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사(宣敎史)에 나타나는 제례문제와 의미
소요한(명지대학교, 교회사) 「대학과 선교」 제34집(2017)
I. 서 론
2011년, 1월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가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제례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한국 교회 목회자 85%는 제사를 금 지하는 교회 풍토가 불신자 전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바 있다.
특히 77%의 목회자들은 전도할 때 제사문제로 교회 나오기 어렵 다고 말하는 불신자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교회내(內) 제사문 제로 고민하고 있는 성도들이 7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1)
이 러한 통계는 오랜 유교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기독교 인들 대다수가 유교식 제사를 놓고 종교적인 갈등과
고민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기독교인들의 상당수가 차례를 지낼 때 유교식 으로 차례를 지낸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2) 서로가 이질적인 것 같지만 이렇게 유교적 제례와 기독교 신앙이 한국 신도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되 는 이유는
‘인간의 윤리적 규범으로 효의 실천이고 인간으로 행해야 할 기본적인 윤리라는 것으로 선행(善行)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라는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당위성은 예(禮)를 위해서는 제사를 지 내야 한다는 강한 유교문화에 기인하기 때문이다.3)
여기서 우리는 선교 적 차원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기독교에는 제사를 대체할 수 있는 추모예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차례를 지내기 원하는 조상제사에 대한 현대
기독교인의 신앙관에 유의미있는 결과가 하나 더 있다.
2002년 에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제례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차례를 지내며, 유교 식으로 한다’는 응답자가 78.9%이고 ‘차례를 지내며, 기독교식으로 한다’는 응답자가 11.4%였다;
이는 기독교 교리와 한국적 상황의 만남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강조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그 양상 이 달라져서 저마다 의견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논고에서는 선교적 차원의 모색을 위해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운데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또한 그 의미 가운데서 드러 나는 제례의 종교적 특징과 기독교적 모색방안을 애도와 추모의 차원에 서 살펴볼 것이다.
먼저 최초의 제례문제는 조선후기 한역서학서(韓譯 西學書)가 전래 되었던 이후에 서학을 종교로 수용했던 이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1791 년 5월 발생했던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최초의 전례문제가 불거졌다.
전라도 진산에 사는 윤지충(尹持忠)은 계사년(1783년), 25세에 과거 시 험에서 진사(進仕)에 합격하였고 다음해 겨울, 서울에
외종인 정약용의 집에 머물렀다. 그때 김범우(金範禹)의 집에서 열린 강학회에 참여하고 서학 서적,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極) 2권을 읽다가 천주교 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3년 뒤 사촌 정약종에게 천주교에 대하여 전체적 으로 배우고 신앙을
받아들이기로 했다.4) 1791년 5월, 윤지충은 그의 어 머니 권씨가 사망하자 외사촌이면서 천주교인이었던 권상연(權尙然)과
상의하여 장례절차를 결정했다. 장례는 유교식으로 이행하되 제사를 폐 지하고 위패를 세우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문상을 왔던 이들에 의해 알 려져 당시 조선 전역에 문제가 되었다.5)
달레(CH. Dallet)에 의하면 이 들이 제례문제로 이웃과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인성(人性)의 모든 감정을 배반한 사람”
으로 매장당하게 된다. 진산사건을 계기로 이어져온 기독교와 조상제사에 대한 갈등은 그 정도만 다를 뿐 현대까지 가족 간 기독교
인과 비기독교인의 중요한 주제와 갈등으로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7)
다음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에 서 나타난 제례문제를 중심으로 조상제사에 대한 신학적인 관점으로 살 펴보겠다.
II. 제례문제에 대한 신학적 해석
서론에서 살펴보았듯이 진산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정치 적인 문제가 가세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후 가톨릭에 대한 크고 작 은 박해가 계속되었다. 먼저 박해에 있었던 초기의 진술을 살펴보자. 전 라도 관찰사가 윤지충과
권상연을 심문하는 당시에 이들이 이 사건에 진 술하였던 내용을 살펴보면 2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하나는 예(禮) 대한 인식이다. “천주교인일수록 부모를 장사지내는 일에 소홀함이 없고 더 욱 두텁고 근실하게 한다”고 했다.8)
이것은 부모를 장사지내고 예를 다 함에 있어 기독교 또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더 예를 잘하였기 에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죄목에 대하여 죄가 없음을 변론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제사(祭祀)에 대한 인식이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이미 제사 에 대하여 종교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다.
