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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학교

교회학교의 위기와 정책대안

작성자안디옥.|작성시간26.06.08|조회수145 목록 댓글 0

교회학교의 위기와 정책대안

이상윤 목사(KMC전략연구소 소장)

1, 교회의 교육적 사명

1910년 6월 좌옹 윤치호는 미남감리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하였다.

그는 선교대회 중 두 번에 걸친 분과토의 발제를 하였다.

첫 번째 발제의 제목은 복음화과정에 있어서 원주민 교회의 역할이었고 두 번째 발제의 제목은 원주민교회의 입장에서 본 선교사

재정집행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현지 피선교지 교회를 대변하여 선교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는 개종자 사후

관리에 대한 정책부재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특히 성과주의에 빠진 현지선교활동은 교육적 측면에서 튼튼한 기초도 없이 결신자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질타하였다.

실제로 결신에 대한 사후관리 문제는 심각한 것이었으나 선교적 대안을 구하자는 문제의식에 대하여서는 구체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를 탄생시키는 전조적인 존재로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일어나는 선교과제에 대한 전략적 의미가 큰 대회였다.

실제로 피선교의 토착문화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현실사정을 청취하고 토착민들의 문화적 특성을 감안한 정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중국의 경우 조상숭배 문제 제사문제라든지 일본의 신사참배 문제가 그러하였는데 인디아의

카스트제도와 아프리카의 축첩문제도 심각하게 토론되었다.

그러나 좌옹 윤치호의 발제는 피선교지의 부흥운동이 획득한 결신자 사후관리 문제는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다짐하는 것으로서

선교정책의 중요한 과제였다. 회심이 일어난 이들에 대한양육의 책임을 다툰 선교현장의 문제는 오늘날 현대 기독교교육의 과제로서 회심이냐 양육이냐 하는 양자 간의 갈등을 그대로 노출시킨 이슈였다.

개종자들에 대한 교육적인 과제로서 제기된 양육문제는 현대 기독교교육의 중심과제가 된 것은 주일학교가 탄생하고 나서

훨씬 후인 1847년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적 양육에서 취급한 것이었다.

대한제국의 외무협판과 대신을 두루 지낸 인물로서 갑신정변의 영향으로 중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끝에 미국으로 유학하여

남부의 밴더빌트 대학교와 에모리 대학교를 나온 그는 1895년 미국의 남 감리교회를 한국선교로 유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상해에서 중서학원을 하고 있던 남 감리교는 핸드릭스 감독과 리드목사를 파송하여 한국사정을 파악한 다음해인 1896년

남 감리교는 초대 선교사로 이덕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서울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스크랜튼 선교사의 도움으로 상동교회 인근

현재의 한국은행 자리에 근거지를 잡았는데 북 감리교와의 선교협의 끝에 선교지는 경기북부와 강원도 지역을 배정받았다.

윤치호는 이들을 고려의 수도 개성으로 인도하여 개성의 유지였던 이모부 이건혁 선생의 저택이 가까운 곳에 정주하도록

협조하였다. 원산에서 8년간 의료선교사로 일하였던 캐나다 토론토대학 출신 로버트 하디는 원산을 떠나 강원도 철원 지경터로

진출하여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일선목회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하디는 깊이 통회하면서 기도하던 중 중국에서

선교하던 여자 선교사들과 회동하는 여름수련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그를 중심으로 하는 1903년 원산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성령체험을 간증하면서 부흥회를 인도하였고 개성의 남 감리교도 영향을 받아 1909년 100만 구령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일거에 8천명이 회심하고 돌아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고 평양대부흥운동에 이어 개성도 성령역사에 휩싸이게 된다.

평양은 길선주 목사가 주도하였고 원산은 하디가 주도하였다면 개성 100만 구령운동은 남 감리교 스톡스와 제메인 선교사가

헌신적으로 일으켰던 운동이었다. 회심은 양육으로 연결시키는 과제가 제기되었다.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양육의 책임을 느낀 교회는 기독교 교육적 사명을 다짐하게 된다.

개성에만 남 감리교는 4개의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개체교회를 부흥시킨다.

2. 감리교 교육사업과 근대식 학교운동

한국에서 시작한 미국선교는 한국 정부가 직접전도를 허락하지 않아 간접 전도의 일환으로 학교와 병원을 시작하였다.

가톨릭교회와 갈등이 깊었던 탓에 한국정부는 외국인의 직접전도활동을 꺼리고 있었다.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을 창립하였다. 같은 해, 의료 선교사인 스크랜튼은 상동교회의 모체인 시병원을 시작하였고 1886년에는 이화학당을 세운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의료기관보다는 교육기관을 선호하고 있었다.

그는 학교를 통하여 예수를 전하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였다. 감리교는 이러한 특수한 선교환경에 적응하여 교육기관을 통한

간접전도 방식을 가지고 선교에 임하였다. 그러면서도 의료기관도 세우고 삼문출판사라는 근대적인 출판사업도 병행하였다.

당시 학교기관의 경우 가난한 민중들 보다는 정치적 야망을 가진 젊은이들과 지식계층을 만나기 좋은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기독교문명론에 입각하여 근대화를 매개로 하는 선교정책을 폈고 한민족 근대화와 사회변혁의 과제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감리교 태도는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침략 통치 초기에 한국선교는 민족의 자주독립과 사회변혁운동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배재학당을 통하여 총명한 학생들을 배출하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협성회를 통하여

왕정하에서 공화주의를 맛보여주는 민주주의 시민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미국 선교사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민중운동에 참여한 이는 헐버트 선교사였다.

원래는 선교사가 아니고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내한하였으나 이윽고 선교사가 되어 한국의 복음선교는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고

조선 민중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정치현실에 주목하여 책임적 존재로서 정치행동을 펼쳐나갔으며

교육활동과 언론활동을 전개하면서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였다.

