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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의 외경

작성자삭개오|작성시간26.01.14|조회수119 목록 댓글 0

카톨릭의 외경

카톨릭은 성경에 외경을 포함시키며, 개신교는 외경을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이와 같이 외경을 포함시키는 것이 교회사적으로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주장을 문헌적으로 살펴보면서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를 공부하여 보려고 합니다.

카톨릭이 공식적으로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킨 것은 트랜트공의회인데, 다음은 트랜트공의회에 대한

문헌입니다.

- 트랜트공의회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모두 25회에 걸쳐 열린 교회 회의였다.

이 회의는 예수회 출신의 학자들인 라이네즈와 살메론이 중심이 되어 교령과 교칙을 작성한 공의회였다.

교황 바울3세에 의해 트랜트에서 소집되었는데 그 목적은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중심으로 한 신교를

배척하려는 것었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중요한 사항들을 보면 성서와 전통은 동등하게 진리의 근원이며,

교회만이 성서를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등이다.

이렇듯 이 결정들은 철저히 반종교개혁적, 즉 반신교적인 성경들을 갖고 있었다.

이 회의는 로마카톨릭 교회와 신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 25회기에 걸쳐 개최된 이 공회의 중 특별한 결정을 한 회기들을 간추려보면 제4회기에서는 성서와

성문화되지 않은 전승을 대등한 위치에 두도록 하는 결정을 했는데, 이는 성서만이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신교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다.

또한 이 회기에서는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도 모교회의 결정에 땅라야만 한다고 못박았다.

다음으로 제6회기에서는 신교의 견해와 비슷하게 율법에 의해 새롭게 되지 못한다고 결정하기는 했지만,

이는 카톨릭 교회의 공로에 의한 의인사상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 회기결정문 14장에는 고해의 4단계, 즉 참회, 고백, 사죄선언, 그리고 보상의 단계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도 신교로써는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7회기에서는 일곱성례가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23회기에서는 교회의 일곱성직을 확인했으며, 모든 신자가 사제라고 하는 신교의 주장을

부정했다. 마지막 제 25회기에서는 연옥, 성인을 향한 기원, 성인숭배, 성인의 유물, 성상, 면죄부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여기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단지 올바르고 신중하게 사용할 것만을 가르쳤다.

특히 면죄부의 오용에 대해서 비판하면서도 지나치게 편법화하지말고 그것 때문에 교회의 규율이 약화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결정은 면죄부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신교의 비판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트랜트에서 개최된 가톨릭교회의 공의회는 신교의 개혁적 이상을 수용할 수

없었으며 신교와의 차이점만을 다시 한번 확연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교의 공격에 동요한 일부 가톨릭 신자에게는 자신들의 위치를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TBC 성서연구, 교욱목회협의회, 612-613쪽)

트랜트공의회는 신교의 종교개혁이후 그 비난에 대해서 가톨릭이 자신들을 방어하고 변명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의 비난을 입막음하기 위하여 교리를 임시로 제정한 것이며, 그 교리를 위하여 고의로 합법성을

제공한 것입니다. 즉 교리적인 필요에 따라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칠십인역에 있는 외경을 모두 성경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고, 일부만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 외경이 자신들의 교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키려면 모두 포함시키든지, 그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교리를 입막음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기 위하여, 정경에 일부만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즉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위 - 성경을 교리에 짜깁기로 맞추는 행위 - 인 것입니다.

- 외경서의 14권이 모두가 트랜트공의회에서 승인받지 못한 것을 보면 트랜트공의회의 행동강령이 분명히

논쟁 위주였을 뿐 아니라, 편파적이었음도 엿볼 수 있다.

에스드라 1서와 2서(천주교는 에스드라 3서, 4서)와 므낫세의 기도는 제외되어졌다.

에스드라 2서를 제외시킨 것은 특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제외시킨 이유라면 그것은 사자(死者)에 대한 기도를 강력히 반대하는 구절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드라2서 7:105) 실제로 중세의 서사(서기관) 중 몇사람은 에스드라 2서의 라틴어 필사본에서

이 구절을 삭제시켜 버렸으며, 이 사실이 로버트 벤틀 리가 1874년 프랑스 아미엔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라틴어로 된 것을 다시 찾았을 때까지는 그것이 아랍어 필사본으로 알려 졌던 것이다.

(성경의 유래, 노오만가이슬러, 생명의 말씀사. 113쪽)

또 카톨릭은 외경이 어떻게 정경에 포함될 수 있는가라는 신교의 질문에 대해서 발견된 칠십인역의

사본에는 래 외경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외경은 시대마다 또 발견되는 사본마다 모두 달랐습니다.

칠십인역은 발견되는 사본마다 외경이 서로 다르게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모두 후대의 칠십인역입니다.

그리고 제롬이 외경의 삽입을 강렬히 반대했던 불가타역의 외경은 지금의 카톨릭의 제2경전과

그 목록이 또 다릅니다.

발견된 칠십인역 사본은 주후 4-5세기의 것입니다.

그리고 BC 2세기에서 주후 1세기의 칠십인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는가하는 것은 오히려 외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2경전(제2 정경이라는 뜻)이라는 용어는 트랜트공의회에서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아래는 대한성서공회의 자료입니다.

- 제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역사적으로 변천되어 왔다. 또 편집 형태에 따라, 책의 권 수도 일정하지 않다.

1977년에 나온 우리나라의 신.구교가 번역한 '공동번역성서'(1977)에 보면, ‘토비트’ ‘유딧’ ‘에스델

(제1경전 에스더기의 추가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다니엘서(제1경전 다니엘의 추가부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이상 9권이다. ‘바룩서’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장으로 편집되어 있고,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에는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이 들어 있다.

영어개역표준성서(Revised Standard Version) (1957)에 실린 제2경전에는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가 더 들어 있다.

제2경전에 속하는 이러한 책들은 본래 유대교가 번역한 그리스어역 구약인 ‘칠십인역’에 들어 있던 것들을

초기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그것이 그대로 가톨릭의 경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2경전에 속한 책들이 제1경전과 합본된 것은 기독교의 작업이 아니라 유대교의 경전사와

관련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성서에 익숙하지 않던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구약을

읽게 되면서 거기에 들어 있는 제2경전에 속한 책들까지 함께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고대 라틴어역 성서(Old Latin Version)는 바로 ‘칠십인역’에서 번역된 것이다.

