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 엄마와 손님 같은 아버지]
교도소의 차디찬 담장 안, 세상과 격리된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사무치게 보고 싶은 얼굴이 누구입니까?”
돌아온 대답은 단 두 가지였습니다.
엄마', 그리고 '어머니!!
대상은 같은데, 왜 부르는 이름은 달랐을까요.
훗날 한 재소자가 보낸 편지에는 이런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작았을 때 부르는 이름이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보다 커버렸을 때 부르는 이름입니다.”
철없던 시절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는, 머리가 굵고 세상 풍파를 알게 된 뒤 어느덧
거리감이 생긴 '어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면회 날, 창살 너머로 하얗게 샌 어머니의 머리칼을 본 순간, 거구의 사내는 아이처럼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엄마... 미안해, 엄마...!”
결국 엄마는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돌아가고 싶은 영원한 안식처이자,
철들지 않은 자식이 내뱉는 생애 첫 번째 마디입니다.
훈장이 된 골다공증, 엄마의 지문
불가의[부모은중경]은 엄마의 희생을 숫자로 기록합니다.
우리를 낳을 때 서 말 여덟 되의 핏물을 흘리시고,
키우실 때는 여덟 섬 네 말이나 되는 눈물 같은 젖을 먹이신다고 합니다.
그 대가로 엄마가 얻은 것은 자식의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뼈마디를 다 내어주고 얻은 '골다공증'이라는 서글픈 훈장이었습니다.
자식이 한 걸음씩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때마다 엄마의 뼈에는 구멍이 났고, 허리는 굽어갔습니다.
엄마는 국가가 준 주민등록증보다, 자식이 새겨놓은 그 아픈'증(症)을 먼저
몸에 문신처럼 새긴 채 오늘도 자식들을 기다립니다.
[영원한 이방인, 아버지]
반면, 아버지는 슬픈 '손님'입니다.
어느 날 문득 아들은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와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면서도,
정작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 땀 흘린 아버지에겐 늘 무심했다는 것을요.
아버지는 집안의 기둥이었으나, 정작 그 안에서는 늘 겉도는 존재였습니다.
죄책감에 젖은 아들이 큰 결심을 하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전화를 받자마자 익숙한 듯 말씀하십니다.
“그래, 엄마 바꿔줄게.”
평생을 가족의 목소리를 이어주는 '전화 교환수'로만 살아온 아버지의 서글픈 습관이었습니다.
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랑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서...”
적막이 흐른 뒤 돌아온 아버지의 첫마디는 다정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너... 돈 떨어졌니”
아니라고, 정말 보고 싶어 전화했다고 거듭 말하자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묻습니다.
“너, 술 마셨냐 왜 안 하던 소릴 해...”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취중 진담'이나 '돈 필요할 때 하는 아양'으로 여길 만큼,
아버지는 진심을 듣는 일에 너무나도 가난해져 버렸습니다.
[더 늦기 전에 전해야 할 한마디]
밖에서는 '부장님', '사장님' 소리 들으며 당당해도, 정작 자식 앞에선 '돈 주는 기계'나
'이방인'이 되어버린 모습. 이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쓸쓸한 뒷모습입니다.
[아버지의
뼈가 다 녹아내리기 전에]
아버지의 목소리에 서린 적막이 더 깊어지기 전에,
오늘 꼭 이 말을 전해보세요.
“엄마,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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