그는 사회 불의와 부정을 비판하는 것만 아니라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로 변혁하기위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Passing of Korea 라는 저서를 쓰면서 패망하는 조선의 비극을 고발하고 민중이 직면한 현실을 깊이 관찰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헐버트의 활동을 좌시하지 않았다. 1907년 일제는 헐버트 선교사를 강제 추방하였다.

1948년 이승만이 집권하자 축하인사차 한국을 다시 찾았고 오랜 여행의 독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한국 땅에 묻히고 말았다.

18C 세계는 주일학교운동이 시작되었고 다시 주일학교를 보강하는 기독교교육운동이 일어났다.

1847년 근대적기독교교육운동은 회심이 보다는 양육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종교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교회는 오랜 동안 교리교육만 가지고 있었는데 주일학교 운동에서 3R 교육을 통하여 보통교육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면서 근대적 종교교육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국가가 제대로 된 의무교육을 기피하고 있던 시절 선교정책의 하나로 실시하던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 운동은 문명론의 꽃인 진화론과 과학교육을 실시하였다.

감리교 선교도 교회개척을 위한 방편으로 주일학교를 설치하였고 이것이 발전하여 전도의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선교가 교육을 매개로 하여 대중의 보통교육을 선도하였던 것이다.

교육활동은 단지 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교육을 수행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미신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소개하는 도전적인 일이기도 하였다.

시대정신은 근대화였고 교회는 근대적 교육서비스와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었다.

초기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주일학교는 모두 교회로 발전한 것도 이와 같은 구조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한국의 주일학교는 1886년 선교보고서에 따르면 주일학교는 1개소였다.

주일학교의 학생 수는 겨우 12명이었고. 1887년 보고서에도 보면 주일학교는 2개소였고 학생 수는 여전히 20명이었다.

그러나 1888년 선교보고서에는 주일학교가 3개소로 늘었고 학생 수는 43명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감리교 주일학교의 효시는 1885년도에 시작한 정동의 벧엘교회 주일학교였다.

배재학당은 이러한 주일학교를 만든 모체였고 정동제일교회로 발전한 기둥 같은 존재였다.

1888년 1월 15일 이화학당은 역시 학당 내에 주일학교를 시작하였다. 학생은 12명이고 부인반은 3명이었다.

2월에 가서는 주일 밤에 부인반을 시작하였다. 학당에서 필요로 하는 성경교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성경 공부반을 만든 것이다.

그해 가을 3명이 세례를 받았다. 남 감리교는 1897년에 시작하였다. 리드 선교사의 부인이 선교사 주택에서 시작하였다.

리드 부인이 와병하여 쓰러지고 학교도 못하게 되었다.

1897년 10월 9일 중국 선교사였던 캠벨 선교사가 들어와 중구 저동에 있는 선교사 주택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학생은 여자아이가 2명에 남자아이가 3명이었다. 이들은 원래 리드 부인이 가르치던 아이들이었다.

1898년 캠벨 선교사는 캐럴라이나 학당을 시작하였다. 훗날 배화학당이라고 불리는 학당이었다.

그리고 1900년 4월 15일 배화학당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종교교회와 자교교회로 발전하였다.

3. 감리교 주일학교 교육

1900년 주일학교 교사 양성반을 운영한 것은 평양의 남산현교회였다. 노블 선교사의 부인인 W,A. Noble이 주일학교를 시작하였다. 노블 부인은 기독교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주일학교를 시작하면서 주일학교 교사양성에 주목하였다. '

이화학당이 부인반 성경공부를 가지고 학당의 성경교사를 양성하였는데 비하여 노블 선교사 부인은 주일학교를 시작하면서

교사 양성 반을 운영하였다. 우선 주일학교 안에 교사양성을 위한 사범 반을 조직하고 교사양성과 훈련을 시작하였다.

1> 예비 반에서는 다음 주에 진행될 통일 공과를 준비하였고

2> 통신과를 두어서 미 감리회의 종교교육과정을 소개하였으며

3> 정기적으로 2박 3일 강습회나 5일 강습회를 주관하였고

4> 교회내의 교사양성 과정을 설치하여 주일날 모이거나 아니면 주중에 후보생을 모아 훈련시켰다.

이것이 정동제일교회 동대문교회 경성중앙교회와 송도중앙교회 등에서도 하였다.

5> 협성신학교는 당시 14개 지방 평신도 대표 2명씩을 뽑아서 3주 동안 연수를 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주일학교 교육 분위기는 서당이나 마찬가지였다. 무학년제에 책임교사가 하나가 있는 체제였다.

당시 남산현교회는 주일학교가 크게 부흥하였다. 학생 수는 200명에 교사도 20명이었다.

주일학교 공과는 미국에서 가져온 것을 교재를 번역하여 등사물로 나누어 주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교사들이 모여서 공과공부를 하였다. 교육용으로 카드와 융판을 사용하였다.

특히 남산현교회는 1910년에 교육관을 신축하기도 하였다. 영아부도 운영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정동제일교회가 존스 부인을 모시고 유년주일학교를 하였다. 1915년 최초로 유년주일학교사무원회를 조직하였다.

유년 주일학교 부장과 서기 회계 등을 모아서 매월 1회씩 정기집회를 하였다. 이어서 조선연회주일학교위원회가 생겼다.

1912년 미 감리교 조선연회는 미국에 편지를 보내어서 교육전문가를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듬해 1913년 미국에서 온 스워나이스 선교사는 연회 내에 주일학교위원회를 조직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1924년 미 감리교회 조선연회는 지방 등급사경회를 설치하고 6년급 전 과정을 운영하였다. 청년사업도 시작하였다.

정동제일교회에서 맨 처음(1897년 10월 31일)조직한 청년회는 1914년에 평양 남산현에도 엡웟청년회가 조직되었다.