교부들 사이에서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에는 없고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에만 나오는 책들에 대한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문제삼기는 하였으나,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는 그리스어 외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39권 책과 동일하게 영감 받은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게 된다.

히브리어 구약에 들어 있는 39권의 책은 이미 경전으로 전해져온 것이므로 이것을 ‘제1경전’이라고 하였고,

그리스어 구약에 들어 있는 나머지 책들은 늦게 경전이 되었다고 하여 ‘제2경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논의의 편의상 여기에서 ‘제1경전’ ‘제2경전’이란 말을 쓰지만, 이런 용어는 16세기 트렌트회의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의 기도’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는 불가타역 성서에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으로

인정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불가타역은 이 세 책을 부록으로 취급하여 별도로 편집하였고, 나머지 책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 적절히 재배치하였다. ‘토빗트’와 ‘유딧’은 ‘느헤미야기’ 다음에, ‘에스더기 추가 부분’은

‘에스더기’ 안에,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는 ‘에스더기’ 다음에, ‘지혜서’와 ‘집회서’는 ‘아가’ 다음에,

‘바룩서’는 ‘애가’ 다음에, ‘다니엘서 추가 부분’은 ‘다니엘서’ 다음에 각각 편집해 넣었다.(대한성서공회)

예를 들자면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에는 "바나바서, 헤르마서의 목자를 제외한 외경이 실려 있고,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a)에는 클레멘트 1서, 2서와 솔로몬의 시편의 외경만이 실려 있습니다.

또 에브라임사본은 솔로몬의 지혜서와 전도서 두개의 외경이 실려 있었으며, 바티칸사본에는 일부 삭제된

외경들이 실려 있습니다.

외경이 전혀 없는 칠십인역 사본도 발견됩니다. 이렇게 발견된 사본들마다 외경이 모두 달랐다는 증거들은

외경이 동일한 목록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며 정경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거하여 줍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것은 시대마다 다른 외경이 트랜트공의회에서 결정한 지금의 카톨릭 외경과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카르타고 회의에 대해서 카톨릭은 어거스틴이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히포지역의 감독이었던 어거스틴이 참석하였던 히포회의(A.D. 393)와

카르타고 회의(AD 397)에서 어거스틴이 말했던 외경은 지금과 달리 바룩서를 생략하고 위경 에스드라

전서를 삽입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회의는 구약정경 목록을 결정하는 회의가 아니었고, 신약정경을 확정하는 회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제롬의 불가타역은 다른 사람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이 제롬의 불가타역을 비난한 것은 외경이 포함되어있는가 아닌가하는 관점이 아니라,

그 번역본의 내용이 전통적으로 읽어온 본문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 제롬은 라틴어 성서를 히브리어 원문 성서에서 직접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390년에 시작하여 405년에 끝냈다. 그러나 이미 서방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굳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제롬의 라틴어역은 처음에는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제롬의 라틴어 번역이 칠십인역의 내용과도 달랐고 고대 라틴어역과도 다른 곳이 많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읽어 오던 본문과 다르다고 하여서, 오히려 라틴어역의 권위가 도전을 받았다.

어거스틴 같은 지도자는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가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를 갈라지게 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결국 제롬의 새 라틴어역의 우수성이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번역은 "라틴어 불가타가 되어서, 종교개혁 때까지 서방 교회의 성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상당 기간 동안 고대 라틴어역과 제롬의 불가타역을 손으로 베껴서 보급하는 과정에서

번역문에 많은 변화가 가해져서 일종의 종합 본문이 되버리고 말았다.

손으로 베끼는 과정에서 본문의 와전까지 겹치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약 8천여 개의 사본들 사이에

이독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중세기에 불가타역 회복을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히 실패하다가,

1546년에 트렌트회의에서 불가타역을 공인하게 됨에 따라, 개정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고, 거기에다가,

15세기 중엽부터 발달된 인쇄술은 번역 본문을 정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교황 식스투스 5세의 식스타인판(Sixtein edition, 1590)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교황

클레멘트 8세가 1592년에 새 판을 간행하였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공인 불가타가 되었다(대한성서공회)

- 제롬은 히브리어 본문을 존중하였으나, 교리적인 난점이 있는 곳에서는 기독교를 위하여 가끔 칠십인역을

따르기도 하였다. 루피노스는 이 개정판을 이단적이라고 하였고, 어거스틴은 불필요한 번역이라 혹평하였으나,

그레고리에 의하여 공인되었다(구약개론, 구관덕저, 대한기독교출판사 69쪽)

위의 두 문헌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제롬의 불가타역은 칠십인역을 번역한 것도 아니라, 일부만 번역한 것으로서

내용 분문상의 문제로 비판을 받은 것입니다. 즉 제롬의 불가타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증거로는

그 당시 칠십인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하며, 특히 불가타 역의 저자인 제롬 자신은

“외경은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기록하였다는 것은 카톨릭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즉 제롬의 불가타역은 외경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합니다.

또한 어거스틴은 지금과는 다른 몇 개의 외경을 인정하기는 하였지만, 외경을 정경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거스틴은 마카비서에 대해서 선지적이 아님을 말한 적이 있으며, 유딧같은 책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은 정경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그것을 역사가의 부지런함이 있는 자라면 쓸 수 있는 것이요, 정경은 신적 영감을 받은 선지자가

기록할 수 있는 것이요, 전자는 지식증가에 속한 것이요 후자는 종교의 권위에 속한 것으로 그 권위로

정경이 유지된다" 고 말하였습니다. (Augustine, De Civitate Edi, xviii, 26.)

또한 주후 600년경의 카톨릭의 교황 그레고리는 마카비전서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정경은 아니지만 교회의

덕을 위하여 책들로부터 증거를 출판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류가 없다고 하는 교황권의 주장이 오류였다고 말할 것인가요?

또한 추기경 시메네스는 "Complutensian Polyglot" (교황 레오 10세에게 증정되고 그에게 인정되었다)

서언에서 "여기에 포함된 '외경서'는 '정경'은 아니지만 덕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고 진술하였습니다. 카톨릭의

많은 학자들은 외경이 정경에 포함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들은 파문을 당하거나 이단이었던가요?