윤지충은 부모에게 예를 다하 는 것과는 별개로 사당에 목주를 모시는 행위를 종교(宗敎)적인 행위로 간주했다. 6)
“천주를 큰 부모로 여기는 이상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을 결코 공 경하고 높이라는 뜻이 못됩니다.
그런데 사대부 집안의 목주(木州)9)는 천 주교에서 금하는 것이니, 차라리 사대부에게 죄를 얻을지언정 천주에게 죄를 얻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집안에 땅을 파고 신주를 묻었습 니다.”10)
위와 같은 발언은 장사를 지내고 사당에 신주를 두는 것에 대하여 종 교적인 행위로 인식하였고 우상숭배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 대하여 윤지충은 대부(大父)를 천주께 두어 유교적 가치관을 부 정하였던 것이 아니라 이것이 옳은 것임을
변증하려고 했다. 윤지충은 ‘예를 다하는 것에 있어 종교적인 제례를 드리지 않는 것은 조선 정부와 대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윤지충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죽은 사람 앞에 술잔을 올리고 음식을 올리는 것도 천주교에서 금지하 는
것입니다. 게다가 서민들이 신주를 세우지 않는 것은 나라에서 엄히 금 지하는 일이 없고, 곤궁한 선비가 제향을 차리지 못하는
것도 엄하게 막는 예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주도 세우지 않고 제향도 차리지 않았던 것인 데 이는 단지 천주의 가르침을 위한
것일 뿐으로서 나라의 금법을 범한일 은 아닌 듯합니다.”11) 진산사건은 2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는 윤지충의 주장처럼 ‘기독교인이라도 예를 다할 수 있다’는 보유론(補儒論)적인 입장이다.
둘째는 제례의 종교성 여부에 대한 질문이다. 이중에서 두 번째 질문은 최 근까지 신학적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선행연구를 요약하자 면 제례를 종교적인 행위로 간주하여 종교적 갈등으로 주장하는 반면 제 례를 예로서 간주하여
예절이나 문화로 인식하는 내용이다.12) 진산사건 은 초기의 제례문제라고 생각되지만 개신교의 선교역사 가운데서도 제 례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진산사건 가운데 드러난 제례문제의 내용이 개 신교 역사 가운데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당시 사회적 인식을
언론매체를 통해 살펴보겠다. ‘제례에 대한 개신교의 인식’이 대중에게 심각하게 인식되었던 사건 은 1920년 9월 1일자 「동아일보」에 “애매무죄한 기독교의 희생자”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이 기사의 내용은 ‘경상북도 영주군에 사는 권성화씨 가 예수교를 믿고 제사를 폐지하게 되는데 그의 아내 박성녀씨가 시모의
신주를 더 이상 모시지 못함을 애통하여 신주를 모셨던 동산 뒤 냇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것이다.13)
이 사건은 개신교의 조상제사에 대하여 당시 많은 의견들을 분분시켰다.
중앙청년회총무를 지냈던 이상재(李商 在)는 이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참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고 하며, 부모 를 위하는 마음은
문화에 따라 다르며 예수는 서양인의 예수가 아닌 온 세계인의 예수이기 때문에 서양문화에서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동양에 서구 문화를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한 이상재의 의견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부모의 혼령 앞에 절 하는 것을 경솔히 “우상숭배”라는 이름아래에 타매를 하는 것이 엇지반드시 옳겠다 할 수 있으리오 물론
자기 부모의 신주를 받드러놓고 거기다가 길흉과 화복이며 나중에는 생명까지 절하며 빈다할진대 이는 결코 예수신자되야서는
누구나 다 반대할 것이어니 와 나의 생각에는 오직 돌아간 부모를 사모하여 그리워한다는 그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 면 어떠한
형식으로 예식을 행하든지 반대 할수 없겠으며 원래 조선사람의 돌아간 부모 의 영혼을 위하여 삼년안에 조석상식과 혹은 평생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직 그 상재는 조상제사를 문화적인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을 찬성하였으며 조 상에 대한 예를 다하는 것은 한국의 전통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바로 그 다음 사설에서 종교교회의 양주삼(梁柱 三) 목사는 ‘위 사건은 날조된 사건이며 죽은 원인은 다른 것에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제사 문제에 대하여 모든 나라와 문화가운데에 제사의 일종이 있기 때문에 제사가 꼭 그 나라의 문화적 혼을 담는 것은
아니라 고 하면서 제사에 대하여 “미신적 풍속”이고 “의식적 도덕”에 불과한 것 임을 주장했다.