1923년 교리와 정장 제 13장에 모든 교회 안에 엡웟회를 조직하여 청년들이 기도와 간증과 개인전도 함을 신령상 경험을 발표하여

그리스도인의 교통함을 배양케 하며 사회사업에 봉사케 하며 선교적 관념과 지식의 훈도를 받게 하며 기독교 신임주의 원리에서

배양되게 하며 국내외 사역자 됨을 지도하고 종교 보호 하에 적당한 사교와 오락의 필요한 바를 공급하게 하되 읽고 공부할

과정으로 한다고 하였다. 1926년 주일학교 본부로 불리던 연회 주일학교 위원회를 개편하여 종교교육위원회로 불렀다.

1922년 조선의 여러 교파 선교사들이 조선주일학교연합회를 조직하였다. 세계통일주일공과와 계단공과를 출판하였다.

4. 조선감리교회 시대와 기독교교육

1930년 남북감리교회가 합동하고 조선감리회를 시작하였다. 이때는 이미 기독교교육은 종교교육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회심에 의한 구원보다는 교육에 의한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교육이 주된 관심사였다.

감리교는 전도국 보다는 교육국에 대부분의 활동을 할애하였다.

20C 종교교육협회를 통하여 새로운 이론형성에 영향을 끼친 자유주의 신학과 미국 안에서 사회복음주의 그리고 진보적인

교육철학이 개입하여 교육국의 활동을 조직화하였다.

총리원에는

1> 전도국

2> 교육국

3> 사회국

4> 재무국 등이 있었다.

특히 교육국은 중심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주일학교 전국조직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미 선교사들이 조직한 전국주일학교연합회가 기반을 잡고 있었다.

김준옥 목사가 총무였다. 감리교 주일학교는 체제를 단일화 하였다.

영아부를 포함하여 유치 유년 소년 청년 장년부로 세분하여 관리하였다.

주일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가 생일축하가 우승가를 통일시켰으며 교육용 자료로 카드를 제작보급하고 주일학교 교사를 위한

각종 부교재를 발행하였다. 행정서식을 보급하여 입학원서를 비롯하여 예비반의 출석부 학적부 카드식 출석부 전표 장부식 출석부

일지 생일명부 수업증서 인도자 상여 성화 생일축하 엽서 생일축하 성화 개근상 정근상 증서 출석권장엽서 등을 발행하였다.

또한 하기 성경학교를 운영하여 전국적인 부흥운동을 이끌었다.

실제로 감리교에서는 주일학교 출신들이 목사가 되었고 교회 임원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전도 회심 결신자를 생성하는 전도국과 함께 기독교 교육의 핵심과제인 양육에 중점을 두는 주일학교운동이

교회부흥 성장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하였다. 시대상황은 전쟁의 폭풍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민중들은 무언가를 배워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면서 배운 것을 내 동포들에게 가르쳐야만 한다는 사명감도 컸다. 1930년대 하기성경학교는 일제 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규모가 커지면서 당국자들은 규제를 강화하고 나왔다.

하기 성경학교의 경우 우선적으로

1> 교사들이 중학이나 전문의 학생들인 만큼 순기독교 사상만을 전파하지 않고 있으며

2> 신문사의 부나로드 운동의 영향으로 민중계몽에 파고들면서

3>성경 이외의 탈선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의 시대상황은 민중운동이 활성화되고 농촌운동이 보급되고 있었다.

교회학교도 문맹퇴치운동의 매개가 되었고 농촌개발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지역의 교회들은 하기성경학교를 이용하여 주민들을 위한 각종 붕사활동을 병행하였고 민중운동도 하고 있었다. 교육국은 9월 셋째주일을 기독교교육 진흥주일로 제정하였다. 특히 1935년 교육국은 등불단 운동을 시작하였다.

성경암송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애송하는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교회에서 드리는 주기도문 암송과

교리적 선언 암송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유럽도 일본도 전쟁의 바람에 휩싸였다.

1937년 중일전쟁을 필두로 1941년 미국과의 선전포고를 한 일제는 조선을 강압적으로 통치하면서 전쟁체제로 재구성하였다.

1938년 교육령 개정안을 선포하였고 이어서 육군지원병제도와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면서 나갔다.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강요하였고 상동교회를 가지고 황국문화관으로 개편하여 감리교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정춘수 감독은 일제에 부역하고 감리교회를 망쳐먹었다. 가정마다 가미다나 신단을 세우도록 하였다.

1937년 조선중앙정보위원회가 설치되어 주민을 상대하는 정보수집 활동과 종교탄압을 노골적으로 펼쳤다.

경찰은 정기적으로 종교단체 사찰을 시작하고 심지어는 설교도 취체하였다. 출판물도 규제하고 교회나 기도처 사찰도 하였다.

감리교 3부 연회를 해산하고 혁신교단소동을 일으키고 기독교 박멸에 나섰다.

기독교의

1> 창세관 종말관을 취체하고

2> 국가관을 감시하고

3> 시국을 이용하는 교묘한 교설을 감시하고

4> 반전 반군사적 언동에 대한 감시와

5> 신령한 예언 등을 이용한 언동을 감시하였다.

특히 일제는 현인신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황제와 기독교의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을 비교하여 누가 더 높으냐고 유혹하였다.

1941년 5월 일제는 예방구금법 국방보안법등 군사체제를 강화하여 기독교를 탄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1939년 일제는 일본 감리교회와 조선감리교를 강제로 합동시켰고 1941년에는 3부 연회도 해산시켰다.

감신대도 폐쇄하고 주한 미선교사를 강제로 추방하였다.

1943년 조선혁신교단을 조성하여 장로교 감리교 등 교파구분을 없애버렸다.

군용기 헌납운동과 교회강제병합을 하고 회의 간소화와 교회 폐쇄령 예배집회 시간단축 유대주의 배격 등으로 나갔다.

구약을 금지하고 4 복음서만을 설교하도록 하였다.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였다.

성경강습회와 성경학교 신학교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였다.