이제 과연 초대교회 교부들과 문헌들이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켰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신약성경에서 볼 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많은 구약성경을 인용하였는데,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는

“성경에 이르되” 혹은 “기록하였으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서는 외경의 구절을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2) 오랫동안 구약성경을 유일한 정경으로 간주했던 유대인들은 외경을 성경이라고 하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유대인의 성경목록이 열거되어지는데, 12 소선지서를 하나로 묶고,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역대기서 상하를 한권으로 계산하여 22권으로 열거하였습니다.

(3) 사데교회의 감독이었던 멜리토가 쓴 주후 170년경의 성경목록에 의하면 구약성경은 지금의 성경과

동일하며 단지 에스더서만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주후 170년 경에 사데교회의 감독 멜리토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인의 구약정경목록입니다. 그 내용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있는 내용

(Eusebius, The Ecclesiastical History 2권, 1:393)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동쪽에 와서 이와 같은 것들이 전파되고 행해진 장소에 와서 구약의 책들을에 관해 정확히

배웠을 때 그것을 기록하여 너희들에게 보내었노니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모세의 오경인 칭세기, 출애굽기, 레위가, 민수기, 신명기, 눈의 아들 여호수아, 사사기, 롯기 왕국에 관한

책 네권, 역대상, 하,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잠언과 지혜서, 전도서, 아가서, 욥기,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하나로 된 열두선지서, 다니엘서, 에스겔서, 그리고 에스라.”

(위의 지혜서는 외경이 아니라, 솔로몬의 잠언을 지혜서라고 불렀음: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213쪽)

주후 170년경에 멜리토는 단 하나의 외경도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주후 170년경에

외경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면 당연히 멜리토는 서신에서 그 목록을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4) 유세비우스 자신도 오리겐을 인용하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열거하면서

(에스더서 포함) 외경 중에 어느 하나도 정경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매우 특색이 있는 내용은

“마카비서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그밖에는 마카비서가 있다)라고 기록한 점입니다.

(5)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오리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AD90년경에 유대인이 받은 22권의 책을

정경에 포함시켰고 “유대인들은 이런 성경을 바꾸거나 부인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할 것이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마카비서(외경)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언급하였습니다.

요세푸스는 히브리아 알파벳 22글자와 같은 22권의 성경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6) 주후 367년에 아타나시우스는 유월절 편지를 쓰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약성경과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을 열거하였습니다. 그는 특별히 솔로몬의 지혜서, 시락의 지혜서, 유딧,

토빗등의 외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것들은 정경에 속하지는 않지만, 새로 입교한 사람과 경건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기 원하는 자들이 읽도록 교부들이 지정한 책들”이라고 말했습니다.(아타나시우스의 서신 39)

(7) AD 90년경에 유대인들은 잠니아 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카톨릭은 그 회의에서 기독교인을 증오하는 유대인들이 칠십인역에 포함된 외경을 정경에서 분리하여

배척하였으며 그것을 발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회의는 전도서와 잠언에 대해 정경성을 의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문헌을 보아도 이 회의에서도 외경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된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그 회의에서는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키지도 않았습니다.

- 이른바 잠니아회의(Council of Jamnia)에서 기록서의 제3부분이 정경화되었다는 주장은 있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만 학자들의 모임이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의에서는 권위를

인정할만한 인물도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경을 인정하고 논할만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잠니아회의는 정경에 관한 어떤 논의도 없었다.(노오만가이슬러, 성경의 유래, 97쪽)

카톨릭이 왜 잠니아(얌니아)회의를 자꾸 주장할까요?

얌니아 회의에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배척하기 위하여 외경과 정경을 분리시켰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인들은 얌니아회의가 기독교를 배척하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의 배척을 논의하였다는 문헌적인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문헌적인 증거는 다른 책에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얌니아회의에 대한 이해에도 설명이 필요하다. 루이스(J. P. Lewis)는 주장하기를

(1) 얌니아회의 유대교 교권자들의 회의가 아니라 학파 혹은 회증들의 집회이고

(2) 거기서 경전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증거는 B. Yadim 3:5 이다. 랍비 가마리엘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랍비 엘르아살,

벤 아자리아를 지도자의 자리에 앉히기 위하여 72인의 장로들이 모여 전도서와 아가서를 성서로 선포하였다.

이 두 책은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교의 저명한 학자 힐렐학파와 샴마이학파간에 있었던 논쟁 문제를

종결 짓기 위하여 내린 결정이었다.(구약개론, 구관덕저, 대한기독교출판사 37쪽)

(8) 사해사본에서 일부 외경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종말론을 주장하던 공동체적인 엣세네파

였습니다. 또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에서는 성경을 모세와 선지자라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외경을

성경이라고 부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쿰란동굴에서는 외경뿐 아니라 위경도 발견되었고,

공동체 지침서와 다른 문서들도 발견되었습니다. 만일 쿰란에서 발견된 일부의 외경이 정경에 포함된 증거라면,

위경과 공동체지침서도 정경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여야 합니다.

더욱이 쿰람사본에서 주류를 이룬 사본은 칠십인역이 아니라 맛소라본문계열의 본문이었으며, 약간의

칠십인역도 발견되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맛소라계열의 본문과 다른 본문도 결국 동일한 맛소라본문 원문에서

파생된 본문이었으며, 주후 1000년의 맛소라 본문과 그 내용이 거의 일치하였던 것입니다. 즉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은 외경이 포함된 약간의 칠십인역은 그 주류가 아니며, 주류는 맛소라본문이었다는 것입니다.

(9) 제롬은 주후 404년에 벌게이트역이라고 불리는 라틴어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가 외경을 번역하였다는 것이 카톨릭에서 자주 외경의 정당성으로 주장하지만, 막상 제롬 자신은

외경은 교회의 책은 될 수 있지만 정경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을 덧붙혔던 것입니다.

- 70인역으로 라틴어 불가타역을 번역한 제롬 자신도 성경에 외경을 포함시켰으나, 제롬은 이 외경이 “

신자들에게 유익한 교회의 책”이지 “정경의 책”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AD 90년에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구약성경이 22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리겐도 250년경 외경을 제외한 성경목록을 3부분으로 22권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레어드 헬리스, 성경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말씀사, 57-60쪽)

(10) 최근에는 바로코치오 사본(Codex Barococcio, AD 206년)이 발견되었습니다.

