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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자료

목회적돌봄의관점으로 보는 기독교 장례예식의 구성

작성자갈렙.2|작성시간26.06.05|조회수60 목록 댓글 0

의례적 기능과목회적돌봄의관점으로 보는 기독교 장례예식의 구성

김 형 락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 실천신학/ 예배학)

∎초록∎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장례의례와 친숙한 종교였다.

기독교가 막 태동할 무렵부터 박해를 받아왔고 박해의 결과는 성도들의 죽음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공 동체는 신앙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순교자들을 하나님의 곁으로 보내고 그들의 신앙을 기리는 의례를 거행했으며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비 단 기독교 장례예식뿐 아니라 타 종교와 일반 비종교적인 장례예식도 죽은 자를

살 아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현세에서 죽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보내는 기능을 하고 있 다.

물론 이 기능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문화 전통의 장례에서도 존재한다.

이러한 기 능은 의례가 갖는 기본적인 목적이고 존재의 이유이다.

그렇기에 본 논문은 의례 이 논에서 기능-구조주의적 입장을 주장한 방 주네트와 터너의 이론을 통해 장례의례의 기능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독교 장례의례에서 적용되는지를 고찰하였다.

어느 사회에서든 거행되는 대부분의 장례예식은 단지 죽은 이들을 이 세상에 서 다른 세계로 보내는 기능만을 하지는 않는다.

장례예식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남아 있는 가족들, 친지들, 지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장례를 통해 유가족들이나 지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이가 무사히 이 세상을 떠나 편하게 안식할 수 있는 장소로 갔음을

안도하며 그들과 보냈던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서서히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게 된다.

그런 의례의 과정을 통해 죽은 이 들과의 단절을 일상에서 인식하게 되고 더 이상 그들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을 극복하면서

본연히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례예식은 가장 강력한 목회적돌봄의행위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현재 한국 개신교회의 기독교 장례예식 이목회적돌봄의차원에서 유가족과 참석한 친지와 지인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기능 이 부족하다는 면을 주장하였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인에 대한 기억과 내 러티브 그리고 기독교적 소망이 함께 어우러진 애도 커뮤니 다스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도달한 결론은 기독교 장례예식에서 목회적 돌봄의 중요한 이슈인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유가족을 위한 위로’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토대로 단절이 아닌 기억의 보존과

장례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위한 의미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보존을 위해서는 의미-만들기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의례를 구성하는 것이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되는 장례 의례 구성과 모든 이들이 참여하고 이들이 중심이 되는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할 수 있는 장례예식이 되어야 한다. 특히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시키는 데 가장 효 유리적인 방법 중 하나는 기독교

초기 역사부터 행해져 왔던 장례예식에서 성찬 예전을 거행하는 것이다.

장례예식에서 기독교 성찬 예전을 거행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초 월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면서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들이 서로 교통하는 신학적 의미가 부여되며 다 같이 참여하는 상징 의례로서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할 수 있다.

Ⅰ. 들어가는 말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다가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과 단절하게 하는 순 간이다.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혈연으로 맺어졌던 가족들, 관계 속에서 함께 고 했 던 친구들과 지인들,

내가 세상에서 했던 일들, 사랑했던 것들, 이루 말할 수 없 는 많은 것들과 한순간에 이별을 하게 하는 것이 죽음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또한, 사랑했던 가족의 일원이나 가깝게 관계를 맺고 지내 오던 지인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큰 슬픔과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 기에 어느 사회 공동체이든지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와 함께했던 공 동체의 일원들과

이 세상에서의 이별을 고하는 장례의례는 항상 존재해 왔으며 이 의례는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기독교 공동체 역시 기독교 형식의 장례예식이 존재해 왔다. 원래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장례의례와 친숙한 종교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막 태동할 무렵 주 터 박해를 받아왔고 박해의 결과는 성도들의 죽음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신앙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순교자들을 하나님의 곁의 로 보내고 그들의 신앙을 기리는 의례를 거행했으며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기독교 장례예식은 하나님을 믿던 신자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그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영역으로 보내고 하나님께 고인을 의탁하는 의례이다.

물론 이 기능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문화 전통의 장례에서도 존재한다.

이러한 기능은 의례가 갖는 기본적인 목적이고 존재의 이유이다.

그렇기에 본 논문은 의례 이론에서 기능-구조주의적 입장을 주장한 방주네프와 터너의 이론을 통해 장례의례의 기능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독교 장례의례에서 적용되는지를 고찰하였다. 어느 사회에서 든 거행되는 대부분의 장례예식은 단지 죽은 이들을

이 세상에서 다른 세계로 보내는 기능만을 하지는 않는다.

장례예식은 그들의 죽 음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남아있는 가족들, 친지들, 지인들을 위로하고 그들 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례를 통해 유가족들이나 지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이가 무사히 이 세상을 떠나 편하게 안식할 수 있는 장소로 갔음 을

안도하며 그들과 보냈던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서서히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 게 된다.

그런 의례의 과정을 통해 죽은 이들과의 단절을 일상에서 인식하게 돼 고 더 이상 그들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을 극복하면서

본연히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기때문에장례예식은가장강력한목회적돌봄의행위이 다.

본 논문에서는 어떻게 기독교 장례가 슬픔에 찬 유가족들에게 돌봄의 도구 가 될 수 있는지를 고찰하고 좀 더 강력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언들을 하 여한다.

II. 기능-구조주의적 의례 이론과 장례의례

1. 기능-구조주의적 의례 이론: 방주네프와 터너를 중심으로 의례에 관한 연구는 유럽과 북미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방대한 작업을 모두 이 연구와 연결시키는 것은 불 가능하다.