일본어 찬송가를 강제하고 1942년 기독교신문에 유년주일학교 공과를 일본어로 만들어 게재하였다.

주일학교라는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일요학교로 바꾸었는데 마지막에는 일요수련회라고 불렀다.

5. 교회학교 위기와 입시경쟁 구조

한국교회는 주일학교를 분반으로 나누면서 진보적인 교회들은 교회학교라 불렀다.

기독교 교육은 30년대 전쟁을 겪으면서 종래의 낙관적 기대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종교교육도 이론만 무성하였고 부교재를 동원한 말씀교육이 빠진 교육을 했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하였다.

회심과 양육의 양립되지 않고 회심과 양육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나갔다.

교육방법과 전달기술만 의지하였지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기독교 교육은 이제 기독교교육의 내용과 방법 사이의 적절한 신학을 찾아 나섰다.

이것이 칼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에 기초한 신개혁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이 기독교교육의 이론의 신학적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지금 학교 현장은 입시만능주의에 빠지면서 다음세대를 잇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교회학교의 활동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기회에 교회와 학교를 잇는 가정이라는 삼각 축에 세운 기독교교육의 생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회교육의 환경이 먼저 바뀌지 않고서는 위기극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교회학교는 교육방법론과 교과과정을 개혁하고 독창적인 교육 콘텐츠를 개발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심히 떨어지고 있는 환경에서 처하여 전체를 파악하고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려면 현재의 일반학교

영역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현장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 단계 기독교교육의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분석했다는 소릴 듣지 못한다.

특히 현행 입시경쟁 체제 속에서 기독교교육의 생태는 위축되어 있고 과당경쟁 구조 속에 갈 길을 잃고 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세주의 황금만능주의를 헤쳐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일반교육의 지향점은 배금주의적 실력경쟁을 밑바탕에 깔고 신분상승을 노리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가정교육 문제도 이러한 입시문제의 구조 속에 편입되어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현실을 살고 있다.

지금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은 입시문제에 노예든지 아니면 자포자기한 상태든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경우는 신앙생활로 자아성취를 하기 어렵다. 그만큼 입시준비의 비중이 높은 것이다.

자연히 경쟁 위주로 짜인 교육환경에서 살아남을 아이들의 의식은 탈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열된 입시경쟁 체제가 학교교육 전반에 걸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철저하게 왜곡된 힘과 영향력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글로벌시대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성개발은 외면당하고 더군다나 구세대의 암기위주의 지식축적방식에

길들여지고 있는가 하면 전자게임과 스마트미디어기기에 빠져 살고 있다.

이러한 생태환경에서 현재의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시의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고 있다.

수능 성적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고 진학하는 학교에 의하여 사회적 진출이 보장되고 모든 것이 좌우되는 현실이었다.

따라서 신분상승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생태환경에서 처한 교회의 교육적 분위기는 입시경쟁에 승리하라는 기도회를 갖고 있으며

중보기도를 필요로 하는 생태구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경쟁에 몰두한 자녀를 위한 가족의 문제는 가족 전체의 안위와

직결되어 있다. 이러한 생태환경에서 자란 세대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기대하기란 아주 어렵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기독교적 가치판단과 윤리의식을 기대하기에는 동떨어져 있다.

다만 수동적으로 주어진 교육환경에 적응하여 대학과 진로를 결정하고 사회 환경에 적응하여 살게 되어 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다음세대가 직면한 현실인 것이다.

과거 미션스쿨은 한국 근대화에 절절한 기여를 하였고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도 견디어 내었다.

그러나 1974년 고교평준화 조치이후 미션스쿨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준 공립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학생선발의 재량권이 사라지고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없게 되고 등록금을 책정하는 자율성이 없어져 버렸다.

이때부터 정부로부터 예배활동이나 신앙교육을 금하는 조처를 받아들여야 했다.

학원선교라는 고유 영역이 무너져 내리고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이 무력해지고 말았다. 대안학교가 등장한 것은 이보다 훨씬 후이다. 역사로 보자면 20년이 넘었다. 2014년 현재 전체 기독교 대안학교의 수는 169개교에 달한다.

기독교국제학교를 포함하여 기독교적 신앙과 학업을 보장해주는 학교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입시위주 교육체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대안학교지만 역시현실의 장벽에 밀리는 것이 대안학교의 현실이다.

다만 기독교신앙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국,공립 학교나 사립학교나 가릴 것 없이 기독교적 가치에 위배되거나 상치되는 현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폭력과 신앙적 일탈행위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 학교사회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있어 기독교적 가치를 존중해주고 보호해주는 존재가 있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오늘날 반 기독교적 정서가 팽배한 이유도 학교에서 배우는 세속적인 내용이 반기독교적인 것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6. 사립학교법 파동과 기독교교육의 정체성

지난 2003년 일어난 사립학교법 파동으로 빚어진 결과 기독교 계통학교의 사유화는 어느 정도 규제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종교교육은 설자리를 잃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그것은 종교교육의 특성상 국가의 강력한 지원을 획득할 수 없다는 한계점에 노출되면서 전국적으로 420여개에 달하는 종립학교

중에 기독교 계통학교가 314개교나 된다고 하는데 신앙교육의 한계상황이 노출되었다.

종교교육의 설자리를 잃어버린 것이 가장 컸다.

더군다나 장로교 계통의 대광고교에서는 종교교육 자체를 반대한 김의석 군 파동이 일어나면서 선교하는 학교의 정체성이

문제시되었다. 기독교 신앙으로 설립주체가 되는 문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계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운영에 이사장과 그의 측근들이 깊이 개입하고 학교를 사유화하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치열한 사립학교법 파동문제를 겪었다. 학교 사유화를 막고자 하면서 일어난 학교장 선임문제와 건학이념을 지키려는

노력은 한계에 부딪쳤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종립학교의 사유화는 제어하였지만 기득권층의 집요한 저항은 계속되었다.

