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문화에 대한 교회의 응답
복음적인 가치를 붙잡아야 한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 성탄의 이런저런 사실과 기억들
최근 몇 년 동안 한 기독교 대학이 교정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서 시민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산타가 등장하고, 연인들을 위한 하트 모양의 장식도 등장한다.
삭막한 도시에 나름의 볼거리와 따뜻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 같다.
성탄절이 오늘날에 주로 경제적인 의미로 많이 다가온다. 성탄 특수라는 시장 용어가 이미 퇴색된 표현이다.
그만큼 성탄은 산타와 함께 경제적인 의미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미국의 경우 추수 감사절로부터 시작되어 성탄까지 이어지는 기간은 쇼핑 기간으로 유명하다.
유럽의 성탄절도 크리스마스 시장이란 이름으로 도시들마다 소비자를 끌어모으기에 분주하다.
이런 분위기에 역행하는 움직임도 있다. 성탄절 일자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12월 25일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맞는가를 질문한다.
12월 25일이 팔레스타인에서는 우기에 속하기 때문에 목자들이 밖에서 양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무리들은 10월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12월 25일의 성탄절은 4세기의 교황령에 의해서 교회력에 가입되어 지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1월 6일을 주현절로 지키기도 했다. 동서 교회가 함께 12월 25일 지킨 것은 379년이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정한 것에는 교회가 속한 지역에서의 토착화와 관련이 깊다.
로마의 경우는 동지 절기인 12/24일 다음 날 태양신 미드라의 복귀를 축하하는 풍습과 연결된다.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로 세례를 준 것이다. 프랑스도 태양신 노엘에 세례를 준 것이다.
성탄과 함께 크리스마스실이라는 우표가 있다.
1903 덴마크의 한 우편 부인 아이 날 홀보엘(Einar Holboell)이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결핵환자를 위해서
고안했다. 그리고 이 취지에 온 세상이 동참을 해서 성탄 문화를 만들어 냈다.
구세군 냄비도 성탄절의 구성원이다.
1894년에 한 난파선이 미국 샌 프란스시코 해안에 도착한다.
먹을 것도 없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구세군 사관이 한 냄비를 걸어놓고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이 냄비를 끊게 합시다" 그래서 그 냄비에 사람들이 돈이며, 먹을 것 등을 갖다가 놓았다고 합니다.
이런 다양한 현실은 모두 성탄 혹은 크리스마스와 관련된다.
한국도 선교사들의 도착과 함께 지켜지다가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발전하였다.
놀이 문화가 많지 않았던 한국 사회 속에서 교회는 독특한 성탄 문화를 만들었다. 성탄 이브 축하 순서가 그것이다. 아이들이 성탄 준비를 위해서 12월 혹 그 이전부터 연극과 찬양 준비를 한다.
성경 암송도 한다. 그리고 트리와 장식을 한다.
성탄 이브가 되면 부모들과 함께 온 교회 식구들이 모여서 발표를 한다. 주님의 오심을 축하한다.
성가대가 성탄 캐럴이나 칸타타를 연주하기도 있다.
그리고 축하 순서가 마치면 중 고등부, 대학생 들은 밤새도록 선물 교환을 하면서 논다.
필자의 10대도 그렇게 성탄을 보냈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성도들의 가정에 방문하면서 성탄 찬송을 부른다.
예수님의 오심을 전한다는 취지 아래 행해졌다. 그러다가 경찰서나 소방서 등과 같은 곳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성도들이 준 선물들을 가지고 와서 실컷 먹고 또 놀다가 정작 성탄 예배 시간에는 졸면서 예배를 드린다.
이런 기억들이 아스라하다.
# 성탄절에 대한 복음의 응답
이제 성탄절의 풍속도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기독교가 얼마나 세상과 연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극단적인 형태는 이런 것이다.