또한 문명과 과학이 발전함에 “새 도덕”과 “새 정신”, “새 희망”을 가져야 함을 주장하고 ‘제사는 곧 없어질 것’으로 주장했다.15)
양주삼 목사의 주장은 제사를 구습으로 인식하고 현대시대에 필요 없음 을 주장했다.
하지만 유교 문화권 가운데 기독교인으로서 제사에 대한 이해와 그 대체 방안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기독교 내에도 제사를 대신할 추모예배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1939년 「활 천」을 보면 필자는 “선교를 받을 때에 혁고 쇄신하는 일에 고려나 아무 제정 없이 서양에 없는 것을 동양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우상시 되거나 파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유감이다”고 하며 유교의 제례 를 예배로 대신하여 부모에게 공경을
표하는 추모식에 대한 구체안을 주 문했다.16) 이외에 역사적으로 많은 추도예배가 시도되었으나 더 이상의 발전 없이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17) 「기독신보」에서 김창제는 제사 부모를 그리며 사모하는 효성에서 나오는 것이라 예수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뿐 아니 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하나님의 가르침에 크게 적합되는 일일 것이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세계 인류가 다 경험한 것이고 벗어버리고자 하는 것이며 과학지식이 천단하고 종교사상이 불일하 고
도덕관념이 유치할 때에 쓰던 일종 미신덕풍속이오 의식적 도덕에 불과한 것이라 그 런고로 조상에게 제사하는 사람의 수효가 날
로 감하고 달로 줄고 해로 감축하여 불구하 고 세계상에 한사람도 없게 될것이 분명하다.”
도덕이나 예의 범주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였고 제사를 ‘우상숭배’의 관점에서 파악했다.
이후 「기독 신보」에서 나오는 최상현, 신흥식의 글을 살펴보면 제례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는데 유교문화권 가운데서
제례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는 글 들이 드러났다.
이후 추도사 및 전통예식의 간소화 절차 등 상장례 담론 에 대한 글들이 나오면서 제례를 추도예배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나온 다
이외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의 글들이 여러가지가 있으나 대체 로 그 패턴은 2가지 경향성으로 드러난다.
첫째는 제례를 종교적인 의식 으로 강조점을 두는 경우이며 이때는 교-교(敎-敎) 갈등으로 인식되어 제사를 ‘우상숭배’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둘째는 사회·문화적 풍습으로 접근하는 경우로서 유교문화가 강한 한국적 상황가운데서 제사에 대한 ‘기독교의 적극적인 해석’이
선교적 차원에서 요구되는 경우이다.
우선 제사에 대한 ‘기독교의 적극적인 해석’에 대하여 신학적인 차원 에서 접근하면 다음의 사상적 특징을 고찰해 볼 수 있다.
첫째로 도덕적 인 예(禮)를 강조하는 경우이다. 유교에서의 예의 의미를 성서에서 찾아 보유론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상제사를 통한 후손들의 교제를 성도들의 교제로 의미를 찾고 제사적인 의미를 성만찬 의 의미로서 미국이
남긴 예배형태를 답습하지 말고 한국식 예배로 발전 시키는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19)
효의 강조는 또한 기독교가 유교사회 의 인의예지(仁義禮智)와 크게 이질감이 없다는 소위 정당성에 해당되 는 경우이기도 하다.
이 같은 관점은 선교적 차원에서 접근되기도 했다.
둘째로 우리에게 아직도 강력하게 남아 있는 문화적 뿌리로서의 제 사 인식이다.