따라서본 연구의 목적에 맞는 의례 이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앞 에서 밝혔듯이 이 연구는 기독교 장례예식의 기능에 관한

주제로 연구의 범위 를 맞춰놓았다. 따라서 필자는 의례연구가들 중에서도 기능주의와 의례의 구 조에 대한 연구를 했던 학자들의

이론을 논하려고 한다. 이들의 연구를 논하기 전에 간단하게 의례의 연구가 어떤 흐름을 가지고 발전했는지 언급하려 한다.

초기에 의례 이론을 제창한 학자들은 민속학을 연구하던 사람들로 신화와 부족의 축제 같은 의례들이 그들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독일의 학자인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2)가 이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했고

이후 영국의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Tylor) 3) 가 그 뒤를 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윌리엄 로버 2) 뮐러는 철학자였고 인도에 관한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연구 중에서의 례에 관련된 것은 그리스신화와 인도-유럽의 언어를 비교 연구하면서 새로운 방법 론을 개척했다고

평가된다. 3) 타일러는 어느 민족의 신화를 그저 미개한 문명의 결과물로 이해하지 말고 그 안에 의례적기능과목회적돌봄의관점으로보는기독교장례예식의구성․121 느슨 스미스(William Robertson Smith)는 여러 부족들의 토템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로 의례는

신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적인 질서와 신적인 근거의 관 계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았다.

즉 의례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데 아 주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4)

스미스의 이 결론은 의례연구에 매 우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하였고 이후 의례가 사회 공동체에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연구하는

기능주의적 입장으로 의례를 연구하는 학파가 등장하게 된다.

윌리엄 로버트슨 스미스의 연구 이후 의례에 관한 연구는 여러 갈래로 갈 라지지만 그중에서 의례가 어떤 목적으로 공동체에서

거행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와 그 역할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기능주의(functionalist)의 접근 방식이 대두하게 된다.

이 연구에서는 이 기능주의적 접근을 기초로 한 구조주의 (structuralism)의 이론들을 중심으로 의례 이론들을 논하려 한다.

여러 중요한 학자들이 의례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연구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초를 닦은 사람 은 바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 이었다. 뒤르켕의 의례연구의기초에많은영향을주었지만그중가장중요한공헌은바로인 간의

종교적인 행위의 결과로 인간이 사는 영역이 성(the sacred)와 속(the secular)로 구분되고 의례는 이 성의 영역에서 종교적

실존으로서 인간이 어떻 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계율을 정해주고 교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5)

뒤르켕 이 이러한 사회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의례의 기능을 연구를 발표하면서 이 를 기초로 해서 의례의 순서들과 상징들이

어떤 의미로 공동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 즉 의례의 구조에 관한 연구도 역시 활발해졌다.

그중 가 장대표적인학자가프랑스의학자인아놀드방주네프(Arnold van Gennep) 6) 와 영국의 의례 학자인 빅터 터너

(Victor Turner)이다. 담겨있는 원시적 요소들이 어떻게 문명 속에서 발전하여 영향을 끼쳤느냐를 연 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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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네프는 그의 저서『통과의례』(1909)에서 삶의 전환기를 맞는 사람들에게 거행되는 의례들은 대체적으로 세 단계의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한 세 단계는 분리(separation)-전이(transition)-통합 (incorporation)의 과정이다. 7)

삶의 전환기란 인생에 있어서 탄생, 성장, 결혼, 죽음과 같이 누구나 맞이하는 사건들을 통해 맞는 변화의 기간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건을 맡으면서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정체성을 잃어 더 리게 되고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된다.

또한 그는 의례는 예전의 정체성과 새롭게 얻게 되는 새로운 정체성의 사이에서 이 변화를 좀 더 의미 있고 자연스럽게 이행되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8) 이 통과의례를 통해 의례를 맞는 사람은 세 단계로 그 지위가 나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분리 의 단계는 의례를 맞는 이와 그가 살았던 사회 혹은 공동체로부터 분리가 되는 단계이다.

이행의 단계는 중간단계로 의례의 대상자들이 아직 새로운 지위나 정체성을 맞이하기 전의 상태로 사회와 공동체가 추구하는

법칙 혹은 터부 등 에서 잠시 벗어나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통합의 단계는 이 의례를 통해 의례의 대상자는 새롭게 변화되어 새 정체성을 얻고 이전과는 다른 위치 로 바뀌게 된다.

보통은 이전의 지위보다는 좀 더 의의 존재가 된다. 그렇지만 이 세 단계가 모든 의례에서 똑같은 분량과 강조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인생 의 여정에서 맞는 의례들은 그 맞는 과정의 특징으로 인해 이 세 가지의 단계 중 한 가지를 강조하는 의례가 있다.

빅터 터너는 그의 저서 FromRitual to Theater: The Human Seriousness of Play에서 방 주네트의 연구를 인용하면 서 세 단계 중 하나의 요소들이 강조되는 의례는 다음과 같다고 설명한다.:

장 해에서는 분리가 강조되고 통합은 결혼, 그리고 전이는 임신, 약혼식, 입사 같은 의례에서 강조된다. 9)

방주네프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거행되는 의례는 공동체 의 전체적인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 의례의 당사 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전기를 제공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가 맺은 결론은 의례의 3단계적 요소가 부족 혹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기 능임을 역설하였다.

빅터 터너는 방주네프가 주장한 세 단계의 과정을 인용하면서 이를 좀 더 자세히 세분화하였다.

