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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

작성자빌레몬.|작성시간26.06.19|조회수35 목록 댓글 0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

김진흥 (시드니 신학대학)

[초록]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을 대립적으로 이해하고 특히 목회자의 지성을 경원시하는 견해가 은근히 한국 개신교회에 들어와서,

장로교회의 영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본 논문은 ‘장로교회의 목사는 학자여야 한다’는 모토에서 볼 수 있듯이, 목회자의 자질을 중요하게 강조해 온 장로교회의 전통을

돌아보면서,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의 조화가 교회의 영적 건강에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이런 목적을 적절하게 달성하기 위하여, 우선 ‘참된 영성, 목회자의 지성, 그리고 교회 성장’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을 차례로 설명한다.

그런 다음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은 교회의 올바른 성장에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지를 영성과 지성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 및 교회사의 사례들 통하여 입증한다.

성경의 교훈에 따르면 영성과 지성은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야 하며, 균형 잡힌 영성과 지성을 갖춘

목회자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올바른 성경적 ‘교회 성장’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왜냐 하 면 그것은 목회자의 올바른 소명 의식 및 교회 성장에 대한 성경적 비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Ⅰ. 서론

장로교회는 그 역사적인 기원에서 목회자의 자질을 중요하게 강조해 왔다.

개혁주의 신학은 ‘장로교회의 목사는 학자여야 한다’는 모토를 대대로 전수해 온 것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이 격언은 목회자의 영성이 지성과 조화된 전인적인 경건으로 갖추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을 대립적으로 이해하고 특히 목회자의 지성을 경원시하는 견해가 은근히 한국 개신교회에 들어와

있으며, 그것이 장로교회에 까 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견해는 종종 교회 성장론과 연결되어 주장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여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성경적인 목회자상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주제를 논리적으로 다루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우선 제목에서 표현된 세 가지 개념들, ‘참된 영성,

목회자의 지성, 그리고 교회 성장’을 차례로 해명하고, 그런 다음에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끼치는 영향을

고찰하려고 한다. 장로교회의 헌법에서 규정한 고 있듯이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은 교회의 올바른 성장에 사활적인 중요성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논지이며, 그것을 성경적 기초에 따라 영성과 지성을 올바르게 정의하고 교회사의 사례를 통하여

입증하려고 한다. 본론에서 필자가 강조하여 다루고자 하는 첫째 요점은 성경적 개념에 따른 영성, 지성, 교회 성장의 개념을

올바르게 확립하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지성’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의 교훈에 따르면 영성과 지성은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 강조하는 것이 두 번째 요점이다.

그리고 ‘교회성 장’을 신약성경의 개념에 따라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 이 그것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밝히는 것이 필자의 세 번째 요점이 될 것이다.

Ⅱ. ‘참된 영성’의 개념

1. 관계론적 개념으로서의 영성 몸과 영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내적인 구성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영성’ 이란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념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므로, 신적 혹은 초월적인 신앙의 대상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넓은 의미에서의 영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각자의 종교적 확신에 따라 나타나는 생활의 태도’라는 관점에서 영성 개념은 모든 종교에서 발견될 수 있다.

1 이런 관점에서 로마교 사제인 헨리 나우웬은 심지어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깊은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2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만이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가르치는 참된 종교(religio)라고 믿고 고백하므로,

‘참된 영성’도 오직 기독교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성경은 존재론적 관점보다는 관계론적인 관점에서 영성을 가르친다.

‘영적인 삶’이란 여러 컨텍스트에서 논할 수 있다. 불교인, 힌두교인, 회교 인도 모두 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무 종교 없는 사람들도 깊은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말하는 영적인 삶이란 기독교적 삶의 체험에 바탕을 둔, 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이다. 내가 내면 깊이 아는 영적인 삶이란 이것밖에 없기에 나로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이처럼 ‘영성’을 한 개인의 내면적, 종교적 측면에 관한 것으로 넓게 이해할 때, 기독교적 영성의 독특성 혹은 유일성에 대한 이해가

부적절해질 위험이 있다. 기독교적 ‘영성’(Spirituality) 개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2:15, 3:1에서 언급한

‘신령한자’(pneumatikos)에서 유래하였다.

3 기독교회는 처 음부터 이 ‘신령한’ 혹은 ‘영적인’이라는 개념을 성삼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대표적으로 고대교회의 기독교 변증 가인 리용의 이레네 우슬(Irenaeus of Lyon)는 ‘신령한 자’라는 개념을 ‘하나 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을 믿으며,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 하나님의 영을 깊이 받아들이며, (그 결과) 의로운

사람이라 불리며, 그 하나님의 영이 가르치는 대로 순전하고 영적이며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는 자’로 교회적 정의를 내렸다.

