무려 29명이나 되었으며 총경 이상의 고위 간부만 10명이었다고 합니다.

신창원은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어 전국구 스타가 되었으며 어린아이에서 어른들까지 그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청소년들은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신창원이 기부를 했다는 소식(물론 훔친 돈의 극히 일부였지만)과 부자들만 턴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시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청소년을 비롯해 젊은 층 사이에서는 신창원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었죠.

그의 현상금은 처음 1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올라갔으며 이는 단군이래 사상 최고의 현상금이었습니다.

그 당시 5000만 원은 현재로 가치 환산하면 엄청나게 큰 금액입니다.

그 과정에서 별의별 천태만상이 다 나왔었는데요.

한 경찰은 신창원이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혼자 공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단독 검거를 시도하다 실패해 징계를 받는가 하면

잠복근무를 하던 형사가 신창원 동거녀를 성폭행해 결국 파면되고 구속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신창원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고생 끝에 검거했는데 알고 보니 신창원을 사칭한 강도범인 경우도 있었죠.

시민의 신고로 검거된 상태에서 경찰의 부주의로 놓친 일도 있었는데 경찰의 부주의로 놓쳤지만 현상금을 못 준다는 경찰의 말에

신고자가 소송을 내고 대법원까지 끌고 가면서 5000만 원을 다 받아냈죠.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도주생활을 하던 신창원은 어느 날 밤 물건을 훔치러 갔는데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 잠들지 않아서 그 집 앞에 있는

우체통 근처를 서성이며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환한 달밤에 우체통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들이 비쳐서 그의 눈에 들어왔고, 그 가운데 무심코

최용덕 씨의 <찬미예수>라는 소책자를 꺼내어서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가던 중에 거기에는 김진웅 장로님이 교도소 출소자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있었던 일이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신창원은 흥미를 느껴 글을 읽어 내려갔고 글 속에 나오는 장로님은 예전에 신창원이 교도소에 있을 때

먼발치에서 바라봤었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신창원의 마음속에 불현듯 이런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내가 만일 잡혀서 다시 감옥에 간다면 이 글의 주인공인 김진웅 장로님을 개인적으로 꼭 만나봐야겠다.

그 후로 또 시간이 흘러 어느덧 탈옥한지 1년 8개월이나 지나있었습니다.

비가 지척지척 내리던 어느 어두운 날 신창원은 다시 범행을 계획하고 외딴곳에 있던 한 아파트를 서성였습니다.

한밤중에 문을 따고 집을 들어서니 젊은 여성이 혼자 살고 있었고 혼자 있는 여자를 보는 순간 그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그 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신창원은 심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순진하고 착해 보이는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신창원이 이제껏 만났던 여성들은 대다수가 거리의 여인들이었거나 함께 술 마시며 노는 것을 좋아했던 여성들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여성은 너무나 착한 눈을 가진 순수한 여성이었고 그녀는 이제까지 남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처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신창원은 이제껏 여자를 대할 때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때는 달랐다고 합니다.

신창원은 자신이 그녀의 인생을 짓밟았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몰려왔고 순간 그의 감정은 큰 혼란 속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칼을 꺼내어 그녀 앞에 놓으며 자신을 찌르라고 했습니다.

여전히 온몸을 심하게 떨고 있던 그녀는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고 잠깐 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 침묵을 깬 건 그 여성이었고 그녀는 신창원에게 믿기 어려운 말을 했습니다.

옷이 많이 젖었는데 벗어주시면 제가 빨아드릴게요.

창원은 어안이 벙벙하여 자신도 모르게 옷을 벗어주었고 그녀는 세탁기에 옷을 빨아서 말린 후 새 옷같이 입혀 주었으며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신창원에게 쌀을 씻어 따뜻한 밥과 정성껏 만든 반찬들로 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신창원은 그녀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고 밥을 다 먹고선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해 아가씨! 내가 욕정을 이기지 못해 실수를 하고 말았는데 아가씨한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해.

내가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아가씨한테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주고 싶어. 이미 내 얼굴을 보고 눈치챘겠지만 난 경찰들이 찾고 있는

신창원이야.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가서 내가 여기 있다고 신고해.

그러면 아가씨는 탈주범을 잡은 영웅이 되어 매스컴에도 나올 테고 5천만 원의 현상금도 받을 수 있을 거야.

정말 내가 도망가지 않고 여기 그대로 있을 테니까 빨리 가서 신고해.

그러고는 그 여자를 밀어서 집 밖으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신창원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 집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아파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속으로 '이제 다시 감옥으로 가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체넘한 채 경찰이 들어와 수갑을 채우길 기다리고 있는데 신창원 앞에 나타난 건 그 여성 혼자뿐이었습니다.