신약의 초기성경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육십권서”라고 일컬어지는 한 사본에서 비롯됩니다.

이 60권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성경에서 잘알려진 66권의 정경 중에서 실제로는 64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에스더서가 제외되어있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본에는 외경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1) 카톨릭이 말하는 소위 “알렉산드리아 정경”이라는 것은 주전부터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후 4세기에 발견된 칠십인역을 말합니다. 즉 오리겐의 헥사플라 이후의 것입니다.

BC에 만들어진 헬라어 칠십인역은 히브라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즉 최초의 70인역은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었기에 히브리성경과 다른 내용이 아니었음이 명백합니다.

다시 말하여 처음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과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번역상의 오류, 필사의 오류, 철자법의 오류, 혹은 교리적 차이등에 의하여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그 차이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오리겐이 여섯 개의 사본으로 된 번역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성경과 칠십인역이 다른 곳에는 표시와 주역을 달아놓았다고 전해 집니다.

그 헥시플라의 칠십인역도 현재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성경사는 정확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발견되지도 않은 칠십인역을 카톨릭은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정작 헥사플라를 집필한 오리겐 자신은 성경을 22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 잠깐 언급하였지만,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기록을 보면 오리겐(185-254년)을 언급하면서 외경이

정경에 포함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헌적인 증거는 카톨릭의 추측을 여지없이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세비우스가 누구인지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황제의 측근 교부입니다. 그가 황제의 명령으로 오리겐의 헥사플라에서 칠십인역을

50권 필사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온전히 보관되었다고 하는 칠십인역이 바티칸사본(B사본)인데,

그 바티칸사본이 50권의 칠십인역 중에서 한권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 말하여 오리겐은 구약의 목록을 22권이라고 확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세비우스가 필사한 50권에서부터 성경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바티칸사본에 아무런 장식이 없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것이 시내산사본보다 조금 전의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어느 학자들은 이 두 사본이 본래 콘스탄틴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명해서

기록하게 한 50권의 성경 사본중에 있었다고 믿는다.

대영박물관의 스키트는 “바티칸사본은 유세비우스의 정경표에서 빠져있고, 여러 서기관에 의하여 많이

교정되어있으며 그리고 앞에서 말한 50권 중에서 불합격된 것”이라고 현재의 작가에게 말했다.

그러나 불합격되었든 합격되었든 간에 거기 있는 본문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아주 훌륭한 신약의

알렉산드리아 본문형태의 대표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브루스 M 메증거의 사본학 63쪽)

이와 같이 후대의 칠십인역에 외경이 포함된 것을 카톨릭은 외경이 정경에 포함되었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외경이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증거만 발견될 뿐입니다.

또한 더욱 우스운 것은 후대에 발견된 칠십인역들은 서로 포함된 외경이 동일한 목록이 아니라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에는 "바나바서, 헤르마서의 목자를 제외한 외경이 실려 있고,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a)에는 클레멘트 1서, 2서와 솔로몬의 시편의 외경만이 실려 있습니다.

또 에브라임사본은 솔로몬의 지혜서와 전도서 두개의 외경이 실려 있었으며, 바티칸사본에는 일부 삭제된

외경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발견된 사본들마다 외경이 모두 달랐다는 증거들은 외경이 동일한 목록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며 정경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것은 트랜트공의회에서 결정한 지금의 카톨릭 외경과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12) 동방정교나 성공회등에서는 외경이 예배의 의식에서 사용된 적은 있다고 할지라도, 정경에 속한다고

정의한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동방정교가 주장하는 외경은 카톨릭과 다릅니다.

외경은 트랜트공의회에서 카톨릭이 그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삽입시킨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단 한번도 트랜트공의회의 외경목록과 동일한 성경목록은 없었으며, 인위적인 성경목록이

된 것입니다. 카톨릭은 일부 교회사를 조작하고 거짓으로 만들면서 그 당위성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비롯하여 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교회의 전승을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교황권을 수호하기 위한 인위적인 제사장 집단으로서 만인제사장인 성도들을 미혹하는 곳으로서

이미 기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단이라고 부르는 교회들 중에는 이들 카톨릭보다 이단성이 훨씬 적은 곳이

더욱 많습니다. 자신들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선택한 외경을 정경이라고 부르고,

또 전승을 성서의 권위와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곳은 기독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구원과 심판의 공동 사역자로 만들어버린 카톨릭, 모든 성도들 위에 제사장의 위치로

군림하며, 자신들 사제를 통한 일곱성례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주장은

오류가 없다고 공언하는 사제들......

카톨릭인들은 그러한 가증스러운 집단에서 하루 빨리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카톨릭인들과 토론은 외경이 무엇인지 정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저분한 덧글 토론이 아니었다면 더욱 좋은 내용의 글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 외경의 오류:(외경이 정경이 될 수 없는 이유)

지혜서 11: 17 무형의 물질로부터 세계를 만들어 내신 주님의 전능하신 손이 곰과 사나운 사자들의

무리를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형의 물질(형태가 없는 물질)로부터 세계를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닙니다.

무(無)로부터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

집회서3:30 물은 뜨거운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

자선이나 구제가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룩3:4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소서. 그들은 당신께 죄를 지었고 그들의 주 하느님이신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난을 당하게 되었읍니다.

죽은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 지혜서가 솔로몬이 저자라는 것은 조작이며, 지혜서의 기록시기는 주전 2-3세기로 봅니다.

솔로몬의 명의를 도용한 것은 위경적 성격을 나타내고, 지혜서의 시리아역본 표제에는 솔직하게 솔로몬의

명의 도용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제롬과 루터는 필로의 것이라고 했고,

어거스틴은 벤시락의 것이라고 했습니다.(구약개론, 하권 356쪽 참조)

유딧과 토빗트는 역사적, 연대적, 지리적 오류가 있으며, 거짓과 술수를 정당화시키고 구원을 개인의

공적과

행위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마카비 1서는 역사적 지리적 오류들이 상당히 있다

.(웨인그루뎀의 조직신학 상권, 70쪽)

마카비 2서( 2 Maccabees) 12장에서 우리는 유다 마카비(Judas the Maccabean)가 기도회를 연 후

율법에서 금하는 바, 우상을 부적으로 지닌 채 전사한 자들의 죄가 용서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과 또한 그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에 쓰일 비용으로 많은 돈을 모금하였다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사실에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 책의 저자에 따르면, 마카비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고 속죄 제물을 바친 것은 영생 및 그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확신이 어디서 온 것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죽은 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항상 그러한 구절들을

원용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구절들을 대할때마다, 어째서 로마교회가 외경을 정경의 일부로

삽입시키려는 일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는지를 쉽게 납득할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외경에서 농부, 기술자, 대장장이, 옹기장이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경 학자가 될수 없다는 부분(집회서:Ecclesiasticus 또는 Sirach 38:24~34)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노동 계층의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랍비들의 교만을 엿보게 됩니다.