4 종교개혁자 칼빈 역시 이 개념을 관계적인 개념으로 보았는데, 고린도전서의 ‘신령한 자’는 특히 성령 하나님의 계시의 빛과

직결되어 이해된다: ‘신령한 자는 하나님의 영을 부여받는 한에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

5 성경에 근거하여 영성 개념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핵심 요소를 잊지 않고 지적한다.

나우웬은 영성을 한 마디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삶’이라고 정의한다.

6 게리 토마스는 영성을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 그분과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7 마가복음을 영성 훈련을 위한 텍스트로 이해하며, 그 텍스트의 내용을 ‘예수’라고 강조하는 유진 피터슨은

참된 기독교 영성은 우리의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역설한다.

8 샌드라 슈나이더 드는 기독교 영성을 ‘그리스도의 신비에 개인적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소개한다.

9 심지어 타 종교에 대하여 상당히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는 현대 로마교 신학자들도 참된 영성은 단 하나 밖에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핵심을 두고 있다고 가르친다: “엄격한 의미로 볼 때, 진정한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그분을 통하여 성삼위에 이르는 영성일 뿐이다. 이것은 영성 생활의 생명적인 원리인 창조된 은총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올 뿐만 아니라, 영성생활에 정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 자신들이 처한 종교적 위치에 관계없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

10 영성의 개념이 아직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영성’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한국 교회 안에서도

‘관계적 개념’으로서의 기독교 영성 이해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11 그러므로, 참된 영성이란 항상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시는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할 개념이다. 참된 영성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써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즐기는, 성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는“기독교 영성, 즉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도록 인침을 받은 믿음 안에 서 시작되는 바 그리스도의 신비에 개인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주님이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강조는 필자의 것).

곧이어 오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 그리스도에 관한 선언’을 소개하고 이런 관점에서 해명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처한 종교적 위치에 관계없이 ...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그의 묘사는 참된 영성 밖에

있는 타 종교의 영성 추구자들에게 기독교 신앙 밖에서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참된 영성’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수영 교수는 한국 교회의 영성 이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두 견해, 곧 장신대 이성춘 교수와 한신대 김경재 교수의 영성

이해에서 ‘관계성’ 개념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사실을 지적한다.

Reform & Revival 2019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이다.

참된 영성은 하나님과의 그런 신비한 연합을 누리는 삶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 우리를 그런 교제로 나아가게 도와주는 수단으로서의 영적인 삶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관계론적 관점에서 볼 때, 영성은 본질적으로 종교개혁적인 용어인 ‘경건’(piety, godliness)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경건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행하는 모든 합당한 행동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12 2.

영성의 다양한 모습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영성의 핵심적 특징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확립하는 것과 나란히,

‘참된 영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드러난 영성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성은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성도’의 삶이며, 성도의 삶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 든 자신이 속한 사회와 상당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2000년에 육박하는 긴 역사를 가진 기독교에서 영성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성의 다양한 표현들은 영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보여주며, 그 가운데서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교회사의 시대와 장소에 따라 기독교적 영성은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었다.

우선 고대교회의 영성은 박해 이전과 박해 이후에 그 차이를 보여준다.

기독교가 ‘불법적 종교’(religio illicita) 일 동안에 박해 아래 있던 참된 교회의 영성은 ‘순교자의 영성’이었다. 이 시대의 참된

그리스도인은 종말론 적 소망 가운데 이 세상에서 나그네 삶을 살았다.

그러나 기독교가 합법적 종교로 인정되고 나아가 국교로 공인된 이래, 교회 안에서는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대두하여, 심지어 로마 제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보는 제국 신학이 만연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교회의 세속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을 떠나

금욕적인 영성을 추구한 게 되었다. 게르만족의 대 이동으로 고전문화가 일거에 광범위하게 사라진 서유럽 중세 초기의 영성은

그 이전까지의 서유럽 교회의 영성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의 전수자이자 동시에 미신 (迷信)의 아버지(pater superstitionis)로 유명한 교황 대 그레고리 (Gregory the Great)라는 인물로 표상할 수 있는 이 과도기에는 고대교회 교부들의 교훈이 잔해처럼 남아 있는 한편, 광범위한

미신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의 영적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4

정치적 문화적으로 서유럽과 다른 길을 걸어간 동방교회의 영성은 전반적으로 서방교회와 큰 차이를 보여준다.