이러한 주장은 유교적 최소주의에 입각하여 조상제례를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제례를 예배화시키자는 주장이다.
이것은 유교자체 를 모두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의 제사 중에 긍정적인 기능을 기독 교적인 관점으로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다.20)
셋째로 선교를 위한 입장에서 기존의 문화인 제사를 적극적으로 수 용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죽인 이를 그리워하는 경우 진보적인 신학자 같은 경우에는 절하지 않음에서 오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장로교 통합측 또한 2000년대 이후의 미시오 데이(선교적 관점)와 가톨릭의 입장을 수용하여
제사 지낼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는 것이다.21) 이를 다른 차원에서도 접 근하고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복음적 만남”으로서 ‘성서에서의 사상 은 개인이 아닌 ‘우리’를 강조하여 개인의 죽음 자체도 공동체적인
성격 을 띠고 있어 죽은 자와 산자가 연속하여 산 자 죽은 자 모두 약속된 부 활을 믿고 동참한다’는 주장이다.22)
넷째로 제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경우이다.
유교의 핵심이 되는 제사는 가족제도를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 을 한다고 한다.
제사의 가장 핵심이 “정성”으로서 가족과 친척이 서로 화합되지 못하거나 인(仁)이 부족하면 제사를 드리는데 있어 “정성”에
흠이 가기 때문에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관 20) 이정배는 제사를 성례전으로 통전시키고자 했으며 이곳 생자(生者)의 자리에서 사자 (死者)의 자리를
연결시키고자 했다. 곧 조상의 뜻의 현존-삶의 연대성-으로 그리고 부 활을 생자에 의한 사자의 기억, 나아가 하나님에 의한
기억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2000년대 이후에 통합 측에서 WCC의 미시오 데이(Missio Dei) 입장에서 절하는 것을 옹호하는 주장들이 대두되었다고 한다.
특히 김은수는 유교문화를 가지고 제사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제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나라의 왕을 국부로 모시는 것과 상치되기 때문에 국가의 안정 과 유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23)
사실 기독교가 제사를 거부하는 모습 속에는 기존의 가족 공동체가 지켜온 제사에 대한 거부로 인해 구 성원의 해체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24) 이것은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정성”을 강조한 기존의 공동체에게 부정적인 인식으로 상처를 주기 때 문에
공동체의 갈등이 계속 양산되고 있어 이에 대한 모색을 해야 된다 는 입장이다.
다섯째는 우상숭배와 조상제사의 연관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먼 저 우상적 특징은 미신적인 것,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 욕망을 만족시키 는 것, 비윤리적, 신격화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유교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하여 조상제사 거부의 근거로 제1, 2계명에 두고 있으 나 문자적인 이해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25) 이와는 달리 제사수용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살펴본다면 제사를 종교적인 행위로 이해하는 경우이다.
특히 유교의 제사는 신과 인간의 만남이 핵심적인 사상이며 “영신(靈神-인간이 신을 맞이함)-진찬(進饌 인간이 제물을 신에게
올림)-헌작(獻酌-인간이 술잔을 신에게 올림)-흠 향(歆饗-신이 인간의 정성과 제물을 받아들임)-강복(降福-신이 인간에게
복으로 응답함)-음복(飮福-인간이 신이 내려준 복을 받아 간직함)-송신 (送神-인간이 신을 전송함)”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유
교의 종교적 특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26) 또한 제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은 제례를 살펴 볼 때에 조상제사에 있어 예의 문제와 종
교적인 문제가 구분되지 않고 혼재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제사가 가지고있는 종교성 및 의례적 성격이 공존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祭)의 의미는 신과 인간이 만나는 것으로서 관례
(신을 부르는 의식)-조천(피와 날고기를 올리는 의식)/궤식(삶은 고기를 드림)-윤시(음식을 먹은 후 술 을 올리는 의식)의 순서로
진행이 된다.27) 조상제사는 희생제의에서 출 발하고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조상제사에는 ‘초월적인 신과의 만남’의 본래적 의미보다는 ‘조상과의 관계를 단절 아닌 연속성’, 즉 예 (禮)를 강조하여
조상과 후손의 관계가 지속되는 방향으로 발전 하였고 이를 유교문화에서는 중시한다.28)
이렇게 조상제사는 종교성과 도덕적 인 공존성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달 라지는 것이다.
