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는가?
“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표현은 성경에 없다.
그러나 널리 사용되는 사도신경에는 “그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매장되시고 지옥에 내려가시고 제삼 일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통을 당하신 후에 지옥의 고통을 더 당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성경의 증거를 조사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지만 성경의 내용을 살피기 전에 먼저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사도신경의 구절을 연구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1. “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구절의 기원
사도신경은 특정한 때에 특정한 교회 회의에서 작성되고 승인된 것이 아니라 A.D. 200년 경부터 750년까지 점차적으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구절이 로마와 이태리와 아프리카에서 사용되었던 초기 신경에는 발견되지
않다가 390년 루피 누수(Rufinus)의 두 버전(versions) 중 하나에서 발견된다.
그 후 그것이 650년까지 어느 버전(version) 애도 다시 발견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650년 이전에 그것을 사도신경에 포함한 유일한 사람은 루피 뉴스인데, 루피 뉴스도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께서 매장되셨다
(“그가 무덤에 내려가셨다”,헬라어 하데스는 지옥을 의미하는 게헨나와 달리 무덤을 의미할 수 있음)는 의미에서 그렇게 했다.
이것을 보면
(1) 650년 이전에는 그 구절이 다른 어떤 버전에도 발견되지 않고 루피 뉴스의 두 버전 중 하나에만 발견되는데,
그것도 ‘지옥’에 내려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덤’에 내려갔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발견되었을 뿐이다는 점,
(2) 이런 역사를 개관할 때 그 구절이 후에 널리 사용되었을 때에는 “그가 매장되었다"라는 구절이 없는 버전들
(지금 남아 있지는 않지만)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3) “그가 매장되었다”는 것이 포함된 버전에 그 구절이 포함되었을 때(650년 이후)에는 어떤 다른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구절에 대해서 성경에 모순되지 않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었다.
(1) 칼빈: 그리스도는 이미 십자가에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다.
따라서 “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은 그가 육체적인 죽음을 당하셨을 뿐 아니라 지옥의 고통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시고 공의로운 심판을 충족시킴)을 당하셨다.
(2) 하이델베르크 카테키즘 (문 44): “나의 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와 그 이전에 영혼에 표현할 수 없는 고뇌와
고통과 공포를 당하셔서 나를 지옥의 고뇌와 고통으로부터 구속하셨다.”
(3)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문 50): 부활하실 때까지 계속 죽음의 상태와 능력 하에 있었다는 의미.
2.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근거로 댈만한 성경 구절
(1) 행 2:27 (시 16:10 인용).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뜻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 ‘음부’는 헬라어 하데스, 히브리어 스몰인데, 단순히 ‘무덤’ 혹은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본문의 문맥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음부’는 ‘지옥’보다는 ‘무덤’의 의미가 더 적합하다.
(2) 롬 10:6-7 (신 20:13 인용).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이 경우도 ‘음부’는 지옥이 아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를 믿고 고백하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입, 즉 매우 가까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본문의 ‘음부’는 헬라어 아비스인데, 이것은 바다의 심연(창 1:2; 7:11)이나 죽은 자들의 영역(시 71:20)의 의미로 쓰인다.
바울은 본문에서 아비스를 ‘하늘’에 대한 대조 개념으로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의 의미로 사용했다.
(3) 웹 4:8-9.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이것도 지옥 강하의 의미가 아니다. 8절이 승천을 말하는 반면 9절은 땅에 내려오심(땅 자체가 ‘아래 곳’)을 말한다.
(4) 벧전 3:18-20.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하시니라.”
1) 그리스도께서 지옥에서 설교하셨다는 의미?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지옥에서 영들에게 설교(회개할 수 있는 제2의 기회를 주시는 의미에서
복음을 전하셨거나 그들의 영원한 정죄를 알리셨다는 것) 하셨다고 주장 한다.
반론: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들 모두에게 설교하셨다고 말하지 않고,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순종치 아니한 자들”이라고 제한해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설교하셨다면 지옥의 수많은 자들 중에 특별히 이들만 선택해서 말씀
(제2의 회개의 기회나 정죄의 사실 선포) 하실 이유가 있는가?
베드로전서 3장에서 베드로는 불신자들에게 항상 대답할 말을 준비하여 전도할 것(3:15)을 권면했는데
지옥에서 제2의 기회가 있다면 살아있을 때 이렇게 전도를 권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2)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천사들에게 설교하셨다는 의미?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천사들에게 정죄를 선포하셨다는 의미.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그들을 압박하는 귀신들도 그리스도에게
격퇴당할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격려했다는 것.
반론: 독자들이 이런 의미를 본문에서 찾아내려면 복잡한 머리를 써야 한다.
그런 의미 라면 베드로가 왜 그렇다고 명백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본문에서 대 적하는 불신자들을 다루고 있지, 대적하는 영들을 다루고 있지 않다 (3:14,16).
영들이 노아의 때에 범죄 한 것도 아니다.
3) 그리스도께서 구약 성도들에게 설교하셨다는 의미?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사역이 완성될 때까지 하늘에 들어갈 수 없었던 구약 성도들에게 설교한 셨다는 것.
반론: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에 순종하던 자들에게 설교하셨다고 하지 않고 불순종하던 자들에게 하셨다고 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구약 성도들 모두를 말하지 않고 노아 시대의 불순 종자들만 제한.
구약 성도들이 하늘에 올라갈 수 없었다는 것도 비성경적.
4) 보다 만족스러운 설명 (어거스틴).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 사이에 하신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 시대에 영적인 영역에서 (“영으로) 하신 일을
말한다. 놓아가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노아를 통해서 ”영으로“ 노아 주변의 모든 불신자들에게 전도하셨다.
베드로전서 1:11에 ”그리스도의 영“이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그리스도의 영이 노아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을 것 이다. 베드로후서 2:5에는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노아를 통해서 의를
전파하셨다. 노아 당시의 불신자들이 베드로 당시에는 지옥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옥에 있는 영들“[심령들).
베드로전서 3:13-22의 문맥에서 이 해석이 적합하다.
(5) 벧전 4:6.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것이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이라면 성경에서 죽은 자들에게 제2의 회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유일한 구절.
반론: 눅 16:19-31; 히 9:27에 의하면 죽은 후에는 회개의 기회가 없다.
본문의 의미는 죽은자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
본문은 이미 죽은 신앙인들이 육체적 죽음은 당했으나 마지막 심판은 받지 않는다는 것.
3. 지옥 강하를 반대하는 성경의 근거
(1) 눅 23:4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죽으신 후 그의 영혼은 바로 하나님 존전으로 갔다는 것 암시. 본문의 ‘낙원’은 명백히 ‘하늘’의 의미
(고후 12:4; 계 2:7; 22:2,14).
(2) 요 19:30. “다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고통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짐은 죽음의 순간 완성되었다는 것,
따라서 그 후에 지옥으로 내려가시는 고통을 당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
(3) 눅 23: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스데반의 경우와 같이 이것은 죽음 직후 고통의 중지와 아버지의 영접을 암시.
4. “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사도신경의 구절에 대한 결론
이 구절이 사도신경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것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사도신경에 오랫동안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오래된 실수도 역시 실수. 그것을 사도신경에서 빼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1) 사도신경의 초기 버전에는 나타나지 않고,
(2) 그것이 성경과 모순되며,
(3) 그것은 사도신경의 다른 교리 항목처럼 대부분의 신자들이 동의하는 주요 항목이 아니고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 사소한 항목이다.
[출처] 동신교회 권성수 목사님 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