‘필리 오케이’(Filioque) 논쟁으로 표현되는 동서방의 신학적 차이는 ‘명상을 통한 하나님 추구’라는

(기독론과 상당히 독립적인 성령론에 근거한) 동방 교회 특유의 영성 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중세 천 년의 서방교회 역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삶의 정황에 따라 다양한 영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세의 종교개혁은 로마교와 개신교, 그리고 재세례파라는 삼대 흐름을 만들었는데, 그 각각의 그룹에서 나타난 영성은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i Deo gloria)’라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3대 원리들은 영성과 관련해서도 각 그룹의 특징들을 드러내는 지표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개혁 당시부터 개신교 내부에서도 영성에 대한 루터파 와 개혁파의 이해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는데, 그 조그만 차이가

교회사의 진행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5 심지어 개혁파 안에서도 대륙의 개혁교회 와 영국의 장로교회는 그 신앙고백의

강조점 등에서 영성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16

이러한 영성의 다양한 모습들은 각 시대와 장소에서 성도들이 14 중세 초기 교회는 게르만족들에 대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펼쳤으나, 이 과정에서 유럽 각지의 이교적 전통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중세 초기의 복합적인 기독교 사회 형성에 관해서는,

처한 삶의 정황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달리 말하자면, 영성의 이런 다양한 모습들은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추구하는 다양한 ‘방식들’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교회의 전통이나 신학적 입장의 차이도 영성의 이런 다양한 모습을 가져다준 이유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영성의 종류를 분류하는 기준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앞서 살펴본 대로, 교회사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구별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영성의 방향성에 따라 - 개인 경건, 사회 참여,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 인간의 전인(全人) 성, 관계성 가운데 무엇을

주로 추구하는가에 따라 - 기독교 영성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고, 17 인간의 기질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 근거하여

무려 9가지 종류의 영성을 구별하는 견해도 있다. 18

이런 분류들은 성도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영성과 관련하여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일은 교회사에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다.

영성은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라는 그 기본적인 성격상, 그가 속한 교회의 교리와 신학 혹은 성경 이해 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성은 신학의 모든 분야와 연관된 내적 회로 중의 한 분야’이다. 19

따라서 다양성을 쉽게 용인하는 것은 ‘참된 영성’을 찾는 일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게리 토마스의 분류 방법은 기본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칼 융의 인성 구분 연구를 발전시킨 마이어스

브릭스 성격검사(MBTI) 방식을 영성 분류에 적용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대소 교리문답의 강조점과 개혁교회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영성의 차이를

지적할 수 있다. 장로교회의 신조가 칼뱅주의 전통을 따르는 많은 개혁주의 교리서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특징짓고,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는 반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계시와 체험을 함께 묶어 설명하는

인간론적-신앙 체험적 문채(文彩)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영광을 앞세우는 웨스트 민스터 교리문답에 비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위로’가 주된 모티브이다.

그의 영성 이해는 두드러지게 인간 중심적 성격을 보여주며, 그것이 때때로 참된 영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흐리고 있다:

“영성이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 그분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그 길은 하나뿐일까? 꼭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특정 성향에 따라 하나님을 대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각자의 두드러진 영적 기질이다.”20

영성에 대한 이런 식의 인간 중심적인 이해는 그야말로 현상을 기초로 하여 성경을 재해석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런 식의 분류로는 한때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요한이 말년에 ‘사랑의 사도’로 변모한 것을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한다. 심지어 게리 토마스는 영적 기질에 따라 자신에 맞는 방식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런 것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1

그러나,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려고 들고 있는 교회 내의 역사적인 운동들의 경우에, 영성의 차이가 로마교회와 루터교회,

개혁교회, 재세례파 등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는 식의 설명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보여준다. 22

이제껏 나타난 다양한 종류의 영성들을 고려하면서도,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영성 개념의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영성’을 발견하기 위한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점은 오늘날 특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교회에서는 영성의 왜곡과 결핍이 교회 내에 신앙적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왜곡된 영성 혹은 참된 영성의 결핍은 바로 ‘하나님 중심을 떠나 자기중심과 자기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심령’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성을 ‘방법론’으로 보는 것은 영성에 대한 정의와 그다지 걸맞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종교개혁자들이 중세 교회의 ‘영성’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구원론적 함의를 배격하기 위하여 ‘경건’이라는 성경적 용어를 선호하였던 사실을 고려하면, 24 영성을 방법론으로

설명한는 것은 처음부터 큰 약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을 방법론적 개념으로 설명하 는 것이 필요한데,

그 까닭은 오늘날 ‘영성’에 대한 교회의 관심 가운데는 마치 영성을 ‘어떤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방편’으로 보는 시각과

일정 부분 연관되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경건’이라는 전통적인 종교개혁적 개념 대신에 ‘영성’이라는 중세 로마 교적 개념이 널리 사용되는 배경에는

종래의 개신교의 경건 생활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과 더불어 중세적 영성을 추구하려는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정황 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삶의 정황이 다시 중세적 분리주의적 영성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방법론적 개념으로서 영성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영성에 관하여 쏟아져 나오는 저작물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방법론적 논의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놓고 생각할 때에도, 얼핏 보면 그 영성의 개념을 방법론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사실상 영성의 내용을 놓고 살펴보면, 방법론적 개념과 관계론적 개념은 동일한 현상을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곧 우리의 영을 기준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로 나아가는 방법을 물을 때,

그것은 방법론적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에, 그 관계의 시작과 본질에

“종교개혁자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 그들은 중세의 행위 구원적 영성 신학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중세 교회는 구원론에 근거하여 구원을 위한 사람들의 추구와 행위 노력을 ‘영성’이라 불렀다.