그는 전이의 과정을 사회적인 중간상태(social limbo)로 구분하면서 이를 리미 널리 티(liminality)와 커뮤니 다스(communitas)의 상태로 규정한다. 리미 널리 티란 정상적인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전이의 과정 동안 특 별한 존재가 되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것에

대해 터너는“불확정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10) 이 불확정적 존재는 사회의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며 여러 중간 단계적인

상징 매체들이 장식되고 성(secred)도 아닌 속(secular)도 아닌 곳에 속해있는 중간단계에 머물러있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존재들의 모임인 커 무니 다스는 전이, 즉 중간단계 시기에 형성되며 이는 자발적, 이념적, 혹은 규범 적인 형식을 띠게 된다. 그가 주장한 이 커뮤니 다스는 사회적인 범주가 일시 적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질서의 역전현상을 통과하면서 변증법적인

과정에 이 르 러 기존의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12)

다시 말하자 면사회 적인 구조의 질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변화(탄생, 성장, 결혼, 죽음 증)를 위한 의례를 거치면서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는데 실제로 이 의례들은 아 이러니 하게도 사회체계의 구조가 일시적으로 해방되는 이도 저도 아닌

(betwix and between) 시기라는 것이다. 결국 그가 주장한 리미 널리 티와 커뮤 니타 프로서 전이의 단계는 실제적 질서와

무질서의 상징들이 난무하고 혼돈 상 황에서 질서를 찾아 나가는 정-반-합의 과정을 통한 수정 상태를 제공함으로 사회구조를

결속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방주네프나 터너가 생각했던 이 해라는 것은 사회적인 구조의 체계에서 개인의 지위 혹은

삶의 자리에 연관된 변화를 공식적으로 위임함으로 사회적인 질서 혹은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들이 주장한 이론들에서 의례는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임 시적 임계적 상태로 상징과 의례행위를 통해 분리-전이-

통합의 변증법적과 정을 완성시킨다.

2. 한국 개신교 장례예식:

말씀 선포 중심의 레고 메나의 의례 앞에서 고찰한 기능-구조주의적 의례 이론을 생각하면서 현재 한국 개신교 회들의 장례예식을

생각해 보면 많은 부분 기능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알 가 된다.

장례예식의 기능에 관해서는 최근 21세기에 발행된 교단의 옛 배서들 중에서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새 예 매서』(2002),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의 『예 배와 예식서』(2016)에 기독교 장례예식은 다음의 세 가지 기능을 갖는다고 정 피되어 있다. 13)

그것들은

(1) 죽은 이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

(2) 유가족을 위 로 하는 것;

(3) 부활의 소망을 선포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 예 배선에서 나타 난 장례예식들은 앞에서 열거한 세 가지 기능들 중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기 능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한국기독교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신앙을 더욱더 확고히

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첫 번째 기능은 죽은 이를 하나님께 의탁(依託) 하는 것으로 이는 대표적으로 장례예식의 의탁기 도를 통해 나타난다. 방 주네트는 장례의 절차는 죽은 이를 위한 애도의 기간이고 죽은 이와 연관된 가족들의

사회적인 행위들은 이 기간 동안 정지되고 궁극적으로는 죽은 이가 살아왔던 사회로부터 다른 세계(저승)로 보내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14) 하나님께로 의탁이라는 표 현은 장례예식의 기능이 기독교 신학과 접목된 결과이다.

만물의 창조주이 시고 이 모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고인을 맡기는 것은 당연한 신학적 결과이다.

또한 세 번째 기능인 장례에 참석한 유가족과 고인의 지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선포하는 것은 앞으로 죽은 이가 기독교

신학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됨을 설명한다.

즉,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설명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죽은 이들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상기시킴으로 죽은 이와 남은 자들의 단 절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있게 함으로 유가족들에 게는 위로를 줄 수 있다.

또 다른 각도에서 한국 개신교 장례예식을 살펴본다면 장례예식을 통해 한 국가 신교(여기서 성공회는 제외)의 죽음에 관한 신학적

성향이 분명하게 나타 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죽음 이후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들의 관계는 철저하게 단절됨을 나타낸다.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남은 자들이 존재하고 죽은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처소들(이곳들에 대한 정 의는

신학과 전통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혹은 상태에 있음을 장례예식 에 반영하여 각 순서와 예문을 구성하였다.

이는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이를 위 한기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에서 그리 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이 머무는 중간단계인 연옥의 교리에 대한 반발과 구분을

위함이라 생각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국 개신교회들은 서교초부터 조상 제사라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금지해 왔고

그로 인해 한국 전통문 화와 마찰을 빚어 왔고 핍박을 받기도 했었다.

죽은 자들과의 교통의 의례로 이 해되는 제사를 금지한 결과로 한국 개신교의 장례예식과 추모 예식에서는 죽은 자와 이 세상에

남은 자들 간의 간극은 분명하게 보여주며 의탁 이후의 문제는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위로와 부활의 소망만을 전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교 미적 전통적인 이유가 기독교 장례의례의 구조를 정하고 제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는 교리 혹은 신학으로서 lexcredendi가 목회 예식 혹은 의례 로서 lex orandi를 결정하고있으며이렇게lexcredendi의

영향하에구성된의 례가 거행됨으로써 참여한 이들에게 기독교의 신학 혹은 교리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15) 15)

안선희는 이러한 현상을 캐서린 벨(Katherine Bell)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구원 종교 의 특색이라고 설명하고 결국

한국기독교 장례예식은 케리 그의 선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가장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유교의 장례에서와 한국 개신교회의 장례예식은 어떤 기능적 차이가 있을까?

물론 방주네프나 터너가 주장한 바와 같이 두 장례의례들은 모두 죽은 이들이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 계 혹은 더 이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전이되는 과정을 수행한다. 그러나 두 의례는 서로 다른 구조로 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장례의례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유교의 장례예식은 의례의 순서들과 상징들을 통해 사회적인 구조에서 벗어난 임시 상태로서의 리미 널리 티를 제공하고 죽은 이들을 애도하여 는 조문객들을 맞는 일들을 통해 어느 정도의 커뮤니 다스 형성을 돕고 있으나

한국기독교의 장례예식은 오히려 죽은 이의 시신을 처리하는 기능과 함께‘하 나님의 품으로’라는 결론과 부활의 확증을 선포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차이는 극명한 의례적 기능의 차이를 보여준다.

