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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고난절

사순절의 상징과 기억의 힘

작성자안디옥.|작성시간26.06.08|조회수28 목록 댓글 0

사순절의 상징과 기억의 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요 약> 김 정†(서울장신대학교)

교회의 상징은 우리의 신앙 표현을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바른 신학적 의미를 전달함이 목표의 다.

이 글은 사순절의 가장 대표적 상징 색깔인 보라색이 지닌 신학적 의미를 통해 상징과 기억이 지 닌 신앙 형성 역할을 살펴본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는 신학적 의미는 우리의 기억 속에 깊 이 뿌리내려 때로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 주는 힘이 있다.

나아가 이 상징은 우리의 신앙을 함양하는 도구이면서 신학적 전달은 물론 현상적 예배 참여를 돕는다.

예배는 치유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통해 결과적으로 치유가 일어날 수는 있다.

바람직한 예배와 상징에 대한 이해가 필 요한데 사순절의 다양한 상징물을 활용한 예배 공간은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사순절의 상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서술한다.

사순절의 상징이 지닌 깊은 의미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예전적 상징(liturgical symbol)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라”

((메타노에이테 μετανοείτη)는 사순절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Ⅰ. 서론

교회의 상징은 신앙을 다각도로 표현하는 힘이 있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신학을 전달하기 도 하고 신앙을 함양하여 회중의 현상적 예배 참여를 돕기도 한다.

상징을 통해 형성된 깊은 기 억은 때로 우리의 신앙을 회복하고 치유하며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십자가가 그러하다. 십자 가 아래 기도 드려본 사람이라면 그 십자가를 단순한 사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십자가 아래 기도하며 하나님을 조우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그 공간은 거룩한 상징이 된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잔 그곳에 단을 세워 벧엘이라 이름 한 것과 유사하다.

교회의 상징은 성경적 지식이 있을 때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지식이 결여될 경우 상징은 의미를 전달하기 미흡하며 심한 경우 왜곡된 신앙을 전수하기도 한다.

이 글은 사순절의 상징에 관해 설명하고 나아가 오늘날 목화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상징은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 아니다. 사순절의 십자가와 가시관, 그리고 보라색 배너 등이 그 자체로 거룩한 것 이 아니라,

성경의 사건과 깊은 연관 속에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내포하기 때문에 거룩하다.

이 지식이 있어야 비로소 상징이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그 깊은 의미를 깨달을 때 상징은 기 쁨이 되기도 하고 희망의 빛이 되기도 한다.

Ⅱ. 사순절의 주된 상징에 대한 이해

사순절의 금식과 특별 새벽 기도는 우리에게 대단히 친숙하다.

그리고 보라색 배너와 가시 면 류관, 못과 십자가로 구성된 예배 공간도 사순절의 주된 상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징에 대해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예를 들어 사순절의 보라색이 지닌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빨강과 파랑의 대비되는 색의 조합이 고통을 뜻하므로 사순절의 상징색이 보라색이라는 잘못된 주장이 그것이다.

사순절의 주된 상징인 보라색(purple)과 금식(fast)에 대한 바른 신학적 의미와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자.

1. 보라색:

성경에 기록된 의미와 상징적 해석 1) 사순절에 보라색을 사용하는 이유는 성경에 근거한다.

마가복음 15장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로마 군인들이 희롱하며 예수께 던진 옷이 보라색(purple)이었다고 기록한다. 2): 김정,

“사순절의 신앙 여정: 깊은 슬픔 끝에 터져 나오는 기쁨,”의 내용을 보면 보라색의 의미는 실제로 로마 군인이 예수를 경멸하고

모욕하기 위해 던진 옷의 색이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예수를 조롱한다.

이는 실제로 왕이 입는 옷의 색이 보라색이었기 때문이다.

잠언 31장 22절은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her clothing is fine linen and purple)”라는 표현을 통해 보라색이 역사 적으로 왕이나 고관대작만이 입을 수 있는

염료의 색이었음을 묘사한다. 3) 신약시대 역시 사도행 전에 나오는 리디아(a dealer in purple cloth)를 언급하면서 부유한 계층이

입는 염료의 옷이 보라였음을 기록한다. 4)

따라서 로마 군인이 예수께 보라색 옷을 던지며 “유대인의 왕”이라 조롱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모멸적인 방법으로 시각적 효과를 노린 조롱이었다.