산업화 시대 이후 인력공급의 중요한 통로였던 학교가 기득권을 누리려 하는 동안 비대해진 학교경영문제는 학교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한 것이다. 여기에 전교조는 교육계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참교육을 지향하는 전국교직원노조활동은 보수적인 정치세력에게는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었다는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교육의 자율성을 제고하고 대안적 주체를 찾아나가려는 노력에서는 전교조는 보수적인 정부로부터 지나친 통제를 받았다.

이러한 교육활동에 대한 정치적 이념의 노선을 놓고 벌이는 문제와 함께 사립학교의 정체성을 놓고 다투는 사유화문제도 논의의

도마 위에 올라왔던 것이다. 분열과 대립은 가속화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후진적 투쟁양상은 교육의 정치이념문제와 함께 세속화된 가치관의 충돌을 피하지 못하게 하였다.

겉으로는 기독교 계통학교의 신앙교육인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종립학교의 독점적 기득권을 가지고 진통하였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한 한국교회의 기독교 교육은 교회내부의 현실도 모순투성이였다.

고속으로 성장한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을 외면한 교회들은 기득권층이 되어 대형화되고 상업화되었다.

세습이 자행되고 양극화를 외면하였다. 여기에 반대하는 대다수의 가난한 교회들은 양극화의 모서리에 밀려났고 극단적인 대립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양극화 된 교회에서 가시적 교회들의 대부분은 영적 도덕적 가치를 상실하고 사회적 공신력도 잃고 말았다.

전체 교회수와 교인 수에 비하여 교회학교의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가 감소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감퇴현상이 계속된다면 신앙의 대 잇기가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한국의 교회는 사회에 낙오가 될 가능성이 높기만 하다. 따라서 교회학교의 위기는 교회의 위기이며

교회의 위기상황은 신앙의 대 잇기를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대 잇기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교회 생존의 전략적 과제인 동시에 교육목회의 정상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교회의 독창적인 콘텐츠 개발만이 이러한 절체절명의 목회 교육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나올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린이와 성인을 나누고 있는 지금의 예배구조를 개방하여 패밀리 예배체제로 바꾼다든지 부모자식간의 신앙전수를 용이하게

만드는 공동체 생활 조성과 학부모와의 만남을 주선한다든지 이러한 교회 살리기 운동과 신앙의 대 잇기 프로그램 개발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다. 교회학교 생태계는 지금 현재 가정을 포함하여 기독교계통 학교와 교회간의 3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교회학교에서는 교사가 가정에서는 부모가 학교교육에서는 교목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들 3자간의 긴밀한 협력과 일치가 교회교육의 생로를 뚫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

금까지 나온 방법 가운데에서는 가정의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교회학교의 재미있는 교회교육

프로그램개발 교회의 신앙공동체적 대안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7. 기독교 교육과 신앙의 대잇기

우선 기독교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먼저 중요한 것은 기독교 교육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으로

지목된 학교 교실에서 벗어나 신앙공동체 중심의 교육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있는 말씀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되어 있다.

신앙교육은 교과과정 이전에 생활교육으로서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와 함께 부모들의 신앙생활이 기초를 이루는 활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유대교 같은 경우나 힌두교는 별도로 신학교가 있어서 사제를 교육하는 대신 집에서 경전을 읽고 암송하고

대화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과과정을 대신하여 실생활에서 익히고 배운 지혜가 경전 교육이나 신학교육에 우선하는 것이다.

유치원 이전에 모든 것을 가정에서 배운 것이 신앙의 지혜이고 생활의 내용인 것이다.

지금 유럽의 교회들은 이슬람과 동성애에 치여서 거의 죽기직전까지 내몰리고 있다.

그것은 이슬람의 경우 정규신학교육보다는 가정의 세습적인 교육과 특정의 경정을 암송하는 일방적인 교육으로

유럽의 식민지를 대항하는 신앙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물론 증오의 감정이나 압박받는 이들의 교육학(Pedagogy)이 작동하면서 일어난 것이지만 기독교 교육의 교과과정보다는 치

밀하지 않고 엉성한 것이 오히려 낫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다. 물론 서양식의 교리학습과정은 역시 정교한 암송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경전암송과 자유토론으로 무장한 유대교회의 그것과 별반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에 비한다면 지금의 우리 교회학교 교육은 너무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분위기에 지배받고 있는 것이다.

교사나 반사가 공과를 인도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활동하고 대화를 하는 방식이다.

특별한 방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독립정신이라든지 자유인의 방만한 관심사를 포괄하지 않고 있는 무언가에 규제를 받고 있고

무언가에 치여 있는 형식성에 오늘의 교회학교 교육은 숨죽이고 있다. 그것을 웨스터호프 3세는 공동체교육을 가지고

극복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교육의 마지막 출구전략으로서 신앙교육의 패러다임의 변환을 뜻하고 있다.

지금은 여성교육이나 양성평등의 기초이론으로 차출되었지만 70년대 브라질의 기독교교육학자 아이반 일리히의 해방의 교육학은

제도권교육의 한계상황은 직시한 해방교육학의 탁월한 도전이었다.

브라질의 바닥공동체운동도 민중교육학의 중요 내용도 모두 아이반 일리히의 해방의 교육학으로 대신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이론을 대신할 새로운 교육이론이나 접근법은 당대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식축적의 교육학은 이미 선을 보인 것이고 나머지는 민중 스스로 깨우치고 결단하는 해방의 교육학으로 서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에 제 3세계 신학운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고 여성해방운동이나

원주민해방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8. 헤른후트 형제공동체와 감리교 속회운동

이제 중요한 대안으로 남아 있는 것은 대륙경건운동의 본산인 모라비안 교회의 형제단 운동을 돌아보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도시산업사회에서 겪게 되는 비인간화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대안공동체가 있다.

인류라는 공동체는 무리지어 어울리고 패거리를 조직하는 습성을 갖고 있는 사회적 존재들이다.