정진홍은 한국 전통 유교 상례 에 대해 상징적 행위들, 색깔, 방위, 숫자, 음과 양의 상징, 음식 등을 통해 죽은 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를 미토스(mythos) 적의 례로 상징이 중심이 된‘드라 메나(dramena)’라고 정의한다.

드라 메나는 참석자 들의 의례행위에 의해 이루어진 의례이며, 각각의 순서와 참여자들의 상징적 이 행위들은 전이(transition)의

세분화된 과정들을 수행하게 된다. 16)

실제로 유 교의 장례의 순서들은 하나하나 상징적 의미와 함께 의례의 전체적인 목적과 기능을 완성하는 단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한국 개신교의 장례 예 식은 로고스(logos)의 의례로 말씀의 선포로 이루어지는 ‘레고 메나(legomena)’ 로 정의한다.

레고 메나는 설교자의 선포된 말씀으로 이루어진 의례이며 이 말 씀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구원,

그리고 마지막에 올 믿는 자들의 부활에 관한 교리적 내용들이다

물론 한국 개신교의 장례에 서도 기본적인 의례적 절차들이 있고 그것은 죽은 자들의 시신을 처리하고 매 례 예전의 차별화된

핵심가치에 사실이 들의 주장에 대해 필자의 논지 역시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필자는 좀 더 신학과 예배(예식)의 관계적으로 보면서 교리적인 영향으로 인한 의례의 기능이 축 소 되었음을 주장한다.

장 혹은 화장하여 봉안하는 순서들을 거행하지만 그 의례들의 중심은 바로 말 씀의 선포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결과로 유가족들과 의례 참여자 들은 교리에 관한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반대급부로 죽은 이와의 급 격한

단절을 느낀다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 음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논의하고자 한다.

III. 목회적 돌봄의 관점에서 보는 장례예식:

애도 커뮤니 다스의 구성 1. 애도의 두 가지 중심축: 단절과 보존 이번 장에서는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 유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돌봄의 해결 방안들에 대해 고찰하고 잘한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상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애도라는 주 제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연구돼 왔다.

에모리대학의 목회상담교수였던 로드니헌터가편집한목회적돌봄의사전에따르면프로이트(SigmundFreud) 는 애도란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상실된 사랑했던 어떤 것(사람 혹은 대상) 을 향한 리비도를 포기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과정”18)이라고 기술한다. 그러나 상실된 존재가 자아와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에 따라 리비도의 해방의 기 간이 결정된다.

애도는 인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상실의 결과로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프로이트는 생각했으나 또한 애도는 우울(melancholy)와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19) 대상의 상실이 의식의 틀을 넘어 무의식의 과정에서 그것에 대한 리비도(욕구)를

줄여나가게 되나 필연적으로 이것이 단번에 일 더 나지 않고 애도의 과정을 통해 대상에 대한 리비도의 해방과 그로부터의 자 아의

자유를 이루게 된다. 즉, 대상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죽은 이와의 감정적인 관계를 더 이상 존속하지 않고 새로운 대상과의

애착관계(attachments)를 형성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주장이다. 20)

이와는 대조적인 의견이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을 중심으로 하는 대상관계이론에서 대두되었다.

대상관계이론에서 애도는 사랑했던 상실로 인 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 존재와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와의 내적인 관계를 보존하려고 하는 시도임을 주장한다. 21)

이러한 주 장은 현대 학자들에게 계승되었고 애도의 과정에서 죽은 대상과 단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적·외적으로 존속시킴으로

상실에 대한 치유에 도움을 주는 지속적 이 결 속 이론(continuing bonds theory)으로 발전시킨다.

윤득형에 따르면 이 이론은 20세기 말에 데니스 클래스(Dennis Klass)와 필리스 실비만(Phyllis Silverman)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미국의 학자들로부터 이론적, 임상적 지지를 받고 있는 추세이다. 22)

그런데 이 이론이 죽은 자의 죽음을 부정하고 현실에 살아있는 것처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 고인의 죽음을 인정하고 고인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이 이론의 선결조건이나 핵심은 살 아 있는 자와 고인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과의 기억, 살아 있을 때의 여러 영향들은 고인과 관계된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 가 되기에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데이비드 K. 스위퍼 (Switzer)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프로이트가 상실된 대상으로부터 성적 충동을 회수하는 욕구성을 강조한 반면, 클라인은 사랑하는 대상의 보존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두 입장은 상호 보충적이다.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한 현실이 인정되고, 살았을 때의 그 사람에게 소비

되었던 에너지가 이제는 다른 대상들로 방향을 틀어야 하며, 어떤 사람과의 관 계속에서 느꼈던 만족이 이제는 다른 곳에서부터

획득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 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만족을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죽은 사람과 이전에 형성했던 면들과

내적 관계를 재구축하는데 리비도가 활용될 것이다. 23) 필자 역시 완전한 배제보다는 고인과의 관계와 기억들을 남겨두는 것에

동 의한다. 그것은현대목회적돌봄의방향성이라할수있는내러티브의힘을강 조하여 내담자 혹은 돌봄의 대상들이 적절한 애도

의례를 통해 죽은 자와의 관 계를 점차 놓아주고 그렇지만 좋았던 이야기들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현재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긍정적이라 생각하 기 때문이다.

현대목회적돌봄의영역에서는의례안에서죽은자들과남은자 들 간의 내러티브를 형성하게 하여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남은 자들 이 속한 공동체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의미 만들기(meaning-making) 과정이라고 한다. 24)

그렇기에 장례는 죽은 이를 이 세 상에서 분리시키는 작업이기는 하나 동시에 어느 정도의 연결을 잇게 하는 역 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 안에서 장례의례는 이야기를 공적으로 선포하고 나 상징화하는 작업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서

죽은 이를 기억하게 한다. 앤더슨과 폴리는 이 작업을 위해 기억하기 위한 스토리를 이야기한 는 애도의 시간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25) 일단 이러한 애도의 작업은‘기억’이라는 행위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기억이라는 것은 과거의 사람을 현재로 회상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죽은 자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작업이라 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애도의 작업에서 형성된다. 이런 기억을 통한 애도 행위

는 유가족 혹은 친지를 위한 의미 있는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따라서, 내러티브를통한기억의보존은목회적돌봄을위한장례예식에있어필 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앞에서 한국 개신교의 장례예식은 기억의 보존보다 단절을 중심의 로 하는 의례라고 설명하였다.