그렇다면 사순절에 보라색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십자가를 지는 예수, 그분은 실제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임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드러낸다. 동시에 예수께서는 로마 군인에 의해 강제로 보라색 옷을 입어야 했고, 모욕당했으며,

침 뱉음과 경멸과 수모를 당하셨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견디셨다.

그리고 그 로마 군인은 희롱을 다한 후 주님께 입혔던 보라색 옷을 다시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는 잔인함을 자행했다.

사순절의 보라색 은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시간 속에 전개되는 구원 사역, 죽음을 넘어 그 너머에 닿는 구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것이 사순절의 보라색이 상징하는 바이다. 5) 사순절의 보라색을 통해 교회는 우리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살면서 지은 모든 죄는 결국 하나님의 이름이 만홀이 여김을 받게 했다. 주님을 모욕했다.

주님이 다시 금 우리로 인해 경멸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돌아오라, 교회는 사순절의 보라색 상징을 통해 우리에게 외친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대, 이제 지금까지 걸어간 그 길을 돌이켜 다시 하나 2)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 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의 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막 15:16-20).

우리 말로 자색이라 번역된 부분을 영어로 보면 a purple cloak으로 보라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라색은 뛰어난 기술을 요하는 염색 기법이었기에 가격이 대단히 비쌌다.

참고 삿 8:26과에 8:15는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옷”과 모르다 개가 금관을 쓰고 보라색 옷을 입었다고 기록한다. 4)

사도행전 16장 14절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a dealer in purple cloth)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 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5) 대림절의 보라색 상징도 이와 유사하다.

즉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판 루시아를 기다리므로 대림절 역시 보라색 초를 주로 켠다.

2. 사순절의 금식과 고행,

그 자체가 선이라 여기는 오해 사순절의 금식 그 자체가 선한 것이 아니다.

고행과 금욕, 그 행함 자체가 선한 것이라고 오 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알렉산더 슈머만에 따르면 보다 적극적인 금욕의 한 형태로 경건 서 적 읽기를 권한다. 6)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전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것 역시 사순 절에 합당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다. 청소년의 경우 다양한 금지 목록으로 사순절을 지키게 한다면, 훗날 청년이 된 다음 교회에 대한 기억이

부정적일 수 있다. 사순절 기간의 긍정적 활동 중 하나로 초대교회의 세례자 집중 교육이 있다. 7)

교회는 이때 금식할 것을 요구했고 이는 부활절의 세례를 기다리는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기다리는

경건 훈련이었다. 또한 다가올 세례의 기쁨을 생각하며 기대하고 기다리는 의미의 금 식이었다.

정교회의 예배신학자 알렉산더 슈머만(Alexander Schmemann)에 따르면, 금식이 지닌 상 질적 의미는 메시아를 기다림이다.

3. 금식과 축제(fast and feast):

메시아적 대망을 상징 금식이 지닌 상징적 의미에 관해 슈에만은 복음서의 기록(막 2:18, 눅 5:33, 마 9:14)을 인용하며 금식은

메시아를 기다리며 준비함에 대한 상징이라 말한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바리새인들 이 그리스도의 제자를 향해 금식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혼인 잔치 손님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할 수 있느냐?”8) 이어서 슈에만은 예수의 이 말을 근거로 금식이 의미하는 바가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에 대한 상징이며 준비이므로 그리스 도와 함께 있을 때는 그 기쁨이 너무 커서 금식할 수 없다"라고 설명한다. 금식의 상징은 메시아 와 함께 할 그 축제를 준비함이며 축제를 기다림이다.

따라서 “금식 없이 축제 없음(No feast without fast)”이란 말이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교회 전통 가운데 회자된다.

금식과 예배는 이처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순절의 금식 역시 무조건적인 금욕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다가올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다림과 준비를 상징한다.

또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기대하는 의미로 금식을 행한다. 금식과 예배는 메시아를 준비하는 의미이다.