그런데 극심한 비인간화로 말미암아 인간 공동체의 해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

특히 산업화 물결은 풍요로운 자본주의를 가져왔지만 기존의 마을공동체나 씨족공동체를 대신할 대안공동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하여 자원을 낭비하고 인간관계를 해치는 파괴적인 기제들이 작용하면서 생태계의 파괴가 일상화되고 말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세상에서 인류는 멸망의 구덩이를 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적 불평등의 쇠사슬에 묶이고 말았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에 갇혀버린 무력한 존재인 인간은 양극화의 시련 속에서 희생당하고 있다.

이러한 비참한 인간 삶에 자유를 되찾고 용기 있는 공동체적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18C 시작된 자유 시장 경제 체제는 제국의 시대를 가져왔고 전쟁과 파괴로 인류의 미래를 망쳐버렸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한 번 1980년대부터 영국에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다시 부활하였다.

그것이 신 자유주의 경제 체제라 하였다.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1%의 부자들과 99%의 가난한 대중들 간의 치열한

대결장으로 화해버린 세상에서 인류는 다시 한 번 분노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에 가득한 세상에서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혁명가들과 다수 대중들의 각성은 노예냐 아니면

자유냐 하는 갈림길에 서게 하였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물질과 권력의 마성에 지배받는 맘몬숭배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선택한 것이 공동체이다. 원시 공산사회의 통용문화를 가지고 공존, 공생하는 방식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교회안의 작은 교회를 만들어 속회로 조직하고 속장을 세우고 유사 탁사를 세우고 인도자를 세웠던 것이 감리교였다.

이것이 신앙 공동체성을 담보하는 조직이고 네트워크인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면 형님이 되고 호형호제하는 긴밀한 인간관계의 망을 구축하고 신앙공동체의 생존방식을 섭렵하여

상부상조하는 정신으로 함께 더불어 산다. 자신을 먼저 낮추고 상대를 높여가면서 새로운 생활방식을 훈련하고 질서를 익히는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복음의 열정을 되찾는 이것이 공동체 정신이다.

나누어 함께 먹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족공동체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공동의 식탁에서 위하여 기도하고 공동체의 미덕을 지키고 살아가는 방식을 교육하는 과제가 이것이다.

이것은 고도로 높은 신학적 훈련보다는 실제적인 생활 속에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삶을 누리자는 것이다.

실생활의 공동체적 감각을 맞추고 여기에서 이론도 나오고 형식과 제도가 나온다.

현실에 기초한 예절을 지키고 합의된 규칙에 의하여 질서를 지킨다.

이것은 아무리 대단한 신학적 이론이나 해석학적 주제보다는 실생활에 밀착된 공동체의식을 가진 연대의 틀 속에서

살아내는 힘이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집단의식이 강한 사회인 우리의 조직문화는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는 치열한 대립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정착되고

정립된다. 그것이 공동체성이라는 담보를 통하여 더불어 사는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집단에 속하여 사는 동안 자기희생과 결단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성숙한 인격과 책임감으로 승화되어 기독교신앙의 가치로 구체화되고 실생활의 한복판에서 희생정신으로 성육신하는

것이다. 16C 유럽에서 가톨릭교회의 전횡에 저항하던 개혁파 형제단과 재세례파 공동체들은 용기를 내어 유럽을 탈출하였다.

멀고 험한 항해 길을 따라 신대륙으로 이주해온 이들이 오늘날 아미쉬 공동체라든지 메노나이트들이고 체코의 모라비안 형제단이다. 이들은 오랜 방랑을 청산하고 순례길을 걸어서 신앙의 공동체가 되었고 공동체성을 살려서 대 잇기에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체코 모라비안 형제단들이 보헤미안처럼 방랑하다가 헤른후트에 정주하고 모라비안 선교회를 조직하여 속회를 만들고

밴드를 조직한 것이다.

이것을 존 웨슬리는 본받아 감리교회를 만들고 속회를 조직하였으며 책임자를 감리사라 불렀다.

모라비안들처럼 강력한 형제단 정신으로 무장하고 세계선교의 열정을 품고 있었던 이들은 엄격한 경건생활의 원칙을 지켰고

기도하고 헌신하는 가난한 공동체를 일구어 신앙의 열정은 전파하였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체로서 한 영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를 통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교와

헌신을 강조하였다. 물질적 축복에 앞서서 신앙의 열정과 헌신의 삶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게 다져진 기초위에 감리교는 성숙한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책임적인 존재로서 하나님 나라 일꾼을 세우고 교사를 양성하고

지도력을 개발하였다. 특히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은 교회학교 교사를 가지고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는 것이 바로 목회인 것이다.

교회 학교 가정이 한데 어울려 돌아가면서 서로 축복하고 격려하고 치유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한국교회 위기는 바로 이러한 교회학교가 무너지는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학생 수의 격감만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대 잇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사회윤리가 실종되고

기독교문화가 말살당하는 위기로 내몰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상실이라고 부른다.

지금 우리교회는 교사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고 말았으며 교육활동은 교회의 부속기관으로 전락하였다.

목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으며 교육사 제도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회바닥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겨우 임시방편으로 신학대학과 신대원 재학생들을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조건에서 교회학교 일선의 문제를 맡겨버리고 있다.

결국은장단기적인 처방은 기대하기 어렵고 어린이 중고등부 청년들은 교육전문가들이 외면한가운데 단기처방으로 기관을

유지하고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당연히 교회학교 학생의 정착률은 기대 이하이고 교육 비전무가들이 간여하는

부속기관으로서 전반적인 교육목회 분야를 낙후시키고 있다. 지금 오늘의 감리교 목회전선에서는 교육전문가의 설자리가 없다.

마치도 교회 음악분야가 지휘자 반주자에게 자원봉사를 기대하고서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전반적인 목회구조는 교육목회에

취약하고 불실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대안교육을 실행할만한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수용하고 발전시킬 여지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목회 예산상으로도 기대 이하이고 인력배치 면에서도 기대이하이다.