랍비들은 노동 계층의 사람들 없이 세상을 지탱해 나갈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교회"안에서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성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그 제자가 자신을 가리켜 묘사한 글을 보면서 그 내용 역시 오해의

여지가 많고 허황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저자는 자신을 "좋은 기질을 타고 난 어린이였으며 훌륭한 영혼을 받은 자였다"라고 밝히면서,

따라서 자신은 더럽혀질수 없는 몸을 부여 받았노라고 말합니다.(8:20)

우리가 이상과 같은 그의 말을 받아들일때 그는 원죄가 전혀 없다는 것과 그 영혼은 이미 육체와 결합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상에서 외경이 가르치는 바가 반드시 "성경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규명해 보이기 위해 몇 가지

명백한 실례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교회가 외경을 정경의 일부로써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제까지 논거한 대로 그 가르침의 대부분이

성경적이지 않으며 기괴하고 허황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경이 전혀 쓸데없는 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2쳔년전 헬라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집회 때에 낭독용으로 사용했던 것 같이,

오늘날에도 그것은 성경과 함께 편집되어 더러 읽혀지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 왜 그토록 외경을 정경 안에 포함시키려 하는지 그 이유는 연옥이나 성모승천설 무오성,

천사숭배등 모든것들을 외경책안에서 교리를 만들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성경의 내용과는 거리가 멀므로 우리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면, 토비트서(the Book of Tobit)에 나오는 토비아(Tobias)의 이야기는 참으로 허황됩니다.

눈 멀고 가난한 처지가 된 토비트는 그의 아들 토비아를 메대(Media)에 있는 채권자 가바엘에게 보내어

약간의 돈을 빌려 오도록 합니다.한 사람이 토비아와 함께 길을 떠나는데 나중에 그는 천사 라파엘(Raphael)임이

밝혀졌습니다. 그 둘은 길을 가다가 밤이 되어 티그리스 강 가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마침 토비아가 발을

씻으려고 물 가에 내려갔을때에 한 커다란 물고기가 물에서 뛰어올라 그의 발을 잘라먹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라파엘은 고기를 잡아 죽이되, 그 쓸개와 염통과 간은 먹지 말고 잘 보관하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계속하는 중 토비아는 남겨 둔 그 물고기의 쓸개와 염통과 간을 무엇에 쓸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라파엘은 대답하기를 쓸개는 눈이 먼 자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데 쓰일 치료약이요, 염통과 간은 악마를 퇴치하는데

쓰인다고 하였습니다. 즉, 악한 귀신이나 악령에 사로잡힌 자 앞에서 그것들을 태워 연기를 피우면

그 악한 것들이 주던 괴로움이 깨끗이 사라지고 다시는 그 괴로움이 그 사람에게 찾아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토비아는 라파엘의 인도를 받아 그의 친척 라구엘의 집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라파엘이 일러준 대로 그의 친척 라구엘의 집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라파엘이 일러준 대로 그의 친척의 딸인 사라(Sarh)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사라는 이미 일곱 번의 결혼 경험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녀는 그녀와 결혼한 신랑들이 한결같이 결혼 첫날 밤 비명에 감으로써 졸지에 과부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토비아는 그녀의 여덟번째 신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장인어른은 일찌감치

여덟번째 사위의 무덤을 파놓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토비아는 무사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가 물고기로부터 취한 염통과 간을 태워 만든 연기로 인하여 사라의 몸 안에 들어 있던 귀신

아스모데우스 (Asmodeous)는 그녀의 몸에서 나와 애굽 땅 먼 곳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의 쓸개는 그의 아버지 토비트의 눈을 고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이야기는 결국 행복하게 끝(happy ending)을 맺게 됩니다.

이제까지 이 외경의 대강 줄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떤 종류의 글이라 생각되십니까?

이 외경의 이야기는 한낱 유대인 우화 중의 하나에 불과한것입니다.

내용출처 : 연세대 종교교재출판위원회[성서와기독교] 참조

이러한 내용이므로 초대교회 교부들이 정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카톨릭의 교리 수호를 위하여 트랜트공의회에서 정경의 목록에 포함된 것입니다.

반면에 트랜트공의회에서는 카톨릭의 교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몇몇 외경들은 정경의 목록에서 빠지게

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승도 성서의 권위와 동등하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외경이 정경에 포함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정경의 기준적인 조건 :

1) 사도적권위

2) 오래된 역사성

3) 정통성

4) 보편성

5) 전통성

6) 영감성

7) 신앙성

# 외경의 가치:

외경은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한번쯤 읽어서 참고를 삼는 것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설교집이나 간증서 같은 경건 서적들을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는다.

심지어는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소설이나 잡지들을 통해서도 유익을 얻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외경을 한번쯤 읽어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외경이 등장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외경을 읽을 때는, 그것이 오류가 없고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명심하고 읽어야 한다.

만일 이 사실을 잊은 채, 외경이 마치 성경이나 되는 것처럼 높이고 신뢰를 하게 되는 일이 생겨난다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것만도 못하게 된다.

거짓 신을 참 하나님처럼 여기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외경을 성경으로 여기는 것도 역시 우상숭배와 같은 너무나도 엄청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적당한 영양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나친 영양 섭취는 오히려 독이 된다.