다가올 하나님 나라는 축제이므로 금식의로 준비하는 것이다. 교회가 그 축제의 출발 장소이기에 교회는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와

금식을 권한다. 메시아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부활을 증언하는 공동체가 교회이다. 9)

Ⅲ. 상징과 기억의 힘

사순절의 상징인 보라색과 금식을 비롯한 다양한 신앙적 훈련은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 주는 힘이 있다.

교회는 파리시아,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모임이다. 이는 세상 그 어떤 모임과도 다르다.

교회는 종말을 예견하며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부활의 증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1. 교회의 성찬:

기다림과 기억(아남네시스 anamnesis) 교회의 기다림은 세상 시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이 가장 강력한 게 표현되는 곳이 교회이며, 교회의 성찬 예배는 특히 그러한 기다림을 잘 표현한다.

시간 속에 살면서 교회는 성찬과 더불어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역사성을 잊지 않았다.

초대교회가 아주 초기에는 성찬을 저녁에 행했는데 이 역시 하나님에 대한 구원 사역을 기억하며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아남네시스(anamnesis)라는 말은 늘 행하며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성찬을 행하며 우리의 기억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역사적 사건(과거)을 오늘 현재의 사 건으로 재현한다.

여기에 기억의 힘이 있다. 현재 공동체가 기억하고 있는 일은 미래에 있을 파 루시아에 대한 기다림이며 부활에 대한 증언이다.

금식이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을 상징하듯, 성찬은 과거에 있었던 그 구원의 역사가 지금 일어나며 또한 미래에 죽음

너머 부활을 상징한다. 2. 기억이 가지고 있는 힘 예배신학자 돈 샐리 어스(Don Saliers)는 기억하는 것이 지닌 힘에 관해

어거스틴의 고백록 10권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 나의 기억 어느 곳에 당신이 거하십니까?” 기억함이 곧 우리의 구원의 시작이라는 홀로 코스터 기념비를 인용하며

샐리 어스는 기억의 힘에 관해 말한다. 즉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그는 9) 금식은 한편으로 사단과 대적하는 의미로 발전되었다.

특히 수도원에서 금욕적 금식이 발달했는데 이는 영성 생활의 한 방법으로 발전했다.

마태복음 4장에 따르면 예수께서도 금식을 마치고 사단을 대적했다. 금식과 기도는 이처럼 깊은 연관이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교회 절기는 우리의 기억을 강화하는 동시에 우리의 정체성을 밝힌다.

사 순절의 상징은 우리를 하나님과 만난 깊은 기억 가운데 머물도록 한다. 해마다 되풀이됨으로써 이는 더욱 강화된다.

보라색이 지닌 성경과 신학적 의미는 다 잊었다 하더라도, 어느 날 문득 교회 옆을 지나치다 보라색의 배너와 사순절 예배 공간의

십자가를 보게 된다면 깊은 기억 속의 한순간이 떠오를 수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도 이 경험은 깊은 기억이 되어 신앙을 전수하는 힘이 있다.

우리의 기억은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불 쑥 튀어나온다.

깊은 상자 속에 보물 찾기를 하듯 그렇게 우리의 (하나님과 만난) 경험은 현실이 된다.

이것이 기억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억함은, 단순히 머릿속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행함의 기억이다.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와 눌린 자를 도움으로써 하나님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누구 인지 기억한다. 이들을 돌보지 않음은 곧 하나님을 잊는 것이라, 샐리 어스는 말한다. 11)

3.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만남:

치유 기독교 예배는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다만 진정한 마음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그 결과로 치유가 일어난다.

기독교 영성의 뿌리는 성경과 교회 전통에 근거하며, 성찬에서 절정에 이 든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한 이들은 치유함을 얻고 살아가면서 그 신비를 더욱 느낀다.

그리고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 새 생명이 되었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언한다.

예배는 이처럼 하나님을 기억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고, 그 경험을 통해 치유함이 일어나는 곳이다.

몸이 아플 때 물론 모두가 다 나음을 입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치유되고 누군가는 병으로 신음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기독교인은 역사 속에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된다. 어 느 순간 병으로 인한 죽음이 서서히 다가올 때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함을 믿고 우리에게 주 어진 영원한 생명을 증언할 수 있다. .

초대교회는 병들어 아픈 이들을 낫게 해달라고 주일 예배의 성찬식이 행해질 때 다음과 같이 전 공동체가 기도했다.