비전교회들의 교회학교는 유명무실하고 있다고 해도 평신도들이 봉사하는 장으로 존재할 뿐 교육투자를 집중하는 형편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적합한 인력도 공급되지 않고 교회 내에서도 적합한 지도자를 찾기도 어렵다.

오히려 교회들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으면서 교육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세속화된 가치관에 전도된 교회교육은 무너지는 가정과 무기력한 교회학교와 기독교 계통학교의 성경교육의 실종을 바라보고 있다. 종국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목표는 교회학교의 가능성을 하나님 나라 일꾼을 세우는 것이지만 교회교육의 비전을 상실하면서

모든 것을 재검토해야 하는 지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입시위주의 경쟁적 교육풍토 속에서 교회가는 것 마져도 꺼리는 가정교육과 사교육에 목숨을 거는 학부모들을 가지고 있는

교육환경에서는 교회학교의 교육 생태계를 논할 자격도 없다. 가정과 교회학교와 일반학교간의 격차와 대립관계는 기독교적

자아형성과 지도력을 기대할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기독교적 자아확립에 소홀히 하는 교육환경에서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가치란 무력하기만 하다. 결국은 기독교적가치관을 심어줘야 할 시기에 입시지옥을 거쳐 가야만 경쟁주의적 환경과

교육적 체제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의미와 가치는 무력한 것이다.

9. 교회학교 살리기를 위한 대안적 프로그램

급변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교회교육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미래는 다음세대를 키우는 것이다.

교회교육의 미래에 대하여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앙계승 문제이다. 모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호수아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1년을 위해서라면 밀을 심어라 그러나 100년의 꿈과 비전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키우라. 사람을 세우는 일이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말이다. 신세대들은 현실세계보다는 가상의 세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이 분신처럼 지니고 있는 것은 스마트 미디어 기기들이다.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적지 않은 많은 수가 중독을 앓고 있다.

다음 세대가 준비되어야 미래의 희망이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세대 신앙의 대 잇기를 실천하는 교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1. 온 교회가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가 있다.

신앙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은 부모이다. 부모의 동역으로 다음세대를 강의나 세미나 몇 번으로 가정 안에서 예배와 신앙훈련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다음 세대의 신앙교역은 교회학교의 교사나 부장이 아니다.

오히려 가정에서 부모가 신앙교육의 주역을 담당하는 것이다.

신명기 6장 5절-7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부모는 자녀에게 들려주는 교육(7절) 보여주는 교육(8절) 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 자녀들이 하나 둘 떠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자녀의 신앙교육은 부모의 동역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는 첫째 가정예배 둘째 온 가족이 참여하는 QT, 둘째는 자녀를 위한 축복기도가 필요하다.

2. 교회가 믿음의 공동체로서 신앙의 대 잇기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교회도 있다.

온 가족이 참여하는 기독교 신앙교육은 세대통합과 다음 세대 교육으로 요약된다.

즉 세대통합의 전략적인 방법은 세대통합예배라는 이름으로 1년에 6차례 실시한다.

교회의 절기에 맞추어서 세대 간의 동석자 리를 마련하는 방식인데 여기에 패밀리 전체가 참석하는 방식으로 확대한 것이 중요하다. 세대 간의 찬양을 공유하고 중보기도를 합치고 가족단위 헌금을 드려서 모임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킨다.

특히 10대 자녀들과의 대화와 친교자리를 만들어서 소통의 기회를 마련하고 공동으로 캠프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한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교회공동체가 믿음의 대 잇기를 폭넓게 수용하고 공감하는 방향에서 교회의 인적자원과 조직문화를

투입하는 것이다. 교회의 중요 행사를 세대간의협력과 참여로 채울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온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성경말씀으로 QT를 하는 교회가 있다.

현재의 교회 프로그램과 가정 예배의 실태를 보면 신앙교육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이 분명하다.

엘리 제사장처럼 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모습은 신앙계승에 걸림돌이다.

교인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은 크리스천 부모들이 기독교 진리를 제대로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신앙의 불일치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신앙교육의 주체인 부모를 교회교육의 동반자로 인식하여 프로그램에 동참시키고 성경적 믿음을 갖고

함께 사는 공동체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부모와 함께 훈련하고 동행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패밀리 QT를 실시하거나 아빠와 함께 하는 테마여행을 기획하거나 토요 가족기도회를 하고 엄마 아빠가 한데 어울리는

각종 행사를 기획하여 실시하는 방법이 있다.

4. 부모가 가장 좋은 교사가 되도록 세우며 다음 세대를 축복하고 양육하는 교회가 있다.

교회가 아기학교를 운영하면서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전도되어 나왔다.

자녀축복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부모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신앙부모학교를 다니면서 부모의 역할과 사명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참여예배를 드리면서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결단하였다. 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부모를 다음세대 목회의 동역자로 이해하고 부모들을 가장 강력한 교사로 세우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

부모의 역할을 주목하고 다음 세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착시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아기학교 유치원 자녀축복기도회 패밀리 예배 온가족예배 이 모든 것들이 다음세대를 세우는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기획하고 있다.

5. 성경적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교육목회. 성경적 믿음으로 다음 세대에 기업으로 불려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믿음을 물려주는 행위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보강하고 든든히 채워나가는 순례길인 것이다.

예수님처럼 아기들을 환영하는 다음세대 잇기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교회와 가정이 하나 되고 부모가 교사가 되는 교육을 전개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교육 공동체 동감을 넘어 공감으로 나가는 교회공동체 행복을 넘어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교회

공동체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동체 교육을 지향한다.