그 대신 종교개혁 교회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 구원에 감사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성도의

삶을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 그러한 모습을 ‘경건’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구원 전에 구원을 위해 선행하는 사람들의 삶을 ‘영성’이라 불렀던 대신, 이미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성화의 삶을

‘경건’으로 구별하여 정의하였던 것이다.”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관계론적 개념으로 영성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또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 충만’(행 4:31, 6:3, 롬 15:13), ‘성령의 열매’(갈 5:22-26),

‘하나님의 전신 갑주’(웹 6:11-18)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들은 방법론적 개념에 따른 영성 이해라는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의 소명 의식(고후 5:14, 18-20)에서 관계론적 개념으로서의 영성 이해의 풍성함을 깨달을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영성은 - 그 자신이 강조하는 성령 충만, 하나님의 전신 갑주, 성령의 열매 등의 개념에서 드러나듯이 -

자신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들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그의 영성은 그리스 도의 화해의 복음의 전파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바울의 영성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놀라운 차원을 깨닫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바울의 영성을 특징 지웠다.

그 영성은 무엇보다 도 성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에 대한 전인격적인 몰입이다.

사도 바울의 경우, 영성의 다양한 색깔들이라는 관점에서 쉽사리 분류한 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대한 그의 조직적인 소개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토대로 사용되고 있으나, 25

그는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체험들도 - 방언과 황홀경, 심지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체험(고후 12:2)까지 - 그의 영성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다채로운 영성이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이루는 삶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 일차적으로 주는 의미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서 다스리고 교제하는

것이며, 그 직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갖추어주신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들 자질들은 그 목적에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과

유사한 구조이다. 그러므로 방법론적 개념으로서의 영성은 관계론적 25 대표적으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삼분법 - 비참,

구원, 감사 - 구조는 로마서의 구조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개념의 영성이라는 관점 아래 자연스럽게 포용될 수 있다.

Ⅲ. 목회자의 지성

1. 지성(知性)의 정의 및 목회자에게 있어서 지성의 역할 지성(intellect)은 ‘개념들과 정보들을 이해하거나 혹은 처리하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인 이성(reason)은 ‘판단이나 결론, 혹은 추론을 내리는 데 필요한 개인의 능력’으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26 지성은 인간이 자기 외부의 사물에 대하여 ‘비물질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는 영적 기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지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식의 방법 곧 감성적 지식과 구별된 영적 지식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27

지성은 모든 사람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에도 지성의 사용은 불가피하게 포함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의 합리적인 반응을 요청할 뿐만 아니라, 올 바른(proper) 반응을 요청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지성을 올바 로게 혹은

선하게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28 목회자에게 지성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서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모범을 들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지적 인식은 감각적 인식과는 완전히 다르고 또 그보다 훨씬 우월하다.

감각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은 언제나 실존적 질서의 단일 대상들과 관련된다.

그러나 관념이나 개념을 통해 얻는 지식은 개별성에 관해서 언제나 보편적이고 추상적이며 미확정적인 것이다.

인간에게는 동물의 경우처럼 감성적 지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순수한 영적 존재들처럼 지성적 지식이 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의 근본 원리는 신앙과 생활에서의 유일한 표준인 성경에 대한 열정적인 연구의

산물이자, 동시에 그런 말씀 추구를 격려하고 고무하는 푯대이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의 영성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헌신적인 연구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성경의 바른 뜻을 해명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자들은 계시가 주어진 원래의 텍스트로 (원어 성경 본문으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 라,

성경 구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확립하기 위하여 고대교회의 교부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예를 들어 칼빈은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성삼위 하나님에 관한 교회의 기본적인 교리가 확립되었던

교회 사의 초기 500년간을 - 학자에 따라서는 좀 더 좁혀서 칼세돈 공의회가 개최된 451년까지를 - 기독교의 황금시대로 간주하고, 그 시대의 교부들의 저작들을 대단한 열정으로 공부하였다. 29

종교개혁 당대에 일어난 로마교와 재세례파와의 무수한 논쟁들에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답으로 삼았으며, 그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의 중요한 한 척도로 교부들의 성경 해석을 활용하였다.