[기도문]

우리가 감독자요 주님이신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몸을 빚으시고 영혼을 만드시며 인류를 건축하신 통치자요

인도자 그리고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시며, 당신 자신의 자애로움으로 스스로 화해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시여. 주관자 이사 오니

은혜를 베푸사, 아픈 모든 이들을 도우시고 고치소서. 병을 꾸짖으니 사 침상에 누운 자들을 일으키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 영광과 권능이 당 신께

지금과 또 세세 무궁토록 있나이다. 아멘. 12) [기도문 30] 자비로우신 주 하나님, 당신의 손을 펼치자 모든 아픈 이들을

고쳐주옵소서. 그들에게 건강함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들을 지배하는 병으로부터 구원하소서.

당신의 독생자의 이름으로 그들이 치유되게 하소서.

이 거룩한 이름[예수]이 이들에게 건강함과 온전함을 위한 약이 되게 하소서.

그[예수]를 통하여 성령 안에 영광과 권능이 당신[하나님]께 지금과 또 세세 무궁토록 있나이다. 아멘.

이 기도는 초대 교회가 주일 예배 도중 병자를 위해 전 공동체가 다 같이 기도했음을 알려준다.

4세기 이집트의 트무이스 감독 사라 피온은 성찬 기도 도입 부분에 병자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렸는데 이때 안수 기도도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것은 교회의 병자에 대한 목양적 직무였다.

예배를 치유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며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의 목양적 직무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위 기도문은 개인 심방을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는 환우를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성찬 기도에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했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병자들 역시 하 나님의 한 몸 된 교회의

지체임을 잊지 않고 기도했다. 교회에 참석할 수 없는 이들까지도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한 목양적 직무를 충실히 담당하고자

초대교회는 애썼다. 병든 자,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와 객과 나그네, 이들을 기억함이 곧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Ⅳ. 결론

사순절 예배와 공간에 사용되는 다양한 상징물은 하나님을 기억함과 동시에 우리 삶에 하나 님이 함께

계심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 주는 힘이 있다.

다양한 의례를 통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라는 사순절의 메시지는 보라색 배너와 가시 면류관, 십자가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다. 따라서 사순절이 다가오면 교회는 다양한 상징물을 사용해서 예배 공간을 구성한다.

사순절 기 첫날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다.

이때 교회는 재를 이마에 바르거나 교회 한 공간에 둠으로써 우리의 존재가 흙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재는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 물임을 잘 드러내는 상징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 3:19). 이러 한 성경 본문은 사순절의 재가

지닌 상징을 사용해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14)

전통적으로 교회가 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지난해 종려주일에 사용했던 종려 가지를 태워 만든다.

1년간 잘 말렸다가 이듬해 재의 수요일에 사용함으로써 재가 지닌 상징적의 미는 더욱 깊어진다.

즉 죽음이라는 인간의 유한성을 보여줌으로써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표현한다.

사순절의 예전적 색상이 보라색은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그 안에 있음을 알고 사순절에 주로 사용되는 상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신학적 함축과 역사적 배경을 지닌 사순절 상징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삶과 신앙에 바 른 인식을 심어준다.

보라색 예전 의복을 입고 스톨을 두른 목회자와 배너 장식은 사순절이 지 닌 의미를 잘 전달한다.

예수께서는 왕으로 오신 분임이 분명하나, 로마 군인은 보라색 옷을 던 지며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예수를 조롱했다.

보라색은 왕이 입는 옷을 상징하나 로마 군인은 이를 오히려 희롱과 조롱의 도구로 사용했다.

사순절에 보라색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 님 앞에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하게 한다. 이것이 상징의 힘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겼고 주님을 조롱했음 을, 그 보라색

사순절 상징색은 우리 죄를 깨닫게 한다. 각인된 우리 죄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와 기도하게 한다.

이것이 사순절의 회개이다. 보라색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십자가의 고통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통해 우리의 자발적 회개를

이끌고, 금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금식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단순한 금욕적 차원을 넘어, 다가올 새 희망과 새날에 대한 기대,

파리시아에 대한 대망의 기다림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상징이 지닌 힘은 더 크게 우리 삶에 작용한다.

상징의 비음 성적 언어는 때로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 주며 우리가 누구 인지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오라

부르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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