III. 제례문제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인식
유교의 제사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입장은 그 연원을 거슬러 갈 때 선교사들의 미국적 배경을 가진 선교신학이 유교 제사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생각된다.29)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은 미국의 중산층이 사유했던 기독교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개신교 선교사의 조상제사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많이 이루어졌다.
선교사의 영향이 한국 기독 교인에게 미쳤던 영향이 컸는데 마펫(S. Maffet)은 조상제사에 대하여 반대를 했을 뿐 만 아니라
구습과 함께 한국 기독교인에게 금지시켰다. 기포드(Daniel L. Gofford)는 한국의 제사를 귀신숭배로 보고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도 그 일부로 보았다. 언더우드 (H. G. Underwood)는 조상 제사에 대하여 유교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제사에 예배적 인
요소는 금지할 것을 주장했다. 존스(H. Jones)는 조상의 신주 안에 영혼이 있다고 믿 는 한국인들에게 제사를 금지시켰다.
전통에서도 드러나는 신앙적은 순결을 위해 주일에는 오로지 성경묵상 과 예배와 기도에 집중했다. 하
지만 이러한 종교적 사명과 특징이 때로 는 타문화와 타종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믿는 “문명” 세계와 타종교를 가진 “이방”세계로 구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교도적”
신앙’으로 동양 문화에 대하여 돌출 행위를 하였다.30)
유교의 조상제사에 대하여 서구 선교사 들의 인식은 서구적 관점이 전제되어있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유교의 국가 관념과 문물의 차원에 대하여서는 “사적 개인과 절대자와의 초이성 적 관계가 중심이었던 서양의 종교관”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에 종교로 보지 않았다.31)
이들 서양 선교사들이 조상제사가 종교성이 있는 것으 로 보고 이것을 ‘조상숭배에 자체에 대한 것을 죽은 자에 대한 숭배로
간 주’하였고 ‘이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삶과 희망에 대한 전반적인 상도 (常道)를 벗어나기 때문에 조상숭배를 번영과
성공이라는 행복한 세계 에 이르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했다.32)
이러 한 사상은 곧 조상숭배를 무시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조상숭배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금지를 표방했다.
초의 입교인이었던 노춘경의 예를 들자면 그는 조상숭배에 대한 무시로 주변사람들에 의해 의심을 샀기 때문에 중국으로 피신을
시키자는 안을 상의하기도 했 다.33) 이러한 입장은 “제사금지정책” 에도 드러나게 된다.
1893년 북장로 교와 북감리교 선교사들과 한국인 조사 서상륜, 서경조, 최명오, 한석진, 김관근 등은 십계명의 제1,2계명을 근거로
귀신 숭배와 우상숭배의 이유로 제사를 금지했다. 이것은 제사를 유일신 하나님 예배에 어긋나기 때 문에 귀신 숭배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부모의 생전에 봉양과 효도를 강조했다.34)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한국 현지인에게 기독교에 대하여 반감을 가 지게 만드는 원인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제사에 불참하거나 금지하는 기독교인들은 “육체적인 고통, 경제적인 박탈, 집안과 사회로부터 소외 와 어려움”을 겪었다.35)
이후 제사에 대한 논의와 추도예배에 대한 논의 가 있었지만 번번이 선교사들의 신학적 입장으로 더 이상 발전될 수 없 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평신도들은 모친상 일주기에 수십 명의 교우를 초대하여 찬송, 기도, 성경봉독, 모친을 위한 신앙과 행적 회고를
가졌으 나 북미 복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던 선교사들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를 반대했다.
이유는 “사자를 위한 기도와 연옥설은 전도의 필요성을 약 화시키며 사후에 심판이 있고 한번 상벌이 내려지면 다시 회개의 기회가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36)
한국 교회의 역사를 보면 조상제사와 개신교 선교사의 입장은 늘 대 치를 이루면서 흘러갔다.