이것은 대단한 학문적 노력이었는데, 당대의 종교개혁자들이 그 자신을 신학자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목회자로 이해하여 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들이 관여하였던 신학적 논쟁들은 거의 대부분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르게

세우려는 그 근본 목적과 연관되어 있었고, 실제로 교부들의 저작을 연구한 그들의 지적인 노력이 성경 이해와 해설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종교개혁자들의 교부 이용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 조사의 결과, 종교 개혁자들이 기독교 인

문주의의 슬로건인 ‘원전으로’(ad fontes) 돌아가 성경과 고대교회의 교부들의 가르침을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였는지 잘 알수 있다. 이런 종교개혁자들의 사례는 목회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올 바 로게 이해하고 말씀을 바르게 수종들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지성적 활동을 하였는지 생생하게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특별히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의 지성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루터파 종교개혁자들과 비교할 때 한층 더 두드러진다.

성찬론을 둘러싼 루터파와의 논쟁에서 개혁파 종교개혁자 들은 ‘오직 성경’의 원칙을 주장하는 바로 그 루터파 신학자들이 성만찬의

신비를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는 성경의 권위를 올바르게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탐구를 부당하게 중단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당대 개혁파 교회의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두 도시, 곧 취리히 교회와 제네바 교회 사이의 기념비적인 성만찬

일치 선언인 ‘취리히 합의’(Consensus Tigurinus)의 해설에서 칼빈은 ‘오직 성경’ 원칙에 대한 루터파의 일관성 없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날마다 ‘주의 말씀, 주의 말씀’이라고 부르짖는 것이 습관인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애쓰고 노력한 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말씀보다 성례들을 더 높이 칭송하는 것보다 불합리한 일도 없기

때문에 - 사실 성례들은 말씀을 인치는 부가물들이다 -

그들은 (성례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견해에서) 말씀에 적합한 것을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31

칼빈의 이런 비판은 성경과 교부에 대한 루터파 신학자들의 지성적 노력의 부족에 관한 타매(唾罵)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은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존중하고 따르며,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tota scriptura)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므로, 기도와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수종드는 일에 전념해야 30 종교개혁자들의 교부 연구와

이용에 관한 근래의 대표적인 연구서로서, 할 목회자들에게 지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바르게 분별해 내도록 우리를 돕는 주요한 수단이다. 2.

한국교회의 현 상황에서 지성의 중요성 지성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을 들자면, 서구 교회의 역사에서

나타난 중요한 신학적 교회적 논쟁들이 한국 교회에서는 내용적으로 깊이 있게 경험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교부 시대 및 종교개혁 시대의 무수한 신학적 교회론적 논쟁들은 개론적인 수준에서만 소개되어, 얼핏 보면 하나님의 교회를

성경 말씀으로 바르게 세우고 목양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무관한 ‘과거의 지적 논쟁들’로 받아들여진다.

그 결과 종교개혁 시대의 그 치열한 논쟁들에 담겨 있는 구원론적 교회론적 함축 의미들이 목회자들에게 주는 귀한 교훈들과

반성 거리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한 예로서, 앞에서 언급한 개혁주의 성만찬론과 연관하여, 한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한 종교개혁자들의

깊이 있는 묵상과 가르침을 깊이 있게 접하지 못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그 문제의 구원론적 성격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다.

종교개혁 당대에 치열하였던 성만찬 논쟁의 핵심도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예수께서 물 위로 걷는 것, 문이 잠긴 다락방에 들어온 것과 같은 중요한 묵상의 소재들이 단순히 ‘예수님이 신이므로

가능하다’는 식으로 가볍게 다루어져 왔다. 그 문제와 관련된 기독교의 영원한 신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인성의

관계 문제는 신학적으로도 목화적으로도 깊이 묵상되거나 토론되지 않았다.

이것이 형이상학적인 기독론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구원론적 문제인데도 말이다.

좀 더 심각한 것은, 서구 교회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경험하였던 맹렬한 세속 주의의 도전에 대해서도 한국 교회는

내용적으로 익숙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참된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곧 성경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계몽주의 사조 이래로 교회 안팎에서 아주 강렬하게 밀어닥쳐 왔는데도, 보수적인 한국 교회는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주의 기조에 편승하여 이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깊이 있게 학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목하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탈 보수화, 탈 이념화 과정을 고려하면, 교회는 성경과 신앙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들에 대하여 종래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종래의 대처 방식은 영성과 지성이 조화된 것이라 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솔직하게 말하여 보수적인 한국 교회에서 지성은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고, 여전히 교회 성장을 위해

‘반지성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진 ‘영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반지성적 영성 추구는 그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의 성장기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보수 주의적 사회 기조가 크게 변하면서, 사회 일반 및 평신도들의 지적 수준이 크게 올라갔고, 대학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기독교

세계관 이외의 관점을 접하면서, 성경과 신앙생활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인 요청을 점점 더 많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껏 보수적 사회 분위기로 억압되어온 합리적인 의문 제기들이 갈수록 많이 나타날 것이고,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향하고 있는 서구적 발전의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과거에 서구 교회에 대두되었던 기독교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 제기가 폭발할 때가 머지않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교회의 지난 역사에서 관찰할 수 있듯이, 한 세대의 반지성적인 신앙은 그다음 세대의 배교(背敎)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신중하게 지성의 역할, 아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여 지성을 구비한 참된 영성의 필요성이 요청된다.