한국 개신교회의 장례예식이 거행되는 동안 정 자기 슬픔과 비탄에 빠져 있는 유가족들이 교리적 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선포적

의례로 인해 의례 안에서 고인과의 단절을 강요당한다. 이 단절은 유족들과 조 문객들이 고인과 마지막을 보내면서 애도할 수 있는

시간과 권리를 빼앗아 부 린다. 바로이문제가목회적돌봄의관점에서볼때한국개신교회들의장례예 식이 지닌 가장 큰 문제라 생

각한다. 이는 교리적인 중심 체계를 중심으로 구성 된 의례가 장례의 모든 절차를 지배를 함으로써 나타난 문제이다.

이로 인해 한 국개신교장례의례안에서는단절의강요로인한유가족들과참석자들은소외 를 느낄 수 있다.

이 소외의 문제는 사랑하는 가족 혹은 지인을 잃은 유가족들 과친지들이내러티브적회상을통해그들의슬픔을서서히극복할수

있는기 회를 빼앗아버린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 러 예배 학자들은 한국 개신교회의 장례예식에서 애도 과정을 좀 더 질적 양적 으로 강화시켜 의례화(ritualization) 할 것을

주장한다. 26) 필자 역시 애도의 의례 는 장례에 식에서 매우 중요하며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오히 려 애도의

의례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의례화의 과정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다.

2. 기독교 장례예식의 애도하기:

내러티브 의례 형성과 애도 커 뮤니타스의구성 상실의 고통에서 도망칠 방법은 없다.

약이나 술로 감추거나 처음부터 존재하 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고통을 마주해야 하며, 스스로 혹독한 슬픔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아픔을 미루고

연장시킬 뿐이며 해결되지 못한 슬픔은 매우 강력하고 파괴적인 힘만 갖게 된다.

위의 글은 미국 듀크대학교의 교목이며 목회학 교수인 윌리엄 H. 윌리 먼 이 자신의 책, 『 Worship as Theology

(한국 어명: 예배가 목회다)』에서 인용한 자넷 일지의 글이다.

이 글은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장례예식이 유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짧지만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앞 에서언급했듯이기독교장례예식의목회적기능중하나인남은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은 인류의 모든 문화적 전통의 장례의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앞장에서 언급했듯 죽은 이에 대한 언급 자체가 사라 진 기독교 장례예식에서 유가족들과 조문객들이 고인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표 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고인에 대한 애도를 어떻게 기독 고

장례예식에서 표현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한 장례예식에서“의미 만들 기”를 위한 내러티브 구성은 바로 죽은 이와 가족들 간의 이야기, 죽은 이와 하 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죽은 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을 의례 속에 담 아내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물론 죽은 이를 회상하는 조사(弔辭)의 순서가 개신 교의 장례예식 순서에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죽은 이의 삶의 내러티브를 담아

내기에는 시간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부족한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장례예식은 3일 동안 거행되고 임종 예식-

입관 예식 장례(발인) 예식-하관 예식 혹은 화장 예식(후에 봉안 예식)의 순서에 따라 거행된다.

이러한 예식들의 순서들은 유교의 장례 전통에 기인하였지만 단지 그 시신 을 처리하는 순서에 따라 각각의 의례를 구성하였다.

그런데 유교의 장례에서 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각각의 의례마다 상징과 의미들을 부여함으로 고 인과의 이별을 의례화하고

내러티브의 과정을 만든다. 예를 들어 입관을 할 때, 염습을 끝낸 후 고인을 향해 유가족들이 한마디씩 하게 되어있는데 이때,

고 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표출되기도 하고 원망 등이 나오기도 한다.

사랑의 감 정은 죽음이라는 것이 놓여있을지라도 계속해서 관계를 맺는 연결점이 된다.

원망이 입에서 나왔을지라도 이것은 깊은 내면에서 묵었던 감정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킨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독교 장례의 기본 구조는 죽은 자와 남은 자들 간의 분리를 전제하고 이루어지며 이는 내러티브에

형성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앞에서 방주네프와 터너의 이론을 언급하면서 삶의 과정을 위한 통과의례에서 중립적인

리미 널리 티와 의례에 참석한 이들로 모인 커뮤니 다스 가형성 된다는 것을 소개하였다.

필자는 이 의례에 의해 형성된 중립적 단계를 통해 앞의 단계와 뒤의 단계의 차이와 발전을 공동체에 공표하고 공공의 안녕 고

질서를 유지한다는 기능-구조적 이론을 모두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28) 개 인적인 차원에서 장례에 형성되는 커뮤니 다스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큰 위로를 주며 기억의 보존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 을 한다.

이를 위한 커뮤니 다스는 애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이 애도는 죽은 이 와 가족 그리고 지인들 간의 내러티브의 나눔을 통한 기억과

감정의 공유를 통해 일어난다. 이는 하나님의 이야기와 죽은 이의 이야기 그리고 애도하는 공동 체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면서

이루어진다. 29) 그러면 이러한 애도 커뮤니 다스 형성을 위해 기독교 장례예식에는 어떤 요소들이 포함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 을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실천적 방안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장례가 진행되면서 드리는 각 의례들에 대한 흐름과 주제들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장례예식은 순서에 따라 임종,

입관, 장례(발인), 하관 혹은 화장(그리고 봉안)의 순서로 거행되는데 이것은 시신을 처리하는 기능적 순서 에 따른 의례들이다.