사람의 본성은 항상 이러한 지나침에 이르게 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외경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외경들을 만들어 놓고, 이것들을 성경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활동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몰몬경, 내가 본 천국, 새로운 계시록, 교회의 규칙과 법령, 교리서, 설교집,

간증서 등 새로운 형태의 외경이라고 여겨질 만한 책들이 매우 많다. 또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책들이 가지는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독에 몰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일수록

이러한

의미의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성경보다도 더 권위 있는 책으로 여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중 일점이나 일획을 더하거나 빼는 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저주를면하지 못한다(계 22:18, 19).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까지나 성경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거기에다 무엇을 더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 빼는 일도 없어야 한다. 외경은 성경이 아니다.

우리는 외경을 성경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제 2의 경전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이 또 다른 어떤 것들을 새로운 외경처럼 여기기 쉬운 처지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서, 스스로 자신 살피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박일민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수집한 여러 자료들의 결론:

(1) 트랜트공의회는 개신교의 비판에 대해서 카톨릭이 그 사후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이었다.

(2) 트랜트공의회는 그들의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최초로 외경을 정경(제2경전)이라고

공식발표한 회의이다.

(3) 트랜트공의회는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기존 교리와 다른 몇 개의 위경은 제외시켰으며,

그 외경의 목록은 단 한번도 교회사에서 동일한 목록이 없었던 것이었다.

또 교리의 조작을 위하여 교회의 전승까지도 성경과 동등한 권위로 올려 놓았던 회의이다.

♣ 교회론에 나타난 이단사상

(김장진 예장 고려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로마가톨릭과 급진 종교개혁파:

1050∼1300년경에는 기독교 사회가 교황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교황의 권위에 복종하는 크리스천을 정의한 시대이므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신자는 이단자

(infidels, Schismatics 혹은 heretics)로 규정했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성도가 처형되었고 십자군 원정 및 종교재판은 조직적으로 소위 이단을 파문하고

박멸하였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때에 발생했고 로마가톨릭의 트렌트공의회(1545∼1563)의 기준으로

보면 프로테스탄트는 전부가 이단이 되었다. 새로운 이단(New Heresies)으로 분류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기준으로 삼고 고대 공의회(500년 이전)를 표준으로 할 때 로마가톨릭은 실제적 이단

(real heresy)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급진적으로 빗나간 재침례파(Anabaptist)도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로마가톨릭의 문제는 성경에 없는 내용이 너무 많이 첨가된 점이 지적된다.

교황의 우위권, 마리아론, 7성례론, 화체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브로밀리는 그가 편집한 국제표준 성경백과사전(I.S.B.E) 2권 686쪽에서, 칼빈의 변증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로마가톨릭은 분명히 지정한 보편주의 교회로서의 가톨릭과 구분된다.

로마가톨릭은 덧붙힘에 의하여 왜곡시키고 변질시켰다.

믿음의 내용에서 떠나 있으므로 반드시 정정되어야 할 것들이다. 특별히 로마가톨릭은 성경의 권위를 침범했고

칭의를 오해했으며, 세례, 성찬, 고해성사, 연옥, 교황의 우위권 등의 문제들을

비사도적인 방향에서 창출했다"고 하였다.

로마가톨릭에서 이교적인 요소로 인정되는 것들을 제거하면 바른 기독교로 공인받을 것이다.

그리고 급진적인 종교개혁 운동도 이단적 정죄를 받았는데, 재침례교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교리를 부인하고 유아세레와 성만찬을 경멸하는 문제와 국가와 교회의 단절교리가 이단으로

정죄된 이유였다. 성경적 기독교에서 멀어지면 어느 교단이든지 이단의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 히브리어 성경의 위경들

위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이들이 성서 목록에 포함시키고자 애썼지만 하나님의 영감받은

증거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배제된 것이다. 위경(아포크리파)이란 "숨겨진" "비밀의" "정전이 아닌"을

의미 한다. 그 용어는 저자나 권위가 의심스러운책 혹은 개인적 독서에는 얼마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나

거룩한 영감의 증거가 결핍된 책들에 적용된다.

그러한 책들은 소외되어 왔으며 공개적으로 낭독되지 않았기 때문에 "숨겨진" 사상들이었다.

 

에스더와 다니엘의 정전에 부가된 부분과 더불어 7권의 위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부가하기로 제안한 것은

바로 기원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였다.

하지만 기원 1546년의 트렌트 회의에 와서야 비로소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서 경전들의 목록에

이것들의 부가를 용납할 것을 결정적으로 확인하였던 것이다.

이 부가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토빗트, 유딧, 에스더, 에 부가된 세부분, 마카베오 상과 마카베오 하.

마카베오 상에는 어느 면으로든 영감받은 경전으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흥미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것은 기원전2세기에 마카베오 일가의 영도아래 꽤 정확한 유대인들의 독립 투쟁의 내용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나머지 위경들은 신화와 미신으로 가득하며 오류로 충만해 있다. 그것들은

예수나 혹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필자들에 의하여 언급되거나 인용된 적이 결코 없었다.

유대인 역사가 프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기원 제 1세기 그의 저서 아피온 투쟁사(i, 8면)에서

히브리인들에 의하여 거룩하다고 인정된 모든 경전들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모순되는 수없이 많은 책들이 아니라 다만 22권

(오늘날 우리의 39권과 동일한 것이며, 앞에서 보여준 바와 같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과거에 관한 기록으로서 정당하게도 신성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

우리 역사가 특히 아닥사스다 이래로 기록되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에 의하여 전자와 같이 존중받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그때 이후로 예언자들이

정확하게 계승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세푸스는 자기가 위경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특히 히브리어 정전으로부터 이것들을

배제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기원 404년에 성서의 라틴어 '벌게이트 역'을 완성한 제로움은 위경에 대한 자기 입장에 있어서

아주 확고하였다. 요세푸스가 계수한 같은 식으로 히브리어 성경 39권의 영감받은 경전들을 22권으로

계수하여 영감받은 책들을 열거한 다음 그는 '벌게이트'의 서문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이처럼 22권의 경전들이 있다. ...

이러한 성경 서문은 우리가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모든 경전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며 그리하여 우리가 이것들에서 벗어나는 무엇이든지 위경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외경과 위경

(박일민 칼빈대학교 조직신학교수)

외경이란 '아포크리파'라고도 불려진다.

이는 숨겨진 책이라는 뜻으로, 그 저작자가 분명하지 못하거나 그 내용이 확실하지 못한 책, 즉 그 권위를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경에 들지 못하는 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외경은 신구약 성경에 함께 적용되어진다.