가정과 교회가 함께 하는 최고의 가치는 예수님이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교회에서 어린이가 환영받고 가정에서도 교회가 환영받을 수 있도록 교회교육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엄마와 같이 하는 QT, 아빠와

같이 하는 침상기도문 엄마 아빠와 같이하는 사역 프로그램 개발과 다문화 가정사역도 추가

6. 거창중앙장로교회는 현재 교인은 430명 출석에 주일학교 재적생이 무려 1000명이 넘는 교회이다. 부임 초기에는 거창에 내려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하였는데 결단을 내리고 시작한 것은 주일학교 부흥운동이었다.

전교인 430명이 참가하는 주일학교는 75명의 주교사와 7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보조교사로 구성되어 있다.

무학년제로 운영되는 주일학교는 전교인이 투입되어 보조교사를 하고 있다.

차량교사, 교통지도교사, 간식교사, 물교사 ,기도교사, 재정교사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는 불꽃목자를 세워서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불꽃목자는 아이들의 영적성장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목자로 선발되자면 주일학교 내에서 우선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또래학생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우선 담임교사가 추천하고 2명 이상 전도한 경험을 가지고서 최종적으로는

성경시험을 합격하여야 한다. 이들의 중점적인 역할은 주일학교의 학생조직을 관리하고 돌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불꽃목자는

거창중앙교회 주일학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존재들이다.

평소 동생들이나 새로 나오는 친구들에게 신앙적 모범을 보이고 교회에서는 학습도구와 간식을 챙기며 아니 어린동생들을

어부바해주면서 형 노릇을 하는 이들이다. 교회학교 부흥을 위하여 교회 전체가 동원되고 담임목사 직접 설교하고 기획하고

인도하면서 교회의 모든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10. 결어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고 위기국면을 타개하는 방식을 논하고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위기국면을 오랫동안 성찰하고

현장경험을 축적한 인재가 부족한 현실에서는 방략도 전략도 무력하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교육 분야에 무관심하던 이들이 교회학교는 부장이 책임지고 교육전도사가 위탁하는 것쯤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교회학교의 학생 수가 급감하는 것을 접하면서 크게 놀라고 낙심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학교 학생 수 급감의 원인에는 교육목회

보다는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도 빼놓을 수없는 것이기 때문에 핑계라도 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극복하고 교회교육의 정상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지나간 시간보다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세대 대 잇기를 주목하는 것인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대부분 기존에 하는 대로 교회는 성인반이

주축이고 교단은 목사가 중심인 것처럼 시간이 좀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교회학교는 부장이 실무는 교육전도사가 책임지라는

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학교의 위기는 단순히 학생 수의 격감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고 가정과 목회와

학교교육의 문제로서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반기독교 정서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위기는 따라서 교회학교 교사들만이 걱정하는 문제가 아니고 부모가 변하고 가정이 기독교적 신앙가치로 거듭나고 학교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해야만 한다는 경각심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가 변해야 가정이 살고 목사가 변해야 교회학교가 사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원래는 기독교교육이라고 해서 포괄적인의미에서 기독교신학과 같은 반열의 문제의식과 학문의 경계를 이루었던 것이

갑자기 학문영역을 벗어나 실용적으로 나가는 것인가. 실제로는 우리주변의 일들이 하향평준화로 내려가고 교회 안에서는

교회학교를 목회의 부속기관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현재는 은퇴하였지만 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었던 은준관 박사는 이것을 기독교교육의 현장에서 학문적

이데올로기로만 접근한 결과로서 방법론상의 오류를 범하였다고 진단하는 이유인 것이다.

기독교교육의 강압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여 현장을 난도질한 결과라고 통탄한바 있다.

그는 이 때문에 교회공동체 교육이 부재하고 교회 구성원 전체를 포용하는 교회교육이 진정한 의미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단언하였다. 머리에만 교리를 주입시켰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맛보게 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니 아무리 예배와 성경공부를 열어도 젋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가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시험에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를 기도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한국의 교회교육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크게는 교회의 위기가 좁게는 교회교육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현장분석을 듣고 있다 보면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세속화 교육과 상충되는 기독교 교육의 실체인 것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겠다. 부모를 신앙의 교사로 세워야 한다. 담임목사가 다음세대 교육을 위한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학생과 인격적인 만남의 관계를 맺고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신앙적 가치관이 통하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라.

우리는 교회학교의 급격한감소가 인구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결론은 신학적각성과 비판적 성찰을 요구하는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인간구원과 교육의 과제를 직면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성경적 믿음으로 보수적인 신앙의 가치를 우선하는 공동체 대안으로 설정하고 성령의 감동감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인간성을 기대하고자 한다. 또한 분반에서 일어나는 교사-학생간의 소통이 성경말씀과 현실극복이

상충되는 갈등구조를 통하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말씀으로 새롭게 출발해야만 한다.

다음세대는 멀리 있는 존재들이 아니고 내가 살아하고 동고동락하는 가족 공동체 안에서 양육되고 성장하는 나의 자녀들이다.

이들을 성령의 역사하심을 쫒아 나를 내려놓고 십자가의 주님을 의지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교육도 감동감화로 시작하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들인 구도자들 또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하나님의 의중에

민감하고 계시적 권능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이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살아있는 생명들의 친교와

협력 그리고 공동구성원간의 사랑으로 묶여지는 관계성으로 완성된다. 부모-자녀간의 신앙의 대 잇기 패러다임도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융합되고 교류되는 사랑의 교감인 것이다.

교육도 이와 같아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내어주고 죽기 까지 복종하신 주님을 본받는 결단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도하고 대망한다. 지금처럼 한국교회의 신로도가 추락하고 다음 세대 아이들이 교회 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교회학교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학교 부장 선에서 마감되거나 교육전도사 선에서 종결지을 것이 아니라 전체 목회구조에서 교회학교의 위치와 목회생명이 달린 상황에서 선택해야 할 사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교회목회이며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결단하는 목양자의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말씀 안에서 심령을 새롭게 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 이전세대 신앙인의 자기결단과 소명의식을 되찾으려는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출처 : 당당뉴스(https : // www. dangdangnew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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