영성과 지성의 관계 세계와 인생을 조망하는 하나의 세계관으로서의 기독교 신앙은 ‘지성’이라는 한 가지 개념만으로는 올바르게

다 이해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대단히 포괄적인 개념이다. 참된 기독교 영성이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솟아나는 반면,

지성은 인간의 영혼의 한 기능에 불과한 것이므로, 기독교 신앙을 지성을 통하여 이해하고 설명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 신앙을 해명하기 위하여 지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접근방 식은 성경의 가르침이기보다는 합리주의적 계몽사상의 영향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풍성함을 우리가 체험하는 일을 가로막는다.

한 가지 두드러진 사례로서, 영국의 신학자 알리소터 맥그라스는 자신의 회심 이후의 신앙 여정을 설명하면서, 참된 영성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자원들을 동원할 필요를 역설한다:

“내 안에는 그리스 도를 알고 사랑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자원들이 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일부만 사용했다.

내가 배운 길, 그러니까 인간의 지성만을 사용해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길은 신약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합리주의적인 계몽주의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지성을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나는 ‘이 세대의 신’에 마음이

어두워져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했다(고린도후서 4:4).

나는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알아 가기 위해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모든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33

참된 영성이 없이 지성으로만 기독교 신앙을 접근하는 잘못을 맥그라스는 ‘울타리는 있으나 그 안에 살아서 울부짖는 사자는

없는’ 것으로 묘사한다. 반면에 성경의 메시지에 대한 지성적 추구와 그 결과, 곧 교리가 없는 영성은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교리란 그리스도의 살아 계신 임재를 바로 이해하게 해주는 틀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애매모호하지 않게 해 주고’, 또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인격적 임재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주는’ 선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젊은 세대의 그리스 도인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지성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다: “나 자신의 경험과 기타 요인들을 감안할 때,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의 주요 개념이 이치에 닿는다는 점, 그것이 안전한 기초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그것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손상을 입어 빈약해진다는 점에 확신이 필요하다.”35

이처럼 자신의 신앙 행로를 돌아보면서 맥그라스는 지성의 역할과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참된 영성으로 승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고백한다. 특별히 기독교 신앙의 토대인 성경에 대한 올바른 자세에 관한 그의 통찰은 우리가 ‘참된 영성’과 ‘지성’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의미 깊은 정보를 제공한다: “나는 성경을 정보의 출처로 읽었다.

그러나 나보다 현명한 사람 들은 성경을 형성의 출처로 읽었다. 즉 지성과 가슴과 정서가 말씀의 영향을 입어 빚어지고

형성됐던 것이다. 나는 제대로 성경 읽는 방법(지성이 가슴으로 내려가 둘 다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36 지성은 참된 영성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러나 그 자체로서 충분한 도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앞서 ‘참된 영성’을 관계론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제 인간의 영혼의 능력인 지성과 참된 영성의 관계를 생각할 때, 관계론적 개념으로서의 참된 영성,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관점에서 이해한 영성의 ‘주도권’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이라는 특별계시를 신앙과 영성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개혁주의 교회의 입장에서 우리는 영성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고백해야 한다. 신앙은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37 그 생명이 우리의 영혼을 자극하므로

참된 영성이 우리 가운데 일깨워지는 것이다. 우리의 지성은, 그 거룩한 생명이 우리 안에 전인적으로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심화 시 키 는데 사용되는, 우리의 영의 여러 가지 기능 가운데 탁월한 한 가지 요소의 다.

신앙은 물론 지적 요소(notitia), 정서적 요소(fiducia), 의지적 요소 (assensus)를 겸비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도 지성 이외의 다른 영적 품성들이 발휘되어야 한다. 38

지성을 비롯한 그 모든 기능들이 성령의 주도 하에 온전히 발휘되어 삼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들어가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을 우리는 ‘참된 영성’이라는 개념으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성은 참된 영성이라는 포괄적인 개념 아래 그 적절한 자리를 차지해야 함을 알 수 있다.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목사 헨리 스쿠 걸은 신앙을 ‘거룩한 생명’으로 규정하였는데, “신앙이 그렇게 칭해지는 이유는

하나님을 그 원인자로 모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말기 암 아 사람들의 영혼 속에 생겨나는 신앙의 원척과 기원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신앙의 속성, 곧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인간의 영혼 속에서 빛나는 전능하신 자의 형상을 닮는 신앙의 속성과