목사들은 각각의 예식에서 설교를 하게 되는데 실제로 각 각의 예식들과 설교의 중심 주제들은 각 목회자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존하고 있다. 30) 목회자는 3일 동안의 장례를 집례하기 전에 전체적인 예식들의 진행이 28) 필자는 의례가 사회의 구조적

안녕과 질서를 위해 존재한다는 구조주의적 입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구조와 기능적 이해는 의례가 구조적 패턴을 형성하여 구조 안과 밖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형성하고 구조적으로 해석된

공간 밖의 존재에 대한 배제의 이항대립적 구조를 형성시킬 수 있다.

오히려 의례는 이러한 구조를 해 체하고 포용적 기능을 수반해야 한다.

개신교의 대부분의 예식서에는 각 예식을 위한 성서의 본문이 정해져 있고 어떤 경 우에는 짧은 설교문이 있으나 전체적 예식의

주제와 내용을 어떻게 잡고 진행해야 의례적기능과목회적돌봄의관점으로보는 어떻게 하나의 주제에 따라 진행될지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임종 예식에서는 고인과 가족들의 관계와 가정에서의 삶의 내러티브를 중심 과 가족의 기억의

공유를 중심으로 구성한다. 입관 예식에서는 유족들과 지인들 이 고인을 보는 마지막 시간이기에 참석자들이 그의 죽음을

인지하고 부활의 소망하는 의례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 집례 자는 예식을 위한 연도(litany)를 준비하여 집례 짜와 참석자들이 함께 기도하도록 하 며 성경의 본문 역시

고린도전서 15장을 돌아가면서 봉독하면서 부활의 소망을 모두의 입으로 읽으면서 확증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장례(발인) 예식에서는 고 인과 여러 지인들 그리고 교회와 사회적인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내러티브를 중 심으로 하나님과 고인,

그리고 남은 유족들과 지인들을 있는 내러티브와 의례 를 중심으로 구성한다. 전체적으로 이를 마무리하는 극적인 효과는 성찬을

집 해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성 찬위 거행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마지막 하관 혹은

화장과 봉안 예식은 기존의 다수의 개신교회의 예식서에서 다룬 바와 같이 하나님의 품으로 안식하는 고인에 대한 마지막

의례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등을 중심으로 한 찬송과 기도 그리고 말씀을 선포로 하는 예식을 구성하면

하나님, 고인, 가 족과 지인들 간의 내러티브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둘째, 장례예식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함께하는 애도 커뮤니 다스가 형성돼 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개신교 장례예식들은 집례자가 예식을 주도하고 말 씀을 선포하는 반면에 유가족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수동적으로 예식에

참석을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다 보니 집례의 무게중심이 집례 저에게만 쏠 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석한 모든 이들이 애도의 커뮤니 다스가 되기 위해서는 집례 짜와 유가족 그리고 참석자들이 예식의 모든 부분에 능동적 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의례의 순서들이 필요하다. 앞에서도 제안을 했지만 성경 봉독을 집례 짜와 회중이 교독을 하는 방법이나 인원이

적을 경우 한 사람씩 읽 는 방법이 있다.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만 고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관한 시편 속을

서로 교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한 기도 역시 장례의례를 위한 기도들도 연도로 준비하여 집례 짜와 참석자들이 서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기도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집례하는 사제가 없이도 평신도들끼리 장례예식이나

위로 예식을 할 수 있도록 연도의 형식으로 구성하였고 이 방법은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특별히 이 예식에서는 참석한 사람들의 신분에 따라 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문들(예를 들 면 일반 문상객의 기도, 자녀의 기도,

친구의 기도 등)이 있기에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따라 하며 미사에 참석하게 하고 있다. 31)

개신교의 장례예식도 문상객들 과 유가족의 참여를 위한 의례 순서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순서들 이 의례 안에 포함이 될 경우 고인에 대한 내러티브의 기억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더욱 강하게 어우러지는

애도 커뮤니 다스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셋째, 한국 개신교 장례예식이 애도의 커뮤니 다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징과 움직임

그리고더라 메나(dramena)를 지향하는 기독교 의례인 성찬 예전을 거행해야 할 것이다.

앞 장에서 필자는 정진홍의 글을 인용하여 문자와 언어 중 심의 레고 메나 형태의 의례와 상징과 행위가 동반되는 의례로서

드라마 나를 형 태의 의례를 구분하였고, 레고 메나 중심적인 한국기독교 장례예식에 대한 문 제점을 제기하였다.

기독교 장례예식이 애도 커뮤니 다스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서는 좀 더 드라마나 적 요소가 가미된 기독교 장례예식을 거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대해 토마스 롱도 같은 주장을 하는데 그는 장례를 하나의 드라마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장례에 사용되는 언어, 즉 말씀의 선포에도 복 음이 선포되나 장례의 행위와 의례의 상징들도 복음을 전달하며 장례의례 가

일어나는 공간, 음악, 움직임과 동작들, 그리고 모든 순서들도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복음을 선포한다고 주장한다. 32)

이러한 총체적인 드라마적의 례를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순서는 바로 성찬 예전이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 과 피의 상징인 떡과 포도주를 떼어 나누면서 먹고 마시는 의례를 통해 상징과 행위 그리고 극적인

요소를 통해 하나님과 죽은 이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교통(communion) 하게 한다. 그렇기에 초기 기독교의 장례식에서는 성찬 이 매우 중요한 의례였다.

그렇기에 필자는 드라마나 적 장례예식을 구성하기 위해서 성찬 예전이 장지를 떠나기 전 장례(발인) 예식에 거행되어야 한다고

생 각한다. 이 내용에 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에 필 자는 다음 장에서 집중적으로 이 내용에 관해서

다루고자 한다.