하지만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유교문화의 잔존 도가 높은 한국의 기독교인이 여전히 조상제사에 대한 집착을 보이고 있 으며
현재에도 조상제사를 드리는 기독교인이 많다. 이들이 조상제사를 드리고자하는 이유는 신앙적인 이유보다는 죽은 이를 다시 보고
싶은 마 음, 즉 관계의 연속적인 차원과 애도(哀悼)를 통해 남아있는 자들 가운데 죽은 이가 남기고 간 구체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의미 는 죽은 이와의 관계를 통해 이 땅에 남은 자손들이 복을 받고 싶어 하는 기복적인 모습도 담겨있다.37) 이를 서구식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점을 가지고 애써 외면하는 것은 유교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 선교를 외면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당위성은 성서문헌 여러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애도(哀悼)-암5:16, 렘9:17, 49:3”, “애가(哀歌)-갤 2:10, 암 8:10, 렘 9:10, 대하 35:25, 삼하 1:19-27”,
“의복과 관련된 애도의식-창 37:34, 레 10:6, 21:10, 삼하 1:11, 3:31, 13:31” 등이다.38)
구약에 나타나 있듯이 죽은 이를 위한 추모와 애도는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서 단절에 대한 후손들의 표현이며 교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조상 제사에 대한 문제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교-교(敎-敎)관계로 풀기에는 많은 제 한이 따르지만 망자와
유족의 관계를 선교적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지 추도와 애도의 관점으로 다음에서 살펴보겠다.
IV. 한국 개신교의 추도 문제
한국의 종교 가운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생겨난 사별을 위로 하는 종교의식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교의 제사가 불교에 들어와 사찰에서 제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증가되고 있어 이를 연구한 사례들도 있다.39)
이러한 의례의 핵심은 유교적 특성 보다는 무교적 특 성이 들어 있어 “죽은 자를 기억하고 달래”는 특징이 드러난다.40)
어떻 게 보면 한국인의 깊은 정서에는 영혼을 달래는 것이 깊게 자리 잡고 있 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애도를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다루지 못하는 것인가?
조상 제사를 대체 할 수 있는 애도와 추모를 위한 것에 기독교는 무척이나 인색하다.
그 이유는 신학적으로 죽은 이를 위해 기 도하는 것, 즉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강조되지만 신령과 혼백을 섬기는
의식은 금지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42) 물론 신학 적인 입장이 저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기존 제사의 의미를 더욱 긍정적이
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교회에서 점차 추도예배의 의미가
형식화 되는 가운 데 서구의 기독교에서는 애도와 추모를 하지 않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 가 있다.
특히 한국의 현지인에게 기독교로 개종을 시켰지 오랫동안 종 교가 가지고 있던 숙원적인 문제와 한국인의 제사의례의 애도문제는 기 독교적인 모색 없이 진행되지 못했다.43)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을 파송시켰던 교회를 살펴보자. 예전의 서 구교회는 교회를 다니던 이가 죽음을 맞이하면 보통 장례예배를 이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드린다. 교회라는 공간은 입구(Narthex)에서부터 제단 (Apps)까지 삶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복도(신랑)가
있다. 즉 인생의 탄생 부터 죽음이후의 삶을 상징하는 제단 너머에 까지 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장례예배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이 땅에서의 삶 이 완성이 되고 절대자를 향해 가는 “부활(born again)”의 의미로서 제단 인 죽음으로 맞이한 이를 구분하고 원과 장소, 시기에 따라 사령(魂)이 달라진다는 것이 다.
당시 교회의 구조를 살펴보면 많은 교회가 근처에 무덤을 두어 교 회라는 곳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었음을 상기시키게 된다.
그 교 회에서 예배에 참여하거나 종교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은 죽은 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교회 공간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장례 예배가 끝난 후, 평소에도 한 가족이 다녔던 교회에서 식구들의 죽음을 집례하고 매장하는 교회 장소는 이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죽음의의 미가 교회 공간에서 다시 생각되고 구성되므로 이들은 사실 교회라는 공 간에서 죽음을 삶 가운데서
분리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한국에 왔던 서구의 선교사를 비롯한 한국 개신교는 근본주의 (Fundamentalism) 적
성향이 점차 강해졌다. 45) 이러한 성향으로 타문화 와 종교적 성향뿐만 아니라 애도의 방법조차 멀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인은 매장지를 멀리 쓰는 것을 선호했기에 다양한 배경들로 인해 묘지를 가정과 교회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망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죽은 이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처분하는 것이 관례였다.