관련되어 있다... 신앙을 부여받은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 속에 계시는 하나님, 그들 안에서 형상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만일 우리의 신앙을 이처럼 규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한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관점에서 영성을 이해할 때에 그 주도권을 하나님께, 특히 우리 속에서 우리의 영성을 불러일으키는 성령 하나님께

두는 것이 합당하다. 38 웨스트민스터 소 교리문답 90문답: “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구원에 이르는 효력이

있습니까? 답. 말씀이 구원에 이르는 효력이 있게 되는 것은 마땅히 부지런함과 준비와 기도로써 임해야 하며, 신앙과 사랑으로써

그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우리의 생활에서 실천하여야 합니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시편 묵상을 통하여 발견하고 실천하고 가르친 성경 묵상의 원리, 기도(oratio), 묵상 (meditatio),

실천(tentatio)의 원리는 곧바로 참된 영성을 훈련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성경 묵상과 관련해서 종교개혁자들이 지성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였는지에 대해 서는 앞에서 언급하였다.

Ⅳ. 교회의 성장

1. 교회 성장에 대한 성경적 개념 교회의 성장 역시 참된 영성 및 지성의 개념을 다룬 방식과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성경적인

관점으로 이해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전제를 앞세우는 까닭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교회 성장

혹은 교회의 부흥이 꼭 성경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관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의 성장이나 부흥은 여전히 출석교인 수의 증가와 같은 ‘양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현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중요한 주제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편파적으로 강조한 결과이다.

사도행전이 증거하는 초대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확산을 오직 그 외형적으로만 관찰하여 오늘날 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모범으로

삼는 것은 대단히 피상적인 성경 이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사도행전 시대의 교회들에 보내진 여러 서신서들 가르치는 교회의 바른 성장에 관한 교훈들을 도외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초대교회는 과연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전파되는 복음에 따라 곳곳에 세워졌고, 그 가운데는 놀라운

외형적 성장을 보여준 교회들의 사례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관하여 그런 외형적인 측면을

강조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는 교회의 성장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교회의 성장에 관한 가장 분명한 사도적 교훈 가운데 하나를 에베소서 4:11-16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 / 김진흥 147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강조는 필자의 것) 여기서 교회의 성장은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고, 또한 그런 성장을 위하여 교회에 필요한 직분이 세워졌음을 알려준다.

직분적 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이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 곧 세상의 거짓된 가르침과 간교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함으로 그리스 도의 몸 된 교회를 자라게 하는 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생각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성숙이고, 또 그 결과로 나타나는 교회의 성장이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성장은 물론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내면적, 영적’ 성장이다. 달리 말하자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영성이 자라는 것을 교회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관 짓고 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름 아닌 ‘신령한 자’(고전 2:15, 3:1)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영성을 갖추어 갈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장한다.

이런 성경적 개념의 ‘교회 성장’은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목회 기도들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간구의 내용은 교회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신의 판단 받지 않는’ 신령한 자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는 내용이다. 39 따라서 성장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이것은 곧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각에서 본 영성과 일맥상통한다. 교회의 성장은 곧 영성의 성장이다.

여기에는 물론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 포함되어 있다. 특별하고 예외적인 정황이 아닌 한, 신령한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기대될 수 있다.

이것은 교회의 성장의 외부적인 결과들 혹은 표현들로 간주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 사도들은 그런 외형적인 성장을 특별히 강조하지도 않고 그것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교회 성장의 지표로서의 참된 영성 영성은 교회 성장을 위한 중요한 동력으로 간주될 수 있으나, 동시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에서 교회 성장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지표로 간주되 어야 한다.

성도들의 참된 영성이 자동적으로 교회의 외적인 성장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반대로 외형적인 성장이 교회의

참된 영성을 확증해 주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특별히 과거의 아픈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신사참배에 굴복한 끔찍한 배교의 시대에도 한국 교회는 외형적으로 더 번성하다고 보일 수 있었다.

해방 후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완고하게 회개치 않았던 교회에도 외형적 성장은 풍성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성경적 경건과는 동떨어진 현세주의(現世主義) 적 기복주의(祈福主義) 적 신학과 신앙이 활 개 치는 교회에 오히려 수적 부흥이

더 크게 일어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지난 시절에 경험한 이 모든 사례들은, 교회의 성장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심각하게 반성할

필요를 제기한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영성의 관점에서 교회 성장을 보아야 한다.

삼위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교회의 성장을 평가하는 성경적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해 야 한다.