그러나 구약 성경과 관련하여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구약성경에는 본래 각각 낱권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구약은 주전 5세기에 이르러, 에스라와

대공회(大公會)의 회원들에 위해서 39권으로 확정되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특히 아가서가 그러했다. 외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고, 희랍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성경은 당시의 공통어인 희랍어로 번역을 할 필요가

생겨났다. 그래서 각 지파에서 뽑힌 70명의 대표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모여서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던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을 해냈다. 우리는 이것을 70인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70인역은 구약 39권의 책 이외에, 그때까지 전해 내려오던 책들 중에서 읽으면 도움이 되겠다고

여겨지는 15권의 책을, 뒷부분의 여백에다 덧붙여 놓았다. 이 책들이 바로 정경 이외의 경전인

외경(外經 또는 假經)이다. 그러므로 외경은 읽어서 참고가 되어질만한 책일 따름이고,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에는 들지 못한다. 로마 문화가 왕성해지자, 성경은 제롬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로마어

(라틴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성경은 불가타 역이라고 불려진다.

제롬은 구약성경과 함께 외경도 번역을 해놓았다. 그것은 외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순히 70인역의 전통을 따르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 사실은 외경 속에 서둘러서 번역을 한 흔적들이 역력하게 나타나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다.

로마교회는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성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 때문에 로마교회는 그 안에 포함되어 있던 외경을 마치 정경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1546년에 모였던 트렌트 회의는 공식적으로 외경이 제 2의 경전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제롬의 본래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 (구약 개론1/아세아연합신학대학/김성수교수)

외경(Apocrypha)으로 불리는 책들은 주로 신구약 중간 시대, 즉 주전 200-주후 100년에 헬라어

(지혜서, 마카베오하서) 혹은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된 책으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들은

아니지만 고대 유대인들의 종교문학의 일부분으로서 매우 가치가 있고 중요한 책들이다.

구약 정경이 기록하고 있는 시대로부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유대인들의 역사와 종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마틴 루터는 신앙에 표준적인 ‘성경과 같이 볼 수는 없지만 읽어서 쓸모 있고

좋은 책들’이 외경이라고 했다.

위경(Pseudepigrapha)은 자기 이름 대신 성경의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아브라함, 모세, 에녹 등)을

저자로 내세운 책들인데, 외경보다도 가치가 더 떨어져 그저 참고해 볼 만한 글들이다.

 

공동 번역: 토비트, 유딧, 에스더 추가 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 다니엘 추가 부분

(세 아아이 노래, 수산나, 벨과 뱀), 마카베오상, 마카베오 하 등의 9권 포함

칠십인경과 라틴언 성경 불가타에도 외경이 포함되어 있다. 외경의 어떤 부분이, 이를테면 마카베오하

12장 43-45절이나 토비트 따위의 책이 각각 연옥설이나 공적설 같은 천주교 교리를 뒷받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천주교회는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개신교에서 말하는 외경도 기독교 정경의

한부분이라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 제목: 외경의 요약

(안유섭 교수)

Ⅰ. 서 론

가. 외경의 뜻과 범위

외경을 영어로 아포크리파(Apocrypha)라고 하는데 이말은 헬라어에서 온 말로서 '감추어진 일군의

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외경은 BC 2세기부터 AD 1세기까지 사이에 쓰여진 열네권 혹은

열 다섯권의 특별한 책들을 정경과 대비하여 통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외경의 정의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었고 현재에도 로마 카톨릭과 정통

프로테스탄트 간에 서로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상태로 남아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외경은 여러 가지

장르를 포함하고 있는데, 역사적 장르에 속한 것으로 제일 에스드라, 마카베오 상.하가 있으며 도덕

소설적 장르로는 토비트, 유딧, 수산나, 벨과 뱀 등이 있고, 지혜서와 집회서와 같이 다분히 교훈적이고

설교적인 것도 있고 므낫세의 기도는 수준 높은 문학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제이 에스드라 는 성격상 묵시 문학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것들이 왜 정경과 구분되어 외경으로 불리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적 과정을

돌아보아야 하겠지만, 정경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예언자들이나 선지자들에 의해 영감받고 쓰여졌다는

사실에 논란이 거의 없고 현재의 유대인들에 의해서도 그대로 자신들의 경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반면,

외경은 항상 그 진위성과 영감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받아 온 것이 분명하다.

♣ (기독교대백과사전 8권)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증언(354-430년) 히에로니무스와는 달리 그의 견해는 모호했다.

그는 문제시되었던 일곱 권의 책을 모두 수락하기는 했으나 성경의 권위에 정도의 차이를 두었고

대체로 외경을 포함하여 폭넓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약 경전 확립에 기여하였다.

교회협의회의 활동에서 정경의 한계를 정하는 문제는 어떠한 협의회에서도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개개의 문서가 지닌 영감적인 가치나 내적인 권위가 그 결정요소였다. 이러한 사실은 정경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문서의 순수함이나 확실성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다.

4세기 말 이전 어떠한 협의회도 이런 주제에 관해서 아무런 공언도 하지 못하였다.

♣ 주니님이 처음 올렸던 자료

- 동시대의 가장 저명한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동료들로부터 공격받는 히에로니무스를

동정하였으나, 그의 의도가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온 거룩한 가르침을 부정하려고 하며,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혼란시키고 유다교의 논리에 굴복하려는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 또한 거두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가 초대 교회의 성립 시기부터 계속 사용해왔고, 신약성경의 근본이 된 70인역 성서의

권위가 부정되는 것과, 성서의 인정 문제를 둘러싸고서 보편적 일치를 지향하는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마침내 아프리카 교회의 초기 공의회들(힙본에서 393년, 카르타고에서 397년, 419년)은 신약에 있어서는

라틴 교회 측의 아타나시우스 목록에 따라서 베드로2서, 유다서, 요한 2.3서, 요한묵시록등 란티레고메나 5권을

수용함으로서 기나긴 안티레고메나 분쟁을 끝내고 신약성서 27권을 최종적으로 확정함과 동시에, 구약에 있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와 라틴교회 교부의 의견을 수용하여

당시 '교회의 책들'로 불렸던 70인역의 구약 외경을 성서로서 사용할 것을 최종 긍정하였다.