더군다나 현대사회에서는 사실상 교회 근처나 도시 인근에 납골당과 매 장지가 혐오, 기피시설로 구분되기 때문에 이를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 가능하다. 46) 하지만 교회 공간 내에 애도의 공간과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죽은 이를 그리원하는 애도적 차원의 예식과 공간이 형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며 조상 제사를 금지하던 서구교회는 교회 안에 삶과 죽 음의 영속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으로
의미를 가졌다. 교회 공간에 애도와 추모의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교회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한 대한
성교회 서울주교좌성당과 용인의 백향목 교회가 있다. 이들 교회는 교회 내에 납골당과 추모관을 설치하여 죽은 이와 이 땅에 남
아있는 가족들의 애도와 추모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백향목 교회 같은 경우 교회 창립 42주년을 맞아 지역의 사회,
소외계층에게 무료로 추모관과 안치단을 제공하기로 했다. 47)
최근에는 교회가 죽은 이와 유가족들의 애도 및 위로를 심리학적인 연구가 있다.
‘한국 개 신교인들의 사당과 위패로서 조상을 모셨던 경험이 있어 신학적인 문제 이전에 심리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48)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도모로서도 매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일상 속에서 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교회 공간의 기능을 주장하고 있다. 49) 비록 기독교의 극히 일부인 교회 공간이라는 것에서 이 연구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죽은 이를 떠나보낸 후손들의 슬픔과 애 도라는 차원에서 기독교가 해줄 수 있는 배려의 좋은
예시라고 생각된다.
"프로이트는 애도는 단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남으로써 마무리되는 과정이 아니라, 일생 동안 지속되는 과정이라고 밝힌다.”
앞의 논문, 178. 50) 망자에 대한 실연과 이에 대한 추도는 본인의 경험이 되면 다른 양상을 보인다.
타인의 추도식을 인도했던 목회자들도 정작 본인이 경험한다면 다르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한경호는 제사 양식으로부터 추도예배를 실시하여 추도예배 시의 건조하고 형식적인 분위기를 넘어서 “긴장되고
무언가 생성(becoming) 되고 있는 기운을 느끼며 조성과의 희미하고 관념적이었던 관계가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로 복원되면서 추도의 분위기 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을 고백한다
V. 결 론
가톨릭이 한국에 전래된 이후 기독교와 유교의 첫 만남은 제례 문제를 두고 갈등을 일으켰다. 기
독교는 제례 자체에 대하여 예(禮)로서는 받아들였지만 제례의 종교적인 모습에서는 강한 반발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갈등은 개신교가 전래된 이후 더욱 불거졌다. 한국에 왔 던 미국 개신교 선교사의 근본주의적인 사상은 조상 제사에 대하여
문화 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타협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제사 금지는 오래지 않아 다시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유는 유교 문화가 강한 관습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한국의 제례를 대체할 만한 기독교적 대안을 마련한 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
례는 종교성과 도덕적인 예가 함께 공존하기 때 문에 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제례를 종교적인 성향을 강조하는 이는 조상 제사를 불허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에 제례를 예로서 이해하는 관점은 어느 정도
타협과 수용을 긍정했다. 하지만 제례는 종교적인 측면과 예로서의 도덕적 성격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분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조상 제사를 하는 이유에 대하여 기독교는 이를 종교행위로
간주하고 금지하기보다는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 논문은 조상 제사에 대한 문화·종교적 관점으로 살펴보았던 기존 연구와는 달리 애도의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조상 제사에 대하여 기독교가 할 수 있는 것은 애도와 추모를 위한 배려적 차원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독 교는 죽은 이를 위한 추모의 공간과 예배를 위한 재정에 앞장서는 종교 적 책임을 다해야 함을
주장하였고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켜 애도의 기독교적 의미를 찾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