혼자서 돌아온 그녀를 보고 신창원은 깜짝 놀라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아가씨 왜 혼자 돌아왔어?"

그랬더니 그 처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내가 신고할 사람 같아 보여요?"

신창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을 만나면 모두가 보통 두려움에 떠는 게 정상인데 그녀는 너무나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봐도 당연히 신고를 해야 할 상황이고 자신은 전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공포의 대상이자 거액의 현상금 주인공인데

그녀는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자신과 같은 악마 같은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신창원은 마지막으로 그 아가씨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씨 마지막으로 할 말 있어?"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어요?"

놀란 신창원이 뭐냐고 물었고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도 예수님 믿으세요.

창원은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길래 험한 일을 겪고도 신고는 안 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걸까?

참 이상하다. 예수가 누구길래... 그분이 누구이길래 신고도 하지 않고 그분을 믿으라고 한단 말인가?'

그 후 시간이 흘러 1999년 7월 16일 신창원은 경찰에 붙잡혔고 교도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검거 당시 신창원이 입었던 외국 유명 브랜드 셔츠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명 '신창원 티셔츠'라며 엄청난 유행을 했었죠

신창원은 이것을 알고 있을까요? 알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화제가 됐던 신창원 티셔츠가 이태리 명품으로 21만 원짜리입니다.

제가 창원이한테 "창원아 붙잡혔을 때 그 이태리제 옷 있지?

그래 그거 너 솔직히 나한테 말해라. 얼마 주고 샀노?"라고 물어보니 5,000원 주고 샀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어디서 샀노?"라고 하니 남대문 시장에서 막 떨이하는데 흔들고 하길래 지나가다가 5,000원 주고 사 입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붙잡힌 겁니다.

그래서 제가 창원이한테 "네가 그 옷 때문에 뜬다."라고 하니까 '아휴 부끄럽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김진웅 장로님의 인터뷰 中

창원의 옆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검거 당시에도 그랬죠.

그 여자는 카페 종업원으로 신창원과 결혼을 약속하고 살림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명의로 대주파크빌을 계약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과정에서 수리공이 신창원을 알아보고 붙잡히게 된 것이었죠. 그 공으로 수리공은 경찰로 특채되었습니다.

그렇게 신창원은 징역 22년 6개월이 추가되었고 흉악범을 가둬두는 청송 교도소의 독방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교도소에 가서 소책자에 나왔었던 김진웅 장로님에게 면회를 신청했고 장로님은

신창원을 처음 만난 순간 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너는 불교신자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됐니? 그리고 어떻게 날 알게 됐니?"

그러자 신창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체통에서 발견한 장로님의 월간지를 읽고서였습니다.

청송 교도소에 있을 때 장로님께 정신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도피 생활 중에 우연히

월간지 찬미 속에 나오는 장로님 얘기를 읽고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한 짓을 용서해 준 그 여성이 전한 짧은 전도의 한 마디였습니다.

장로님~ 앞으로 많이 만나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신창원은 교도소에 있는 동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멘토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창원의 기도에 응답하신 걸까요? 신창원과 김진웅 장로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장로님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그를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신창원을 만나 본 장로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도둑놈 보고 이런 소릴 해도 되나요?

정직해요. 솔직하고 부지런합니다.

창원이가 긍휼의 마음이 굉장히 커요. 영치금으로 한 푼 두 푼 모은 30만 원을 나한테 주면서 여기 인근에

은혜의 집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 있는 어려운 지체 장애인들한테 준 적도 있어요.

창원이가 굉장히 착해요.

김진웅 장로님의 인터뷰 中

장로님은 신창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여성분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여성이지만 너무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으며 이 시대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핍박도 많이 받고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지만 세상 곳곳에는 여전히 이렇게 대단한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으며

그녀는 비록 어리고 나약한 여자의 몸이지만 영적으로는 이미 거대한 거인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신웅 장로님은 가끔 신창원이 큰 죄인이기는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도망을 좀 잘 다녔다는 이유로 언론에 너무 부

각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평생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신창원에게 면회를 가면 이런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창원아, 하루빨리 정상참작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자유의 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 예수님에게 배운 대로 선한 영향을 많이 끼치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지만 이런 말들을 할 때마다 신창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어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겠냐고 말했고 그는 또한 자신은 사형도

부족한 중죄를 지은 죄인이고 조용히 속죄하며 감옥에서 남은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수십 년간의 수감생활이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절대로 억울하지 않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제가 왜? 하고 물어보니 자신이 당시 데리고 있던 사람이 6명인데 그중에 한 사람이 문방구 집에 오늘 1억이 들어오는데

그걸 훔치러 가자고 하더랍니다. 그때 그중에 자기가 대장인데 가지 말자고 하면 안 갔다 이거죠. 자기는 그 소릴 듣고 "가자"고

했다는 겁니다. 그 한마디 때문에 철없는 아이들이 다 전과자가 되고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데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창원이는 그때 살해하는 장면을 본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달려가고 창원이는 당시 발목 인대가 늘어져서 겨우 발을 끌고 갔었다고 합니다.