이런 분명한 성경적 토대 위에서, 우리는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별히 말씀을 수종드는 목회자의 참된 영성 및 지성이 그의 직분적 사역에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

Ⅴ. 결론: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끼치는 영향

1. 목회자 직분과 교회의 성장의 관계 앞서 살펴본 대로, 목회자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주신 여러 직분들

가운데 하나이다. 특별히 초대교회에 주셨던 독특한 은사와 직분들 가운데 교회의 역사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부각된 것이 목사의

직분이다. 사도와 복음전도자 등의 직분이 사라진 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드는 일은 목사의 직분적 사역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성 은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함으로써 자라며, 성도들의 영성이 자라는 것과 나란히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라면, 목회자의 직분적 사역 자체는 교회의 성장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장로교회에서 규정하는 목사의 의무는 그 직분적 사역이 성도의 영성 및 교회의 성장과 얼마나 깊은 연관이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목사는 그리스도의 양 무리를 감시하는 감독이며, 신령한 양식으로 양 무리를 먹이는 목자이며, 그리스도의 집과

그 나라를 치리하는 장로이며, 하나님 이 뜻을 전파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권하는 그리 스도의 사신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개인의 영성과 지성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기 이전에, 목회자의 직분 자체가 교회의 성장에 얼마나

핵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올바르게 통찰하고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달리 표현하자면, 목회자의 직분이 얼마나 막중한지 깨닫고 그 일을 감히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엎드리는 데에서

목회자의 참된 영성 훈련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참된 영성과 지성에 관한 본고의 고찰을 장로교회 헌법이 규정하는 목사의 직무 41과 연결시켜 살펴보면,

목회자 개인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성삼위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누리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연구하여 깨닫는 일에 열심을 기울이는 목회자는 자신의

직분적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영성과 지성을 온전히 겸비하지 못한 자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줄 것이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성례의 의의와 효력을 아는 목회자와 그렇지 못한 목회자는 세례와 성찬이라는 은혜의 수단

(media gratiae)을 활용하는 일에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세상의 방식을 분별없이 교회에 도입하는 대신에,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여 주신 은혜의 수단들을 존중하는 영성을 갖춘 목사, 또한 그것을 교회의 형편에 맞게 적절하게 적용하는

지성을 가진 목사는 분명히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로서, 장로교회의 헌법이 목사의 직무에 포함하고 있는 교회 찬양의 지도에 관한 목회자의 인식을 들 수 있다.

찬송이 감사와 예배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 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합당한 찬송을 교회에 소개하고 지도하는

목회 자와,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목회자는 각각 자신의 교회에 영적인 유익을 끼치는 일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목회자 개인의 참된 영성과 지성은 자신의 목회적 직무 수행에 곧바로 반영되고, 그 결과 역시 교회의 성장

여부로 나타나는 것이다.

2. 참된 영성과 지성은 목회자의 올바른 소명의식으로 이어진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참된 영성과 지성을 가진 목회자가 갖는 올바른 소명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린도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반박할 수 있도록 바울은 자신의 올곧은 직분적 사역을 성도들에게 무기로 제시한 다(고후 5:11-15). 그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사역을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한

대한 예수교장로회, 『헌법』, 33조 목사의 직무에 따르면,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설교하는 일,

찬송을 지도하는 일, 성례를 거행하는 일, 하나님의 사자로 서 축복하는 일, 교인을 교육하고 심방하는 일,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심판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경외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긍휼에 대한 가슴 깊은 사랑을

그의 직분적 사역의 든든한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참된 영성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확고한 소명의식을 갖게 하였으며(고 후 5:20-21), 그런 소명의식을 가지고 고린도교회의 분란을 종국에는 온전 히 수습하고

교회의 올바른 영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의 영성과 지성이 교회에 끼친 영향은 비단 이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사례만으로도 우리는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이 교회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신약성경 자체의 대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참된 영성을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는다고 정의할 때, 우리는 하나 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관계론적 개념으로서의 영성은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목회자의 참된 영성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깊이 깨닫고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그것을 수행하는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바울의 모범에서 볼 수 있듯이, 목회자의 그러한 올바른 소명의식이 결국 탈선하는 교회를 바로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3.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은 교회 성장의 올바른 비전과 연결된다.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은 교회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오늘날 교회들은 영속적인 비전과 더불어 중장기적인 표어들을 통하여 성도들의 영성을 고취하고 훈련시키려 한다.

그런 표어들을 통하여 또한 교회가 성장하여 나아가는 방향을 설정하고 좋다(操舵) 한다.

그런데, 참된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목회자라면 바로 이런 비전 제시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시대의 교회가 마땅히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과 비전과 표어들을 152 갱신과 부흥 23호 Reform & Revival 2019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목회적 기도에 나타난 그런 비전들을 중장기적인 목회 계획에 따라 반영하여, 참된 교회의 영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가려면,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목회자의 직분이 바르게 수행되어 야 하고, 그 직분을 맡은 자들의 참된 영성과 지성은 그 직분 수행에 막대한 차이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참된 영성과 지성은 교회의 성장에 사활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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