IV. 성찬 예전과 장례예식

앞에서도 언급했듯 기독교 장례예식의 기능은 하나님께서 죽은 이를 거품 에 거두시는 것을 의례화하고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바라며 부 활의 신앙을 가지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는 소망을 지니도록 위로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적 구조에서는 죽은 이와 남은 이 들 이 이 의례 안에서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저 떠나보내는 절차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 지금의 한국 기독교의 장례예식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애도를 위한 내러티브와 애도 커뮤니 다스를 구성하기 위한

시도는 성찬 예전을 거행함으로 극대화된다고 생 각한다. 이번 장에서는 이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1. 장례예식에서 성찬 예전의 거행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고찰 기독교 장례예식에서 성찬 예전을 거행하는 실제적 사례들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자료들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이는 그레코 로마 문화의 장례식사의 전 통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33) 기독교가 시작될 무렵 의 그리스 로마 문화권의 장례는 고인을 저승으로 보내는 축제의 의례였다.

박종환은 고대 그레코 로마의 장례식사와 초기 기독교에서의 장례 성찬의 전통이 연관성이 있으며 먹고 마시는 이교적 축제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교통하는 사건이 성찬 예전을 통해 이루어짐을 믿었기에 성찬 예전으로 대 째

되었음을 주장한다.

이 축제의 전통을 기독교에서는 장례예식에서 성만찬을 거행함으로 오히 여신 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전자의경우죽은자와함께하는식사라는의 미가매우강하지만기독교의장례예식에서성찬을거행하는것은식사라는의 미보다 종말론적 신학의 영향이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교통이 이루어짐을 초기 기독교인들은 믿었었다.

비록 같은 식 사의 나눔이었다 하더라도 그레코 로마의 장례식사는 술을 마시고 취해서 춤추는 순서 같은 만찬의 분위기였으나

기독교의 장례예식은 매우 엄숙하고 경건 한 성찰의 순서로 승화시켜 나갔다. 34)

이미 장례예식에서 성찬을 거행한 사례는 기독교가 태동할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장례예식에서 성찬을 거행하는 것에 대해 어 떤 의미를 가졌을까?

물론 이 당시의 성찬이 지금 현대교회에서 제시하는 신 학적인 의미들을 참여한 사람들에게 세세히 설명되거나 고지되면서 거

행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을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성찬은 예수그리스도의 최후 의 만찬에서 초기 공동체의 주의 만찬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제도화된 교 회에서는 성찬으로 발전해 왔다. 35)

그렇지만 성찬 자체가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 니코 있으며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하는 만찬이라는 신학적 의미들은 사도전승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의 문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찬 이 거행될 때 성찬에 참여한 공동체들이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서 천상의 식사 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는 성찬 기도의 예배 인사에서“마음을 드높이(sursum corda)”라는 구절과

4세기 이후 나타난 성찬 기도문의 거룩 송(삼성 송, Sanctus et benedictus)에서 천상의 천사들과 하늘의 모든 성인 성자들과

더불어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36)

이들에게 성찬은 단순한 죽음의 기 염이라는 과거적 회상의 사건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34)

물론 일부 기독교 지역에서도 술 마시고 축제 같은 분위기의 장례식 사도 행해졌다고 기록이 남아있으나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예를 들면 암브로시우스나 아우 구스티 누스 같은) 이러한 풍습을 금지하고 비판하였다.

중요한 수단으로 의미 부여를 했으며 이는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 에게 일어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찬이 장례예식에서 거행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성찬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종말적인 의미를 담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 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회상하고

기념(anamnesis)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이는그리스도께서하신일이며성찬이거행되는가운데성찬을집례하 고하고 있는

모든 참가자들에게도 현재적으로 임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렇 지만 장례예식에서의 성찬은 이미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회 상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고

죽은 자의 무덤 앞에서 예수께서 다시 오 실 때 몸의 부활을 기대하는 통로이며 죽은 자들과 남아있는 자들이 교통 (communion)

하는 통로이다. 이에 대해 박종환은 “성찬은 죽은 자와 함께하는 기독교적 식사라는 의미에서 죽은 자와 산자의 교제의 표현”임을

강조한다. 37) 이것은 사도신경에서 고백되는‘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 38)’에 대한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기독교 장례에서 이 의미가 극대화된다.

그렇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죽은 이의 무덤에서 혹은 장례를 치르는 교회 에서 거룩한 식사를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죽

은 자들과 교제를 했다. 바 로이 점이 기독교 장례예식에서 성찬 예전이 포함되어야 하는 의미이다.

2. 상징 의례로서 성찬 예전을 통한 교통과 애도 커뮤니 다스의 형성 37) 박종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고대 그레코로만

장례식사(Refrigerium)을 통해 본 음식과 공동체의 형성,” 192. 38) 개신교에서 사도신경의‘성도의 교통’은 번역상 살아있는

성도 간의 교통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원래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이들과 살아있는 성도들의 거 뚝한 교통을 의미한다.

이정순은 한국 유교 제사를 효의 행위로 보았고 또한 성도의 교제(Communion of Saints)로 이해했으며 이를 위해 제사에도

성찬을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물론 결론적으로 장례와 제사에서 성찬을 거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 한 주장이지만

이 정순은 C. S. Song의 주장을 토대로 신학적인 면으로 접근하였고 필자는 초기 기독교의 장례예식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성찬이 갖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격과 성도의 교통을 강조하는 바이다

앞의 내용에서 한국 개신교 장례예식에서 필자는 고인과 참석한 사람들과 의 단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부분을 극복하는 것이 애도 커뮤니 다스 를 형성시키는 장례예식이 되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성찬은 다음과 같은 이 유로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시킨다고 생각한다.