도착해 보니 현장에는 주인이 칼에 찔려 죽어 있었고 그 친구는 칼을 들고 있었고 그러니까 창원이는 죽이는 장면을 못 봤죠.

김진웅 장로님의 인터뷰 中

이렇듯 신창원은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김진웅 장로님, 이해인 수녀님 등과 만남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신앙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신창원이 어렸을 때부터 김진웅 장로님이나 이해인 수녀님 같은 좋은 분들을 만나고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그의 마음속 악마는 이렇게 크게 신창원을 지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창원은 지금 이 순간도 감옥에서 하루하루 영적인 싸움을 해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2011년 8월 신창원은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기고 고무장갑으로 스스로 목을 감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그는 일찍 발견되어 목숨을 잃지 않았고 다시 삶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신창원이 안정이 되었을 때쯤 김진웅 장로님은 그에게 면회를 갔지만 신창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신창원이 옥중에서 김진웅 장로님과 주고받았던 편지 중 일부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장로님

이젠 매일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모습을 잃지 않도록 더 많은 힘을 쏟아야겠어요.

지금부터의 제 삶이 모두 주님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스럽고 책임이 중합니다.

장로님, 전 이제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힘들 땐 가끔씩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옛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자신이 생깁니다.

장로님이 어제 하신 말씀 중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나도 3일만 성경 말씀을 안 보거나 기도를 하지 않으면 무너져~'

이 말씀이 진리였어요. 저도 이곳에 와서 몇 번 경험을 했거든요. 때문에 성경 말씀을 통째로 암송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요한복음 14장 15장 17장 고린도전서 13장 야고보서 1장에서 5장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는데

제가 조금 좋지 않은 생각이나 행동을 하려고 하면 바로 성경 말씀이 떠올라요. 그러면 금방 멈추고 반성을 하게 됩니다.

전 지금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 사랑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사랑을 잃으면 그 날로 하나님의 아들에서 사탄의 아들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믿음 안에서 주님을 아프게 하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엔 지금의 저처럼 사랑으로 가득한 열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적으로 변하고 또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후가 교만해졌기 때문이잖아요.

오늘도 편안한 밤 되시고 주님이 주시는 사랑 많이 많이 받으세요. 장로님 사랑합니다~

신창원이 김진웅 장로님에게 보낸 편지 中

김진웅 장로님은 신창원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네가 여기서 긴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딱 두 가지다. 첫째는 말씀을 붙드는 것이고 둘째는 공부하는 것이다.

부는 끝이 없다. 그러니 어떤 목적을 두고 공부해라.

신창원은 학력이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지만 수감 중에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연이어 합격했고 현재는 상담사 자격증을 목표로 학구열을 불태우는 중입니다. 그는 국문과, 영문과, 심리학과, 신학과 학사 과정을 수료했죠.

또한 법을 공부해 국가와 교도소장을 상대로 총 4건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모두 승소했다고 합니다.

신창원은 교도소에 갇히고서부터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좋았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때부터 술만 찾았던 아버지의 깊은 슬픔을 공감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신창원이 굉장히 효자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교도소에 올 때마다 90도로 절을 합니다.

자기 아버지를 좋아하고 아버지도 창원이를 정말 사랑합니다.

김진웅 장로님의 인터뷰 中

신웅 장로님은 신창원을 여론화 시켜서 공범이라고 하는 제도를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신창원은 장로님처럼 교도소 안에서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교정 선교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자신처럼 긴 수용생활을 하는 죄인이 되지 않도록 장로님처럼 교정 선교를 하면서 그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큰 희망과

꿈을 주고 싶다고 합니다. 어렵고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자신은 이곳을 나갈 수가 없으니 교도소 안에서

선교사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이 새롭게 거듭나고

태어날 수 있도록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후회하지 않는 것은 교도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만난 것 외에 더 보람된 일이 없습니다.

신창원이 교도소에서 한 말 中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신창원 씨의 교정 선교의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1. 서적 날마다 교도소로 출근하는 수의사 (김진웅 장로님)

2. 서적 신창원 907일간의 고백

3. 유튜브 채널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신창원 편(https://youtu.be/OaHUeOuCUgA)

4. 유튜브 채널 미션라이프 신창원 편(https://youtu.be/qMk8w41IuC8)

출처 : https : // m. blog. naver. 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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