성탄절에 쇼핑하고, 장식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산탄 클로스를 기다리는 분위기는 예수님의 오심을 배
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소위 기독교 문화의 문제이다. 세속화된 기독교 문화를 기독교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
크리스마스실과 구세군 냄비, 그리고 최근에 한국 교회는 성탄 헌금은 구제 헌금으로 주로 사용하는 분위기다.
어떤 성도들은 성탄절에 고아원을 방문하는 것도 불수 있다. 이런 면들은 보기에도 긍정적인 측면들인데,
그것도 인본주의적이라고 할 것인가? 복음이나 은혜가 아니고 말이다.
성탄절을 크게 떠들면서 보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주님의 오심을 묵상하면서 지내야 할 것인가? 성탄 때에 제기되는 문제들 중에 하나다.
성탄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 이심이 분명하다. 이것이 사라지는 순간에 기독교라는 이름의 성탄절은 아니다.
세상적인 분위기가 기독교를 이용하고 기독교적인 가치를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기독교가 세상에 잇대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중이라는 힘과 그리고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가치를 이용해서 장사하고 문화를 만들어내어
호소력을 높이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교회와 성도들의 태도이다. 성도들과 교회가 가진 복음적 가치에 성탄절이 부합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복음적 가치가 무엇인가?
복음적 가치는 모든 교회에서 설교되고 있지 않는가?
낮은 땅 위에 하늘의 평화와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주님이 오신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 위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과 평화를 이 땅에 구현시키는 좋은 소식이다.
질병, 가난, 전쟁, 재난, 분쟁, 다툼과 결핍으로 엉망이 된 세상을 위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낮은 인간의
몸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 모든 고통의 근본이 되는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다. 예수님은 세상의 위로 자이고 회복자이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복음적 가치는 항상 낮은 곳을 지향한다. 예수님의 나신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자들은 목자들이다.
목자들은 당시에 신용이 없어서 법정에 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자격을 허락하신 것이다.
세상의 증인이 아니라 하늘의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부르셨다. 첫 소식을 듣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측근이다.
구주의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목자들을 선택하셨다.
성탄이 세상과 접해서 만들어내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겠다.
기독교가 이교도를 이겼다는 상징으로 이교도의 축제일을 바꾼 것은 복음의 자신감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이 이런 정도의 상업화에 뒤집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탐욕과 쾌락의 욕구 앞에 어떤 거룩한 것이 배겨낼 것인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신 주님! 연약한 자들의 위로자로 오신 주님!
소망이 필요한 자들의 희망이 되신 주님! 이 주님과 주님의 복음이 기억되는 것만이 성탄절의 긍정이다.
나아가 교회가 성탄을 맞는 세속적 분위기에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
크리스마스는 교회가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세상이 받아서 세상적인 가치로 이제 역 세례를 주고 있다.
이제 교회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교회가 추구하는 측면은 이것이다.
세상이 죄를 억제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 성도나 교회가 격려하며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영역의 자리를 교회가 찾아서 일하는 것이다.
교회가 속한 세상 즉 환경이 감당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이것을 교회는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교회가 감당하는 부분도 감당할 수 있게 되면 교회는 선점한 권리를 내려놓고 섬김의 자리를
유지하며, 새롭게 잊히고 있는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잃어버림의 복음이다.
한 기억이 떠오른다. 한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면서 청년들을 양육하였다.
성탄절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고구마 장사를 시작했다.
교회 앞 길거리에 고구마 수레를 놓고 고구마 몇 상자를 사 와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불우 이웃을 도왔다. 아마도 청년들이 투자한 시간이 수익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성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 겨우 말을 할 줄 알던 큰 아이가 아빠를 고구마 장사라고 불렀다.
교회는 낮아지고 잃어버리고 섬기는 복음적 가치에 존재 기반을 둔다.
세속화된 성탄의 분위기를 대하는 성도들과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이 있는 자리와 교회가 놓인 위치에서, 세상이 가진 긍정적 가치는 격려하면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복음의 빛을 드러내어야 한다.
※ 나의 주장은 순수한 기고자의 의견으로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코람데오 닷컴 http : // www. kscoramdeo. com › news › articl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