첫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성찬 예전의 신학적 의미는 장례예식에서 나타 나는 단절의 문제를 극복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찬이라는 의례는 시 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의례이며 예수그리스도와 성찬을 집례하고 성찬 을 받는 사람들을 연합 39)

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찬 예전은 예수 그 리스로의 탄생, 공생애,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을 기 념(anamnesis) 하며

감사 를 드리고 그가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기대(prolepsis) 하면서 현재의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행위를

상징하는 의례를 통해 그의 몸과 피 의 상징인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성령의 역사로 인해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성찬이 일 어나는 그 장소에서 기념되고 기대되면서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성찬은 인 간이 정해놓은 시간과 공간의 틀을 넘어서 일어나는 우주적 사건이다.

그렇기 에 장례예식에서 성찬의 거행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느꼈던 것처럼 죽은 자와 산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의례이다. 성찬 예 전의 신학적 의미가 그리스도를 통해 이 모든 이들을 서로 교통하게 한다.

그렇 기에 기독교 장례예식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단절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성찬 예전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성찬 예전은 상징체계로 이루어진 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의례이며 회 중들도 참여하는 의례이기에 매우 의미 있는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성찬 예전은 상징체계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단순히 떡과 포도주라 는 사물뿐 아니라 집례자인 4중 행위(떡을 취해서 축복기도하고 떼어 나누어 줌)와 참여자의 행위들(받아먹기 위한 움직임, 기도) 같은

움직임을 통해 적극적으로참여함으로이루어진다.

성찬기도는집례자혼자기도하는것이아니라 회중의 응답이 포함되어 있고 목회자의 상징 행위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의사 건을 재현한다. 성찬 상 위에 차려진 떡과 포도주는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symbol)으로 인식되나

이것이 집례 시 4중상 징 행위로 거행됨에 따라 계속해서 더 큰 의미들이 생성되며 이것을 밧아 먹 고마시는 모든 이들이 이

매개물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공통 경험을 하게 됨에 따라 성도의 교제가 형성이 된다. 40)

장례예식에서 성찬을 통한 교통은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내러티브를 형성하게 되어 고인과의 죽음 의 단절을 극복하는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하며 기억하기와 소망하기를 나눔으로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장례예식의 성찬의 성찬 기도문은 이 의례의 기능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참석자들이 성찬에 참여할 때 성도의 교통을 경험하면서 서로 공유 된 감정을 통해 애도 커뮤니 다스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문으로는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의 2016년판 예배와 예식서 에 나타난 장례예식 성찬 기도문을

들 수 있다. 이 예 매서에 나타난 장례 성찬 기 도문은 예배 시 사용하는 성찬 예전 기도문보다 간략하게 구성되어 집례의 편의 성을

꾀했지만 내용은 기독교적 장례에서 성찬을 하는 이유와 신학적 의미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예식의 말씀’에서도 기독교 장례에서 성찬이 왜 거행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

장례예식에서 성찬을 나누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있었던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리스도인의 무덤 앞에서 성찬을 나누 면서 산자들과 죽은 자 다시 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잔치를 같이 맛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도고( ) 씨(직분)의 장례예식에서 이와 같은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41) 40)

성찬의 상징성은 기호 해석의 과정에서 단순히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상징적 의미 를 넘어서 계속해서 새로운 연속된 의미들이

생성된다. 또한 도입기도 이에서도 이 성찬 예전이 갖는 신학적 의미와 이 성찰을 참여한 유족들과 참석자들이 장례 이후에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한 자세도 참석자들에게 선포된다. .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고( )(직분)의 장례를 치르면서 주께서 친히 제정한 신성 찾을 나누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성찬의 떡과 포도주처럼 그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것을 먹고 마심으로 죽은 자와 산자의 경 계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예배하신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하옵소서.

또한 이것을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생각하고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의 몸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나 누고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42)

이러한 기도 예문과 먹고 마시는 행위들 그리고 집례자인 상징 행위들을 통해 장례예식에서의 성찬 예전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그들만의 새로운 공간을 제 공해준다. 이 공간은 위로의 공간이고 나눔의 공간이며 또한 소망의 공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방주네프나 터너의 리미 널리 티나 커뮤니 다스와 같은 오직 장례를 위해 죽은 자와 참석자가 서로 교통하는 공간이며 그 중심에는

만물의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례예식에서 성찬 예전의 거행은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V. 나가는 말

본논문에서필자는현재한국개신교회의기독교장례예식이목회적돌봄 의 차원에서 유가족과 참석한 친지와 지인들에게 위로와 치

유의 기능이 부족한 다는면을주장하였다또한이를극복하기위해서고인에대한

기억과내러티 브그리고기독교적소망이함께어우러진애도커뮤니타스를이루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개신교 장례예식에서 나타난 신학적인 문제로 인한 고인 과 참석자들의‘단절’이 목회적돌봄의차원에서의의례적

기능을 저하시키는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안이다. 의례연구에서 방주네프나 터너의 기능-구 조 주 의적으로 본 장례는

리미 널리 티 혹은 커뮤니 다스로 표현되는 중간단계의 구현이며 이는 죽은 이를 다른 세계로 보내는 전이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모 든 참석자들은 공동체 혹은 사회적인 지위를 버리고 장례 참석자로서 의례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공동체가 되며

이것이 커뮤니 다스를 이루게 된다. 본연구를진행하면서얻은결과는기독교장례예식에서목회적돌봄의중 요한 이슈인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유가족을 위한 위로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 의견 해를 토대로 단절이 아닌 기억의 보존과 장례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위한

의미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보존을 위해서는 의미 만들기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의례를 구성하는 것이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되는 장례의례 구성과 모든 이들이 참여하고 이들이 중심이 되는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할 수 있는 장례예식이 되어야 한다. 특히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시키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기독교 초기 역사부터 행해져 왔던 장례예식에서 성찬 예전을 거행하는 것이다. 장례예식에서 기독교 성찬 예전을 거행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 를 나누면서 죽은 이와 살아있는 이들이 서로 교통하는 신학적 의미가 부여되며

다 같이 참여하는 상징 의례로서 애도 커뮤니 다스를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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