그럼으로서 초대 교회의 경전성 갈등 문제는 일단 봉합되었다.

 

(** 하지만 이때까지도 아직 교회 내에서 외경의 위치는 유동적이었던 것 같다.

시나이 사본에는 마카베오 4서가 들어가며, 바티칸 사본은 마카베오서를 전부 제외한다.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2경전 전부를 인정하지만, 솔로몬의 시편을 성서로서 제안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경전성을 긍정한 외경의 범위-즉 카르타고 공의회의 구약성서 목록은 지금의

제 2경전 포함 불가타 개정역보다 넓다. 이후 소개되는 가톨릭내 배제 외경들이 그러하다.)

- 이에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 측의 주장을 억누르고, 내적으로도 문제가 되어 온 '정경시비'를 종식시키기 위해

트리엔트(트렌트) 공의회를 열었다. 마침내 '사크로산크타 교령'을 통해서, 교황의 교도권을 통하여 70인역

성서의 목록, 즉 '교회의 책들' 중에서 7권의 문헌을 경전으로 공식 인정하고(제 2경전),

초기 불가타 목록 일부를 제외하여, 구약 46권의 현재 가톨릭 경전 목록을 최종 확정하였다.

그 중에서 70인역의 에스드라스 3권과, 70인역에는 없고 불가타에 추가로 들어갔던 에스드라스 4권과

므나쎄의 기도는 불가타 개정판의 제 2경전 목록에 들지 못하였다.

앞에서 경전성이 부정된 문헌들에 대한 경전성 배제도 최종적으로 재선포되었다. 그와 함께 2경전을

성서로 사용함에 거부하는 (가톨릭이 보기에) 일부 이단 세력에 대한 저주가 선포되었다

♣ TBC 성서연구

- 트랜트공의회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모두 25회에 걸쳐 열린 교회 회의였다.

이 회의는 예수회 출신의 학자들인 라이네즈와 살메론이 중심이 되어 교령과 교칙을 작성한 공의회였다.

교황 바울3세에 의해 트랜트에서 소집되었는데 그 목적은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중심으로 한 신교를

배척하려는 것었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중요한 사항들을 보면 성서와 전통은 동등하게 진리의 근원이며,

교회만이 성서를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등이다. 이렇듯 이 결정들은 철저히 반종교개혁적,

즉 반신교적인 성경들을 갖고 있었다. 이 회의는 로마카톨릭 교회와 신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 25회기에 걸쳐 개최된 이 공회의 중 특별한 결정을 한 회기들을 간추려보면

제4회기에서는 성서와 성문화되지 않은 전승을 대등한 위치에 두도록 하는 결정을 했는데,

이는 성서만이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신교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다.

또한 이 회기에서는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도 모교회의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고 못박았다.

다음으로 제6회기에서는 신교의 견해와 비슷하게 율법에 의해 새롭게 되지 못한다고 결정하기는 했지만,

이는 카톨릭 교회의 공로에 의한 의인사상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 회기결정문 14장에는

고해의 4단계, 즉 참회, 고백, 사죄선언, 그리고 보상의 단계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도 신교로써는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7회기에서는 일곱성례가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23회기에서는 교회의 일곱성직을 확인했으며,

모든 신자가 사제라고 하는 신교의 주장을 부정했다. 마지막 제 25회기에서는 연옥, 성인을 향한 기원,

성인숭배, 성인의 유물, 성상, 면죄부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여기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단지 올바르고 신중하게 사용할 것만을 가르쳤다. 특히 면죄부의 오용에 대해서 비판하면서도

지나치게 편법화하지말고 그것 때문에 교회의 규율이 약화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결정은 면죄부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신교의 비판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트랜트에서 개최된 가톨릭교회의 공의회는 신교의 개혁적 이상을 수용할 수 없었으며

신교와의 차이점만을 다시 한번 확연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교의 공격에 동요한 일부 가톨릭 신자에게는 자신들의 위치를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TBC 성서연구, 교욱목회협의회, 612-613)

♣ 성경의 유래

외경서의 14권이 모두가 트랜트공의회에서 승인받지 못한 것을 보면 트랜트공의회의 행동강령이 분명히

논쟁 위주였을 뿐 아니라, 편파적이었음도 엿볼 수 있다.

에스드라 1서와 2서(천주교는 에스드라 3서, 4서)와 므낫세의 기도는 제외되어졌다.

에스드라 2서를 제외시킨 것은 특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제외시킨 이유라면 그것은 사자(死者)에 대한

기도를 강력히 반대하는 구절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에스드라2서 7:105)

실제로 중세의 서사(서기관) 중 몇사람은 에스드라 2서의 라틴어 필사본에서 이 구절을 삭제시켜

버렸으며, 이 사실이 로버트 벤틀 리가 1874년 프랑스 아미엔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라틴어로 된 것을

다시 찾았을 때까지는 그것이 아랍어 필사본으로 알려 졌던 것이다.

(성경의 유래, 노오만가이슬러, 생명의 말씀사. 113쪽)

♣ 대한성서공회

교부들 사이에서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에는 없고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에만 나오는 책들에 대한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문제삼기는 하였으나,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는 그리스어 외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39권 책과 동일하게 영감 받은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게 된다.

히브리어 구약에 들어 있는 39권의 책은 이미 경전으로 전해져온 것이므로 이것을 ‘제1경전’이라고

하였고, 그리스어 구약에 들어 있는 나머지 책들은 늦게 경전이 되었다고 하여 ‘제2경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논의의 편의상 여기에서 ‘제1경전’ ‘제2경전’이란 말을 쓰지만, 이런 용어는 16세기

트렌트회의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의 기도’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는

불가타역 성서에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으로 인정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불가타역은 이 세 책을 부록으로 취급하여 별도로 편집하였고, 나머지 책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

적절히 재배치하였다. ‘토빗트’와 ‘유딧’은 ‘느헤미야기’ 다음에, ‘에스더기 추가 부분’은 ‘에스더기’ 안에,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는 ‘에스더기’ 다음에, ‘지혜서’와 ‘집회서’는 ‘아가’ 다음에, ‘바룩서’는 ‘애가’

다음에, ‘다니엘서 추가 부분’은 ‘다니엘서’ 다음에 각각 편집해 넣었다.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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